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해 울지말고 (눅23:26-31)
본문
어떤 목사님에게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자신은 설교를 원색적으로 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원색적인 설교는 무슨 설교입니까 라고 물으니 풀이한즉 소위 사람의 근본적인 마음을 고치는 설교를 말한다고 합니다. 좋은 말입니다. 원색적인 설 교…! 사람들은 원색적인 설교를 듣기 싫어합니다. 포장되고, 약간의 파스텔 칼라로 부드럽고 따사한 설교를 듣고자 합니다. 세례요한이 세상에 와서 그가 '독사의 자 식들아!'라고 외쳤을 때에 원색적인 그의 설교에 진절머리를 친 헤롯은 그의 목을 잘라 은쟁반위에 얹고 말았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원색적인 설교를 듣기 싫어하기는 마찬가지이지 않나 싶습니다. 오늘 저는 좀 심각한 질문을 여러분께 드리려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설교의 약효는 쓴맛이요, 달콤한 것이 아닙니다. 구약의 예언시대에 궁중예언자 들이 왕에게 아부하고 잘된다는 예언만 해주고, 매일 복이나 비는 무당과 같은 존재 였지만 하나님께서 들어 쓰신 종들은 한결같이 가슴을 찢고, 심령을 불사르며, 죽었 던 양심을 일깨우는 새벽닭과 같은 처절한 울부짖음이었음을 상기하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설교도 복음서를 통해 살펴보면 예수님처럼 원색적인 설교를 하 신 분도 없는듯 싶습니다. 부자에게는 가차없이 네 재산을 다 팔라고 호통을 치고, 위선적이고 교만한 바리새인에게는 '회칠한 무덤' 이라는 격한 단어를 동원해서 비 난했습니다. 때로는 채찍을 들어 몸으로 자신의 설교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설 교야말로 원색적인 설교가 아니었을까요 그분의 설교를 듣는 자마다 찔림이 있었 고, 그 찔림에 순종하고 복종하여 하나님 앞에서 결단하고 나아오는 자마다 그들은 구원을 선물로 받았던 것입니다. 때로는 산에서, 때로는 바다에서, 때로는 성전에서, 길가에서 무덤 앞에서 행하 신 설교는 당시 살던 수천 수만의 이스라엘 민중들에게 이상한 힘으로 다가왔을 것 입니다. 그래서 바리새인들이 말하기를 '그가 말하는 것은 권위가 있다'고 평했던 것입니다. 어찌나 그의 말씀에 권위가 있던지 당신의 그 권위가 어디서 부터 온 것 이냐고 바리새인들이 궁금하게 물었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여러분, 이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가장 크고 가장 위대한 설교는 입에서 나온 말이 아니 라 바로 십자가에 자신을 드려 제물로 삼아 피와 물을 뿌리면서 보여주신 당신의 사랑입니다.
이 십자가의 사랑이야말로 그의 죽음을 먼 발치에서 지켜 본 그의 제자 들에게 천천의 단어보다도, 만만의 설교보다도 더 깊은 감동과 결단을 주었기에 그 들은 예수님의 죽음을 부끄럽게 여기지 아니하고 온 천하에 그의 죽음과 부활을 증 거했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그의 가장 위대한 <죽음의 설교>를 시작하시기 전에 마지막 으로 군중들 사이를 지나시면서 설교하신 말씀입니다. 저는 오늘 이 예수 그리스도 의 설교야말로 원색적인 설교가 아닐까 생각하면서 여러분에게도 이 설교가 깊은 은 혜가 되기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드리는 것입니다. 오늘 이 예수를 따른 사람들, 특히 예수께서 말씀하시고자 하신 이 여인들은 누 구입니까 우리가 흔히 생각하듯이 예수님을 사랑해서, 주님께서 고난 받으심을 안타까워 해서 따라오는 여인으로 알지만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에서 사형당하는 죄수를 군중들이 구경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고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아편 을 파는 일까지 여인들이 했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부르신 이 '예루살렘의 딸'이 란 말은 육에 속한 여인들을 두고 한 말입니다. 예수께서는 죽으시기 전에 예루살 렘을 바라보시면서 통곡을 하셨습니다. 마태 23:37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 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같 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 하였도다 38 보라 너희집이 황폐하여 버린바 되리라 39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할 때까지 나를 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숱한 선지자를 잡아 죽이고, 양심있는 자를 옥에 가두고, 바른 말하는 이들에게 돌을 던진 악한 성 이스라엘아! 