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절

TOP
DOWN

나그네의 길 (창47:7-1,히11:13-16)

본문

인간 두뇌의 발달은 거의 무한대를 향하여 달리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동화와 신비에 젖어 있던 달나라에 인간의 발자국을 남기는가 하면, 이제는 시험관을 통하여 한 생명이 태어나는 놀라운 사건들이 우리의 주변에서 계속 발생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인간지능 까지도 대신할 컴퓨터의 발전은 인간세계의 무한한 발전을 전시하는 듯합니다.
그러나 단 하나의 사실만은 수천 년 동안 인류의 명석한 과학도들이 깊은 관심과 수많은 노력을 기울여 오지만 아직껏 대답을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문제는 영원히 인간의 두뇌나 기술로 해결하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한 인간이 왔다가 가는 문제입니다.
한 인생이 오는 문제는 잘 알아 맞춥니다. 그래서 새 생명을 영접하기 위한 제반 준비를 갖추고 정한 날이 되면 거의 어김없이 한 인생을 맞아 드립니다. 그러나 그 인생이 가는 문제는 아무도 예측하지를 못합니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한 생명이 이 땅을 떠날지 아무도 모른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떠날 때는 지극히 미약한 존재의 모습을 드러내고 이 땅을 뜬다는 사실 또한 흥미로운 문제입니다. 그토록 땀 흘려 이룩한 내 재산, 내 명예, 내 권력을 조금이라도 그 손에 쥐고 떠나지 못합니다. 그래서 옛 어른들은 인생을 가리켜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하는 존재들, 즉 인생이란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인생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이 인생을 가리켜 하나의 나그네라고 일컬었습니다.
사실 우리의 인생 여정길이 길었댔자 8, 90년이요, 짧으면 수 시간에 이르기까지 지극히 한정된 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베드로를 통하여 우리를 가리켜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벧전 2:11)라고 불렀습니다. 그렇습니다. 어느 누구하나 나 자신은 이 땅에 나그네와 행인 같은 존재가 아니라고 말하면서 나의 건강과 부와 나의 권세를 몇 백 년이고 만끽할 자가 있습니까
본문접근
오늘 우리에게 주신 말씀은 하나님만을 믿고 그의 말씀만을 순종해온 신앙의 선조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소중한 말씀입니다. 아벨, 에녹, 노아, 아브라함이 이 땅에 머문 동안 얼마나 위대한 믿음을 소유한 나그네로 살다가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는지를 상세히 밝힌 말씀입니다. 그 후손들인 이삭과 야곱, 그리고 수많은 그들의 후손들이 이곳저곳에 장막을 치고 나그네의 삶을 살았어도 믿음과 소망만은 버리지 않고 그들의 일생을 다 보내었다는 사실을 들려주는 것이 오늘의 본문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오늘의 말씀을 좀더 쉽게 풀어서 다시 경청하십시다.
하나님이 지극히 사랑했던 아브라함 이삭 야곱과 그 외의 수많은 믿음의 선조들은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 받은 것을 얻지는 못했으나 그것을 멀리서 바라보고 기뻐했습니다. 이 땅에서는 타향 사람이며 나그네에 불과하다는 것을 인정하였습니다. 그들이 이렇게 생각한 것은 그들이 찾고 있던 고향이 따로 있었다는 것을 분명히 드러내는 것입니다. 만일 그들이 떠나온 곳, 갈대아 우르나 브엘세바와 같은 곳을 고향으로 생각했었다면 그리고 돌아갈 기회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실지로 그들이 갈망한 곳은 하늘에 있는 더 나은 고향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城)을 예비하셨습니다.
구약의 본문 접근
하나님은 이 말씀의 정확한 실례를 믿음의 조상 가운데 한사람인 야곱의 인생고백 가운데서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가 죽은 줄로만 알고 있던 아들 요셉이 대 애굽땅의 국무총리가 되었다는 소식과 함께 그는 특별 초청을 받아 애굽으로 이민을 떠납니다. 아들이요 국무총리인 요셉의 안내를 받아 바로왕 앞에 섭니다. 왕은 야곱에게 연세가 어떻게 되느냐고 묻습니다.
그 때 야곱의 입에서 대단히 의미 깊은 대답이 나오고 있습니다.
