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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주신 자유 (갈4:3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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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목사님이 모종의 사건에 얽힌 오해 때문에 10여 일 구치소에 수감되어 감방 생활을 하다가 무혐의로 석방되어 나온 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구치소에서 만난 다른 죄수들이 한결같이 그 목사님에게 “목사님,어떻게든 여기서 나가야 합니다.우리의 소원은 저 돌담 넘어 바깥 세상으로 나가는 것입니다”라고 얘기했다는 것입니다.한 마디로 그들의 희망은 자유의 몸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고대 시대에는 “노예”라는 계급이 있었습니다.노예란 얽매인 자,예속된 자,자유가 없는 자라는 뜻입니다.노예는 다른 말로 종입니다.누구나 노예가 되길 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그리고 노예의 소원은 자유자가 되는 것입니다.대개 한 인간이 노예가 되는 데는 몇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경제적 이유 때문입니다.빚을 갚아야 될 사람이 빚을 갚지 못하면 노예로 대신 끌려갔습니다. 구약성경 열왕기하 4장을 보면 어떤 신학생이 아내와 두 아들을 남겨둔 채 세상을 떠나자 채권자가 찾아와 빚을 갚으라고 했습니다.그러나 갚을 힘이 없다고 하자 두 아들을 붙잡아다가 노예로 팔아 넘기겠다고 을러댄 얘기가 나옵니다.그 당시에는 돈을 갚지 못하면 노예로 끌려가서 노예 생활을 했습니다.그러니까 노예는 하나의 화폐 단위에 불과했습니다.
둘째,전매 행위에 의해서입니다.가령 A라는 사람이 노예를 소유하고 있다가 B라는 사람에게 적당한 값을 받고 노예를 팔아 넘기는 것을 말합니다.창세기 37장을 보면 요셉의 형들이 요셉을 시기한 나머지 애굽으로 내려가는 대상들에게 요셉을 돈을 받고 팔았 넘겼습니다.그날부터 요셉은 종의 신세가 되었습니다.이 사람의 노예에서 저 사람의 노예로 전전해 가면서 노예 생활을 하게 됩니다. 세째,전쟁 포로에 의해서입니다.한 나라가 전쟁에 지게 되면 재산은 물론 많은 사람이 포로가 됩니다.전쟁 포로는 곧 노예입니다. 주전 587년 7월 유대 나라가 바벨론의 침략을 받아 나라가 망하게 되었을 때 시드기야 왕은 두 눈이 뽑힌 채 포로로 끌려갔고 예루살렘 성전과 온 성은 불탔으며 지도자들이 처형됨은 물론 수많은 포로가 바벨론으로 끌려갔습니다.그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 한 일은 노예 생활 바로 그것이었습니다.우리도 40여 년이나 일본 제국주의자들의 억압 속에서 노예 생활을 겪었던 민족입니다.전쟁에 지면 노예가 됩니다. 네째,노예로서의 출생에 의해서입니다.노예가 아이를 낳게 되면 그 아이들은 자연히 주인의 소유가 됩니다.그러니까 노예의 자식은 뱃속에서부터 노예로 잉태되고 노예로 태어나고 노예로 살게 됩니다.그러니까 본인의 의사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이 부모가 노예였기 때문에 자식도 노예가 되는 것입니다.얼마나 비참한 일입니까 우리는 여기서 참으로 심각한 진리를 재확인해야 됩니다.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노예가 되기도 하고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 노예가 되기도 하고 혈통 관계 때문에 노예가 되기도 하지만 어쨌든 노예는 살아도 노예 죽어도 노예라는 사실입니다.그러니까 노예의 사슬은 그 무엇으로도 끊을 수가 없는 사슬입니다.예리한 도끼로 손발의 쇠사슬을 끊어 버릴 수가 있습니다.그러나 두 가지 문제가 따라다닙니다.하나는 종의 족보(문서)입니다.그리고 다른 하나는 종의 흔적 즉 문신입니다.이 두 가지는 어떻게 할 도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길이 있습니다.주인이 종의 문서를 종 자신에게 주면서 너는 오늘부터 자유인이라고 선언을 해 줍니다.그러면 그는 그날부터 자유인이 됩니다.자유를 얻은 종은 그날부터 종의 문서와 주인이 써 준 자유인의 문서 즉 자유자가 되었다는 사면장을 휴대하고 다녀야 합니다.그리고 혹 누가 너는 종이 아니냐고 묻게 되면 자유인의 증명서를 내 보이고 자유인임을 증명해야 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성경은 우리 모든 사람을 가리켜 지난날 모두 “죄의 노예였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그 뜻은 우리는 지난날 죄의 조종을 받았고 죄의 지시를 따라 살았고 죄의 이끌림을 받아 살아왔다는 뜻입니다.내가 나의 삶을 주장하지 못하고 나 아닌 다른 것들이 나를 주장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내가 내 마음대로 살 수 없다는 것보다 더 답답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본래 인간은 오늘처럼 사악하고 간악하고 배신을 일삼는 그런 존재가 아니었습니다.본래의 인간이 변했기 때문에 이 모양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인간을 주님 예수께서 건져내 주셨습니다.자유를 주셨습니다.다시 말하면 자기를 찾게 해 주셨다는 말씀입니다.사람답게 살게 해주셨습니다.자유가 무엇입니까 잃었던 것을 찾는 것입니다.잃었던 양심,잃어 버렸던 정의,잃어 버리고 살던 여호와 하나님을 다시 찾는 것입니다. 오늘 읽은 본문 갈라디아서 5:1이 그것에 대해 설명해 줍니다.“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다.”