내가 불쌍하다고 울지 말아라! 왜 자신을 위해 울어준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울지 말라고 하시면서 위로는 못하실망정 저주에 가까운 말을 하셨을까요 우리도 예수님을 위해 울 때가 있습니다. 교회를 위해 울 때가 있습니다. 사회를 위해 울 때도 있습니다. 오늘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나라와 민족을 위해 웁니까 이웃을 위해 우는 자가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그러나 진정으로 그 울음들이 그리스도를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에 문제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를 위해 울지 말라고 합니다. 예수를 위해 우는 것 같으나 실상은 다른 것에 목적이 있는 울음을 울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위해 먼저 울어야 합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오늘 본문의 말씀에 너 자신을 위해 울라고 하십니다. 저는 오늘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참으로 놀라운 말씀의 경험을 했습니다. 저는 이제까 지 새순교회라는 이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서, 은행동 이 별나라를 위해서 애써 왔다 고 자부해왔습니다. 석유통을 들고 은행동 산골짜기를 오르내릴 때도, 찬바람이 숭숭 들어오는 곳에 서 석유난로 하나로 지샐 때도, 지하실 바닥에서 물을 퍼내면서. 저는 저 자신에 게 말하기를 '너는 그리스도를 위해 울고 있는 것이다'라고 늘 느꼈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준비하는 중에 저에게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있었습니다. 나를 위해 울지말고, 나를 위해 애쓰지 말고, 너를 위해 울고, 너를 위해 애써 라. 전 깜짝 놀랐습니다. 이 말씀에 비취어 보면서 저 자신을 돌아보고 참으로 놀랐 습니다. "아! 이것이구나. 그리스도께서는 나를 위해 울지말고 너와 너희의 자녀를 위해 울라고 하시는구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이시간에 제가 체험하과 경험한 말씀의 체험을 함께 나누시기를 바랍니다. 그들이 왜 울었습니까 예수께서 고난 당하심에 안타까워서. 그의 죽으심이 마음이 아파 울기 이전에 우린 먼저 나 자신을 위해 웁시다. 예수 께서 십자가를 지고 죽으러 가는 것을 슬퍼하기 전에 나 자신이 어떤 길로 걸어가고 있는지를 돌아 보자는 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의 죄 때문에 죽으심을 안 타까워 하기 이전에 내 안에 독버섯처럼 존재하고 있는 죄의 뿌리가 뽑혀져 있는지 를 돌아 보시기 바랍니다. 나 스스로를 깨닫지 못하고 남을 위해 우는 사람이 너무 나도 많습니다. 나 앞가림도 못하면서 남을 말하지 말기 바랍니다. 나를 위해 먼저 기도합시다.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의 영혼을 위해 얼마나 기도하고 계십니까 여러분 자신의 믿음의 성장을 위해 얼마나 기도하고 있습니까 교회에서 사고치는 사람은 항상 남을 위해 울어주는 사람입니다. 나 스스로가 부 족하고 나 자신의 믿음의 발전을 위해 애쓰는 자는 문제가 없습니다. 자신의 믿음도 추스리지 못하면서 이것 저것 간섭하다가 꼭 문제를 일으킵니다. 우리는 어느새 신앙에 대해서, 교회에 대해서, 믿음에 대해서, 기도에 대해서 너 무 전문가가 되었습니다. 척하면 척이라고 무슨 말을 하든지 그 설교가 자신이 지금 결단하고 순종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는 사실을 회피합니다. 교회가 금전만능의 암몬신 앞에 무릎을 꿇는 것을 슬퍼하지만 나 자신은 얼마나 물질에 대해서 초연하고 담담했는가 이 나라 정치인들이 부정과 부패로 나라의 장래를 망치고, 권력 싸움의 아수라장을 흥분하여 욕을 해 대지만 나 자신은 얼마나 내 생활 속에서 정의롭게 살려고 애써 왔는가 세상이 점점 향락과 섹스산업에 물들어 간다고, 우리의 딸들이 인신매매로 잡혀가고, 미군에게 몸을 팔던 창녀가 미군에게 맞아 죽었다고 흥분하지만, 나 자신은 얼마나 경건한 생활로 하나님 앞 에서 흠도 티도 부끄러움도 없이 살았는가 우리 너무 거짓말하며 살지 맙시다. 거짓 울음으로 세상의 불쌍하고 죽어간다는 사람들을 위해, 사탄의 손아귀에 있는 사람들이라고 불쌍히 여겨 울기 전에 나 자신 을 돌아보며 솔직하게 울어 를 바라고 계십니다. 베드로가 새벽닭 울때에 터져나오는 울음있었습니다.