“내 나그네의 세월이 일백삼십년이니다. 나의 연세가 얼마 못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세월에 미치지 못하니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이 대답 속에서 야곱은 할아버지 아브라함이나 아버지 이삭의 생애를 나그네의 길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살아온 과거와 오늘의 현재도 모두를 나그네의 길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주제부상
이러한 사상은 우리 민족도 똑같이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의 언어에서도 죽은 사람을 가리켜 돌아가셨다는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즉 이 땅에 나그네로 머물다가 영원한 본향으로 돌아갔다는 뜻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진정 우리의 인생은 누구나 모두가 이 땅에 나그네들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이제 인생이라는 나그네가 어떻게 살다가 우리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 앞에 돌아갈 것인가의 질문과 그 대답이 남아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는 오늘의 나그네들인 우리들에게 무엇을 생각하면서 어떻게 살아가기를 원하시는지 믿음의 선조들을 유심히 보면서 그 뜻을 경청해야 하겠습니다.
본론
먼저, 하나님은 믿음의 선조들이 어떤 목표를 세우고 살다가 이 땅을 떠났는지를 보여주고 계십니다.
그들이 찾고 있던 고향이 따로 있었다는 것을 분명히 드러내는 것입니다. 만일 그들이 떠나온 곳, 갈대아 우르나 브엘세바와 같은 곳을 고향으로 생각했었다면 그리로 돌아갈 기회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실지로 그들이 갈망한 곳은 하늘에 있는 더 나은 고향이었습니다.
믿음의 선조들은 이 땅의 삶을 영원한 것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수명을 다하면 곧 떠나게 되는 인생광야로 이 땅의 삶을 규정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집시 족들처럼 삶의 목표가 없이 유랑하는 그러한 인생 나그네들이 아니었습니다. 비록 자신들의 삶이 이 땅위에서 장막을 치고 사는 현실이었다 하더라도 그들은 고귀한 신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삶의 목표가 정확하였습니다. 그 목표를 바라보는 눈길이 흐리지 아니했고 그 몸이 흔들리지 아니했습니다. 그러하기에 어떤 경우도 그들은 그 목표를 바꾼 적이 없었습니다. 자신들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찾고 그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고 그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을 인생 최대의 목표로 했습니다.
하나님은 사도 바울을 통하여 가끔 우리의 인생을 경주장에서 목표를 향하여 달리는 선수들로 비유를 하고 있습니다. 목표와 방향을 잃어버린 사람들은 그 앞길이 탈선과 방종의 길을 달릴 수밖에 없다는 뜻입니다.
일반적인 성공의 비결을 보더라도 누가 정확하고 아름다운 목표를 세웠느냐에 따라 그 인생의 성패가 좌우되는 것을 알게 됩니다. 오늘은 이것 내일은 저것을 택해가면서, 오늘은 여기에 내일은 저기에 내 인생을 맡기고, 더 나아가서는 오늘은 여기에 아부하고 내일은 저기에서 허덕대는 인생은 아무래도 성공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의 뚜렷한 집념과 목표가 정확할 때 참 성공을 보게 됩니다.
