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행3:1-10)
본문
여러분, 배고픈 사람에게 제일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밥일 것입니다. 병든 사람에게 제일 필요한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무엇보다 강건함일 것입니다. 무력한 사람에게 제일 필요한 것은 능력입니다. 고독한 사람에게 제일 필요한 것은 사랑일 것이고, 절망에 빠진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희망입니다. 범죄하므로 죄책감에 시달리는 사람이라면 그에게 제일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죄 사함, 용서라고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배고프고, 병도 들고, 무력하고, 고독한 사람, 또 절망과 죄책에 시달리는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무엇으로 이 사람의 이런 총체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필요를 채울 수 있겠습니까 이 모든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는 길이 있다면 그길은 어떤 것입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이 모든 것이 다 들어가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그리스도 안에 생명과 강건함, 부요함이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 안에 능력이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치료가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희망이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죄사함과 용서의 구원의 놀라운 은혜가 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함께한 여러분과 저에게 이 예수 그리스도의 풍성하신 은혜가 임하기를 축원합니다.
예수는 나의 힘이요, 내 생명되시니. 본문에 보면 성전 미문이란 곳에 앉은 ‘나면서 앉은뱅이’된 한 사람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이 사람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낫게 했습니다. 그러나 단지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은 앉은뱅이라도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만을 본문이 강조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본문에 나타난 사건을 우리에게 기록해 주신 것은 우리의 구원의 도리를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사건에서 인생의 구원의 도리를 발견해야합니다.
첫째,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에 모든 인생은 다 이 앉은뱅이 같은 상태였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앉은뱅이는 나면서부터 앉은뱅이요, 그는 지금까지 한번도 걸어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는 나이가 약 40세됩니다.
그렇다면 40년을 제힘으로 한 번 일어서보지 못했고, 한번도 제발로 걸어본 적이 없는 정말 불쌍하고 가련한 삶을 산 사람입니다. 어떤 분은 이 말씀을 듣고, “나를 나면서 앉은뱅이된 자와 같다고 하니 기분나쁘다” 생각하실 분도 계실 것입니다. 육적으로 병인이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그러나 과연 모든 인생은 다 죄인이라고 성경에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에도 인정하시기 싫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증거가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아니라, 우리들에게 있는 죄의 습성과 죄의 행위입니다. 지극히 작은 죄라도 범하지 않은 사람이 있습니까 그 사람을 무엇이라 부릅니까 죄를 범한 사람을 죄인이라고 합니다. 또 하나의 증거는 우리에게 죽음이 있다는 것입니다. 죄가 없으면 인생에게 죽음도 없습니다. 최소한 나는 죄인이 아니라고 하려면 죽음이 없다는 것으로 증명해 주어야합니다. 그러나 우리 중에 누구라도 다 한번 죽는 것은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틀림없이 다가온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것은 죄 값입니다. 이것이 죄인이라는 중거입니다. 또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지 아니한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을 위하여 살며, 하나님께 영광돌리며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합니다. 그저 삶의 의미는 제게 있고, 세상에 있는 것이 예수 밖에 있는 인생아닙니까 이렇게 지으신 자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영화롭게하지 못하는 인생의 이러한 삶을 영적으로 앉은뱅이라 하는 것입니다. 예수 밖에 있는 사람은 단언코 말씀드리거니와, 아직 한번도 인간의 바른 위치에 서지도 못했고, 온전한 인격으로 살아보지 못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자로서는 자신의 인생의 삶의 의미를 아무도 알 자가 없습니다. 