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인가? (고전15:1-1)
본문
어떤 심리학자는 말하기를 사람에게는 각각 네 개의 窓門이 있다고 했습니다.
첫째는, 내가 내 자신을 보는 窓門입니다. 이것은 내가 내 자신을 스스로 이런 사람이라고 규정하는 것, 곧 내가 나 자신을 보고 판단하고 생각 하고 아는 것을 말합니다. 두 번째는 이와는 반대로 남들이 나에 대해서 보 고 생각하는 窓門이 또 있습니다. 곧 남이 나를 이러 이러한 사람이라고 판 단하고 규정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세번째는 이와는 정반대로, 내가 내 자신을 스스로를 보지 못하고, 알지 못하는 창문이 또 있습니다. 곧 자기 가 자기 자신을 스스로 잘 알지를 못하는 것을 말합니다. 가령 스스로 생각하기를 [나는 상당히 괜찮은 사람이다 좋은 사람이다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러나 어느 날 알고 보니, 전혀 그렇지를 못하더라는 것 입니다. 작은 일에도 자주 화를 내고, 변덕스럽고 말이 많고, 참지 못하고, 까 다롭고, 결심을 하나도 제대로 실천하고 이루지도 못하는, 한마디로 매우 의 지가 약하고 형편없는 자신임을 깨닫습니다.━ 이렇게 사람은 자기가 자기 자신을 정확히 잘 알지 못할 때가 많은 것입니다. 이것을 일컬어 자기가 자신 을 알지 못하는 窓門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네 번째는, 또 남이 나를 알지 못하는 창문이 있습니다. 곧 남 이 나에 대해서 함부로 오해하고 곡해하는 부분인 것입니다. 남들이 나를 보 고 이러 저러한 사람이라고 말하지만, 그러나 나의 실상은 전혀 그렇지가 않 다는 것입니다. 남들이 나에 대해서 전혀 오해하거나 잘못 보고 판단하는 것 입니다. 말하자면, 사람을 아주 엉뚱하게 잘못 보고 있는 것입니다. 자 그러고 보니, 사람은 이렇게 참 복잡하고 미묘한 것입니다. 솔직히 남이 나를 모르는 것은 당연하다손 치더라도, 그러나 나 자신이 나 스스로를 잘 알 지 못하는 점이 많다는 것을 생각하면, 참 우습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렇지요 그러나 그건 사실입니다.-그래서 천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의 마음 속은 알 수 없다고 한 것입니다. 아무튼 사람은 대부분 자기 자신도 자기를 정확히 모르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 네 자신을 알라>고 하여 하루아침에 유 명한 사람이 되지 않았습니까 [네 자신을 알라…]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매우 평범하고 쉬운 말인 것 같은데, 그러나 소크라테스의 이 말이 어떻게 그렇게 유명한 말이 되었겠습니까 그것은 다름 아닌, 그 말이 너무나 사실 이고 진실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곧 자기가 자기 자신을 알기가 그만 큼 어렵고 힘들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사실 사람은 스스로, 자기 자신에게 속고 살 때가 참 많습니다. 그럴 때 참 속상하지요 차라리 남이 나를 속였 다면, 사기 죄로 걸어서 고소라도 하든지 할탠데, 그러나 이건 내가 내 자신 을 스스로 속였고, 내가 내 자신에게 스스로 속임을 당했으니 아무런 할 말도 불평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성실해야지/ 술을 끊어야지/ 담배를 끊고 오락을 하지 말아야지/ 예수를 잘 믿어야지/ 열심히 기도해야지] 굳게 굳게 결심을 합니다만. 그러나 언제나 作心三日, 그 결심을 하루아침에 파기되며, 허물어 뜨려지고 마는 것입니다. 누가 그렇게 만들었습니까 알고 보면 다 그 것은 100% 자기 자신인 것입니다. 자기가 자신에게 스스로 속고, 속임을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미련한 사람은 이런 때 흔히 환경을 탓하고, 누구 사람을 원망하고 불평하기도 합니다만, 그러나 그것은, 전혀 터무니없는 잘못입니다. 알고 보면 그 누구 도 사람을 원망하거나 혹은 환경을 탓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 탓하 거나,원망을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100% 자기 자신일 뿐입니다. 오직 자기 자신에게만 책임이 있기 때문입니다.
