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보내 주소서 (사6:6-8)
본문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소 원이 있으십니다. 그것은 우리가 항 상 기뻐하고 감사하면서 이 땅에서 도 천국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데살로니가 전서 5장 16절 이하의 말씀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 라'는 말씀 속에서 우리는 그와 같 으신 하나님의 뜻을 찾아 낼 수 있습니다.
예수를 믿는 궁극적인 목적 은 구원입니다. 구원을 가장 단순한 언어로 표현한다면 그것은 '잘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잘 사는 것은 항상 기뻐하고 늘 감사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우리를 향한 사탄의 뜻과 소원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과 반대되는 것으로 우리가 항상 슬퍼하며 불평과 원망 가운데 이 땅 에서도 지옥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천국과 천국의 삶을 주셨건만 우리는 사탄의 속임 수에 속아넘어가 하나님이 주신 천 국과 그 천국에서의 삶을 잃어버리 고 구원받지 못한 지옥의 삶을 살아 가고 있는 것입니다.
사탄이 우리에게서 천국을 빼앗기 위하여 한 일은 우리로 하여 금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거스 르고 범죄 하도록 한 것입니다. 사 탄은 누구보다도 죄의 삯이 사망이 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인간을 사망으로 내 몰 기 위하여 그는 아담과 하와를 유혹 하여 선악과를 따먹게 하였던 것입니다.
사탄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거스르고 범죄케 하기 위하여 우리 내면 깊은 곳에 있는 욕심을 이용하였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들에게 죄의 삯은 사망이며 그 죄 의 뿌리는 욕심이라는 사실을 강조 하여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잘 살려고 하면 항상 기쁘고 늘 감사한 천국의 삶을 살려고 하면 죄의 문제를 극복 해야만 하고 죄의 문제를 극복하려 고 하면 우리 내면 속에 있는 욕심 의 문제를 극복할 수 있어야만 합니다.
죄와 욕심의 문제를 해결하 지 못한다면 우리는 그 누구도 구원 을 얻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고 아담과 하 와에게 말씀하신 것은 욕심을 버리 고 말씀대로 사는 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선악과 나무 열매는 그 어느 나무의 열매보다도 보암직하고 먹음직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보암직하 고 먹음직한 나무를 택하여 그것을 먹지 말라고 명령하신 이유는 욕심 을 극복하는 것이 우리의 삶에서 있 어서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었 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들에게 욕심을 다스리며 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사탄은 언제 나 우리들에게 그 욕심을 채우면서 살라고 말합니다.
사람들은 사탄에게 속아 욕 심을 채우는 것이 행복하게 잘 사는 것이라고 잘못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탄에게 속는 것입니다. 욕심을 채우는데 행복과 구원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 을 버리고 극복하는데 우리의 구원 과 행복이 있는 것입니다.
참으로 항상 기뻐하고 늘 감사하는 삶을 살려고 하면 욕심을 버려야만 합니다. 욕심을 버리지 않 고는 절대로 우리는 구원에 이를 수 없습니다. 그 욕심이 끝없이 우리를 범죄케 할 것이고 끝없이 우리의 삶 을 초라하게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욕심을 버림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첫째는 '버림'이고
둘째는 '씀'입니다. '버림'과 '씀'의 차이는 '벌음'에 있습니다. '버림'은 버리고 벌지 않은 것입니다. '씀'은 계속 벌면서 쓰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버림'은 버는 것을 부정하 나 '씀'은 버는 것을 부정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전자는 불교적인 발상과 방 법이요 후자는 기독교적인 발상과 방법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불 교와 기독교의 매우 중요한 차이인 것입니다. 전자는 우리가 욕심을 내는 것들을 부정하고 부인함으로 욕 심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후자는 우리 인간이 욕심을 내는 것들 다시 말해서 물질과 명예와 권력과 자리 같은 것들을 부인하고 부정하지 않습니다. 그것을 부정하 고 부인함으로 욕심의 문제를 해결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바르게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쓰고 사용하는 것을 통하여 욕심의 문제 를 해결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불교 가 사찰을 세상을 떠나 깊은 산 속 에 짓는데 반해 기독교는 세상 한 복판에 교회를 세우는 것에서 우리는 그와 같은 중요한 차이를 찾아 낼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욕심을 버 리기 위하여 하여야 할 일은 쓰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모든 것들을 주를 위하여 바르게 쓰는 훈련을 하는 것입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린 바와 같이 우리 기독교는 버는 것과 이루는 것을 부정하지 않 습니다. 다만 버는 것과 이루는 것 의 목적을 구별합니다. 자신의 욕심 을 채우기 위하여 버는 것과 이루는 것은 부정합니다. 그러나 주를 위하여 바르게 쓰기 위하여 벌고 이루는 것은 긍정합니다.
