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다 (창3:1-14)
본문
유대인의 어휘에는 "여호와 하나님이 있느냐"는 어휘조차 없다고 한다. 한 청년이 칼빈을 찾아와서 "하나님이 정말 계시냐" 고 물었더니, "너 같은 질문을 하는자를 위해 지옥이 있다"고 말했더니 혼이나서 갔 다고 한다. 모세가 호렙산에 이르렀을 때 하나님의 사자가 떨기나무 가운데 나타 나시고 또 그를 떨기나무에 붙은 불이 꺼지지 않고 활활타오르는 광경 을 목도하고는 두려움에 떨며 얼굴을 가지고 주께로부터 소명을 받았다. 이때, 모세는 "제가 백성들에게 가서 하나님이 누구시라고 전해야 될 까요", 다시 말하면 "하나님, 당신은 도대체 누구십니까" 라고 여쭈 었다. 그 질문에 대한 하나님, 당신은 도대체 누구십니까"라고 여쭈었다. 그 질문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이 곧 "나는 나다"(I am that I am)이다.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규명해 보려는 인간의 질문은 만고에 끊이지 않 고 계속해서 내려왔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하나님을 "비피동의 동자"(Unmoved Mover) 라고 했 고, 스피노자는 하나님을 "자기원인"또는 "제일원인"이라고 말했으며, 헤겔은 "절대정신",틸릭은 "존재 그 자체"라고 표현하였다. 그러나 어 찌 인간의 필설로 하나님을 전부 규정할 수 있으리요. 옛 번역에는 본문 말씀을 "영원지존자"라고 했고, 개역성경은 "나는 스스로 있는자"라고 했고, 요즘 번역에는 "나는 나다" (에예 에셀 에 예헤이)라고 했다. 모세에게 밝히신 하나님의 정체, 이 말씀의 의미는 무엇인가
1.첫째로 창조주 하나님이라는 말이다. 하나님은 누가 조작한 분이 아니시다. 영원히 스스로 존재하고 역사 하시며 경륜으로 섭리하시는 영원지존자시다. 천지를 창조하신 분 그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다. 창조는 천지창조와 계속창조로 구분할 수 있다. 천지창조는 '빠라"라고 하고, 계속창조는 '아사"라고 한다. 없는 것 에서 없는 것을 가지고 있게하는 것 그것이 빠라다. 모세에게 나타나 신 하나님이 바로 천지창조를 하신 조물주시다. 주께서는 말씀으로 천지만물 삼라만상을 지으셨다. 뿐더러, 창조행 위는 일회로 역사하고 중단된 것이 아니고 계속 작업되고 있다. 그 계속창조가 [아사]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 (히13:8) 생생 이 역이라는 말이 있다. 씨가 자라서 싹이나고 싹이 자라서 꽃이되고 꽃이 영글어서 열매되고 그리고 낙엽되어 떨어지는 생육화성은 하나님의 계속창조하심이다. 과학이론으로도 우주는 지금도 어머어마하게 팽창하고 있다고 한다. 인간이나 천지만물의 기기묘묘한 생리는 하나님의 프로노이아, 즉 하나님의 깊은 사랑의 계획이다. 하나님의 창조행위는 성령님을 통해서 믿음이 있는 곳에 더욱 의도적으 로 진행된다. 고로, 에베소 5장 18절의 [성령님충만함을 받아라]는 희랍어의 동사는 세가지 특징이 그 곳에 있는데 큰 은혜가 된다. 즉 그것은
(1) 현재진 행형 동사다
(2) 수동태다
(3) 복수형(plural)동사다. 즉, 다시말하면 "성령님충만함을 받으라"는 말씀은 "성령님충만함을 계속하라"는 말씀이다. 불란서의 어느 목사는 나무 세 그루 이상을 심지 않으면 세계를 베풀 지 않았다고 한다. 하나님의 창조역사에의 동참이다. 옛 말에 [천행건]이라는 말이 있다. 하나님은 아직도 건강하게 행사 하시니 지혜자는 쉬지말고 동참하라는 말이다. 주께서는 지금도 사특한 심령을 개량하시고 절망적 운명을 개조하시 며, 병들어 썩은 심신을 치유하시고 오염된 세계를 개창하시려 활약하 심을 믿지 모세에게 현현하신 하나님은 생생이시다.
