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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시103:8-18)

본문

천주교회에서 사용하는 '고백의 기도'라고 하는 기도문은, 전능하신 천주와 형제들에게 고백하오니 과연 생각과 말과 행위로 많은 죄를 지었으며 또 자주 의무를 소홀히 하였나이다. 내 탓이요 내 탓이요 내 큰 탓이로소이다!
그러므로 간절히 바라오니 전능하신 천주는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어 죄를 사하시고 영원한 생명으로 이끌어 주소서. 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매우 간단하지만 명백히 자기 죄를 고백하고 사 죄를 비는 간절한 기도라고 생각합니다. 특별히 이 기도 가운데 '내 탓이요 내 탓이요 내 큰 탓이로소이다' 라고 하는 대목에서는 가슴을 치며 자기의 허물과 죄를 진심으로 아파하는 장면을 볼 수 있는데 아주 인상적입니다. 이 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겨서 죄를 사하여 달라고하는 진지한 기도입니다. 이러한 통회와 자복은 우리 성도들에게 항상 있어야 될 기도의 자 세입니다. 그럴 때에 하나님은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시고 사죄의 은혜를 내 려 주십니다. 요한일서 1장 9절에도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고 의 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꺠끗게 하실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과연 어떻게 하나님에게 사죄를 받는가 할 때에 인간은 회개와 자복을 통하여 나를 용서해여 주시는 하나님을 가장 가까이 체험하 게 됩니다.
예수님도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이 요'(마 5:4)라고 하셨는데 우리는 진심으로 애통할 때에 실제로 하나님의 위 로를 받게 되고 그래서 기쁨과 용기와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게 됩니다. 하나님은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십니다. 또한 우리는 하나님이 나를 불쌍히 여겨주시는 은혜로 살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여리고를 지나가실 때에 거기 있던 문둥병자들은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라고 하면서 울부짖었는데 이 때에 예수님은 가시던 길을 멈추시고 그들을 불쌍 히 여기시니 그 병이 모두 나음을 얻고 깨끗하게 되었다고(눅17) 하였습니다. 또 흉악한 귀신이 들려 괴로워하는 딸을 가지고 있는 어느 이방 여인도 예수님께 소리 지르면서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 이 흉악히 귀신들렸나이다'(마 15:22)하면서 자기의 안타까운 심정을 아뢰었 더니 그의 사랑하는 딸이 나음을 얻었다고 하였습니다. 주님이 이같이 불쌍 히 여겨주시면 언제나 모든 문제가 주 안에서 해결이 되었습니다. 어떤 사람 은 이것은 비굴하게 동정을 구하는 것 같아 거부하려는 이들도 있을 것이고 또 '이만하면 나는 아무 부족함이 없는데 구태여 불쌍히 여겨달라고 할 것 이 뭐냐'고 할 이도 있을 것입니다. 또 어떤 이는 정말 하나님의 도움과 긍 휼이 필요한데 어떻게 해야 할지 방법을 몰라서 못하고, 혹은 의심이 생겨 서, 혹은 믿어지지 않아서, 혹은 어떤 수치심 때문에 주저하는 경우도 없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서는 우리 주님께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요'라 고 간구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또 그들이 주님으로부터 과연 어떠 한 위로와 도움을 받았는지를 상세하게 증언해 주고 있습니다. 비단 문둥병 자나 귀신들린자 만이 아니라 예수님께서는 일반적으로 사람들을 보실 때, 또한 수많은 무리들을 보실 때, 그들 모두가 목자없는 양과 같아서 민망히 여기시고 측은히 여기셨다고 하였습니다(마 9:36). 그것이 예수님이 우리를 보시는 관점입니다. 그러나 우리들 자신은 스스로를 그렇게 보지 않고 있습니다. 마치 저 라오디게아 교회처럼 '나는 부자다.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 다' (계 3:17)고 하며 자기만족과 자기도취에 빠져 살고 있을 때가 많은 것 입니다. 우리의 만족한 생활이란 우리가 부자이기 때문이 아니고 부요하여서가 아니며, 내가 능력이 있고, 내가 유능하고, 지혜로우며, 불가능한 것이 없기 때문이 아닌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나의 목자이심으로 인생의 참된 만 족과 기쁨을 하나님을 믿는 신앙 안에서만 찾는 것입니다. 우리가 얻는 참된 기쁨은 우리의 소유나 지식이나 능력이나 건강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 런 것은 전혀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만일 그런 것을 자랑하고 그것을 최고의 보람으로 안다면 주님 보시기에는 '곤고하고 가련하고 가난 하고 눈멀고 벌거벗은 것'(계 3:17)일 뿐입니다. 다윗왕은 항상 자기의 부족과 무능과 죄를 깨닫고 하나님께 회개함으로 써 거룩하신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회개와 자복은 하나님을 구체적으로 만나 게 합니다. 그가 체험한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시라고 하였습니까 그는 자비로우시고 은혜로우시고 노하기를 더디하시고 인자하심이 풍부하시도다. 항상 경책치 않으시고 노를 영원히 품지 아니하신다. (시 103:8) 고 다윗은 노래하였습니다. 그는 또한 자기에게 그렇게 해 주신 하나님을 만났고 그 하나님의 도우심과 용서를 받았습니다. 그는 그 하나님으로부터 구원을 받고 놀라운 사랑과 큰 축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가 알고 체험한 하나님을 그는 항상 찬양한 것입니다. 