※ 가령, 환경이 좋지 않아서 [공부를 잘 할수 없다. 남들처럼 비싼 과외를 받 지 못해서 일류 대학을 갈 수 없다]라고 말하는 학생이 있다고 합시다데, 그러나 그것은 순전히 거짓말이요 핑계일 뿐입니다. 저는 절대로 그런 말을 믿 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환경이 너무 좋지 못해서, 자기 공부방 하나 따로 없 어서, 단칸방에서 부모님과 형제들이 함께 어울려 쓰면서, 옛날 헌 카비넷을 개조해서 거기다가 공부 책상을 하나 만들어 놓고, 또 그 안에 들어가 7-8 월 한 더위에도 선풍기 하나없이 비지땀을 뻘뻘 흘리며 공부해서도 소위 말 하는 일류 대학을 거뜬히 들어가는 학생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공부 잘하고 못하는 것이 환경 탓이라면 이 학생은 절대 대학을 들어 갈 수 없었을 것 아 니겠습니까 그러나 들어갔습니다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또 제 작년이던가요 서울대 문리대 수석 합격을 한 학생이 있었잖습니까 그는 아이큐가 겨우 110인데다가 이리저리 공사판을 전전하며 열심히 돈을 벌면서 공부를 했다지 않습니까 그랬서도 그는 서울 대학교 문리대학에, 그 것도 전체 수석 합격이라는 영광을 얻는 데까지 이르렀던 것입니다. 그러니 환경 탓, 머리 탓, 부모 탓, 사람 탓, 물질 탓.하나도 탓할 것이 못된 다는 것이 분명히 입증된 셈입니다. 모두가 다 자기할 탓인 것이며, 혹 그렇 지 못함은 오직 자기가 스스로 자신에게 속고 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명확 히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어러분 우리 신앙의 일도 꼭 같습니다. 미련한 사람은 흔히 자기 믿음 적은 것을 환경의 탓으로 돌리려고 합니다. 너무 바빠서, 너무 집이 멀어서, 너무 피곤해서, 너무 건강이 나빠서, 너무 가난해서, 너무 부자라서, 너무 무식해 서못한다고 핑계합니다. 혹은 사람들을 원망하기도 합니다. 교회가 사랑이 없어서, 교역자의 관심이 부족해서.등등 그러나 여러분, 제발 스스로 속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런 것은 다 스스로에게 스스로가 속고 있는 것입니다. 주위에서 잘 믿는 사람들을 한번 잘 살펴보십시오. 그런 사람들은, 오히려 그런 어려운 일이 있으면, 있을 수록 그러면 그럴수록 더 잘 믿지 않습디까 목숨을 걸고 순교까지 하면서 잘 믿는데 무슨 말입니까 여러분, 부디 우리는 그 모든 스스로의 잘못된 환상과 망상에서 속히 벗아 나 야만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우선 자신을 정확히 잘 알아야만 합니다.그러나 지금까지 말씀을 드린 바와 같이, 사람은 자기가 자기를 잘 잘 모르고 있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인 것입니다. 때문에 자꾸만 스스로에게 속고 있습니다. 자-이제 더이상 자기가 자기에게 속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그러기 위하여, 우리는 무엇보다 우선으로 자기를 정확히 알아야 하겠습니다. < 나는 누구인 가 나는 어떤 사람인가 그리고 무엇을 위해, 이 땅에 태어났고 무엇을 위하여 오늘을 살아야 하는가> 이런 것들을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나 혼자의 힘만으로는 잘 알 수 없습니다. 반드시 물어야 할 이가 따로 있는데, 그가 누구인가 바로 나를 만드시고 지으신 분이십니다. 그에게 물어 보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내가 누구인지, 또 무엇 때문에 오늘을 살고 있는지 그것을 정확히 잘 알 수가 있습니다.
