내려오기를 거절하셨다 (마27:39-40)
본문
오늘 본문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다. 인간의 말이다. 그 말을 듣는 당사자라면 누구나 참기 어려운 내용이다. "네가 만일 십자가에서 내려오 지 못한다면 너는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다"는 뜻이다. 얼마나 한심한 느 낌을 받겠는가 지금 예수는 자기들의 위해 목숨을 바친다.
그런데 감사는 커녕 욕을 하고 있다. 전혀 그들이 원하는 존재가 아니란 말이다. 하늘의 영광이 어떤 것인가 해도 달도 은하수도 세상의 어떤 아름다 움이 감당할 수 없는 것이다. 그 영광을 다 버리고 이 땅으로 왔다. 모든 수치와 고초를 겪으며 33년을 보낸다. 사람들을 사랑하되 자기 목숨보다 더 사랑했다. 귀신을 떼어주고 병을 고치고 생명을 주었다. 하늘의 말씀 을 풀어서 친절히 설명했다. 이제 그들을 위해 목숨을 버리려고 한다. 그러나 그 반응으로 나온 것이 바로 이 말이다. "네가 무슨 하나님의 아들이냐 그 꼴이 무엇이냐 남을 구하기 전에 네 자신부터 좀 구해봐 라. 자기도 못돌보는 주제에." 만약 나 자신이 구세주라고 생각해 보자. 어떤 마음이 일어날 것인가 큰소리를 지르면서 하나님께 불평했을 것이다. "오 아버지, 저런 인간 구원하라고 나를 이 모양으로 만드셨나요" 목사들이 가끔 교인들에게 이런 말을 한다. "내가 뭐 할 일이 없어서 밥벌어 먹으려고 목사노릇 하는지 아십니까 나 다른 일 해도 얼마든지 잘 나갈 수 있는 사람입니다." 이런 유치한 소리를 나도 많이 해 보았다. 요즘도 정신이 없으면 비슷한 소리가 나온다. 그냥 하나님의 일을 하면 되지 구차한 소리 알아달라고 해 봤자 모양새만 우습게 되는 것이다. 신자들은 어떠한가 남편이나 친구를 전도하거나 그리스도의 사랑을 조금 베풀면서 아니꼬운 일을 당한다. "내가 뭐 할 일이 없어서 저런 인간에게 이런 대우 받는가 더러워서 못해먹겠다." 그리고는 말한다. "여 보시오. 나도 이렇게 저렇고 한 사람이요. 당신에게 사랑 베푸는것 좀 알 아주시오." 이게 인간이다. 묵묵히 희생을 하는 존재가 아니다. 그러나 오늘 그리스도가 하신 일을 보면서 한 줄기 강한 뉘우침이 일 어나게 된다. 주가 뭐라고 대답하셨을까 아마도 나라면 그랬을 것이다. "내가 뭐 할 일이 없어서 이러고 있는줄 아느냐 한심한 인간들아, 다 너희를 위한 것이다. 그렇게도 모르냐 그만 두어라. 너희들 말대로 내 실 력을 보여주겠다." 그리고는 천둥과 벼락을 내려서 다 죽여버릴 것이다. 그 다음에는 하늘로 그냥 올라가서 하나님에게 말할 것이다. "정말 더 러워서 못해 먹겠습니다. 내가 그 인간들에게 요구한게 뭐가 있어요 전 부 주려고 그런 것뿐입니다. 그렇게도 내 마음을 모릅니까 저런 인간들 은 자격이 없습니다. 지옥 가라고 그냥 두세요. 이거 뭐가 나옵니까 돈 이 나옵니까 명예가 나옵니까 구세주 노릇 나 그만 두겠어요." 그러나 우리의 구세주는 그렇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자기의 십자가에 달려 있었다. 사람들이 계속 "내려와 보라"고 야유하는 동안 그냥 있었다. 그의 눈이 분노로 또는 멸시로 가득찼던가 아니 그의 가슴은 칼로 베는 것 같았다. 이해 못하는 그들이 오히려 불쌍했다. 사랑으로 아픈 마음으로 말한다. "아버지, 저들을 용서하소서. 저들이 모르고 저럽니다."
