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사로 까닭에 예수를 믿음이러라 (요12:1-11)
본문
수다한 예수의 복음의 고장 가운데 베다니가 있습니다. 그 이름은 '바 이트+아니' 곧 '괴로움+집'의 합성어입니다.
그렇다면 베다니 란 마을의 이름은 어둡고 괴로움을 뜻하는 이름입니다. 그것은 마치 범죄 한 인류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의 상징같이 느껴집니다. 그럼에도 그 이름과 정반대로 그곳은 예수 복음의 고장이 되어 이 곳을 찾는
2,000년 기독교 순례자들의 마음의 고향이 되어 있습니다. 그 큰 이유는 예수께서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이적의 절정을 나타낸 곳이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는 죽은지 나흘이나 되어 시체에서 썩은 냄새가 나는 시점에 이르러 버린 나사로를 살려내셨습니다. 이 충격적인 소식은 마침내 많은 사람들이 베다니로 모여드는 결정적인 이유가 되었습니다. 거기에 동원된 군중 가운데는 반신반의하는 구경꾼도 있었습니다. 단순 한 호기심에 좇아온 무리들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결과적으로 그곳에 와서 죽었던 나사로가 다시 살아나서 예수와 함께 앉아 있는 현장을 목격 하고 돌아간 많은 유대인들이 예수를 믿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결정적인 이유는 나사로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성경은 나 사로 까닭에 많은 유대인이 가서 예수를 믿음이러라 (요 12:11)고 하였 습니다.
그렇다면 나사로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가 아닌가! 아니 별들의 전쟁을 일으킨 자가 아닌가! 나사로가 누구인가 어떤 자인가 왜 나사로 까닭에 예수 믿는 신자가 일어났는가
I. 그는 주님의 사랑을 받던 자였습니다. 요한복음 11장 5절에서 말하기를 예수께서 본래 마르다와 그 동생과 나사로를사랑하시더니 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에 나타난 사랑은 아가파오 사랑입니다. 진정한 사랑, 참 된 사랑, 희생적인 사랑을 가리킵니다. 혈통적인 사랑(스톨게)이나 우애 (필리아)나 성적인 낭만(에로스)의 사랑이 아닙니다. 예수께서는 나사로를 위하여 죽기까지 하신 희생의 사랑으로 사랑하셨습니다. 말하자면 저들은 대속의 사랑을 받은 자입니다.
그렇다면 그는 선택을 받은 자요, 창세 전 에 그리스도 안에 있던 자가 아니었던가!
Ⅱ. 다시 사는 부활 은총을 체험한 자였습니다. 그는 뜻밖에 병을 앓게 되었습니다. 그때 그의 누이들이 사람을 예수 께 보내어 당신의 사랑하는 자가 병들어 위독하다고 전달하였습니다. 요한복음 11장 3절에 이에 그 누이들이 예수께 사람을 보내어 가로되 주여 보시옵소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 하니 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사랑은 필리아, 곧 우정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주님 은 나사로를 인간적으로도 사랑했고, 영적으로도 사랑했다는 사실입니다. 주님은 마르다와 마리아가 보낸 심부름꾼들에게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로 이를 인하여 영광을 얻게 하려 함이라 고 일러 보내셨습니다(요 11:4). 우리는 예수님의 답변 속에서 인간의 만난 모든 미래적 정황을 다 아시 고 계시는 전지하신 주님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그의 신성입니다.뿐 만 아니라 인생의 미래를 향한 당신의 계획과 목적까지도 갖고 계심을 알 수 있습니다. 나사로가 만난 그 인생의 질병(고난) 문제를 통하여 어떻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인가를 계획하고 있음을 볼 수 있게 됩니다. 그 심부름꾼들이 떠난 후 주님은 이틀이나 그곳에 더 머물러 계셨습니다. 