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절

TOP
DOWN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시23:1-6)

본문

어느 날 한 아버지와 아들이 말을 타고 험한 산을 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들은 말타는 것이 익숙지 못해서 험한 산을 넘는 동안 몇 번 씩이나 말에서 떨어질 위험을 만났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넘어지지 않고 무 사히 잘 도착할 수가 있었습니다. 가까스로 목적지에 도착한 아들은 아버지 께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버지! 여호와 하나님은 정말 살아 계시던군요!. 저는 이번 에 정말 그것을 아주 확실히 깨달았습니다.!" 그러자 아버지가 "어떻게 그것을 깨달을 수 있었느냐"고 아들에게 물었습니다. 아들은,"저는 이번에 산을 넘으면서 몇 번씩이나 말에서 떨어질 뻔한 위험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때마다 하나님께서 지켜 주셔서, 무사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 때마다 저는 깨닫을 수 있었지요 살아 계신 하나님께서 저를 지켜주신 거라고 말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또 지켜 주신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아버지는 " 아 그러냐 아들아! 네가 이번에 참 귀한 것을 깨달았구 나. 그러나 그런 이치로 하자면, 나는 너보다 정확히 두 배 혹은 세 배는 더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야 하겠구나!
왜냐하면 나는 너처럼 단 한번도 그 런 위험에 처하지 않고 산을 잘 넘을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과연 어느 편에 속하십니까 평소에 하나님께 어떤 식의 감사를 하시는가 하는 말입니다.
곧 여기 두 사람 가운데 어느 편에 속 하십니까 아들처럼 거지반 죽을 뻔한 어려운 위기를 만났다가 무사할 수 있을 때, 하나님을 알고, 또 그것은 하나님께서 지켜 주신 것이라고 믿고 감사를 드리십니까 아니면, 아버지처럼 별로 위험이 없이 평탄할 때에, 오 히려 하나님께 감사를 하시는 편인가 하는 말씀입니다.
우리 홍은동 교회에 와서는 아직 그런 경험을 전혀 한적이 없습니다만, 그러나 제가 다른 교회를 섬길 때에 자주 경험했던 일입니다.-무슨 사업 을 하다가 어려운 일을 당해서 아주 망할 뻔하다가 겨우 살아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무서운 죽을 병에 걸렸다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겨우 다시 살아난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또 어떤 분들은 교통 사고를 당해서 거지반 죽을 뻔하다가 간신히 살아난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참 흥미 있는 것은 바로 그런 분들을 심방 갔을 때, 한결같이 모두 가 다 혹 불평을 하거나 원망을 하는 것을 일체 찾아 볼 수 없었고, 대신 "그 어려운 순간에도 하나님께서 지켜 주셨고, 또 도와 주셔서 겨우 살아났 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심으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는 것입니다. 또 그리고 "이제부터는 정말 예수를 잘 믿겠습니다"라고 굳게 결심들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 전에 대현 교회에 있을 때에, 어느 집사님 한 분이 교통 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병원으로 달려갔습니다. 아주 젊은 남자 집사님이었는데, 병원에 가보니, 그는 온 몸에 붕대를 감고 침상에 누어 있었습니다. 매우 큰 사고를 당해서 자기 차는 거의 휴지조각이 되어 버렸고, 목숨만 간 신히 건졌다는 것입니다. 아직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겨우 정신만 돌아 온 상태였습니다. 그런 환자의 이마 위에 제가 손을 얹고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러자 환자는 닭똥 같은 눈물을 줄줄 흘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그의 얼굴과 눈빛에서, 저는 그가 진심으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아주 죽지 않고, 목숨만이라도 그렇게 건져 주신 하나님께 깊이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고 있었습니다.-그 후에 그의 가족들에게 들어보니, 그는 그날이 주일임에도 불구하고 교회에 출석하지 않고, 대신 친구들과 낚시대회가 뭔가를 가서 놀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공교롭게도 그런 큰 사고를 당한 것입니다. 그랬으니 그의 마음이 얼마나 부끄러웠겠습니까 그래서 그는 진심으로 회개를 하고, 또한 감사를 드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한참 후에 병원에서 퇴원해서는 단 한 번도 주일을 빠뜨리지 아니하고, 그 전보다 10배 더 열심히 잘 믿으려고 애 쓰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저는 목회를 하는 동안 바로 이런 일들을 자주 경험하면서, 정말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것과 또 믿는 자에게는 무엇이든지 합력 하여 다 선을 이루 게 하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더욱 확실히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곧 하나님께서는 한번 택한 당신의 자녀들은 절대로 그냥 내 버려두시지 않는 다는 것과, 비록 징계를 하고, 매로 다스려서라도 꼭 깨닫도록 하시고, 반드 시 바른 길로 다시 돌아오게 만드시는 분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그리고 또 정말 감사하고, 감동스런 것은, 그런 어려운 일을 만난 사람들-곧 죽을 뻔하다가 다시 살아난 그런 사람들은, 한결같이 모두가 다 하나님 께 깊이깊이 감사를 드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 하고 불평할 것 같았으나, 실제는 전혀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오히려 더욱 자신들의 잘못을 깨닫고, 그나마도 목숨만은 살려 주신 것을 진심으로 감사할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런 분들을 보면서, 다른 한편으로 참 아쉬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 좀더 일찍, 좀더 빨리 깨닫지를 못했을까.