바르게 그리고 열심히 벌고 바르게 그리고 열심히 써야 합니다. 비만은 건강에 가장 나쁜 것 중에 하나입니다. 비만의 문제를 해결하는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먹지 않고 살을 빼는 것입니다.
둘째는 먹을 것 다 먹고 열심히 운 동을 하여 빼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전자의 방법으로 비만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나 그것은 옳지 않은 방법입니다. 그렇게 해서 살을 빼는데 성공을 하였다고 해도 그것은 건강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오히려 비만보다 더 나쁜 허약함을 우리에게 가져다 줄 것입니다.
잘 먹고 열심히 운동하는 것이 건강을 위하여 가장 중요하듯 바르게 그리고 열심히 벌고 그리고 바르게 그리고 열심히 쓰는 것이 건 강한 삶을 위하여 중요합니다.
저는 승동 교회에서 처음으 로 담임 목회를 시작할 때 '돈 잘 쓰기 운동'이라는 것을 하였습니다. 일년 예산이 7천만원이었을 때 돈 잘 쓰기 운동으로 모은 돈이 일년에 천만원이 넘었으니 교인들이 얼마나 열심히 그 운동에 참여하였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매달 백만원 이상 을 모아서 실로암 병원에 맹인 개안 수술을 하는데 보냈었습니다.
저희 아이들도 그 운동에 참여하였습니다. 한 달에 500원씩 회비를 작정하였는데 아이들은 모두 나름대로 그 돈을 벌어야만 했는데 큰 아이는 이불을 펴는 것으로 500 원의 회비를 마련했고
둘째 아이는 손님들이 오실 때 신발을 잘 정리하는 일을 하는 것으로 500원의 회비 를 마련했습니다.
그때 막내 아이는 네 살이 었는데 500원 회비를 벌기 위하여 뒷짐까지 지고 고민(?)하다가 결국 근사한 일을 찾아냈습니다. 저희 막 내 아이가 제안한 일은 '빈방에 불 끄기'이었습니다.
그 '돈 잘 쓰기' 운동이 지금은 '이삭 줍기 운동'으로 발전되 어 계속되고 있습니다. 저희 아이들 은 어려서부터 '돈 잘 쓰기 운동'과 '이삭 줍기 운동'을 하여 오고 있습니다. 제가 이 운동을 통하여 자신 과 아이들 그리고 여러 교우들을 가 르치려고 하는 것은 '바르게 씀'입니다. 그 '바르게 씀'을 통하여 욕심 의 문제를 해결하고 그 욕심의 문제 를 해결함으로 사탄의 굴레를 벗어 나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구원 의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르게 씀'을 위하여 '돈 잘 쓰기 운동'이나 '이삭 줍기 운동 '보다 제가 더 중히 여기는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온전한 십일조 생활'입니다. 더 러 실수를 하는 경우가 있지만 나름 대로 최선을 다하여 사과 한 알이 들어와도 그것의 십일조를 떼려고 합니다.
저는 온전한 십일조 생활이 욕심을 버리고 바르게 씀을 위하여 가장 중요한 운동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십일조 생활을 요구하시는 가장 중요한 목적 이 거기에 있기 때문입니다.
낙하산을 타는 특전대원들 이 낙하산을 타기 위하여 훈련을 하는 곳이 있습니다. 그곳의 높이가 약 10미터 정도 된다고 하는데 그 높이는 우리 인간이 가장 공포를 느 끼는 높이라고 합니다. 그곳에서 점 프를 할 수 있게 되면 비행기에서도 점프를 할 수 있게 된답니다.