[노틀담의 꼽추]의 한 장면이다. 종치기 콰지모도는 집시 여인을 사랑 한다. 그의 외모는 흉칙했다. 등에는 혹이 있고 얼굴은 일그러졌다. 종소 리에 귀가 먹었기에 말도 거의 잊었다. 어느날 그 여인이 도둑질을 한다. 경찰에 의해 발각되자 자기가 대신 누명을 쓰고 잡힌다. 못난 콰지모도는 형틀에 매여 체형을 당한다. 채찍은 사정없이 그리고 끝없이 쏟아진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가 그의 온몸은 피투성이가 된다. 얼굴도 피로 덮였다. 사람들에게 들려져 자기 움막에 던져진 그는 정신을 차린다. 그 리고 얼굴에는 행복한 미소가 번진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그런 것이다. 물론 그 여인은 다른 남자를 사랑하고 있다. 콰지모도에게는 관심도 없다. 그러나 그런 것은 전혀 상관 없다. 사랑하기에 기쁜 것이다. 채찍이 마구 쏟아질때도 콰지모도는 웃고 있었다. 사랑하는 이에게 드 릴 수 있기에 그는 행복했던 것이다. 아무 것도 보상을 원하지 않았다. 사랑 그 자체가 보상이었다. 여기서 나는 그리스도를 보았다. 양들을 사랑하기에 고통을 당했다. 알아주건 몰라주건 문제가 아니다. 양들이 지옥 으로부터 구원을 얻고 행복해 진다면 모든게 다 이루어진 것이다. 우리는 자라면서 "정직하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의를 위해서 희생하 라는 말도 들었다. 국민학교에서부터 남을 위해서 목숨을 버린 사람들을 존경하고 높였다. 하지만 과연 그런가 정직한 사람이 잘되고 희생하는 이들을 누가 알아주는가 실제는 별로 그렇지 못했다. 속이는 사람이 잘 되고 남의 희생을 이용하는 사람이 잘되는 경우가 얼마나 많았던가. 그러나 오늘 성경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그리스도의 모습은 그런 것들 을 다 넘어선 것이다. 그에게는 정직이 잘되는 것이고 희생이 잘되는 것 이었다. 남을 위해서 봉사하고 종이 되는게 최상의 성공이었다. 정직하게 행해도 잘 않된다고 희생해도 알아주는 사람이 없다고 불평하는게 아니었다. 그는 그냥 정직했고 그냥 섬기고 봉사하는 사람이었다.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하리라." 그리고는 스스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보여주신 것이다. 참으로 그의 섬김은 강한 것이었다. 그것의 절정이 바로 십자가였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 로 주려 함이니라."(마20:28)
하나님! 이 비밀을 모두가 깨닫게 하소서! 여기 진리가 있다.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기에 십자가에서 내려올 수 없다. 남들에게 자기가 훌륭한 존재라는 것을 보여주러 그가 온게 아니다. 그는 신적인 능력을 실력보이고 존경받기 위해 사용하지 않았다. 양 들을 사랑해서 스스로 노틀담의 콰지모도가 된 것이다. 십자가에서 고통 을 당하고 원수들의 용서를 비는게 그들을 혼내는 것보다 위대한 것이다. 작년 가을, 밤에 설악산을 등반했다. 손전등을 가져갔다. 그러나 여러 시간동안 켤 수는 없었다. 희미한 달빛을 의지하고 계속 걸었다. 달이 구 름에 가릴 때 그래서 완전히 어두울 때만 전등을 켰다. 전지를 아껴야 했 던 것이다. 꼭 필요할 때만 켜는 전등, 아무리 그래도 몇 시간 못가는 힘, 그게 인간의 능력이다. 정말로 인간의 빛은 손전등 정도이다. 그러기에 꼭 필요한데만 힘을 쓴다. 가족을 위해서, 친한 사람을 위해 서만 사랑을 낸다. 내 힘이 있다고 생각될 때 그리고 내게 유익할 때만 친 절을 베푼다. 가끔 어쩔 수 없이 차선을 위반하거나 끼어들기를 한다. 정 말 어쩔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사람들이 양보하는가 드물다. 물고기 마 크를 단 사람이라도 나를 혼내기 위해서 밀어부친다. 마구 욕도 한다. 너무도 여유가 없다. 이런 정도는 마음만 정하면 부드럽게 할 수 있다.