나그네로 살아간 오늘의 우리 모두도 마치 한 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향하여 끊임없이 살아갈 때만이 그 인생이 성공스럽게 살다가 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삶의 목표가 가끔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보다 거리가 먼데서 방황하고 있습니다. 높은 권력의 보좌를, 또는 돈을, 드높은 명예를 인생의 최고의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층 양옥에 미모가 뛰어난 처녀가 살고 있었습니다. 대단히 교만하여 좀처럼 주위의 총각들이 감히 사랑의 눈길을 던지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용기 있는 젊은이가 비상한 머리를 썼습니다. 어느 달이 밝은 밤 그는 키타를 들고 그 처녀가 사는 집의 처마 밑에 가서 아름다운 사랑의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러나 그 처녀의 오가는 그림자만 보일 뿐 전혀 반응이 없었습니다. 고민하던 총각은 다시 연구를 거듭하다가 한 달 후에 또다시 밝은 달밤을 택하여 똑같은 장소를 찾아가 아름다운 서정시를 읽었습니다. 최소한의 감정이 있으면 움직일 수 있다고 판단했었는데 여전히 그 창문은 열리지 아니했습니다. 고민에 빠진 이 총각은 식음을 전패하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가 기발한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이번에는 칠흑같이 어둡고 가장 조용한 밤을 택했습니다. 조용히 이층 창밑에까지 다가갑니다. 그리고 가장 큰 소리로 외칩니다. 십만원이오! 백만원이오! 천만원이오! 일억이오! 십억이오! 백억이오! 이렇게 외쳤을 때 드디어 창문이 열리고 사랑의 편지가 오가고 드디어 결혼에 이르고 아들 딸 나아 잘 살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이것은 오래전에 어느 평론가가 신문에 실은 글입니다. 그 평론가는 그 글의 말미에서 결론처럼 말합니다. 오늘을 사는 인간들은 애정도, 인간 본래의 마음도 모두 돈이라는 것 앞에 쓰러지고 있다는 개탄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보다 돈을, 자기의 영광된 내일 보다 오늘의 돈을 추구한다는 지탄이었습니다. 돈, 그것은 중요한 것 중에 하나임이 틀림없습니다. 열심히 일해서 모으고 가난을 탈피하고 인생답게 살아가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것은 인생이 그 돈이나 권력을 최고의 목표로 삼고 그것들의 노예가 되어서는 아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인생, 특히 목사라는 나그네로서 최고의 목표가 되어야 합니까
오늘의 말씀에 나타난 믿음의 선조들은 무엇을 나그네 된 인생의 목표로 삼고 살다가 갔습니까 그들은 하나님을 예배하고 그 명령대로 사는데 인생의 주안점을 두었습니다. 그들은 이 길을 벗어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명심했습니다.
우리는 모두가 장로교에 몸을 담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장로교의 으뜸가는 교리인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의 소요리문답 첫 번째 질문은 인생의 제일된 목적이 무엇인가를 묻고 있습니다. 그 대답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0장에서도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시편기자는 73편에서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 밖에 나의 사모할 자 없나이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진정 이 땅에 머물고 있는 우리 모두도 신앙과 교육의 현장에서, 그리고 정치와 경제의 현장에서, 뿐만 아니라 내 가정과 교회와 이웃 속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생각하고 그것을 목표로 삼아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기뻐하시고 더 많은 것으로 지켜 주십니다. 그리고 그 나그네 된 인생은 행복된 삶의 여정 길을 걸을 수 있습니다.
둘째로, 하나님은 오늘의 말씀가운데서 믿음의 선조들은 바른 기록을 남기고 살다가 갔음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지극히 사랑했던 아브라함 이삭 야곱과 그 외의 수많은 믿음의 선조들은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오늘의 본문에 앞서서 하나님은 바울을 통하여 믿음의 선조들이 남긴 기록을 하나하나 나열하고 있습니다. 아벨은 믿음으로 가인보다 훌륭한 제물을 하나님께 바쳤다는 기록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에녹은 그의 아름다운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다가 죽지 않고 하늘로 옮겨 갔다는 기록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노아는 모두가 신뢰하지 않았으나 믿음으로 경외심을 가지고 방주를 지어서 구원 받았음을 밝혀주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였으나 믿음으로 하나님의 지시와 약속을 따라 나아갔던 기록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기록의 장입니다.
비록 약속 받은 것을 받지 못했어도 그들은 원망하나 보이지 않고 오직 묵묵히 하나님을 향한 충정을 다 바치다가 이 땅을 떠난 기록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믿음의 선조들 그들은 가난했어도 정직하게 살아간 기록을 남기고 있습니다. 고생이 되어도 하나님 앞에 부끄러운 기록을 남기지 않으려고 애쓰는 모습이 뚜렷합니다.
우리의 속담에 호랑이가 죽으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이 죽으면 이름을 남긴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우리는 호적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 호적은 단순한 가족사항만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한 인생이 이 땅에 머무는 동안 언제 어디서 살았는지를 말할 뿐만 아니라 법정에서 선고를 받았을 경우 그것까지 기록해 놓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의 역사에도 애국자의 이름이나 나라를 팔아먹은 비애국자들의 이름이 모두 남아 있어서 후대들에게 생생하게 전해지고 있습니다.