소요리문답에 사람의 제일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하고, 그를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앉은뱅이가 나면서부터 앉은뱅이였던 것처럼 오늘 모든 인생은 죄 가운데 출생합니다. 모든 인생은 다 제대로 서지도 걷지도 못하는 앉은뱅이 같은 걸음을 걷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생을 지으실 때에 얼마나 존귀한 존재로 지으셨는지 모릅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기 위해서 하나님을 섬기는 존재로 지었습니다. 그러나 마귀의 미혹을 받아 타락한 인생은 다 죄 가운데서 출생하고, 죄를 짓고 영원한 사망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바로 본문에 나면서부터 앉은뱅이된 자는 하나님 모르는 모든 인류를 가리킵니다. 인생들이 하나님 없이 무엇인가를 이루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그 미래를 정확하게 안다면 절망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나면서부터 앉은뱅이’라는 말은 인생은 선천적으로 나면서부터 죄인임을 말합니다. 모든 인생이 죄 가운데서 출생합니다. 온전한 인생이 아무도 없습니다. 앉은뱅이도 어릴 때는 그 부모가 자기를 한번 걷게하려고 무진 애를 썼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그것이 안되기 때문에 이제 다 포기하고 있습니다. 기적을 포기한 인생을 보여줍니다. 죄 가운데서 영 죽어 있는 인생이지만, 그 죄와 죽음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생각조차 포기한 것이 인생입니다. 그저 땅에서 나서 땅의 것을 먹고 일생 땅만 보고 살다가 땅에서 죽는 지렁이 같은 삶을 사는 것이 인생입니다. 이 말씀에 항거할 자 있습니까 성경이 말씀합니다. 단지 먹고 사는 것으로 만족하려합니다. 이것이 참으로 인생입니까
그렇다면 개 돼지와 우리가 다를 바 무엇있습니까
둘째로, 이 앉은뱅이가 무엇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까 그가 생각하기는 자신에게 지금 당장 시급한 것은 물질입니다. 의식주 문제가 제일 목적이 되었습니다. 이 사람은 자기에게 진정한 필요가 무엇인지를 자신은 알고 있지 않습니다. 아니 알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이 앉은뱅이는 그래서 그는 매일 아침이면 그를 매어다 놓는 사람들에 의해 미문에 앉아있고, 거기서 성전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한푼 두푼 구걸하는 것이 그의 일과였고 어려서부터 이 일을 했습니다. 이 일에 익숙해 졌습니다. 처음에는 창피하기도 했겠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 일에 익숙해 졌고,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의 자비심을 일으키기 위해서 더 병신 흉내를 내어야했습니다. 이 앉은뱅이같이 해 아래 많은 인생들의 하루 하루 사는 삶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살기 위해서 먹다가 이제는 먹기 위해서 사는 것 같이 자신의 존재의미를 잊어버리고 인생의 존귀한 가치도 모르고 살아갑니다. 이것도 제대로 되지 않으니까 어떻게 할 수 없기 때문에 하는 일이 다른 사람을 이용하여 자신의 이기적인 목적을 해결하려는 것입니다. 이것이 구걸행위입니다. 다른 사람의 것을 더 얻어내기 위해서 더 병신노릇을 하는 것입니다. 인간닮지 않는 행위를 해서라도 돈을 벌어야하겠다는 것이 구걸행위와 무엇이 다릅니까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정권, 권력을 잡아보겠다고 한다면 그것이 구걸행위 아닙니까 한 표를 얻으려고 거짓된 공약을 하고 인신공격하는 정치가들을 볼 때에 더 자세히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은 이런 구걸행위를 잘하는 사람이 출세도 하고, 부자도 되고 합니다. 오늘 여러분의 삶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하루 밥벌이가 사는 목적입니까 오늘 우리 학교 교육의 목적도 밥벌이가 목적이 아닙니까 이 말씀이 지나칩니까 아닙니다. 아이들이 어릴 때에는 이상과 꿈이 있습니다. 그것이 중학교, 고등학교 진학을 하면서 이상이 실현되어야하는데 입시 지옥을 지나면서 점점 그 꿈과는 멀어지고, 대학진학도 먹고 살기 위해서, 취업도 먹고살기 위해서입니다. 하루살이와 개구리가 함께 놀다가. 내일이 뭐지 내년이 뭐지, 이 앉은뱅이는 성전 안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었습니다. “배 부르고 할 일이 없는 사람들이나 저 예배당에 앉아 에배하고, 찬송하고, 기도드리지, 하루 살이도 빠뜻한 우리 같은 사람들이.어떻게” 인생에 대한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어떤 문제든지 다 포기한 시대가 오늘 아닙니까 왜 이 시대에 문제의 청소년들이 많이 일어납니까 인생에 문제는 있는데, 해답이 없기 때문입니다. 어른들은 아예 모든 인생문제에 고민하는 것 조차 포기했고, 학생들은 아직은 순수해서 어른 들과 같이 포기할 수 없는데, 이상과 그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갈등하는 학생들이나, 포기한 어른들이나, 그 문제들에 대한 답을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해결책이 없습니다. 어른들은 이제 다 포기했으니 문제를 덜 일으키지만, 학생들은 아직 다 포기를 하지 않은 이유 때문에 고민하고 갈등하고, 반항도 해 보다가 이리 저리 뒤쳐 나가는 것이 오늘에 사회문제가 된 것입니다. 어른들은 몰라요. 무엇을 이유로 학생들이 갈등하는지 어쩌면 우리 학생들도 이리 저리 방황을 하지만, 무엇 때문에 이런지는 모르고 있습니다.