운전하면서 양보하는 마음을 가지면 훈훈한 느낌을 가질 수 있는데. 정말로 빛을 계속 비칠 수 없는게 인간이다. 신자라도 약간 나을 정도이 지 인간임은 같다. 노력하면 되는 것도 아니다. 손전등은 아무리 아껴도 역시 한계가 있다. 그러기에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계신 것이다. 반면에 빛의 근원인 태양을 생각해 보라. 태양은 절대로 빛을 아끼지 않는다. 마음에 드는 장소만 비추지 않는다. 내가 빛을 주고 열을 주었으 니 갚으라고도 하지 않는다. 그냥 자기가 좋아서 비친다. 그만큼 엄청난 힘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다. 이 사랑은 절대로 보상 을 원하지 않는다. 그냥 항상 뜨거운 사랑,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다. 그리스도를 향해 내려오라고 외쳐보라. 가진 욕설을 퍼붙고 모욕을 주 어보아라. 우리는 작은 비판에도 갈대처럼 흔들려 잠을 이루지 못한다. 실수로 준 모욕도 마음에서 영영 사라지지 않고 눈빛을 사납게 한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그렇지 않다. 그는 절대로 내려 오지 않으신다. 그는 거 기서 죽어야만 내려오신다. 오. 주님은 우리를 그렇게 사랑하신다. 행해진 악은 행악자에게로 조만간에 반드시 돌아간다. 하나님은 절대 로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없다. 그러나 주는 악인이라도 섬긴다. 주와 연 합한 사람들도 그렇게 된다. 역사를 통해서 얼마나 많은 신자들이 수난을 겪고 모욕을 당했던가. 그러나 그들은 십자가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주위 의 분위기나 억울한 처우에 휩쓸리지 않았다. 묵묵히 십자가를 졌다. 세속적인 영은 권한다. "내려올 수 있으면 내려오라. 어찌 혼자 십자가를 지는가 억울하지도 않은가 무슨 일을 하건 고생은 피하라. 가능하 면 짐은 다른 사람에게 지우라. 누구건 상관없다. 자신만 지지 않으면 된다. 가능한 편한 길을 택하라. 자신을 소중히 여기라. 아무리 남에게 잘 해주어봐야 소용이 없다." 이 소리들이 우리를 손전등 수준으로 내린다. 성경은 자기를 부인하라고 한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와 함께 걸으라고 말한다. 기꺼이 십자가에 못박히라고 한다. 신자에게 고난은 무 의미한게 아니다.
십자가는 헛된게 아니다. 주의 십자가처럼 아름 다운 것이다.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존하리라." 주의 말씀이다.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의 은혜를 맛본 사람들이다. 그의 사랑을 받은 사람들이다. 그리스도 전체를 우리 속에 받아들인 이유가 무엇인가 지옥 을 면하고 천당에 가기 위해서인가 능력을 받아서 위대한 삶을 살기 위 해서인가 맞다. 그렇다. 우리는 구원을 받았다. 위대한 삶을 살 힘을 받 았다. 하늘의 은사를 받았다. 하나님의 보호를 24시간 영원히 받고 있다. 그러나 이제 우리가 할 일은 십자가를 지는 것이다. 태양이 우리 속에 비취기에 그를 의지하고 비치는 것이다. 주는 말씀하신다. "너희는 세상 의 빛이라." 그의 말씀을 인정하라. "너는 하나님의 축복받은 성전이다." 이 말씀도 인정하라. 그 모든 은사로 무엇할 것인가 각자의 십자가를 지는 것이다. 사람들은 말할 것이다. "내려와라. 네 능력을 자랑하라." 우리는 내려올 수 없다. 우리가 짊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든 면에서 주와 겹쳐진 존재들이다. 사람들의 짐을 짊어져야 한다. 특히 마음을 나누라. 때로는 돈이 상대방을 나쁘게 할 수도 있다. 자기를 낮추 라. 섬기라. 희생하라. 사랑하는 것 자체로 보상을 삼으라. 이것이 주와 같이 되는길이다. 이것이 영혼의 만족을 누리는 길이요 으뜸되는 길이다. 이 본문을 읽으며 내 마음에는 뜨거운 사랑이 솟아남을 느낀다. 마음 으로 다짐하며 주의 도움을 요청한다. 주님처럼 나도 양을 위해 죽으리 라. 못난 콰지모도이지만 사랑하는 사람들의 짐을 짊어지리라. 나도 십자가를 지리라. 불평하지 않으리라. 태양처럼 차별없이 비추리라.
