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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사로 (요11:25-44)

본문

이 말씀을 1절부터 읽어 보면 예수님께서 나사로가 병들어 죽게 되었다는 그 소식을 듣고 바로 가지 아니하시고 지체하셨습니다. 그 뒤에 이제 나사로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가셨습니다. 예수님이 가셨을 때는 이미 죽은 지 나흘이 되어서 벌써 장례를 지내고난 후입니다. 그때 예수님이 가시니까 마리아도 마르다도 그 동민들도 다 나사로 죽은 데 대해서 심히 슬퍼하면서 울고 있었습니다. 그때에 마리아는 말하기를 주님이 여기 계셨으면 우리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을 것인데 계시지 않아서 이렇게 되었습니다 하면서 마르다와 마리아도 울고 모든 동민들도 슬퍼하면서 울었습니다. 예수님이 그 우는 것을 보시고 통분히 여기시고 눈물을 흘리시니까 보라 그가 이 나사로를 얼마나 사랑하였는가 하고, 또 어떤 사람은 말 하기를 이분이 소경의 눈도 뜨게 하고 온갖 기적을 행하였으니 나사로도 죽지 않게 하실 수가 있지 않았더냐 그렇게 말을 했습니다. 예수님이 그말을 듣고 또 통분히 여기셨습니다. 예수님이 민망히 여기시고 통분히 여기셨다는 말을 두 번이나 기록을 했습니다. 또 예수님이 눈물 흘리신 일이 없는데 여기서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흘리시면서 예수님은 하시는 말씀이 네가 믿으면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내가 말하지 아니하였느냐 하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또 그 무리들 앞에서 기도할 때에 아버지께서 항상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합니다. 또 이제도 내 말을 들으실 것을 내가 믿습니다. 내가 이 말을 하는 것은 둘러선 이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 지금 새삼스럽게 아버지가 내 말을 들으신다 하는 것을 저들에게 말을 해서 아버지께서 나 를 보내신 것을 그들로 하여금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 또 이렇게 말씀했 습니다.
1. 통분하신 이유 그러면, 이렇게 주님이 나사로 죽음에 대해서 민망히 여기시고 또 통분 히 여기신 것은 어떤 면을 통분히 여기셨는가
첫째 아담의 에덴동산의 일을 생각하셔서 통분히 여기시고 민망히 여기신 것입니다. 사람이 이렇게 두려워하고, 싫어하고, 슬퍼하고 하는 죽음 이것이 하나님이 먹지 말라는 선악과 먹은 값인데, 선악과 먹음으로 사람이 이렇게 제 일 싫어하는 죽음을 당하게 되었는데 그 원인이 어디 있는가 그 원인이 뱀이 와 가지고 하와를 꾀우고, 하와와 뱀이 동행해 가지고 아담을 꾀울 때 에 아담이 그 미혹을 받아 가지고 넘어짐으로 이 사망이 저들에게 들어온 것인데 이것을 연상하시면서 통분히 여기셨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못하게 뱀이 유혹시켰고, 하나님을 믿지 못함으로 이렇게 저들이 제일 슬퍼하고 고통스러워하는 이런 보응이 와서 참 사망하게 되었는데, 이 사망하게 된 자들도 또, 자기들을 죽인 것이 뱀의 유혹이요, 이 유혹으로 말미암아 자기를 멸하게 하는 것이 뭐인고 하니 하나님을 인정치 않고 믿지 않고 또 자기를 인정하 고 주장하게 마귀가 말한 것, 자기를 인정하도록 말했고 자기를 주장하도록 말했고, 하나님보다 자기를 앞서 생각하도록 말하는 이런 것입니다. 