저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십일조가 우리 인간이 돈에 대하여 가장 공포를 느끼는 액수가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10미터 높이에서 뛰어 내릴 수 있으 면 비행기에서도 뛰어 내릴 수 있듯 이 온전한 십일조 생활이 가능하다 면 드디어 비행기에서 점프하기 보 다 더 어려운 욕심으로부터의 점프 도 가능하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저는 그와 같은 생각이 전혀 엉뚱한 생각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정말 온전한 십일조 생활 을 통하여 욕심을 버리는 훈련이 되 고 있음을 느끼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와 저의 가족은 이제 어 느 정도 십일조 훈련이 되었습니다. 십일조 훈련의 목적은 십일조에 있 지 않습니다. 그것은 특전대의 점프 훈련이 점프 훈련 자체에 있지 않고 비행기에서의 점프에 있는 것과 마 찬가지입니다.
점프의 높이를 나름대로 높 이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십일조 생활이 아니라 십이조 생활, 십이조 생활이 아니라 십삼조 생활로 훈련 과 운동의 강도를 높이려고 나름대 로 애쓰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의 궁극적인 목표는 그와 같은 것이 아 닙니다. 저의 궁극적인 목표는 유산 안 남기기입니다. 세상을 떠날 때 하나님께서 내 몫으로 주셨던 모든 것들을 다시 하나님께로 돌려 드리 고 하나님께 가는 것입니다.
제 신앙의 높이가 정말로 유산을 안 남길 정도까지 되게되면 물질로부터 완전히 자유 하는 삶을 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유산을 안 남길 것을 결심하게 되면 유산을 많 이 남기기 위하여 물질의 종 노릇 하는 어리석음을 부리지 않게 될 것 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정말 제가 그와 같은 삶을 사는데 까지 발전할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저는 나름대 로 최선을 다하여 노력할 것입니다. 그리고 기도할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저에게 그와 같은 삶을 살 수 있는 능력을 주실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삶을 사는 것은
둘째치고 그와 같은 삶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행복해 지는 지 모릅니다.
돈을 바르게 쓰는 훈련을 통하여 제가 동시에 훈련하고 연습 하려고 하는 것은 명예와 권력에 대 한 욕심으로부터의 자유입니다. 돈 을 부정하고 부인하지 않듯 명예와 권력까지도 부인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할 수만 있다면 바른 길과 방법 을 통하여 명예와 권력도 얻으려고 노력하겠습니다. 그리고 그와 같은 것들을 하나님과 하나님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바르게 잘 쓰고 사용해 보고 싶습니다.
그리하여 드디어 먹든지 마 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할 수 있는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되고 싶습니다. 내가 교인들에게 설교하고 강의하던 모든 것을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저는 돈과 명예와 권력을 부인하지 않지만 그것으로 제 삶의 목표를 삼고 싶지 않습니다. 그것을 욕심의 대상으로 삼고 싶지 않습니다. 그것에 얽매여 그것의 종노릇하 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제 삶의 목 표를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 에 두고 싶습니다. 죄 된 육신을 벗 기 전까지 그것은 아마 불가능하겠 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 여 그 믿음의 경주를 해 보고 싶습니다.
승리의 면류관은 하나님 나라에서 받을 수 있겠지만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 그 목표를 향하여 달 려가는 것만으로 충분히 행복할 것 입니다. 넘어지면 또 일어서고 실패 하면 그것을 부끄러워하면서 그러나 그 믿음의 경주를 끝까지 포기하지 아니하고 최선을 다하여 달려가고 싶습니다.
나와 사람들이 욕심내는 모 든 것들을 나 자신만을 위하여 쓰지 아니하고 주를 위하여 쓰고 싶습니다.
그러므로 내 평생의 소원은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쓰임 받고 싶습니다.
세상에 아무리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다고 할지라도 그 물질이 하나님께 쓰임을 받지 못한다면 그 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니라 그 물질은 일만 악의 뿌리가 되어 우리를 구원의 삶 에서 멀어지게 할 것입니다.