사랑하는 여러분 주와 함께 짐을 지자. 주는 절대로 내려오지 않으셨다.
그런데 감사는 커녕 욕을 하고 있다. 전혀 그들이 원하는 존재가 아니란 말이다. 하늘의 영광이 어떤 것인가 해도 달도 은하수도 세상의 어떤 아름다 움이 감당할 수 없는 것이다. 그 영광을 다 버리고 이 땅으로 왔다. 모든 수치와 고초를 겪으며 33년을 보낸다. 사람들을 사랑하되 자기 목숨보다 더 사랑했다. 귀신을 떼어주고 병을 고치고 생명을 주었다. 하늘의 말씀 을 풀어서 친절히 설명했다. 이제 그들을 위해 목숨을 버리려고 한다. 그러나 그 반응으로 나온 것이 바로 이 말이다. "네가 무슨 하나님의 아들이냐 그 꼴이 무엇이냐 남을 구하기 전에 네 자신부터 좀 구해봐 라. 자기도 못돌보는 주제에." 만약 나 자신이 구세주라고 생각해 보자. 어떤 마음이 일어날 것인가 큰소리를 지르면서 하나님께 불평했을 것이다. "오 아버지, 저런 인간 구원하라고 나를 이 모양으로 만드셨나요" 목사들이 가끔 교인들에게 이런 말을 한다. "내가 뭐 할 일이 없어서 밥벌어 먹으려고 목사노릇 하는지 아십니까 나 다른 일 해도 얼마든지 잘 나갈 수 있는 사람입니다." 이런 유치한 소리를 나도 많이 해 보았다. 요즘도 정신이 없으면 비슷한 소리가 나온다. 그냥 하나님의 일을 하면 되지 구차한 소리 알아달라고 해 봤자 모양새만 우습게 되는 것이다. 신자들은 어떠한가 남편이나 친구를 전도하거나 그리스도의 사랑을 조금 베풀면서 아니꼬운 일을 당한다. "내가 뭐 할 일이 없어서 저런 인간에게 이런 대우 받는가 더러워서 못해먹겠다." 그리고는 말한다. "여 보시오. 나도 이렇게 저렇고 한 사람이요. 당신에게 사랑 베푸는것 좀 알 아주시오." 이게 인간이다. 묵묵히 희생을 하는 존재가 아니다. 그러나 오늘 그리스도가 하신 일을 보면서 한 줄기 강한 뉘우침이 일 어나게 된다. 주가 뭐라고 대답하셨을까 아마도 나라면 그랬을 것이다. "내가 뭐 할 일이 없어서 이러고 있는줄 아느냐 한심한 인간들아, 다 너희를 위한 것이다. 그렇게도 모르냐 그만 두어라. 너희들 말대로 내 실 력을 보여주겠다." 그리고는 천둥과 벼락을 내려서 다 죽여버릴 것이다. 그 다음에는 하늘로 그냥 올라가서 하나님에게 말할 것이다. "정말 더 러워서 못해 먹겠습니다. 내가 그 인간들에게 요구한게 뭐가 있어요 전 부 주려고 그런 것뿐입니다. 그렇게도 내 마음을 모릅니까 저런 인간들 은 자격이 없습니다. 지옥 가라고 그냥 두세요. 이거 뭐가 나옵니까 돈 이 나옵니까 명예가 나옵니까 구세주 노릇 나 그만 두겠어요." 그러나 우리의 구세주는 그렇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자기의 십자가에 달려 있었다. 사람들이 계속 "내려와 보라"고 야유하는 동안 그냥 있었다. 그의 눈이 분노로 또는 멸시로 가득찼던가 아니 그의 가슴은 칼로 베는 것 같았다. 이해 못하는 그들이 오히려 불쌍했다. 사랑으로 아픈 마음으로 말한다. "아버지, 저들을 용서하소서. 저들이 모르고 저럽니다."