━ 곧 사고를 당하지 전 에, 죽을 뻔하기 전에 왜 좀더 미리 깨닫지 못하고, 꼭 사고를 당하고, 징 계를 받고, 어려운 죽을 고비에 이르러서야 겨우 깨닫고, 또 감사를 아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그것도 깨닫지 못하는 사람에 비하면, 그렇게 라 도 깨닫는 것이 훨씬 귀한 일이긴 하지만, 그러나 참 한심하고 어리석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습니다.-곧 평안할 때, 무사할 때, 건강할 때, 순탄할 때, 매사가 형통하고 순조로울 때, 왜 감사하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고, 꼭 죽을 지경에 이르렀다가 다시 살아나야만 겨우 하나님 무서운 줄을 알고, 또 감사를 깨닫는가 하는 말씀입니다. 그렇지요 그러니 그 런 사람을 하나님께서는 늘 어떻게 다루셔야 좋겠습니까-자주자주 죽을 뻔한 위기에 몰아 넣을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그래야만 감사를 알고, 그 래야 지만 겨우 하나님 무서운 줄을 알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성경은 우리에게 어떻게 가르치고 있습니까-언제/ 어느 때에/ 어떻게/ 감사를 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까-凡事에… 범사란 또 무슨 뜻입니까-언제 어느 때나, 항상, 늘 /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좋을 때나 나쁠 때나 형통할 때나 역경을 만났을 때에도 감사하라는 뜻이 아니 겠습니까 여러분 과연 그런 감사를 하나님께 드리고 있습니까 이렇게 감사하는 범사의 감사를 저는 예방적 차원의 가장 참 지혜로운 감사라고 생각합니다. 미리 감사를 해서 미리 불행을 막는 감사라고 하는 뜻 에서 그렇습니다. 이런 감사가 여러분, 정말 귀하고 중요한 감사라는 것을 꼭 깨달으실 수 있기 바랍니다. 그러나 꼭 무슨 일이 벌어져야 감사를 압니다.-얻어터지고, 부서지고, 깨 치고 다치고 나서야 비로소 깨닫고, 감사를 아는 것, 알고 보면 정말 어리 석고 한심한 감사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범 사에 늘 감사할 줄 압니다. 미리미리 먼저 감사를 드립니다. 곧 무사하고 아무런 일이 없을 때, 그야말로 범사에 감사할 줄 아는 것입니다.