1.내게 주신 그 자유는 어떻게 주신 자유입니까
1)피로 주신 자유입니다. 노예가 자유로와지는 방법은 주인의 자비나 사랑에 의해 종의 멍에를 풀어줄 때 그리고 누군가가 종의 값을 지불하고난후 자유를 주는 경우에만 가능했습니다. 어느날 링컨이 노예 시장 곁을 지나다가 경매에 붙여지고 있는 소녀 노예를 목격하게 되었습니다.구매자들이 저마다 값을 부르며 낙찰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링컨이 많은 값을 부르고 값을 지불한 뒤 소녀를 샀습니다.그리고 그 소녀에게 “나는 너에게 자율를 준다”고 했습니다.소녀는 기뻐 어쩔 줄 모른 채 눈물을 글썽거리다가 “선생님 전 정말로 자유인이 된거예요”라고 물었습니다.“그렇단다”라고 대답하자 “그럼 제 마음대로 해도 되는거죠”라고 말하더니 “선생님 전 갈곳이 없어요.저는 선생님을 따라 가서 선생님을 섬기겠어요”라고 했다는 얘기는 이미 알려진 얘기입니다. 세상의 노예,죄의 노예,돈의 노예,권력의 노예,명성의 노예로 살던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예수께서도 값을 지불하셨습니다.그 값이 무엇입니까 바로 자신의 피,생명입니다.그래서 이것을 가리켜 요한계시록 5:9에서는 “피로 값주고 샀다”고 했습니다. 피는 곧 생명입니다.피를 흘렸다는 것은 생명을 주셨다는 뜻입니다.정치적 독립이나 해방도 피를 지불해야 합니다.미국의 독립이 그렇고 우리나라 독립도 마찬가지였습니다.이스라엘 민족이 430년간 이집트에서 노예 생활하다가 탈출하던 그날밤도 역시 피를 지불했습니다.어린양을 잡아 그 피를 문지방과 문설주에 발랐습니다.그날밤 애굽의 장자가 죽는 재앙이 전국적으로 일어나고 있을때 피바른 집은 그 재앙을 면했습니다.이스라엘의 해방도 피와 관련되어 있습니다.내가 죄에서 해방된 것은 예수의 피 때문입니다.예수의 피로 주신 자유입니다.
2.승리로 주신 자유입니다.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사람들은 그것으로 예수의 일대기가 끝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풍운을 안고 태어난 한 젊은이가 33년을 살다가 죽은 것으로 끝나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는 사흘 만에 다시 부활했습니다.그러니까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는 얘깁니다.사건은 거기서부터 시작되었고 교회도 거기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예수가 다시 살아났다는 것과 나와는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깊은 상관이 있습니다.그것은 죽음이라는 것,죽음의 공포라는 것,사람마다무서워 떨고 절망하고 좌절하는 죽음의 도전이라는 것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입니다.그것은 예수가 죽음을 이겼기 때문입니다.예수께서는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요 11:25)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에게 주님은 죽음으로부터의 자유를 주신 것입니다.이 세상에서 제일 강한 사람,제일 겁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일까요 총이나 칼을 가진 자들일까요 돈가진 자들일까요 명성을 가진 자들일까요 핵폭탄을 가진 자들일까요 아닙니다.제일 겁나고 제일 무서운 사람들은 죽음을 겁내지 않는 사람들,죽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그들이 누구입니까 다시 사는 부활의 보장을 받은 사람들,사후의 보장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을 네로도,도미시안도,스탈린도,히틀러도,김일성도 무서워하고 겁내는 것입니다.내 속에 이 신앙만 있으면 겁날것이 없습니다.내 속에 예수가 계시면 나는 두려운 것이 없습니다.그래서 바울은 로마서 8:37에서 “우리는 넉넉히 이긴다”고 노래했습니다. 죽음을 이기는 자유,공포와 절망을 이기는 자유,이 자유를 주께서 나에게 주셨습니다.
3.이 자유는 어떤 자유입니까 이 자유는 영원한 자유입니다.영원한 자유라는 말의 뜻은 그 어떤 조건이나 환경도 억압하지 못하는 자유라는 뜻입니다.그리고 한 번 얻으면 그 누구도 빼앗아 가지 못하는 자유라는 뜻입니다. 주님은 나에게 그 자유를 주셨습니다. 자유가 없으면 먹는 것도 잠자는 것도 여행도 편하지 않습니다.쫓기는 몸이라면 일류 호텔에서도 불안하고,술을 마셔도 불안하고,비행기를 타도 불안하고,땅굴 속에 숨어 있어도 불안합니다.그러나 일단 자유인이 되면 불안할 것이 없습니다. 주님은 나에게 바로 그 자유,언제 어디서나 떳떳하고 자신있고 행복할 수 있는 바로 그 자유를 주셨습니다.“불안해 하지마라,염려하지 말라,죄책감 때문에 고민하지 말라,죽음의 공포 때문에 초조해 하지 말라,내가 너를 자유케 했다”고 말씀하시고 우리를 자유의 사람이 되게 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다시 지난날의 죄나 그 세계에 대해 미련을 가지면 안 됩니다.그래서 본문은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고 말씀합니다.책임없는 자유는 병든 자유입니다.자유에는 책임과 의무가 따릅니다.그래서 사람들은 그 자유가 부담스럽다고 생각합니다.예수 믿고 자유인이 되는 것을 부답스럽게 여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그러나 그것은 모르는 사람들의 생각입니다. 자유란 쓴 약과도 같습니다.써도 먹어야 병고치고 건강해지는 것처럼 자유인으로서 의무란 책임을 다해야 영원히 종노릇하지 않고 자유로운 시민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수 안에서 자유로운 삶을 누립시다.내게 주신 자유를 저버리지 맙시다.나는 오늘부터 자유인입니다.예수가 자유를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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