[노틀담의 꼽추]의 한 장면이다. 종치기 콰지모도는 집시 여인을 사랑 한다. 그의 외모는 흉칙했다. 등에는 혹이 있고 얼굴은 일그러졌다. 종소 리에 귀가 먹었기에 말도 거의 잊었다. 어느날 그 여인이 도둑질을 한다. 경찰에 의해 발각되자 자기가 대신 누명을 쓰고 잡힌다. 못난 콰지모도는 형틀에 매여 체형을 당한다. 채찍은 사정없이 그리고 끝없이 쏟아진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가 그의 온몸은 피투성이가 된다. 얼굴도 피로 덮였다. 사람들에게 들려져 자기 움막에 던져진 그는 정신을 차린다. 그 리고 얼굴에는 행복한 미소가 번진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그런 것이다. 물론 그 여인은 다른 남자를 사랑하고 있다. 콰지모도에게는 관심도 없다. 그러나 그런 것은 전혀 상관 없다. 사랑하기에 기쁜 것이다. 채찍이 마구 쏟아질때도 콰지모도는 웃고 있었다. 사랑하는 이에게 드 릴 수 있기에 그는 행복했던 것이다. 아무 것도 보상을 원하지 않았다. 사랑 그 자체가 보상이었다. 여기서 나는 그리스도를 보았다. 양들을 사랑하기에 고통을 당했다. 알아주건 몰라주건 문제가 아니다. 양들이 지옥 으로부터 구원을 얻고 행복해 진다면 모든게 다 이루어진 것이다. 우리는 자라면서 "정직하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의를 위해서 희생하 라는 말도 들었다. 국민학교에서부터 남을 위해서 목숨을 버린 사람들을 존경하고 높였다. 하지만 과연 그런가 정직한 사람이 잘되고 희생하는 이들을 누가 알아주는가 실제는 별로 그렇지 못했다. 속이는 사람이 잘 되고 남의 희생을 이용하는 사람이 잘되는 경우가 얼마나 많았던가. 그러나 오늘 성경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그리스도의 모습은 그런 것들 을 다 넘어선 것이다. 그에게는 정직이 잘되는 것이고 희생이 잘되는 것 이었다. 남을 위해서 봉사하고 종이 되는게 최상의 성공이었다. 정직하게 행해도 잘 않된다고 희생해도 알아주는 사람이 없다고 불평하는게 아니었다. 그는 그냥 정직했고 그냥 섬기고 봉사하는 사람이었다.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하리라." 그리고는 스스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보여주신 것이다. 참으로 그의 섬김은 강한 것이었다. 그것의 절정이 바로 십자가였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 로 주려 함이니라."(마20:28)
하나님! 이 비밀을 모두가 깨닫게 하소서! 여기 진리가 있다.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기에 십자가에서 내려올 수 없다. 남들에게 자기가 훌륭한 존재라는 것을 보여주러 그가 온게 아니다. 그는 신적인 능력을 실력보이고 존경받기 위해 사용하지 않았다. 양 들을 사랑해서 스스로 노틀담의 콰지모도가 된 것이다. 십자가에서 고통 을 당하고 원수들의 용서를 비는게 그들을 혼내는 것보다 위대한 것이다. 작년 가을, 밤에 설악산을 등반했다. 손전등을 가져갔다. 그러나 여러 시간동안 켤 수는 없었다. 희미한 달빛을 의지하고 계속 걸었다. 달이 구 름에 가릴 때 그래서 완전히 어두울 때만 전등을 켰다. 전지를 아껴야 했 던 것이다. 꼭 필요할 때만 켜는 전등, 아무리 그래도 몇 시간 못가는 힘, 그게 인간의 능력이다. 정말로 인간의 빛은 손전등 정도이다. 그러기에 꼭 필요한데만 힘을 쓴다. 가족을 위해서, 친한 사람을 위해 서만 사랑을 낸다. 내 힘이 있다고 생각될 때 그리고 내게 유익할 때만 친 절을 베푼다. 가끔 어쩔 수 없이 차선을 위반하거나 끼어들기를 한다. 정 말 어쩔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사람들이 양보하는가 드물다. 물고기 마 크를 단 사람이라도 나를 혼내기 위해서 밀어부친다. 마구 욕도 한다. 너무도 여유가 없다. 이런 정도는 마음만 정하면 부드럽게 할 수 있다.
