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그네와 인간의 제도 (벧전2:13-17)
본문
앞에서 사도는 성도를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사역을 덧입혀서 영광스러운 명칭으로 불렀습니다. 새로운 이스라엘에게 옛날의 이스라엘 나라에 붙였던 명칭을 그리스도의 사역을 덧입혀서 붙여 불렀습니다. 그리고는 너희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땅에서는 나그네와 행인 같은 사람들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나그네와 행인 같은 정신을 가지고 사는 이 땅을 가는 사람은 이 땅의 육체의 정욕을 제어해야 된다고 했습니다. 육체의 정욕이 나그네로 가는 신자에게 가장 근본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이것을 가장 먼저 말하고 있는 것 같다고 제가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나 나그네 정신은 육체를 이기게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나그네 정신은 이 후로 계속해서 사도가 말하고자 하는 것의 핵이 되고 있습니다. 앞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모든 내용들에서 이 나그네 정신이 깔려 있습니다. 13절부터 사도 베드로는 인간이 세운 제도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인간에 세운 제도'라고 한 말은 '인간의 창조물 즉 인간이 만든 제도'라고 할 수 있는 말입니다. 인간에 세운 제도라고 할 때는 마치 하나님이 주신 제도인 것처럼 생각하기가 쉽습니다만 인간이 만든 제도라고 할 때는 인간들이 제도를 만든 주체라는 것을 분명히 하는 것 같습니다. 이런 인간들이 만든 제도 즉 여기서는 정치적인 제도를 말하고 있는 데 이것들이 선한 것입니까 우리가 현실적인 위치에서 생각할 때 이것은 민주적인 것도 아니고 정의롭고 평등한 것도 아닙니다. 왕이나 방백 또는 총독이라는 말은 이런 개념과는 거리가 먼 말입니다. 이 말들은 절대 권력을 가진 자들을 의미하며 임금과 신하, 주인과 종의 관계를 보여주는 말입니다. 절대 권력자가 백성을 신하로 생각하면서 부리던 사회를 반영해 주며 또 노예 제도가 시행되고 있던 시대라는 것을 반영해 주고 있습니다. 이런 제도들을 오늘 우리의 입장에서 선하다고 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당시의 소아시아 성도들에게도 이런 정치제도가 그들을 고달프게 하는 것이었겠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러한 제도 속에서 평안을 누리지 못하고 살았을 것이며 하나님이 그러한 제도들을 제거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모종의 반정부 운동을 하였을 지도 모릅니다.
그런데도 사도 베드로는 인간의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복하라'고 합니다. '순복하라'는 말은 '복종하라' 또는 '굴복하라'고도 번역할 수 있는 말입니다. 이것은 반항하지 말고 굴복하라고 하는 뜻으로 볼 수가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주님 때문입니다. 이러한 제도라도 주님과 무슨 관계가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제도와 주님이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다음의 말씀을 생각해 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다시 번역을 할 필요가 있는 부분입니다. 그래서 저의 사역입니다만 다시 이것을 풀어서 번역하면 이렇게 번역할 수 있겠습니다. '혹은 위에 있는 왕이나 혹은 악행하는 자를 징벌하고 선행하는 자를 포장하기 위하여 하나님에(그)의해 보냄을 받은 자들인 방백들에게 복종하라
왜냐하면 그들이 선을 행함(선행하는 자를 포장하고 악행하는 자를 징벌하는 것)으로 어리석은 사람들의 무식을 잠재우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이런 식으로 일하신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번역하고 보면 왕이나 총독들도 하나님이 보낸 자들입니다. 악한 자를 징벌하고 선행하는 자를 상주는 것으로 어리석은 사람들의 무지를 잠재우기 위하여 하나님이 보낸 심부름꾼입니다. 여기서 '어리석은 사람들'이 어떤 사람을 뜻하는 지 추측해 보기 위해서 '어리석다'는 말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어리석다는 말 외에 '지혜롭지 못한, 센스 없는, 둔한, 지성이 없는, 분별없는, 무모한, 자기중심적인' 등의 뜻으로 사용되고 있는 말입니다. 이런 것을 종합해 볼 때 어리석은 사람들이라는 무지막지하게 자기만을 생각하는 미련한 사람, 막무가내로 자기 욕심만을 생각하고 다른 사람을 전혀 생각하지 않는 곰 같은 사람 따위로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사회 일반적인 규율 따위도 없고 자기에게 유익하게만 살아갑니다.
