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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보내소서 (사6:1-8)

본문

“웃시야 왕의 죽던 해에”(1절) 이사야 선지자는 소명을 받았습니다. 아사랴 라고도 불리우는 유다왕국의 10대 왕으로 웃시야 왕은 50여년간 치세에 농업개발, 예루살렘 성벽 강화, 군비의 확장으로 서쪽으로 블레셋, 남쪽으로 아라비아, 동쪽은 암몬을 공략하여 그 세력 하에 두었습니다. 그러나 나이가 많아지고 나라가 강성함에 따라 웃시야 왕은 제사장의 말을 듣지 않고 불순종과 패역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성전에 들어가 분향하는 월권과 위치 탈선의 교만 죄로 문둥이가 되어 쫓겨나 왕궁 뒤뜰에 살다가 비참한 최후를 맞습니다. 이러한 격동기에 이사야 선지자는 활동을 하다가 결국 톱으로 쪼개져 순교하는 장렬한 영광의 최후를 맞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그의 하나님을 만나 보는 영광의 눈, 말씀을 듣는 귀, 사죄를 받는 은총의 입술, 말씀을 전하는 구령의 발, 이상 4가지 제목을 생각하며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하나님을 보는 영광의 눈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스랍들은 모셔 섰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그 얼굴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그 발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날며”(1,2절) 여기서 이사야는 높이 들린 보좌에 앉은 영광의 하나님을 뵈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 거룩하고 영광스런 체험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두움이 얼마나 하겠느뇨”(마 6:21-23) 라고 말씀하시면서 “그러나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많은 선지자와 의인이 너희 보는 것들을 보고자 하여도 보지 못하였고 너희 듣는 것들을 듣고자 하여도 듣지 못하였느니라”(마 13:16,17) 고 하셨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예수님을 보는 사람, 예수님을 만난 사람은 다 복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의 보는 것을 보는 눈은 복이 있도다”(눅10:23) 고 말씀하셨습니다. 계시록에서 말세에 나타난 라오디게아 교회에 대한 설명으로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계3:18하)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바라볼 때, 영적 장님이 대단히 많습니다. 눈을 뜨고 있어도 실제로 영의 눈이 가리워서 하나님의 형상을 보지 못하는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 사람이 너무나 많습니다. 우리의 눈으로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아니고, 우리의 영의 눈을 떠서 하나님을 만나는 그 눈이 복있는 눈이 될 것입니다. 구약에서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만나 친구같이 동행하였고, 모세는 시내산 가시떨기 불꽃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 위대한 계명을 받아 그가 하산할 때 얼굴에 광채가 났습니다. 욥은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삽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한하고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하나이다”(욥 42:5,6) 라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을 만난 사람은 회개하지 않을 수 없고, 하나님을 만나는 사람은 허물을 발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 사람의 눈으로는 어떤 것이 옳고 그른지 알 수 없지만 하나님의 보좌 앞에 설 때 바로 설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신약 성경에서 스데반은 순교시에 부활한 주님의 형상을 보았습니다.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에 장님이 되어서 사흘동안 보지 못했습니다. 밧모섬에 귀양을 갔던 사도 요한은 예수님께서 친히 나타나셔서 보여주셨습니다. 기독교 역사를 통해서 봐도, 성 프랜시스도 주님을 만나서 죽을 때까지 그리스도의 성혼을 옆구리에 지니고 살았습니다. 챨스 피니는 성령님 충만을 위해서 기도한 결과 주님을 만나 그날부터 복음을 전함으로 미국 역사상 위대한 복음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현재 살아있는 T.L.오스본 목사도 역시 환상 가운데 예수님을 만나 18세 이후의 삶을 주님께 드리고 지금까지 온 세계를 다니며,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기 전에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2. 말씀을 듣는 축복된 귀 “서로 창화하여 가로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이같이 창화하는 자의 소리로 인하여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며 집에 연기가 충만한지라”(3,4절) 찬양의 소리를 이사야는 귀로 듣습니다. 앞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천사의 날개가 여섯개가 있어서 두 날개로 얼굴을 가리우고, 두 날개로 발을 가리우고, 두 날개로 날았다고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천사들도 자기 얼굴을 가리는 겸손을 말합니다. 두 날개로 발을 가리우는 것은 발은 때묻고 더러운 것으로 부끄러워 가리고, 또 두 날개로 나는 것은 움직이고 활동하는 천사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창화하는 소리로 문지방이 흔들리듯 우리가 복음을 전하러 나갈 때,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것을 말합니다. 또한 집에 연기가 충만하다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한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명을 받아 나아갈 때, 터가 움직이고 연기가 가득한 영광과 능력으로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스랍들이 창화하여 노래하는 소리를 듣고 천사의 말씀을 듣는 자의 귀는 축복된 귀입니다. 이사야의 축복된 귀를 봅니다. 오늘도 우리는 그 귀를 열어서 천사들의 창화하는 소리와 그 노래소리 가운데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기 바랍니다. “너희 귀머거리들아 들으라”(사42:18). “귀 있는 자는 들으라”(막4:9,23; 눅8:8; 14:35). “귀 있는 자는 들을찌어다”(마11:15, 계2:7 이하).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마13:16).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냐”(막8:18). “너희 귀에 그 입의 말씀을 받으라”(렘9:20). 영적농아를 봅니다. 영의 귀가 열려야 합니다. 들을 줄 아는 귀를 가진 자는 복있는 자입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내가 너를 복중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태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구별하였고 너를 열방의 선지자로 세웠노라”(렘1:4,5). 그는 평생 결혼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다가 장렬한 순교의 영광에 들어갈 때까지 최선을 다했습니다. 백성들의 귀가 가리워서 진리의 말씀을 듣지 않았기 때문에 불순종으로 그들의 최후를 가져왔습니다. 하와의 귀는 사탄의 말을 들었습니다. 사탄과 만나 대면하고 대화한 후,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고 원죄를 범해서 인류가 죄 가운데 들어가게 된 동기가 되었으니, 우리는 죄악의 소리, 비방과 미혹의 소리 및 중상모략의 소리를 피하고 오로지 진리와 복음의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그 모든 말씀을 들을 것이라”(행3:22). 고 한 베드로처럼, 천사를 통해 주신 말씀을 듣고 이사야는 열방의 선지자로 세움을 입었습니다. 칼 발트 목사는 우리 그리스도인은 신문을 보기 전에 항상 성경을 먼저 보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성경과 오늘의 역사적 현실 상황을 비교해 보라는 것이며,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역사 현실을 조명해서 오늘을 사는 그리스도인이 되란 뜻입니다.
