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관제로 (빌2:16-18)
본문
빌립보 교회 성도들을 향한 사도 바울의 간절한 소원이 여기에 있다.
1,헛되지 않은 경주와 수고 " 지난 아시아 올림픽 경주 때의 일이다. 그때 임 춘애 선수가 삼관왕에 오른적이 있다. 그 세걔의 금메달 중 하나는 인도의 선수가 트랙을 돌때 실수만 하지 않 았다면 인도 선수가 일등을 하는 것인데 실수를 함으로 말미암아 임 춘애 가 금메달을 목에 건 것이 되었다. 인도의 선수는 참으로 열심히 달렸는데도 일등으로 들어 왔는데도 한 번 의 실수 때문에 실격을 당하고 만 일이 있었다. 지금 사도 바울은 16절에서 자기의 생활을 마치 실제적인 경주자의 심정을 가지고 이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잘 달려 왔는데 이제 남은 트랙에서 실격을 당하는 어리석음이 없기를 위한 심정으로 이 말을 하고 있다. 수고도 마찬가지다. 사도 바울은 천막 만드는 일은 많이 했었다. 천막도 만들때 잘 만들어야지 조그만 실수가 그 천막을 불량품으로 만들 수도 있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자기의 수고가 끝까지 불량품이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이 말을 하고 있다. 실격의 경주자나 불량품의 인생이 괴고 싶지 않음이 사도 바울의 심정이다. 이왕 가는 길 이왕 받은 사명을 좀더 확끈하게 감당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날에 두달란트 다섯 달란트 등 많은 것을 남기어서 즉 자랑거리를 가지고 주님 앞에 서 있고 싶은 것이 사도 바울의 믿음이었다. 빌립보 교회 성도가 곧 사도 바울에겐 큰 자랑거리였다.
2,관제로 드릴찌라도 " 17절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봉사위에 내가 나를 관제로 드릴찌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 여기에 사도 바울께서 "내가 나를 관제로 드릴찌라도"라는 말을 하고 있다. "관제 = 관제란 무었을 말하나 이 관제는 라는 말로 구약에 약 59회 기록되어 있고 신약에서는 전 로 기록되 있다. 관제는 독립된 어떤 제사가 아니라 번제의 보조적 제물로 드려진 것이다 즉 관제로 바쳐지는 제물은 거의가 포도주였다. 번제로 제물을 불태워 여호와 하나님께 드릴때 즉 번제물이 한참 불에타서 향기 로운 향이되고 있을 때 이를 더 아름답게 그리고 완전하게 하기 위한 보조적 제물로서 번제물 위에 포도주가 부어지는 것을 관제라고 말한다. 이 관제라는 용어는 성경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이교도들의 제사법에도 있는 말이다. 그 방법도 비슷했다. 그래서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이 구약을 모르는 전적인 이방의 사람들로 구성되 있을지라도 관제라는 용어는 익히 잘 알 수 있었다. 지금 17절에서 사도 바울이 말하고 있는 내용은 빌립보 성도들은 믿음으로 봉사로 원망과 시비가 없는 즉 흠과 티가 없는 아름다운 생활이 번제물처럼 하나님께 기쁨으로 바쳐지고 있었다. 17절을 다시 본다.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봉사 위에 내가 나를 관제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 다 같이 17절을 다시 보자. 무슨 뜻인가 무었을 말하고 있는 것인가 조끔 어려운 구절이기는하지만 너무도 아름다운 구절이다. 이 17절 한구절이 이 빌립보 교회의 담임교역자였던 사도 바울과 지금 이 교회의 성도들과의 관계가 어떠한가를 잘 나타내고 있는 말씀이다.
3,이와 같이 너희도 기뻐하고 나와 함께 기뻐하라 좀더 설명을 가하면 빌립보 성도들은 원망과 시비가 없는 흠과 티가 없는 믿음과 봉사의 삶이 산 제물이 되어 하나님께 바쳐지고 있고, 그 위에 사도 바울은 관제로 그 제물들을 더 화려하게 그리고 완전하게 하고 있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기에서 관제를 좁더 설명할 필요가 있어 좁더 부언을 한다. 관제는 본 제물을 더 향내나게하는 부차적 제물인 것만은 사실이다.