※설 아래 저는 통합 리모콘이라고 하는-탤리비, 비디오 둘을 하나의 키로 사용할 수 있는 리모큰 있지 않습니까-마침 리미콘이 고장이 나서 그 리 모콘을 새로 하나를 삿더랬습니다. 그러나 사서 아무리 그 물건을 설명대로 잘 조작해 보아도 영 작동이 잘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척 속이 상했 습니다 국산품은 이렇다느니, 중소 기업의 제품은 믿을 수가 없다느니 하면 서 말입니다. 다시 물건을 환불 받전지, 아니면 딴 물건으로 교환해야 할 탠 데, 連休라서 그럴 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며칠 동안 TV도 못 켠체 답답 하게 지내다가, 드디어 연휴가 끝나고, 다시 모두가 일을 하기 시작할 때에, 우선 그 물건을 만든 회사에다가 직접 한번 전화를 걸어 물어 보았습니다. 그 랬더니 누가 전화를 받고는 차근차근 그 물건의 사용법에 대하여 설명을 해 주었습니다. 아-그랬더니, 그의 일러준 설명대로 다시 잘 조작해 보았더 니, 금방 작동이 되는 것입니다. 순간 저는 참 부끄러웠고, 또하나 그러나 매우 귀한 이치를 거기서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모르면 < 만든 사람에게 물어 보아라> 고 하는 것입니다. 만든 사람만이 가장 정확히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왜 만들었는지 무엇 때문에 만들었는지 또 어떻게 만들었는지 등등 만든 사람 보다 더 정확히 잘아는 사람은 세상에 다시 없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사용하다가 잘 모르면, 혹은 고장이라도 나거든 만든 회사에다 물어 보야야 가장 정확한 대 답을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똑같은 이치를 우리는 또한 우리 인생에서, 그리고 우리 신앙에서 적 용할 수 있습니다. [ 곧 나는 어떤 사람인지 나는 과연 누구인가 무엇 때문에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가 그 이유를 정확히 알려고 하면, 오직 나를 만 드신 이에게 물어 보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나를 만든 이는 과연 누구십니까-바로, 조물주 우리 여호와 하나님이 아니시겠습니까 나의 생명, 나 의 육체, 나의 영혼까지 다 지으신 이는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또한 나의 복 잡한 속 마음/ 때로 나도 모르는 내 마음 속가지도 다 아시는 분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또한 앞으로 가야할 내 인생의 모든 길과 시간도 나는 알지 못 하나, 하나님은 다 아십니다. 고로 우리는 그에게 물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 야만 정확한 대답이 나오는 것입니다.
※ 컴퓨터는 현대 과학이 만든 최고의 문명 결정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신 기할 정도로 유용하고, 똑똑하고, 편리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비싸고 좋은 컴 퓨터를 혹 집에 들여놓았다 하더라도, 그 사용 방법을 잘 알지 못한다면, 그 건 무용지물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100% 컴퓨터를 유용하게 쓰려고 하면, 100% 컴퓨터의 사용 방법을 잘 알고 익히여만 합니다. 저도 꽤 오랫동안 컴퓨터를 사용하고 있습니다만, 그러나 제 스스로 생각하건 대, 아직도 컴퓨터를 1/ 100도 다 모르고 사용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 유는, 아직도 사용 방법을 잘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자동차도 그렇고, 비행 기도 그렇고, 좋은 물건은 다 그렇습니다. 아무리 그 물건이 비싸고, 유용하다 해도 내가 그 사용 방법을 알지 못하면, 그야말로 내게는 무용지물이되고 마는 것입니다. 여러분 나라고 하는 存在, 사실 알고 보면, 꽤 쓸만 존재입니다. 컴퓨터보다 백배 더 우수하고, 비행기나 자동차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매우 유익하고 귀 한 존재입니다. 그러나 한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오직 사용 방법을 잘 알았 을 때입니다. 사용 방법을 잘 알고 사용 방법대로 사용했을 때에만, 내가 가 장 유용한 존재로, 가장 유익한 존재로 사용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잘 알지 못하면, 사실 매우 쓸모 있게 만들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고철같 이 형편 없는 것으로 쓸모 없이 되고 말 것이란 말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존재가 오늘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유용하고, 값어치 있게 사용되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혹 고철 덩어리처럼 쓸모 없이, 혹은 무용지물로서 사용되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아까운 밥이나 축내고, 귀한 시간이나 죽이는 한심한 존재로 쓰여지고 있다고 혹 생각되지 않습니까 한 번 곰곰이 잘 생각하고 판단해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다시 말씀드립니다. 