그런데 이 믿음을 떠나게 하는 유혹을 받아서 멸망받은 이 사람들이, 예수님이 오셔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라 또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이 말씀도 하시고 또 주님이 오셨지만 그 모든 사람들은 전 안팎이 하나님을 인정하느냐 자기를 인정하느냐 할때에 자기 를 인정하는 모든 행동들이고, 또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하나님의 뜻으로 그 들이 살고 있느냐 자기의 주장대로 살고 있느냐 할 때에 전부 자기의 주장 대로 살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인정하지 않고 자기를 하나님보다 더 인정하고, 또 하나님의 뜻 을 따르지 않고 자기 뜻을 좇고, 이런데 또 그들이 참 그렇게 죽음에 대해 서 고통을 당하고 슬퍼하고 우는 그것은 또 뭐이냐 그것도 역연 자기의 주관 때문에, 자기의 인정 때문에 그렇게 다 슬퍼하고 우는 것입니다. 주님이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말씀했으니까, 죽음에서 살려낸다고 했으니까 그만하면 기뻐 즐거워 못 견딜 터인데 또 자기 주관으로 그렇게 고민합니다.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해도 또 믿지 않고 자기 주관입니다. 이래서 주님이 분히 여기시고 슬퍼하심은 인간을 믿음으로 살지 못하게 하고 주관으로 살도록, 자율로 살도록 이렇게 한, 인간은 믿음으로만 살아 야 하는 것이 인간인데, 인간이 믿음으로 사는 거기에서만 생명이 있고 또 모든 존영과 승리가 있는 것인데 믿음으로 살지 못하게
첫째 아담을 에덴 동산에서 미혹시켜 가지고 그렇게 한 이 뱀의 역사, 여기에 대해서 주님은 통분히 여기십니다. 이렇게 마귀의 유혹을 받아서 사람들을 자기 주관으로 자율로 살게 한 것은 뱀이지만 인간이 멸망을 받고 지금도 고통을 당하고 있는 것은 자기 주관 자기 자율 이것 때문에 고통받는 것입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보고 기뻐하고 즐거워할 터인데 기뻐하고 즐거워하지 못하고 슬퍼하는 것도 자기 주관이 들어서 자기를 슬프게 만들었고, 또 자 기의 주관이 들어서 자기를 고통스럽게 만들었고, 자기 자율이 들어서 자기 를 죽게 만들었고 고통스럽게 만들었기 때문에, 자기 안에 있는 원수는 자 기 주관과 자율 이것이 원수인데 이것을 깨닫지 못하고, 믿음으로 살아야 할 인간을 믿음에서 돌이켜서 자율로 주관으로 살도록 홱 틀어서 뒤바꿔 놓은, 방향을 전환시켜 놓은 이 사탄의 역사에 대해서 심히 통분히 여기신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여게 통분히 여기신 것은 인간이 믿음으로 살지 않고 주 관으로 자율로 사는 이것을 내가 십자가에 못박혀서 기어코라도 이것을 돌 려서 이제 객관인 하나님을 바라보고 믿는 이 믿음으로 살아, 이렇게 심히 슬퍼 우는 이것을 영원히 기쁨과 즐거움으로 살 수 있도록 내가 돌이키겠 다 하여 그 일에 대해서 통분히 여기신 것입니다. 뱀의 유혹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그 사탄의 역사에 대해서 통분히 여 겨서 내가 어떻게 하든지 이 사탄의 일을 다 멸하고 이것을 다 절단을 내 고 박살을 내고 사탄의 미혹을 없애겠다 하는 것입니다.
2. 민망히 여기신 이유 또 민망히 여기신 것은 이렇게 자율로 주관으로 유혹받은 자가, 유혹받 아 생긴 자율과 주관 이것이 들어서 자기를 죽였고, 죽인 자를 또 슬퍼하고 심히 고통스러워 하는 것, 죽는 것과 고통스러운 일을 만드는 이 주관과 자 율로 인해서 자기가 자기를 죽이고 자기가 자기를 고통스럽게 하는 이 일 을 보고 민망히 여기신 것입니다. 민망히 여기신 것은 이것 때문에 민망히 여기셨습니다. 통분히 여기신 것은 사탄의 이 유혹에 대해서 통분히 여기셨습니다. 사 탄의 역사에 대해서 통분히 여기셨고, 민망히 여기신 것은 자기가 자기를 죽이고 자기가 자기를 고통스럽게 하는 그 면을 심히 민망히 여기셨습니다.
