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떤 사람인가? (창37:18-28)
본문
요셉을 구덩이에 던지고 팔아먹는 형들(18-28) 읽었던 본문을 보자면 정말 비정함을, 살벌함을 볼수가 있습니다. 어떻게 되었던 한 형제가 아닌가
그런데 그 형제중에 요셉이 아버지의 사랑을 받으며,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다고 해서 미워하여 그를 죽여 구덩이에 던져 넣으려고 하는 모습들을 볼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들이 이 말씀을 통해서 어떤 믿음의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인가를 알수 있습니다.
1.남이 잘될때에 시기하지 말고, 나도 그렇게 되어야 하겠다는 도전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요셉의 형제들이 요셉이 그들에게 오는 것을 보고 잡아 죽이고자 했습니다. 왜 같은 형제를 죽이고자 했겠습니까 그 이유를 4,5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4절-아버지의 사랑을 받는 것을 보고 그를 미워했다고 했습니다. 5절-꿈을 꾸는 것을 보고 더욱 미워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잡아 죽이려고 합니다. 우리가 무엇을 발견할 수 있습니까 요셉이 아버지의 사랑을 받는 것은 당연하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것 또한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만큼 하니 그가 더 사랑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무엇인가를 한 사람을 보면 그냥 얻어진 것이 없습니다. 그것을 얻을 만큼 행한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요셉은 형제들은 자기들은 사랑받지 못하는데 요셉이 사랑을 받는 것을 보고 시기가 일어나고, 질투의 마음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도 누가 사랑을 받고, 칭찬을 받는 모습을 보면 나도 저렇게 해서, 아니 더 열심히 해서 사랑받고, 칭찬을 받아야 하겠다는 믿음의 동기요, 도전을 삼아야 합니다. 시기하고, 질투해봤자 소용이 없습니다. 내가 그런 복을 받는 주인공이 되도록 기도하고 참여합시다. 사랑 받는 것은 내가 하기에 달려있습니다. 내가 그만큼 하기에 그만큼 사랑을 누리며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지 않는 성도들이 누가 있습니까
그런데 게 중에는 하나님의 큰 사랑을 누리며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하나님의 앞에서 어떻게 하든지 믿음으로 열심히 하기 때문입니다. (마 11:12)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잠 8:17)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약 4:8)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케 하라 (마 7:7)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마 7:8)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그렇습니다. 침노하는 자의 것입니다. 간절히 찾는자가 누리는 법입니다. 가까이 하는 자가 얻게 됩니다.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자가 갖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어떻게 하라고 하십니까 (벧후 1:10)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 즉 언제든지 실족지 아니하리라 (벧후 1:11) 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 게 주시리라 하나님의 나라는 어떤 곳입니까 (갈 6:7)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갈 6:8)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님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님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갈 6:9)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갈 6:10)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
2.어떤 생각을 갖느냐가 그 인생을 만들어 간다는 것입니다. 18절의 말씀을 보면 요셉의 형제들이 요셉을 죽이려고 꾀했다고 했습니다. 꾀 했다는 말은 요셉을 잡아 죽이고자 계획하고, 기회만 있으면 그렇게 하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요셉이 그들에게 제 발로 걸어 들오온 것이었습니다. 생각이 무섭습니다.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느냐가 그 사람을 그렇게 만들어 갑니다. 오늘 어떤 집사님의 간증을 들었습니다(박인숙).
그런데 생각이 얼마나 무섭는가 하는 것을 실감있게 들었습니다. 자기 마음속에 가졌던 그 무서운 생각이 그 삶을 그렇게 만들어 가더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좋은 생각을 가지십시오. 선한 생각을 가지십시오. 믿음의 생각을 가지십시오.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십시오. 적극적인 생각을 가지십시오. 왜 그렇습니까 생각한 대로 되기 때문입니다. (사 14:24) 만군의 여호와께서 맹세하여 가라사대 나의 생각한 것이 반드시 되며 나의 경영한 것이 반드시 이루리라 (렘 6:19) 땅이여 들으라 내가 이 백성에게 재앙을 내리리니 이것이 그들의 생각의 결과라 그들이 내 말을 듣지 아니하며 내 법을 버렸음이니라 그러니 어떤 생각을 가져야 하겠습니까 (사 43:18)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 (마 16:23)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 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사람의 일로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의 일을 생각해야 합니다. (롬 8: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롬 8:7)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고후 10:5)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니 (히 12:3)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하여 죄인들의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자 를 생각하라 그 좋은 예가 가나안을 정탐하고 돌아온 사람들의 생각이었습니다. 똑같이 정탐하고 돌아온 사람들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안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내생각으로는 안된지만 하나님으로는 된다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로 이런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을 때 그 긍정적인 일들을 이루어 나가게 하십니다.
3.넘어 뜨리려 하지 말고, 일으켜 세우고 살리려 하는자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요셉을 향한 두가지의 자세가 나옵니다. 요셉의 형제 대부분은 19절-‘서로 이르되’요셉을 잡아 죽이려 합니다.