우리 인생을, 그리고 나라는 존재를 가장 잘 아시는 분은 오직 나를 지으신 하나님 뿐이십니다. 고로 그 하나님께만 물어야 가 장 정확한 대답을 들을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성경의 바울은 이 이치를 그 누구보다 깊이 잘 깨달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오늘 본문 10절에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나의 나된 것은 오직 하나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라,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오,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다.아멘>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듯이, 바울은 처음 하나님을 알지 못하였을 때는 단 지 예수를 믿지 않은 불신자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아 죽이는 데까지 앞장섰던 철저한 예수의 원수요 반대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러던 그가 어느날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습니다.오늘 성경에서 소개 하고 있듯이 부활하신 주님은 처음에는 게바와 12제사에게 보이시고 그리고 500여 성도에게 일시로 보이신 후, 마지막으로는 천상에 올라가시어서는 또한 바울을 만나 주셨습니다. 바로 이 주님을 만나자 마자, 바울의 인생은 180돌로 바꾸어지게 시작했습니다. 곧 자기의 존재를 비로소 분명히 깨달은 것입니다. < 나는 누구인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 그 이유를 밝히 깨달았습니다. 그 때 그가 깨달은 인생의 이치를 오늘 본문에서 살펴보면, 크 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사명입니다. 자기가 해야할 일, 곧 사명을 깨달은 것입니다. 또 그 사 명을 위해서는 남보다 더 수고하고, 더 고생하고, 심지어는 하나 밖에 없는 자기의 목숨을 기꺼이 순교의 제물로 바치기에까지 감당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주님을 만나면, 하나님을 알면, 누구나 이처럼 자기의 사명을 명확히 깨달을 수 있습니다. 자-그 때의 깨달은 여러분의 사명은 과연 무엇이 겠 습니까-각자 각자가 다 사명이 다르겠기에, 제가 일률적으로 말할 수 없겠 지만, 그러나, 한가지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결코 이 땅에서 잘 먹고, 잘살고, 잘 노는 것만이 우리 사명의 전부는 아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확실합니다. 그 이상으로, 아니 그 수 십배, 수 백배 더 가치 있고, 더 유익 한 어떤한 사명이 여러분에게 있다는 사실을 꼭 깨닫게 될 것입니다. 부디 여러분, 하나님을 알고, 주님을 만나서, 이 인생의 이치를/ 여러분의 귀한 사 명을 꼭 깨달을 수 있기를 간곡히 바랍니다. 두 번째, 주님을 만나면 진정으로 겸손해질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8절에 <>라는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주님을 만나면 그 무엇보다 우리는 겸손해 질 수 있습니다. 그 분명한 이유는 나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겸손의 원리요, 근본입니다. 우리가 겸손하지 못하는 이유는 항상 내가 무엇을 안다, 내가 무엇을 한다고 하기 때문입니다.
※ 미국의 어떤 한 청년이 차를 몰고 길을 가다가 차가 고장이 나서 길에 잠 시 세워 놓고 고치고 있었습니다. 그때 지나가던 한 노인이 가까이 다가와서는 그가 차를 고치는 것을 한참 보더니, "젊은이 아무래도 내가 좀 도와 줘야 하겠는데 "그랬습니다. 그러자 그 청년은 발칵 화를 내며 말했습니다. "노인 장, 이래 봬도 저는 자동차 수리 일급 정비사 자격증을 가진 사람이오." 그런 내가 자 차들 들여다보고 있는데, 당신 같은 노인네가 무엇을 안다고 그러시 오 빨리 당신 볼일이나 보시오. 하는 뜻이겠지요 러나 청년은 아무리 애를 써 봐도 차가 잘 고쳐지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노인이 다시 참견했습니다. "자네 차를 타고 시동을 한번 걸어보게, 내가 엔진을 좀 볼 태니까." 할 수 없이 청년은 노인의 말대로 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정말 놀랍게도 감쪽같이 시동이 걸리는 것입니다. 그제야 청 년이 깜짝 놀라서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도대체 누구십니까 그러자 그 노인왈 나는 이 차를 만든 회사 사장인 포드요. 그르더랍니다. 여러분, 아무 리 일급 정비사라고 해도 차를 직접 만든 사람만큼은 잘 모르지 않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우리가 잘 알지 못하였을 때는, 함부로 교만 떨고, 건방져서 모든 일을 나 혼자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또 나 혼자 다하려고 했지만, 그러나 이제 나를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을 만나면, 생각이 영 달라지는 것입니다. 