그 어간에 나사로는 그만 죽고 말았습니다. 주님은 이 사실을 자신 의 전지한 성품을 통하여 이미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면서 제자들에게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 우러 가노라 고 하셨습니다. 예수의 이 말씀은 실상 나사로의 육신적 죽 음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었는데도 제자들은 잠들었으면 깨어나겠다고 말 하였습니다(요 11:11-13). 그러자 예수님은 그의 제자들에게 나사로가 죽었느니라 고 밝히 알려 주었습니다(요 11:14). 주님은 나사로의 육신적 죽음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또 인생들로 하여금 믿음을 낳게 할 것이라고 낙관하고 있었습니다(요 11:15). 베다니에 도착하신 주님은 그 형제 마르다와 마리아의 눈물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모인 유대인들이 우는 눈물을 보았습니다(요 11:33). 죽음이 인생을 울려 버리는 아픔의 현장이었습니다. 예수께서도 눈물을 흘 리고 말았습니다(요 11:35). 인생이 만난 죄의 결과가 생명을 절단내 버린 죽음이라는 비극 앞에 주님 자신도 눈물을 흘렸습니다. 말하자면 인생의 범죄가 주님을 울려 버린 것입니다. 여기에서 나타낸 눈물은 다크루오인데 조용히 흘리는 동정의 눈물, 애정의 눈물을 뜻합니다. 그는 예루살렘 멸망을 내다보시고 우셨습니다. 그때의 눈물은 클라이오(눅19:41)인데 이 눈물(우심)은 속에서의 아픔이 흐느낌의 감정으로 나타내는 울음이었습니다. 그리고 최후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눈물은 통 곡(히 5:7)이었습니다. 온 우주의 비극을 통감했던 주님이 소리 높여 우신 통곡이었습니다. 어쨌 든 인류의 죄와 죄의 값인 사망이 예수를 울려 버렸습니다. 그 후에 주님은 나사로 무덤의 현장에 도착하셨습니다. 그리고 나사로가 묻혀 있는 무덤의 돌을 옮겨 놓으라고 하였습니다(요 11:39). 그리고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 기도를 올렸습니다. 그리고 둘러선 무리 들과, 아버지께서 예수를 보내신 사실을 믿게 하기 위하여 당신 기도에 응답을 요구하셨습니다(요11:41-42) 그리고 주님은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고 그를 무덤 속에서 밖 으로 호출하고 말았습니다(요 11:43). 이미 그때 나사로는 죽은지 나흘 이 된 때였습니다(요 11:39). 썩어 냄새가 나는 실정이었습니다. 큰 소리였습니다. 예수께서 발하신 큰 소리였습니다. 사망과 음부의 권세를 호령하는 소리였습니다. 나사로를 지목하고 토(吐)한 큰 소리입니다. 그것은 그 죽음의 자리, 썩 음의 자리, 냄새나는 부패의자리에서의 일어남, 곧 부활을 명령하신 생 명의 호출이었습니다. 그때 바로 그 시간에 죽었던 나사로, 벌써 나흘이 되어 무덤 속에 있던 나사로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걸어나오고 말았습니다. 얼굴을 수건 에 가린 채, 염(殮)을 한 채 걸어나오고 말았습니다. 주님은 그 얼굴을 가린 수건과 발에 묶인 염(殮)을 풀어놓아 다니게 하 라고 명령했습니다(요 11:43-44). 나사로만 지목해서 불렀습니다. 만약에 그렇게 하지 않고 묘지에 잠자 던 송장을 다 일어나라고 명령하였다면, 거기에 묻혔던 모든 시체들이 다 일어나고 말았을 것이 아닌가! 그러나 주님은 나사로만 지목해서 부활을 명했습니다. 그 이유는 마지 막날에 전 인류의 부활(영생과 사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예수께서 행하신 이적의 절정입니다. 그 이적을 통하여 1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2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 임을 믿게 하고 3 인생들로 하여금 부활의 진리를 믿게 하기 위함이었다 고 반복하고 있습니다(요 11:4, 40, 42). 어쨌든 나사로는 부활 은총을 체 험한 사람이었습니다.