세상에 아무리 좋은 지위와 권세를 누린다고 하여도 그것이 하나님께 쓰임 받지 못한다면 그것은 결국 악한 것이 되어 훗날 하나님께 심판 받을 때 그 명예와 권세가 나 를 고발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와 같은 삶은 하나님께 심판 받기 이전에도 내 삶의 발목을 잡아 그것 때문에 항상 우울 하고 답답하고 기쁨이 없는 삶을 살 아가게 할 것입니다. 주를 위하여 쓰지 못하는 많은 물질과 명예가 멍 에가 되어 나를 짓누를 것입니다.
저는 그와 같은 삶을 살고 싶지 않습니다. 돈과 명예와 권세를 부인하여 산 속으로 도망하지 않고 이 땅에 살면서도 그와 같은 것들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 하는 삶을 살아 그 모든 것을 주를 위하여 바르게 쓰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하며 자신의 모 든 것을 주를 위하여 쓰면서 살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이와 같은 물 으심과 부르심 앞에 '내가 여기 있 나이다. 나를 보내주소서'라고 대답 하고 헌신할 이사야와 같은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누가 오늘 이 하나님의 부 르심과 물으심 앞에 응답하시겠습니 까? 저는 전혀 강요받지 않은 제자유스러운 의지와 판단을 가지고 이 하나님의 부르심과 물으심에 응답하 겠습니다. 저는 우리 동안교회 교인 들 중에 이사야와 같이 하나님께 쓰 임 받는 일에 기꺼이 헌신하는 사람 들이 많아 질 수 있기를 고대하고 기도합니다.
온전한 십일조 생활을 통하 여 물질에 대한 욕심을 버리며 물질 과 명예와 권세와 자리들을 자신의 욕심을 채우는데 사용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뜻과 영광을 이루는데 쓰 면서 사는 사람들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 쓰임 받기를 소망 하며 사는 사람을 우리는 소명인 이 라고 부릅니다. 욕심을 통하여 우리는 점점 쓸모 없고 쓸데 없는 사람 이 되어갑니다. 그러나 소명을 통하 여 우리는 점점 쓸모 있고 쓸데 있는 사람이 되어갈 것입니다.
사탄에게 속아 부질없는 것 에 욕심이나 부리며 쓸모 없고 하찮 은 삶 살아가는 사람이 되지 말고 이사야와 같이 하나님께 헌신하여 이 땅에서 천국의 기쁨을 누리면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를 믿는 궁극적인 목적 은 구원입니다. 구원을 가장 단순한 언어로 표현한다면 그것은 '잘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잘 사는 것은 항상 기뻐하고 늘 감사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우리를 향한 사탄의 뜻과 소원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과 반대되는 것으로 우리가 항상 슬퍼하며 불평과 원망 가운데 이 땅 에서도 지옥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천국과 천국의 삶을 주셨건만 우리는 사탄의 속임 수에 속아넘어가 하나님이 주신 천 국과 그 천국에서의 삶을 잃어버리 고 구원받지 못한 지옥의 삶을 살아 가고 있는 것입니다.
사탄이 우리에게서 천국을 빼앗기 위하여 한 일은 우리로 하여 금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거스 르고 범죄 하도록 한 것입니다. 사 탄은 누구보다도 죄의 삯이 사망이 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인간을 사망으로 내 몰 기 위하여 그는 아담과 하와를 유혹 하여 선악과를 따먹게 하였던 것입니다.
사탄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거스르고 범죄케 하기 위하여 우리 내면 깊은 곳에 있는 욕심을 이용하였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들에게 죄의 삯은 사망이며 그 죄 의 뿌리는 욕심이라는 사실을 강조 하여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잘 살려고 하면 항상 기쁘고 늘 감사한 천국의 삶을 살려고 하면 죄의 문제를 극복 해야만 하고 죄의 문제를 극복하려 고 하면 우리 내면 속에 있는 욕심 의 문제를 극복할 수 있어야만 합니다.
죄와 욕심의 문제를 해결하 지 못한다면 우리는 그 누구도 구원 을 얻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고 아담과 하 와에게 말씀하신 것은 욕심을 버리 고 말씀대로 사는 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선악과 나무 열매는 그 어느 나무의 열매보다도 보암직하고 먹음직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보암직하 고 먹음직한 나무를 택하여 그것을 먹지 말라고 명령하신 이유는 욕심 을 극복하는 것이 우리의 삶에서 있 어서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었 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들에게 욕심을 다스리며 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사탄은 언제 나 우리들에게 그 욕심을 채우면서 살라고 말합니다.