이사야가 하나님을 뵙고 '오호라, 화로다. 내가 죽게 되었구나. 나는 입술이 부 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사람들 속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구 나.'라고 울 때에 하나님의 사람으로 보내심을 받게 되었습니다. 29 보라 날이 이리라 30 그 때에 사람이 산들을 대하여 우리 위에 무너지라 하며 작은 산들을 대하여 우리를 덮으라 하리라 그날에는 상상치 못한 뒤바뀐 상황이 일어납니다. 성경의 전통은 아이를 해산하는 것이 하나님께 큰 복입니다. 사랑하는 자녀에게 젖을 주는 여인이야말로 복 받은 여인입니다. 그러나 그 사람들은 곧 고통에 휩싸여 산이여 나에게 무너져 내려라, 우리를 덮으라. 차라리 죽는것이 낫다고 외쳐댈 것입니다. 31 푸른 나무에도 이같이 하거든 마른 나무에는 어떻게 되리요 하시니라 신앙생활하고, 자신의 죄악을 깊이 슬퍼하며 눈물을 뿌리는 신앙인도 주님의 심 판날을 견디기 힘들텐데. 하물며 슬픔이 없이 감정이 메마른, 각박하여 아무 감동 도 없이 메마른 영혼을 가진 자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께서 눅 7:31-32절 말씀에 비유로 자신의 안타까움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세대의 사람들을 무엇으로 비유할꼬 무엇과 같은고 비유컨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서로 불러 가로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 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애곡을 하여도 너희가 울 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 가증된 신앙으로는 결단코 하나님 앞에 가까이 갈 수 없습니다. 우린 너무나 -을 위한 신앙이란 도식에 길들여져 왔습니다. 신앙은 신앙 그 자체로 이미 할 일 을 다합니다. 위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비유의 말씀은 우리의 어리석음을 안타까움으로 말씀하고 계십니다. 울어야 할 때 울지 않고, 웃어야 할 때 웃지 않는 무감각해진 우리의 신앙을 꾸짖고 계신 것입니다. 구원의 피리를 불어도 춤추지 않고, 감사치도 않는 신앙인이 있습니다. 세상에 지금도 구석구석에서 예수께서 다시 십자가를 지 고 죽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슬퍼해야 할텐데 슬퍼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가정을 위해 , 자녀를 위해, 남편을 위해, 아내를 위 해 우십시오. 친구를 위해, 형제를 위해 우시기 바랍니다. 그전에. 그전에. 바로 여러분 자신을 위해, 여러분을 위해 우십시오. 여러분의 영혼을 걱정하며 우십시오. 진정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나의 영혼을 위해 먼저 울 수 있는 겸손함과 자기 성 사역으로 맡겨주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설교의 약효는 쓴맛이요, 달콤한 것이 아닙니다. 구약의 예언시대에 궁중예언자 들이 왕에게 아부하고 잘된다는 예언만 해주고, 매일 복이나 비는 무당과 같은 존재 였지만 하나님께서 들어 쓰신 종들은 한결같이 가슴을 찢고, 심령을 불사르며, 죽었 던 양심을 일깨우는 새벽닭과 같은 처절한 울부짖음이었음을 상기하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설교도 복음서를 통해 살펴보면 예수님처럼 원색적인 설교를 하 신 분도 없는듯 싶습니다. 부자에게는 가차없이 네 재산을 다 팔라고 호통을 치고, 위선적이고 교만한 바리새인에게는 '회칠한 무덤' 이라는 격한 단어를 동원해서 비 난했습니다. 때로는 채찍을 들어 몸으로 자신의 설교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설 교야말로 원색적인 설교가 아니었을까요 그분의 설교를 듣는 자마다 찔림이 있었 고, 그 찔림에 순종하고 복종하여 하나님 앞에서 결단하고 나아오는 자마다 그들은 구원을 선물로 받았던 것입니다. 때로는 산에서, 때로는 바다에서, 때로는 성전에서, 길가에서 무덤 앞에서 행하 신 설교는 당시 살던 수천 수만의 이스라엘 민중들에게 이상한 힘으로 다가왔을 것 입니다. 그래서 바리새인들이 말하기를 '그가 말하는 것은 권위가 있다'고 평했던 것입니다. 어찌나 그의 말씀에 권위가 있던지 당신의 그 권위가 어디서 부터 온 것 이냐고 바리새인들이 궁금하게 물었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여러분, 이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가장 크고 가장 위대한 설교는 입에서 나온 말이 아니 라 바로 십자가에 자신을 드려 제물로 삼아 피와 물을 뿌리면서 보여주신 당신의 사랑입니다.
