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주신 경륜을 따라 (골로새1:24-29)
본문
여러분, 여러분은 스스로 얼마나 자유하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가장 행복한 사람은 자유인입니다. 아무 것에도 매이지 않는, 마음껏 하늘을 나는 것 같은 그런 가벼운 마음으로 사는 자유인! 바로 그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신학적으로 말하면 죄와 사망과 사탄과 율법, 여호와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온전히 자유한 영혼, 그것이 바로 구원이며 그것이 바로 행복입니다. 여러분, 행복을 모르는 사람은 불행도 모릅니다. 불행하면서도 내가 얼마나 불행하다는 걸 끝내 모릅니다. 그건 참으로 불행한 사람입니다. 참 자유를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은 부자유하다는 것도 모릅니다. 그렇게, 그렇게 살아 왔기 때문입니다. 한 때, 십자매라고 하는걸 많이 키운 때가 있었습니다. 그거 키우면 돈 번다고들 많이 키웠다가 그만 너무 많이 생산을 해서 이제 그것을 부득불 날려보내게 되었습니다. 그대로 공중을 향해 날려보냈는데요, 이 십자매가 살지를 못하더라고요. 도대체 이 조그마한 그 속에서 자랐고 또 그대로 컸기 때문에요 넓은 하늘을 날아본 일이 없어요. 이 새장에서 그대로 살다가 그대로 죽어야 될 운명이에요. 새장 밖에서 살아 남지를 못하는 걸 보았습니다. 참 자유를 모르는 자는 참 불행이 뭔지 내가 얼마나 지금 부자유한 가운데 있다는 그것조차도 모르고 있는 그런 부자유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올시다. 그런고로 행복이라는 것은 먼저는 참 자유가 무엇인지를 아는데 있고, 그 다음에는 그 자유를 지켜 가는데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자유를 다시 어디에 메이지 않고 그대로 잘 지켜가야 하고요, 또 나아가서는 자유를 누리는데 있습니다.
자유를 enjoy 할 줄 알아야 합니다. 가장 행복한 자로 자유를 누려 갈 수 있어야 그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좀 더 깊이 생각하면 이 보다 더, 더 중요한 행복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자기에게 주어진 이 자유를 기쁜 마음으로 반납하는 자유를 누리는 것입니다. 내게 주어진 자유를 스스로 포기하는, 자유롭게 포기하는 바로 그 자유가 인간을 가장 행복하게 하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인간은 가끔 스스로 자기에게 속을 때가 있습니다. 극히 제한적인 자기의 자유를 어쨌든 벗어나 보려고 스스로 몸부림을 칩니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모르면서…… 가령, 어린아이들 때때로 공부하기 싫어합니다. 그래서 나가 놀기만 좋아하고 놀고 싶어 죽겠습니다. 그래서 공부하라는 소리가 막 짜증이 나고 공부하라는 말에 노이로제가 걸려서 공부하라는 말만 들으면 온 몸이 아주, 아주 저리고 아파 오는 아이들까지 있어요. 자, 그냥 나가고만 싶습니다. 부모의 잔소리가 아주 싫어요. 도대체 어머니 목소리가 싫은 사람도 있다니까요. 이 많은 잔소리에 견딜 수가 없어요. 그래서 뛰쳐나가려고 합니다만은, 자 한번 뛰쳐나가 봅시다, 어떻게 되나…… 방종과 타락의 노예가 되고 어느 순간에는 가슴을 찢으며 후회해야 한 평생 후회할 수밖에 없는 그런 인생이 돼 버립니다. 잠깐 속박을 견디지 못하고 뛰쳐나간다고 할 때, 그건 자유가 아니고 더 큰 속박이요, 더 무서운 감옥으로 뛰어 들어가고 있음을 우리가 모를 때가 많습니다. 결국 철이 나고 보면 나 혼자가 아니요, 나는 자유인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나의 나 됨이 벌써 많은 사랑을 받고 은혜 속에 내가 있었음을 내가 압니다. 여러분, 사람의 생이라고 하는 것은 이 세상에 태어나는 것, 이것도 의학을 전공하는 학자들의 말에 의하면 사실은 백 만분의 일에 해당하는 기적이라는 거예요. 내가 세상에 태어났다는 이 하나만도 백 만분의 일에 해당할, 그 이상의 기적이요. 또 오늘까지 살아 남은 것도 기적이에요. 내 마음대로 한 일이 무엇이 있었습니까 내가 부모를 골라서 태어났습니까 내가 그 시점에 태어나고 싶었습니까 내 의지가 그 어느 곳에 작용한 게 있습니까 낳아 주어서 나왔고, 키워 주어서 컸고, 이 세대 이 현 시점에 그냥 있을 뿐이요.