본문의 말씀을 보면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그를 경외하며 따르는 자에게 이런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하나님을 항상 존중히 여기며 그를 두려워하 고 몸과 마음가짐을 바로하는 사람들이 하나님 경외하는 사람들입니다. 성경 에는 다윗과 같이 하나님을 진심으로 경외한 사람이 있었는가 하면, 하나님 께 거역하고 반항한 고라와 같은 사람도 있고, 하나님의 권위를 비방한 미리 암같은 사람도 있으며 하나님의 뜻을 배반한 가룟 유다 같은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들에게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심이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용서 도 받지 못했습니다. 이 사람들에게는 '하나님 저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요' 라고 하는 고백과 회개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 자신을 불쌍히 여겨달라고 용서를 전혀 구하지 아니하였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어떠했습니까 그도 같은 죄를 지은 죄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자기가 하나님 앞에 큰 죄를 지었다는 것을 깨닫고 그것을 시인했 습니다. 어찌나 울었던지 눈물이 바다가 되어 침상이 그 위에 떴다고 표현되 고 있슴니다. 시편 51편의 그의 회개 기도는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쫓아 나를 긍휼히 여기시며 주의 많은 자비를 쫓아 내 죄과를 도말하소서. 나의 죄악을 깨끗이 씻기시며 나의 죄를 제하소서' 하면서, 그는 자기의 '죄', '죄', '죄'를 자꾸 되풀이하여 강조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겸손한 사람은 누구일까요 자기의 모든 죄를 결국 하나님에게는 숨길 도리가 없는 것을 알고 두 손 들고 항복하는 사람입니다. 다윗은 시편 139편에서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감찰하시고 아셨나이다. 주께서 나의 앉고 일 어섬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통촉하시오며 나의 길과 눕는 것을 감찰하시오며 나의 행위를 익히 아시오며 내 혀의 말을 알지 못 하는 것이 하나도 없으십니다. 내가 주의 신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음 부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며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거할찌라도 곧 거기서 주의 손이 나를 붙드시나이다. 라고 노래하였습니다. 하나님이 나의 모든 것을 다 아시고 그 앞에서 아무 것도 감추거나 숨길 수가 없다는 것을 알고 죄를 고백합니다. 그 분은 우리 를 불쌍히 여겨 주시기 때문입니다. 죤 스탠서 선교사는 학생 시절에 자동차를 주차시키려다 그만 옆의 차를 손상시켰으나 그대로 도망치고 말았습니다. 이 일로 양심의 가책을 받고 예 배드리는 도중 성령님께 꾸중을 들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차주인을 찾아가 보 상해 주려고 했으나 찾지 못해서 자동차 수리비 만큼을 교회에 익명으로 헌금을 하였더니 그를 짓누르던 고통이 사라졌다고 합니다. 적어도 이러한 양 심과 이러한 자세로라도 살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둘째로, 그러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하여 주십니까 우리가 진심으 로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를 간구하면 하나님께서는 무엇을 어떻게 하여 주 실까요 우리는 왜 하나님께 우리를 불상히 여겨 달라고 해야 됩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신다고 하는 것은 감상이나 값싼 동정심으로 끝 나고 마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 참 불쌍하게 되었구나, 너 참 안 됐다' 하 고 마신다면 아무 소용이 없는 일이겠지요. 하나님이 우리를 불쌍히 여기신 다는 것은 우리 하나님의 마음에서 불쌍한 마음이 솟아나서 실제로 행동으 로 옮기시고 어떤 조치를 취하지 아니하시고는 못견디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십시요' 라고 하는 간구는 실제적이 고 구체적인 도움과 해결을 강하게 요청하는 간절한 간구입니다. 옛날 이스 라엘 백성들이 애굽의 고역으로 탄식하고 부르짖을 떄 그 소리가 하나님께 들려서 하나님은 그 고통하는 백성들의 소리를 들으시고 이스라엘 자손을 권념하셨더라(출 2:23)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그들 을 위한 구원의 방책을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책임지시고 그 약속 대로 이루어 주셨습니다. 이 하나님의 연민은 지극히 구체적이고 효과적인 것으로, '아비가 자식을 불쌍히 여김과 같이' 당신의 자녀들을 불상히 여기 고 보호하십니다. 여호와께서ㄴ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들을 그와같이 하신다 고 하였습니다. 그보다 더 구체적이고 실감나는 은혜와 사랑이 어디 있겠습 니까 그리고 죄를 자복하고 용서하여 달라고 간구할 때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어 '동이 서에서 먼 것같이 우리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 기신다'고 항였습니다. 동에서 서까지의 거리는 무한대의 거리요, 전혀 만날 수 없는 거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와같이 완전히 용서하시고 우리의 죄를 다시 거론하거나 문제 삼지 않으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입니다.
