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절

TOP
DOWN

나는 부할이요 생명이니 (요11:17-44)

본문

예수님이 세상에 계실때 물론 많은 사람을 사랑하셨지만 특별히 그중에도 더욱 아끼시고 사랑하시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바로 나사로와 그의 두 여동생 마리아,마르다입니다. 요한11장은 나사로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과정을 세세하게 보여주고 있는데 이미 여러분들이 본 내용을 잘 아시는터이라 설명을 생략하기로 하겠습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나사로가 죽었고 장사지내어 썩어 냄새나는 시체를 예수님께서 다시 살리셨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시 사건이 기록된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 이유는 부활의 진리를 말하기 위해서 입니다. 구원받은 사람은 원천적으로 죽었던 사람이며 예수님에 의해 다시 살림받은 존재들이라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 본 사건을 세세하게 기록했던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는 처음에는 중생에 촛점이 맞춰 있지만 그 결말에는 부활에 촛점이 맞춰 있습니다. 이 진리를 본문에서 아주 명확하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1. 먼저 사람들은 다 죽은자들이라는 것을 본분은 말해 주고 있습니다. 로마서에 보면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했고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또한 엡2장에는 모든 사람이 죄와 허물로 죽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이라는 존재는 반드시 구원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한결같이 구원을 원하는 사람은 자기가 죽은 자임을 고백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살아 있는 내가 어떻게 죽은 자라는 것을 알 수 있겠습니까 본문을 보니 죽은자들에게서 나타나는 4가지 특징이 있는데.
첫째, 죽은자들은 모든 기능들이 정지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죽었다는 것은 다음 세가지 기준에 의해 확정되는데 첫째가 뇌의 활동 정지요, 둘째가 심장 박동의 정지요, 셋째가 호흡의 정지입니다. 이와같이 세가지 기능이 정지되었을때 일반적으로 죽었다고 합니다. 죽은 자가 말하는 것 보았습니까 마리아와 마르다가 그토록 슬피 울건만 나사로는 유규무언이었습니다. 움직이는 것 보았습니까 역시 마리아 마르다가 제아무리 흔들어 보았지만 꼼짝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기능이 정지되었기 때문입니다. 귀의 기능이 죽은 사람을 귀머거리라고 하며 입의 기능이 죽은 사람을 벙어리라고 합니다. 눈의 기능이 죽은 사람을 소경이라고 하고 다리의 기능이 죽은 사람을 앉은뱅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이들을 고쳐주신 것도 일종의 부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적으로도 죽었다는 말이 무슨 뜻입니까 영의 기능은 하나님과의 교제하는 기관인데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과 교통하지 못하는 것을 영적으로 죽었다고 말합니다. 즉 하나님과 단절이 영적으로 죽은 상태인 것입니다. 육체에는 오감이라는 감각기관이 있어서 모든 사물을 이 오감을 통해서 인식합니다. 또한 혼의 감각으로는 희노애락의 감정과 사고하고 추리할 수 있는 이성이 있습니다. 그러면 영의 감각은 무엇입니까 이는 하나님의 생명인데 이 생명이 없으니 영으로서는 죽은 존재일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죽어있는 사람에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기를 기대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하늘의 별따기보다 더 어려운 일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볼때 나사로라는 인물은 바로 모든 인류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둘째, 죽은 자들에게는 반드시 썩은 냄새가 납니다.(39) 아무리 아리따웠던 양귀비라 할지라도 홍안이 썩어갈때 냄새가 났으며 아무리 사랑스러운 자식이라 할지라도 죽으면 석어 냄새가 나는 법입니다. “정치가 썩었다” “사회가 썩었다” 하는 말들은 무슨 뜻입니까 뭔가 구역질 나는 냄새가 난다는 말이 아닙니까 정치인들은 어떻게 하든 정권을 잡으려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사회는 저혼자 살겠다고 권모술수에 아첨에다 온갖 비리를 일삼고 있습니다. 이것이 썩었다는 증거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나는 냄새가 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역시 그 사람도 죽은 사람입니다. 같은 냄새가 그 몸에 배여 있기 때문에 썩은 냄새를 맡을 수가 없을 뿐입니다. 신문 방송에서 매일같이 추하고 더러운 기사가 홍수같이 쏟아져 나오는데도 새상 사람들은 그것을 더럽게 여기지 않으며 썩은 냄새조차 맡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도 역시 같이 죽은 자들이고 같은 냄새를 풍기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셋째, 죽은 자들은 반드시 장사됩니다.(17) 나사로도 무덤에 장사되었습니다. 죽은자는 반드시 장사합니다. 땅에 매장하든지, 불에 화장하든지, 물속에 수장하든지.어쨋든 장사를 합니다. 장사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어떠한 것속에 가둬두고 나오지 못하게 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그러면 세상 사람들이 죽었다는 증거가 무엇입니까 그들은 어떤것에 매장되어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욕정이라는 무덤에 장사되었고, 어떤 사람은 명예, 돈버는 것, 권력, 취미.