그러면 도대체 내 자유가 어디에 있었습니까 여러분, 세월이 가면 갈수록 나이 들면, 모름지기 이 자리에 50세 넘은 분들 가만히 생각해 보세요. 세월이 갈수록 깨닫는 것이 세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나는 혼자가 아니다. 왜요 마음대로 웃을 수도 없고 마음대로 울 수도 없어요. 마음대로 죽을 수도 없어요. 여러분, 자유 하십니까 그럴 수가 없는 거예요. 우리는 많은 사람들 속에 있거든요. 나 하나의 기분에 따라서 여러 사람이 좌우되거든요. 나 하나의 말실수로 인해서 엄청난 사람이 죽을 수도 있어요. 그걸 생각하고 나니 나는 자유가 아니에요. 나 혼자가 아니더라고요. 또 하나는 너무 많은 신세를 지고 살아오고 있어요. 그래서 어떤 분은 세상을 떠나면 유언을 하는데 "이제사 생각해 보니 너무 많은 신세를 졌다. 부모님들에게 심지어 자녀들에게까지 이웃에게 교회에 많은 신세를 져서 그 어느 하난 갚지 못하고 빚진 죄인으로 가노라." 진실한 말이에요. 좀 더 깊이 생각해 보면 너무 많은 사랑을 받았어요. 너무 많은 신세를 졌어요. 빚을 갚을 길이 없어요. 그것이, 그것이 인생이요 그것이 나 자신입니다. 또 하나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일 뿐이요. '하나님의 그 큰 은혜의 사슬에 내가 붙들려 있었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여러분 지난 과거를 생각해 보세요. 어느 하나 버려진 사건이 있습니까 내가 왜 병 들었었습니까 거기에 하나님의 사랑이 있었어요. 내가 왜 사업에 실패해서 궤도를 수정했습니까 그것도 하나님의 오묘한 경륜이었어요. 사건마다, 내장하는 현실 전부가 하나님의 오묘한 사랑이요, 섭리요, 경륜이요, 하나님의 은혜의 손길이었다는 것을 세월이 가면 갈수록 더 깊이 깊이 깨닫게 됩니다. 이제 기독교인이 무엇입니까 예수를 믿는다는 게 무얼 말하는 것입니까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한다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벌써 사랑하고 계셨다는 것을 오늘 다시 깨닫는 것입니다. 여러분, 신문에서 보시고 다 같이 걱정하고 기도하셨습니다 만은 김진경 총장님께서 저와 같이 평양에 가셨다가 제가 돌아올 때에 돌아오지 못하고 억류되어서 42일 동안을 평양에 계시다가 오셨습니다.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모든 일을 합동하여 선을 이루어서 크고 귀한 일을 더 이룰 수 있게 그렇게 일이 잘 합동하여 선을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많은 고생을 할 때가 있었습니다. 특별히 한 열흘 동안 아주 많은 심문을 받았는데, 자
그런데 그는 거기에서 많이 생각했다고 그래요. 무얼 생각했느냐고, 통 틀어서 한 마디로 말하면 '나는 너무 하나님의 사랑을 많이 받은 사람이다.' 유서를 쓰라고 그랬어요. 유서를 쓰게 됩니다. 그러나 그 생각 속에 너무 하나님께 감사했대요. '내가 하나님을 사랑한 줄 알았는데 아니에요. 하나님이 나를 계속 사랑하고 계셨구나!' 그것을 깨달았다고 그래요. 제가 그 때에 "내가 내일 설교하려고 준비해 놓은 원고를 보라"고, 그리고 이 원고를 읽어 주었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벌써 나를 사랑했다는 것 그것을 깨닫는 것이 그리스도인이라고…… "거참 이상하네. 내가 할 말을 목사님이 미리 해 놓았구만!"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이것은 만고불변의 신앙인의 고백입니다. 믿음이란, 내가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나를 얼마나 사랑했는지를 깨달아 가는 것이올시다. 나의 존재, 나의 나됨, 나의 사역! 나의 살아가는 모든 일이 하나님의 큰 사랑 속에 그 속에 있었음을 내가 오늘도 깨닫는 것입니다.
