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주신 권세 (눅20:1-8)
본문
오늘 말씀 속에 권세라고 하는 단어가 나옵니다. 산해드린의 권세를 가진 자들이 예수님께 와서 예수님의 권세에 대한 실랑이를 했습니다. 곧 이것은 세상 권세와 예수님이 가지신 권세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어느 권세가 강한가 두말할 것이 없지요. 요즘처럼 어렵고 복잡한 세대에서 참으로 우리에게 더 절실히 요청되어지는 것은 권세입니다. 아무리 어렵고 복잡해도 힘만 있으면 됩니다. 권세만 있으면 걱정할 것 없는데 바로 그런 점에서 오늘 성도되고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된 나에게 어떤 권세가 있느냐 하는 것을 밝히 아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입니다. 비록 세상적인 권세도 우리 나름대로 있지만 그것만 가지고는 안된다는 말이지요.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주신 열 가지 놀라운 권세가 있습니다. 그리고 문제는 이 하나님의 자녀된 나에게 주신 열 가지 권세를 얼마나 잘 쓰느냐에 달렸습니다. 안타깝게도 많은 성도들이 하나님이 주신 권세를 사용하질 않습니다. 왜 사용하지 않느냐 이유는 죄책감 때문입니다. "나는 부족한데 나 같이 부족한 자가 이런 권세를 사용한들 되겠느냐" 그래서 위축을 당합니다. 하나님의 자녀이면서도 세상 속에서 위축을 당해서 하나님의 권세를 힘있게 쓰지 못하므로 항상 눌려지내는 그러한 안타까운 모습을 봅니다. 이제 내가 얼마나 잘 믿느냐 못 믿느냐를 떠나서 오늘 주신 말씀은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에게는 이런 권세가 있으니 권세를 쓰라는 말입니다. 이제 한 달되어 기어다니는 아이도 내 자녀라는 것이죠. 열 살 먹은 아이만 권세 있는 것이 아닙니다. 똑같은 자녀의 권세가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똑같아요.
그러므로 랑하는 성도 여러분! 두려워하지 말고 이제부터 하나님이 주신 권세가 세상 권세보다 훨씬 더 놀랍고 기묘하고 아름답고 복스러운 것인데 이 열 가지 권세를 당당하게 사용해서 승리하시고 풍성한 삶을 누리게 되시길 축원합니다.
열 가지 권세를 차례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1). 하나님의 사랑과 보호를 받는 권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때문에 요한복음 1장 12절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 예수 믿으므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거에요. 잘 믿느냐, 못 믿느냐를 말하는 것이 아니에요. 예수 믿는 그 날, 그때부터는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자녀로써 사랑하시고 보호하시고 그리고 천사들이 나를 지킵니다. 하나님의 자녀된 그 날, 그 시간부터 천사들이 나를 경호합니다. 시편 34절 7절, 히브리서 1장 14절, 요한복음 3장 16절을 보면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는다" 그랬습니다. 요한복음 10장 10절에 "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사랑과 보호를 받는 권세는 더 쉬운 말로 말하면 절대 망하지 않는 권세입니다. 나는 안 망해요. 이 확신을 가지십시오.
그런데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가지고도 자신이 없어요! "내가 될까 안될 것 같은데" 그러니까 망하지는 않지만 안된다는 부정적인 의식을 갖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로써의 삶이 활기가 없습니다. 풍성하질 못해요. 오늘 말씀대로 하나님의 자녀된 나는 "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는다 , 더 풍성해지고 시간이 갈수록 더 잘 된다." 왜요 그런 권세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나는 반드시 잘 된다" 그런 확신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시편 17편 8절 "나를 눈동자같이 지키시고 주의 날개 그늘 아래 감추신다"
(2). 하나님의 것을 내 것으로 가져다 쓰는 권세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움직일 수 있는 권세입니다. 나 같은 것이 어떻게 하나님을 움직이는가! 이유는 내가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자녀는 부모를 움직일 수 있습니다. 이것은 다른 말로 말하면 하나님을 움직일 수 있으니 세상을 움직일 수 있는 권세가 있는 것입니다. 또 내가 감당해야 할 일들을 넉넉히 감당할 수 있는 권세를 말합니다. 곧 승리하는 권세 ,기도의 권세입니다. 갈라디아서 4장 6절 "너희가 아들인 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이 말씀은 우리가 괴롭고 답답한 일을 만나면 이전에는 "아이고! 나 죽었구나" 그런 소리를 했단 말이에요. 이제 하나님의 자녀가 된 다음에는 괴롭고 답답하고 속상한 일이 생기면 내 영에서 내 가슴에서부터 " 주여! 아버지" 그런 소리가 나온다는 거에요. 그것이 바로 기도의 권세입니다. "주여! 아버지"하는 그 기도의 권세를 자주 많이 쓰라는 거에요. 그럴수록 우리의 삶이 강해집니다. 저는 거듭난 이후 오늘까지 살아오면서 이 기도의 권세를 수없이 사용했습니다. 때로는 하루에 수천번, 때로는 호흡하기 괴로우니까 숨쉬는 순간마다 "주여 주여!" 부르짖었습니다.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로다" 주여 주여! 자꾸 부르십시오. 요한복음 14장 13절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아주 강한 권세를 주셨습니다.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담대하게 구하라"
그런데 우리는 이 엄청난 위임과 권한을 부여받고도 내 스스로 벌벌 떤다는 거에요. 왜요 "정말 내가 기도해도 하나님이 들으실까" 내 스스로가 위축을 당해 버린다는 거에요. 예수님은 우리에게 강하게 큰 권세를 위임했는데 "무엇이든지 구하라" 오늘부터는 내 자신를 보지 말고 내가 잘 믿는지 못, 믿는지 그걸 떠나서 그냥 아버지라고 크게 부르시기 바랍니다. 히브리서 4장16절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담대히 나아 갈 이유는 오직 하나밖에 없어요.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시편 81편 10절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입을 여십시오. 입을 봉하지 마시고 입을 다물고 속은 불이 타서 재가 되도록 괴로워하지 마시고 입을 열어서 "아버지 주여!" 부르십시오.
