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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이 풍요한 은혜 (고전8:9)

본문

오늘의 말씀은 좀 이상한 상황에서 나온다. 헌금과 구제에 관해서 사 도 바울이 말하다가 별안간 들어간 말씀이다. 하지만 여기 복음의 핵심이 요약되어 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라는 전제는 우리가 받은 모든 것들을 다 포함한다. 하지만 그 뒤에 붙여진 말씀은 우리가 받은 구원의 네 가지 요소를 명확히 말해 준다.
1. 그리스도의 부요하심이다. "부요하신 자로서"란 말씀은 우리가 믿는 것이 세상 것이 아니라 하늘의 것임을 암시해 준다. 기독교가 어디서 시작되었는가 마굿간 아니다. 더 먼저 하늘의 찬란한 영광에서 시작된다. 저가 어느 정도로 부요하신가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부요함이다. 세상의 모든 부를 다 모아 보라. 하늘의 부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뉴욕의 록펠러 센터는 높이 269m되는 70층짜리 건물을 중심으로 15개 의 고층빌딩이 둘러서 있다. 강남의 무역센터 같은게 그만큼 있다는 것이다. 무역센터가 몇 천억원 된다고 해보자. 그런게 뉴욕에만도 15개가 있는 사람은 얼마나 부자인가 과연 세계 경제계를 흔들만하다. 그러나 그 런 사람이 수천명 모여도 그리스도의 부에 비교할 수 조차 없다. 우리의 신앙은 세상에 국한된게 아니다. 그보다 비교할 수 없이 큰 것 이요 영원한 것이다. 예수는 말씀하신다. "창세 전에 내가 있었노라. 아 버지와 함께 모든 영광 속에 있었노라." 세상의 모든 다이아몬드도 세상 의 모든 금은보화도 아니 태양과 별들도, 별 넘어 온 우주도 다 그가 만들 었다. 우리는 그런 존재와 관계를 맺고 있다. 아주 가까운 관계이다. 우리가 예배하는 대상은 신격화의 과정을 통해 하늘에 가신 한 인간이 아니다. 도닦아 신선된 이가 아니다. 육신 입고 인간 속에 내려온 여호와 하나님 이시다. 기독교를 어떻게 보는가 연약한 사람들, 시대에 뒤떨어진 무거 운 가방들고 찌그러진 모습으로 교회에 가는 인간의 모임으로 보는가 부족한 인간들이 모여서 마음의 위로나 받는 곳으로 이해하고 있는가 베들레헴의 초라한 탄생지와 비참한 골고다 언덕을 본래의 배경 즉 무 섭게 영원하고 찬란한 세계를 통해서 보지 않는한 신앙을 바로 가질 수 없다. 어떻게 기독교가 그렇게 강력한 로마제국을 지배하게 되었는지도 알 수 없다. 또한 어떻게 기독교가 각 분야에서 가장 위대한 인물들을 배출 해 그들에게 계속적인 영감과 용기와 능력을 제공했는지도 알 수 없다. 오히려 눈에 보이는 아름답고 장엄한 것들을 그림자로 삼는 초자연의 세계가 배경에 있음을 알아야 한다. 또한 그 세계의 모든 것을 쥐고 있는 하늘의 왕이 역사 속에 인간의 삶 안에 들어오심을 보아야 한다. 마구간과 십자가 뒤에는 하늘 보좌가 있다. 세상의 고통과 비극의 배후에 도움 을 주시는 당당하고 무한한 손길이 있다는 말이다. 그것도 아주 가깝게.
