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구원의 하나님을 바라보나니 (미7:7-20)
본문
오늘 본문의 말씀은 모레셋 사람 미가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이다. 북쪽 이스라엘과 남쪽 유다가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고 여로보암과 아합의 길을 좇아 바알을 섬기고, 우상을 섬겨…. 결국은 하나님의 진노로 멸망할 것을 경고하는 말씀이 미가서 전체의 흐르는 내용이다. 심판에 대한 경고뿐만 아니라 회복에 대한 소망의 말씀도 전했는데 백성들의 회개를 촉구하면서 최후 구원의 약속을 주시는 말씀이 오늘 본문에 나타나 있다. 본문 18절/ 주와 같은 신이 어디 있으리이까 주께서는 죄악을 사유하시며 그 기업의 남은 자의 허물을 넘기시며 인애를 기뻐하심으로 노를 항상 품지 아니하시나이다/ “주와 같은 신”이 어디 있겠는가 사유하심이 있고, 인애하심이 있고, 노를 항상 품지 않으시고 허물의 사하심이 있는, 그 주님을 바라보라는 것이다. 나는 구원의 하나님을 바라보나니 그 하나님이 나를 들으시리라. 그 여호와께서 나의 빛이 되시리라 그 주께서 나를 인도하사 그의 의에 이르게 하시리라. 그 하나님이 내 지경을 넓히시리라. 그 주께서 옛적에 우리 열조에게 맹세하신 대로 성실과 인애를 더하시리라 나는 구원의 하나님을 바라보나니 바로 선지자 미가의 믿음이요, 기도이요, 소원이다. 그 하나님 여호와의 응답이요, 약속이요, 옛적에 주신 맹세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는 구원의 하나님을 바라보나니 오늘 본문 말씀을 살펴보며 우리들도 미가 선지처럼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바라보고 살아야 할 믿음과 소망을 다져 보는 귀한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1.나의 대적이여 기뻐하지 말라 본문 8절/ 나의 대적이여 나로 인하여 기뻐하지 말지어다 나는 엎드러질지라도 일어날 것이 요 어두운데 앉을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의 빛이 되실 것임이로다/ 참으로 놀라운 것은 예나 지금이나 자기 자신의 것으로 기뻐하는 게 아니라 남의 것을 가지고 기뻐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도 남의 기쁨을 함께 나누는 것이 아니라 남이 잘못된 것을 고소해 하고, 기뻐하고 즐거워한다는 것이다.
1.나는 엎드러질지라도 “나는 엎드러질지라도 일어날 것이요” 나의 엎드러짐이 나의 대적의 기쁨이 되어 있다. 이런 기쁨은 “나의 기쁨”이 되지 못한다. 오히려 “나의 못남”이 되는 것이다. 엎드러진 자가 털고 일어서면 내 기쁨은 끝나고 마는 것이다. 남의 실수가 나의 기쁨의 근거가 될 수 없다. 남의 실패가 나의 성공이 될 수 없듯이 또한 내가 비웃을 수 있는 근거도 못된다. 더욱이 나의 자랑이 될 수 없다. 누가복음 18:11절/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가로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이 세리와도 같지 않음을 감사하나이다” 바리새인의 이 감사는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감사이다(눅18:9). 자신의 잘남이 남을 멸시할 수 있는 특권도 아니지만, 남의 못남이 내가 그를 멸시할 수 있는 근거도 못되는 것이다.
