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그네로 있을 때 두려움을 (벧전1,17-21)
본문
1,외모로 보시지 않는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2,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구속 받았으니
3,믿음의 소망이 하나님께 있기 때문에 천리길도 한 거음부터라는 말이 있다. 또 시작이 절반이라는 말도 있다.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 수 있다는 말도 있다. 이는 다 첫 출발의 중요성을 지적하는 어른들의 삶의 결론이다. 벌써 1993년 1월 첫번 맏는 주님의 날이다. 새해는 우리들의 신앙도 생활도 좀 새로와져야 하겠다. 하나님을 대하여는 좀더 경건한 믿음의 사람이되고 형제들을 대하여는 좀 더 믿음직한 신실한 사람이 되자. 그렇게 살기를 원위하여 베드로는 계속해서 명령을 하고 있다. 13절에서는 "온전한 소망을 가지라"고 했다. 15절에서는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고 했다. 오늘은 "나그네로 있을 때 두려움으로 지내라"고 명령하신다.
1,외모로 보시지 않는 하나님 앞에서 " 17절 "외모로 보시지 않고 사람의 행한대로 판단하시는 자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 이 17절의 말씀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자들"에게 하시는 명령이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자들 즉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하는 자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명령이다. "외모로 보시지 않고"라는 말로 시작하고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거의가 다 외모를 중시하는 세상이다. 각종 상품의 포장으로 시작하여 나중에 사람에게까지 겉 모양을 중시하는 일들이 참으로 많은 것을 본다. 아이들의 과자 봉지… 여인들의 화장품 병들. 명절때 주고 받는 선물셋드의 포장기. 어떤 것은 내용물보다 걷 껍데기가 더 좋은 것처럼 보이는 것들도 많다. 미스 진,선,미의 기준은 어디에 있나 미스터 월드의 기준도 어디에 있나 전부가 외모와 관계가 있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보시지 않는다고 하셨다. 예수 믿게 된 조건을 하나님께서 외모로 결정하셨다면 어떻게 되었겠나 또 하나는 사람들은 형식을 너무 즐긴다. 너무 형식을 따지다보니 사람을 보는 관점도 어떤 틀에다 마추어서 판단할려고 하는 경향이 사람들에게 있는 것 같다. 그러니 자연히 사람들은 외식을 하게 되어 있다.(바리새인들처럼)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의 외모를 보시지 않는다. 롬2;11절에서도 "이는 하나님께서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아니하심이라"고 했다. 하나님은 우리들의 중심을 보고 계신다. 형제를 향하고 있는 여러분들의 중심을 보고 계신다. 교회를 향하고 있는 " 하나님을 향하고 있는 " 하나님은 우리들의 외모와 관계 없이 "각 사람의 행위대로 판단하신다"고 했다. 각 사람의 행위는 그 사람의 내적인 인격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고후5;10절에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고 했고 계20;12절은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다른 책이 펴졌는데 곧 생명책이라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대로 심판을 받으니"라고 했다. 하나님은 우리들의 외모를 보지 않는다. 우리의 중심을 보고 계신다. 그래서 17절은 "너희의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고 명령한다. 우리 모두는 다 나그네의 삶을 살고 있을 뿐이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한마디로 나그네의 역사이다. 하나님은 나그네들의 외모를 보시지 않고 나그네들의 행위를 보고 게신다. 하나님 두려운 줄 알고 생각하고, 하나님 두려운 줄 알고 행동하셔야 한다.
2,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구속을 받았으니(18-19) 18절에 "너희가 알거니와." 의 알거니와라는 말은 누가 학습을 했기에 배워서 아는 앎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의 역사로 구원의 도리가 깨달아지는 그 앎을 말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게 무었인가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구속받을만한 어떤 조건이 내게 있어서가 아니라 죽을 수 밖에 없었던 망령된 행실에서의 구속인 것이다. 그것도 우리가 어떤 대가를 지불하고 구속된 것이 아니라 "오직 흠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피로 한 것이니라"
그런데 구속함을 입은 사람들 중에는 이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그리스도 예수의 피가 어떤 것인지를 제되로 알지 못하는 분들이 있다. 크게는 캐토릭 교회처럼 죽은 영혼이 후손들의 물질과 봉사로 구원된다고 가르친다. 그래서 생겨진 것이 연옥이란 성경에도 없는 교리가 생긴 것이다. 우리의 구속을 위하여 흘려 주신 그리스도 예수의 피는 세상의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고귀한 것이다. 어떤 한 사람 구원하기 위하여 세상 사람이 다 죽는다해도 않되는 것이다. 또 어떤 한 사람을 위하여 이 우주를 다 어떻게 한다해도 불가능한 일이다. 18절을 잘 보라. ".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19절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 흠 없고 점 없는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구속함을 받았으니 우리 모두가 얼마나 보베로운 존재들인가 우리 모두의 생명에 이 그리스도의 흠 없고 점 없는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가 흐르고 있다. 믿는가
그렇다면 우리들의 삶이 얼마나 경건해야 하겠는가 다시금 우리들의 생각이나 행실이 망령되다면 이는 보배로운 그리스도의 피를 더럽히는 것이 된다. 나를 위하여 구속의 보배로운 피를 흘려 주신 그리스도의 피를 받은 거룩한자 답게 나그네의 생활에서 하루 하루 두려움으로 지내라는 명령이다. 여기의 두려움은 뭔가가 무서워서 막 벌벌 떠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여기의 두려움은 "스스로의 삶을 삼가함을"의미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구속함을 받은 백성이 되었으니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새생명을 받았으니 이제는 생활에 삼가 두려움을 가지고 살라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구속함을 받은 자의 삶은 그리스도를 닮은 삶이어야 한다. 마20;28절에서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하고 자기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라"고 하셨다.