시편 139편 10절로 보면은 '내가 바다 끝에 가서 거할지라도 거기에서 하나님의 손길이 나를 보살피십니다.' 바다 끝에 가서 있을지라도 그 어디에 가 있던지 벌써 하나님은 그곳에서 나를 사랑하고 계셨단 말입니다. 이렇게 깨닫고 이렇게 계속 간증하며 이 사랑을 확인하며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 입니다. 사도바울은 자기 존재를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의 많은 서신 가운데 곳곳에서 자기 신앙을 간증합니다. 빌립보서 3장 12절에 보면 '나는 그리스도께 잡힌 바 된 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그리스도께 포로 되었다는 겁니다.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의 포로가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 후로 그는 자유가 없습니다. 예수의 포로가 된 나 자신, 먼저 생각합니다. 그리고 다시 생각합니다. 로마서 5장에서 '내가 하나님과 원수 되었을 때에 주께서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시고, 내가 예수 믿는 사람을 잡아죽이려고 다메섹으로 갈 때에 하나님과 원수 되었을 때 그가 내 죄를 이미 사하시고 나를 구속하셨다고. 벌써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셨다고……' 좀 더 나아가서는 고린도전서 15장에서 말합니다. '나의 나 됨이, becoming, 나의 나 됨이 오직 그리스도의 은혜라.' 갈라디아서 1장 15절에서 말합니다. '어머니의 태로부터 택정함을 입어 이방인의 사도가 되었노라.' 다시 깊이 생각해 보니까 길리기아 다소에 태어났다는 사실, 출생에서부터 오늘까지 도대체 세상에 태어난 그런 자체가 하나님 은혜요. 그때부터 선택되었다고 하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내게는 아무 자유가 없었습니다. 오직 은혜 안에 내가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그는 마지막으로 고백합니다.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것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
고린도전서 9장 16절에서 말합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이렇게 은혜로 태어났고, 이렇게 은혜로 살았고, 이렇게 엄청난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내가 이제 내가 복음을 전하지 않는다면 저주를 받아 마땅하다. 당연히 그렇지요. 그런고로 나는 자랑할 것이 없다. 아무리 수고해도 자랑할 것 없고 아무리 희생을 해도 아무 자랑도 없는 바로 그런 사람이다. 이것이 자기 존재에 대한 인식이었습니다. 여러분, 사도바울 뿐입니까 다시 오늘 이 본문에서 생각합니다. 그는 참으로 진실했고, 겸손했고 확신의 사람이었습니다. 본문에서 말합니다. 하나님의 경륜, 내게 주신 하나님의 경륜을 따라 오늘 내가 여기서 일하고 있다고. 내게 주신 경륜, 오이크노미안, 오이코스라는 말은 집이란 말입니다. 오이크노미안이라는 말은 바로 집을 섬기는 자, 즉 집사를 말하는 것이요, 맡은 자를 말하는 것이올시다. 이 집이라는 것을 가만히 보세요. 기둥은 기둥이 할 일이 있고, 창문은 창문이 할 일이 있고, 지붕은 지붕이 할 일이 있습니다. 이렇게 합쳐서 하나의 집이 이루어집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경륜적 구조입니다. 그 속에 내가 있는 것이요.
그런데 이것은 비밀한 것입니다. 보통 사람은 잘 모릅니다. 잘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오묘한 경륜이 있어요. 그 경륜을 내가 믿음 생활하면서 세월이 가면서 조금씩조금씩 알 것 같습니다. 그때에 되어졌던 일이 우연한 일이 아니었어요. 그때에 내가 실패한 것도 우연이 아니었어요. 그때에 내가 배신당한 것도 절대로 우연한 일이 아니었어요. 하나 하나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이 비밀, 그 속에 내가 있음을 압니다. 그래서 현대어 번역에서는 God's plan!, 하나님의 계획이요, 하나님의 시나리오요, 하나님의 드라마요, 만백성을 구원하시고자 하시는 경륜이요, 신비로운 것이요. 조금씩조금씩 내가 이것을 배워 나가고 깨달아 나가는 것이올시다.