예수님이 그 유대인들의 하는 말에 대해서 통분히 여겼습니다. 통분히 여기신 이유가 그 밑에 해석이 되어 있습니다. 통분히 여기신 이유는, 그들이 예수님의 증거하는 말씀도 들었고 또 여 러가지로 표적을 보여서도 알렸지만 아직도 예수님이 하늘에서 아버지로 말미암아 오신 저들의 구주인 것을 믿지 않는 그것을 통분히 여겼습니다. 저들에게 해로운 것은 어떤 것이든지 다 제거해 주시고 또 저들에게 필 요한 것은 어떤 것이든지 다 충족시켜 주실려고 오신 참 메시야인데, 이 구 주를 인정치 아니하고 항상 의심하는 편에 서서 있고 또 항상 대적하는 편 에 서서 있고, 주님을 환영하고 믿는 편에 서지 아니한 일에 대해서 통분히 여기신 것입니다. 소경의 눈을 띄웠는데 왜 이 사람은 죽지 않게 하지 못했느냐 하는 그 말에 그 사람이 서기를 예수님을 구주로 섬기는 편에 섰는가 훼방하는 편에 섰는가, 믿는 편에 섰는가 의심하는 편에 섰는가 메시야로 영접하는 편에 서지 아니하고 훼방하는 편에 섰고, 메시야로 인정하고 믿는 편에 서 지 아니하고 믿지 아니하는 편에 선 그것을 주님이 통분히 여기신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 다음에 주님이 아버지에게 기도하면서 내 말을 항상 들 으시는 것을 감사하나이다. 또 지금도 들으시는 것을 감사하나이다. 이 렇게 말하는 것은, 왜 그 모든 무리들에게 보이게 기도하고 또 아버지가 나 를 보내신 것 내 말을 듣는 것을 감사하다고 이렇게 말씀하느냐 이 말씀 을 하시는 것은 이 무리들이 지금도 믿지 않기 때문에 내가 아버지께로 온 것을 저들로 하여금 믿게 하려 함이니다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받을 교훈, 여기서 주님이 우리에게 알리고저 하시는 계시는, 하나는 주님을 주님으로 사랑하고 영접하고 믿고 바라보는 주님 편에 서지 아니하고, 예수님을 따라 다니지만 항상 대항하는 편, 시험하는 편, 의 심하는 편, 마귀 편에 서 가지고 주님 편에 서지 아니한 그것을 주님이 통 분히 여기신다는 이것을 우리가 여기서 계시 받아야 할 것입니다. 환영하지 아니하는 자면 대적하는 자라. 환영하는 자와 대적하는 자 그 둘 로 쪼개집니다. 환영도 안 하고 대적도 안 하고 자기는 중간에 서서 그렇 게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꼭 이것 아니면 저것이지 중간은 없습니다. 믿는 사람도 보면 저 사람이 참으로 예수님 편에 서서 예수님을 사랑하 고 예수님을 옹호하고 예수님을 증거하려고, 다른 사람에게 알리려고, 예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을 바라보고 의지해서 예수님 편이 된 자와 예수님 편이 되지 않고 언제든지 예수님의 대립 편에 서 가지고 말도 하고 행동도 하고 제직회도 하고 당회도 하고 또 총공회도 하고 하는 자들, 보면 환하게 압니다. 저 자는 예수님 편에선 자라 아니라 하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그걸 주님이 통분히 여기십니다. 그것을 우리가 여게서 계시 받아야 하겠 고 … 돌을 옮겨 놓은 것 그 시체를 어디다가 두었느냐 와 보시옵소서. 이 굴에다가 지금 장례를 지내놨습니다. 그러면 돌을 옮겨 놔라. 또 말합니다. 죽은 지가 벌써 나흘히 되어서 썩어서 내음새가 나는데 뭐 돌 헐어봤자 내음새나 나지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이러니까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네가 믿어야, 인정해야, 뱀의 말은 당장에 유혹을 받고 그것은 놓지 않고 이래 가지고 그로 말미암아 생겨진 것으로 인해서 네가 심히 고통을 당하는 그 고통보다도 나를 믿으면, 나로 말미암 아 하나님을 믿으면 네가 그 죽음에서 돌아설 것이고, 유혹으로 말미암아 고통당하는 그 고통보다 그 고통을 이기고 영원히 살고 영원히 기뻐할 수 있는 이 믿음을 바꾸어 가지지 못하느냐 하시니까 마르다와 마리아가 돌이켜서 돌을 옮겨 놨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받을 약속이 뭐이며 우리 할 일이 뭐인가 이 마르다와 마리아에게는 이보다 더 고통스러운 일이 없었을 것이요, 이보다 더 원통한 일이 없었을 것이요, 이보다 더 슬프고 낭파된 일이 없었을 것이오. 이 일 은 아주 죽어 썩었으니까 전혀 희망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말씀하신 것은 내가 말하지 않았느냐 했습니다. 주 님이 신구약 성경에 계약해 놓은 것은 아무리 고통스러운 일, 아무리 슬픈 일, 이제는 지나가서 헛일이니까 아무리 원통스러운 일, 아무리 희망이 없는 일 그거라도 성경에 주님이 된다고 말씀하신 약속이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주님이 말씀하신 것이니, 주님은 능치 못하심이 없으시매 없는 가운데서 모든 것을 있게 하시고, 죽은 것을 살리시고, 병든 것을 고 치시고 이거 다 계약되어 있습니다. 계약되어 있는데, 다만 내가 주님과 그 사건 사이에 가로막아 놓은 것 이것을, 돌을 옮겨라. 이걸 제해 버리 라. 말씀하신 것처럼 내가 고통 당하고 낭파된 원통한 것, 기막힌 것, 슬 픈 것, 희망없이 된 것 그 사건과 주님과 사이에 마르다와 마리아가 돌로 쌓아서 가로막아 놨습니다. 내가 경제 문제나 병 문제나 뭐이든지 그 사이에 내가 잘못해 가지고 주님과 그와의 관계에 막혀있는 끊어진 것 이것만 찾아서 옮겨라. 옮겨라. 그러면 하나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않았느냐 옮겼습니다. 옮겼으니까 죽은 나사로가 살아났습니다. 기독교는 인간 이 할 수 없는 초자연의 하나님이 하시니,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있다 할 지라도 하나의 이용물이지 영생은 못합니다.