인생이라는 나그네가 떠난 다음에도 어떠한 기록이든 남을 수밖에 없습니다. 한 나라의 통치가를 비롯하여 한 가정의 부모에 이르기까지 적나라한 기록을 남기고 이 땅을 떠나야 합니다. 누구에게도 이 문제만은 회피할 수 없습니다.
한 나그네가 이 땅을 떠난 다음에 후대는 반드시 평가를 합니다. 그는 살았을 때 한 가정을 바르게 움직였던가 그는 훌륭한 믿음과 인격을 심어주었던 아버지였던가 그는 한 가정에서 희생적인 모성애를 발휘하면서 눈물을 아끼지 않고 남편과 자녀를 위하여 희생을 했던 기도의 어머니요 아내였던가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의 교회에서 말없는 봉사의 손길을 쉬지 않던 소중한 존재들이었던가 그는 한 나라의 통치자로서 또는 정치가로서 민족을 위하여 갖은 희생과 수고를 아끼지 않았던 인물이었던가 그는 국방에만 미쳐버린 군인이었던가 그는 평생 동안 교육에만 미쳐버린 교육가였던가 착하고 충성된 종으로 주님을 위하여 멸시와 천대를 모두 감당한바 있었던가
아니면 가정을 무질서하게 만들어버린 부끄러운 부모였던가 하나님의 교회에 거침돌이 되었던 존재였던가 국민을 희롱하고 수많은 목숨을 앗아가면서 자신의 집권만을 고집했던가 가난한 이웃을 외면한 채 나의 부만을 취하였던 존재였던가 하나님을 예배하고 그를 기쁘시게 해드리는데 전혀 무관심했던 사람이었던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어두운 일생으로 삶의 장을 끝맺었던가
이상과 같은 질문들 그리고 거기에 대한 대답은 한 인생이 가버린 다음에 반드시 남게 됩니다. 여기에 대답이 자랑스럽지 못할 때 그 인생은 성공한 나그네가 되지못하였다고 결론지을 수 있습니다. 그 부끄러운 기록이 종이와 펜으로 기록되어 있는 것이라면 돈을 주고 사서 태워버린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아무리 지우려 해도 지울 수 없는 후대의 뇌리 속에 박혀버린 기록이 됩니다.
하나님은 이 시간도 나의 변질된 모습을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수명을 다하고 이 땅을 떠났을 때 우리의 자손 우리의 후대 앞에 남기게 될 기록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음을 오늘의 말씀에서 보여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손에 있는 생명책에 나의 이름과 나의 행위가 어떻게 기록될 것인지에 깊은 관심을 가진 나그네가 오늘을 승리할 수 있음도 하나님은 알려주십니다. 여기 하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라(계20:12)
이 땅에 영원히 머무를 수 없는 나그네 된 인생들, 하나님 앞에 설 수 밖에 없는 날이 하루하루 다가옴을 아는 인생은 이 시간도 깊은 생각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 보좌 앞의 생명책을 생각하고 거기에 기록될 자신의 행위를 오늘도 점검해야 합니다.
셋째로, 하나님은 믿음의 선조들이 주인의 음성을 들으면서 살다가 떠난 나그네들이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약속 받은 것을 얻지는 못했으나 그것을 멀리서 바라보고 기뻐했습니다.
오늘 봉독한 말씀에서 보여준 믿음의 선조들의 육적인 삶은 비참한 것이었습니다. 오늘의 나그네들처럼 화려한 문명이나 삶의 조건을 구경도 못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어느 한곳에 평생을 정착해 보지 못한 체 이리저리 삶의 거처를 옮겨 다니면서 숱한 전쟁과 가난과 위험과 아픔으로 얼룩진 삶의 길을 걸어야 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떠나온 본향과 지난날을 추구하는 과거지향적인 삶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비록 약속된 것을 이 땅에서 받지는 못하였으나 그것을 멀리서 바라고고 즐거워하는 믿음이 살아 있었습니다. 스스로를 이 땅에서는 나그네 또는 외국인이라고 일컬으면서 영원하고 아름다운 본향을 향한 발길을 멈추지를 아니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가지고 있던 신앙의 청각만은 누구도 따를 수 없도록 정확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따르는 그들의 신앙의 귀와 발길은 너무나 아름다운 것이었습니다. 그들의 모든 결정과 행동은 모두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만 움직여졌습니다.