2.어두운데 있을지라도 “어두운데 앉을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의 빛이 되실 것임이로다” 내가 어두운데 처한 것이 대적의 기쁨이 되어 있다. 그러나, 이 또한 얼마나 허망한 기쁨인지 나의 빛이 되신 여호와가 밝히 보여주실 것이라는 말씀이다. 이사야 사60:20절/ 다시는 네 해가 지지 아니하며 네 달이 물러가지 아니할 것은 여호와가 네 영영한 빛이 되고 네 슬픔의 날이 마칠 것임이니라/ 나의 빛이 되시는 여호와 그 여호와께서 내게 빛을 비추실 때 내 슬픔의 날이 마치게 된다는 말씀이다. 곧 내 기쁨의 날이 되는 것이다. 나의 대적이여 기뻐하지 말라 내 기쁨이 네 기쁨이 될 수 없을진데 슬픔이 끝나고 기쁨이 오게 될 내 어두움에 처한 모습에 나의 대적이여 기뻐하지 말라는 말씀이다. 나는 구원의 하나님을 바라보나니 너는 기뻐하지 말라는 것이다.
3.하나님의 진노를 당할지라도 본문 9절/ 내가 여호와께 범죄하였으니 주께서 나를 위하여 심판하사 신원 하시기까지는 그 의 노를 당하려니와 주께서 나를 인도하사 광명에 이르게 하시리니 내가 그의 의를 보리로다/ “그의 노를 당하려니와”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께 범죄하여 그의 진노를 당할 때도 있다. 그러나, 그 진노가 멸망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사랑의 채찍임을 경험하게 된다. 이 사실을 모르고 그의 진노를 당할 때에 나의 대적이 기뻐하고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범죄로 그들을 사랑의 채찍으로 사용했건만 대적들은 오히려 자신들의 승리로 알고, 기뻐 날뛰고 있는 것이다. 여호와께서 신원하시는 날 그 채찍을 꺾어 버리실 것은 전혀 모르고 있는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는 구원의 하나님을 바라보나니 나의 대적이여 기뻐하지 말라고 합니다. 이 미가 선지자의 기도가, 믿음이, 소망이 이스라엘과 유다의 기도가, 믿음이, 소망이 되기를 호소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오늘의 우리 성도들의 기도가, 믿음이, 소망이 되기를 호소하는 말씀입니다. 나는 구원의 하나님을 바라보나니 내가 엎드러질지라도, 내가 어두운데 있을지라도, 내가 하나님께 진노를 당할지라도 주저앉지 말고, 낙심하지 말고, 절망하지 말고 구원의 하나님을 바라보라는 말씀입니다.
2.나를 인도하사 광명에 이르게 하시리라 본문 9절/ 내가 여호와께 범죄하였으니 주께서 나를 위하여 심판하사 신원 하시기까지는 그 의 노를 당하려니와 주께서 나를 인도하사 광명에 이르게 하시리니 내가 그의 의를 보리로다/ “내가 여호와께 범죄하였으니” 나의 연약과 부족으로 여호와 하나님께 범죄하기 쉬운 우리 인간이다. 여호와 하나님의 진노로 어둠에 처하기도 하고, 시련과 고통으로 버림받은 처절한 모습을 보일 때도 있다. 나는 구원의 하나님을 바라보나니 그러나, 구원의 하나님이 계시기에 끝이 아니요, 멸망이 아니다. 다시 일어날 수 있는 기회가 있고, 광명에 이르게 하시는 사랑이 있다. 그 구원의 하나님은
1.나를 들으시리라 본문 7절/ 오직 나는 여호와를 우러러보며 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나니 하나님이 나를 들으시리로다/ 내 구원의 하나님 오직 나는 그 구원의 하나님 여호와를 바라보나니 그 하나님이 내 기도 들으시고 내 모든 환란에서 나를 건져 주시리라. 시편 34:6절/ 이 곤고한 자가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그 모든 환난에서 구원하셨 도다/ “이 곤고한 자가 부르짖으매” 다윗이 아비멜렉 앞에서 생명을 위하여 침을 질질 흘리며 미친 쇼를 해야 하는 그 절박한 상황에서 구원의 하나님께 그 모든 환란에서 구원함을 받은 감사의 찬양이다.