전부 하나님이 친히 오셔 가지고 하신 일만, 전지 전능 완전자가 하신 그것만 영원히 남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는 내게 무슨 면으로든지 고통스러운 것, 원통스러운 것, 낭파된 것, 참 분한 것, 대 실패한 것, 다시 희망없이 절단난 것 이것이 라 할지라도, 제가 인간 중에 제일 못쓸 악인이 된 이것까지도, 제가 경제 적으로 전체가 낭파되어 가지고 아주 거지 거지, 희망없는 거지가 된 이것 까지도, 자기가 어떤 일을 저질러서 다시 그것을 복구할 수가 없고 해결할 수가 없는 그런 일이라도 있을수록 좋습니다. 왜 주님은 능치 못하심이 없기 때문에 여기서 하나님 보여줄려는 것이요, 이럴 때에 네가 주님과 그 사건 사이에 돌을 막은 것처럼 네가 잘못해서 가로막아 놓은 잘못한 것이 있다. 네가 반드시 그 사건과 주님 사이에 막아 놓은 것 있다. 네가 사업이면 사업을 주님과 그 사업과 가로막은 것 있다. 네가 들어서 그 사업을 주님과 가로막아 가지고 주님과 절단낸 것 있다. 네 가 인간이면, 몸이면, 가정이면, 사건이면 뭐이든지 네가 들어서 주님과 그 사이를 가로막아 놓은 것 있는 것 그것만 다 옮겨놔라. 그것만 고쳐라. 그 것만 다 회개하라. 그것만 네가 잘못한 것 그것 고쳐라. 고치면 나흘된 나사로도 예수님이 말씀 하신 대로 옮겨 놓으니까 예수님이 말씀하실 때에 살아 나왔습니다. 이것이 기독교입니다. 왜 이렇게 하시는가 이렇게 하시는 것이 당신의 영광을 위해서입니다. 당신이 인간들에게 지어놓은 것을 마귀들은 자기가 지었다고 유혹을 합니다.