(3). 축복을 받고 축복하는 권세입니다. 이 권세를 "영권" 이라고 그럽니다. 내가 축복을 받고 또 축복하는 권세입니다.창세기 12장 3절에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 지라" 이것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권세입니다.
그런데 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권세가 나에게도 있느냐 하는거에요. 갈라디아서 3장 14절에 "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 너희에게 미치게 하고" 갈라디아서 3장 7절에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아들인 줄 알지어다 " 그래서 아브라함이 가진 이 놀라운 영권이 내게도 있다는 말이에요. 나는 이것이 참 감사합니다.
왜냐하면 나처럼 어리석고 부족한 자가 축복을 받는다는 것은 너무 좋은 것입니다. 참 눈물이 나도록 감사한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 권세를 주셨단 말이에요. 저는 이걸 확신합니다. 또 이 축복의 권세가 정말로 좋은 이유는 나만 잘되는 게 아니라 나와 관계된 자들이 다 축복 받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나와 관계만 되어 있으면 복을 받는다는 말입니다. 내 자녀들은 내가 받은 축복 그대로 받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여러분들이 정말 잘되기 원합니다.
그런데 제가 어떻게 잘되게 할 수 있습니까 여러분을 정말 도울 수 없습니다. 여러분의 눈물을 씻겨 드릴 수도 없고, 괴롭고 답답한 마음을 위로할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하나님 앞에 이 축복의 권세를 아니까 이 축복의 권세 때문에 확신하는 것은 우리 성도들이 조금만 참고 기다리면 나와 관계 돼 있기 때문에 이 벧엘이란 이름 아래 있기 때문에 반드시 축복을 받는다고 확신합니다. 다만 좀 시간이 필요합니다. 어떤 분은 너무 급해요. 우물가에서 숭늉 달라는 식이에요. 보십시오. "솥에다 쌀을 넣어두고 일분도 안되어서 밥 안된다고 하는 사람 어디 있습니까밭에다 씨를 뿌려 놓고 그 다음날 가서 열매 거두려고 하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 시간이 필요합니다. 하나님 앞에서도 마찬가지예요. 3년, 5년 기다려 보십시오. 적어도 5년 기다려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반드시 나와 성도 여러분을 다 축복하십니다. 잘 되실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권세가 축복의 권세입니다. 시편 138편 8절, 요한복음 15장 16절! 확신하십시오. 나는 예수를 믿는 사람이고 하나님의 자녀이니 반드시 잘 될 것이고, 지금은 안타깝고 소망이 없이 보이지만 나와 관계된 내 자녀들도 반드시 잘 될 것이다. 그런 확신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4). 파(破)하는 격파하는 권세입니다. 곧, 저주하는 권세입니다. 무서운 권세입니다. 축복의 권세를 뒤집으면 나오는 권세입니다. 제 손을 보십시오. 이 손은 축복하는 권세입니다. 제가 이 손으로 축복하면 축복이 나갑니다.
그런데 이 손을 뒤집으면 저주의 권세입니다. 창세기 12장 3절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축복의 권세 중에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 내가 저주하고" 고린도후서 10장 4절에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라(견고한 진을 격파하는 힘)" 10장 8절에 " 주께서 주신 권세는 너희를 파하려고 하신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권세가 있는데 이 권세를 가지고 너희들을 격파 할 수 있는데 안 쓴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8장 18절 "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그러므로 이 네 번째 파(破) 하는 권세는 함부로 쓰시지 않습니다. 될 수 있는 대로 쓰지 않습니다. 다만 이 파(破)하는 권세, 저주의 권세를 가진 사람은 자기가 쓰질 않아요. 쓰면 큰 일 나는것을 아니까요! 쓰진 않는데 굉장한 힘이 됩니다. 무슨 힘이 되는가 하면 이런 권세를 가진 사람을 공격하는 사람들이 다칩니다. 콘크리트 벽에다 머리를 쳐보십시오. 머리가 깨집니다. 그래서 이 파(破)하는 권세를 가진 사람은 쓰질 않지만 이 사람을 공격하는 사람은 누가 됐든지 깨져 버립니다. 격파 당해 버려요. 그러니까 자신감과 힘이 있다는 거에요.