미켈란젤로라고 하면 모르시는 분이 없을 겁니다. 유명한 화가가 아닙니까! 그는 시스틴 성당이라고 로마를 방문하게 되면 누구나 다 한 번씩 보게되는 큰 성당, 시스틴 성당 그 천장에 동그란 천장에다가 창조로부터 시작해서 선지자까지 그 모든 그림을 그립니다. 4년 동안 그려서 혼자서 그 그림을 그린 것입니다. 1508년으로부터 1512년까지 그는 허리가 좋지 않았고, 그는 호흡기도 좋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천장을 향하여서 그림을 그리다 보니까 목이 굳어졌고 팔도 병신이 됩니다. 4년 동안 이 그림을 그려 나갈 때 제자들이 너무 안쓰러워서 "선생님, 몸도 좋지 않으신데 왜 하필이면 이 그림을 그리려고 하십니까 다른 사람에게 맡겨도 되는데 왜 이 수고를 자청하시는 겁니까" 그는 대답했습니다. "단순한 작품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필요하다고 하는데 내가 어찌 거절할 것이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4년 동안 그 그림을 그려서 오늘도 500년 후 우리가 쳐다 볼 때에 큰 감격을 받습니다. 어떻게 이 그림을 저기에 올라가서 한평생 저걸 그릴 수 있단 말입니까!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그렇게 수고했더란 말입니다. 그는 이것이 영광이었고, 스스로의 자랑이었습니다.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사도바울은 말합니다. '그래서 나도 힘써 수고하노라.' 큰 경륜 속에 내가 있음을 알고 수고하노라. 그 경륜에 포로 된 나, 하나님의 선택받은 나를 생각하고 이제는 내가 그 은혜를 선택합니다. 그래서 내 자유를 반납해 버립니다. 옛날을 위해 살지 않겠습니다. 오직 주님을 위해서 살겠습니다. 주어진 자유를 완전히 반납해 버리는 그 자유, 거기에 영광이 있는 것이에요. 인도에서 한 평생을 수고해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스탠리 존슨 박사라고 선교사가 있습니다. 그 선교사 한 평생 선교사업을 위해 수고하고 말해준 간증이 있습니다. 기독교인이라면 누구나 필연적으로 세 가지를 경험하게 된다고……
첫째 체험은 불안으로부터의 해방입니다. 우리를 걱정케 하고 불안하게 하는 일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불안으로부터 그리스도인은 자유 합니다. 우리 김진경 박사님도 이제 처형당할 시간을 앞에 놓고 있으면서도 그는 평안했습니다. 이렇게 마음이 평안한 시간이 없었다고 그렇게 간증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그리스도인은 어떤 일에도 마음이 평안합니다. 불안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되는 것을 체험합니다. 이게 신앙입니다. 또 하나는 이상하리만큼 마음이 기쁜 것입니다. 말로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신비로운 기쁨이기 때문에 왜 내가 기쁜지, 그 기쁨 이 가슴속에 있는 그리스도인의 기쁨은 설명할 수가 없는 거예요. 성령님 안에서 놀라운 기쁨을 그리스도인은 체험합니다. 세 번째는 고난을 체험합니다. 신앙 생활할 때에 일이 잘 되기만 하는 게 아니에요. 자꾸 어려운 일이 닥칩니다. 하나 해결하는 가 하면 또 생깁니다. 하나 있으면 또 어려운 일이 생깁니다. 왜 이런 일이 생길까 이제 스탠리 존슨 박사님은 깊이 체험했습니다. 이것은 내게 필요한 것이라고. 왜요 나로 하여금 순수한 믿음 가지게 하기 위해서 내가 버리지 못하는 것 버리고, 끊지 못하는 거 끊고, 내가 게을러빠질 때 부지런하게 하고, 내가 정신 못 차릴 때 순수한 마음 가지도록 하나님이 직접 역사하는 거예요. 내게 닥치는 모든 고난에 아주 귀중한, 신비로운 교육적 의미가 있음을 알았어요.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체험입니다. 스탠리 박사뿐이겠습니까 어느 누구도 그리스도인은 이 세 가지를 체험하고 살아갑니다. 그런고로 사도바울은 말합니다. 나는 너희를 위하여 당하는 고난을 기뻐하고 고난을 기뻐하는데. 이것은 내게 주신 경륜을 아는 사람의 고백입니다.