생각이 180도로 바꾸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곧 오늘 바울의 말씀처럼 [ 오직 나로 나된 것은 결코 나로 말미암은 것이 아 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일 뿐이라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시간도, 건강도, 재물도, 자식도, 직장도, 아내도 남편도 모두가 다 다 내 것이 아닌 하나님의 것이요 하나님이 베풀어 주신 은혜요,선물인 것입니다. 그것을 밝히 깨닫게 됩니다. 고로 나는 겸손하지 않을래야 겸손하지 않을 수가 없게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겸손해 질 수 있을 때에만, 진정 우리는 나는 누구인가나는 어떤 사람인지를 밝히 아는 사람이 되었다 할 수 있습니다. 이제 오늘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여러분, 아직도 내가 누구인지를 정확히 잘 모르시는 분들이 아마 계실 것입니다. 그런분들은 꼭 오늘 우리 하나님을 만나서, 내가 누가인지를 먼저 밝히 알고 살아가도록 힘쓰십시다. 그럴 때 우리는 참으로 유익한 인생을, 가치 있는 삶을 살아 갈 수가 있을 것입니다. 뿐 만아니라 그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단 하루를 살아도 정말 멋진 인생을, 정 말 삶의 보람과 의미를 알고, 하루하루를 행복하고 복되게 살아 갈 수가 있 을 것입니다. 이 귀한 신앙이 이치를, 인생의 이치를 꼭 깨달아서, 그런 멋진 삶을 다 살아가시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첫째는, 내가 내 자신을 보는 窓門입니다. 이것은 내가 내 자신을 스스로 이런 사람이라고 규정하는 것, 곧 내가 나 자신을 보고 판단하고 생각 하고 아는 것을 말합니다. 두 번째는 이와는 반대로 남들이 나에 대해서 보 고 생각하는 窓門이 또 있습니다. 곧 남이 나를 이러 이러한 사람이라고 판 단하고 규정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세번째는 이와는 정반대로, 내가 내 자신을 스스로를 보지 못하고, 알지 못하는 창문이 또 있습니다. 곧 자기 가 자기 자신을 스스로 잘 알지를 못하는 것을 말합니다. 가령 스스로 생각하기를 [나는 상당히 괜찮은 사람이다 좋은 사람이다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러나 어느 날 알고 보니, 전혀 그렇지를 못하더라는 것 입니다. 작은 일에도 자주 화를 내고, 변덕스럽고 말이 많고, 참지 못하고, 까 다롭고, 결심을 하나도 제대로 실천하고 이루지도 못하는, 한마디로 매우 의 지가 약하고 형편없는 자신임을 깨닫습니다.━ 이렇게 사람은 자기가 자기 자신을 정확히 잘 알지 못할 때가 많은 것입니다. 이것을 일컬어 자기가 자신 을 알지 못하는 窓門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네 번째는, 또 남이 나를 알지 못하는 창문이 있습니다. 곧 남 이 나에 대해서 함부로 오해하고 곡해하는 부분인 것입니다. 남들이 나를 보 고 이러 저러한 사람이라고 말하지만, 그러나 나의 실상은 전혀 그렇지가 않 다는 것입니다. 남들이 나에 대해서 전혀 오해하거나 잘못 보고 판단하는 것 입니다. 말하자면, 사람을 아주 엉뚱하게 잘못 보고 있는 것입니다. 자 그러고 보니, 사람은 이렇게 참 복잡하고 미묘한 것입니다. 솔직히 남이 나를 모르는 것은 당연하다손 치더라도, 그러나 나 자신이 나 스스로를 잘 알 지 못하는 점이 많다는 것을 생각하면, 참 우습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렇지요 그러나 그건 사실입니다.-그래서 천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의 마음 속은 알 수 없다고 한 것입니다. 아무튼 사람은 대부분 자기 자신도 자기를 정확히 모르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 네 자신을 알라>고 하여 하루아침에 유 명한 사람이 되지 않았습니까 [네 자신을 알라…]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매우 평범하고 쉬운 말인 것 같은데, 그러나 소크라테스의 이 말이 어떻게 그렇게 유명한 말이 되었겠습니까 그것은 다름 아닌, 그 말이 너무나 사실 이고 진실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곧 자기가 자기 자신을 알기가 그만 큼 어렵고 힘들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사실 사람은 스스로, 자기 자신에게 속고 살 때가 참 많습니다. 그럴 때 참 속상하지요 차라리 남이 나를 속였 다면, 사기 죄로 걸어서 고소라도 하든지 할탠데, 그러나 이건 내가 내 자신 을 스스로 속였고, 내가 내 자신에게 스스로 속임을 당했으니 아무런 할 말도 불평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성실해야지/ 술을 끊어야지/ 담배를 끊고 오락을 하지 말아야지/ 예수를 잘 믿어야지/ 열심히 기도해야지] 굳게 굳게 결심을 합니다만. 그러나 언제나 作心三日, 그 결심을 하루아침에 파기되며, 허물어 뜨려지고 마는 것입니다. 누가 그렇게 만들었습니까 알고 보면 다 그 것은 100% 자기 자신인 것입니다. 자기가 자신에게 스스로 속고, 속임을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미련한 사람은 이런 때 흔히 환경을 탓하고, 누구 사람을 원망하고 불평하기도 합니다만, 그러나 그것은, 전혀 터무니없는 잘못입니다. 알고 보면 그 누구 도 사람을 원망하거나 혹은 환경을 탓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 탓하 거나,원망을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100% 자기 자신일 뿐입니다. 오직 자기 자신에게만 책임이 있기 때문입니다.