2.나를 신원해 주시리라 본문 9절/ 내가 여호와께 범죄하였으니 주께서 나를 위하여 심판하사 신원 하시기까지는 그의 노를 당하려니와 주께서 나를 인도하사 광명에 이르게 하시리니 내가 그의 의를 보리로다/ “주께서 나를 위하여 심판하사 신원하시기까지는” 택한 백성 이스라엘의 범죄로 이방인을 회초리로 들어 사용하시는 하나님 그 이방이 날뛰며 자신의 승리인양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고 짓밟는 그 아픔을 참아내며 구원의 하나님을 바라보고 있다. 이사야 47:6-7절/ 전에 내가 내 백성을 노함으로 내 기업을 욕되게 하여 그들을 네 손에 붙 였거늘 네가 그들을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고 늙은이에게 네 멍에를 심히 무겁게 메우며 말하기를 내가 영영히 주모가 되리라 하고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지도 아 니하며 그 종말도 생각지 아니하였도다/ “내가 내 백성을 노하여 네 손에 붙였거늘” 너 바벨론의 승리가 아니란 말씀이다. 내 백성의 범죄로 네 손에 붙였다는 말씀이다. 내 기업을 욕되게 하여 네 손에 붙였다는 것이다. “네가 그들을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고” 너 바벨론아 너는 내 백성을 긍휼히 여겨야 할 터인데 내가 그들에게 노하고, 욕되게 한다고 너까지 그들을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고, 멍에를 무겁게 하고, 내가 네 주인이라고 하느냐 바벨론의 멸망 바로 사랑의 채찍으로 사용한 이방 나라 바벨론을 꺾어 버리시는 죄악상이 된다. 택한 백성의 범죄가 이방 나라의 긍휼 없는 잔혹함의 근거가 될 수 없는 것이다. 지은 죄를 회개하며 그 잔혹을 참고 구원의 하나님을 바라볼 때 신원해 주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때까지는 그의 노를 감당해야 한다. 바벨론 강가 버드나무에 수금을 걸어 놓고 시온을 기억하며 통곡하는 아픔을 감당해야 한다.
3.나를 사유하시리라 본문 18절/ 주와 같은 신이 어디 있으리이까 주께서는 죄악을 사유하시며 그 기업의 남은 자의 허물을 넘기시며 인애를 기뻐하심으로 노를 항상 품지 아니하시나이다/ “주께서는 죄악을 사유하시며” 오직 주는 사유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은혜로우시며 긍휼히 여기시며 더디 노하시며 인자가 풍부하시므로 저희를 버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시다(느9:17). 사유하시는 하나님 그래서, 허물을 기억치 아니하시고, 노를 품지 아니하시고, 인애를 베푸시는 하나님이시다. 그 하나님은 선하사 사유하기를 즐기시며 주께 부르짖는 자에게 인자함이 후하신 하나님이시다(시86:5).
4.나를 긍휼히 여기시리라. 본문 19절/ 다시 우리를 긍휼히 여기셔서 우리의 죄악을 발로 밟으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시리이다/ 긍휼은 남을 불쌍히 여기고 사랑하는 마음이다. 있는 자가 없는 자를, 강한 자가 약한 자를, 큰 자가 작은 자를 불쌍히 여기게 된다. 없는 자가 있는 자를, 약한 자가 강한 자를, 작은 자가 큰 자를 불쌍히 여길 수는 없는 것이다. 곧 긍휼에는 자신을 낮추는 겸손이 있고, 자신을 내어놓는 희생이 있고,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여기는 사랑이 있는 것이다. 긍휼에는 심판을 이기는 힘이 있다. 긍휼을 베푼 자에게는 긍휼이 있는 심판이 있고,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없는 심판이 있으리라고 했다(약2:13) 바벨론의 멸망 바로 네 손에 붙인 내 백성을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고” 때문이다(사47:6-7).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는 구원의 하나님을 바라보나니 우리의 잘못으로 여호와의 채찍에 맞아 헝클어지고 찢겨진 모습 원수들의 조롱과 멸시 속에서도, 저들의 기뻐하는 웃음 속에서도. 