끈기 있는 믿음과 하나님의 크신 은혜 (막10:46-52)
본문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 땅에서 신앙을 가지고 삶을 살아가면서 길을 잃지 않도록 수많은 이정표와 안내판을 남겨 놓으셨습니다. 어떻게 길을 가며, 어떻게 하면 길을 잃지 않을 것인지, 어떻게 하면 바로 갈 수 있는지에 대해 자세한 안내판을 남겨 놓으셨습니다. 더 잘 믿고, 저 잘 섬기고, 더 바로 섬기도록 세워주신 안내판들입니다. 특별히 인물들을 통한 안내판들은 우리가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어떻게 잘못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한 점에서 하나님은 마가복음의 본문에 나타나는 바디메오를 통하여 좋은 신앙의 지침들을 우리들에게 보여주십니다. 특별히 오늘의 본문은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가시는 긴 여정 동안 이루신 일들을 중심으로 기록된, 긴 이야기의 결론과 같이 주어진 말씀입니다. 말씀에 나오는 바디메오는 당시 예수님 주변에 있던 인물들과 많은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진실한 믿음을 가지고 나아와 주님을 기쁘게 하는 믿음의 사람이었음을 보여줍니다. 그가 어떻게 주님을 기쁘게 했는지를 말씀은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는 보잘 것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사회적으로도 소외된 사람이었고 흠모할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던 사람이었지만 주님은 그를 깊이 칭찬하셨습니다.
1. 오늘의 말씀은 바디메오가 진리를 기다리고 사모했던 사람이었다고 말씀해 줍니다. 그는 예수님에 대한 소식을 듣고 예수님을 만나고 싶어 간절히 사모하는 심령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예수님께 직접 찾아갈 형편이 되지 못했던 그 사람은 예수님이 그가 사는 마을을 지나가실 날을 손꼽아 기다릴 수밖에 없었기에 그의 기다림은 더욱 간절했습니다. 그는 참으로 예수님을 만나고 싶어했습니다. 예수님이 오셨다는 소식을 듣자 그는 달려나갔습니다. 그는 주님을 깊이 사모하고 있었습니다. 시편 기자가 목마른 사슴으로 그의 사모하는 심령을 표현했듯이 그는 한 마리 목마른 사슴으로 살았던 것입니다. 초대 교회 그리스도인들이 사용하였던 상징에는 물고기 상징 외에도 사슴 상징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가슴에 사슴 상징을 달고 다녔다고 합니다. “나는 주님을 기다리며 사모하는 사람입니다.”라는 뜻이었습니다. 간절히 찾고 기다리는 사람들은 은혜는 받게 되어 있습니다. 간절한 심령으로 주님께 간구하는 이를 주님은 만나 주시는 분이십니다. 타는 목마름으로 사모하는 심령들에게 하나님의 은혜는 임하는 법입니다.
2. 말씀은 그가 끈기 있는 믿음의 사람이었음을 가르쳐 줍니다. 그가 기다리던 예수님이 그 마을을 지나가신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뛰는 가슴을 안고 예수님께 나아갑니다. 예수님께서 여리고를 떠나실 때, 그가 예수님의 관심을 끌 만한 것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날 마지막 기회가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이 사건 이후 예루살렘에 입성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시기 때문입니다. 그에게는 예수님을 세울 만한 자원이 거의 없었습니다. 예수님께로 나아가는 길에 커다란 장애가 생긴 것입니다. 그의 손은 비어 있었습니다. 거지의 손이었습니다. 그의 몸에는 향기도 없었습니다. 더군다나 그는 소경이어서 앞서가서 예수님을 만날 수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길가에 앉아 있던 그는 반복해서 소리치는 것 외에는 아무런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다만 그는 “미리를 숙이고 한 푼만 주십시오, 적선하십시오.”라는 말 대신에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소리를 칠 뿐이었습니다. 바디메오의 주변에 있었던 사람들은 그의 크게 외치는 목소리가 몹시 귀에 거슬렸고 불편했을 것입니다. 그 사람들은 바디메오가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데 커다란 방해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를 따끔하게 나무라며 중단시키려 하지만 그는 결코 중단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주님을 만나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에게는 오늘 예수님을 만나야만 살 수 있다는 뜨거운 집념이 있었기에 그는 쉬지 않고 주님을 향해 외치고 있었습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이런 점에서 그는 환경을 극복해 가는 신앙을 가졌습니다. 그이 모든 환경은 예수님을 만나는 데 방해가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의 삶의 조건도, 그의 처지도, 신체적인 조건도, 주변 환경도 모두가 신앙 생활을 잘하기에는 어려운 여건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러한 삶의 조건들을 극복해 갑니다. 그는 끈기있는 믿음을 가지고 환경을 변화시켜 가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를 여전히 소경과 거지로 묶어 두려고 했던 모든 방해거리들을 떨쳐 버리고 주님께 나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방해거리는 태어날 때부터 안고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무시하는 눈길을 받으며 이 순간까지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주님께 나아갔을 때 이제 모든 것은 변화됩니다. 