다음 주일은 우리 교회가 맥주 감사절로 지키게 됩니다. 저는 잠시 생각 하기를, 지금 우리가 건축 헌금을 100% 힘껏 드리고 있기 때문에, 또 새로 운 맥추감사의 부담을 드리는 것은 짐이 너무 무거운 짐이 되지 않을까 싶 어서 사실 금년의 맥추 감사절은 그냥 건너 뛰면 어떨까 싶었습니다. 그래서 지난 주일에 제직회에서 이 문제를 내 놓고 집사님들과 의논을 했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집사님들이, 그래도 정한 절기이니 그대로 지키자고 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그대로 지키기로 정했습니다만, 속으로 저는 참 감사했습니다. 우리 교회의 수준이 이만하구나 하고 싶어서 말입니다. 다른 교회같으면 목사가 혹 그런 의견을 내 놓으면 당연히 반색하며 이번 에는 특별 건축 헌금도 있고 하니, 그냥 건너뜁시다 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교회는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 사실 목사로소 얼마나 기뻤고, 또 그것은 우리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실 일이겠습니까 그러나, 혹 여러분 가운데 만에 하나라도 이런 걱정을 하실 분이 계시지 않을까 싶어서 오늘 이런 말씀을 드립니다.-곧 무엇을 또 감사하라는 말 인가 이 경제위기 시대에 경제사정도 좋지 않고, 또 별로 죽었다가 다시 살아 날 만큼의 劇的인 일도 없었고, 별로 하나님의 도우심도 없이도 내 힘으로 도 그럭저럭 잘 살아가고 있는데, 도대체 무엇을 가지고 하나님께 감사하라는 말인가 하고 감사의 문제로 혹 고민하실 분이 계시지 않을까 싶어서 말입니다. 혹 그런 분들은 오늘 말씀을 통해서 꼭 감사의 진짜 원리를 찾을 수 있기 를 바랍니다 곧 아들의 아버지와 같이, 오히려 죽을 뻔하지 않은 것을 가 지고 오히려 더 감사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오히려 그것은 두 배 세 배 더 감사해야 할 일인 줄로 아셔야 합니다그러면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런 자에게, 결코 죽을 뻔할 경험을 평생에 아주 없도록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즉 그런 어렵고 위험한 일은 미리 미리 사전에 피해 가게 만들어 주 실 것이라고 하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이 이치를 믿습니까-아멘. 오늘 봉독한 시편 23편은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또 평소에 늘 애송하는 시편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 마이어(F. B. Meyer)라고 하는 사람은, " 이 시편 23편을 일컬어 사막의 오아시스와 같고, 험한 등산길에 있는 휴게 소와 같으며, 타는 듯한 한낮에 시원한 동굴과 같고, 고요하고 신성한 묵상 을 할 수 있는 정자와 같으며, 곤비하고 쉼이 없고 무거운 짐을 지고 가는 인생들에게 평온한 안식처가 될 수 있는 말씀이다" 라고 극찬을 했습니다.
※ 미국의 챨스 알렌이라는 목사님이 쓴 책 가운데 [심령의 치료자 하나님] 이란 책이 있는데, 그 책에 보면 이런 일화가 있습니다.-어느날 이 알렌 목사님에게 큰 회사의 사장님이 찾아왔습니다. 그 사장님은 말단 사원으로 입사를 해서 비상한 능력과 열성으로 마침내 그 회사의 최고 경영자의 자 리에까지 올랐던 사람이었습니다.현대그룹의 이명박 전 사장과 같은 사람 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는 사장으로서, 외면적으로는 매우 화려하고 성공적인 인생을 사는 것 같았으나, 실상은 사장이 됨으로서 오히려 불행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경쟁 회사들과 끊임 없는 경쟁을 해야 했고, 또 경쟁 회사에 비교해 서 조금이라도 실적이 떨어지기라도 하면, 그저 불안 초조 긴장으로 살아야 했습니다. 어느 한 순간도 편히 쉬지 못하고, 늘 긴장과 스트레스를 받으면 서 살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그러는 동안에 그는 그만 중병에 걸리고 말 았습니다. 그를 치료하던 의사는 여러 가지로 시술을 해보고는, "아무래도 당신의 병은 현대 의학으로 못 고치겠으니, 어느 교회의 목사님을 찾아가서 상담을 한번 해보면 어떻게느냐"고 제안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 사장님은 결국 찰스 알렌 목사님을 찾아오게 된 것입니다. 두 사람은 오랫동안 대화를 나눈 후에, 알렌 목사님이 그에게 약 한 봉지를 지어 서 주면서 " 내가 지어 주는 이 약을 매일 다섯 번씩 일주일 동안 꼬박 먹 어보라"고 했습니다.