Ⅲ. 감사의 잔치를 배설했던 자였습니다. 요한복음 12장 2절에 거기서 예수를 위하여 잔치할 새 마르다는 일을 보고 나사로는 예수와 함께 앉은 자 중에 있더라 고 하였습니다. 예수께서 초청 받은 베다니의 잔칫집은 문둥이 시몬의 집이라고 하였 습니다(마 26:6, 막 14:3). 저들은 모두 예수에게 은총을 입은 자들이었습니다. 저들은 나사로의 부활을 감사하며 예수를 위해 보은의 잔치를 벌였 습니다. 마르다는 음식을 준비하였습니다.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를 예수의 발에 부어서 그 잔칫집의 쾌미를 북돋았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에죽어서 무덤에 장사지낸바 되었던 나사로가 지금 살아서 그를 살려 주신 예수와 함께 그 즐거운 자리에 앉아 있었습니다(요 12:1-3). 참으로 기쁘고, 즐겁고, 만족한 잔칫집이었습니다. 죽은지 나흘이나 되 어버린 나사로를 예수님이 살렸다는 소식은 가히 충격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그 무리들 중에는 예수의 제자들은 물론이고 탐심을 품은 도적 가룟 유다도 있었습니다. 그는 나중에 예수를 잡아 줄 자였습니다(요 12:4). 유대인의 큰 무리들이 다시 살아난 나사 로를 보려고 몰려들었습니다(요 12:9). 호기심에 찬 무리들이었습니다. 대단한 구경꾼들이었습니다. 그들 중에는 1 살아있을 때의 나사로를 이미 알고 있던 자들도 있고, 2 나사로를 몰랐던 자들도 있고, 3 더욱이 나사로 장례식에 참여했던 자들도 있었습니다. 4 또한 예수께서 그 나사로의 무덤의 현장에 나타나서, 나사로에게 부활 을 호출하던 이적의 현장을 친히 목도한 자들도 있었습니다(요 11:4
5). 그 결과 많은 유대인들이 예수를 믿었다고 하였습니다. 요한복음 11 장 45절에 마리아에게 와서 예수의 하신 일을 본 많은 유대인이 저를 믿었다 고 하였습니다. 요한복음 12장 11절에 나사로 까닭에 많은 유 대인이 가서 예수를 믿음이러라 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나사로는 축복 받은 예수 복음의 증인이 아니었던가! 반짝이는 별이 아니었던가! 부활의 영광의 빛을 발하던 별이 아니었던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의 나사로는 누구인가 누구누구 때문에 예수 믿을 자가 많이 일 어나게 할 자가 누구인가 그는 먼저 예수 구원의 사랑을 입은 자입니다. 그는 부활 생명의 소망 을가지고살아가는 자입니다. 그는 언제나 예수를 위하여 잔치(感恩 奉 仕)할 수 있는 자입니다. 그런 사람이 이 세상 베다니 곧 괴로움의 집, 고통의 움막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에게는 예수 구원의 사랑과 내세를 쳐다보는 부활의 소망으로 주님을 모시고 감사 잔치를 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바로 그 생활 이 축복 받은 삶입니다. 예수로 말미암아 살아 있는 자! 불신앙과 절망의 무덤에서 주님의 부 름을 받아 그 영이 부활되어 주와 함께 삶의 현장에 존재하고 있는 자! 그 사람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나도 저 사람처럼 예수를 믿어야 하겠다고 하는 일들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것은 영육의 기적입니다. 생명의 표적입니다. 패역한 자들에 대한 표징입니다. 그것은 역사의 현장에서 실제적인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한국 초기 교회의 유명한 전도자 최봉석 목사님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그는 그야말로 전도의 왕이었습니다. 그의 전도 역사(役 事)에 나타난 실화들은 실로 무수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최권능 목사라는 별명으로 불렀습니다. 그는 예수께 은혜를 입은 후, 그가 갈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다 다니면서 전도하였습니다. 사람을 가리지 않고, 때를 가리지 않고 전도하 였습니다. 그는 성경을 파는 매서인(賣書人)의 일을 겸하였습니다. 그의 전도여정이 계속 되는 중, 어찌하면 말을 적게 하면서 복음의 핵심을 전 하고, 사탄을 굴복시키는 방법이 없을까 하고 늘 기도하며 생각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예수 천당!'이라는 전도의 메시지를 주었습니다. 시 간도 절약되고 복음의 본질도 전달되는 간단명료한 메시지였습니다. 그 결 과 더 많은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게 된 것입니다. 어느 날 그는 한국 최북방인 압록강 주변의 창성, 자성, 벽동, 강계, 의주 등지를 두루 다니며 성경책도 팔고 전도도 하게 되었습니다. 하루는 전도하다가 날이 저물었는데 그는 다른 지역에서 하던 방법대로 한 주막 집을 찾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룻밤 묵어갈 수 있기를 청했습니다. 그 주인은 방 반대편에 있는 문을 가리키면서 그곳에서 묵고 가라고 하였습니다.