그런데 관제로 부어지는 포도주는 그 본제물만 더 향내나게하고 포도주 자체는 수증기가 되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마는게 특징이다. 마치 촛불이 어두운 방안을 환하게 밝히기 위하여 자기 자체는 타서 형체도 없이 녹아지는 것처럼 사도 바울은도 이름도 빛도 없이 흔적도 없이 빌립보 성도들의 믿음의 생활의 믿거름이 되기를원하고 있음이다. 그러면서 빌립보 성도들에게 18절의 말씀을 부탁한다. "이와 같이 너희도 기뻐하고 나와 함께 기뻐하라" 이와 같이 하라는 것이다 나와 함께 하라는 것이다. 이 말은 14절 15절의 말씀과 같이 원망과 시비가 없는 삶도 살아야 하고 또 흠과 티가 없는 완전한 삶을 살아야 한다. 그러나 거기서 만족하지 말고 "이와 같이" 사도 바울과 같이 , 믿음의 형제와 자매들을 위하여 관제로 드려지는 희생의 삶으로까지 전진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것도 기뻐하고 기뻐함으로 할 수 있기를 권면하고 있다. 성경은 우리들을 가리켜 세상의 빛이라고 했다. 세상의 소금이라고 했다. 양초가 타서 녹아야만 빛을 발할 수 있고 소금은 물에 녹아지지 않으면 제 맛을 낼 수가 없다. 빛이 빛으로 소금이 소금으로의 사명을 다하는 길은 오직 하나 자기의 희생이 없고는 불가능함을 일러줌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갈보리의 십자가! 사랑의 십자가 ! 사랑으로 희생으로 자기의 보혈을 관제로 십자가상에 남김 없이 부어 주신 희생때문에 인류에게 구원의 기쁜 소식에 주어졌고 또 사도 바울과 같은 관제의 삶이 오늘의 저와 여러분이 이렇게 예수를 믿는 믿음의 사람 이 되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 관제의 사랑이 오늘 저와 어러분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와 같이 너희도 기뻐하고 나와 함께 기뻐하라"고… 돌아 오는 주일은 성례주일로 지킨다. 주님께서 살 찢으시고 피흘려 희생과 사랑을 주신 것을 기념하면서 드리는 기념에배의 날이다. 우리모두 주님을 생각하면서 단 한 주간이라도 주님처럼 그리고 사도 바울처럼 관제의 삶을 가져 보자. 단 한주간만이라도 남들에게 사랑을 실천해 보자. 남들에게 그리스도의 희생을 나눠주자. 그래서 성례 주일에 떡과 잔을 받을 때 빌립보 교회 성도들 처럼 "이와 같이 너희도 기뻐하고 나와 함께 기뻐하라"고 하신 그 기쁨이 여러분들의 마음에 충만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
1,헛되지 않은 경주와 수고 " 지난 아시아 올림픽 경주 때의 일이다. 그때 임 춘애 선수가 삼관왕에 오른적이 있다. 그 세걔의 금메달 중 하나는 인도의 선수가 트랙을 돌때 실수만 하지 않 았다면 인도 선수가 일등을 하는 것인데 실수를 함으로 말미암아 임 춘애 가 금메달을 목에 건 것이 되었다. 인도의 선수는 참으로 열심히 달렸는데도 일등으로 들어 왔는데도 한 번 의 실수 때문에 실격을 당하고 만 일이 있었다. 지금 사도 바울은 16절에서 자기의 생활을 마치 실제적인 경주자의 심정을 가지고 이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잘 달려 왔는데 이제 남은 트랙에서 실격을 당하는 어리석음이 없기를 위한 심정으로 이 말을 하고 있다. 수고도 마찬가지다. 사도 바울은 천막 만드는 일은 많이 했었다. 천막도 만들때 잘 만들어야지 조그만 실수가 그 천막을 불량품으로 만들 수도 있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자기의 수고가 끝까지 불량품이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이 말을 하고 있다. 실격의 경주자나 불량품의 인생이 괴고 싶지 않음이 사도 바울의 심정이다. 이왕 가는 길 이왕 받은 사명을 좀더 확끈하게 감당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날에 두달란트 다섯 달란트 등 많은 것을 남기어서 즉 자랑거리를 가지고 주님 앞에 서 있고 싶은 것이 사도 바울의 믿음이었다. 빌립보 교회 성도가 곧 사도 바울에겐 큰 자랑거리였다.