철저하게 처방대로 꼭 해야만 합니다. 약을 한꺼번 에 많이 다 먹어도 안되고 약을 건너 뛰어 먹어도 안되며 며칠 먹다가 쉬 어도 안됩니다. 일주일 동안 하루 다섯 번씩 꼭 드십시오 아침에 일어나서 먼저 이 약을 드시고, 아침 식사 후에, 점심 식사 후에, 저녁 식사 후에 그 리고 자기 전에 이 약을 꼭 들도록 하십시오." 했습니다 그 사장님이 집에 가서 약 봉지를 꺼내 보니, 그러나 그 속에는 약 대신 조그만 네모난 종이에 시편 23편들이 가득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사장님은 병을 고쳐 보려고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허사가 되어 버렸는데, 이 방법은 하나님이 주신 마지막 방법일지 모른다고 생각하고, 목사님의 처방대로 아 침마다 침상에서 일어나자 마자, 제일 먼저 시편 23편의 말씀을 펴들고 끓 어 앉아 읽었습니다. 아침 식사 후에도 읽었습니다. 이 말씀이 주는 의미 를 최대한 받아들이겠다는 마음의 자세로 말씀을 깊이 되색임질 하면서 읽 었습니다. 점심 후에도, 저녁 후에도, 자기 직전에도 그렇게 이 말씀을 읽었 습니다. 목사님의 처방대로 꼭 그렇게 해 나갔습니다. 그러자 언제 찾아왔는지 모를 평안히 그 마음속에 찾아 들기 시작했습니다. 놀라운 변화가 일 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는 모든 병에서 완전히 자유를 얻고, 정말 이 시편 말씀같이 푸른 초장 위에 누울 수가 있게 되었 습니다. 여러분! 여러분께서도, 이 말씀을 그저 단지 좋은 말씀 정도로만 생각하지 마시고, 꼭 이 사장님처럼 삶 속에서 그대로 적용하고 실천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오늘날 우리는 과거보다 더 좋은 음식을 먹고, 더 좋은 집에 살고, 더 좋은 이부자리 속에 눕습니다. 그러나 우리 영혼의 푸른 초장은 과연 어디에 있 습니까 우리 삶에 과연 쉴 만한 물가가 있습니까 늘 불안하고 초조하며 신경을 곤두세우고, 늘 바쁘고 늘 우울하고 생기가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 지 않습니까 이런 우리들에게 정말 필요한 말씀은 바로 이 시편 23편이라는 것을 꼭 깨 달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왜 시편 23편이 특별히 우리에게 더 귀한 말씀이 될 수 있는가 왜 그 렇게 진한 감동을 이 시편 23편이 주는 걸까요 그 이유는, 한마디로 인 생의 온갖 풍상과 파란만장한 삶을 다 살았던 시인 다윗이 쓴 간증이고 고 백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어쩌면 그는 앞에서 소개한 아버지의 아들처 럼 수십번 죽을 고비를 넘기고 다시 살아난 사람으로서, 진정 감사의 뜻을 알고, 진정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자로서의 고백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얼핏 보면 이 시편은 마치 잔잔한 호수 같고, 푸른 초장같이 평화롭게 느끼 지기만 하지만, 그러나 좀더 깊이 잘 묵상해 보면 결코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4절의 말씀을 보세요.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무슨 뜻입니까 죽음의 골짜기를 통과했다는 말씀입니다. 고로 이 詩편은 온갖 인생의 풍상을 다 겪은 사람의 고백이 틀림없습니다. 그야말로 파란만장하 고 고달프고 힘든 역경과 시련의 삶을 살아왔던 사람/ 다윗의 고백인 것입니다.-아시는 대로 다윗은 얼마나 험한 삶을 살았던 인물입니까-적장 골리 앗을 죽임으로 하루아침에 사울 왕의 사위까지 될 수 있었고, 나라의 제 2 인자로까지 오르는 영광은 얻었습니다만, 그러나 그것은 잠시 잠간이었을 뿐, 그 이후 그는 얼마나 많은 시련과 고통을 겪었습니까-하루 아침에 왕실에서 쫓겨나서, 처량하고 고달프고 위험한 도망자의 신세가 되고 말았 습니다. 도망 중에 두 번, 세 번씩이나 생명의 위협을 직접 받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간신히 왕위에 오르기는 합니다만, 그러나 그 이후 에는 또 남도 아닌 사랑하는 아들로부터 반역을 당해서, 왕실에서 쫓겨나는 수모를 겪지 않았습니까 그리하여 불가피하게 그 아들과 전쟁을 벌리게 되고, 그래서 또 그 아들을 죽이고 다시 왕권을 회복하기는 합니다만, 그러나 그로 인해서 또 얼마나 더 큰 아픔을 그가 맛보아야 했습니까