(5). 죄를 이기는 권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땅에 왜 이렇게 눈물이 강물같이 흐릅니까 왜 이 땅에 이렇게 슬픔이 있고 비통함이 있는 것입니까 죄를 이기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로마서 6장 17절에 "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었다." 죄의 종, 죄에 매어서, 죄에 끌리는 대로. 디도서 3장 3절에 " 각색 정욕과 행락에 종 노릇한 자였다 " 그러던 우리를 하나님께서 로마서 8장 2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님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 하였음이라" 이것이 죄에서 자유케 되는 죄를 이기는 권세를 말합니다. 지난날 저 자신도 각색 정욕과 행락에 종 노릇한 자 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혜로 거기에서 벗어나게 해 주셨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삶에 가장 기본이 되는 행복의 조건입니다. 하나님의 권세가 있습니다. 죄를 이길 수 있습니다. 죄를 대적하고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6). 사탄과 귀신을 이기는 권세입니다. 사탄과 귀신을 이기는 권세라닌까 깜짝 놀래지요. 내가 그런 권세가 있나! 다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는 있습니다. 사도행전 19장 15절 " 악귀가 대답하여 가로되 예수도 내가 알고 바울도 내가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 하며" 내가 귀신을 억누르는것이 아니라 귀신이 알고 물러갑니다. 귀신이 내가 누군지 알아요. 하나님의 자녀냐 그것만 봅니다. 한 번은 믿음이 별로 좋지 않는 형제가 얼굴이 훤해 가지고 왔어요. "목사님 저 기분이 좋습니다. 왜
그런데요이야기 들어보세요." 그러면서 하는 말이 "자기 친척 중에 사촌되는 집에 우환이 끌어서 좀 신통한 무당을 데려다 굿을 했대요. 그래서 자기도 구경하고 싶어 가서 보고 있는데 이 신 들린 무당이 방울을 들고 땀을 흘리면서 주문을 외우다 딱 방울을 놓더니 '여기 예수 믿는 사람이 있어! 나가시오. 예수 믿는 사람 있으니 신이 안 내리요.' 그러더래요. 둘러보니까 자기밖에 예수 믿은 사람이 없어요.
그런데 스스로 믿는 사람이지만 나는 형편없는 사람인데 주일도 잘 빼먹고 그래서 나를 보고 한 말이 아닌 것 같고, 또 둘러봐도 자기가 알기로는 믿는 사람이 없고 그래서 가만히 서 있었대요. 무당이 땀을 흘리면서 주문을 외우더니 또 딱 내려놓고 한숨을 푹 쉬고는 '어서가시오! 어서 비켜 주시오! '그러더래요. 나밖에 없으니 나보고 하는 말인가 하고 비켜났더니 그때부터는 신이 나가지고 하더랍니다. 그래서 혼자 생각에 "야! 귀신이 나를 알아 주는구나!" 자기는 항상 마음이 그랬대요. 하나님이 나 같은 것을 알아줄까 나는 이렇게 형편없는 사람인데 귀신이 딱 알아주니까 귀신한테 인정받고 와서는 그렇게 기분이 좋아서 " 아 나도 하나님의 자녀구나! " 했답니다. 여러분! 꼭 열 살 먹은 자녀가 아들입니까 한 살 먹은 것은 아닌가요 똑같단 말이죠. 귀신이 알아봐요. 그래서 우리에게 이 귀신을 이기는 권세가 있습니다. 이것을 쓰라는 그 말이에요. 야고보서 4장 7절, 베드로전서 5장 8-9절에 "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그래서 이 귀신을 이기는 권세를 자주 쓰십시오. 언제 쓰냐 하면 좀 집안이 어수선하고, 애들이 엉뚱한 짓을 하고, 또 남편이 이상한 짓을 하고, 사업이 좀 불안해 질 때마다 이것은 사탄이 우리를 공격 하구나! 그렇게 딱 분별하면 틀림없어요. 그때는 손을 들고 "사탄아 귀신아!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명하나니 내 자녀들, 내 가정을 흔들지 마라. 멀리 가라! " 하면 멀리 가요. 갈까 정말 갈까 말까 이러면서 안 쓴단 말이에요. 하나님의 자녀면 쓰라는 것입니다.