이 십자가의 사랑이야말로 그의 죽음을 먼 발치에서 지켜 본 그의 제자 들에게 천천의 단어보다도, 만만의 설교보다도 더 깊은 감동과 결단을 주었기에 그 들은 예수님의 죽음을 부끄럽게 여기지 아니하고 온 천하에 그의 죽음과 부활을 증 거했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그의 가장 위대한 <죽음의 설교>를 시작하시기 전에 마지막 으로 군중들 사이를 지나시면서 설교하신 말씀입니다. 저는 오늘 이 예수 그리스도 의 설교야말로 원색적인 설교가 아닐까 생각하면서 여러분에게도 이 설교가 깊은 은 혜가 되기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드리는 것입니다. 오늘 이 예수를 따른 사람들, 특히 예수께서 말씀하시고자 하신 이 여인들은 누 구입니까 우리가 흔히 생각하듯이 예수님을 사랑해서, 주님께서 고난 받으심을 안타까워 해서 따라오는 여인으로 알지만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에서 사형당하는 죄수를 군중들이 구경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고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아편 을 파는 일까지 여인들이 했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부르신 이 '예루살렘의 딸'이 란 말은 육에 속한 여인들을 두고 한 말입니다. 예수께서는 죽으시기 전에 예루살 렘을 바라보시면서 통곡을 하셨습니다. 마태 23:37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 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같 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 하였도다 38 보라 너희집이 황폐하여 버린바 되리라 39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할 때까지 나를 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숱한 선지자를 잡아 죽이고, 양심있는 자를 옥에 가두고, 바른 말하는 이들에게 돌을 던진 악한 성 이스라엘아! 내가 불쌍하다고 울지 말아라! 왜 자신을 위해 울어준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울지 말라고 하시면서 위로는 못하실망정 저주에 가까운 말을 하셨을까요 우리도 예수님을 위해 울 때가 있습니다. 교회를 위해 울 때가 있습니다. 사회를 위해 울 때도 있습니다. 오늘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나라와 민족을 위해 웁니까 이웃을 위해 우는 자가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그러나 진정으로 그 울음들이 그리스도를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에 문제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를 위해 울지 말라고 합니다. 예수를 위해 우는 것 같으나 실상은 다른 것에 목적이 있는 울음을 울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위해 먼저 울어야 합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오늘 본문의 말씀에 너 자신을 위해 울라고 하십니다. 저는 오늘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참으로 놀라운 말씀의 경험을 했습니다. 저는 이제까 지 새순교회라는 이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서, 은행동 이 별나라를 위해서 애써 왔다 고 자부해왔습니다. 석유통을 들고 은행동 산골짜기를 오르내릴 때도, 찬바람이 숭숭 들어오는 곳에 서 석유난로 하나로 지샐 때도, 지하실 바닥에서 물을 퍼내면서. 저는 저 자신에 게 말하기를 '너는 그리스도를 위해 울고 있는 것이다'라고 늘 느꼈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준비하는 중에 저에게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있었습니다. 나를 위해 울지말고, 나를 위해 애쓰지 말고, 너를 위해 울고, 너를 위해 애써 라. 전 깜짝 놀랐습니다. 이 말씀에 비취어 보면서 저 자신을 돌아보고 참으로 놀랐 습니다. "아! 이것이구나. 그리스도께서는 나를 위해 울지말고 너와 너희의 자녀를 위해 울라고 하시는구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이시간에 제가 체험하과 경험한 말씀의 체험을 함께 나누시기를 바랍니다. 그들이 왜 울었습니까 예수께서 고난 당하심에 안타까워서. 그의 죽으심이 마음이 아파 울기 이전에 우린 먼저 나 자신을 위해 웁시다. 예수 께서 십자가를 지고 죽으러 가는 것을 슬퍼하기 전에 나 자신이 어떤 길로 걸어가고 있는지를 돌아 보자는 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의 죄 때문에 죽으심을 안 타까워 하기 이전에 내 안에 독버섯처럼 존재하고 있는 죄의 뿌리가 뽑혀져 있는지 를 돌아 보시기 바랍니다. 