셋째로 그러면 교회는 이 앉은뱅이 인생들에게 진정한 필요를 무엇으로 채워줄 수 있습니까 그는 생존을 위한 돈이나, 빵을 제일로 생각했지만 그는 알지못해서 그렇습니다. 자신의 그 비참함을 해결하는 것이 급선무요, 이것이면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되는 것인데, 어찌할 수 없으니, 이제 절망에서 모든 것을 다 포기한 것입니다. 의식주 해결로 인생의 근본문제는 결코 해결되지 않습니다. 문제는 계속 일어나는 것입니다. 오늘 삶의 의미와 그 방향을 잃어버린 현대인들에게 기독교는 어떤 것을 줄 수 있습니까 무엇을 제시합니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조차 모르고 있는 것이 비극입니다. 교회는 이것부터 가르쳐야합니다. 인생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근원적인 갈등이 무엇입니까 사람들이 진정으로 필요로 해야 하는 것이 우리가 그들에게 주어야하고, 줄 수 있는 것입니다. 앉은뱅이를 성전미문에 앉혀 놓는 사람들은 교회를 말합니다. 인생문제를 해결하지 못하여 곤한 심령으로 교회를 찾아왔지만, 교회가 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그들을 구걸행위를 더 잘하도록 가르치는 것 아닙니까 구걸많이 하도록해서 나누어 먹으려 하는 것이 오늘 타락한 교회의 모습입니다. 기복주의, 세속주의를 버리도록 하는 것이 교회인데 이를 더 가지도록 해서 얻은 것으로 바치도록 하여 교회 건물이나 세우고 하는 것 아닙니까 성전 미문에 까지 매어다 왔지만, 성전 안에 무슨 일이 있는 지 관심도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지 않습니다. 십자가를 말하지 않습니다. 십자가의 도를 말하지 않습니다. 교회가 책임이 큽니다. 이러니 교회가 오늘 멸시천대를 받습니다. 그러나 3절에 보면,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가려고 할 때에 그가 무엇인가 얻으려고 저희를 바라봅니다. 이 때에 베드로가 말합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다. 네가 원하는 은과 금은 내게 없다. 그러나 내게 있는 것이 있다. 이것을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다. 이 이름으로 걸어라 했습니다.
세상이 필요로 하는 것은 은이나 금입니다. 물질이나, 세상에 속한 것이지만, 이것은 줘 봐야 일시 만족은 있으나, 참 만족은 없습니다. 왜냐면 인생은 영원한 존재요, 하나님으로 만족하도록 지음을 받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세상의 것으로 채워줘도 그것으로 그 빈 마음을 다 채우지 못합니다. 오늘 교회를 찾아오시는 분들도 이런 저런 사소한 세상의 문제를 가지고 옵니다. 그러나 진실된 교회라면 그런 것들을 줄 수 없습니다. 교회는 인간의 영원문제, 죄와 사망문제를 해결해주는 곳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육신에 이상이 있을 때에 통증이라는 것을 주셔서 그 병든 것을 찾아내도록 우리 육신을 만드셨습니다. 위가 나쁜데 통증이 없다면 병원을 찾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증이란 것이 당장은 고통스럽지만, 큰 병을 찾아내고 치료하는데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속에 큰 병을 있는 사람이 병원을 찾아갔는데, 그 병원에서 그 병을 제대로 진단 못하고, 그냥 진통제를 지어주고, 고통이나 면하게하고, 겉에 나타난 상처나 치료해 주었다면 그 병원이 할 일을 다 했다고 하겠습니까 그 병원을 감사하겠습니까 그 고통의 원인을 정확하게 진단하여 속병을 고쳐주는 일을 해야하지 않겠습니까 오늘 우리에게 나타나는 여러 가지 현상들, 우리에게 지금 심각하게 닥쳐온 아이엠에프의 위기는 통증과 같은 것입니다.
교회가 이런 환난과 징벌과 능욕의 때에 세상에 대하여 할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세상은 교회에 대하여 이 문제의 해답을 낼 것을 요구합니다. 그래서 교회들이 실업자들의 쉼터도 만들기도 하고, 구제하는 일에 연보도 열심히 하고 합니다. 이런 일을 우리들도 해야합니다. 그러나 이런 것을 하는 기관이 교회는 아닙니다. 이런 것들을 암만 준다고 해도 그 원인되는 병을 치료하지 않으면 언발에 오줌누기에 불과합니다. 우리에게 세상이 은과 금을 요구한다고 할지라도 우리에게는 이런 것이 없습니다. 아니 이런 것을 주는 곳이 교회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앉은뱅이의 요구가 그러합니다. 만일 베드로와 요한이 이 사람의 요구대로 들어주었다면 일시적으로 감사하다고 생각하고 꾸벅 절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고는 그만입니다. 여전히 이 앉은뱅이는 구걸하는 일을 계속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한국교회가 회개하여야하는 부분이 이것입니다. 교인들을 다 구걸하는 신앙으로 만들었습니다. 기복주의의 신앙으로 만들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우리를 보라 했습니다. 그 때에 구걸하는 그 사람은 무엇인가 얻을까하여 베드로를 쳐다보았으나, 베드로는 말하기를, (행3:6) 베드로가 가로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했습니다. 네가 원하고 원하는 은과 금은 내게 없다. 그러나 내게 있는 것이 있다. 그것은 다름아니라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다. 여러분들에게 무엇이 있습니까 내 재산 목록 일호가 무엇입니까 시편기자는 여호와가 내 분깃이요, 기업이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이름을 여러분들은 가졌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가지신 여러분들은 모든 것을 소유하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 이름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나사렛이라는 말은 예수님께서 사셨던 동네인데 멸시받고 천대받는 사람들이 모여 살던 곳입니다. 이 세상에서 오늘도 예수의 이름이 멸시를 받습니다. 오늘 교회 안에서도 이 이름이 천대의 대상입니다. 그러나 이 이름은 능력입니다. 이 이름은 우리를 구원하시는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입니다. 이 이름이 능력입니다. 이 이름이 구원입니다. 믿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란 그분이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돌아가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시는 은혜를 베푸신 그 공로를 말합니다. 예수님이 왜 돌아가셨습니까 우리의 죄 문제, 영원한 사망 문제 때문입니다. 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우리가 구원을 얻게 된 것입니다. 우리 인생의 영원한 문제인 죄와 사망의 문제를 십자가에서 해결해 주신 예수십니다. 베드로와 요한의 가장 귀중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우리 가정의 재산 목록 일호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입니까 이제 교회는 신앙의 길을 들어온 자들의 신앙의 길을 인도하는 일을 해야합니다. 그 이름으로 일어나 걸어라 하면서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 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미했습니다.