(7). 환경을 이기는 권세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 환경에 의해서 저들의 운명과 삶이 좌우됩니다. 환경이 순탄하면 잘나가고 그러다 갑자기 어려운 환경이 닥치면 세상 사람들은 그 환경에 완전히 무너져 버리고 맙니다. 요즘 경제위기 라는 얼마나 고통스러운 환경이 왔습니까 이 환경 속에 하나님 자녀인 우리들도 많은 고통을 당하고 있지만 사실 문자 그대로 타격을 받고 물질적으로 가정에 수많은 어려움이 닥쳤지만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들에게는 특별한 것이 있습니다. 뭐냐 하면 어려운 일들, 어려운 환경에 닥쳐올수록 하나님께서도 강하게 역사 합니다. 그래서 보세요. 은혜를 받았던 사람들이 언제 은혜 받았다고 합니까 편안할 때입니까 어려울 때입니까 전부 어려울 때, 환난 가운데서도 어려운 환경 속에 있을 때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체험한 것입니다. 이것이 환경을 이기는 하나님의 자녀들의 권세입니다. 협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4장 8-9절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 쌈을 당하여도 쌓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서 이렇게 붙잡아 주시는 거에요. 어떻게 우리가 여기까지 왔겠습니까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이 힘이 있어 여기까지 왔습니까 저도 수많은 어려운 일 당했습니다. 말못할 고통을 당했습니다. 그때마다 저는 무너지고, 낙심이 되고, 힘이 빠지고, 괴로워하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꼭 그때 그때마다 더 강하게 보통때 보다 더 갑절로 힘을 주셨고, 위로해 주셨고, 세워 주셨고, 이기게 해 주셨습니다. 지금까지 지내 온 것이 하나님의 은혜요, 앞으로도 이길 것입니다. 환경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이 경제위기는 곧 지나갑니다. 얼마 후에 여러분은 간증할 거에요. 아무개 권사님 몇 년 후에는 간증할 날이 올 겁니다.
(8). 고난을 이기는 권세입니다. 고난이 없어진다는 말이 아니에요. "하나님 자녀가 되면 고난이 없다." 그건 거짓말이에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도 고난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자녀들인 우리들에게는 이 고난이 은혜로 바꿔진다는 겁니다. 어떤 은혜로 바꿔지느냐 성도 여러분 이걸 잘 아십시오. 이건 진리입니다. 고난은 하나님의 자녀된 나로 하여금 고난은 나를 예수님의 형상으로 다듬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시편 119편 67절에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71절에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분명히 그래요. 고난을 당하므로 한편은 너무 쓰라리고 괴롭지만 눈물이 하염없이 흐르지만은 그 가운데 금과 은으로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만이 주시는 은혜가 있고 깨달음이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되어 가는 거에요. 그것을 금, 은과 바꾸시겠습니까 이것을 아시고 말할 수 없는 고난 가운데에서도 한편의 하나님의 은혜를 시인해야 됩니다. 입을 열어서 "하나님 감사합니다." 그것을 좀더 강하게 말하세요. 하나님 마음에 불이 붙게 됩니다. "고난의 뜻을 네가 이제 알겠느냐!" 왜 사람되게 하는 것이거든요. 사람되는 것은 고난을 통해서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고난을 이기는 것이죠. "동남풍아 불어라 서북풍아 불어라 어떤 고난이든 오너라! 물론 내가 괴로워 할것이다. 그러나 그로 인하여 나는 더욱 주님께로 가까이 가게 된다" 이것이 고난의 비밀입니다.
(9). 섬기는 권세입니다. 치유하는 권세, 위로하는 권세, 자유케 하는 권세입니다. 다시 말하면 나와 함께 사는 사람들을 세워 주는 권세입니다. 여러분 보세요. 우리가 함께 살면서 저 자신을 보더라도 이전에는 나와 같이 사는 사람에게 아픔을 많이 줬습니다. 꼬집어 뜯고, 같은 말을 해도 아프게 하고, 같은 행동을 해도 마음을 무겁게 한 사람이 하나님께서 내게 오신 다음 무엇을 깨닫게 하느냐! "그러지 마라. 할 수만 있으면 좀 편안하게 해줘라 왜 그렇게 사람을 갑갑하게 만드냐 표정을 부드럽게 갖고 말도 좀 따뜻하게 할 수 있잖아!" 하나님께서 이렇게 살도록 우리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우리 마음을 뜨겁게 하고, 회개하게 만들고, 우리가 돈이 없어서 불행한 게 아니라 바로 이것 때문에 그런 거다. 요한복음 11장 44절 "예수께서 가라사대 풀어놓아 다니게 하라" 나사로를 예수님이 살려 냈는데 베로 동이고 나온단 말이에요. 베로 동이고 나오는 것을 예수님이 가만 뒀어요. "너희들이 풀어 놓아라" 너희들이 서로 풀어 주어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하루 어떻게 살까 이렇게 결심하세요. 할 수 있어요. 오늘 함께 사는 사람들을 위로해 주고, 싸매어 주고, 편안하게 해주고, 세워주는 말, 그런 표정, 행동, 생각을 품고 그렇게 사시길 축원합니다.