2.둘째로 이 말씀은 격려사다. 애굽의 형세나 바로의 권세나 이스라엘의 형편이나 자신의 행색으로 나 이모저모로 따져볼때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구출할 자신이도저해 서질 않았다. 자신감을 잃고 용기를 상실한 모세에게 "나는 영원지존자니라"라는 음성이 들렸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격려사다. 사람은 자신의 안전, 더욱이 생명의 위험이 닥칠때 두려워한다. 또 존재에의 불안도 있다. 가인은 하나님에게서 쫓겨나서 우왕좌왕 유 리하는 자가 되었을 때 남들이 자기를 죽일까봐 벌벌 떨었다(창4:14) 날치기 야곱은 형 에서의 복수심이 전율했다 (창32:7). 히브리 사람 들은 가나안의 완력에 겁을 먹었고(민14:9), 데반사람 엘리바스는 밤 도깨비의 환각을 무서워했고, 열등한 군졸들은 골리앗의 덩치에 떨었다. 이방인들은 또,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를 염려하고 세속인들은 내일일을 염려하며 산다. 죄를 이기지 못하고는 두려움을 극복할 수 없다. 죄는 영적, 도덕적, 육체적 사망을 낳는다. 죄는 죽음의 세력을 지배 한다. 그런고로 믿음없는 자는 죄의 두려움의 지배를 받는다. 죄를 품은자는 용사라도 겁쟁이가 되고, 의인은 허약해 뵈도 골리앗 앞에선 다윗처럼 당당하다. 아비멜렉과 그의 종들은 그들의 행위가 하나님을 어겼음을 알고 무서 워했다 (창20:8). 그리고 심판대 앞에선 죄인들은 공포에 사로잡힌다 (신32:25,겔27:35).
그러므로 행악자는 계시록을 두려움으로 읽고 믿는자는 소망으로 말 세론을 읽는다. 불안의 존재, 그렇지만 죄보다 강한 것이 있다. 하나님의 은혜다. 그리고 구원을 믿는 믿음이다. 성경에 "염려하지 말 라 두려워말라"는 말씀이 365번 기재되어 있다고 하니, 날마다 담대 히 이겨나가자, 웨슬레는 이렇게 설교했다. "여러분! 털끝만한 죄도 용서받지 않았으면, 그 죄는 태산보다 무겁 게 나를 짓누르지만, 설혹 태산처럼 큰 죄를 지었다해도 예수 그리스도로 용서받으면, 그 죄는 먼지보다도 가볍습니다.할렐루야!" 낙담하고 있는 모세에게 호렙산에 현현하신 하나님은 창조주 하나님 인 내가 너를 도울 것이니, 모세야! 일어서 담대해 행하라고 격려하셨다. 이 말씀은 절망하는 인생에 대한 격려사다. 정수리로부터 발끝까지 성한 곳이라도는 한군데도 없이 병든 욥의 문 둥병 같은 세대, 간질병 걸린 사람처럼 경련을 일으키고 비틀거리는 군중들, 회칠한 무덤같은 종교계, 능력이 떠난 믿음, 사랑이 사라진 심령들, 화인맞은 양심같은 세태, 우글거리는 독사의 자식들! 이런 세 태를 바라보고 때로는 사명자도 낙담을 한다. "주여! 제가 누구관대, 감히." 호렙산에 나타나신 창조주 하나님의 격려사를 듣자! 정녕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1.첫째로 창조주 하나님이라는 말이다. 하나님은 누가 조작한 분이 아니시다. 영원히 스스로 존재하고 역사 하시며 경륜으로 섭리하시는 영원지존자시다. 천지를 창조하신 분 그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다. 창조는 천지창조와 계속창조로 구분할 수 있다. 천지창조는 '빠라"라고 하고, 계속창조는 '아사"라고 한다. 없는 것 에서 없는 것을 가지고 있게하는 것 그것이 빠라다. 모세에게 나타나 신 하나님이 바로 천지창조를 하신 조물주시다. 주께서는 말씀으로 천지만물 삼라만상을 지으셨다. 뿐더러, 창조행 위는 일회로 역사하고 중단된 것이 아니고 계속 작업되고 있다. 그 계속창조가 [아사]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 (히13:8) 생생 이 역이라는 말이 있다. 씨가 자라서 싹이나고 싹이 자라서 꽃이되고 꽃이 영글어서 열매되고 그리고 낙엽되어 떨어지는 생육화성은 하나님의 계속창조하심이다. 과학이론으로도 우주는 지금도 어머어마하게 팽창하고 있다고 한다. 인간이나 천지만물의 기기묘묘한 생리는 하나님의 프로노이아, 즉 하나님의 깊은 사랑의 계획이다. 하나님의 창조행위는 성령님을 통해서 믿음이 있는 곳에 더욱 의도적으 로 진행된다. 고로, 에베소 5장 18절의 [성령님충만함을 받아라]는 희랍어의 동사는 세가지 특징이 그 곳에 있는데 큰 은혜가 된다. 즉 그것은
(1) 현재진 행형 동사다
(2) 수동태다
(3) 복수형(plural)동사다. 즉, 다시말하면 "성령님충만함을 받으라"는 말씀은 "성령님충만함을 계속하라"는 말씀이다. 불란서의 어느 목사는 나무 세 그루 이상을 심지 않으면 세계를 베풀 지 않았다고 한다. 하나님의 창조역사에의 동참이다. 옛 말에 [천행건]이라는 말이 있다. 하나님은 아직도 건강하게 행사 하시니 지혜자는 쉬지말고 동참하라는 말이다. 주께서는 지금도 사특한 심령을 개량하시고 절망적 운명을 개조하시 며, 병들어 썩은 심신을 치유하시고 오염된 세계를 개창하시려 활약하 심을 믿지 모세에게 현현하신 하나님은 생생이시다.