※ 가령, 환경이 좋지 않아서 [공부를 잘 할수 없다. 남들처럼 비싼 과외를 받 지 못해서 일류 대학을 갈 수 없다]라고 말하는 학생이 있다고 합시다데, 그러나 그것은 순전히 거짓말이요 핑계일 뿐입니다. 저는 절대로 그런 말을 믿 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환경이 너무 좋지 못해서, 자기 공부방 하나 따로 없 어서, 단칸방에서 부모님과 형제들이 함께 어울려 쓰면서, 옛날 헌 카비넷을 개조해서 거기다가 공부 책상을 하나 만들어 놓고, 또 그 안에 들어가 7-8 월 한 더위에도 선풍기 하나없이 비지땀을 뻘뻘 흘리며 공부해서도 소위 말 하는 일류 대학을 거뜬히 들어가는 학생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공부 잘하고 못하는 것이 환경 탓이라면 이 학생은 절대 대학을 들어 갈 수 없었을 것 아 니겠습니까 그러나 들어갔습니다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또 제 작년이던가요 서울대 문리대 수석 합격을 한 학생이 있었잖습니까 그는 아이큐가 겨우 110인데다가 이리저리 공사판을 전전하며 열심히 돈을 벌면서 공부를 했다지 않습니까 그랬서도 그는 서울 대학교 문리대학에, 그 것도 전체 수석 합격이라는 영광을 얻는 데까지 이르렀던 것입니다. 그러니 환경 탓, 머리 탓, 부모 탓, 사람 탓, 물질 탓.하나도 탓할 것이 못된 다는 것이 분명히 입증된 셈입니다. 모두가 다 자기할 탓인 것이며, 혹 그렇 지 못함은 오직 자기가 스스로 자신에게 속고 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명확 히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어러분 우리 신앙의 일도 꼭 같습니다. 미련한 사람은 흔히 자기 믿음 적은 것을 환경의 탓으로 돌리려고 합니다. 너무 바빠서, 너무 집이 멀어서, 너무 피곤해서, 너무 건강이 나빠서, 너무 가난해서, 너무 부자라서, 너무 무식해 서못한다고 핑계합니다. 혹은 사람들을 원망하기도 합니다. 교회가 사랑이 없어서, 교역자의 관심이 부족해서.등등 그러나 여러분, 제발 스스로 속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런 것은 다 스스로에게 스스로가 속고 있는 것입니다. 주위에서 잘 믿는 사람들을 한번 잘 살펴보십시오. 그런 사람들은, 오히려 그런 어려운 일이 있으면, 있을 수록 그러면 그럴수록 더 잘 믿지 않습디까 목숨을 걸고 순교까지 하면서 잘 믿는데 무슨 말입니까 여러분, 부디 우리는 그 모든 스스로의 잘못된 환상과 망상에서 속히 벗아 나 야만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우선 자신을 정확히 잘 알아야만 합니다.그러나 지금까지 말씀을 드린 바와 같이, 사람은 자기가 자기를 잘 잘 모르고 있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인 것입니다. 때문에 자꾸만 스스로에게 속고 있습니다. 자-이제 더이상 자기가 자기에게 속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그러기 위하여, 우리는 무엇보다 우선으로 자기를 정확히 알아야 하겠습니다. < 나는 누구인 가 나는 어떤 사람인가 그리고 무엇을 위해, 이 땅에 태어났고 무엇을 위하여 오늘을 살아야 하는가> 이런 것들을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나 혼자의 힘만으로는 잘 알 수 없습니다. 반드시 물어야 할 이가 따로 있는데, 그가 누구인가 바로 나를 만드시고 지으신 분이십니다. 그에게 물어 보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내가 누구인지, 또 무엇 때문에 오늘을 살고 있는지 그것을 정확히 잘 알 수가 있습니다.