나를 인도하사 광명에 이르게 하실 구원의 하나님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내가 그의 의를 보리로다” 이 소망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3.내 지경을 넓히시리라 본문 11절/ 네 성벽을 건축하는 날 곧 그 날에는 지경이 넓혀질 것이라/ “그 날에는 지경이 넓혀질 것이라”. 바로 택한 백성 이스라엘이 회복되는 날이요, 원수들이 기뻐 춤추던 버림받은 자들이 여호와께서 빛이 되사 광명에 이르고, 그의 의를 보는 날이다. 그 때에 내 지경이 넓혀진다는 말씀이다. 본문 12절/ 그 날에는 앗수르에서 애굽 성읍들에까지 애굽에서 하수까지 이 바다에서 저 바 다까지 이 산에서 저 산까지의 사람들이 네게로 돌아올 것이나/
1.이 나라에서 저 나라까지 앗수르에서 애굽 성읍들에까지
2.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3.이 산에서 저 산까지 그날에 넓혀지는 지경 국경을 넘고, 대양을 건너, 이 산에서 저 산까지 바로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전파되어져 나갈 복음의 확산 운동을 말씀해 주고 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는 구원의 하나님을 바라보나니 나의 대적이 기뻐 춤추는 엎드러진 자이요, 어두움에 처한 자이요, 하나님의 진노를 당하는 죄인입니다. 나는 구원의 하나님을 바라보나니 그 절망과 시련 속에서도 나를 들으시는 하나님, 나를 사유하시는 하나님,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기도이요, 믿음이요, 소망입니다. 시편 42:5절/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그 얼굴의 도우심을 인하여 내가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본문10절) 사람들이 종일 나더러 하는 그 말에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어도(시42:3) 내 뼈를 찌르는 칼이 되어도(시42:10) 그 아픔을 참고 이겨야 하는 죄인입니다. 주와 같은 신이 어디 있으리이까(본문18절). 주에게는 긍휼하심이 있고, 사유하심이 있고, 신원하심이 있기에 주께서 나의 빛이 되시고(본문8절), 나를 인도하사 광명에 이르게 하시고, 그의 의를 보게 하시니(본문9절) 열방이 보고 놀라 입을 막고 귀가 막힐 것입니다(본문 16절).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는 구원의 하나님을 바라보나니 이 감격, 이 놀라운 소식이 국경을 넘고, 대양을 건너 전파되어 질 때 넓혀지는 내 지경 이 나라에서 저 나라까지,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이 산에서 저 산까지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내 지경이 넓혀질 것입니다. 나는 구원의 하나님을 바라보나니 내 구원의 하나님을 바라보는 기도 속에, 믿음 속에, 소망 속에는 이처럼 놀라운 축복이 담겨져 있습니다. 이 축복이 여러분의 것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는 구원의 하나님을 바라보나니 오늘 본문 말씀을 살펴보며 우리들도 미가 선지처럼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바라보고 살아야 할 믿음과 소망을 다져 보는 귀한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1.나의 대적이여 기뻐하지 말라 본문 8절/ 나의 대적이여 나로 인하여 기뻐하지 말지어다 나는 엎드러질지라도 일어날 것이 요 어두운데 앉을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의 빛이 되실 것임이로다/ 참으로 놀라운 것은 예나 지금이나 자기 자신의 것으로 기뻐하는 게 아니라 남의 것을 가지고 기뻐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도 남의 기쁨을 함께 나누는 것이 아니라 남이 잘못된 것을 고소해 하고, 기뻐하고 즐거워한다는 것이다.