2. 그리스도의 가난하심이 다음 요소이다.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셨다." 그의 지상 경력을 보라. 앞에서 말한대로 마굿간에서 태어났다. 빈궁한 갈릴리의 나사렛에서 자라났다. 목수로서 땀을 흘렸다. 아무와도 싸우지 않았고 책을 쓴적도 없다. 헤라클레스처럼 반신반인의 수퍼맨도 아니었다. 슬픔의 사람이라고 불릴 정도로 슬픈 일에 익숙해 있었다. 성경에 보니까 그는 피곤했다고 한다. 그는 배고팠고 외로웠다. 사람 들에게 멸시를 당하였고 싫어버림을 당했다. 그는 인간의 배은망덕에 대 한 환멸을 철저히 맛보았다. 편협한 신앙, 정치적 기회주의, 합법화된 살 인의 희생물이었다. 그는 남의 무덤에 묻히셨다. 아무 것도 세상에 남기 지 않았다. 단 한가지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만을 남기셨다. 그는 당시 사람들을 말할 수 없이 큰 기쁨으로 전율시킨 사람이었다. 그렇게 낮아지고 그렇게 온유했던 그의 뒤에는 하나님의 위엄이 있었다. 엄청난 영광이 그의 본향이었다. 그는 너무도 정당하게 영광의 주인이었다. 이런 그가 권세와 존경을 털끝까지 다 벗으셨다. 그는 더러운 구덩이 와 모욕을 품에 안았다. 십자가의 고통을 당하고 음부까지 내려가셨다. 우리 모두 남에게 선하게 대해주어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하 지만 그렇게 하는 것은 대단히 힘이 든다. 다른 사람을 돌보려면 희생해 야 한다. 내것을 주어야한다. 말로만 할 수 없다. 내 시간과 내 돈을 주 어야 한다. 열심히 할수록 힘은 고갈되고 말 것이다. 남을 돌보려면 남의 짐이 자기 것으로 느껴져야 한다. 남의 고통과 좌절과 곤란을 져야 한다. 누가 남의 짐을 져주겠는가 누가 남의 문제를 해결해 주겠는가 어느 정도까지는 해 줄지모른다. 그러나 자기 가족이라도 끝까지 져줄 수는 없다. 감옥에 대신 가주고 목숨을 대신할 수도 없다. 병을 알아줄 수도 없다. 가족 아닌 남의 짐을 짊어지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다. 내 모든 것 을 남에게 주면서 돌볼 수 있는가 언제까지나 그렇게 할 수 있는가 여기서 우렁찬 음성으로 계시가 들려진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짐을 지셨다. 그것도 끝까지 영원히 지셨다." 바울은 고린도인들에게 그리고 우리들에게 이 편지를 쓰면서 말한다. "그리스도의 이 모든 것은 너희들 을 위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 문제 많은 세상을 고치기 위해서 내려 오셨다. 불행 속에 좌절과 절망 속에 끝없는 무력함 속에 들어오셨다. 좀 더 충격적인 표현을 들어보자. "그는 우리를 위해 죄인이 되셨다. 그리고 우리를 위해 저주 받은 자가 되셨다." 따라서 우리는 곤경에서 일 어날 수 있게 되었다. 성경 말씀은 고독과 싸우든, 의심과 미래의 불확실 로 인해서 불안에 빠져있든, 가정의 문제, 사업의 문제, 몸의 병, 그것이 무엇이든간에 이 위대한 분이 곁에 계심을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셨다"고 바울은 말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크신 은혜의 찬송을 부른다. 이것은 상상이나 정신적인 도움이 아니다. 너무도 분명한 현실이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 해 내어주신 이가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3. 그리스도와는 다른 우리의 가난을 보라.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 이것은 우리가 얼마나 가난한 존재인지 설명한다. 한 번 생각해 보라. 현재 우리의 모든 것을 누가 다 빼앗아 간 다고. 내 재산을 다 뺏고 집도 차도 사업도 기술도 건강도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도 다 빼앗는다고 생각해 보라. 얼마나 무서운 일이겠는가 그러나 그것도 진짜 가난을 설명하지 못한다. 만약 어떤 재앙이 임한 다고 생각해보라. 하나님의 은혜와 계시가 갑자기 내게서 떠난다고. 순전 히 육신적인 세상에서 물질만 가지고 산다고 생각해 보라. 예수의 말씀이 다 헛것이고 십자가에서 죽으면서 주신 진리가 다 거짓임이 증명된다고 가정해 보자. 세상의 그 무엇이 이 무서운 손실을 보상해 줄 것인가! 