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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일어 서리라 (행3:1-10)

본문

저는 요즘에 사람에게 있어서 건강함이 얼마나 큰 복인가를 피부를 느끼며 살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마찬가지이겠지만 아픈데 없이, 건강한 몸으로 생활할 수 있다는 것, 여호와 하나님께 나아와 예배드리고, 내 영혼의 때를 준비할 수 있다는 것이 큰 복인 줄 알아야 합니다. 건강하지 못하면, 즉 병이 들거나, 온전한 몸이 아니면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습니다. 지난 주간에 고대병원에 심방을 갔다 왔습니다. 뇌를 쪼개에서 뇌 수술을 한 사람 암에 걸려서 투병중에 있는 사람, 항암치료를 받느라 머리가 다 빠진 사람 금방 다 죽어 간다고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는 사람, 숨이 가픈 사람등 여러 사람을 볼수 있었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저는 생각을 했습니다. 할 수 있는 건강 있을 때 열심히 하자. 나중에 병이 들면 하고 싶어도 할 수 없게 될 날이 올 것이다.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건강가지고 일할 수 있고, 건강가지고 주님 섬길 수 있고, 건강 가지고 가고 싶은데 갈 수 있고, 하고 싶은데 할 수 있으니 말이다. 오늘 읽었던 성경을 보면 이렇게 건강하지 못한 한 사람이 나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가는 길목에 늘 앉아서 구걸하며 지내야 하는 한 사람이 나옵니다.
그런데 그런 그에게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의 일들이 일어나 우리들을 감동케 합니다. 이 사건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님이 무엇이라 말씀하고 있는지 보겠습니다.
1.앉아 있습니다. 1앉아 있기에 1절에, 남들은 날마다 성전에 올라가는데 그는 올라가지 못합니다. 눈을 떴기에 남들은 올라가는 것을 보는데 자기는 올라가고 싶어도 마음대로 올라가지 못하니 얼나마 답답하겠으며, 그렇게 하지 못하는 자신의 신세가 얼마나 처량하게 여겨지겠습니까 2절에, 다른 사람의 신세를 져야 되는 모습을 말합니다. 즉 자신의 힘으로는 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남들이 좀 도와주어야 하는 그런 연약한 사람입니다. 3절에, 다른 사람에게 구걸을 해야 했습니다. 왜 구걸해야 했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살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억지로, 마지못해서 하는 것입니다. 할 수 없어서 하는 것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듣는 여러분과 저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내 모습은 어떻습니까 오늘 본문의 말씀처럼 앉아 있는 내 모습들을 발견하지 않습니까 우리들이 보면 앉아 있는 모습들이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남들은 하는데 나는 하지 못하고 있다면 그것은 앉아 있는 모습입니다. 남들은 잘 되는데 왜 나는 안되는지, 남들은 하면 되는데 나는 왜 해도 안되는지. 나도 남들처럼 좀 부요하게 살고 싶고, 나도 남들처럼 좀 잘 해보고 싶고, 나도 남들처럼 잘 하려고 하는데 안되는 모습을 보면서 얼마나 답답해하십니까 사실 그렇지 않겠습니까 나도 열심히 신앙생활하고 싶고, 나도 열심히 예배를 드리고 싶고, 나도 열심히 기도도 하고 싶고, 나도 열심히 충성하고 싶은데 안되니 답답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길이 있습니다. 오늘 이런 답답함을 이길 수 있는 일들이 일어나기 바랍니다. 다른 사람의 신세를 질 수밖에 없는 그런 모습을 볼 때에 좀 부끄럽기도 하고, 창피하기도 하 고, 자존심이 상하기도 하는 이런 앉아 있는 모습도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남들의 도움 없이도 그렇게 잘 하건만 왜 나는 다른 사람이 신경을 써 주어야 하고, 다른 사람이 시켜야 하고, 다른 사람의 권유로 할 수밖에 없는 내 모습 때문에 자존심 상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길이 있습니다. 오늘 이런 자존심 상함을 이길 수 있는 일들이 일어나기 바랍니다. 하기는 하는데 마지못해서, 할 수 없어서, 억지로 하는 이런 앉은뱅이의 모습도 있습니다. 기쁨으로 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자원함으로 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고 싶어서 하면 얼마나 잘될까요
그런데 하기는 합니다. 그러나 거기에 기쁨이 없습니다. 은혜도 안됩니다. 의욕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과연 그렇습니까 이런 분들도 너무 실망하지 마십시오. 억지로 아니라 자원함으로, 할 수 없어서가 아니라 하고 싶어서 견딜 수 없는 마음으로 하게되는 일들이 일어날 줄 믿습니다.