3,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기 때문에(20-21) 20절과 21절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구속함을 입은 사람들이 외 나그네의 생활에서 두려움으로 지내어야 하는가를 확실하게 해 주고 있다. 창조주가 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이 땅에 그리스도를 보내어 주셔서 보배로운 피를 흘리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오늘 이렇게 믿는 자가 되었다. 그러니 우리들의 믿음과 소망은 하나님께 있다는 말씀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의 믿음이나 소망이 하나님께 있는 것이 아니라면 우리는 세상의 풍조를 따라서 형식적이든 외모로든 그것이 외식이든 무슨 관계가 있겠는가 우리들의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라 세상만이라면 우리는 나그네도 아닌 것이고 또 매일 매일 두려움을 가지고 살 필요가 없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우리들의 믿음과 소망은 하나님께 있다는 것이다. 확실히 믿으셔야 한다. 분명히 믿으셔야 한다. 우리의 외모를 보시지 않고 속 사람을 보시는 하나님 앞에 진실된 행실을 보일 수 있는 되어야 하겠다. 흠과 점이 없으신 보배로운 피를 흘려 주신 그리스께 인정을 받는 경건한 삶을 위하여 두려운 심정으로 살아야 하겠다. 우리들의 믿음과 소망은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라고 부르는 여호와 하나님 께 있음을 명심하고 확실한 믿음 가운데 밝은 소망 가운데 보내실 수 있기를 주님 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네 믿음대로 되라"고 말씀하셨던 주님의 역사가 여러분들의 믿음 위에 나타 나기를 바란다. 여러분들이 하나님께 소망하는 일들이 더 귀하고 더 아름다운 것이 될 수 있기를 다시 한 번 축원한다.
2,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구속 받았으니
3,믿음의 소망이 하나님께 있기 때문에 천리길도 한 거음부터라는 말이 있다. 또 시작이 절반이라는 말도 있다.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 수 있다는 말도 있다. 이는 다 첫 출발의 중요성을 지적하는 어른들의 삶의 결론이다. 벌써 1993년 1월 첫번 맏는 주님의 날이다. 새해는 우리들의 신앙도 생활도 좀 새로와져야 하겠다. 하나님을 대하여는 좀더 경건한 믿음의 사람이되고 형제들을 대하여는 좀 더 믿음직한 신실한 사람이 되자. 그렇게 살기를 원위하여 베드로는 계속해서 명령을 하고 있다. 13절에서는 "온전한 소망을 가지라"고 했다. 15절에서는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고 했다. 오늘은 "나그네로 있을 때 두려움으로 지내라"고 명령하신다.
1,외모로 보시지 않는 하나님 앞에서 " 17절 "외모로 보시지 않고 사람의 행한대로 판단하시는 자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 이 17절의 말씀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자들"에게 하시는 명령이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자들 즉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하는 자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명령이다. "외모로 보시지 않고"라는 말로 시작하고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거의가 다 외모를 중시하는 세상이다. 각종 상품의 포장으로 시작하여 나중에 사람에게까지 겉 모양을 중시하는 일들이 참으로 많은 것을 본다. 아이들의 과자 봉지… 여인들의 화장품 병들. 명절때 주고 받는 선물셋드의 포장기. 어떤 것은 내용물보다 걷 껍데기가 더 좋은 것처럼 보이는 것들도 많다. 미스 진,선,미의 기준은 어디에 있나 미스터 월드의 기준도 어디에 있나 전부가 외모와 관계가 있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보시지 않는다고 하셨다. 예수 믿게 된 조건을 하나님께서 외모로 결정하셨다면 어떻게 되었겠나 또 하나는 사람들은 형식을 너무 즐긴다. 너무 형식을 따지다보니 사람을 보는 관점도 어떤 틀에다 마추어서 판단할려고 하는 경향이 사람들에게 있는 것 같다. 그러니 자연히 사람들은 외식을 하게 되어 있다.(바리새인들처럼)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의 외모를 보시지 않는다. 롬2;11절에서도 "이는 하나님께서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아니하심이라"고 했다. 하나님은 우리들의 중심을 보고 계신다. 형제를 향하고 있는 여러분들의 중심을 보고 계신다. 교회를 향하고 있는 " 하나님을 향하고 있는 " 하나님은 우리들의 외모와 관계 없이 "각 사람의 행위대로 판단하신다"고 했다. 각 사람의 행위는 그 사람의 내적인 인격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고후5;10절에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고 했고 계20;12절은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다른 책이 펴졌는데 곧 생명책이라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대로 심판을 받으니"라고 했다. 하나님은 우리들의 외모를 보지 않는다. 우리의 중심을 보고 계신다. 그래서 17절은 "너희의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고 명령한다. 우리 모두는 다 나그네의 삶을 살고 있을 뿐이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한마디로 나그네의 역사이다. 하나님은 나그네들의 외모를 보시지 않고 나그네들의 행위를 보고 게신다. 하나님 두려운 줄 알고 생각하고, 하나님 두려운 줄 알고 행동하셔야 한다.