이런 끈질긴 믿음을 가지고 주님께 나아오는 사람을 주님은 결코 외면치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3. 그는 주님으로 인해서 “새 세계를 보게 된 사람”이라고 말씀은 가르쳐 줍니다. 주님을 사모하여 발버둥치며 나아가는 그에게 주님의 특별하신 은혜가 임하십니다. 주님이 그를 부르십니다. 모든 사람들이 무시하는 그였지만 주님은 무시하지 아니하십니다. 외면치 아니하시고 만나 주십니다. 이것은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믿음은 그 은혜의 자리로 나아가게 만들어 줍니다. 아무리 은혜의 자리로 나아갔다 할지라도 단비를 내려 주시는 이는 은혜의 소유자가 아니십니까 그가 참으로 아름다운 신앙을 가졌다고는 하지만 주님의 은혜가 아니면 아무것도 발생될 수 없었습니다. 주님 앞에 아온 그에게 주님은 물으셨습니다.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막 5:25절에 나타나는 혈루병에서 고침받은 여인은 예수님의 옷자락만이라도 만지기를 원했습니다. 옷에만 대어도 구원받을 줄 알고 행한 일을 주님은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라고 말씀하시며 건강의 축복도 함께 주셨습니다. 막 10장에 나오는 부자 청년은 예수님을 따르기를 거부했습니다. “(막10:19) 네가 계명을 아나니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 하지말라 거짓증거하지 말라 속여 취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느니라 (막10:20) 여짜오되 선생님이여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키었나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재물과 함께 섬김으로 구원을 얻지 못하였고 주님의 제자가 될 수 없었습니다. (막10:29)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막10:30)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다가오는 왕국에서 좌우의 보좌를 그들에게 허락해 주시기를 구하였던 두 제자들에 관한 이야기를 잘 아실 것입니다. (막10:35)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주께 나아와 여짜오되 선생님이 여 무엇이든지 우리의 구하는 바를 우리에게 하여주시기를 원하옵나이다 (막10:36) 이르시되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주기를 원하느냐 (막10:37) 여짜오되 주의 영광 중에서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 오늘도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를 원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질문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대답되어야 할 질문입니다. “무엇을 해 주기를 원하느냐”
우리의 세력을 넓히기 위하여 여기 서 있지는 아니합니까 자기 증대를 위한 열망에 사로 잡혀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아니면 우리는 보기 원하는 깊은 열망을 가지고 있습니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는 주님의 물음에 바디메오는 “보기를 원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다른 어떤 것도 구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평생 소경으로 살아왔기에 그는 모든 것에 익숙해져 있었습니다. 차라리 부귀와 영화를 구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한 가지로 대답합니다. “보기를 원합니다.” 그는 보기를 원했습니다. 어두운 눈이 밝아지기를 원했을 때 주님은 그에게 시력을 회복히켜 주셨습니다. “회복시키시는 주님의 은혜”로 이제 그는 보게 되었습니다. 눈뜬 소경으로 방황하고 있던 제자들은 여전히 진정한 하나님의 나라를 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들 세계에 집착해서 새로운 하나님의 나라를 보고자 하는 소망이나 간절함도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가리키시는 곳을 보려고 하지 않고, 오직 그들이 가진 판단의 안경을 쓰고 보려고 했습니다. 바디메오의 사건은 그들의 모습이 얼마나 안타까운 모습인가를 확임시켜 줍니다. 하나님의 세계를 보아야 합니다. 말씀의 세계를 보아야 합니다. 은혜의 세계를 보아야 살 수 있습니다. 그러한데도 예수님 주변의 제자들과 많은 사람들은 세속의 세계에만 시선을 두고 살고 있었습니다. 주님은 오직 주님 앞에 간절함을 가지고 나아오는 사람들의 눈을 열어 주십니다. 열린 눈을 가지 그는 바로 제자의 삶을 시작합니다. 언제나 육신의 눈이 밝게 열린 사람에게 주님은 영의 눈도 함께 열어 주십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체험한 바디매오는 감사와 찬송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릴 뿐만 아니라 예수를 좇았습니다. 그는 이제자신의 새 삶을 예수를 위해 헌신하기로 작정하였던 것입니다. 이제 더 이상 바디매오는 길가에 앉아 구걸할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태어난 바디매오는 예수의 복음을 좇아 사는 복음의 일꾼이 된 것입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 구원받은 자의 삶은 가치 있는 새로운 삶으로 변화되어집니다.