2.둘째로 이 말씀은 격려사다. 애굽의 형세나 바로의 권세나 이스라엘의 형편이나 자신의 행색으로 나 이모저모로 따져볼때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구출할 자신이도저해 서질 않았다. 자신감을 잃고 용기를 상실한 모세에게 "나는 영원지존자니라"라는 음성이 들렸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격려사다. 사람은 자신의 안전, 더욱이 생명의 위험이 닥칠때 두려워한다. 또 존재에의 불안도 있다. 가인은 하나님에게서 쫓겨나서 우왕좌왕 유 리하는 자가 되었을 때 남들이 자기를 죽일까봐 벌벌 떨었다(창4:14) 날치기 야곱은 형 에서의 복수심이 전율했다 (창32:7). 히브리 사람 들은 가나안의 완력에 겁을 먹었고(민14:9), 데반사람 엘리바스는 밤 도깨비의 환각을 무서워했고, 열등한 군졸들은 골리앗의 덩치에 떨었다. 이방인들은 또,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를 염려하고 세속인들은 내일일을 염려하며 산다. 죄를 이기지 못하고는 두려움을 극복할 수 없다. 죄는 영적, 도덕적, 육체적 사망을 낳는다. 죄는 죽음의 세력을 지배 한다. 그런고로 믿음없는 자는 죄의 두려움의 지배를 받는다. 죄를 품은자는 용사라도 겁쟁이가 되고, 의인은 허약해 뵈도 골리앗 앞에선 다윗처럼 당당하다. 아비멜렉과 그의 종들은 그들의 행위가 하나님을 어겼음을 알고 무서 워했다 (창20:8). 그리고 심판대 앞에선 죄인들은 공포에 사로잡힌다 (신32:25,겔27:35).
그러므로 행악자는 계시록을 두려움으로 읽고 믿는자는 소망으로 말 세론을 읽는다. 불안의 존재, 그렇지만 죄보다 강한 것이 있다. 하나님의 은혜다. 그리고 구원을 믿는 믿음이다. 성경에 "염려하지 말 라 두려워말라"는 말씀이 365번 기재되어 있다고 하니, 날마다 담대 히 이겨나가자, 웨슬레는 이렇게 설교했다. "여러분! 털끝만한 죄도 용서받지 않았으면, 그 죄는 태산보다 무겁 게 나를 짓누르지만, 설혹 태산처럼 큰 죄를 지었다해도 예수 그리스도로 용서받으면, 그 죄는 먼지보다도 가볍습니다.할렐루야!" 낙담하고 있는 모세에게 호렙산에 현현하신 하나님은 창조주 하나님 인 내가 너를 도울 것이니, 모세야! 일어서 담대해 행하라고 격려하셨다. 이 말씀은 절망하는 인생에 대한 격려사다. 정수리로부터 발끝까지 성한 곳이라도는 한군데도 없이 병든 욥의 문 둥병 같은 세대, 간질병 걸린 사람처럼 경련을 일으키고 비틀거리는 군중들, 회칠한 무덤같은 종교계, 능력이 떠난 믿음, 사랑이 사라진 심령들, 화인맞은 양심같은 세태, 우글거리는 독사의 자식들! 이런 세 태를 바라보고 때로는 사명자도 낙담을 한다. "주여! 제가 누구관대, 감히." 호렙산에 나타나신 창조주 하나님의 격려사를 듣자! 정녕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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