2,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구속을 받았으니(18-19) 18절에 "너희가 알거니와." 의 알거니와라는 말은 누가 학습을 했기에 배워서 아는 앎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의 역사로 구원의 도리가 깨달아지는 그 앎을 말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게 무었인가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구속받을만한 어떤 조건이 내게 있어서가 아니라 죽을 수 밖에 없었던 망령된 행실에서의 구속인 것이다. 그것도 우리가 어떤 대가를 지불하고 구속된 것이 아니라 "오직 흠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피로 한 것이니라"
그런데 구속함을 입은 사람들 중에는 이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그리스도 예수의 피가 어떤 것인지를 제되로 알지 못하는 분들이 있다. 크게는 캐토릭 교회처럼 죽은 영혼이 후손들의 물질과 봉사로 구원된다고 가르친다. 그래서 생겨진 것이 연옥이란 성경에도 없는 교리가 생긴 것이다. 우리의 구속을 위하여 흘려 주신 그리스도 예수의 피는 세상의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고귀한 것이다. 어떤 한 사람 구원하기 위하여 세상 사람이 다 죽는다해도 않되는 것이다. 또 어떤 한 사람을 위하여 이 우주를 다 어떻게 한다해도 불가능한 일이다. 18절을 잘 보라. ".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19절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 흠 없고 점 없는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구속함을 받았으니 우리 모두가 얼마나 보베로운 존재들인가 우리 모두의 생명에 이 그리스도의 흠 없고 점 없는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가 흐르고 있다. 믿는가
그렇다면 우리들의 삶이 얼마나 경건해야 하겠는가 다시금 우리들의 생각이나 행실이 망령되다면 이는 보배로운 그리스도의 피를 더럽히는 것이 된다. 나를 위하여 구속의 보배로운 피를 흘려 주신 그리스도의 피를 받은 거룩한자 답게 나그네의 생활에서 하루 하루 두려움으로 지내라는 명령이다. 여기의 두려움은 뭔가가 무서워서 막 벌벌 떠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여기의 두려움은 "스스로의 삶을 삼가함을"의미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구속함을 받은 백성이 되었으니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새생명을 받았으니 이제는 생활에 삼가 두려움을 가지고 살라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구속함을 받은 자의 삶은 그리스도를 닮은 삶이어야 한다. 마20;28절에서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하고 자기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라"고 하셨다.
3,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기 때문에(20-21) 20절과 21절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구속함을 입은 사람들이 외 나그네의 생활에서 두려움으로 지내어야 하는가를 확실하게 해 주고 있다. 창조주가 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이 땅에 그리스도를 보내어 주셔서 보배로운 피를 흘리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오늘 이렇게 믿는 자가 되었다. 그러니 우리들의 믿음과 소망은 하나님께 있다는 말씀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의 믿음이나 소망이 하나님께 있는 것이 아니라면 우리는 세상의 풍조를 따라서 형식적이든 외모로든 그것이 외식이든 무슨 관계가 있겠는가 우리들의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라 세상만이라면 우리는 나그네도 아닌 것이고 또 매일 매일 두려움을 가지고 살 필요가 없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우리들의 믿음과 소망은 하나님께 있다는 것이다. 확실히 믿으셔야 한다. 분명히 믿으셔야 한다. 우리의 외모를 보시지 않고 속 사람을 보시는 하나님 앞에 진실된 행실을 보일 수 있는 되어야 하겠다. 흠과 점이 없으신 보배로운 피를 흘려 주신 그리스께 인정을 받는 경건한 삶을 위하여 두려운 심정으로 살아야 하겠다. 우리들의 믿음과 소망은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라고 부르는 여호와 하나님 께 있음을 명심하고 확실한 믿음 가운데 밝은 소망 가운데 보내실 수 있기를 주님 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네 믿음대로 되라"고 말씀하셨던 주님의 역사가 여러분들의 믿음 위에 나타 나기를 바란다. 여러분들이 하나님께 소망하는 일들이 더 귀하고 더 아름다운 것이 될 수 있기를 다시 한 번 축원한다.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