(10). 세상을 구원하는 권세입니다. 증거하는 권세, 선교하는 권세, 전도하는 권세, 증인이 되는 권세입니다. 사도행전 1장 8절 "오직 성령님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이 열 번째 권세는 무슨 뜻인고 하니 "내가 왜 반드시 잘 되야 되느냐 그거에요." 그 이유를 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보여줘야 하기 때문입니다." 누군가가 하나님을 보여 줘야 하잖아요. 말로 아니라 삶 자체로 소리 없이 나를 바라보는 수많은 사람들 오늘 1부예배 나온 모 집사님이 저에게 눈물로 전화하면서 그래요. "목사님 저 아무 소원 없어요. 제 친정식구들이 예수 믿는 사람 없어요. 친정식구들 구원하기 위해서 제 남편 살아나야 합니다." 왜 내가 잘 되야 됩니까 피를 토하듯이 나를 보는 사람들, 가까이 있는 내 가족들, 내 자식들, 내 친척들, 저들이 구원을 받아야 되잖아요. 어떻게 구원받습니까 내가 믿는 예수님 때문에 내가 잘될 때 , 내 가정이 잘 될 때 저들이 고개를 숙이고 스가랴의 예언대로 이방인 열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 한 사람의 옷자락을 붙잡고 나도 네가 믿는 하나님께로 가겠다. 그런 날이 올 것입니다. 이 이유 때문에 성도 여러분 강하게 마음을 먹어야 해요. "나는 반드시 잘된다" 왜 " 증인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확신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랑하는 성도 여러분! 두려워하지 말고 이제부터 하나님이 주신 권세가 세상 권세보다 훨씬 더 놀랍고 기묘하고 아름답고 복스러운 것인데 이 열 가지 권세를 당당하게 사용해서 승리하시고 풍성한 삶을 누리게 되시길 축원합니다.
열 가지 권세를 차례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1). 하나님의 사랑과 보호를 받는 권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때문에 요한복음 1장 12절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 예수 믿으므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거에요. 잘 믿느냐, 못 믿느냐를 말하는 것이 아니에요. 예수 믿는 그 날, 그때부터는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자녀로써 사랑하시고 보호하시고 그리고 천사들이 나를 지킵니다. 하나님의 자녀된 그 날, 그 시간부터 천사들이 나를 경호합니다. 시편 34절 7절, 히브리서 1장 14절, 요한복음 3장 16절을 보면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는다" 그랬습니다. 요한복음 10장 10절에 "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사랑과 보호를 받는 권세는 더 쉬운 말로 말하면 절대 망하지 않는 권세입니다. 나는 안 망해요. 이 확신을 가지십시오.
그런데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가지고도 자신이 없어요! "내가 될까 안될 것 같은데" 그러니까 망하지는 않지만 안된다는 부정적인 의식을 갖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로써의 삶이 활기가 없습니다. 풍성하질 못해요. 오늘 말씀대로 하나님의 자녀된 나는 "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는다 , 더 풍성해지고 시간이 갈수록 더 잘 된다." 왜요 그런 권세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나는 반드시 잘 된다" 그런 확신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시편 17편 8절 "나를 눈동자같이 지키시고 주의 날개 그늘 아래 감추신다"
(2). 하나님의 것을 내 것으로 가져다 쓰는 권세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움직일 수 있는 권세입니다. 나 같은 것이 어떻게 하나님을 움직이는가! 이유는 내가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자녀는 부모를 움직일 수 있습니다. 이것은 다른 말로 말하면 하나님을 움직일 수 있으니 세상을 움직일 수 있는 권세가 있는 것입니다. 또 내가 감당해야 할 일들을 넉넉히 감당할 수 있는 권세를 말합니다. 곧 승리하는 권세 ,기도의 권세입니다. 갈라디아서 4장 6절 "너희가 아들인 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이 말씀은 우리가 괴롭고 답답한 일을 만나면 이전에는 "아이고! 나 죽었구나" 그런 소리를 했단 말이에요. 이제 하나님의 자녀가 된 다음에는 괴롭고 답답하고 속상한 일이 생기면 내 영에서 내 가슴에서부터 " 주여! 아버지" 그런 소리가 나온다는 거에요. 그것이 바로 기도의 권세입니다. "주여! 아버지"하는 그 기도의 권세를 자주 많이 쓰라는 거에요. 그럴수록 우리의 삶이 강해집니다. 저는 거듭난 이후 오늘까지 살아오면서 이 기도의 권세를 수없이 사용했습니다. 때로는 하루에 수천번, 때로는 호흡하기 괴로우니까 숨쉬는 순간마다 "주여 주여!" 부르짖었습니다.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로다" 주여 주여! 자꾸 부르십시오. 요한복음 14장 13절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아주 강한 권세를 주셨습니다.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담대하게 구하라"
그런데 우리는 이 엄청난 위임과 권한을 부여받고도 내 스스로 벌벌 떤다는 거에요. 왜요 "정말 내가 기도해도 하나님이 들으실까" 내 스스로가 위축을 당해 버린다는 거에요. 예수님은 우리에게 강하게 큰 권세를 위임했는데 "무엇이든지 구하라" 오늘부터는 내 자신를 보지 말고 내가 잘 믿는지 못, 믿는지 그걸 떠나서 그냥 아버지라고 크게 부르시기 바랍니다. 히브리서 4장16절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담대히 나아 갈 이유는 오직 하나밖에 없어요.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시편 81편 10절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입을 여십시오. 입을 봉하지 마시고 입을 다물고 속은 불이 타서 재가 되도록 괴로워하지 마시고 입을 열어서 "아버지 주여!" 부르십시오.