제가 요새 기도실에 가서 있어 보니까 마구 일류 고급차가 하루 종일 왔다 갔다 절에 드나듭니다. 그래 사람을 만날 때마다 제가 속으로 말하기 를 '주시기는 주님이 다 창조해 주셨는데 영광은 마귀가 따먹고, 영광은 다 른 것에게 돌리고 이러니 저 결과가 얼마나 비참하게 되겠느냐' 말했습니다. 보이지 않는 주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셨고, 주님은 능치 못하심이 없고, 주님이 선포해 놓은 계약은 인간 보기에 절대 불가능한 것으로서 이렇게 죽어 냄새난 것같이 이렇게 된 것이라도 상관없다, 주님이 계약해 놓은 것은 기회가 지나가기 전에 주님과 그 사이에 내가 잘못해서 가로막고 잘못 되어 놓은 것만 해결해라, 해결하면 병이 무슨 문제냐 낭파된 사건이 무슨 문제냐 네가 고통스러운 것이 무슨 문제냐 썩고 망한 것이 무슨 문제냐 기회가 지나가기 전에 주님이 말씀하신대로 네가 가로막아놓은 것만 틔워 라. 그러면 하나님이 하시는 역사를 너도 보고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서 영광을 하나님에게 돌리게 된다 하는 그것이 계약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정말로 믿고 자기와 주님 사이, 자기가 해놓은 자기에게 관한 그 모든 사건과 주님 사이, 자기가 해놓은 자기에게 관한 모든 사건과 주님 사이, 사업이 낭파 됐으면 요 사업이 어디서 무엇으로 막혔으며, 무슨 말로 막혔으며, 무슨 교제로 막혔으며, 무슨 관계로 막혔으며, 무슨 행동으로 막 혔으며 뭘로 막혔느냐 낱낱이 막힌 것을 틔워라. 틔우면 된다. 이 계약입니다. 믿을 때에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이 말씀은 그때 그 사건을 위 해서 나타낸 것 아니고 그 사건은 우리를 위해서 계시해 주시는 하나님의 계약의 선포입니다. 못 믿는 자는 그대로 죽고 썩습니다. 믿고 옮기는 자는 아! 과연 하나님이 계시는구나 하는 것을 모든 사람에게 보여 영광을 돌릴 것입니다. 주님의 기도 돌을 옮겨 놓을려고 달려들 때에 주님께서는 아버지께 기도했습니다. 내 말을 항상 들으시는 것을 감사합니다. 이 말을 하는 것은 새삼스럽게 아버지가 내 말을 들으시는 것을 내가 새로 재독해서 확인시킬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둘러 있는 이 무리들이 뱀이 와 가지고
첫째 아담으로 멸망시 킨 여기에 대해서는 쉽게 받아들이고 단단히 강직하고 있지만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셔서 내가 믿음을 주장해서 살게 하는 이 일은 저들이 믿지 않기 때문에 또 저들로 하여금 이를 인정하도록 하기 위해서 내가 지금 이 말을 다시 합니다. 둘러선 자들로 하여금 알게 하신다는 이 목적은 뱀이 스스로 와 가지고 사람을 멸망시킨 그 멸망에서 하나님이 주님을 보내셔서, 이렇게 믿음을 배 반하고 자기 주관 자율, 자기로 인해서 죽게 되고 또 고통스럽게 되었고 또 고통을 하고 하는 이것이 전부 믿음의 원수인데, 믿음의 원수 이것으로 인 해서 사람이 사망하게 되었고 사망의 고통을 계속해서 당하고 있는데 이것 을 벗겨주실려고 믿음의 주가 오셨습니다. 믿음의 주가 오셨으니 믿음의 주를 믿음으로 영접하면 자기 주관으로 사망하게 된 그 사망을 깨뜨리고 사망에서 살아 나오게 되고, 또 사망에서 살아 나온 자가, 주관으로 고통하고, 주관으로 인해서 두려워하고, 이 주관 으로 살아서 죽은 자가 죽은 자의 그 결과인 사망의 고통을 당하는 거기서 정반대로 믿음으로 돌아서면 그 모든 고통이 다 물러가고 비겁과 공포도 물러가고 모든 낙망도 물러가고 이러는 것입니다.
그런데 뱀이 와서 주관으로 살게 하는 그 일은 단번에 되었고, 그 주관 으로 살게 하는 그것은 신실히 놓지 아니하고 가지고, 마귀가 주관으로 살 게 해서 주관으로 인해서 죽었고, 또 죽은 자가 주관으로 인해서 영원히 고 통당하고, 또 죽은 자가 사는 그 생명길이 왔지만 주관으로 인해서 생명길 을 맞이하지 못하는 이 자들에게, 아버지께서 이 주관을 멸하고 믿음으로 구원을 하게 한 이 사실을 인정하도록 하기 위해서 저희들 앞에서 내가 아 버지와 나와의 관계를, 아버지가 나를 보내신 것인 것을 인정하도록 내가 지금 기도했습니다 하신 것입니다. 또 이 사실은 믿을 때에, 믿을 때에 마귀 역사는 깨어지고, 믿을 때에 사망도 깨지고, 믿을 때에 고통도 다 깨집니다.