여러분, 누구를 사랑하십니까 그것은 그를 위하여 수고하는 것을 기뻐하는 데 있는 거예요. 한평생 수고해도 기쁨이 없으면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한다는 말을 하루종일 중얼거려도 소용없습니다. 내게 기쁨이 없으면 사랑이 아닙니다. 그건 절대로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이 아니기에 행복도 없는 겁니다. 고난을 기뻐하는 것이요, 희생을 즐기는 것이요, 고난 당할수록 더 기뻐하는 것이요, 주의 이름으로 당하는 고난이라면 그건 최상의 영광입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모습이요, 더구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비난당하는 것이 있다고 한다면 더 기뻐합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신앙의 극치올시다. 사도바울은 나의 나됨이 은혜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교회의 일꾼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이아코노스라고 하는 말은 일꾼이요. 그대로가 봉사자입니다. 섬기는 자 올시다. 여러분, 한평생 섬김을 받았습니까 제발 이제는 생각 좀 바꾸어서 섬기는 자로 살아보세요. 다소라도 섬김 받으려고 하지 마세요. 요새 많은 사람들이 참 한심한 게 있어요. 젊은 사람 문자대로 왕자병, 공주병 때문에. 뭐 잘난 게 있다고 시든 지가 언젠데 물 갈은 지가 오래 됐어요. 잊어 버려! 깨끗이 버리세요. 그리고 그저 남은 시간 섬겨 보겠다 하는마음으로 살아 보세요. 이제 인생을 처음 사는 기쁨을 느끼게 될 것이니까. 그걸 알아야 합니다. 아직도 이것을 벗어버리지 못했기 때문에 참 비참한 거예요. 그대로 살다가 간다는 건 너무 안 됐어요. 제발 훌훌 벗어버리세요. 그리고 오직 섬기는 자로 예수님 친히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20장에서 '나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오, 섬기러 왔고, 대속물로 주려 했노라.' 작은 일이던 적은 일이던 이젠 섬기세요. 시어머니 노릇 하려고 하지 말고 며느리를 섬기세요. 부모라고 무슨 효도 받겠다고 하지 말고 기왕에 주던 바에 끝까지 발이라도 닦아주면서 섬기고 가기로 결심하세요. 이제 가장 갚진 인생은 섬김에 쓰여진다는데 있어요. 아직도 섬김에 쓰여질 요소가 많아요. 그것이 고마운 것이에요. 가장 값지고 귀한 생의 의미를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자유를 enjoy 할 줄 알아야 합니다. 가장 행복한 자로 자유를 누려 갈 수 있어야 그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좀 더 깊이 생각하면 이 보다 더, 더 중요한 행복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자기에게 주어진 이 자유를 기쁜 마음으로 반납하는 자유를 누리는 것입니다. 내게 주어진 자유를 스스로 포기하는, 자유롭게 포기하는 바로 그 자유가 인간을 가장 행복하게 하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인간은 가끔 스스로 자기에게 속을 때가 있습니다. 극히 제한적인 자기의 자유를 어쨌든 벗어나 보려고 스스로 몸부림을 칩니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모르면서…… 가령, 어린아이들 때때로 공부하기 싫어합니다. 그래서 나가 놀기만 좋아하고 놀고 싶어 죽겠습니다. 그래서 공부하라는 소리가 막 짜증이 나고 공부하라는 말에 노이로제가 걸려서 공부하라는 말만 들으면 온 몸이 아주, 아주 저리고 아파 오는 아이들까지 있어요. 자, 그냥 나가고만 싶습니다. 부모의 잔소리가 아주 싫어요. 도대체 어머니 목소리가 싫은 사람도 있다니까요. 이 많은 잔소리에 견딜 수가 없어요. 그래서 뛰쳐나가려고 합니다만은, 자 한번 뛰쳐나가 봅시다, 어떻게 되나…… 방종과 타락의 노예가 되고 어느 순간에는 가슴을 찢으며 후회해야 한 평생 후회할 수밖에 없는 그런 인생이 돼 버립니다. 잠깐 속박을 견디지 못하고 뛰쳐나간다고 할 때, 그건 자유가 아니고 더 큰 속박이요, 더 무서운 감옥으로 뛰어 들어가고 있음을 우리가 모를 때가 많습니다. 결국 철이 나고 보면 나 혼자가 아니요, 나는 자유인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나의 나 됨이 벌써 많은 사랑을 받고 은혜 속에 내가 있었음을 내가 압니다. 여러분, 사람의 생이라고 하는 것은 이 세상에 태어나는 것, 이것도 의학을 전공하는 학자들의 말에 의하면 사실은 백 만분의 일에 해당하는 기적이라는 거예요. 내가 세상에 태어났다는 이 하나만도 백 만분의 일에 해당할, 그 이상의 기적이요. 또 오늘까지 살아 남은 것도 기적이에요. 내 마음대로 한 일이 무엇이 있었습니까 내가 부모를 골라서 태어났습니까 내가 그 시점에 태어나고 싶었습니까 내 의지가 그 어느 곳에 작용한 게 있습니까 낳아 주어서 나왔고, 키워 주어서 컸고, 이 세대 이 현 시점에 그냥 있을 뿐이요.