사람들은 사탄에게 속아 욕 심을 채우는 것이 행복하게 잘 사는 것이라고 잘못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탄에게 속는 것입니다. 욕심을 채우는데 행복과 구원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 을 버리고 극복하는데 우리의 구원 과 행복이 있는 것입니다.
참으로 항상 기뻐하고 늘 감사하는 삶을 살려고 하면 욕심을 버려야만 합니다. 욕심을 버리지 않 고는 절대로 우리는 구원에 이를 수 없습니다. 그 욕심이 끝없이 우리를 범죄케 할 것이고 끝없이 우리의 삶 을 초라하게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욕심을 버림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첫째는 '버림'이고
둘째는 '씀'입니다. '버림'과 '씀'의 차이는 '벌음'에 있습니다. '버림'은 버리고 벌지 않은 것입니다. '씀'은 계속 벌면서 쓰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버림'은 버는 것을 부정하 나 '씀'은 버는 것을 부정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전자는 불교적인 발상과 방 법이요 후자는 기독교적인 발상과 방법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불 교와 기독교의 매우 중요한 차이인 것입니다. 전자는 우리가 욕심을 내는 것들을 부정하고 부인함으로 욕 심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후자는 우리 인간이 욕심을 내는 것들 다시 말해서 물질과 명예와 권력과 자리 같은 것들을 부인하고 부정하지 않습니다. 그것을 부정하 고 부인함으로 욕심의 문제를 해결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바르게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쓰고 사용하는 것을 통하여 욕심의 문제 를 해결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불교 가 사찰을 세상을 떠나 깊은 산 속 에 짓는데 반해 기독교는 세상 한 복판에 교회를 세우는 것에서 우리는 그와 같은 중요한 차이를 찾아 낼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욕심을 버 리기 위하여 하여야 할 일은 쓰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모든 것들을 주를 위하여 바르게 쓰는 훈련을 하는 것입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린 바와 같이 우리 기독교는 버는 것과 이루는 것을 부정하지 않 습니다. 다만 버는 것과 이루는 것 의 목적을 구별합니다. 자신의 욕심 을 채우기 위하여 버는 것과 이루는 것은 부정합니다. 그러나 주를 위하여 바르게 쓰기 위하여 벌고 이루는 것은 긍정합니다.
바르게 그리고 열심히 벌고 바르게 그리고 열심히 써야 합니다. 비만은 건강에 가장 나쁜 것 중에 하나입니다. 비만의 문제를 해결하는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먹지 않고 살을 빼는 것입니다.
둘째는 먹을 것 다 먹고 열심히 운 동을 하여 빼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전자의 방법으로 비만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나 그것은 옳지 않은 방법입니다. 그렇게 해서 살을 빼는데 성공을 하였다고 해도 그것은 건강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오히려 비만보다 더 나쁜 허약함을 우리에게 가져다 줄 것입니다.
잘 먹고 열심히 운동하는 것이 건강을 위하여 가장 중요하듯 바르게 그리고 열심히 벌고 그리고 바르게 그리고 열심히 쓰는 것이 건 강한 삶을 위하여 중요합니다.
저는 승동 교회에서 처음으 로 담임 목회를 시작할 때 '돈 잘 쓰기 운동'이라는 것을 하였습니다. 일년 예산이 7천만원이었을 때 돈 잘 쓰기 운동으로 모은 돈이 일년에 천만원이 넘었으니 교인들이 얼마나 열심히 그 운동에 참여하였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매달 백만원 이상 을 모아서 실로암 병원에 맹인 개안 수술을 하는데 보냈었습니다.
저희 아이들도 그 운동에 참여하였습니다. 한 달에 500원씩 회비를 작정하였는데 아이들은 모두 나름대로 그 돈을 벌어야만 했는데 큰 아이는 이불을 펴는 것으로 500 원의 회비를 마련했고
둘째 아이는 손님들이 오실 때 신발을 잘 정리하는 일을 하는 것으로 500원의 회비 를 마련했습니다.