왜 이 사망과 고통이 무 엇을 타고 나왔느냐 하면 하나님을 의심하는 자기 주관, 의심하는 것이 자 기 주관인데, 의심, 자기 주관, 자기 자율 이놈이 들어서 사망케도 했고, 고 통케도 했고, 생명이 왔지만 맞이하지 못하게도 했고, 이렇게 원수가 이것 인데, 이 멸망에서 생명으로 돌아서는 데에는 주관의 반대인 객관, 또 자율 의 반대 하나님의 뜻인 타율, 하나님을 의심하고 자기를 인정하는 반대로 자기를 의심해서 부인해 버리고 하나님을 인정하는 이것 외에는 살리는 길 이 없습니다. 이리 넘어갔으니까, 이렇게 남쪽으로 넘어갔으니까 남쪽으로 넘어간 것이 일어서는 데에는 북쪽으로 돌이키지 않고는 일어설 수가 있겠 느냐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미혹과 의심과 주관과 자율로 죽은 이것이 살아나는 것은 성령님의 감화와 하나님을 인정하고 그 법칙을 따르는 믿음 외에는 살아 나는 길이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믿 으면' 하신 것은 네가 이제는 네 주관으로 사는 것을 객관으로 살고, 네 자 율로 사는 것을 하나님의 법칙으로 살면 하시는 말씀입니다. 네가 너를 주장해서 네 생각 주장대로 하는, 네 생각이 찍해야 너 고통스럽게 한 것, 네 주장이 너 죽인 것, 네 생각, 네 주장, 네 뜻, 네 견해, 네 지식, 인간들 아 이것은 너희를 죽도록 했고, 또 너희를 고통스럽게 하고 또 너희에게 이 생명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하는 원수 중에 원수인데, 이것을 깨닫지 못하고 여게서 돌아서지 못하니, 스스로 자기가 자기를 망치는 것을 볼 때에 심히 민망스럽고, 또 인생에게 하나님을 향하는 믿음으로만 살게 했는데 뱀이 와 가지고 인간을 훼딱 뒤벼뜨려서, 빽 돌아서도록 해 놓은 이 일이 분하다 말 이오. 통분히 여겼어요. 눈물을 흘리신 것은 이 두 가지 때문에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통분한 눈물 또 민망스러운 눈물, 우리도 오늘 이 눈물이 있어야 합니다. 어디다 갖다 놨느냐 무덤에 갖다 놨습니다. 인간 자기들끼리 자기 오빠를 암만 사랑해 봤자 찍해야 살려내기에 어렵도록, 살려내기에 어 렵도록 무덤 속에 매장시킨 것이요, 또 살아났지만 걸어다니지 못하도록 베 로 뚤뚤 동여서 그저 죽이는 역할, 살아나지 못하게 하는 역할 이것만 했어 요. 예수님이 살리러 오셨지만 저들이 가진 것은 전부 생명을 반대하고 죽는 그 죽음의 역사를 일으키는 것만 가지고 있습니다. 돌을 옮겨놔라 그러면 주님이 죽은 자를 살리셨는데 돌 그까짓 것, 굴려 놓아라 할 필 요가 뭐 있습니까 예를들면 큰 불도저나 포크레인이 와서 그저 뭐 한번 푹 뜨면 차로 거의 한 차씩 이래 떠 낼 수 있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뭐 할 려고 삽이나 호미로 파라는 그런 수고를 시켰겠습니까 돌을 옮겨 놔라. 너희가 쌓았기 때문에 너희가 옮겨 놔라. 너희가 못 하는 거 내가 이제 살려서 일어나게 했으니까, 또 너희가 동였으니까 너희가 풀어라. 풀어 놓으니까 걸어다녔어요.