요즈음의 폭력배들과 같은 사고 방식을 가진 사람들을 두고 하는 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왕이나 총독들은 이런 사람들에게서 일반 사람들을 보호하는 일을 하도록 하나님이 보내신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신앙을 이해해주지는 않을 지라도 일반적인 사회적인 질서라도 보호해 주는 일을 하기 때문에 이런 면에서 하나님의 심부름꾼 노릇을 하고 있다는 말로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니 이런 사람들은 신자가 믿음의 생활을 하는 데 방해가 되기보다는 도움이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무지한 사람들이 성도들을 중상 모략할 수도 있고 미워하면서 폭력을 가해 올 수도 있습니다(4:4,14,16참조). 마치 사도행전에서 유대인들이 바울을 잡아서 폭행하고 죽이려고 했던 것과 같이 말입니다. 그럴 때 바울은 천부장과 왕과 총독들과 심지어 가이사에게까지 호소했었습니다. 하나님을 알 지 못하는 군주들과 위정자들도 이런 식으로 하나님의 심부름을 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이와 같은 점들을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위정자들에게 복종하라고 하고 있습니다. 사회나 정치제도 세운 일반적인 선함도 신자들에게 유익하게 될 때가 있으니까 그런 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 이런 말을 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16-17절도 이런 관점에서 이해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자유하나 그 자유로 악을 가리우는데 쓰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종과 같이 하라 뭇 사람을 공경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왕을 공경하라"고 합니다. 주어진 자유로서 악을 가리고 덮어주는 데 쓰지 말고 하나님의 종으로서 뭇 사람을 공경하고 형제를 사랑하고 왕을 공경하면서 살라고 합니다. 신자가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기에 유익한 쪽으로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이상에서 우리는 정치제도를 베드로가 절대시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도는 정치 제도를 절대화하는 뜻에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전혀 아닙니다. 정치 제도란 절대적인 선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정치 제도도 절대시할 필요가 없습니다. 독재가 다 나쁜 것이 아니며 민주가 다 좋은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어떤 정치 제도를 절대적인 것으로 추종할 필요가 없습니다. 민주가 절대적인 것도 아니고 공산도 절대적인 것도 아닙니다. 세상에는 절대적인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것들에 목을 매어 달 필요가 없습니다. 그것이 생명을 주는 것이 아니며 또 그것을 위해서 우리가 사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근본적으로 신자는 이런 모든 것들에 대하여 나그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만든 제도를 위해서 살 필요가 없습니다. 따라서 어떤 정치 제도라도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거절한다면 신자도 거절할 수 있습니다. 혁명을 하고 피를 흘려서 할 필요는 없지만 다수에 의해서 거절할 수 있습니다. 특히 현대의 정치란 다수에 의해서 좌우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다수에 의한 정치적인 변화를 두려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러한 정치적인 제도들은 그 나름대로의 유익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신자는 이러한 제도들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해야 하겠습니까 한 마디로 말하면 하나님 믿기에 좋은 것을 택하는 것이 좋습니다. 독재라도 그것이 하나님을 믿기에 좋다면 그것을 택할 수 있고 민주라도 하나님 믿기에 방해를 준다면 그것을 배척할 수 있습니다. 어떤 형태의 정치라도 일반적인 선도 없고 또 하나님 믿는 데 방해를 주고 오히려 박해를 가한다면 그것을 거부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거부할 수 있는 상황이 될 때에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신자가 거부할 수 있는 상황이 되지 않을 때에는 신자가 고난을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어떤 것이든지 신앙으로 사는 데 유리하겠다고 생각되는 것을 택하고 그 위정자에게 순종하는 것이 좋습니다. 인간이 만든 모든 제도들은 천국을 위해서 신자가 이용하면 되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그렇게 세워진 위정자들을 순종하라고 하고 있는 셈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세상의 정치 제도까지도 믿음을 위한 이용의 대상입니다. 이런 의미에서의 순종을 베드로는 말하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나그네로서 이용하면서 살도록 하는 의미에서 순복하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러한 제도 속에서 평안을 누리지 못하고 살았을 것이며 하나님이 그러한 제도들을 제거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모종의 반정부 운동을 하였을 지도 모릅니다.
그런데도 사도 베드로는 인간의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복하라'고 합니다. '순복하라'는 말은 '복종하라' 또는 '굴복하라'고도 번역할 수 있는 말입니다. 이것은 반항하지 말고 굴복하라고 하는 뜻으로 볼 수가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주님 때문입니다. 이러한 제도라도 주님과 무슨 관계가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제도와 주님이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다음의 말씀을 생각해 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다시 번역을 할 필요가 있는 부분입니다. 그래서 저의 사역입니다만 다시 이것을 풀어서 번역하면 이렇게 번역할 수 있겠습니다. '혹은 위에 있는 왕이나 혹은 악행하는 자를 징벌하고 선행하는 자를 포장하기 위하여 하나님에(그)의해 보냄을 받은 자들인 방백들에게 복종하라
왜냐하면 그들이 선을 행함(선행하는 자를 포장하고 악행하는 자를 징벌하는 것)으로 어리석은 사람들의 무식을 잠재우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이런 식으로 일하신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번역하고 보면 왕이나 총독들도 하나님이 보낸 자들입니다. 악한 자를 징벌하고 선행하는 자를 상주는 것으로 어리석은 사람들의 무지를 잠재우기 위하여 하나님이 보낸 심부름꾼입니다. 여기서 '어리석은 사람들'이 어떤 사람을 뜻하는 지 추측해 보기 위해서 '어리석다'는 말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어리석다는 말 외에 '지혜롭지 못한, 센스 없는, 둔한, 지성이 없는, 분별없는, 무모한, 자기중심적인' 등의 뜻으로 사용되고 있는 말입니다. 이런 것을 종합해 볼 때 어리석은 사람들이라는 무지막지하게 자기만을 생각하는 미련한 사람, 막무가내로 자기 욕심만을 생각하고 다른 사람을 전혀 생각하지 않는 곰 같은 사람 따위로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사회 일반적인 규율 따위도 없고 자기에게 유익하게만 살아갑니다.