1.나는 엎드러질지라도 “나는 엎드러질지라도 일어날 것이요” 나의 엎드러짐이 나의 대적의 기쁨이 되어 있다. 이런 기쁨은 “나의 기쁨”이 되지 못한다. 오히려 “나의 못남”이 되는 것이다. 엎드러진 자가 털고 일어서면 내 기쁨은 끝나고 마는 것이다. 남의 실수가 나의 기쁨의 근거가 될 수 없다. 남의 실패가 나의 성공이 될 수 없듯이 또한 내가 비웃을 수 있는 근거도 못된다. 더욱이 나의 자랑이 될 수 없다. 누가복음 18:11절/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가로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이 세리와도 같지 않음을 감사하나이다” 바리새인의 이 감사는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감사이다(눅18:9). 자신의 잘남이 남을 멸시할 수 있는 특권도 아니지만, 남의 못남이 내가 그를 멸시할 수 있는 근거도 못되는 것이다.
2.어두운데 있을지라도 “어두운데 앉을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의 빛이 되실 것임이로다” 내가 어두운데 처한 것이 대적의 기쁨이 되어 있다. 그러나, 이 또한 얼마나 허망한 기쁨인지 나의 빛이 되신 여호와가 밝히 보여주실 것이라는 말씀이다. 이사야 사60:20절/ 다시는 네 해가 지지 아니하며 네 달이 물러가지 아니할 것은 여호와가 네 영영한 빛이 되고 네 슬픔의 날이 마칠 것임이니라/ 나의 빛이 되시는 여호와 그 여호와께서 내게 빛을 비추실 때 내 슬픔의 날이 마치게 된다는 말씀이다. 곧 내 기쁨의 날이 되는 것이다. 나의 대적이여 기뻐하지 말라 내 기쁨이 네 기쁨이 될 수 없을진데 슬픔이 끝나고 기쁨이 오게 될 내 어두움에 처한 모습에 나의 대적이여 기뻐하지 말라는 말씀이다. 나는 구원의 하나님을 바라보나니 너는 기뻐하지 말라는 것이다.
3.하나님의 진노를 당할지라도 본문 9절/ 내가 여호와께 범죄하였으니 주께서 나를 위하여 심판하사 신원 하시기까지는 그 의 노를 당하려니와 주께서 나를 인도하사 광명에 이르게 하시리니 내가 그의 의를 보리로다/ “그의 노를 당하려니와”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께 범죄하여 그의 진노를 당할 때도 있다. 그러나, 그 진노가 멸망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사랑의 채찍임을 경험하게 된다. 이 사실을 모르고 그의 진노를 당할 때에 나의 대적이 기뻐하고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범죄로 그들을 사랑의 채찍으로 사용했건만 대적들은 오히려 자신들의 승리로 알고, 기뻐 날뛰고 있는 것이다. 여호와께서 신원하시는 날 그 채찍을 꺾어 버리실 것은 전혀 모르고 있는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는 구원의 하나님을 바라보나니 나의 대적이여 기뻐하지 말라고 합니다. 이 미가 선지자의 기도가, 믿음이, 소망이 이스라엘과 유다의 기도가, 믿음이, 소망이 되기를 호소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오늘의 우리 성도들의 기도가, 믿음이, 소망이 되기를 호소하는 말씀입니다. 나는 구원의 하나님을 바라보나니 내가 엎드러질지라도, 내가 어두운데 있을지라도, 내가 하나님께 진노를 당할지라도 주저앉지 말고, 낙심하지 말고, 절망하지 말고 구원의 하나님을 바라보라는 말씀입니다.