최 목사님이 그곳에 들어가 보니 그곳은 술독을 두는 방이었습니다. 최 목사님은 그 집에서 신세를 지면서 인근 주민들에게 책도 팔고 전도지도 나누어주면서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최 목사님이 그 술독이 가득한 방에서 하룻밤을 자고 전처럼 새벽기도를 하고 있던 시간이었습니다. 이른 새벽에 그 집 마당에 어떤 부인이 갑자기 나타나서 "어제 저녁 책 팔던 책장사 영감 어디 갔어 잡아죽일 테다."라 고 소리를 쳤습니다. 놀란 집주인이 나가자 그 젊은 부인이 말하기를, 어젯밤에 그 책 팔던 영감쟁이가 독물이 묻은 쪽지를 자기 아버지에게 주고 갔는데 자기 아버 지가 그 종이 쪽지로 담배를 말아 피우다가 즉사했다고 하였습니다. 그것은 그 종이에 독물이 묻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그 주막집 주인도 그 말에 동조하게 되고, 고요한 새벽 에 온 이웃사람들이 모두 그 집에 모여들게 되었습니다. 그 집주인과 모 여든 이웃 사람들은 갑자기 최 목사님을 살인자로 몰아붙였습니다. 급기 야 그 살인자가 도망쳤다고 누군가 소리를 쳤습니다. 방에서 기도하던 최 목사님은 이런 상황과 소리를 듣고 방문을 열면서 "나 여기 있소. 왜 이렇게 소란스럽소 아니 내가 살인자라고요 당신 아 버지를 내가 죽였으면 내가 가서 예수 이름으로 기도하여 다시 살려주면 되지 않겠소"라고 태연하게 말하였습니다. 최 목사님은 분명히 마음에 그것이 복음의 문을 열기 위한 하나님의 특 별한 섭리인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이 태연스러운 최 목사의 말을 듣고 동리 사람들은 갑자기 조용해지면서 최 목사님을 따라 노인이 죽어 있는 집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역시 그 부인(딸)의 말대로 노인은 싸늘한 시체가 되어 있었는데, 그의 온 몸이 꼬여 있었습니다. 이때 최 목사님은 그 가족들과 모여 있던 동리 사람들에게 "내가 예수 이름으로 기도하면 살아나요."라는 말을 다시 하고 하나님께 큰 소리로 간 절히 기도하였습니다. 바로 그 시간 사탄이 물러가는 장면을 최 목사님은 보게 되었습니다. 죽었던 노인은 얼굴에 화색이 돌면서 살아나고야 말았습니다. 시체로 누워 있던 노인은 기지개를 하면서 입으로 거품을 토하더니 이윽고 회생하고야 말았습니다. 모였던 동리 사람들은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그 사실을 목격한 사람들의 최 목사님을 대하는 태도가 돌변하였습니다. 최 목사님은 그곳 에 3개월간 머물면서 "예수 천당!"을 선포하였습니다. 나중에 그 지역은 기독교 문화의 중심 지역이 되었습니다. 개화의 문이 활짝 열린 축복선진 의 지역이 되고 말았습니다. 갑자기 죽었던 노인이 예수 이름으로 기도한 최봉석 목사의 기도로 살아난 결과, 그 사람 자체가 예수 기적의 산 증 인이 된 것입니다. 그 사람 까닭에 그 지역에 예수 믿는 사람이 많이 생 기게 된 것입니다. 나사로 까닭에 믿는 자가 많더라!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 예수의 사랑을 받은 사람 때문에 예수 믿는 사람이 많아집니다. 예수로 말미암아 축복 체험을 가진 사람 까닭에 예수 믿는 사람이 많아집니다. 예수께 감사하여 보은의 잔치, 곧 감격적 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 까닭에 예수 믿는 사람이 많이 일어납니다. 그는 정말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하는 반짝이는 별이 아닌가!