그러면 도대체 내 자유가 어디에 있었습니까 여러분, 세월이 가면 갈수록 나이 들면, 모름지기 이 자리에 50세 넘은 분들 가만히 생각해 보세요. 세월이 갈수록 깨닫는 것이 세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나는 혼자가 아니다. 왜요 마음대로 웃을 수도 없고 마음대로 울 수도 없어요. 마음대로 죽을 수도 없어요. 여러분, 자유 하십니까 그럴 수가 없는 거예요. 우리는 많은 사람들 속에 있거든요. 나 하나의 기분에 따라서 여러 사람이 좌우되거든요. 나 하나의 말실수로 인해서 엄청난 사람이 죽을 수도 있어요. 그걸 생각하고 나니 나는 자유가 아니에요. 나 혼자가 아니더라고요. 또 하나는 너무 많은 신세를 지고 살아오고 있어요. 그래서 어떤 분은 세상을 떠나면 유언을 하는데 "이제사 생각해 보니 너무 많은 신세를 졌다. 부모님들에게 심지어 자녀들에게까지 이웃에게 교회에 많은 신세를 져서 그 어느 하난 갚지 못하고 빚진 죄인으로 가노라." 진실한 말이에요. 좀 더 깊이 생각해 보면 너무 많은 사랑을 받았어요. 너무 많은 신세를 졌어요. 빚을 갚을 길이 없어요. 그것이, 그것이 인생이요 그것이 나 자신입니다. 또 하나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일 뿐이요. '하나님의 그 큰 은혜의 사슬에 내가 붙들려 있었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여러분 지난 과거를 생각해 보세요. 어느 하나 버려진 사건이 있습니까 내가 왜 병 들었었습니까 거기에 하나님의 사랑이 있었어요. 내가 왜 사업에 실패해서 궤도를 수정했습니까 그것도 하나님의 오묘한 경륜이었어요. 사건마다, 내장하는 현실 전부가 하나님의 오묘한 사랑이요, 섭리요, 경륜이요, 하나님의 은혜의 손길이었다는 것을 세월이 가면 갈수록 더 깊이 깊이 깨닫게 됩니다. 이제 기독교인이 무엇입니까 예수를 믿는다는 게 무얼 말하는 것입니까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한다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벌써 사랑하고 계셨다는 것을 오늘 다시 깨닫는 것입니다. 여러분, 신문에서 보시고 다 같이 걱정하고 기도하셨습니다 만은 김진경 총장님께서 저와 같이 평양에 가셨다가 제가 돌아올 때에 돌아오지 못하고 억류되어서 42일 동안을 평양에 계시다가 오셨습니다.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모든 일을 합동하여 선을 이루어서 크고 귀한 일을 더 이룰 수 있게 그렇게 일이 잘 합동하여 선을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많은 고생을 할 때가 있었습니다. 특별히 한 열흘 동안 아주 많은 심문을 받았는데, 자
그런데 그는 거기에서 많이 생각했다고 그래요. 무얼 생각했느냐고, 통 틀어서 한 마디로 말하면 '나는 너무 하나님의 사랑을 많이 받은 사람이다.' 유서를 쓰라고 그랬어요. 유서를 쓰게 됩니다. 그러나 그 생각 속에 너무 하나님께 감사했대요. '내가 하나님을 사랑한 줄 알았는데 아니에요. 하나님이 나를 계속 사랑하고 계셨구나!' 그것을 깨달았다고 그래요. 제가 그 때에 "내가 내일 설교하려고 준비해 놓은 원고를 보라"고, 그리고 이 원고를 읽어 주었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벌써 나를 사랑했다는 것 그것을 깨닫는 것이 그리스도인이라고…… "거참 이상하네. 내가 할 말을 목사님이 미리 해 놓았구만!"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이것은 만고불변의 신앙인의 고백입니다. 믿음이란, 내가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나를 얼마나 사랑했는지를 깨달아 가는 것이올시다. 나의 존재, 나의 나됨, 나의 사역! 나의 살아가는 모든 일이 하나님의 큰 사랑 속에 그 속에 있었음을 내가 오늘도 깨닫는 것입니다.
시편 139편 10절로 보면은 '내가 바다 끝에 가서 거할지라도 거기에서 하나님의 손길이 나를 보살피십니다.' 바다 끝에 가서 있을지라도 그 어디에 가 있던지 벌써 하나님은 그곳에서 나를 사랑하고 계셨단 말입니다. 이렇게 깨닫고 이렇게 계속 간증하며 이 사랑을 확인하며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 입니다. 사도바울은 자기 존재를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의 많은 서신 가운데 곳곳에서 자기 신앙을 간증합니다. 빌립보서 3장 12절에 보면 '나는 그리스도께 잡힌 바 된 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그리스도께 포로 되었다는 겁니다.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의 포로가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 후로 그는 자유가 없습니다. 예수의 포로가 된 나 자신, 먼저 생각합니다. 그리고 다시 생각합니다. 