그때 막내 아이는 네 살이 었는데 500원 회비를 벌기 위하여 뒷짐까지 지고 고민(?)하다가 결국 근사한 일을 찾아냈습니다. 저희 막 내 아이가 제안한 일은 '빈방에 불 끄기'이었습니다.
그 '돈 잘 쓰기' 운동이 지금은 '이삭 줍기 운동'으로 발전되 어 계속되고 있습니다. 저희 아이들 은 어려서부터 '돈 잘 쓰기 운동'과 '이삭 줍기 운동'을 하여 오고 있습니다. 제가 이 운동을 통하여 자신 과 아이들 그리고 여러 교우들을 가 르치려고 하는 것은 '바르게 씀'입니다. 그 '바르게 씀'을 통하여 욕심 의 문제를 해결하고 그 욕심의 문제 를 해결함으로 사탄의 굴레를 벗어 나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구원 의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르게 씀'을 위하여 '돈 잘 쓰기 운동'이나 '이삭 줍기 운동 '보다 제가 더 중히 여기는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온전한 십일조 생활'입니다. 더 러 실수를 하는 경우가 있지만 나름 대로 최선을 다하여 사과 한 알이 들어와도 그것의 십일조를 떼려고 합니다.
저는 온전한 십일조 생활이 욕심을 버리고 바르게 씀을 위하여 가장 중요한 운동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십일조 생활을 요구하시는 가장 중요한 목적 이 거기에 있기 때문입니다.
낙하산을 타는 특전대원들 이 낙하산을 타기 위하여 훈련을 하는 곳이 있습니다. 그곳의 높이가 약 10미터 정도 된다고 하는데 그 높이는 우리 인간이 가장 공포를 느 끼는 높이라고 합니다. 그곳에서 점 프를 할 수 있게 되면 비행기에서도 점프를 할 수 있게 된답니다.
저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십일조가 우리 인간이 돈에 대하여 가장 공포를 느끼는 액수가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10미터 높이에서 뛰어 내릴 수 있으 면 비행기에서도 뛰어 내릴 수 있듯 이 온전한 십일조 생활이 가능하다 면 드디어 비행기에서 점프하기 보 다 더 어려운 욕심으로부터의 점프 도 가능하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저는 그와 같은 생각이 전혀 엉뚱한 생각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정말 온전한 십일조 생활 을 통하여 욕심을 버리는 훈련이 되 고 있음을 느끼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와 저의 가족은 이제 어 느 정도 십일조 훈련이 되었습니다. 십일조 훈련의 목적은 십일조에 있 지 않습니다. 그것은 특전대의 점프 훈련이 점프 훈련 자체에 있지 않고 비행기에서의 점프에 있는 것과 마 찬가지입니다.
점프의 높이를 나름대로 높 이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십일조 생활이 아니라 십이조 생활, 십이조 생활이 아니라 십삼조 생활로 훈련 과 운동의 강도를 높이려고 나름대 로 애쓰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의 궁극적인 목표는 그와 같은 것이 아 닙니다. 저의 궁극적인 목표는 유산 안 남기기입니다. 세상을 떠날 때 하나님께서 내 몫으로 주셨던 모든 것들을 다시 하나님께로 돌려 드리 고 하나님께 가는 것입니다.
제 신앙의 높이가 정말로 유산을 안 남길 정도까지 되게되면 물질로부터 완전히 자유 하는 삶을 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유산을 안 남길 것을 결심하게 되면 유산을 많 이 남기기 위하여 물질의 종 노릇 하는 어리석음을 부리지 않게 될 것 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정말 제가 그와 같은 삶을 사는데 까지 발전할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저는 나름대 로 최선을 다하여 노력할 것입니다. 그리고 기도할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저에게 그와 같은 삶을 살 수 있는 능력을 주실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삶을 사는 것은
둘째치고 그와 같은 삶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행복해 지는 지 모릅니다.