그렇다면 베다니 란 마을의 이름은 어둡고 괴로움을 뜻하는 이름입니다. 그것은 마치 범죄 한 인류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의 상징같이 느껴집니다. 그럼에도 그 이름과 정반대로 그곳은 예수 복음의 고장이 되어 이 곳을 찾는
2,000년 기독교 순례자들의 마음의 고향이 되어 있습니다. 그 큰 이유는 예수께서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이적의 절정을 나타낸 곳이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는 죽은지 나흘이나 되어 시체에서 썩은 냄새가 나는 시점에 이르러 버린 나사로를 살려내셨습니다. 이 충격적인 소식은 마침내 많은 사람들이 베다니로 모여드는 결정적인 이유가 되었습니다. 거기에 동원된 군중 가운데는 반신반의하는 구경꾼도 있었습니다. 단순 한 호기심에 좇아온 무리들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결과적으로 그곳에 와서 죽었던 나사로가 다시 살아나서 예수와 함께 앉아 있는 현장을 목격 하고 돌아간 많은 유대인들이 예수를 믿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결정적인 이유는 나사로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성경은 나 사로 까닭에 많은 유대인이 가서 예수를 믿음이러라 (요 12:11)고 하였 습니다.
그렇다면 나사로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가 아닌가! 아니 별들의 전쟁을 일으킨 자가 아닌가! 나사로가 누구인가 어떤 자인가 왜 나사로 까닭에 예수 믿는 신자가 일어났는가
I. 그는 주님의 사랑을 받던 자였습니다. 요한복음 11장 5절에서 말하기를 예수께서 본래 마르다와 그 동생과 나사로를사랑하시더니 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에 나타난 사랑은 아가파오 사랑입니다. 진정한 사랑, 참 된 사랑, 희생적인 사랑을 가리킵니다. 혈통적인 사랑(스톨게)이나 우애 (필리아)나 성적인 낭만(에로스)의 사랑이 아닙니다. 예수께서는 나사로를 위하여 죽기까지 하신 희생의 사랑으로 사랑하셨습니다. 말하자면 저들은 대속의 사랑을 받은 자입니다.
그렇다면 그는 선택을 받은 자요, 창세 전 에 그리스도 안에 있던 자가 아니었던가!
Ⅱ. 다시 사는 부활 은총을 체험한 자였습니다. 그는 뜻밖에 병을 앓게 되었습니다. 그때 그의 누이들이 사람을 예수 께 보내어 당신의 사랑하는 자가 병들어 위독하다고 전달하였습니다. 요한복음 11장 3절에 이에 그 누이들이 예수께 사람을 보내어 가로되 주여 보시옵소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 하니 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사랑은 필리아, 곧 우정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주님 은 나사로를 인간적으로도 사랑했고, 영적으로도 사랑했다는 사실입니다. 주님은 마르다와 마리아가 보낸 심부름꾼들에게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로 이를 인하여 영광을 얻게 하려 함이라 고 일러 보내셨습니다(요 11:4). 우리는 예수님의 답변 속에서 인간의 만난 모든 미래적 정황을 다 아시 고 계시는 전지하신 주님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그의 신성입니다.뿐 만 아니라 인생의 미래를 향한 당신의 계획과 목적까지도 갖고 계심을 알 수 있습니다. 나사로가 만난 그 인생의 질병(고난) 문제를 통하여 어떻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인가를 계획하고 있음을 볼 수 있게 됩니다. 그 심부름꾼들이 떠난 후 주님은 이틀이나 그곳에 더 머물러 계셨습니다. 그 어간에 나사로는 그만 죽고 말았습니다. 