3. 사죄를 받는 은총의 입술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때에 그 스랍의 하나가 화저로 단에서 취한바 핀 숯을 손에 가지고 내게로 날아와서 그것을 내 입에 대며 가로되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517절). 이사야는 자신의 입술이 부정한 사람임을 발견했습니다. 입은 인격의 대변입니다. 하루에 얼마나 많은 말을 합니까 입술로 범죄하는 일이 얼마나 많으며 큽니까 “거짓 입술로 벙어리 되게 하소서”(시31:18). “두루 다니며 험담하는 자는 남의 비밀을 누설하나니 입술을 벌린 자를 사귀지 말찌니라”(잠20:19). “네 입의 말로 네가 얽혔으며 네 입의 말로 인하여 잡히게 되었느니라”(잠6:2). 이처럼 성경에 입술에 관한 말씀이 많이 나와 있습니다. 눈도, 귀도 복이 있어야 겠지만 무엇보다 참으로 입술이 문제임을 성경이 말합니다. 이 주제에 대한 관주를 찾아보니, 입술에 관한 내용이 얼마나 많이 나와 있는지 모릅니다. 이사야는 화저로 제단에서 취한 핀 숯을 입에 대니 입이 지져져 악이 제하여 졌고, 죄가 사함을 받았습니다. 우리의 망령된 입술과 거짓된 혀는 성령님의 불로 고침을 받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마12:34137). 사람이 하루에 하는 말은 대단히 많습니다. 입은 인격의 대변자입니다.
그러므로 성령님의 불로 고침을 받아야 합니다.
4. 말씀을 전하는 구령의 발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은즉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그 때에 내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8절). 이사야는 하나님의 목소리를 듣고 피소에 응하여 구령의 발이 되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발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보내심을 받고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구령의 발입니다. 여호와의 미워하시는 것, 육 칠 가지중 “빨리 악으로 달려가는 발”(잠6:18) “대저 그 발은 악으로 달려가며, 피를 흘리는데 빠름이니라”(잠1:16) 고 하셨으며, 또 “발을 금하여 모든 악한 길로 가지 아니하였사오며”(시119:10
1)라고 하셨습니다.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출3:5)고 모세에게 명하신 여호와의 말씀은 무엇이겠습니까 예수님은 “만일 네 손이나 네 발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불구자나 절뚝발이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영원한 불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마18:8)고 말씀하셨습니다. 복음을 전하기 위한 성도의 발은 어디를 향해 무엇 하러 가야 합니까 왜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셨을까요 그 해답을 로마서에서 생각했습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롬10:13-15). 앞으로 제자들이 나가 하나님의 복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는 제자들의 발을 예수님이 미리 씻겨 주셨음을 깨달았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자들의 발, 하나님의 생명의 복음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 아름다운 발이 되기 위해서 예수님이 그들의 발을 씻겨 주셨구나 하고 깨닫게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 발의 신을 벗고 우리는 깨끗한 발로 주님 앞에 서서 하나님의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는 모든 성도들의 발이 되시길 바랍니다. 결론적으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사야에게 내린 자기 민족을 구원하라는 피소의 메시지는 너무 자명합니다. 예수님께서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마16:26)고 말씀하셨습니다. 생명을 구원하는 일이 우선순위입니다. 사도 바울이 순교직전 디모데 목사에게 유언으로 남긴 메시지에서 “하나님 앞과 산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의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딤후4:1,2)고 엄중히 명령했습니다.
독일의 유명한 신학자 에밀 부룬너(Emil Brunner)목사는 교회는 마치 불길이 일어날 때 존재하는 것처럼, 전도할 때 교회는 존재한다. 교회가 교회의 머리되신 주님의 지상명령을 불순종하면 교회는 교회 자체의 존재가치를 상실하고 자멸하고 맙니다. 복음 전도는 끝없는 시작입니다. 복음전도는 우리들 사람이 취사선택(取捨選擇)할 여지가 없습니다. 상대적 의무가 아닙니다. 우리가 하고 싶으면 하고, 싫으면 안해도 되는 정도의 일이 아닙니다. 전도의 구령은 주님의 절대적 명령입니다. 기회는 많지 않습니다. 농부가 추수시기를 놓치면 큰 낭패이고, 어부는 물결을 타야 고기를 잡습니다. 우리는 농부와 어부로 주님이 부르셨는데, 우리의 아름다운 발로 남은 기간 동안 최선을 다하고 복음을 전하러 나가서 우리 주님의 마음을 기쁘게 하고, 시원하게 해드리는 이 복음 사역에 다 동참해 주시리라 믿으며, 이 좋은 소식의 증인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그 때에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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