돈을 바르게 쓰는 훈련을 통하여 제가 동시에 훈련하고 연습 하려고 하는 것은 명예와 권력에 대 한 욕심으로부터의 자유입니다. 돈 을 부정하고 부인하지 않듯 명예와 권력까지도 부인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할 수만 있다면 바른 길과 방법 을 통하여 명예와 권력도 얻으려고 노력하겠습니다. 그리고 그와 같은 것들을 하나님과 하나님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바르게 잘 쓰고 사용해 보고 싶습니다.
그리하여 드디어 먹든지 마 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할 수 있는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되고 싶습니다. 내가 교인들에게 설교하고 강의하던 모든 것을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저는 돈과 명예와 권력을 부인하지 않지만 그것으로 제 삶의 목표를 삼고 싶지 않습니다. 그것을 욕심의 대상으로 삼고 싶지 않습니다. 그것에 얽매여 그것의 종노릇하 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제 삶의 목 표를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 에 두고 싶습니다. 죄 된 육신을 벗 기 전까지 그것은 아마 불가능하겠 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 여 그 믿음의 경주를 해 보고 싶습니다.
승리의 면류관은 하나님 나라에서 받을 수 있겠지만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 그 목표를 향하여 달 려가는 것만으로 충분히 행복할 것 입니다. 넘어지면 또 일어서고 실패 하면 그것을 부끄러워하면서 그러나 그 믿음의 경주를 끝까지 포기하지 아니하고 최선을 다하여 달려가고 싶습니다.
나와 사람들이 욕심내는 모 든 것들을 나 자신만을 위하여 쓰지 아니하고 주를 위하여 쓰고 싶습니다.
그러므로 내 평생의 소원은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쓰임 받고 싶습니다.
세상에 아무리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다고 할지라도 그 물질이 하나님께 쓰임을 받지 못한다면 그 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니라 그 물질은 일만 악의 뿌리가 되어 우리를 구원의 삶 에서 멀어지게 할 것입니다.
세상에 아무리 좋은 지위와 권세를 누린다고 하여도 그것이 하나님께 쓰임 받지 못한다면 그것은 결국 악한 것이 되어 훗날 하나님께 심판 받을 때 그 명예와 권세가 나 를 고발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와 같은 삶은 하나님께 심판 받기 이전에도 내 삶의 발목을 잡아 그것 때문에 항상 우울 하고 답답하고 기쁨이 없는 삶을 살 아가게 할 것입니다. 주를 위하여 쓰지 못하는 많은 물질과 명예가 멍 에가 되어 나를 짓누를 것입니다.
저는 그와 같은 삶을 살고 싶지 않습니다. 돈과 명예와 권세를 부인하여 산 속으로 도망하지 않고 이 땅에 살면서도 그와 같은 것들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 하는 삶을 살아 그 모든 것을 주를 위하여 바르게 쓰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하며 자신의 모 든 것을 주를 위하여 쓰면서 살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이와 같은 물 으심과 부르심 앞에 '내가 여기 있 나이다. 나를 보내주소서'라고 대답 하고 헌신할 이사야와 같은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누가 오늘 이 하나님의 부 르심과 물으심 앞에 응답하시겠습니 까? 저는 전혀 강요받지 않은 제자유스러운 의지와 판단을 가지고 이 하나님의 부르심과 물으심에 응답하 겠습니다. 저는 우리 동안교회 교인 들 중에 이사야와 같이 하나님께 쓰 임 받는 일에 기꺼이 헌신하는 사람 들이 많아 질 수 있기를 고대하고 기도합니다.
온전한 십일조 생활을 통하 여 물질에 대한 욕심을 버리며 물질 과 명예와 권세와 자리들을 자신의 욕심을 채우는데 사용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뜻과 영광을 이루는데 쓰 면서 사는 사람들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 쓰임 받기를 소망 하며 사는 사람을 우리는 소명인 이 라고 부릅니다. 욕심을 통하여 우리는 점점 쓸모 없고 쓸데 없는 사람 이 되어갑니다. 그러나 소명을 통하 여 우리는 점점 쓸모 있고 쓸데 있는 사람이 되어갈 것입니다.
사탄에게 속아 부질없는 것 에 욕심이나 부리며 쓸모 없고 하찮 은 삶 살아가는 사람이 되지 말고 이사야와 같이 하나님께 헌신하여 이 땅에서 천국의 기쁨을 누리면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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