주님은 이 사실을 자신 의 전지한 성품을 통하여 이미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면서 제자들에게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 우러 가노라 고 하셨습니다. 예수의 이 말씀은 실상 나사로의 육신적 죽 음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었는데도 제자들은 잠들었으면 깨어나겠다고 말 하였습니다(요 11:11-13). 그러자 예수님은 그의 제자들에게 나사로가 죽었느니라 고 밝히 알려 주었습니다(요 11:14). 주님은 나사로의 육신적 죽음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또 인생들로 하여금 믿음을 낳게 할 것이라고 낙관하고 있었습니다(요 11:15). 베다니에 도착하신 주님은 그 형제 마르다와 마리아의 눈물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모인 유대인들이 우는 눈물을 보았습니다(요 11:33). 죽음이 인생을 울려 버리는 아픔의 현장이었습니다. 예수께서도 눈물을 흘 리고 말았습니다(요 11:35). 인생이 만난 죄의 결과가 생명을 절단내 버린 죽음이라는 비극 앞에 주님 자신도 눈물을 흘렸습니다. 말하자면 인생의 범죄가 주님을 울려 버린 것입니다. 여기에서 나타낸 눈물은 다크루오인데 조용히 흘리는 동정의 눈물, 애정의 눈물을 뜻합니다. 그는 예루살렘 멸망을 내다보시고 우셨습니다. 그때의 눈물은 클라이오(눅19:41)인데 이 눈물(우심)은 속에서의 아픔이 흐느낌의 감정으로 나타내는 울음이었습니다. 그리고 최후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눈물은 통 곡(히 5:7)이었습니다. 온 우주의 비극을 통감했던 주님이 소리 높여 우신 통곡이었습니다. 어쨌 든 인류의 죄와 죄의 값인 사망이 예수를 울려 버렸습니다. 그 후에 주님은 나사로 무덤의 현장에 도착하셨습니다. 그리고 나사로가 묻혀 있는 무덤의 돌을 옮겨 놓으라고 하였습니다(요 11:39). 그리고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 기도를 올렸습니다. 그리고 둘러선 무리 들과, 아버지께서 예수를 보내신 사실을 믿게 하기 위하여 당신 기도에 응답을 요구하셨습니다(요11:41-42) 그리고 주님은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고 그를 무덤 속에서 밖 으로 호출하고 말았습니다(요 11:43). 이미 그때 나사로는 죽은지 나흘 이 된 때였습니다(요 11:39). 썩어 냄새가 나는 실정이었습니다. 큰 소리였습니다. 예수께서 발하신 큰 소리였습니다. 사망과 음부의 권세를 호령하는 소리였습니다. 나사로를 지목하고 토(吐)한 큰 소리입니다. 그것은 그 죽음의 자리, 썩 음의 자리, 냄새나는 부패의자리에서의 일어남, 곧 부활을 명령하신 생 명의 호출이었습니다. 그때 바로 그 시간에 죽었던 나사로, 벌써 나흘이 되어 무덤 속에 있던 나사로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걸어나오고 말았습니다. 얼굴을 수건 에 가린 채, 염(殮)을 한 채 걸어나오고 말았습니다. 주님은 그 얼굴을 가린 수건과 발에 묶인 염(殮)을 풀어놓아 다니게 하 라고 명령했습니다(요 11:43-44). 나사로만 지목해서 불렀습니다. 만약에 그렇게 하지 않고 묘지에 잠자 던 송장을 다 일어나라고 명령하였다면, 거기에 묻혔던 모든 시체들이 다 일어나고 말았을 것이 아닌가! 그러나 주님은 나사로만 지목해서 부활을 명했습니다. 그 이유는 마지 막날에 전 인류의 부활(영생과 사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예수께서 행하신 이적의 절정입니다. 그 이적을 통하여 1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2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 임을 믿게 하고 3 인생들로 하여금 부활의 진리를 믿게 하기 위함이었다 고 반복하고 있습니다(요 11:4, 40, 42). 어쨌든 나사로는 부활 은총을 체 험한 사람이었습니다.
