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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따르려거든 (막8:31-38)

본문

1. 어느 부부가 자신들의 아이에게 성경을 잘 가르치고 있었다. 그들은 아이가 여호와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를 바라고 성경을 가르쳤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날 아이가 갑자기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자고 졸랐다. 부모는 놀라서 물었다. “지금 우리가 사는 곳은 모두가 교회에 다니고 있지 않니 이보다 더 좋은 곳이 어디 있겠니” 그러자 아이가 대답했다. “그들 모두가 교회에 다니고 있는 것은 맞는데요,
그런데 그들 중 누구도 예수님처럼 살지는 않는 것 같아요.” “왜 그렇게 생각하니” 부모가 또 묻자 아이는 대답했다. “예수님은 가난하게 사셨는데 그들은 부유하게 살려고만 하고요, 예수님은 겸손하셨는데 그들은 서로 자랑만 하는 것 같아요, 또 예수님은 고통받으며 사셨는데 우리 주위의 사람들은 편하게만 사려고 하잖아요.” 여러분 마음에 찔리십니까 우리 주위에 교회에 다니는 분들이 참 많습니다. 우리 나라에는 약 1000만의 교인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교인수는 얼마나 될까요 과연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성도의 자격은 어떨까요 오늘 본문을 통하여 하나님의 기준에 드는 교인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본론 오늘 본문을 보면은 우리와 하나님의 관점이 너무도 다름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3년의 공생애 기간 중 제자들에게 자신의 죽으심에 대하여 여러번 발씀하신 바 있습니다. 오늘의 내용은 예수님께서 자신의 죽으심에 대하여 직접적으로 말씀하셨다고 그에 대한 제자들의 반응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제자들에게 있어서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메시야가 오시면 자신들을 로마의 압정에서 구원하고 세계 최강의 국가를 세우실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즉, 현세적이고 세상적인 구세주를 기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제자들도 그러한 분위기 속에서 살아왔기에 예수님에 대하여 그러한 기대를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펄쩍 뛰며 만류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자신의 생각과 너무도 차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때 주님은 호되게 베드로를 나무라십니다.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않고 네 생각만 하는구나.” 이말을 들었을 때 베드로는 아마 큰 충격을 받았을 것입니다. 자신을 사탄이라 몰아부치시는 예수님을 원망도 했을 것입니다. 베드로는 인간적인 생각이 꼭 차서 하나님의 일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나 베드로나 크게 다를 것이 없습니다. 살아가면서 나의 뜻과 하나님의 뜻이 충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두 가지가 일치한다면 하나님이 뜻을 따르는 것이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실제로 하나님의 뜻을 거부하며 살아가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의 기준을 낮춤으로 거부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진리요 길이라지만 베드로는 자신의 생각과 지식을 오늘 더 내세운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살아갑니다.
사실 베드로는 오늘 이렇게 예수님의 질책을 받았지만 사도행전에서 같은 잘못을 저지르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10장에서 보면 베드로가 기도할 때에 환상으로 봅니다. 하늘에서 그릇이 내려 왔는데 그 안에는 유대인이 부정하게 여기는 짐승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소리가 났는데 잡아먹으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베드로는 말합니다. “그럴수 없나이다.” 하면서 자신의 잣대로 하나님의 생각을 여지없이 뭉게버립니다. 세 번을 이렇게 한 후에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셨으니 속되다 하지말라”하시자 자신의 뜻을 철회합니다. 베드로 자신이 무엇이관대 하나님의 명령에 대하여 “그럴수 없습니다.”라고 대꾸할 수 있습니까 자신이 얼마나 똑똑하기에 하나님의 명령에 반대합니까 베드로는 첫 번째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했어야 옳았습니다. 자신의 하찮은 지식에 하나님을 끌어내려서는 안됩니다. 또 전도하라 하시면 자신의 상황을 내세우며 스스로 포기하고 맙니다. 또 헌신하라 하시면 내 코가 석자인데 어느 시간에 헌신합니까 하면서 다른 길로 갑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과 나의 뜻이 충돌할 때 나의 듯을 꺽가가 어려우면 최소한 자신의 부족한 믿음을 도와달라고 기도라도해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을 따를 자격이 있습니다. 그리고 조심해야 합니다. 사단은 시간시간 우리를 하나님의 길에서 벗어나게 하려고 얼마나 힘을쓰는지 모릅니다. 사실 오늘 베드로의 말은 사탄에게서 온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따르지 않을 경우에 우리는 사탄이 좋아하는 길로 들어서고 있는 것입니다. 더욱이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무조건 순종하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려면 자신을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라는 것입니다. 자신을 부인하라는 것은 자신의 생각, 지식, 경험 등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뜻에 자신을 맞추라는 것입니다. 그때에 우리는 높은 자리에 거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커트라인에 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합격선에 올라서는 믿음의 담대함을 소유하시기를 바랍니다. 또 주님은 십자가를지라고 하십니다. 십자가는 순종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놓고 죽을 힘을 다하여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는 결국 순종하셨습니다.
우리도 우리에게 맡기신 십자가를 순종함으로 집시다. 또한 십자가는 죽음을 의미합니다. 내가 죽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날마다 죽은 사람입니다. 왜 그가 그런 고백을 했습니까 예수님으로 자신 안에서 온전히 살게하기 위해섭니다. 맞습니다. 우리가 죽을 때 하나님이 완전히 사시게 됩니다. 나는 죽고 하나님께서 내 안에 사셔서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시고 그 분의 뜻을 이루어 나가시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참으로 기독교의 신비요 절정입니다. 그리고 주님을 따라야 합니다. 그 분의 말씀을 따르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각을 이루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입니다. 이제는 위의 세가지를 종합해 봅시다. 나의 생각, 지식, 경험을 버리고 내가 죽어서 하나님을 나타내며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기 위해서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주님을 따르는 사람의 자세입니다. 그러한 사람은 천국을 보장받습니다. 그러한 사람은 주님이 영광 중에 오실 때 공중에서 주님을 만나뵐 수 있는 영광을 소유하게 됩니다. 그러나 세상으로 흐르며 자신의 만족과 자신의 생각대로 사는 사람은 그와 반대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영생을 보장받을 수 없습니다. 그들은 모두 불합격입니다. 커트라인 위의 점수를 받은 사람은 합격되고 커트라인에 모자라는 사람은 불합격입니다. 커트라인은 하나님께서 제시하신 것입니다. 누구도 변개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다만 이 커트라인에 합격하도록 열심히 노력하며 살아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3. 결론 베드로는 처음에는 깊은 곳에 그물을 내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많은 고기를 잡았습니다. 성공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은 자신의 생각을 내세움으로 혹독한 꾸지람을 받았습니다. 실패한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삶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하나님이 말씀에 그대로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의 지식, 판단, 경험은 왜곡된 것이고 실패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획과 판단은 틀림이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섭리와 경륜 속에서 우리를 택하시고 그분의 일을 위해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순종의 일꾼이 되기를 요구하십니다. 그것은 인간구원이라는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입니다. 바로 나 자신의 순종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세상은 나날이 악해져가고 있습니다. 그러한 속에서 많은 고기를 잡기 위하여 묵묵히 하나님께 순종하여 그 분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복이 임하기를 바랍니다. 그 복은 만들어 나가는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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