2.나를 인도하사 광명에 이르게 하시리라 본문 9절/ 내가 여호와께 범죄하였으니 주께서 나를 위하여 심판하사 신원 하시기까지는 그 의 노를 당하려니와 주께서 나를 인도하사 광명에 이르게 하시리니 내가 그의 의를 보리로다/ “내가 여호와께 범죄하였으니” 나의 연약과 부족으로 여호와 하나님께 범죄하기 쉬운 우리 인간이다. 여호와 하나님의 진노로 어둠에 처하기도 하고, 시련과 고통으로 버림받은 처절한 모습을 보일 때도 있다. 나는 구원의 하나님을 바라보나니 그러나, 구원의 하나님이 계시기에 끝이 아니요, 멸망이 아니다. 다시 일어날 수 있는 기회가 있고, 광명에 이르게 하시는 사랑이 있다. 그 구원의 하나님은
1.나를 들으시리라 본문 7절/ 오직 나는 여호와를 우러러보며 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나니 하나님이 나를 들으시리로다/ 내 구원의 하나님 오직 나는 그 구원의 하나님 여호와를 바라보나니 그 하나님이 내 기도 들으시고 내 모든 환란에서 나를 건져 주시리라. 시편 34:6절/ 이 곤고한 자가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그 모든 환난에서 구원하셨 도다/ “이 곤고한 자가 부르짖으매” 다윗이 아비멜렉 앞에서 생명을 위하여 침을 질질 흘리며 미친 쇼를 해야 하는 그 절박한 상황에서 구원의 하나님께 그 모든 환란에서 구원함을 받은 감사의 찬양이다.
2.나를 신원해 주시리라 본문 9절/ 내가 여호와께 범죄하였으니 주께서 나를 위하여 심판하사 신원 하시기까지는 그의 노를 당하려니와 주께서 나를 인도하사 광명에 이르게 하시리니 내가 그의 의를 보리로다/ “주께서 나를 위하여 심판하사 신원하시기까지는” 택한 백성 이스라엘의 범죄로 이방인을 회초리로 들어 사용하시는 하나님 그 이방이 날뛰며 자신의 승리인양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고 짓밟는 그 아픔을 참아내며 구원의 하나님을 바라보고 있다. 이사야 47:6-7절/ 전에 내가 내 백성을 노함으로 내 기업을 욕되게 하여 그들을 네 손에 붙 였거늘 네가 그들을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고 늙은이에게 네 멍에를 심히 무겁게 메우며 말하기를 내가 영영히 주모가 되리라 하고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지도 아 니하며 그 종말도 생각지 아니하였도다/ “내가 내 백성을 노하여 네 손에 붙였거늘” 너 바벨론의 승리가 아니란 말씀이다. 내 백성의 범죄로 네 손에 붙였다는 말씀이다. 내 기업을 욕되게 하여 네 손에 붙였다는 것이다. “네가 그들을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고” 너 바벨론아 너는 내 백성을 긍휼히 여겨야 할 터인데 내가 그들에게 노하고, 욕되게 한다고 너까지 그들을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고, 멍에를 무겁게 하고, 내가 네 주인이라고 하느냐 바벨론의 멸망 바로 사랑의 채찍으로 사용한 이방 나라 바벨론을 꺾어 버리시는 죄악상이 된다. 택한 백성의 범죄가 이방 나라의 긍휼 없는 잔혹함의 근거가 될 수 없는 것이다. 지은 죄를 회개하며 그 잔혹을 참고 구원의 하나님을 바라볼 때 신원해 주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때까지는 그의 노를 감당해야 한다. 바벨론 강가 버드나무에 수금을 걸어 놓고 시온을 기억하며 통곡하는 아픔을 감당해야 한다.
3.나를 사유하시리라 본문 18절/ 주와 같은 신이 어디 있으리이까 주께서는 죄악을 사유하시며 그 기업의 남은 자의 허물을 넘기시며 인애를 기뻐하심으로 노를 항상 품지 아니하시나이다/ “주께서는 죄악을 사유하시며” 오직 주는 사유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은혜로우시며 긍휼히 여기시며 더디 노하시며 인자가 풍부하시므로 저희를 버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시다(느9:17). 사유하시는 하나님 그래서, 허물을 기억치 아니하시고, 노를 품지 아니하시고, 인애를 베푸시는 하나님이시다. 그 하나님은 선하사 사유하기를 즐기시며 주께 부르짖는 자에게 인자함이 후하신 하나님이시다(시86:5).