Ⅲ. 감사의 잔치를 배설했던 자였습니다. 요한복음 12장 2절에 거기서 예수를 위하여 잔치할 새 마르다는 일을 보고 나사로는 예수와 함께 앉은 자 중에 있더라 고 하였습니다. 예수께서 초청 받은 베다니의 잔칫집은 문둥이 시몬의 집이라고 하였 습니다(마 26:6, 막 14:3). 저들은 모두 예수에게 은총을 입은 자들이었습니다. 저들은 나사로의 부활을 감사하며 예수를 위해 보은의 잔치를 벌였 습니다. 마르다는 음식을 준비하였습니다.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를 예수의 발에 부어서 그 잔칫집의 쾌미를 북돋았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에죽어서 무덤에 장사지낸바 되었던 나사로가 지금 살아서 그를 살려 주신 예수와 함께 그 즐거운 자리에 앉아 있었습니다(요 12:1-3). 참으로 기쁘고, 즐겁고, 만족한 잔칫집이었습니다. 죽은지 나흘이나 되 어버린 나사로를 예수님이 살렸다는 소식은 가히 충격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그 무리들 중에는 예수의 제자들은 물론이고 탐심을 품은 도적 가룟 유다도 있었습니다. 그는 나중에 예수를 잡아 줄 자였습니다(요 12:4). 유대인의 큰 무리들이 다시 살아난 나사 로를 보려고 몰려들었습니다(요 12:9). 호기심에 찬 무리들이었습니다. 대단한 구경꾼들이었습니다. 그들 중에는 1 살아있을 때의 나사로를 이미 알고 있던 자들도 있고, 2 나사로를 몰랐던 자들도 있고, 3 더욱이 나사로 장례식에 참여했던 자들도 있었습니다. 4 또한 예수께서 그 나사로의 무덤의 현장에 나타나서, 나사로에게 부활 을 호출하던 이적의 현장을 친히 목도한 자들도 있었습니다(요 11:4
5). 그 결과 많은 유대인들이 예수를 믿었다고 하였습니다. 요한복음 11 장 45절에 마리아에게 와서 예수의 하신 일을 본 많은 유대인이 저를 믿었다 고 하였습니다. 요한복음 12장 11절에 나사로 까닭에 많은 유 대인이 가서 예수를 믿음이러라 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나사로는 축복 받은 예수 복음의 증인이 아니었던가! 반짝이는 별이 아니었던가! 부활의 영광의 빛을 발하던 별이 아니었던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의 나사로는 누구인가 누구누구 때문에 예수 믿을 자가 많이 일 어나게 할 자가 누구인가 그는 먼저 예수 구원의 사랑을 입은 자입니다. 그는 부활 생명의 소망 을가지고살아가는 자입니다. 그는 언제나 예수를 위하여 잔치(感恩 奉 仕)할 수 있는 자입니다. 그런 사람이 이 세상 베다니 곧 괴로움의 집, 고통의 움막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에게는 예수 구원의 사랑과 내세를 쳐다보는 부활의 소망으로 주님을 모시고 감사 잔치를 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바로 그 생활 이 축복 받은 삶입니다. 예수로 말미암아 살아 있는 자! 불신앙과 절망의 무덤에서 주님의 부 름을 받아 그 영이 부활되어 주와 함께 삶의 현장에 존재하고 있는 자! 그 사람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나도 저 사람처럼 예수를 믿어야 하겠다고 하는 일들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것은 영육의 기적입니다. 생명의 표적입니다. 패역한 자들에 대한 표징입니다. 그것은 역사의 현장에서 실제적인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한국 초기 교회의 유명한 전도자 최봉석 목사님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그는 그야말로 전도의 왕이었습니다. 그의 전도 역사(役 事)에 나타난 실화들은 실로 무수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최권능 목사라는 별명으로 불렀습니다. 그는 예수께 은혜를 입은 후, 그가 갈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다 다니면서 전도하였습니다. 사람을 가리지 않고, 때를 가리지 않고 전도하 였습니다. 그는 성경을 파는 매서인(賣書人)의 일을 겸하였습니다. 그의 전도여정이 계속 되는 중, 어찌하면 말을 적게 하면서 복음의 핵심을 전 하고, 사탄을 굴복시키는 방법이 없을까 하고 늘 기도하며 생각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예수 천당!'이라는 전도의 메시지를 주었습니다. 시 간도 절약되고 복음의 본질도 전달되는 간단명료한 메시지였습니다. 그 결 과 더 많은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게 된 것입니다. 어느 날 그는 한국 최북방인 압록강 주변의 창성, 자성, 벽동, 강계, 의주 등지를 두루 다니며 성경책도 팔고 전도도 하게 되었습니다. 하루는 전도하다가 날이 저물었는데 그는 다른 지역에서 하던 방법대로 한 주막 집을 찾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룻밤 묵어갈 수 있기를 청했습니다. 그 주인은 방 반대편에 있는 문을 가리키면서 그곳에서 묵고 가라고 하였습니다.