로마서 5장에서 '내가 하나님과 원수 되었을 때에 주께서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시고, 내가 예수 믿는 사람을 잡아죽이려고 다메섹으로 갈 때에 하나님과 원수 되었을 때 그가 내 죄를 이미 사하시고 나를 구속하셨다고. 벌써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셨다고……' 좀 더 나아가서는 고린도전서 15장에서 말합니다. '나의 나 됨이, becoming, 나의 나 됨이 오직 그리스도의 은혜라.' 갈라디아서 1장 15절에서 말합니다. '어머니의 태로부터 택정함을 입어 이방인의 사도가 되었노라.' 다시 깊이 생각해 보니까 길리기아 다소에 태어났다는 사실, 출생에서부터 오늘까지 도대체 세상에 태어난 그런 자체가 하나님 은혜요. 그때부터 선택되었다고 하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내게는 아무 자유가 없었습니다. 오직 은혜 안에 내가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그는 마지막으로 고백합니다.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것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
고린도전서 9장 16절에서 말합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이렇게 은혜로 태어났고, 이렇게 은혜로 살았고, 이렇게 엄청난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내가 이제 내가 복음을 전하지 않는다면 저주를 받아 마땅하다. 당연히 그렇지요. 그런고로 나는 자랑할 것이 없다. 아무리 수고해도 자랑할 것 없고 아무리 희생을 해도 아무 자랑도 없는 바로 그런 사람이다. 이것이 자기 존재에 대한 인식이었습니다. 여러분, 사도바울 뿐입니까 다시 오늘 이 본문에서 생각합니다. 그는 참으로 진실했고, 겸손했고 확신의 사람이었습니다. 본문에서 말합니다. 하나님의 경륜, 내게 주신 하나님의 경륜을 따라 오늘 내가 여기서 일하고 있다고. 내게 주신 경륜, 오이크노미안, 오이코스라는 말은 집이란 말입니다. 오이크노미안이라는 말은 바로 집을 섬기는 자, 즉 집사를 말하는 것이요, 맡은 자를 말하는 것이올시다. 이 집이라는 것을 가만히 보세요. 기둥은 기둥이 할 일이 있고, 창문은 창문이 할 일이 있고, 지붕은 지붕이 할 일이 있습니다. 이렇게 합쳐서 하나의 집이 이루어집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경륜적 구조입니다. 그 속에 내가 있는 것이요.
그런데 이것은 비밀한 것입니다. 보통 사람은 잘 모릅니다. 잘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오묘한 경륜이 있어요. 그 경륜을 내가 믿음 생활하면서 세월이 가면서 조금씩조금씩 알 것 같습니다. 그때에 되어졌던 일이 우연한 일이 아니었어요. 그때에 내가 실패한 것도 우연이 아니었어요. 그때에 내가 배신당한 것도 절대로 우연한 일이 아니었어요. 하나 하나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이 비밀, 그 속에 내가 있음을 압니다. 그래서 현대어 번역에서는 God's plan!, 하나님의 계획이요, 하나님의 시나리오요, 하나님의 드라마요, 만백성을 구원하시고자 하시는 경륜이요, 신비로운 것이요. 조금씩조금씩 내가 이것을 배워 나가고 깨달아 나가는 것이올시다.
미켈란젤로라고 하면 모르시는 분이 없을 겁니다. 유명한 화가가 아닙니까! 그는 시스틴 성당이라고 로마를 방문하게 되면 누구나 다 한 번씩 보게되는 큰 성당, 시스틴 성당 그 천장에 동그란 천장에다가 창조로부터 시작해서 선지자까지 그 모든 그림을 그립니다. 4년 동안 그려서 혼자서 그 그림을 그린 것입니다. 1508년으로부터 1512년까지 그는 허리가 좋지 않았고, 그는 호흡기도 좋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천장을 향하여서 그림을 그리다 보니까 목이 굳어졌고 팔도 병신이 됩니다. 4년 동안 이 그림을 그려 나갈 때 제자들이 너무 안쓰러워서 "선생님, 몸도 좋지 않으신데 왜 하필이면 이 그림을 그리려고 하십니까 다른 사람에게 맡겨도 되는데 왜 이 수고를 자청하시는 겁니까" 그는 대답했습니다. "단순한 작품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필요하다고 하는데 내가 어찌 거절할 것이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4년 동안 그 그림을 그려서 오늘도 500년 후 우리가 쳐다 볼 때에 큰 감격을 받습니다. 어떻게 이 그림을 저기에 올라가서 한평생 저걸 그릴 수 있단 말입니까!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그렇게 수고했더란 말입니다. 그는 이것이 영광이었고, 스스로의 자랑이었습니다.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사도바울은 말합니다. '그래서 나도 힘써 수고하노라.' 큰 경륜 속에 내가 있음을 알고 수고하노라. 그 경륜에 포로 된 나, 하나님의 선택받은 나를 생각하고 이제는 내가 그 은혜를 선택합니다. 그래서 내 자유를 반납해 버립니다. 옛날을 위해 살지 않겠습니다. 오직 주님을 위해서 살겠습니다. 주어진 자유를 완전히 반납해 버리는 그 자유, 거기에 영광이 있는 것이에요. 인도에서 한 평생을 수고해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스탠리 존슨 박사라고 선교사가 있습니다. 그 선교사 한 평생 선교사업을 위해 수고하고 말해준 간증이 있습니다. 기독교인이라면 누구나 필연적으로 세 가지를 경험하게 된다고……