(3). 축복을 받고 축복하는 권세입니다. 이 권세를 "영권" 이라고 그럽니다. 내가 축복을 받고 또 축복하는 권세입니다.창세기 12장 3절에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 지라" 이것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권세입니다.
그런데 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권세가 나에게도 있느냐 하는거에요. 갈라디아서 3장 14절에 "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 너희에게 미치게 하고" 갈라디아서 3장 7절에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아들인 줄 알지어다 " 그래서 아브라함이 가진 이 놀라운 영권이 내게도 있다는 말이에요. 나는 이것이 참 감사합니다.
왜냐하면 나처럼 어리석고 부족한 자가 축복을 받는다는 것은 너무 좋은 것입니다. 참 눈물이 나도록 감사한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 권세를 주셨단 말이에요. 저는 이걸 확신합니다. 또 이 축복의 권세가 정말로 좋은 이유는 나만 잘되는 게 아니라 나와 관계된 자들이 다 축복 받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나와 관계만 되어 있으면 복을 받는다는 말입니다. 내 자녀들은 내가 받은 축복 그대로 받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여러분들이 정말 잘되기 원합니다.
그런데 제가 어떻게 잘되게 할 수 있습니까 여러분을 정말 도울 수 없습니다. 여러분의 눈물을 씻겨 드릴 수도 없고, 괴롭고 답답한 마음을 위로할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하나님 앞에 이 축복의 권세를 아니까 이 축복의 권세 때문에 확신하는 것은 우리 성도들이 조금만 참고 기다리면 나와 관계 돼 있기 때문에 이 벧엘이란 이름 아래 있기 때문에 반드시 축복을 받는다고 확신합니다. 다만 좀 시간이 필요합니다. 어떤 분은 너무 급해요. 우물가에서 숭늉 달라는 식이에요. 보십시오. "솥에다 쌀을 넣어두고 일분도 안되어서 밥 안된다고 하는 사람 어디 있습니까밭에다 씨를 뿌려 놓고 그 다음날 가서 열매 거두려고 하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 시간이 필요합니다. 하나님 앞에서도 마찬가지예요. 3년, 5년 기다려 보십시오. 적어도 5년 기다려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반드시 나와 성도 여러분을 다 축복하십니다. 잘 되실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권세가 축복의 권세입니다. 시편 138편 8절, 요한복음 15장 16절! 확신하십시오. 나는 예수를 믿는 사람이고 하나님의 자녀이니 반드시 잘 될 것이고, 지금은 안타깝고 소망이 없이 보이지만 나와 관계된 내 자녀들도 반드시 잘 될 것이다. 그런 확신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4). 파(破)하는 격파하는 권세입니다. 곧, 저주하는 권세입니다. 무서운 권세입니다. 축복의 권세를 뒤집으면 나오는 권세입니다. 제 손을 보십시오. 이 손은 축복하는 권세입니다. 제가 이 손으로 축복하면 축복이 나갑니다.
그런데 이 손을 뒤집으면 저주의 권세입니다. 창세기 12장 3절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축복의 권세 중에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 내가 저주하고" 고린도후서 10장 4절에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라(견고한 진을 격파하는 힘)" 10장 8절에 " 주께서 주신 권세는 너희를 파하려고 하신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권세가 있는데 이 권세를 가지고 너희들을 격파 할 수 있는데 안 쓴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8장 18절 "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그러므로 이 네 번째 파(破) 하는 권세는 함부로 쓰시지 않습니다. 될 수 있는 대로 쓰지 않습니다. 다만 이 파(破)하는 권세, 저주의 권세를 가진 사람은 자기가 쓰질 않아요. 쓰면 큰 일 나는것을 아니까요! 쓰진 않는데 굉장한 힘이 됩니다. 무슨 힘이 되는가 하면 이런 권세를 가진 사람을 공격하는 사람들이 다칩니다. 콘크리트 벽에다 머리를 쳐보십시오. 머리가 깨집니다. 그래서 이 파(破)하는 권세를 가진 사람은 쓰질 않지만 이 사람을 공격하는 사람은 누가 됐든지 깨져 버립니다. 격파 당해 버려요. 그러니까 자신감과 힘이 있다는 거에요.