나 스스로를 깨닫지 못하고 남을 위해 우는 사람이 너무 나도 많습니다. 나 앞가림도 못하면서 남을 말하지 말기 바랍니다. 나를 위해 먼저 기도합시다.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의 영혼을 위해 얼마나 기도하고 계십니까 여러분 자신의 믿음의 성장을 위해 얼마나 기도하고 있습니까 교회에서 사고치는 사람은 항상 남을 위해 울어주는 사람입니다. 나 스스로가 부 족하고 나 자신의 믿음의 발전을 위해 애쓰는 자는 문제가 없습니다. 자신의 믿음도 추스리지 못하면서 이것 저것 간섭하다가 꼭 문제를 일으킵니다. 우리는 어느새 신앙에 대해서, 교회에 대해서, 믿음에 대해서, 기도에 대해서 너 무 전문가가 되었습니다. 척하면 척이라고 무슨 말을 하든지 그 설교가 자신이 지금 결단하고 순종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는 사실을 회피합니다. 교회가 금전만능의 암몬신 앞에 무릎을 꿇는 것을 슬퍼하지만 나 자신은 얼마나 물질에 대해서 초연하고 담담했는가 이 나라 정치인들이 부정과 부패로 나라의 장래를 망치고, 권력 싸움의 아수라장을 흥분하여 욕을 해 대지만 나 자신은 얼마나 내 생활 속에서 정의롭게 살려고 애써 왔는가 세상이 점점 향락과 섹스산업에 물들어 간다고, 우리의 딸들이 인신매매로 잡혀가고, 미군에게 몸을 팔던 창녀가 미군에게 맞아 죽었다고 흥분하지만, 나 자신은 얼마나 경건한 생활로 하나님 앞 에서 흠도 티도 부끄러움도 없이 살았는가 우리 너무 거짓말하며 살지 맙시다. 거짓 울음으로 세상의 불쌍하고 죽어간다는 사람들을 위해, 사탄의 손아귀에 있는 사람들이라고 불쌍히 여겨 울기 전에 나 자신 을 돌아보며 솔직하게 울어 를 바라고 계십니다. 베드로가 새벽닭 울때에 터져나오는 울음있었습니다.
이사야가 하나님을 뵙고 '오호라, 화로다. 내가 죽게 되었구나. 나는 입술이 부 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사람들 속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구 나.'라고 울 때에 하나님의 사람으로 보내심을 받게 되었습니다. 29 보라 날이 이리라 30 그 때에 사람이 산들을 대하여 우리 위에 무너지라 하며 작은 산들을 대하여 우리를 덮으라 하리라 그날에는 상상치 못한 뒤바뀐 상황이 일어납니다. 성경의 전통은 아이를 해산하는 것이 하나님께 큰 복입니다. 사랑하는 자녀에게 젖을 주는 여인이야말로 복 받은 여인입니다. 그러나 그 사람들은 곧 고통에 휩싸여 산이여 나에게 무너져 내려라, 우리를 덮으라. 차라리 죽는것이 낫다고 외쳐댈 것입니다. 31 푸른 나무에도 이같이 하거든 마른 나무에는 어떻게 되리요 하시니라 신앙생활하고, 자신의 죄악을 깊이 슬퍼하며 눈물을 뿌리는 신앙인도 주님의 심 판날을 견디기 힘들텐데. 하물며 슬픔이 없이 감정이 메마른, 각박하여 아무 감동 도 없이 메마른 영혼을 가진 자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께서 눅 7:31-32절 말씀에 비유로 자신의 안타까움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세대의 사람들을 무엇으로 비유할꼬 무엇과 같은고 비유컨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서로 불러 가로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 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애곡을 하여도 너희가 울 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 가증된 신앙으로는 결단코 하나님 앞에 가까이 갈 수 없습니다. 우린 너무나 -을 위한 신앙이란 도식에 길들여져 왔습니다. 신앙은 신앙 그 자체로 이미 할 일 을 다합니다. 위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비유의 말씀은 우리의 어리석음을 안타까움으로 말씀하고 계십니다. 울어야 할 때 울지 않고, 웃어야 할 때 웃지 않는 무감각해진 우리의 신앙을 꾸짖고 계신 것입니다. 구원의 피리를 불어도 춤추지 않고, 감사치도 않는 신앙인이 있습니다. 세상에 지금도 구석구석에서 예수께서 다시 십자가를 지 고 죽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슬퍼해야 할텐데 슬퍼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가정을 위해 , 자녀를 위해, 남편을 위해, 아내를 위 해 우십시오. 친구를 위해, 형제를 위해 우시기 바랍니다. 그전에. 그전에. 바로 여러분 자신을 위해, 여러분을 위해 우십시오. 여러분의 영혼을 걱정하며 우십시오. 진정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나의 영혼을 위해 먼저 울 수 있는 겸손함과 자기 성 사역으로 맡겨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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