첫째 체험은 불안으로부터의 해방입니다. 우리를 걱정케 하고 불안하게 하는 일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불안으로부터 그리스도인은 자유 합니다. 우리 김진경 박사님도 이제 처형당할 시간을 앞에 놓고 있으면서도 그는 평안했습니다. 이렇게 마음이 평안한 시간이 없었다고 그렇게 간증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그리스도인은 어떤 일에도 마음이 평안합니다. 불안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되는 것을 체험합니다. 이게 신앙입니다. 또 하나는 이상하리만큼 마음이 기쁜 것입니다. 말로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신비로운 기쁨이기 때문에 왜 내가 기쁜지, 그 기쁨 이 가슴속에 있는 그리스도인의 기쁨은 설명할 수가 없는 거예요. 성령님 안에서 놀라운 기쁨을 그리스도인은 체험합니다. 세 번째는 고난을 체험합니다. 신앙 생활할 때에 일이 잘 되기만 하는 게 아니에요. 자꾸 어려운 일이 닥칩니다. 하나 해결하는 가 하면 또 생깁니다. 하나 있으면 또 어려운 일이 생깁니다. 왜 이런 일이 생길까 이제 스탠리 존슨 박사님은 깊이 체험했습니다. 이것은 내게 필요한 것이라고. 왜요 나로 하여금 순수한 믿음 가지게 하기 위해서 내가 버리지 못하는 것 버리고, 끊지 못하는 거 끊고, 내가 게을러빠질 때 부지런하게 하고, 내가 정신 못 차릴 때 순수한 마음 가지도록 하나님이 직접 역사하는 거예요. 내게 닥치는 모든 고난에 아주 귀중한, 신비로운 교육적 의미가 있음을 알았어요.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체험입니다. 스탠리 박사뿐이겠습니까 어느 누구도 그리스도인은 이 세 가지를 체험하고 살아갑니다. 그런고로 사도바울은 말합니다. 나는 너희를 위하여 당하는 고난을 기뻐하고 고난을 기뻐하는데. 이것은 내게 주신 경륜을 아는 사람의 고백입니다.
여러분, 누구를 사랑하십니까 그것은 그를 위하여 수고하는 것을 기뻐하는 데 있는 거예요. 한평생 수고해도 기쁨이 없으면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한다는 말을 하루종일 중얼거려도 소용없습니다. 내게 기쁨이 없으면 사랑이 아닙니다. 그건 절대로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이 아니기에 행복도 없는 겁니다. 고난을 기뻐하는 것이요, 희생을 즐기는 것이요, 고난 당할수록 더 기뻐하는 것이요, 주의 이름으로 당하는 고난이라면 그건 최상의 영광입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모습이요, 더구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비난당하는 것이 있다고 한다면 더 기뻐합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신앙의 극치올시다. 사도바울은 나의 나됨이 은혜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교회의 일꾼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이아코노스라고 하는 말은 일꾼이요. 그대로가 봉사자입니다. 섬기는 자 올시다. 여러분, 한평생 섬김을 받았습니까 제발 이제는 생각 좀 바꾸어서 섬기는 자로 살아보세요. 다소라도 섬김 받으려고 하지 마세요. 요새 많은 사람들이 참 한심한 게 있어요. 젊은 사람 문자대로 왕자병, 공주병 때문에. 뭐 잘난 게 있다고 시든 지가 언젠데 물 갈은 지가 오래 됐어요. 잊어 버려! 깨끗이 버리세요. 그리고 그저 남은 시간 섬겨 보겠다 하는마음으로 살아 보세요. 이제 인생을 처음 사는 기쁨을 느끼게 될 것이니까. 그걸 알아야 합니다. 아직도 이것을 벗어버리지 못했기 때문에 참 비참한 거예요. 그대로 살다가 간다는 건 너무 안 됐어요. 제발 훌훌 벗어버리세요. 그리고 오직 섬기는 자로 예수님 친히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20장에서 '나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오, 섬기러 왔고, 대속물로 주려 했노라.' 작은 일이던 적은 일이던 이젠 섬기세요. 시어머니 노릇 하려고 하지 말고 며느리를 섬기세요. 부모라고 무슨 효도 받겠다고 하지 말고 기왕에 주던 바에 끝까지 발이라도 닦아주면서 섬기고 가기로 결심하세요. 이제 가장 갚진 인생은 섬김에 쓰여진다는데 있어요. 아직도 섬김에 쓰여질 요소가 많아요. 그것이 고마운 것이에요. 가장 값지고 귀한 생의 의미를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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