넷째, 이제 앉은뱅이였던 자가 예수그리스도를 만난다음에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그리스도를 만남으로 이 앉은뱅이의 문제는 다 해결되었습니다. 그는 거듭났습니다.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이제 완전히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가 포기했던 인생의 참 목적을 실행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 그는 구걸할 필요가 없고, 그는 멸시를 받을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가 그 무리 가운데서 가장 인기가 있었고, 가장 기뻐한 사람입니다. 그는 걸었고, 뛰었고, 춤을 추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찬송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성전으로 들어갔습니다. 이것이 인생입니다. 인생의 의미를 찾았습니다. 인생의 제일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아닙니다. 지음을 받은 인생으로서는 지으신 자 창조주 하나님을 기뻐하고, 하나님을 영원히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생의 본래의 위치입니다. 여러분들 가운데 아직 까지 그리스도를 만나지 못한 분들 있습니까 여러분들의 삶을 한번 돌아봅시다. 여러분들의 이제까지의 삶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무엇을 위해서 무엇을 이루려고 이제까지 달려왔습니까 얼마나 이루었습니까 그 이룬 것이 있다면 그것이 여러분들에게 참 만족과 기쁨을 줍니까 소망이 있습니까 인생은 영원한 존재입니다. 이시간 갈등과 고민을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포기를 하지 않아야합니다. 포기할 이유가 없습니다. 우리에게 길이 있기 때문입니다. 영생의 길이 열려있습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있습니다. 그는 우리의 구원자시오, 우리 문제의 상담자, 해결자이십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있는 분들! 예수 그리스도가 과연 내 안에 계십니까 과연 예수 그리스도가 나에게 가장 귀하신 분입니까 그의 이름이 내게 있음으로 나는 부족함이 없습니까
그렇다면 베드로 같이 그리스도의 이름을 이 세상에 주어야할 사명이 있지 않습니까 그 이름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라 합니다. 나사렛이란 멸시받은 동네이름입니다. 오늘에도 세상이 멸시하고, 세상이 비웃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나 이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려고 사람 몸을 입고오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오신 분입니다. 어떤 문제입니까 우리들의 모든 죄 문제를 해결하시는 제사장이시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인생에게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보여주신 선지자십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지게 하신 왕으로 오신 분이십니다. 이 이름은 이분이 이루신 이력입니다. 역사입니다. 공로입니다. 이 예수 이름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며, 기도하고, 하나님께 예배합니다. 이분은 하나님의 구원의 지혜입니다. 구원의 능력입니다. 예수 외에 우리의 구원자는 없습니다. 포기하지 맙시다. 어떤 죄악 가운데서도 절망하지 맙시다. 이분이 일어서라합니다. 어떤 현실에서도 이분을 의지하면 일어설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만난 그 고난과 핍박의 현실에서도 이제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붙들고 일어날 수 있습니다. 앉은뱅이 같은 삶을 언제까지 사시렵니까 소경같은 삶을 언제까지 사시렵니까 죄악 가운데서 죄책감을 누리면서 언제까지 앉아계시렵니까 주님께서 오셨습니다. 바로 당신을 위해서 오신 분이십니다. 이분이 우리의 질고와 우리의 슬픔과 우리의 죄악과 우리의 고통을 다 담당하신 분이십니다. 이분의 손을 붙잡으십시오. 오늘 우리들 가정에 무엇이 있습니까 은금을 가득채워놓은 가정이라도 화목함이 없으면 무슨 재미가 있으며 행복이 있습니까 가정이 온전한 화목을 누리는 것은 먼저 하나님과 화목입니다. 이 하나님과 화목하지 않고는 결코 인간끼리 화목은 속이는 것이고 오래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왜냐면,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길과 진리와 생명이시기 때문입니다. 이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건축자에게 버림 받은 돌이나, 성전 모퉁이 요긴한 돌이 되었습니다. 예수 그이름! 존귀하신 이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있습니다. 그는 구원자, 그는 그리스도입니다. 그는 우리 모든 문제의 해결자십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배고프고, 병도 들고, 무력하고, 고독한 사람, 또 절망과 죄책에 시달리는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무엇으로 이 사람의 이런 총체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필요를 채울 수 있겠습니까 이 모든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는 길이 있다면 그길은 어떤 것입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이 모든 것이 다 들어가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그리스도 안에 생명과 강건함, 부요함이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 안에 능력이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치료가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희망이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죄사함과 용서의 구원의 놀라운 은혜가 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함께한 여러분과 저에게 이 예수 그리스도의 풍성하신 은혜가 임하기를 축원합니다.