2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앉은뱅이가 그렇게 앉은뱅이로 앉아 있으면서 남들의 도움을 받으며, 구걸하고자 해서 그렇게 앉아 있는 것이 아닙니다. 무엇이라 말합니까 2절에, ‘나면서 앉은뱅이된 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경우는 내가 앉은뱅이가 되고 싶어서가 아니라 아예 날 때부터 그런 모습으로 났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남들은 하지만 그는 하고 싶어도 할 수 없게 된 것이고, 다른 사람의 신세를 져야 했고, 구걸해야 먹고 살 이런 지경이 된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 여러분들에게 앉은뱅이된 여러 모습들은 내가 원해서가 아니라 아예 날 때부터 우리들이 앉은뱅이로 났기 때문에 그런 모습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 사람들은 태어 날 때부터 죄를 가지고 태어납니다. 죄가 있는 곳에는 앉은뱅이와 같은 이런 삶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속성 자체가 죄로 물들어 있기 때문에 온전한 구실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날 때부터 온전한 모습으로, 즉 죄 없이 태어났다면 지금 우리들은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날 때부터 갖고 나는 이 죄 때문에 지금 우리들의 삶은 염려하게 되고, 걱정하게 되고, 원망하고 불평하게 되고, 낙심하고 좌절하게 되고, 불안하며 두려워하게 되고, 나 혼자는 할 수 없고 도움을 받아야 할 수 있는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여러분들이 많은 부분 중에 이 날 때부터 앉은뱅이 된 이것 때문에 앉아 있을 수밖에 없는 그런 모습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을 듣는 가운데 우리들이 날 때부터 갖고 태어난 앉은뱅이의 모습들이 고쳐질 줄 믿습니다. 그리고 반드시 우리들은 앉아 있는 그 모습들 중에서 일어나 걸어야 할 줄 믿습니다. 도중에 앉은뱅이 된 사람도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나오지 않지만 우리 사람들 중에 보면 도중에 앉은뱅이, 즉 중도장애를 입은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사고로 인하여, 질병으로 인하여 장애를 입어 앉은뱅이 된 사람들이 있습니다. 즉 영적으로 우리들 중에 앉은뱅이가 되어서 남들은 하는데 하지 못하는 사람, 다른 사람의 권유와 간청으로 할 수밖에 없는 사람, 하기는 하지만 할 수 없이, 마지못해서 하는 이런 앉은뱅이된 사람들이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고 인해서 그런 모습이 된 경우도 있고, 질병으로 그런 모습으로 된 경우도 있습니다. 사고로 인하여 그렇게 된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내가 잘못해 건, 다른 사람이 잘못했건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상처를 받은 사람, 사람 때문에 하지 못하고, 해도 안되고, 하기는 하나 억지로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질병으로 인하여 앉은뱅이가 된 사람도 있습니다. 나는 원치 않았지만 찾아오는 고난 때문에 그 고난이 너무 힘이 들어앉아 있을 수밖에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나는 원치 않지만 이런 일, 저런 일, 이런 환경 저런 환경으로 인하여 일어서서 하고 싶지 않는 그런 상태가 된 분이 있습니다. 하려고 하지만 되어지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제 기력이 없어서 더 이상 할 수 없기에 마냥 앉아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얼마나 답답하십니까 얼마나 힘드십니까 얼마나 괴로우십니까 얼마나 자존심 상하십니까 얼마나 아프십니까 그러나 오늘 말씀 듣는 가운데, 기도하는 가운데, 찬송하는 가운데, 예배 가운데 그런 사람들이 일어나 걸을 줄 믿습니다. 아니 일어나 걸어야 할 줄 믿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3그렇다고 마냥 앉아 있을 수만은 없는 일 아닙니까 앉아 있어봐야 나만 답답할 뿐이요, 앉아 있어봐야 나만 손해일 뿐입니다. 아니 나에게 발전이 없고, 이득이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 앉은뱅이로 사는 모습들이 있습니까 그러나 이제부터가 중요합니다. 당신도 일어나 걸을 수 있습니다. 본문의 말씀을 봅시다(7-8절)