4.나를 긍휼히 여기시리라. 본문 19절/ 다시 우리를 긍휼히 여기셔서 우리의 죄악을 발로 밟으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시리이다/ 긍휼은 남을 불쌍히 여기고 사랑하는 마음이다. 있는 자가 없는 자를, 강한 자가 약한 자를, 큰 자가 작은 자를 불쌍히 여기게 된다. 없는 자가 있는 자를, 약한 자가 강한 자를, 작은 자가 큰 자를 불쌍히 여길 수는 없는 것이다. 곧 긍휼에는 자신을 낮추는 겸손이 있고, 자신을 내어놓는 희생이 있고,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여기는 사랑이 있는 것이다. 긍휼에는 심판을 이기는 힘이 있다. 긍휼을 베푼 자에게는 긍휼이 있는 심판이 있고,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없는 심판이 있으리라고 했다(약2:13) 바벨론의 멸망 바로 네 손에 붙인 내 백성을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고” 때문이다(사47:6-7).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는 구원의 하나님을 바라보나니 우리의 잘못으로 여호와의 채찍에 맞아 헝클어지고 찢겨진 모습 원수들의 조롱과 멸시 속에서도, 저들의 기뻐하는 웃음 속에서도. 나를 인도하사 광명에 이르게 하실 구원의 하나님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내가 그의 의를 보리로다” 이 소망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3.내 지경을 넓히시리라 본문 11절/ 네 성벽을 건축하는 날 곧 그 날에는 지경이 넓혀질 것이라/ “그 날에는 지경이 넓혀질 것이라”. 바로 택한 백성 이스라엘이 회복되는 날이요, 원수들이 기뻐 춤추던 버림받은 자들이 여호와께서 빛이 되사 광명에 이르고, 그의 의를 보는 날이다. 그 때에 내 지경이 넓혀진다는 말씀이다. 본문 12절/ 그 날에는 앗수르에서 애굽 성읍들에까지 애굽에서 하수까지 이 바다에서 저 바 다까지 이 산에서 저 산까지의 사람들이 네게로 돌아올 것이나/
1.이 나라에서 저 나라까지 앗수르에서 애굽 성읍들에까지
2.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3.이 산에서 저 산까지 그날에 넓혀지는 지경 국경을 넘고, 대양을 건너, 이 산에서 저 산까지 바로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전파되어져 나갈 복음의 확산 운동을 말씀해 주고 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는 구원의 하나님을 바라보나니 나의 대적이 기뻐 춤추는 엎드러진 자이요, 어두움에 처한 자이요, 하나님의 진노를 당하는 죄인입니다. 나는 구원의 하나님을 바라보나니 그 절망과 시련 속에서도 나를 들으시는 하나님, 나를 사유하시는 하나님,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기도이요, 믿음이요, 소망입니다. 시편 42:5절/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그 얼굴의 도우심을 인하여 내가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본문10절) 사람들이 종일 나더러 하는 그 말에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어도(시42:3) 내 뼈를 찌르는 칼이 되어도(시42:10) 그 아픔을 참고 이겨야 하는 죄인입니다. 주와 같은 신이 어디 있으리이까(본문18절). 주에게는 긍휼하심이 있고, 사유하심이 있고, 신원하심이 있기에 주께서 나의 빛이 되시고(본문8절), 나를 인도하사 광명에 이르게 하시고, 그의 의를 보게 하시니(본문9절) 열방이 보고 놀라 입을 막고 귀가 막힐 것입니다(본문 16절).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는 구원의 하나님을 바라보나니 이 감격, 이 놀라운 소식이 국경을 넘고, 대양을 건너 전파되어 질 때 넓혀지는 내 지경 이 나라에서 저 나라까지,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이 산에서 저 산까지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내 지경이 넓혀질 것입니다. 나는 구원의 하나님을 바라보나니 내 구원의 하나님을 바라보는 기도 속에, 믿음 속에, 소망 속에는 이처럼 놀라운 축복이 담겨져 있습니다. 이 축복이 여러분의 것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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