운전하면서 양보하는 마음을 가지면 훈훈한 느낌을 가질 수 있는데. 정말로 빛을 계속 비칠 수 없는게 인간이다. 신자라도 약간 나을 정도이 지 인간임은 같다. 노력하면 되는 것도 아니다. 손전등은 아무리 아껴도 역시 한계가 있다. 그러기에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계신 것이다. 반면에 빛의 근원인 태양을 생각해 보라. 태양은 절대로 빛을 아끼지 않는다. 마음에 드는 장소만 비추지 않는다. 내가 빛을 주고 열을 주었으 니 갚으라고도 하지 않는다. 그냥 자기가 좋아서 비친다. 그만큼 엄청난 힘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다. 이 사랑은 절대로 보상 을 원하지 않는다. 그냥 항상 뜨거운 사랑,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다. 그리스도를 향해 내려오라고 외쳐보라. 가진 욕설을 퍼붙고 모욕을 주 어보아라. 우리는 작은 비판에도 갈대처럼 흔들려 잠을 이루지 못한다. 실수로 준 모욕도 마음에서 영영 사라지지 않고 눈빛을 사납게 한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그렇지 않다. 그는 절대로 내려 오지 않으신다. 그는 거 기서 죽어야만 내려오신다. 오. 주님은 우리를 그렇게 사랑하신다. 행해진 악은 행악자에게로 조만간에 반드시 돌아간다. 하나님은 절대 로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없다. 그러나 주는 악인이라도 섬긴다. 주와 연 합한 사람들도 그렇게 된다. 역사를 통해서 얼마나 많은 신자들이 수난을 겪고 모욕을 당했던가. 그러나 그들은 십자가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주위 의 분위기나 억울한 처우에 휩쓸리지 않았다. 묵묵히 십자가를 졌다. 세속적인 영은 권한다. "내려올 수 있으면 내려오라. 어찌 혼자 십자가를 지는가 억울하지도 않은가 무슨 일을 하건 고생은 피하라. 가능하 면 짐은 다른 사람에게 지우라. 누구건 상관없다. 자신만 지지 않으면 된다. 가능한 편한 길을 택하라. 자신을 소중히 여기라. 아무리 남에게 잘 해주어봐야 소용이 없다." 이 소리들이 우리를 손전등 수준으로 내린다. 성경은 자기를 부인하라고 한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와 함께 걸으라고 말한다. 기꺼이 십자가에 못박히라고 한다. 신자에게 고난은 무 의미한게 아니다.
십자가는 헛된게 아니다. 주의 십자가처럼 아름 다운 것이다.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존하리라." 주의 말씀이다.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의 은혜를 맛본 사람들이다. 그의 사랑을 받은 사람들이다. 그리스도 전체를 우리 속에 받아들인 이유가 무엇인가 지옥 을 면하고 천당에 가기 위해서인가 능력을 받아서 위대한 삶을 살기 위 해서인가 맞다. 그렇다. 우리는 구원을 받았다. 위대한 삶을 살 힘을 받 았다. 하늘의 은사를 받았다. 하나님의 보호를 24시간 영원히 받고 있다. 그러나 이제 우리가 할 일은 십자가를 지는 것이다. 태양이 우리 속에 비취기에 그를 의지하고 비치는 것이다. 주는 말씀하신다. "너희는 세상 의 빛이라." 그의 말씀을 인정하라. "너는 하나님의 축복받은 성전이다." 이 말씀도 인정하라. 그 모든 은사로 무엇할 것인가 각자의 십자가를 지는 것이다. 사람들은 말할 것이다. "내려와라. 네 능력을 자랑하라." 우리는 내려올 수 없다. 우리가 짊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든 면에서 주와 겹쳐진 존재들이다. 사람들의 짐을 짊어져야 한다. 특히 마음을 나누라. 때로는 돈이 상대방을 나쁘게 할 수도 있다. 자기를 낮추 라. 섬기라. 희생하라. 사랑하는 것 자체로 보상을 삼으라. 이것이 주와 같이 되는길이다. 이것이 영혼의 만족을 누리는 길이요 으뜸되는 길이다. 이 본문을 읽으며 내 마음에는 뜨거운 사랑이 솟아남을 느낀다. 마음 으로 다짐하며 주의 도움을 요청한다. 주님처럼 나도 양을 위해 죽으리 라. 못난 콰지모도이지만 사랑하는 사람들의 짐을 짊어지리라. 나도 십자가를 지리라. 불평하지 않으리라. 태양처럼 차별없이 비추리라.
사랑하는 여러분 주와 함께 짐을 지자. 주는 절대로 내려오지 않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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