요것도 우리가 잘 깨달아야 합니다. 그들이 처음에는 자기 주관으로 살았고, 자기 자율로 해석을 했고, 자기 대로의 것으로 살아서, 주님이 찾아오셨지만 주님이 오신 것은 저들에게 먹 혀 들어가지 않고 그저 반갑고 기뻐하고 즐거워했지만 그 사건이 해결되는 것은 주님이 오셨다고 뛰어나온 것도 소용이 없어요. 반가워하는 것도 소 용 없어요. 여게 계셨으면 죽지 않았을 터인데 하는 것도 소용 없어 요. 다만 주님께서 그것을 어떻게 하든지 돌이켜 놔야 일을 하지 돌이켜 놓 지 않으면 일을 할 수가 없기 때문에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하는 이 말씀을 했고 또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했느 냐 이 말씀을 했습니다. 마르다와 마리아에게 주관대로의 사람, 자율대 로의 사람, 주관대로의 자율대로의 그 고통을 당하고 있는 고통 이것을 믿음으로 바꾸어 놓지 않으면 주님이 일을 하지 못해요. 처음에 부활이요 생명이라 하니까 자기 자율대로 살던 자들이 녜, 믿습니다. 주님은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아들로 우리 구주로 오신 분이심을 내가 인정합니다. 또 돌을 옮겨 놔라 죽은 지 나흘 됐습니다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않았느냐 녜, 믿습니다. 돌 을 옮겨놨고, 또 돌 옮기고난 다음에는 풀어라. 푸니까 걸어다녔습니다. 기본구원은 우리에게는 믿을 만한 아무 주관이 없습니다. 영이 죽었고 또 육은 완전히 죽어서 그것의 것이 되어 있으니까 인제 주격인 영을 살렸 고, 영을 살리고난 다음에는 주님께서 그 주격을 통해서만 역사하지 주격 을 통하지 않고 직접 역사하시는 것은 하나님이 하나님의 법을 어기는 것 이기 때문에 못 합니다. 그러기에 성령님이 우리 중생된 영으로 더불어 이 구원 역사를 한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이미 중생됐다 그말이오. 지금 주님이 우리에게 일하지 못하시는 것은 어디 대항을 받아 가지고 일하지 못하느냐 못 하는 것은 우리 주관 때문에 주님은 쫓겨납니다. 우리의 자율 때문에 쫓겨납니다. 우리가 지금 주님을 영접하지 못하는 것, 주님으로 말미암은 모든 구원 얻지 못하는 것, 능력을 받지 못하는 것, 평 강을 얻지 못하는 것, 이것이 순전히 자율과 주관 또 사욕 이 세 가지가 들 어서 주님이 하시는 일을 가로막습니다. 주님도 이 일을 하실 때에 이것을 없애느라고 아주 많이 말씀하시고 이 일에 대해서 통분히 여겼습니다.
요렇게 한 요 사탄에게 대해서 통분히 여 겨서 내가 이 사탄의 일을 기어코 박살을 내고 말겠다 하는 그것이 주님이 선포하신 말씀입니다. 제가 꺼꾸로 되어 가지고 제가 저를 고통스럽게 하는 그것을 심히 민망스럽게 여겨서 눈물 흘리신 것이 이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우리도 내 주관과 자율, 내 사욕, 이것이 나로 말미암아 생 긴 게 아니라 뱀 사탄으로 말미암아, 그때만 아니라 지금도 사탄으로 말미 암아 나에게 이것이 생겨진 것을 우리가 알고 여기에 대해서 통분히 여기는 이것이 있는 것만치 살았습니다. 내게 주관 자율 사욕 이놈이 내가 아 니고 나 아닌 원수라 그말이오. 사탄이 나에게 내 자율대로 나를 해석하도록 하고, 주관대로 나를 주장 하도록 하고, 사욕대로 내 소원과 욕심을 가지도록 하는 이것이 순전히 뱀 으로 말미암아 시작된 그 원죄로 인해서, 오늘도 사탄으로 인해서 나에게 이것이 오는 요것이 우리의 원수인, 주님이 통분히 여기신 그 통분, 우리가 요것에 대한 통분히 여김을 가져야 되고, 주님이 스스로 제가 저를 망치고 제가 저를 고통스럽게 하는 이 일에 대해서 참 민망스러워 견디지 못해서 눈물 흘리신 것과 같이 자기가 자기를 고통스럽게 하는, 자기 속에 자기를 고통스럽게 하는 이 자기 아닌 자기 이것에 대해서, 자기가 자기를 비참하 게 만든 데 대해서 우리는 민망스레 여기는 이것이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주님이 오셔서 요 형식계시에서는 순전히 자기의 주관 자율 사욕 그것 이 망치는 일 외에는 다른 일이 없고, 또 살리시는 일 있는 데는 살리지 못 하도록 만들어 놓은 것 외에는 다른 것이 없다는 가르칩니다. 또 이렇게 이 튼튼히 만들어 놓은 것은 죽게 만들었고 살아나지 못하게 만들어 놓은 이런 것인데 주님이 찾아오셔서 살릴려고 하시니까 또 살리는 역사에게 전 적 반대하는 것뿐입니다. 아주 주님을 환영하고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소식 듣고는 화닥딱 일어나서 갔지만 실은 주님에게 반대라. 