등에 매장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있어서 무엇이 무덤입니까 헤어나오지 못하는 것이 있으면 그것이 바로 무덤입니다. 나사로는 4일동안 무덤에 있다가 나왔지만 오늘날 어떤 사람들은 수십년동안 죄의 무덤속에서 매장되어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넷쩨, 죽은 자들은 반드시 결박되어 있습니다.(44) 저는 시신을 염할때 시신을 사정없이 동여 매는 것을 보았습니다. 본문에도 보니 시체를 동여맸다고 했습니다. 결박은 행동의 불가능과 부자유를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세상사람들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려면 그들이 과연 자유한가 못한가를 살펴보면 알 수 있습니다. 과연 그들은 자유합니까 자유란 하고 싶으면 하고 싫으면 안하는 것이 자유입니다. 그러면 세상 사람들이 다 이렇게 살고 있습니까 죄에 대해서 생각해 봅시다. 교도소에 있는 사람들이 다 오고 싶어서 왔겠습니까 아닙니다. 원치 않지만 자기도 모르는 사이 죄를 짓게 되고 도 그 결과로 온 사람들입니다. 바울도 고백하기를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다. 원하는 선을 행해지지 아니하고 원치 않는 악만 행해진다”고 탄식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현주소입니다. 사람은 결코 자유한 사람이 없습니다. 세상사람들은 형형색색 그 나름대로 죄의 사슬에 묶여 있습니다. 이러한 점은 죽은 상태라는 점을 명백하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2. 드러면 죽은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지금 나사로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치료입니까 수정입니까 아니면 교육, 참선, 입산수도.입니까 아닙니다. 생명만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생명을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부활이 필요합니다. 생명의 문제는 다른 것으로는 치료 할 수도 없습니다. 오직 부활만이 필요합니다. 예수님게서 나사로가 죽은 후에 오신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님의 생명은 죽은 사람을 구원하는데 있지 결코 병을 고치거나 수정하는데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죽은 인간의 영에게 무엇이 필요합니까 다른것 필요 없습니다 오직 영적인 부활만이 필요할 뿐입니다.
3. 드러면 이 부활과 생명은 누구에게 얻습니까 15절을 보니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즉어도 살겠고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선언은 본문의 클라이 막스요 나사로의 두 자매뿐 아니라 온인류에게 그토록 절실히 갈망했던 복음중의 복음입니다. 이 선언으로 인해 인류는 물과 성령님으로 죽었던 생명이 다시 살아나는 부활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현인들이 이 부활과 생명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몸부림 쳐왔습니까 석가는 고행과 참선을 통해 이것을 얻으려고 했지만 결국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공자는 도덕과 윤리를 통해, 마호멧은 율례와 규례를 통해서 이것을 얻으려고 했지만 역시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이토록 갈망하고 갈망하던 부활생명이 예수로 인해 해결되었으니 이것이 바로 복음중 복음이 아닙니까 이제 나사로가 부활의 생명을 얻은 후 부활을 축하하고 주님께 감사하는 조촐한 잔치가 열렸습니다. 마르다는 부엌에서 일하느라고 바빴고 마리아는 향유를 바쳤습니다. 그리고 나사로는 앉은자중에 있어 말씀을 듣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얼마나 아깝습니까 부활을 체험한 사람이라면 당연히 연설을 하든 간증을 하든 하옇튼 뭔가를 해야지 이렇게 앉아만 있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성경을 보니 오히려 이일로 인해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나사로가 한것이 무엇입니까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저 앉아만 있었을 뿐입니다. 그랬더니다른 죄인들이 예수를 믿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된것입니다. 구원받은 한 죄인이 이와같이 주님앞에 앉아 있기만 했더니 하나님은 그것으로 이미 영광을 받으셨습니다.
여기 주님앞에 앉아 있다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이는 예배를 의미합니다. 우리는 부족함 투성이라도 다른 사람처럼 봉사도 못하고 드리지도 못하지만 전에 죽었다가 냄새나던 내가 오늘 주님앞에 에배드리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주님은 이미 영광받으시고 우리는 부활을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주님의 부활을 어떻게 증거하고 있습니까 바울처럼, 베드로처럼 그렇게 하지는 못하지만 조용히 주님앞에 앉아 말씀을 들을 수는 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전에 나사로와 같이 기능이 정지되고 썩어 냄새나고 매장되고 결박된 죽은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부활하신 주님께서 우리를 부활시키셨고 그의 부활이 나의 부활이 되었습니다. 이 놀라운 사실을 여러분은 어떻게 증거 하시겠습니까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29,555 건 - 273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