그런데 요셉의 형제들 중에서는 르우벤과 유다는 요셉을 죽이려 하는 것이 아니라 살리려 합니다. 21-22절은 요셉의 형제 중에 르우벤은 다른 형제들이 잡아 죽여 구덩이 던지려 하는 것을 말려서 죽이지말자고 하여 만류합니다. 그래서 죽임을 당하여 구덩이 던져진 것이 아니라 죽지 않고 구덩이에 던져 졌습니다. 그래서 22절에서 르우벤은 ‘구원하여 아비에게로 돌리려 함이라’라고 합니다. 25절 이하에 보면 또 유다의 요셉을 향한 구원의 일을 위하여 안간힘을 쓰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이 두사람의 힘씀으로 인하여 죽을 위기에 처한 요셉이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애굽의 보디발의 집에 은 20에 팔려가게 되는 일들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들이 이 말씀을 보면서 무엇을 알수 있겠습니까 우리들이 어떤자로 쓰임을 받아야 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기왕 쓰임을 받으려면 죽이는자 되지 말고, 죽어 있는자, 죽어가는 자를 살리는 자들로 쓰임을 받는자 됩시다.
그렇게 되려면 내가 희생을 해야 됩니다. 본문에도 보면 요셉을 살리려는 르우벤과 유다의 모습이 나와 있는데 이 두 사람도 희생을 감수하고 이런 일들을 하는 것입니다. 넘어지게 하는자가 아니라 일으켜 세우는자가 됩시다. (고전 10:32)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 (고전 10:33)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나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고 많은 사람 의 유익을 구하여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하라
그런데 이렇게 살리는자가 되려면 희생하지 않고는 살릴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셔서 하나님의 자녀로, 영생이 있는 자로 살게 하시기 위해서 어떻게 하셨습니까 (빌 2: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빌 2: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빌 2:7)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빌 2: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 심이라 그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십자가를 지시기 까지 얼마나 큰 갈등과 아픔이 있었습니까(기도) 이것은 나 스스로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믿음의 역사를 이루어 나가기 위하여는 육신의 것을 버려야 합니다. 그것을 희생하고, 손해를 보아야 그런 축복의 역사를 이루어 나가게 됩니다. 그래서 성경은 무엇이라 말씀하고 있습니까 (요 12: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우리는 육신의 것은 손해를 보는 한이 있더라도 영적인 것은 얻어야 합니다. 세상의 것은 잃는 한이 있더라도 하나님의 것은 얻어야 합니다. 왜입니까 세상의 것은 잠간의 것이요, 하늘의 것은 영원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형제중에 요셉이 아버지의 사랑을 받으며,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다고 해서 미워하여 그를 죽여 구덩이에 던져 넣으려고 하는 모습들을 볼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들이 이 말씀을 통해서 어떤 믿음의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인가를 알수 있습니다.
1.남이 잘될때에 시기하지 말고, 나도 그렇게 되어야 하겠다는 도전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요셉의 형제들이 요셉이 그들에게 오는 것을 보고 잡아 죽이고자 했습니다. 왜 같은 형제를 죽이고자 했겠습니까 그 이유를 4,5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4절-아버지의 사랑을 받는 것을 보고 그를 미워했다고 했습니다. 5절-꿈을 꾸는 것을 보고 더욱 미워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잡아 죽이려고 합니다. 우리가 무엇을 발견할 수 있습니까 요셉이 아버지의 사랑을 받는 것은 당연하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것 또한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만큼 하니 그가 더 사랑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무엇인가를 한 사람을 보면 그냥 얻어진 것이 없습니다. 그것을 얻을 만큼 행한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요셉은 형제들은 자기들은 사랑받지 못하는데 요셉이 사랑을 받는 것을 보고 시기가 일어나고, 질투의 마음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도 누가 사랑을 받고, 칭찬을 받는 모습을 보면 나도 저렇게 해서, 아니 더 열심히 해서 사랑받고, 칭찬을 받아야 하겠다는 믿음의 동기요, 도전을 삼아야 합니다. 시기하고, 질투해봤자 소용이 없습니다. 내가 그런 복을 받는 주인공이 되도록 기도하고 참여합시다. 사랑 받는 것은 내가 하기에 달려있습니다. 내가 그만큼 하기에 그만큼 사랑을 누리며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지 않는 성도들이 누가 있습니까
그런데 게 중에는 하나님의 큰 사랑을 누리며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하나님의 앞에서 어떻게 하든지 믿음으로 열심히 하기 때문입니다. (마 11:12)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잠 8:17)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약 4:8)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케 하라 (마 7:7)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마 7:8)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그렇습니다. 침노하는 자의 것입니다. 간절히 찾는자가 누리는 법입니다. 가까이 하는 자가 얻게 됩니다.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자가 갖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어떻게 하라고 하십니까 (벧후 1:10)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 즉 언제든지 실족지 아니하리라 (벧후 1:11) 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 게 주시리라 하나님의 나라는 어떤 곳입니까 (갈 6:7)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갈 6:8)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님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님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갈 6:9)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갈 6:10)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
2.어떤 생각을 갖느냐가 그 인생을 만들어 간다는 것입니다. 18절의 말씀을 보면 요셉의 형제들이 요셉을 죽이려고 꾀했다고 했습니다. 꾀 했다는 말은 요셉을 잡아 죽이고자 계획하고, 기회만 있으면 그렇게 하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요셉이 그들에게 제 발로 걸어 들오온 것이었습니다. 생각이 무섭습니다.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느냐가 그 사람을 그렇게 만들어 갑니다. 오늘 어떤 집사님의 간증을 들었습니다(박인숙).