껍데기는 환영하지 만 반대하고 있어요. 오늘 우리들이 이런 신앙을 가지고 있어요. 이러니까 주님이 나에게 오신 것은 우리에게 모든 사망을 멸하고 근심 걱정 고통 번민, 이 모든 사망으로 말미암은, 사망에서 뻗어나온 사망의 열 매, 사망의 역사 이것을 완전히 벗겨서 우리를 죽은 요소를 다 살리고, 또 우리를 강하게 만들고, 담대하게 만들고, 평안하게 만들고, 기쁘게 만들고, 사망 역사를 유유하게 기쁘고 즐거움으로 웃음으로 그런 걸 다 이길 수 있 도록 이렇게 하실려고 주님이 오셨는데, 이 모든 은혜 역사에 방해자가 누 구냐 자율이요 주관이요 사욕입니다. 다니엘을 사자구덩이 넣는다는 그런 어려운 문제가 전국적으로 나돈 것 이 그것이 믿음 있는 다니엘을 위해서 그 일이 생겨졌고, 또 다니엘의 믿음 으로 인해서 하나님 영광이 드러남으로 많은 사람이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 도록 하기 위해서 큰 역사로 이렇게 만들어 놨는데, 다니엘은 자기를 부인 하고 하나님을 인정했고, 자율을 부인하고 하나님의 계명 그 법칙을 따르 고, 자기의 인간 욕심을 가지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그 성령님의 소욕 을 가지니까 다니엘은 그때에 기쁘고 즐겁고, 사람 보기에는 담대한 사람으 로 보여졌지만 담대한 게 아니라 그게 사실이라 그말이오. 담대한 게 아니 고 그게 정상입니다. 그게 정상이오. 필연성이오. 다니엘은 위험천만한 사람으로 보여졌지만 그게 튼튼한 일이라 그말이오. 이러니까 그 결과로 좋 은 결과가 나타났지 나쁜 결과가 나타나지를 아니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만이 이러니까, 주님은 우리를 살리려고 찾아오셨는데, 살리려고 찾아오시는 이 주님을 대적하는 것이 누구며 방해하는 것이 누구며, 자기를 계속 고통 스럽게 하고 기쁨으로 행복으로 평강으로 온유로 바꾸게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누구냐 이것을 여기서 보입니다. 마르다와 마리아가 인정함으로, 인정함으로 행동이 생겨졌습니다. 인정 함으로 행동이 생겨졌어요. 인정을 함으로 행동이 생겨졌습니다. 믿음이 행함과 함께 일한다 이거는 벌써 형체가 없는, 형체가 없는 무형계에 들 어간 것이라. 형체가 없는 무형 세계의 신령면에 들어가기 때문에 그거는 껍데기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믿음이 행함과 함께 일한다 행함은 사람들이 볼 수 있는 형체를 가지고 있지만 인정이라 하는 것은 형체가 없는 것, 그것은 인정이 행함과 함께 일하지 인정이 없으면 행함이 일을 못 합니다. 인정으로 말미암아 행함이 일을 한다는 것입니다. 믿음이 행함과 인정이 행함과 함께 일한다. 행함으로 말미암아 믿음 이 온전하게 되어진다. 온전한 믿음은 능치 못할 것이 없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오셔서 일하시는 이 무형의 신령한 역사가 처음이요, 혈육의 역사, 육안으로 볼 수 있는 역사는 그다음입니다. 신령한 눈으로 보는 역사는 처음이요 먼저요, 위에 있고 주격이요, 육안으로 볼 수 있는 역사는 그다음에 소유격이요 그다음에 피동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제일 중요한 것이 뭐이냐 행함도 중요하지만 먼저 인 정하는 이것이 중요합니다. 인정 안 했으면 그들이 돌을 옮겨 놓지 않았습니다. 인정했기 때문에 돌을 옮겨 놨습니다. 또 풀어 놓아서 다니도록 하라 인정했기 때문에 그들이 풀어 놓는 일을 했습니다. 인정 그게 뭐이냐 믿음입니다. 믿음이 행함과 함께 일했다. 인정함 으로 그들이 행동하게 됐다. 인정함으로 행동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따라 했습니다. 인정함으로 돌을 굴려 놓는 행동을 했을 때에 주님은 나사로 야 나오라 당신이 또 일했습니다. 일하고난 다음에 그다음에 주님이 일했으면 다 하지 왜 또 시켰는가 저희들이 해 놓은 것은, 저희들이 저질러 놓은 것은 저희들이 해결해야 된 다 말이오. 걸어다니도록 풀어 놔라 할 때에 풀어 놓으니까, 걸어다니도록 풀어 놓으라 했는데 풀어 놓으니까 걸어다녔다 말이오. 걸어다닌 주님이 하시는 일이라! 믿는 데서 능력이 나오지 제가 알고 버리는데 능력이 안 나옵니다. 천 지는 없어져도 하나도 가감이 없는 지식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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