1. 오늘의 말씀은 바디메오가 진리를 기다리고 사모했던 사람이었다고 말씀해 줍니다. 그는 예수님에 대한 소식을 듣고 예수님을 만나고 싶어 간절히 사모하는 심령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예수님께 직접 찾아갈 형편이 되지 못했던 그 사람은 예수님이 그가 사는 마을을 지나가실 날을 손꼽아 기다릴 수밖에 없었기에 그의 기다림은 더욱 간절했습니다. 그는 참으로 예수님을 만나고 싶어했습니다. 예수님이 오셨다는 소식을 듣자 그는 달려나갔습니다. 그는 주님을 깊이 사모하고 있었습니다. 시편 기자가 목마른 사슴으로 그의 사모하는 심령을 표현했듯이 그는 한 마리 목마른 사슴으로 살았던 것입니다. 초대 교회 그리스도인들이 사용하였던 상징에는 물고기 상징 외에도 사슴 상징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가슴에 사슴 상징을 달고 다녔다고 합니다. “나는 주님을 기다리며 사모하는 사람입니다.”라는 뜻이었습니다. 간절히 찾고 기다리는 사람들은 은혜는 받게 되어 있습니다. 간절한 심령으로 주님께 간구하는 이를 주님은 만나 주시는 분이십니다. 타는 목마름으로 사모하는 심령들에게 하나님의 은혜는 임하는 법입니다.
2. 말씀은 그가 끈기 있는 믿음의 사람이었음을 가르쳐 줍니다. 그가 기다리던 예수님이 그 마을을 지나가신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뛰는 가슴을 안고 예수님께 나아갑니다. 예수님께서 여리고를 떠나실 때, 그가 예수님의 관심을 끌 만한 것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날 마지막 기회가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이 사건 이후 예루살렘에 입성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시기 때문입니다. 그에게는 예수님을 세울 만한 자원이 거의 없었습니다. 예수님께로 나아가는 길에 커다란 장애가 생긴 것입니다. 그의 손은 비어 있었습니다. 거지의 손이었습니다. 그의 몸에는 향기도 없었습니다. 더군다나 그는 소경이어서 앞서가서 예수님을 만날 수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길가에 앉아 있던 그는 반복해서 소리치는 것 외에는 아무런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다만 그는 “미리를 숙이고 한 푼만 주십시오, 적선하십시오.”라는 말 대신에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소리를 칠 뿐이었습니다. 바디메오의 주변에 있었던 사람들은 그의 크게 외치는 목소리가 몹시 귀에 거슬렸고 불편했을 것입니다. 그 사람들은 바디메오가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데 커다란 방해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를 따끔하게 나무라며 중단시키려 하지만 그는 결코 중단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주님을 만나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에게는 오늘 예수님을 만나야만 살 수 있다는 뜨거운 집념이 있었기에 그는 쉬지 않고 주님을 향해 외치고 있었습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이런 점에서 그는 환경을 극복해 가는 신앙을 가졌습니다. 그이 모든 환경은 예수님을 만나는 데 방해가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의 삶의 조건도, 그의 처지도, 신체적인 조건도, 주변 환경도 모두가 신앙 생활을 잘하기에는 어려운 여건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러한 삶의 조건들을 극복해 갑니다. 그는 끈기있는 믿음을 가지고 환경을 변화시켜 가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를 여전히 소경과 거지로 묶어 두려고 했던 모든 방해거리들을 떨쳐 버리고 주님께 나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방해거리는 태어날 때부터 안고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무시하는 눈길을 받으며 이 순간까지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주님께 나아갔을 때 이제 모든 것은 변화됩니다. 이런 끈질긴 믿음을 가지고 주님께 나아오는 사람을 주님은 결코 외면치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3. 그는 주님으로 인해서 “새 세계를 보게 된 사람”이라고 말씀은 가르쳐 줍니다. 주님을 사모하여 발버둥치며 나아가는 그에게 주님의 특별하신 은혜가 임하십니다. 주님이 그를 부르십니다. 모든 사람들이 무시하는 그였지만 주님은 무시하지 아니하십니다. 외면치 아니하시고 만나 주십니다. 이것은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믿음은 그 은혜의 자리로 나아가게 만들어 줍니다. 아무리 은혜의 자리로 나아갔다 할지라도 단비를 내려 주시는 이는 은혜의 소유자가 아니십니까 그가 참으로 아름다운 신앙을 가졌다고는 하지만 주님의 은혜가 아니면 아무것도 발생될 수 없었습니다. 