그런데 생각이 얼마나 무섭는가 하는 것을 실감있게 들었습니다. 자기 마음속에 가졌던 그 무서운 생각이 그 삶을 그렇게 만들어 가더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좋은 생각을 가지십시오. 선한 생각을 가지십시오. 믿음의 생각을 가지십시오.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십시오. 적극적인 생각을 가지십시오. 왜 그렇습니까 생각한 대로 되기 때문입니다. (사 14:24) 만군의 여호와께서 맹세하여 가라사대 나의 생각한 것이 반드시 되며 나의 경영한 것이 반드시 이루리라 (렘 6:19) 땅이여 들으라 내가 이 백성에게 재앙을 내리리니 이것이 그들의 생각의 결과라 그들이 내 말을 듣지 아니하며 내 법을 버렸음이니라 그러니 어떤 생각을 가져야 하겠습니까 (사 43:18)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 (마 16:23)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 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사람의 일로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의 일을 생각해야 합니다. (롬 8: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롬 8:7)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고후 10:5)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니 (히 12:3)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하여 죄인들의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자 를 생각하라 그 좋은 예가 가나안을 정탐하고 돌아온 사람들의 생각이었습니다. 똑같이 정탐하고 돌아온 사람들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안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내생각으로는 안된지만 하나님으로는 된다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로 이런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을 때 그 긍정적인 일들을 이루어 나가게 하십니다.
3.넘어 뜨리려 하지 말고, 일으켜 세우고 살리려 하는자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요셉을 향한 두가지의 자세가 나옵니다. 요셉의 형제 대부분은 19절-‘서로 이르되’요셉을 잡아 죽이려 합니다.
그런데 요셉의 형제들 중에서는 르우벤과 유다는 요셉을 죽이려 하는 것이 아니라 살리려 합니다. 21-22절은 요셉의 형제 중에 르우벤은 다른 형제들이 잡아 죽여 구덩이 던지려 하는 것을 말려서 죽이지말자고 하여 만류합니다. 그래서 죽임을 당하여 구덩이 던져진 것이 아니라 죽지 않고 구덩이에 던져 졌습니다. 그래서 22절에서 르우벤은 ‘구원하여 아비에게로 돌리려 함이라’라고 합니다. 25절 이하에 보면 또 유다의 요셉을 향한 구원의 일을 위하여 안간힘을 쓰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이 두사람의 힘씀으로 인하여 죽을 위기에 처한 요셉이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애굽의 보디발의 집에 은 20에 팔려가게 되는 일들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들이 이 말씀을 보면서 무엇을 알수 있겠습니까 우리들이 어떤자로 쓰임을 받아야 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기왕 쓰임을 받으려면 죽이는자 되지 말고, 죽어 있는자, 죽어가는 자를 살리는 자들로 쓰임을 받는자 됩시다.
그렇게 되려면 내가 희생을 해야 됩니다. 본문에도 보면 요셉을 살리려는 르우벤과 유다의 모습이 나와 있는데 이 두 사람도 희생을 감수하고 이런 일들을 하는 것입니다. 넘어지게 하는자가 아니라 일으켜 세우는자가 됩시다. (고전 10:32)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 (고전 10:33)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나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고 많은 사람 의 유익을 구하여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하라
그런데 이렇게 살리는자가 되려면 희생하지 않고는 살릴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셔서 하나님의 자녀로, 영생이 있는 자로 살게 하시기 위해서 어떻게 하셨습니까 (빌 2: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빌 2: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빌 2:7)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빌 2: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 심이라 그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십자가를 지시기 까지 얼마나 큰 갈등과 아픔이 있었습니까(기도) 이것은 나 스스로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믿음의 역사를 이루어 나가기 위하여는 육신의 것을 버려야 합니다. 그것을 희생하고, 손해를 보아야 그런 축복의 역사를 이루어 나가게 됩니다. 그래서 성경은 무엇이라 말씀하고 있습니까 (요 12: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우리는 육신의 것은 손해를 보는 한이 있더라도 영적인 것은 얻어야 합니다. 세상의 것은 잃는 한이 있더라도 하나님의 것은 얻어야 합니다. 왜입니까 세상의 것은 잠간의 것이요, 하늘의 것은 영원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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