2.일어나 걸었습니다(7-8)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말씀해주고자 하는 부분이 바로 이 부분입니다. 나면서 앉은뱅이된 사람도 일어나 걸었다. 바로 오늘 여러분과 저가 일어나 걸을 수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1일어나 걸었다는 것은 스스로 할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도움이나 간섭 없이도 그 혼자의 힘으로 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처럼 그도 그런 자리에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실제 8절에 보면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는 성전으로 들어갔습니다. 얼마나 간절히 바라던 소원이었겠습니까 얼마나 이루고 싶은 것이었겠습니까
그런데 그렇게 하게 되었다는 것이 일어나 걷는 모습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들도 일어나 걷게될 줄 믿습니다. 나면서 앉은뱅이 되게 한 그 모든 것에서 이제자유함을 얻게 되는 일들이 일어날줄 믿습니다. 아니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중도에 앉은뱅이된 것, 즉 과거의 아픈 기억, 상처, 괴로움에서 놓임을 받아 걷기도 하며,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미하는 자유함, 즐거움으로 회복될 줄 믿습니다. 아니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이제는 중도에 사고로, 질병으로 앉은뱅이 된 모든 모습에서, 부상에서, 고침을 받아 일어나 걷게되는 역사가 일어날줄 믿습니다. 아니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더 이상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던 모습에서 이제 하고자 하는 일들을 이룰 수 있는 일어나 걷게되는 일들이 일어날 줄 믿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간섭이나, 도움 때문에가 아니라 나 혼자의 힘으로 일어나 걷는, 하고 싶어서 안달이 나는, 즐거움으로, 기쁨으로 하는 이런 일어나 걷는 일들이 일어날줄 믿습니다. 내가 누구에게서 받았던 상처이든, 아픔이든, 괴로움이던, 불행이던 이제 그 모든 앉은모습속에서 일어나 걷게되는 행복한 일들이 일어나게 될 줄 믿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해라고 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알아서 하고, 하지 말라고 해도 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그런 자원함의 마음, 즐거움의 마음으로 세워질 줄 믿습니다. 당신도 일어나 걸을 수 있습니다. 남들이 일어나 걷는 모습만 보고 부러워할 것이 아니라 바로 일어나 걷는 주인공이 당신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니 내가 일어나 걸어야 합니다. 남들 신앙생활 잘하는 것하고 나하고 무슨 상관 있습니까 남들 기도생활 열심히 하고 그렇지 못하는 나하고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내가 일어나 걷는 주인공이 되어야 합니다.
2그러나 문제는 내 힘으로는 일어나 걸을 수 없습니다. 내 힘으로 일어나 걸을 수 있으면 벌써 일어나 걸었을 것입니다. 앉아 있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일어나고 싶지만 내 힘으로, 또 다른 사람의 힘으로도 일어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앉은뱅이가 일어나 걷습니다.