(5). 죄를 이기는 권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땅에 왜 이렇게 눈물이 강물같이 흐릅니까 왜 이 땅에 이렇게 슬픔이 있고 비통함이 있는 것입니까 죄를 이기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로마서 6장 17절에 "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었다." 죄의 종, 죄에 매어서, 죄에 끌리는 대로. 디도서 3장 3절에 " 각색 정욕과 행락에 종 노릇한 자였다 " 그러던 우리를 하나님께서 로마서 8장 2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님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 하였음이라" 이것이 죄에서 자유케 되는 죄를 이기는 권세를 말합니다. 지난날 저 자신도 각색 정욕과 행락에 종 노릇한 자 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혜로 거기에서 벗어나게 해 주셨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삶에 가장 기본이 되는 행복의 조건입니다. 하나님의 권세가 있습니다. 죄를 이길 수 있습니다. 죄를 대적하고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6). 사탄과 귀신을 이기는 권세입니다. 사탄과 귀신을 이기는 권세라닌까 깜짝 놀래지요. 내가 그런 권세가 있나! 다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는 있습니다. 사도행전 19장 15절 " 악귀가 대답하여 가로되 예수도 내가 알고 바울도 내가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 하며" 내가 귀신을 억누르는것이 아니라 귀신이 알고 물러갑니다. 귀신이 내가 누군지 알아요. 하나님의 자녀냐 그것만 봅니다. 한 번은 믿음이 별로 좋지 않는 형제가 얼굴이 훤해 가지고 왔어요. "목사님 저 기분이 좋습니다. 왜
그런데요이야기 들어보세요." 그러면서 하는 말이 "자기 친척 중에 사촌되는 집에 우환이 끌어서 좀 신통한 무당을 데려다 굿을 했대요. 그래서 자기도 구경하고 싶어 가서 보고 있는데 이 신 들린 무당이 방울을 들고 땀을 흘리면서 주문을 외우다 딱 방울을 놓더니 '여기 예수 믿는 사람이 있어! 나가시오. 예수 믿는 사람 있으니 신이 안 내리요.' 그러더래요. 둘러보니까 자기밖에 예수 믿은 사람이 없어요.
그런데 스스로 믿는 사람이지만 나는 형편없는 사람인데 주일도 잘 빼먹고 그래서 나를 보고 한 말이 아닌 것 같고, 또 둘러봐도 자기가 알기로는 믿는 사람이 없고 그래서 가만히 서 있었대요. 무당이 땀을 흘리면서 주문을 외우더니 또 딱 내려놓고 한숨을 푹 쉬고는 '어서가시오! 어서 비켜 주시오! '그러더래요. 나밖에 없으니 나보고 하는 말인가 하고 비켜났더니 그때부터는 신이 나가지고 하더랍니다. 그래서 혼자 생각에 "야! 귀신이 나를 알아 주는구나!" 자기는 항상 마음이 그랬대요. 하나님이 나 같은 것을 알아줄까 나는 이렇게 형편없는 사람인데 귀신이 딱 알아주니까 귀신한테 인정받고 와서는 그렇게 기분이 좋아서 " 아 나도 하나님의 자녀구나! " 했답니다. 여러분! 꼭 열 살 먹은 자녀가 아들입니까 한 살 먹은 것은 아닌가요 똑같단 말이죠. 귀신이 알아봐요. 그래서 우리에게 이 귀신을 이기는 권세가 있습니다. 이것을 쓰라는 그 말이에요. 야고보서 4장 7절, 베드로전서 5장 8-9절에 "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그래서 이 귀신을 이기는 권세를 자주 쓰십시오. 언제 쓰냐 하면 좀 집안이 어수선하고, 애들이 엉뚱한 짓을 하고, 또 남편이 이상한 짓을 하고, 사업이 좀 불안해 질 때마다 이것은 사탄이 우리를 공격 하구나! 그렇게 딱 분별하면 틀림없어요. 그때는 손을 들고 "사탄아 귀신아!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명하나니 내 자녀들, 내 가정을 흔들지 마라. 멀리 가라! " 하면 멀리 가요. 갈까 정말 갈까 말까 이러면서 안 쓴단 말이에요. 하나님의 자녀면 쓰라는 것입니다.
(7). 환경을 이기는 권세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 환경에 의해서 저들의 운명과 삶이 좌우됩니다. 환경이 순탄하면 잘나가고 그러다 갑자기 어려운 환경이 닥치면 세상 사람들은 그 환경에 완전히 무너져 버리고 맙니다. 요즘 경제위기 라는 얼마나 고통스러운 환경이 왔습니까 이 환경 속에 하나님 자녀인 우리들도 많은 고통을 당하고 있지만 사실 문자 그대로 타격을 받고 물질적으로 가정에 수많은 어려움이 닥쳤지만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들에게는 특별한 것이 있습니다. 뭐냐 하면 어려운 일들, 어려운 환경에 닥쳐올수록 하나님께서도 강하게 역사 합니다. 그래서 보세요. 은혜를 받았던 사람들이 언제 은혜 받았다고 합니까 편안할 때입니까 어려울 때입니까 전부 어려울 때, 환난 가운데서도 어려운 환경 속에 있을 때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체험한 것입니다. 이것이 환경을 이기는 하나님의 자녀들의 권세입니다. 협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4장 8-9절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 쌈을 당하여도 쌓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서 이렇게 붙잡아 주시는 거에요. 어떻게 우리가 여기까지 왔겠습니까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이 힘이 있어 여기까지 왔습니까 저도 수많은 어려운 일 당했습니다. 말못할 고통을 당했습니다. 그때마다 저는 무너지고, 낙심이 되고, 힘이 빠지고, 괴로워하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꼭 그때 그때마다 더 강하게 보통때 보다 더 갑절로 힘을 주셨고, 위로해 주셨고, 세워 주셨고, 이기게 해 주셨습니다. 지금까지 지내 온 것이 하나님의 은혜요, 앞으로도 이길 것입니다. 환경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이 경제위기는 곧 지나갑니다. 얼마 후에 여러분은 간증할 거에요. 아무개 권사님 몇 년 후에는 간증할 날이 올 겁니다.