예수는 나의 힘이요, 내 생명되시니. 본문에 보면 성전 미문이란 곳에 앉은 ‘나면서 앉은뱅이’된 한 사람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이 사람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낫게 했습니다. 그러나 단지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은 앉은뱅이라도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만을 본문이 강조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본문에 나타난 사건을 우리에게 기록해 주신 것은 우리의 구원의 도리를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사건에서 인생의 구원의 도리를 발견해야합니다.
첫째,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에 모든 인생은 다 이 앉은뱅이 같은 상태였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앉은뱅이는 나면서부터 앉은뱅이요, 그는 지금까지 한번도 걸어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는 나이가 약 40세됩니다.
그렇다면 40년을 제힘으로 한 번 일어서보지 못했고, 한번도 제발로 걸어본 적이 없는 정말 불쌍하고 가련한 삶을 산 사람입니다. 어떤 분은 이 말씀을 듣고, “나를 나면서 앉은뱅이된 자와 같다고 하니 기분나쁘다” 생각하실 분도 계실 것입니다. 육적으로 병인이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그러나 과연 모든 인생은 다 죄인이라고 성경에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에도 인정하시기 싫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증거가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아니라, 우리들에게 있는 죄의 습성과 죄의 행위입니다. 지극히 작은 죄라도 범하지 않은 사람이 있습니까 그 사람을 무엇이라 부릅니까 죄를 범한 사람을 죄인이라고 합니다. 또 하나의 증거는 우리에게 죽음이 있다는 것입니다. 죄가 없으면 인생에게 죽음도 없습니다. 최소한 나는 죄인이 아니라고 하려면 죽음이 없다는 것으로 증명해 주어야합니다. 그러나 우리 중에 누구라도 다 한번 죽는 것은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틀림없이 다가온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것은 죄 값입니다. 이것이 죄인이라는 중거입니다. 또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지 아니한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을 위하여 살며, 하나님께 영광돌리며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합니다. 그저 삶의 의미는 제게 있고, 세상에 있는 것이 예수 밖에 있는 인생아닙니까 이렇게 지으신 자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영화롭게하지 못하는 인생의 이러한 삶을 영적으로 앉은뱅이라 하는 것입니다. 예수 밖에 있는 사람은 단언코 말씀드리거니와, 아직 한번도 인간의 바른 위치에 서지도 못했고, 온전한 인격으로 살아보지 못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자로서는 자신의 인생의 삶의 의미를 아무도 알 자가 없습니다. 소요리문답에 사람의 제일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하고, 그를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앉은뱅이가 나면서부터 앉은뱅이였던 것처럼 오늘 모든 인생은 죄 가운데 출생합니다. 모든 인생은 다 제대로 서지도 걷지도 못하는 앉은뱅이 같은 걸음을 걷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생을 지으실 때에 얼마나 존귀한 존재로 지으셨는지 모릅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기 위해서 하나님을 섬기는 존재로 지었습니다. 그러나 마귀의 미혹을 받아 타락한 인생은 다 죄 가운데서 출생하고, 죄를 짓고 영원한 사망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바로 본문에 나면서부터 앉은뱅이된 자는 하나님 모르는 모든 인류를 가리킵니다. 인생들이 하나님 없이 무엇인가를 이루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그 미래를 정확하게 안다면 절망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나면서부터 앉은뱅이’라는 말은 인생은 선천적으로 나면서부터 죄인임을 말합니다. 