그런데 일어나 걸음에 자기의 힘으로 걷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베드로와 요한의 힘으로도 일어나 걸을 수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무엇이라 말합니까 6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어라”하고 일으키니 힘을 얻고 일어나 걸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일으켜 세워주시는 분은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의 능력으로 일어나 걷게 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름이라고 하는 것은 그 사람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는 능력이 있습니다. 즉 예수님에게는 능력이 있습니다. 왜 입니까 (마 1: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예수님은 구원자가 되십니다. 일으켜 세우시는 분이 되십니다. 무너진 마음을 일으켜 세우시는 분은 예수님이 하십니다. 무너진 가정을 일으켜 세우시는 분은 예수님이 하십니다. 무너진 교회를 일으켜 세우시는 분은 예수님만이 하십니다. 성경에 이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걷는 수많은 사건들, 사람들이 나옵니다. 38년된 병자가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었습니다. 소경도, 앉은뱅이도, 혈루증 앓았던 사람도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었습니다. 죽었던 나사로도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었습니다. 남편 다섯을 둘만큼 불행한 사람도 예수의 이름으로 다시 일어나 걸었습니다. 남들에게 손가락질 당했던 세리장 삭개오도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었습니다. 예수의 이름에는 구원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의 이름에는 살리는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의 이름에는 새롭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슬픈 마음 있습니까 예수 이름 믿으면 기쁨 마음으로 변화될 줄 믿습니다. (91장 1절) 슬픈 마음 있는 사람 예수 이름 믿으면 영원토록 변함없는 기쁜 마음 얻으리 예수의 이름은 세상의 소망이요 예수의 이름은 천국의 기쁨일세 (91장 2절) 거룩하신 주의 이름 너희 방패 삼아라 환난 시험 당할 때에 주께 기도 드려라 예수의 이름은세상의 소망이요 예수의 이름은 천국의 기쁨일세 (91장 3절) 존귀하신 주의 이름 우리 기쁨 되도다 주의 품에 안길 때에 기뻐 찬송 부르리 예수의 이름은세상의 소망이요 예수의 이름은 천국의 기쁨일세 (91장 4절) 우리 갈 길 다 간 후에 보좌 앞에 나아가 왕의 왕께 경배하며 면류관을 드리리 예수의 이름은세상의 소망이요 예수의 이름은 천국의 기쁨일세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이 못해도 괜찮습니다. 여러분이 안되어도 괜찮습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을 수 있습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3믿고 일어서야 합니다. 아무리 예수의 이름에 능력이 있고, 구원이 있다고 할지라도 그 이름을 믿고 의지하는 믿음의 의지가 없으면 일어나 걸을 수 없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잘 보십시오. 베드로와 요한이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어라’고 하면서 오른손을 잡고 일으킬 때에 ‘예수의 이름’ 능력 없음을 안다면 일어날 수 없습니다. 만약 그 믿음이 없었다면 그 사람이 그럴 것입니다. ‘여보시오. 내가 나면서 앉은뱅이 된 사람이요,
그런데 그 말에 무슨 능력이 있어서 일어 날수 있겠소’하고 일어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어라’하는 믿음을 가지고, ‘나는 일어서야 한다.’ ‘나는 일어서리라’는 믿음과 믿음의 의지가 없으면 일어나 걸을 수 없습니다. 이 사람은 자기의 모습, 자기의 환경을 쳐다보고 예수의 이름을 부정하고, 예수님의 능력을 과소평가하고 앉아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의 방법으로는 말도 안되지만, 그러나 베드로와 요한이 주었던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일어나 걷게 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여러분 중에 나면서 앉은뱅이 된 모습, 중도에 앉은뱅이된 여러 모습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 모습들이 어떤 모습들이던 그런 상황 가운데 ‘예수의 이름으로 나도 일어서리라’라는 믿음을 가지고 나아가면 어떤 앉은뱅이의 모습이든 그곳에서 일어나 걸을 줄 믿습니다. 이것은 이래서 안되고, 저것은 저래서 안된다고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을 수 없다고 세상적인 이치와 방법으로 예수의 이름에 제한을 두지 마십시오.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을 수 있나’라고 믿음을 약화시키지 마십시오. 내 모습과 내 환경을 바라보면 일어날 수 없지만 예수의 이름에 능력 있음을 믿고 의지하고, 나는 일어서리라는 믿음의 의지를 가지고 나갈 때 일어나게 되는 일들이 있을 줄 믿습니다. 내 힘과 내 능력과 내 방법을 의지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나는 일어서리라는 믿음의 의지를 가집시다. 반드시 일어나게 될 줄 믿습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마치는 말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에게는 앉아 있는 모습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일어나 걸읍시다. 내 힘으로는, 사람의 힘으로는 일어나 걸을 수 없지만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원수가 날 향해와도 주가 주신 능력을 의지할 때에 일어나 걷게 된다는 사실을 믿고, 이제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걷는 여러분의 모습, 삶이 되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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