개인뿐이 아니다. 국가와 사회, 문화에도 적용된다. 인간의 기술이 인간의 두뇌가 아무리 발달하고 정의와 도덕의 열정이 아무리 커도 그것이 인간을 혼란과 파멸에서 구하지 못한다. 하나님이 내려오시지 않았다면 그래서 여기 초윤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 해 내어주신 이가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3. 그리스도와는 다른 우리의 가난을 보라.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 이것은 우리가 얼마나 가난한 존재인지 설명한다. 한 번 생각해 보라. 현재 우리의 모든 것을 누가 다 빼앗아 간 다고. 내 재산을 다 뺏고 집도 차도 사업도 기술도 건강도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도 다 빼앗는다고 생각해 보라. 얼마나 무서운 일이겠는가 그러나 그것도 진짜 가난을 설명하지 못한다. 만약 어떤 재앙이 임한 다고 생각해보라. 하나님의 은혜와 계시가 갑자기 내게서 떠난다고. 순전 히 육신적인 세상에서 물질만 가지고 산다고 생각해 보라. 예수의 말씀이 다 헛것이고 십자가에서 죽으면서 주신 진리가 다 거짓임이 증명된다고 가정해 보자. 세상의 그 무엇이 이 무서운 손실을 보상해 줄 것인가! 개인뿐이 아니다. 국가와 사회, 문화에도 적용된다. 인간의 기술이 인간의 두뇌가 아무리 발달하고 정의와 도덕의 열정이 아무리 커도 그것이 인간을 혼란과 파멸에서 구하지 못한다. 하나님이 내려오시지 않았다면 그래서 여기 초읍昰寬¡ 걸렸다. 묻혀있는 거대한 보물상자였다. 그는 그것을 다시 숨겨놓고 집으로 달려갔다. 무슨 소린지 모르는 말을 하며 뛰었다. 이 비유를 들으면서도 우리는 믿지 않고 있다. 테레사 수녀는 이것을 믿었다. 자기 재산이 5실링(약 4백원)밖에 없을 때 새 고아원을 지으려고 계획하고 있었다. 주위 사람들은 비웃었다. 함께 있는 사람들도 그랬다. 그녀는 말했다. "5실링 만으로는 나는 아무 일도 못합니다. 그러나 5실링 이 있고 하나님이 계시다면 내가 못할 일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위대한 인물들은 다 이것을 믿는다. "저가 우리를 부요케 하신다." 사 무엘 러더포드라는 인물도 아주 젊은 시절에 이것을 믿었다. 그가 감옥에 있을 때 친구에게 편지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난 밤 내 방에 들어오 셨다. 그러자 모든 벽돌이 루비처럼 빛을 발했다." 사도의 말을 듣고 진 정으로 믿자.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이 너희들의 것이다." 무엇이 우리 것인가 죄사함이다. 능력이다. 하나님과 화목해서 당당 히 서게 되었다. 모든 것에 희망을 걸자.
용기가 우리 것이고 초자연적인 도움이 우리 것이다. 사도들의 위대한 삶이 우리 것이다. 그리스도의 부 요하심이 우리 것이다. 어떤 시련도 정복자로 부딛힐 수 있다. 어떤 혼란 과 곤경도 하나님의 영광으로 지배한다. 선배들이 이미 증명해 주었다. 우리는 새로운 예배처소를 얻기 위해서 기도하고 있다. 그리스도는 그 의 부요하심으로 우리를 대해 주셨다. 현재의 아름다운 예배당이 그 증거 이다. 그것을 주신 주께서 더 크고 아름다운 곳을 주신다. 우리의 가진 것과 느낌으로는 테레사의 5실링이다. 그러나 우리의 헌금과 그리스도의 부요하심이 있다면 테레사 이상의 위대한 일을 만들어낼 수 있다. 이 아름다운 본문을 통해 복음의 네 가지 요소를 살펴보았다. 앞에서 말했듯이 이 말씀은 헌금과 구제에 대해 말씀하시다가 우연히 들어간 것 같이 보인다. 그러나 이 부분에 대한 사도의 의도는 분명하다. 그는 고린 도인들에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위해서 이처럼 엄 청난 일을 해주셨다.
그렇다면 너희는 그분을 위해 바칠 수 없느냐!" 이것은 우리 모두에게 주어지는 실제적인 도전이다. 하나님은 우리 각 자에게 요구하시는 일이 있다. 우리의 재능들, 우리가 하고 싶지 않은 어떤 희생, 우리가 포기하지 않으려는 개인적 이익등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엄청난 은혜와 희생의 깊이를 안다. 어찌 주춤거릴 수 있는가. 그의 발 앞에 우리를 바쳐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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