모든 인생이 죄 가운데서 출생합니다. 온전한 인생이 아무도 없습니다. 앉은뱅이도 어릴 때는 그 부모가 자기를 한번 걷게하려고 무진 애를 썼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그것이 안되기 때문에 이제 다 포기하고 있습니다. 기적을 포기한 인생을 보여줍니다. 죄 가운데서 영 죽어 있는 인생이지만, 그 죄와 죽음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생각조차 포기한 것이 인생입니다. 그저 땅에서 나서 땅의 것을 먹고 일생 땅만 보고 살다가 땅에서 죽는 지렁이 같은 삶을 사는 것이 인생입니다. 이 말씀에 항거할 자 있습니까 성경이 말씀합니다. 단지 먹고 사는 것으로 만족하려합니다. 이것이 참으로 인생입니까
그렇다면 개 돼지와 우리가 다를 바 무엇있습니까
둘째로, 이 앉은뱅이가 무엇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까 그가 생각하기는 자신에게 지금 당장 시급한 것은 물질입니다. 의식주 문제가 제일 목적이 되었습니다. 이 사람은 자기에게 진정한 필요가 무엇인지를 자신은 알고 있지 않습니다. 아니 알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이 앉은뱅이는 그래서 그는 매일 아침이면 그를 매어다 놓는 사람들에 의해 미문에 앉아있고, 거기서 성전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한푼 두푼 구걸하는 것이 그의 일과였고 어려서부터 이 일을 했습니다. 이 일에 익숙해 졌습니다. 처음에는 창피하기도 했겠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 일에 익숙해 졌고,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의 자비심을 일으키기 위해서 더 병신 흉내를 내어야했습니다. 이 앉은뱅이같이 해 아래 많은 인생들의 하루 하루 사는 삶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살기 위해서 먹다가 이제는 먹기 위해서 사는 것 같이 자신의 존재의미를 잊어버리고 인생의 존귀한 가치도 모르고 살아갑니다. 이것도 제대로 되지 않으니까 어떻게 할 수 없기 때문에 하는 일이 다른 사람을 이용하여 자신의 이기적인 목적을 해결하려는 것입니다. 이것이 구걸행위입니다. 다른 사람의 것을 더 얻어내기 위해서 더 병신노릇을 하는 것입니다. 인간닮지 않는 행위를 해서라도 돈을 벌어야하겠다는 것이 구걸행위와 무엇이 다릅니까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정권, 권력을 잡아보겠다고 한다면 그것이 구걸행위 아닙니까 한 표를 얻으려고 거짓된 공약을 하고 인신공격하는 정치가들을 볼 때에 더 자세히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은 이런 구걸행위를 잘하는 사람이 출세도 하고, 부자도 되고 합니다. 오늘 여러분의 삶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하루 밥벌이가 사는 목적입니까 오늘 우리 학교 교육의 목적도 밥벌이가 목적이 아닙니까 이 말씀이 지나칩니까 아닙니다. 아이들이 어릴 때에는 이상과 꿈이 있습니다. 그것이 중학교, 고등학교 진학을 하면서 이상이 실현되어야하는데 입시 지옥을 지나면서 점점 그 꿈과는 멀어지고, 대학진학도 먹고 살기 위해서, 취업도 먹고살기 위해서입니다. 하루살이와 개구리가 함께 놀다가. 내일이 뭐지 내년이 뭐지, 이 앉은뱅이는 성전 안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었습니다. “배 부르고 할 일이 없는 사람들이나 저 예배당에 앉아 에배하고, 찬송하고, 기도드리지, 하루 살이도 빠뜻한 우리 같은 사람들이.어떻게” 인생에 대한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어떤 문제든지 다 포기한 시대가 오늘 아닙니까 왜 이 시대에 문제의 청소년들이 많이 일어납니까 인생에 문제는 있는데, 해답이 없기 때문입니다. 어른들은 아예 모든 인생문제에 고민하는 것 조차 포기했고, 학생들은 아직은 순수해서 어른 들과 같이 포기할 수 없는데, 이상과 그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갈등하는 학생들이나, 포기한 어른들이나, 그 문제들에 대한 답을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해결책이 없습니다. 어른들은 이제 다 포기했으니 문제를 덜 일으키지만, 학생들은 아직 다 포기를 하지 않은 이유 때문에 고민하고 갈등하고, 반항도 해 보다가 이리 저리 뒤쳐 나가는 것이 오늘에 사회문제가 된 것입니다. 어른들은 몰라요. 무엇을 이유로 학생들이 갈등하는지 어쩌면 우리 학생들도 이리 저리 방황을 하지만, 무엇 때문에 이런지는 모르고 있습니다.