2,관제로 드릴찌라도 " 17절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봉사위에 내가 나를 관제로 드릴찌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 여기에 사도 바울께서 "내가 나를 관제로 드릴찌라도"라는 말을 하고 있다. "관제 = 관제란 무었을 말하나 이 관제는 라는 말로 구약에 약 59회 기록되어 있고 신약에서는 전 로 기록되 있다. 관제는 독립된 어떤 제사가 아니라 번제의 보조적 제물로 드려진 것이다 즉 관제로 바쳐지는 제물은 거의가 포도주였다. 번제로 제물을 불태워 여호와 하나님께 드릴때 즉 번제물이 한참 불에타서 향기 로운 향이되고 있을 때 이를 더 아름답게 그리고 완전하게 하기 위한 보조적 제물로서 번제물 위에 포도주가 부어지는 것을 관제라고 말한다. 이 관제라는 용어는 성경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이교도들의 제사법에도 있는 말이다. 그 방법도 비슷했다. 그래서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이 구약을 모르는 전적인 이방의 사람들로 구성되 있을지라도 관제라는 용어는 익히 잘 알 수 있었다. 지금 17절에서 사도 바울이 말하고 있는 내용은 빌립보 성도들은 믿음으로 봉사로 원망과 시비가 없는 즉 흠과 티가 없는 아름다운 생활이 번제물처럼 하나님께 기쁨으로 바쳐지고 있었다. 17절을 다시 본다.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봉사 위에 내가 나를 관제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 다 같이 17절을 다시 보자. 무슨 뜻인가 무었을 말하고 있는 것인가 조끔 어려운 구절이기는하지만 너무도 아름다운 구절이다. 이 17절 한구절이 이 빌립보 교회의 담임교역자였던 사도 바울과 지금 이 교회의 성도들과의 관계가 어떠한가를 잘 나타내고 있는 말씀이다.
3,이와 같이 너희도 기뻐하고 나와 함께 기뻐하라 좀더 설명을 가하면 빌립보 성도들은 원망과 시비가 없는 흠과 티가 없는 믿음과 봉사의 삶이 산 제물이 되어 하나님께 바쳐지고 있고, 그 위에 사도 바울은 관제로 그 제물들을 더 화려하게 그리고 완전하게 하고 있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기에서 관제를 좁더 설명할 필요가 있어 좁더 부언을 한다. 관제는 본 제물을 더 향내나게하는 부차적 제물인 것만은 사실이다.
그런데 관제로 부어지는 포도주는 그 본제물만 더 향내나게하고 포도주 자체는 수증기가 되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마는게 특징이다. 마치 촛불이 어두운 방안을 환하게 밝히기 위하여 자기 자체는 타서 형체도 없이 녹아지는 것처럼 사도 바울은도 이름도 빛도 없이 흔적도 없이 빌립보 성도들의 믿음의 생활의 믿거름이 되기를원하고 있음이다. 그러면서 빌립보 성도들에게 18절의 말씀을 부탁한다. "이와 같이 너희도 기뻐하고 나와 함께 기뻐하라" 이와 같이 하라는 것이다 나와 함께 하라는 것이다. 이 말은 14절 15절의 말씀과 같이 원망과 시비가 없는 삶도 살아야 하고 또 흠과 티가 없는 완전한 삶을 살아야 한다. 그러나 거기서 만족하지 말고 "이와 같이" 사도 바울과 같이 , 믿음의 형제와 자매들을 위하여 관제로 드려지는 희생의 삶으로까지 전진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것도 기뻐하고 기뻐함으로 할 수 있기를 권면하고 있다. 성경은 우리들을 가리켜 세상의 빛이라고 했다. 세상의 소금이라고 했다. 양초가 타서 녹아야만 빛을 발할 수 있고 소금은 물에 녹아지지 않으면 제 맛을 낼 수가 없다. 빛이 빛으로 소금이 소금으로의 사명을 다하는 길은 오직 하나 자기의 희생이 없고는 불가능함을 일러줌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갈보리의 십자가! 사랑의 십자가 ! 사랑으로 희생으로 자기의 보혈을 관제로 십자가상에 남김 없이 부어 주신 희생때문에 인류에게 구원의 기쁜 소식에 주어졌고 또 사도 바울과 같은 관제의 삶이 오늘의 저와 여러분이 이렇게 예수를 믿는 믿음의 사람 이 되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 관제의 사랑이 오늘 저와 어러분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와 같이 너희도 기뻐하고 나와 함께 기뻐하라"고… 돌아 오는 주일은 성례주일로 지킨다. 주님께서 살 찢으시고 피흘려 희생과 사랑을 주신 것을 기념하면서 드리는 기념에배의 날이다. 우리모두 주님을 생각하면서 단 한 주간이라도 주님처럼 그리고 사도 바울처럼 관제의 삶을 가져 보자. 단 한주간만이라도 남들에게 사랑을 실천해 보자. 남들에게 그리스도의 희생을 나눠주자. 그래서 성례 주일에 떡과 잔을 받을 때 빌립보 교회 성도들 처럼 "이와 같이 너희도 기뻐하고 나와 함께 기뻐하라"고 하신 그 기쁨이 여러분들의 마음에 충만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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