주님 앞에 아온 그에게 주님은 물으셨습니다.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막 5:25절에 나타나는 혈루병에서 고침받은 여인은 예수님의 옷자락만이라도 만지기를 원했습니다. 옷에만 대어도 구원받을 줄 알고 행한 일을 주님은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라고 말씀하시며 건강의 축복도 함께 주셨습니다. 막 10장에 나오는 부자 청년은 예수님을 따르기를 거부했습니다. “(막10:19) 네가 계명을 아나니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 하지말라 거짓증거하지 말라 속여 취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느니라 (막10:20) 여짜오되 선생님이여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키었나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재물과 함께 섬김으로 구원을 얻지 못하였고 주님의 제자가 될 수 없었습니다. (막10:29)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막10:30)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다가오는 왕국에서 좌우의 보좌를 그들에게 허락해 주시기를 구하였던 두 제자들에 관한 이야기를 잘 아실 것입니다. (막10:35)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주께 나아와 여짜오되 선생님이 여 무엇이든지 우리의 구하는 바를 우리에게 하여주시기를 원하옵나이다 (막10:36) 이르시되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주기를 원하느냐 (막10:37) 여짜오되 주의 영광 중에서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 오늘도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를 원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질문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대답되어야 할 질문입니다. “무엇을 해 주기를 원하느냐”
우리의 세력을 넓히기 위하여 여기 서 있지는 아니합니까 자기 증대를 위한 열망에 사로 잡혀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아니면 우리는 보기 원하는 깊은 열망을 가지고 있습니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는 주님의 물음에 바디메오는 “보기를 원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다른 어떤 것도 구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평생 소경으로 살아왔기에 그는 모든 것에 익숙해져 있었습니다. 차라리 부귀와 영화를 구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한 가지로 대답합니다. “보기를 원합니다.” 그는 보기를 원했습니다. 어두운 눈이 밝아지기를 원했을 때 주님은 그에게 시력을 회복히켜 주셨습니다. “회복시키시는 주님의 은혜”로 이제 그는 보게 되었습니다. 눈뜬 소경으로 방황하고 있던 제자들은 여전히 진정한 하나님의 나라를 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들 세계에 집착해서 새로운 하나님의 나라를 보고자 하는 소망이나 간절함도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가리키시는 곳을 보려고 하지 않고, 오직 그들이 가진 판단의 안경을 쓰고 보려고 했습니다. 바디메오의 사건은 그들의 모습이 얼마나 안타까운 모습인가를 확임시켜 줍니다. 하나님의 세계를 보아야 합니다. 말씀의 세계를 보아야 합니다. 은혜의 세계를 보아야 살 수 있습니다. 그러한데도 예수님 주변의 제자들과 많은 사람들은 세속의 세계에만 시선을 두고 살고 있었습니다. 주님은 오직 주님 앞에 간절함을 가지고 나아오는 사람들의 눈을 열어 주십니다. 열린 눈을 가지 그는 바로 제자의 삶을 시작합니다. 언제나 육신의 눈이 밝게 열린 사람에게 주님은 영의 눈도 함께 열어 주십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체험한 바디매오는 감사와 찬송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릴 뿐만 아니라 예수를 좇았습니다. 그는 이제자신의 새 삶을 예수를 위해 헌신하기로 작정하였던 것입니다. 이제 더 이상 바디매오는 길가에 앉아 구걸할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태어난 바디매오는 예수의 복음을 좇아 사는 복음의 일꾼이 된 것입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 구원받은 자의 삶은 가치 있는 새로운 삶으로 변화되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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