약속 받은 것을 얻지 못했어도 그것을 멀리서 바라보고 오늘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오직 기뻐했습니다.
초등학교에서 외치는 스승의 말이 지금 당장 그 세대들에게는 실현성이 없게 보일지 모르나 그들이 장성해 가면 갈수록 그 말씀이 맞아갑니다. 부모의 말씀이 전혀 가능성이 없는 말 같아서 외면했으나 커갈수록 그 말씀이 진리임을 알게 됩니다. 인생이라는 나그네는 가야할 곳이 있으며 그 주인이 있습니다. 그 주인은 자신의 사람들에게 쉼 없이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어떨 때는 전혀 실현 가능성이 없는 것처럼 들립니다. 나그네가 주인의 음성을 빨리 듣고 빨리 행동에 옮길 때 더욱 튼튼한 성공이 있습니다. 오늘의 현대인들은 이 주인의 음성을 외면하는데서 많은 불행을 초래하고 있습니다.
그 주인은 말씀하십니다. 곧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의 주인이신 하나님은 성경을 통하여 또는 기도 속에서, 예배 속에서 늘 시간 시간 우리에게 성령의 역사를 통하여 삶의 길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오늘도 인생을 외롭게 살아가는 나그네들에게는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내버려두지 아니하리라.”고 우리 주님 말씀하십니다. 오늘은 이일을 내일은 저 일을 해도 좌절과 실패로 얼룩진 나그네들에게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올라 내가 너희를 편히 쉬게 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과 나만이 아는 죄를 짓고 괴로워하는 나그네들에게는 하나님은 “오라 ····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정치 일선에서 또는 교육의 일선에서 갖은 어려움을 이기면서 사명적 삶을 살아가는 나그네들에게는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루매 거두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오늘을 자랑스럽게 하나님 앞에 살아간 나그네들에게는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이토록 적재적소에 필요한 주인의 음성이 오늘의 나그네들에게 계속해서 들려오는데 많은 사람이 귀를 기울이지 아니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자녀를 향하여 부모의 말을 듣지 아니한다고 괴로워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말씀을 얼마나 듣고 실천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은 분명히 오늘도 말씀하십니다.
“나를 청종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마음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사55:2)
주인의 음성을 들을 줄 아는 나그네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내 가정에서, 내 일터에서, 주인이신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에 우리 마음의 귀를 기울여야 하겠습니다. 순종해야 하겠습니다. 믿음의 선조들 그들은 모두가 하나님을 자신들의 주인으로 모시고 그 음성에 따라서 순종하고, 약속을 비록 만져보지 못했어도 멀리서 보고 믿으며 나그네 인생길을 살다가 떠났습니다.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그 아픈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 십자가의 고초를 앞에 놓고 “할 수 있으면 이 잔을 내게서 멀리해 달라”는 간청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어서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라는 기도를 드리시고, 그 수치와 괴로움을 감수하시면서 십자가 위에서 우리 대신 피를 흘리시고 그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그 삶의 목표, 그 기록, 그 순종은 언제나 우리 앞에 보여지고 있습니다.
결론
로마의 철학자 세네카는 그의 서한집에서 “우리는 오래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옳게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말을 남긴바 있습니다. 언제인가 떠나야 할 나그네들 무슨 목표를 향하여 오늘을 달리고 있습니까 오늘이라도 떠나는 날 우리 자신의 이름 밑에 무슨 기록이 남게 되겠습니까 그리고 오늘 우리는 우리 인생 나그네들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면서, 순종하면서 오늘의 길을 달리고 있습니까 이 땅에 내 마음대로 머무르지 못한 채 언제인가 떠나야 할 나그네들! 우리의 진정한 길과 진리와 생명은 어디에 있으며 그가 누구이십니까
하나님은 이러한 질문 앞에 아름다운 대답을 남긴 나그네들에게 저희 하나님 되심을 부끄러워하지 않으시고 우리를 위하여 한 성(城)을 예비해 두셨습니다. 우리 모두가 이 성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가 이 성에 들어오기를 기다리십니다. 이제 성공적인 나그네로 이 땅에서 살다가 하나님이 예비해 두신 그 성에 우리 모두 들어가십시다.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29,555 건 - 276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