(8). 고난을 이기는 권세입니다. 고난이 없어진다는 말이 아니에요. "하나님 자녀가 되면 고난이 없다." 그건 거짓말이에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도 고난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자녀들인 우리들에게는 이 고난이 은혜로 바꿔진다는 겁니다. 어떤 은혜로 바꿔지느냐 성도 여러분 이걸 잘 아십시오. 이건 진리입니다. 고난은 하나님의 자녀된 나로 하여금 고난은 나를 예수님의 형상으로 다듬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시편 119편 67절에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71절에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분명히 그래요. 고난을 당하므로 한편은 너무 쓰라리고 괴롭지만 눈물이 하염없이 흐르지만은 그 가운데 금과 은으로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만이 주시는 은혜가 있고 깨달음이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되어 가는 거에요. 그것을 금, 은과 바꾸시겠습니까 이것을 아시고 말할 수 없는 고난 가운데에서도 한편의 하나님의 은혜를 시인해야 됩니다. 입을 열어서 "하나님 감사합니다." 그것을 좀더 강하게 말하세요. 하나님 마음에 불이 붙게 됩니다. "고난의 뜻을 네가 이제 알겠느냐!" 왜 사람되게 하는 것이거든요. 사람되는 것은 고난을 통해서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고난을 이기는 것이죠. "동남풍아 불어라 서북풍아 불어라 어떤 고난이든 오너라! 물론 내가 괴로워 할것이다. 그러나 그로 인하여 나는 더욱 주님께로 가까이 가게 된다" 이것이 고난의 비밀입니다.
(9). 섬기는 권세입니다. 치유하는 권세, 위로하는 권세, 자유케 하는 권세입니다. 다시 말하면 나와 함께 사는 사람들을 세워 주는 권세입니다. 여러분 보세요. 우리가 함께 살면서 저 자신을 보더라도 이전에는 나와 같이 사는 사람에게 아픔을 많이 줬습니다. 꼬집어 뜯고, 같은 말을 해도 아프게 하고, 같은 행동을 해도 마음을 무겁게 한 사람이 하나님께서 내게 오신 다음 무엇을 깨닫게 하느냐! "그러지 마라. 할 수만 있으면 좀 편안하게 해줘라 왜 그렇게 사람을 갑갑하게 만드냐 표정을 부드럽게 갖고 말도 좀 따뜻하게 할 수 있잖아!" 하나님께서 이렇게 살도록 우리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우리 마음을 뜨겁게 하고, 회개하게 만들고, 우리가 돈이 없어서 불행한 게 아니라 바로 이것 때문에 그런 거다. 요한복음 11장 44절 "예수께서 가라사대 풀어놓아 다니게 하라" 나사로를 예수님이 살려 냈는데 베로 동이고 나온단 말이에요. 베로 동이고 나오는 것을 예수님이 가만 뒀어요. "너희들이 풀어 놓아라" 너희들이 서로 풀어 주어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하루 어떻게 살까 이렇게 결심하세요. 할 수 있어요. 오늘 함께 사는 사람들을 위로해 주고, 싸매어 주고, 편안하게 해주고, 세워주는 말, 그런 표정, 행동, 생각을 품고 그렇게 사시길 축원합니다.
(10). 세상을 구원하는 권세입니다. 증거하는 권세, 선교하는 권세, 전도하는 권세, 증인이 되는 권세입니다. 사도행전 1장 8절 "오직 성령님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이 열 번째 권세는 무슨 뜻인고 하니 "내가 왜 반드시 잘 되야 되느냐 그거에요." 그 이유를 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보여줘야 하기 때문입니다." 누군가가 하나님을 보여 줘야 하잖아요. 말로 아니라 삶 자체로 소리 없이 나를 바라보는 수많은 사람들 오늘 1부예배 나온 모 집사님이 저에게 눈물로 전화하면서 그래요. "목사님 저 아무 소원 없어요. 제 친정식구들이 예수 믿는 사람 없어요. 친정식구들 구원하기 위해서 제 남편 살아나야 합니다." 왜 내가 잘 되야 됩니까 피를 토하듯이 나를 보는 사람들, 가까이 있는 내 가족들, 내 자식들, 내 친척들, 저들이 구원을 받아야 되잖아요. 어떻게 구원받습니까 내가 믿는 예수님 때문에 내가 잘될 때 , 내 가정이 잘 될 때 저들이 고개를 숙이고 스가랴의 예언대로 이방인 열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 한 사람의 옷자락을 붙잡고 나도 네가 믿는 하나님께로 가겠다. 그런 날이 올 것입니다. 이 이유 때문에 성도 여러분 강하게 마음을 먹어야 해요. "나는 반드시 잘된다" 왜 " 증인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확신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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