-곧 아들을 잃는 아픔이었지요 그 아픔과 슬픔이 얼마나 켰으면, 아들 압 살롬이 전사했다는 소식을 듣고서, "압살롬아 압살롬아 내 아들 압살롬아, 차라리 내가 너 죽음을 대신하였다면 좋았을 것을." 이것은 바로 모든 부 모의 마음이기도 하지요 아버지를 죽이려드는 천하의 못된 나쁜 자식이 었지만, 그러나 그 아들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부모는 , 차라리 내가 죽 고 네 대신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 하고 슬퍼하며 가슴 아파했던 것입니다. 아무른 그런 모진 풍상을 다 겪으며 살았던 다윗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마 지막으로 하는 고백과 간증이 바로 오늘 시편 23편입니다. 다시 한번 들어 볼까요 1-3절<. 여기서 우리가 먼저 알 수 있는 것은, 다윗은 진심으로 하나님과 자신의 관계를 양을 치는 목자와 그리고 양으로 비유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바로 여기에 다윗의 위대한 신앙과 그리고 그의 파란만장한 그의 인생 역정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곧 양은 가장 무능하고 연약한 동 물 중의 하나입니다. 목자가 없으면. 단 한순간도 스스로 안전할 수가 없는 동물입니다. 곧 다윗은 바로 그런 양 같아서, 목자 되신 하나님이 지켜 주시지 않으면, 단 한 순간도 자기 혼자서는/ 자기 힘만으로는 안전하고 무사할 수가 없다는 것을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만큼 그는 절실하게 하나님 없이는 살 아갈 수 없다고 깊이깊이 경험하고 깨달았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4-6절에내 잔이 넘치나이다.이 말씀을 특별히 우리가 주목하고 깊이 묵상할 필요가 있습니다. 여러분, 다윗은 정말 그의 잔이 넘쳤고, 또 정말 부족한 것이 하나도 없어서 부족하지 않다고 말하고 있는 것 같습니 까 그러나, 우리는 다윗의 기준이-곧 그가 부족하지 않다/ 잔이 넘친다고 한 그 고백의 기준이 결코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이 세상에 어떤 것들을 두 고, 그것에 기준 하여, 그렇게 고백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다시 말해 그는 우리처럼 이 세상의 물질이나 명예나 건강이나 쾌락에서. 그의 잔을 채우려고 하지 않았다고 뜻입니다. 그런 것들로부터는 결코 우리의 잔을 가득 채울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혹 명예/ 돈/ 쾌락.그런 것들 로 우리의 잔을 채우려고 하면, 그것은 처음부터 크게 잘못된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런 것들은 채우면 체울수록 우리의 잔은 더욱 빈 잔으로 남 아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가장 큰 이유는 물론 우리의 욕심 때문입니다. 체워도 채워도 영원히 채워지지 않는 것이 바로 우리의 욕심이 아닙 니까 이 이치를 깊이 깨달은 다윗은 그의 잔을 이 세상의 그 어떤 것들로부터가 아닌, 오직 전능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채우려고 했던 것입니다. 바로 그 때 에 그의 잔은 정말 차고 넘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오늘 이 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여호와로 더불어 내 잔이 넘치나이다.내가 부족 함이 없으리로다. 여러분, 여러분도 정말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하는 고백하며, 살고 싶지 않습니까 그러시다고 한다면, 그 비결을 오늘 말씀에서 꼭 배울 수 있기 바랍니다. 그 비결이란 다름 아닌, 오직 여호와 가 여러분의 목자가 되시도록 하는 것입니다. 또한 여러분은 오직 그의 羊 임을 진심으로 인정하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羊이라 함은 무능하고 연약하 고 어리석다는 뜻입니다. 곧 단 한 순간도 목자가 지켜주시지 않으면, 안 전할 수 없고. 무사할 수 없고, 살아갈 수 없다는 뜻입니다. 바로 그것을 인정할 때에, 전능하신 우리 하나님께서 참으로 저와 여러분의 참 목자가 되어 주실 것입니다. 바로 그때에, 또한 우리는 진심으로 고백 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 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을 것이라. 내 잔이 넘치나이다 >라고 말입니다. 바로 그런 심정으로/ 그런 믿음으로 오늘 이 시편23편 말씀을 우리 다시 한번 읽어보면서, 오늘 말씀 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29,555 건 - 259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