※설 아래 저는 통합 리모콘이라고 하는-탤리비, 비디오 둘을 하나의 키로 사용할 수 있는 리모큰 있지 않습니까-마침 리미콘이 고장이 나서 그 리 모콘을 새로 하나를 삿더랬습니다. 그러나 사서 아무리 그 물건을 설명대로 잘 조작해 보아도 영 작동이 잘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척 속이 상했 습니다 국산품은 이렇다느니, 중소 기업의 제품은 믿을 수가 없다느니 하면 서 말입니다. 다시 물건을 환불 받전지, 아니면 딴 물건으로 교환해야 할 탠 데, 連休라서 그럴 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며칠 동안 TV도 못 켠체 답답 하게 지내다가, 드디어 연휴가 끝나고, 다시 모두가 일을 하기 시작할 때에, 우선 그 물건을 만든 회사에다가 직접 한번 전화를 걸어 물어 보았습니다. 그 랬더니 누가 전화를 받고는 차근차근 그 물건의 사용법에 대하여 설명을 해 주었습니다. 아-그랬더니, 그의 일러준 설명대로 다시 잘 조작해 보았더 니, 금방 작동이 되는 것입니다. 순간 저는 참 부끄러웠고, 또하나 그러나 매우 귀한 이치를 거기서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모르면 < 만든 사람에게 물어 보아라> 고 하는 것입니다. 만든 사람만이 가장 정확히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왜 만들었는지 무엇 때문에 만들었는지 또 어떻게 만들었는지 등등 만든 사람 보다 더 정확히 잘아는 사람은 세상에 다시 없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사용하다가 잘 모르면, 혹은 고장이라도 나거든 만든 회사에다 물어 보야야 가장 정확한 대 답을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똑같은 이치를 우리는 또한 우리 인생에서, 그리고 우리 신앙에서 적 용할 수 있습니다. [ 곧 나는 어떤 사람인지 나는 과연 누구인가 무엇 때문에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가 그 이유를 정확히 알려고 하면, 오직 나를 만 드신 이에게 물어 보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나를 만든 이는 과연 누구십니까-바로, 조물주 우리 여호와 하나님이 아니시겠습니까 나의 생명, 나 의 육체, 나의 영혼까지 다 지으신 이는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또한 나의 복 잡한 속 마음/ 때로 나도 모르는 내 마음 속가지도 다 아시는 분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또한 앞으로 가야할 내 인생의 모든 길과 시간도 나는 알지 못 하나, 하나님은 다 아십니다. 고로 우리는 그에게 물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 야만 정확한 대답이 나오는 것입니다.
※ 컴퓨터는 현대 과학이 만든 최고의 문명 결정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신 기할 정도로 유용하고, 똑똑하고, 편리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비싸고 좋은 컴 퓨터를 혹 집에 들여놓았다 하더라도, 그 사용 방법을 잘 알지 못한다면, 그 건 무용지물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100% 컴퓨터를 유용하게 쓰려고 하면, 100% 컴퓨터의 사용 방법을 잘 알고 익히여만 합니다. 저도 꽤 오랫동안 컴퓨터를 사용하고 있습니다만, 그러나 제 스스로 생각하건 대, 아직도 컴퓨터를 1/ 100도 다 모르고 사용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 유는, 아직도 사용 방법을 잘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자동차도 그렇고, 비행 기도 그렇고, 좋은 물건은 다 그렇습니다. 아무리 그 물건이 비싸고, 유용하다 해도 내가 그 사용 방법을 알지 못하면, 그야말로 내게는 무용지물이되고 마는 것입니다. 여러분 나라고 하는 存在, 사실 알고 보면, 꽤 쓸만 존재입니다. 컴퓨터보다 백배 더 우수하고, 비행기나 자동차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매우 유익하고 귀 한 존재입니다. 그러나 한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오직 사용 방법을 잘 알았 을 때입니다. 사용 방법을 잘 알고 사용 방법대로 사용했을 때에만, 내가 가 장 유용한 존재로, 가장 유익한 존재로 사용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잘 알지 못하면, 사실 매우 쓸모 있게 만들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고철같 이 형편 없는 것으로 쓸모 없이 되고 말 것이란 말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존재가 오늘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유용하고, 값어치 있게 사용되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혹 고철 덩어리처럼 쓸모 없이, 혹은 무용지물로서 사용되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아까운 밥이나 축내고, 귀한 시간이나 죽이는 한심한 존재로 쓰여지고 있다고 혹 생각되지 않습니까 한 번 곰곰이 잘 생각하고 판단해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다시 말씀드립니다. 우리 인생을, 그리고 나라는 존재를 가장 잘 아시는 분은 오직 나를 지으신 하나님 뿐이십니다. 고로 그 하나님께만 물어야 가 장 정확한 대답을 들을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성경의 바울은 이 이치를 그 누구보다 깊이 잘 깨달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오늘 본문 10절에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나의 나된 것은 오직 하나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라,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오,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다.