셋째로, 그러면 하나님은 어째서 우리에게 이러한 사랑과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까 우리에게 어째서 이토록 과분한 사랑을 내려 주십니까 그것은 다름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너무나도 잘 아시기 떄문입니다. 여러분, 나를 가장 잘 아는 이는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동료, 친구, 아내, 남편. . 그렇지 않으면 자녀들입니까 나를 낳으시고 기르신 부모입니까 나 자신입 니까 부모는 나를 낳으시고 기르셨으니 내 성격이나 체질을 가장 잘 아실 겠지요. 그러나 부모 슬하를 떠나 성인이되고 노인이 되어 사상과 생활이 달 라지면 부모인들 어찌 다 알겠습니까 부부가 제일 가깝다고 하지만 평생을 같이 살아도 서로가 모르는 것이 있다고 합니다. 자녀나 친구들은 나의 어떤 한 부분만을 겨우 알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를 가장 잘 아시는 이는 나를 만 들어 주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이 인간을 지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의 체질을 아시고, 존재를 아시고, 그 동기나 목적을 모두 아십니다. 내가 달라진 것도, 그 과정도, 그 종착점도 모두 다 아십니다. 하나님 의 말씀을 진리로 믿고 그것을 사랑하고 사모하는 까닭은, 나를 가장 잘 아 시는 그 분께서 하신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를 훈계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한다' (히 4:12)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체질을 아신다는 뜻이 바로 이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의 말씀으로 살면 생명.건강.신령한 축복을 다 받게 됩니다. 우리를 너무나 다 잘 아시는 우리 하나님, 우리는 그분을 사랑하고 그분의 말씀을 심히 좋아합니다. '과연 그 말씀이 그러하다'고 느끼고 깨닫는 것은 바로 그 까닭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체질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무엇으로 만들어진 존재입니 까 나를 존재하게 한 그 근본 요소는 무엇이었습니까 그것은 다름아닌 진토였습니다.
인간은 흙에서 왔습니다. 제 아무리 잘났다고 해봐야 우리는 결 국 흙에서 왔습니다.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라고 선언하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은 이것을 아시고 기억하고 계십니다. 그가 우리를 흙으 로 만드셨기 때문이고 결국은 다시 흙으로 돌아갈 것을 아십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 인생은 그런 긍휼과 자 비를 힘입고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거의 그것을 모르고 살고 있습니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연약한 진토입니다. 흙으로 빚어진 인생, 흙과 티가 많고 던지면 곧 깨어질 질그릇, 그리고 언젠가는 모두가 흙으로 돌아갈 하잘 것 없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를 불쌍히 여기십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시고 은혜를 내리시며 던져 깨뜨리지 않고 참으십니다. 그리고 당신이 지으신 이 피조물이 영광과 빛을 발하는 창조주 하나님의 위 대한 걸작품으로 남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피조물인 우리 인생, 흙에서 왔다가 다시 흙으로 돌아가고 말 우리 인생 이 만일 하나님과의 언약을 지키고 그 법도를 기억하며 진심으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섬기면 우리는 영원한 하나님의 자녀로서 영생하는 참 인간이 될 수 있습니다. 보잘 것 없는 진토인 우리들에게 은혜를 주시고 보배를 담아 주셨습니다. 인생은 그날이 풀과 같으며 그 영화는 들의 꽃과 같습니다. 그 것은 지나면 없어집니다. 그것들이 있던 곳이 어디인지조차 모르게 됩니다. 그것은 흙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은 자기를 경외하는 자에게 영원부터 영원까지 이 르는 생명을 주시며, 그의 의는 자손의 자손에까지 미치며, 언약을 지키고 법도를 행하는 자에게 축복을 이루어 주십니다. 이러한 영광과 축복이 우리 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으로부터 여러분 모두에게 임하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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