최 목사님이 그곳에 들어가 보니 그곳은 술독을 두는 방이었습니다. 최 목사님은 그 집에서 신세를 지면서 인근 주민들에게 책도 팔고 전도지도 나누어주면서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최 목사님이 그 술독이 가득한 방에서 하룻밤을 자고 전처럼 새벽기도를 하고 있던 시간이었습니다. 이른 새벽에 그 집 마당에 어떤 부인이 갑자기 나타나서 "어제 저녁 책 팔던 책장사 영감 어디 갔어 잡아죽일 테다."라 고 소리를 쳤습니다. 놀란 집주인이 나가자 그 젊은 부인이 말하기를, 어젯밤에 그 책 팔던 영감쟁이가 독물이 묻은 쪽지를 자기 아버지에게 주고 갔는데 자기 아버 지가 그 종이 쪽지로 담배를 말아 피우다가 즉사했다고 하였습니다. 그것은 그 종이에 독물이 묻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그 주막집 주인도 그 말에 동조하게 되고, 고요한 새벽 에 온 이웃사람들이 모두 그 집에 모여들게 되었습니다. 그 집주인과 모 여든 이웃 사람들은 갑자기 최 목사님을 살인자로 몰아붙였습니다. 급기 야 그 살인자가 도망쳤다고 누군가 소리를 쳤습니다. 방에서 기도하던 최 목사님은 이런 상황과 소리를 듣고 방문을 열면서 "나 여기 있소. 왜 이렇게 소란스럽소 아니 내가 살인자라고요 당신 아 버지를 내가 죽였으면 내가 가서 예수 이름으로 기도하여 다시 살려주면 되지 않겠소"라고 태연하게 말하였습니다. 최 목사님은 분명히 마음에 그것이 복음의 문을 열기 위한 하나님의 특 별한 섭리인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이 태연스러운 최 목사의 말을 듣고 동리 사람들은 갑자기 조용해지면서 최 목사님을 따라 노인이 죽어 있는 집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역시 그 부인(딸)의 말대로 노인은 싸늘한 시체가 되어 있었는데, 그의 온 몸이 꼬여 있었습니다. 이때 최 목사님은 그 가족들과 모여 있던 동리 사람들에게 "내가 예수 이름으로 기도하면 살아나요."라는 말을 다시 하고 하나님께 큰 소리로 간 절히 기도하였습니다. 바로 그 시간 사탄이 물러가는 장면을 최 목사님은 보게 되었습니다. 죽었던 노인은 얼굴에 화색이 돌면서 살아나고야 말았습니다. 시체로 누워 있던 노인은 기지개를 하면서 입으로 거품을 토하더니 이윽고 회생하고야 말았습니다. 모였던 동리 사람들은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그 사실을 목격한 사람들의 최 목사님을 대하는 태도가 돌변하였습니다. 최 목사님은 그곳 에 3개월간 머물면서 "예수 천당!"을 선포하였습니다. 나중에 그 지역은 기독교 문화의 중심 지역이 되었습니다. 개화의 문이 활짝 열린 축복선진 의 지역이 되고 말았습니다. 갑자기 죽었던 노인이 예수 이름으로 기도한 최봉석 목사의 기도로 살아난 결과, 그 사람 자체가 예수 기적의 산 증 인이 된 것입니다. 그 사람 까닭에 그 지역에 예수 믿는 사람이 많이 생 기게 된 것입니다. 나사로 까닭에 믿는 자가 많더라!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 예수의 사랑을 받은 사람 때문에 예수 믿는 사람이 많아집니다. 예수로 말미암아 축복 체험을 가진 사람 까닭에 예수 믿는 사람이 많아집니다. 예수께 감사하여 보은의 잔치, 곧 감격적 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 까닭에 예수 믿는 사람이 많이 일어납니다. 그는 정말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하는 반짝이는 별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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