셋째로 그러면 교회는 이 앉은뱅이 인생들에게 진정한 필요를 무엇으로 채워줄 수 있습니까 그는 생존을 위한 돈이나, 빵을 제일로 생각했지만 그는 알지못해서 그렇습니다. 자신의 그 비참함을 해결하는 것이 급선무요, 이것이면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되는 것인데, 어찌할 수 없으니, 이제 절망에서 모든 것을 다 포기한 것입니다. 의식주 해결로 인생의 근본문제는 결코 해결되지 않습니다. 문제는 계속 일어나는 것입니다. 오늘 삶의 의미와 그 방향을 잃어버린 현대인들에게 기독교는 어떤 것을 줄 수 있습니까 무엇을 제시합니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조차 모르고 있는 것이 비극입니다. 교회는 이것부터 가르쳐야합니다. 인생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근원적인 갈등이 무엇입니까 사람들이 진정으로 필요로 해야 하는 것이 우리가 그들에게 주어야하고, 줄 수 있는 것입니다. 앉은뱅이를 성전미문에 앉혀 놓는 사람들은 교회를 말합니다. 인생문제를 해결하지 못하여 곤한 심령으로 교회를 찾아왔지만, 교회가 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그들을 구걸행위를 더 잘하도록 가르치는 것 아닙니까 구걸많이 하도록해서 나누어 먹으려 하는 것이 오늘 타락한 교회의 모습입니다. 기복주의, 세속주의를 버리도록 하는 것이 교회인데 이를 더 가지도록 해서 얻은 것으로 바치도록 하여 교회 건물이나 세우고 하는 것 아닙니까 성전 미문에 까지 매어다 왔지만, 성전 안에 무슨 일이 있는 지 관심도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지 않습니다. 십자가를 말하지 않습니다. 십자가의 도를 말하지 않습니다. 교회가 책임이 큽니다. 이러니 교회가 오늘 멸시천대를 받습니다. 그러나 3절에 보면,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가려고 할 때에 그가 무엇인가 얻으려고 저희를 바라봅니다. 이 때에 베드로가 말합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다. 네가 원하는 은과 금은 내게 없다. 그러나 내게 있는 것이 있다. 이것을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다. 이 이름으로 걸어라 했습니다.
세상이 필요로 하는 것은 은이나 금입니다. 물질이나, 세상에 속한 것이지만, 이것은 줘 봐야 일시 만족은 있으나, 참 만족은 없습니다. 왜냐면 인생은 영원한 존재요, 하나님으로 만족하도록 지음을 받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세상의 것으로 채워줘도 그것으로 그 빈 마음을 다 채우지 못합니다. 오늘 교회를 찾아오시는 분들도 이런 저런 사소한 세상의 문제를 가지고 옵니다. 그러나 진실된 교회라면 그런 것들을 줄 수 없습니다. 교회는 인간의 영원문제, 죄와 사망문제를 해결해주는 곳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육신에 이상이 있을 때에 통증이라는 것을 주셔서 그 병든 것을 찾아내도록 우리 육신을 만드셨습니다. 위가 나쁜데 통증이 없다면 병원을 찾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증이란 것이 당장은 고통스럽지만, 큰 병을 찾아내고 치료하는데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속에 큰 병을 있는 사람이 병원을 찾아갔는데, 그 병원에서 그 병을 제대로 진단 못하고, 그냥 진통제를 지어주고, 고통이나 면하게하고, 겉에 나타난 상처나 치료해 주었다면 그 병원이 할 일을 다 했다고 하겠습니까 그 병원을 감사하겠습니까 그 고통의 원인을 정확하게 진단하여 속병을 고쳐주는 일을 해야하지 않겠습니까 오늘 우리에게 나타나는 여러 가지 현상들, 우리에게 지금 심각하게 닥쳐온 아이엠에프의 위기는 통증과 같은 것입니다.
교회가 이런 환난과 징벌과 능욕의 때에 세상에 대하여 할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세상은 교회에 대하여 이 문제의 해답을 낼 것을 요구합니다. 그래서 교회들이 실업자들의 쉼터도 만들기도 하고, 구제하는 일에 연보도 열심히 하고 합니다. 이런 일을 우리들도 해야합니다. 그러나 이런 것을 하는 기관이 교회는 아닙니다. 이런 것들을 암만 준다고 해도 그 원인되는 병을 치료하지 않으면 언발에 오줌누기에 불과합니다. 우리에게 세상이 은과 금을 요구한다고 할지라도 우리에게는 이런 것이 없습니다. 아니 이런 것을 주는 곳이 교회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앉은뱅이의 요구가 그러합니다. 만일 베드로와 요한이 이 사람의 요구대로 들어주었다면 일시적으로 감사하다고 생각하고 꾸벅 절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고는 그만입니다. 여전히 이 앉은뱅이는 구걸하는 일을 계속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한국교회가 회개하여야하는 부분이 이것입니다. 교인들을 다 구걸하는 신앙으로 만들었습니다. 기복주의의 신앙으로 만들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우리를 보라 했습니다. 그 때에 구걸하는 그 사람은 무엇인가 얻을까하여 베드로를 쳐다보았으나, 베드로는 말하기를, (행3:6) 베드로가 가로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했습니다. 네가 원하고 원하는 은과 금은 내게 없다. 그러나 내게 있는 것이 있다. 그것은 다름아니라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다. 여러분들에게 무엇이 있습니까 내 재산 목록 일호가 무엇입니까 시편기자는 여호와가 내 분깃이요, 기업이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이름을 여러분들은 가졌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가지신 여러분들은 모든 것을 소유하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 이름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나사렛이라는 말은 예수님께서 사셨던 동네인데 멸시받고 천대받는 사람들이 모여 살던 곳입니다. 이 세상에서 오늘도 예수의 이름이 멸시를 받습니다. 오늘 교회 안에서도 이 이름이 천대의 대상입니다. 그러나 이 이름은 능력입니다. 이 이름은 우리를 구원하시는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입니다. 이 이름이 능력입니다. 이 이름이 구원입니다. 믿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란 그분이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돌아가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시는 은혜를 베푸신 그 공로를 말합니다. 예수님이 왜 돌아가셨습니까 우리의 죄 문제, 영원한 사망 문제 때문입니다. 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우리가 구원을 얻게 된 것입니다. 우리 인생의 영원한 문제인 죄와 사망의 문제를 십자가에서 해결해 주신 예수십니다. 베드로와 요한의 가장 귀중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우리 가정의 재산 목록 일호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입니까 이제 교회는 신앙의 길을 들어온 자들의 신앙의 길을 인도하는 일을 해야합니다. 그 이름으로 일어나 걸어라 하면서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 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미했습니다.