요즈음의 폭력배들과 같은 사고 방식을 가진 사람들을 두고 하는 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왕이나 총독들은 이런 사람들에게서 일반 사람들을 보호하는 일을 하도록 하나님이 보내신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신앙을 이해해주지는 않을 지라도 일반적인 사회적인 질서라도 보호해 주는 일을 하기 때문에 이런 면에서 하나님의 심부름꾼 노릇을 하고 있다는 말로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니 이런 사람들은 신자가 믿음의 생활을 하는 데 방해가 되기보다는 도움이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무지한 사람들이 성도들을 중상 모략할 수도 있고 미워하면서 폭력을 가해 올 수도 있습니다(4:4,14,16참조). 마치 사도행전에서 유대인들이 바울을 잡아서 폭행하고 죽이려고 했던 것과 같이 말입니다. 그럴 때 바울은 천부장과 왕과 총독들과 심지어 가이사에게까지 호소했었습니다. 하나님을 알 지 못하는 군주들과 위정자들도 이런 식으로 하나님의 심부름을 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이와 같은 점들을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위정자들에게 복종하라고 하고 있습니다. 사회나 정치제도 세운 일반적인 선함도 신자들에게 유익하게 될 때가 있으니까 그런 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 이런 말을 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16-17절도 이런 관점에서 이해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자유하나 그 자유로 악을 가리우는데 쓰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종과 같이 하라 뭇 사람을 공경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왕을 공경하라"고 합니다. 주어진 자유로서 악을 가리고 덮어주는 데 쓰지 말고 하나님의 종으로서 뭇 사람을 공경하고 형제를 사랑하고 왕을 공경하면서 살라고 합니다. 신자가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기에 유익한 쪽으로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이상에서 우리는 정치제도를 베드로가 절대시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도는 정치 제도를 절대화하는 뜻에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전혀 아닙니다. 정치 제도란 절대적인 선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정치 제도도 절대시할 필요가 없습니다. 독재가 다 나쁜 것이 아니며 민주가 다 좋은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어떤 정치 제도를 절대적인 것으로 추종할 필요가 없습니다. 민주가 절대적인 것도 아니고 공산도 절대적인 것도 아닙니다. 세상에는 절대적인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것들에 목을 매어 달 필요가 없습니다. 그것이 생명을 주는 것이 아니며 또 그것을 위해서 우리가 사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근본적으로 신자는 이런 모든 것들에 대하여 나그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만든 제도를 위해서 살 필요가 없습니다. 따라서 어떤 정치 제도라도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거절한다면 신자도 거절할 수 있습니다. 혁명을 하고 피를 흘려서 할 필요는 없지만 다수에 의해서 거절할 수 있습니다. 특히 현대의 정치란 다수에 의해서 좌우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다수에 의한 정치적인 변화를 두려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러한 정치적인 제도들은 그 나름대로의 유익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신자는 이러한 제도들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해야 하겠습니까 한 마디로 말하면 하나님 믿기에 좋은 것을 택하는 것이 좋습니다. 독재라도 그것이 하나님을 믿기에 좋다면 그것을 택할 수 있고 민주라도 하나님 믿기에 방해를 준다면 그것을 배척할 수 있습니다. 어떤 형태의 정치라도 일반적인 선도 없고 또 하나님 믿는 데 방해를 주고 오히려 박해를 가한다면 그것을 거부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거부할 수 있는 상황이 될 때에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신자가 거부할 수 있는 상황이 되지 않을 때에는 신자가 고난을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어떤 것이든지 신앙으로 사는 데 유리하겠다고 생각되는 것을 택하고 그 위정자에게 순종하는 것이 좋습니다. 인간이 만든 모든 제도들은 천국을 위해서 신자가 이용하면 되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그렇게 세워진 위정자들을 순종하라고 하고 있는 셈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세상의 정치 제도까지도 믿음을 위한 이용의 대상입니다. 이런 의미에서의 순종을 베드로는 말하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나그네로서 이용하면서 살도록 하는 의미에서 순복하라고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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