아멘>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듯이, 바울은 처음 하나님을 알지 못하였을 때는 단 지 예수를 믿지 않은 불신자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아 죽이는 데까지 앞장섰던 철저한 예수의 원수요 반대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러던 그가 어느날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습니다.오늘 성경에서 소개 하고 있듯이 부활하신 주님은 처음에는 게바와 12제사에게 보이시고 그리고 500여 성도에게 일시로 보이신 후, 마지막으로는 천상에 올라가시어서는 또한 바울을 만나 주셨습니다. 바로 이 주님을 만나자 마자, 바울의 인생은 180돌로 바꾸어지게 시작했습니다. 곧 자기의 존재를 비로소 분명히 깨달은 것입니다. < 나는 누구인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 그 이유를 밝히 깨달았습니다. 그 때 그가 깨달은 인생의 이치를 오늘 본문에서 살펴보면, 크 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사명입니다. 자기가 해야할 일, 곧 사명을 깨달은 것입니다. 또 그 사 명을 위해서는 남보다 더 수고하고, 더 고생하고, 심지어는 하나 밖에 없는 자기의 목숨을 기꺼이 순교의 제물로 바치기에까지 감당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주님을 만나면, 하나님을 알면, 누구나 이처럼 자기의 사명을 명확히 깨달을 수 있습니다. 자-그 때의 깨달은 여러분의 사명은 과연 무엇이 겠 습니까-각자 각자가 다 사명이 다르겠기에, 제가 일률적으로 말할 수 없겠 지만, 그러나, 한가지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결코 이 땅에서 잘 먹고, 잘살고, 잘 노는 것만이 우리 사명의 전부는 아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확실합니다. 그 이상으로, 아니 그 수 십배, 수 백배 더 가치 있고, 더 유익 한 어떤한 사명이 여러분에게 있다는 사실을 꼭 깨닫게 될 것입니다. 부디 여러분, 하나님을 알고, 주님을 만나서, 이 인생의 이치를/ 여러분의 귀한 사 명을 꼭 깨달을 수 있기를 간곡히 바랍니다. 두 번째, 주님을 만나면 진정으로 겸손해질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8절에 <>라는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주님을 만나면 그 무엇보다 우리는 겸손해 질 수 있습니다. 그 분명한 이유는 나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겸손의 원리요, 근본입니다. 우리가 겸손하지 못하는 이유는 항상 내가 무엇을 안다, 내가 무엇을 한다고 하기 때문입니다.
※ 미국의 어떤 한 청년이 차를 몰고 길을 가다가 차가 고장이 나서 길에 잠 시 세워 놓고 고치고 있었습니다. 그때 지나가던 한 노인이 가까이 다가와서는 그가 차를 고치는 것을 한참 보더니, "젊은이 아무래도 내가 좀 도와 줘야 하겠는데 "그랬습니다. 그러자 그 청년은 발칵 화를 내며 말했습니다. "노인 장, 이래 봬도 저는 자동차 수리 일급 정비사 자격증을 가진 사람이오." 그런 내가 자 차들 들여다보고 있는데, 당신 같은 노인네가 무엇을 안다고 그러시 오 빨리 당신 볼일이나 보시오. 하는 뜻이겠지요 러나 청년은 아무리 애를 써 봐도 차가 잘 고쳐지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노인이 다시 참견했습니다. "자네 차를 타고 시동을 한번 걸어보게, 내가 엔진을 좀 볼 태니까." 할 수 없이 청년은 노인의 말대로 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정말 놀랍게도 감쪽같이 시동이 걸리는 것입니다. 그제야 청 년이 깜짝 놀라서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도대체 누구십니까 그러자 그 노인왈 나는 이 차를 만든 회사 사장인 포드요. 그르더랍니다. 여러분, 아무 리 일급 정비사라고 해도 차를 직접 만든 사람만큼은 잘 모르지 않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우리가 잘 알지 못하였을 때는, 함부로 교만 떨고, 건방져서 모든 일을 나 혼자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또 나 혼자 다하려고 했지만, 그러나 이제 나를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을 만나면, 생각이 영 달라지는 것입니다. 생각이 180도로 바꾸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곧 오늘 바울의 말씀처럼 [ 오직 나로 나된 것은 결코 나로 말미암은 것이 아 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일 뿐이라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시간도, 건강도, 재물도, 자식도, 직장도, 아내도 남편도 모두가 다 다 내 것이 아닌 하나님의 것이요 하나님이 베풀어 주신 은혜요,선물인 것입니다. 그것을 밝히 깨닫게 됩니다. 고로 나는 겸손하지 않을래야 겸손하지 않을 수가 없게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겸손해 질 수 있을 때에만, 진정 우리는 나는 누구인가나는 어떤 사람인지를 밝히 아는 사람이 되었다 할 수 있습니다. 이제 오늘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여러분, 아직도 내가 누구인지를 정확히 잘 모르시는 분들이 아마 계실 것입니다. 그런분들은 꼭 오늘 우리 하나님을 만나서, 내가 누가인지를 먼저 밝히 알고 살아가도록 힘쓰십시다. 그럴 때 우리는 참으로 유익한 인생을, 가치 있는 삶을 살아 갈 수가 있을 것입니다. 뿐 만아니라 그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단 하루를 살아도 정말 멋진 인생을, 정 말 삶의 보람과 의미를 알고, 하루하루를 행복하고 복되게 살아 갈 수가 있 을 것입니다. 이 귀한 신앙이 이치를, 인생의 이치를 꼭 깨달아서, 그런 멋진 삶을 다 살아가시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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