넷째, 이제 앉은뱅이였던 자가 예수그리스도를 만난다음에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그리스도를 만남으로 이 앉은뱅이의 문제는 다 해결되었습니다. 그는 거듭났습니다.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이제 완전히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가 포기했던 인생의 참 목적을 실행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 그는 구걸할 필요가 없고, 그는 멸시를 받을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가 그 무리 가운데서 가장 인기가 있었고, 가장 기뻐한 사람입니다. 그는 걸었고, 뛰었고, 춤을 추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찬송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성전으로 들어갔습니다. 이것이 인생입니다. 인생의 의미를 찾았습니다. 인생의 제일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아닙니다. 지음을 받은 인생으로서는 지으신 자 창조주 하나님을 기뻐하고, 하나님을 영원히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생의 본래의 위치입니다. 여러분들 가운데 아직 까지 그리스도를 만나지 못한 분들 있습니까 여러분들의 삶을 한번 돌아봅시다. 여러분들의 이제까지의 삶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무엇을 위해서 무엇을 이루려고 이제까지 달려왔습니까 얼마나 이루었습니까 그 이룬 것이 있다면 그것이 여러분들에게 참 만족과 기쁨을 줍니까 소망이 있습니까 인생은 영원한 존재입니다. 이시간 갈등과 고민을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포기를 하지 않아야합니다. 포기할 이유가 없습니다. 우리에게 길이 있기 때문입니다. 영생의 길이 열려있습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있습니다. 그는 우리의 구원자시오, 우리 문제의 상담자, 해결자이십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있는 분들! 예수 그리스도가 과연 내 안에 계십니까 과연 예수 그리스도가 나에게 가장 귀하신 분입니까 그의 이름이 내게 있음으로 나는 부족함이 없습니까
그렇다면 베드로 같이 그리스도의 이름을 이 세상에 주어야할 사명이 있지 않습니까 그 이름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라 합니다. 나사렛이란 멸시받은 동네이름입니다. 오늘에도 세상이 멸시하고, 세상이 비웃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나 이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려고 사람 몸을 입고오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오신 분입니다. 어떤 문제입니까 우리들의 모든 죄 문제를 해결하시는 제사장이시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인생에게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보여주신 선지자십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지게 하신 왕으로 오신 분이십니다. 이 이름은 이분이 이루신 이력입니다. 역사입니다. 공로입니다. 이 예수 이름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며, 기도하고, 하나님께 예배합니다. 이분은 하나님의 구원의 지혜입니다. 구원의 능력입니다. 예수 외에 우리의 구원자는 없습니다. 포기하지 맙시다. 어떤 죄악 가운데서도 절망하지 맙시다. 이분이 일어서라합니다. 어떤 현실에서도 이분을 의지하면 일어설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만난 그 고난과 핍박의 현실에서도 이제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붙들고 일어날 수 있습니다. 앉은뱅이 같은 삶을 언제까지 사시렵니까 소경같은 삶을 언제까지 사시렵니까 죄악 가운데서 죄책감을 누리면서 언제까지 앉아계시렵니까 주님께서 오셨습니다. 바로 당신을 위해서 오신 분이십니다. 이분이 우리의 질고와 우리의 슬픔과 우리의 죄악과 우리의 고통을 다 담당하신 분이십니다. 이분의 손을 붙잡으십시오. 오늘 우리들 가정에 무엇이 있습니까 은금을 가득채워놓은 가정이라도 화목함이 없으면 무슨 재미가 있으며 행복이 있습니까 가정이 온전한 화목을 누리는 것은 먼저 하나님과 화목입니다. 이 하나님과 화목하지 않고는 결코 인간끼리 화목은 속이는 것이고 오래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왜냐면,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길과 진리와 생명이시기 때문입니다. 이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건축자에게 버림 받은 돌이나, 성전 모퉁이 요긴한 돌이 되었습니다. 예수 그이름! 존귀하신 이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있습니다. 그는 구원자, 그는 그리스도입니다. 그는 우리 모든 문제의 해결자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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