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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가지고 사는 자 (창37:1-24)

본문

어느덧 4월이다. 봄의 기운이 약동하는 때이다. 농부들은 가을의 풍성한 수확을 꿈꾸며 씨를 뿌린다. 곧 꿈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다. 꿈이란 장래사에 대한우리 의 바램 곧 희망이다. 우리 성도들은 소망이란 단어를 사용한다. 또 다른 말로 Vision이라 한다. 우리 성도들에게도 이 4월은 부활의 꿈을 일깨워주는 달이다. 기독교의 핵심 진리인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 있는 달이다. 부활의 소망을 꿈꾸고 살아가는 우리 성도가 어떻게 그 꿈을 이루며 살아가야 할지 여기 그꿈을 가지고 사는 자 요셉을 바라보며 우리 스스로를 한번 살펴보자. 요셉의 형님들은 그를 가리켜 본문 19절에서 “꿈꾸는 자”라고 했다. 즉 꿈쟁이라는 말이다.
1. 내일을 위해 살아간다. 꿈을 가지고 사는 자는 내일을 위해 살아간다. 꿈이란게 바로 내일에 대한 희망이요 소망이다.
1.꿈은 오늘의 설계가 아니다. 오늘을 위한설계 그것은 어제의 꿈은 될 수 있어도 결코 오늘의 꿈일 수는 없다. 그것은 바로 꿈 자체가 내일의 것이기 때문이다.
2.꿈은 내일의 설계이다. 내일 그것은 오늘의 삶에 의해 정복되어진다. 오늘의 삶이 계획성 없는 닥치는 데로의 마구잡이 식이라면 내일은 정복되지 않는다. 그래서 내일의 설계인 꿈이 필요하다. 우리인생사가 그 꿈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 자신이 가슴에 품은 꿈이 크든 작든, 스스로 인식하든 못하든 꿈에 의해 그 삶이 이루어진다. 요셉의 경우에도 세 가지의 꿈사건으로 그의 생애가 결정되어지고 있다. ⓐ.자신 의꿈(창37:)→형들의 미움과 에굽으로 팔림 ⓑ.두 관원의 꿈(창40:)→에굽왕 바로에게로 인도 ⓒ.바로 왕의 꿈(창41:)→에굽의 총리 대신이 됨 요셉 처럼 우리도 각자 나름대로의 꿈을 가지고 자신의 생애를 살아가고 있다. 꿈쟁이들 처럼 그 꿈을 떠들어 자랑하지도 독특하지도 않기에, 그저 평범하기에 실상은 자신이 무슨 꿈을 가졌는지 조차도 모르고 사는 이들도 있다.
3.꿈은 누구나 다 가질 수 있다. 특히 젊은이들 요셉은 17세의 나이에 꿈을 가졌다. 여호와 하나님이 주신 확고 부동한 Vision을 가슴에 품었다. 꿈은 남녀 노소, 빈부 귀천, 학식의 유무에 관계 없이 누구나 다 가질 수 있고 또 가져야 한다.
2. 더 나은 영광을 바라본다. 꿈을 가지고 사는 자는 오늘에 만족하지 않고 더 나은 내일의 영광을 바라보고 살아간다.
1.더 나은 본향을 향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저희가 나온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고 했다(히11:15-16) 더 나은 본향 하나님이 예비하신 성 하늘에 있는 새 예루살렘 곧 천국을 바라보고 살아간다고 했다.
2.다시 꿈을 꾸고 요셉은 본문 9절에서 다시 꿈을 꾸었다고 했다. 그렇다 꿈은 그 꿈을 이루기까지 계속 가슴에 품고 다짐을 해야 한다. 마치 소가 되새김질을 하듯 음미하면서 그 꿈을 키워 나가야 한다. 요셉의 생애를 보라 계속되어지는 꿈의 사건으로 더 나은 영광의 자리로 한 계단 두 계단 올라가고 있지 않는가 꿈은 하루 아침에 감나무에서 감 떨어지듯 그렇게 이루어지는 것 아니다.
3.오늘의 성실을 바탕으로 더 나은 영광을 바라보며 꿈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은 오늘에 충실한다. 그것은 오늘의 충실한 삶을 통해 그 꿈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17세의 요셉이지만 “너를 세겜 땅으로 보내리니 가서 네 형들과 양떼가 잘 있는지 보고 돌아와 내게 고하라”(13-14절)는 아버지의 명을 받고 혼자서 길을 떠났다. 길을 몰라 방황하면서도 세겜을 떠나 도단으로 간 형들을 찾아갔다. 중도에서, 세겜에서 돌아오지 않고 끝까지 찾아갔다.
3. 결코 오늘에 머물지 않는다. 꿈을 가지고 사는 자는 결코 오늘에 안주하지 않는다. 오늘에 만족하지도 않고, 오늘에 실망하지도 않는다. 내일을 향해,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나아갈 뿐이다.그러나 오늘에 머물고 마는 사람도 많다. 왜 그럴까
1.현실에 안주하기에 내게 주어진 현실에 만족하며 그저 그렇게 살고져하는 사람도 많다. 냉혹한 생존경쟁에서 어쩌면 삶에 지친 사람들이다. 그러나 실상은 꿈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꿈이 없기에 내일이 없고 그래서 오늘에 안주하고 마는 것이다.
2.시련이 너무 크기에 누구나 꿈을 가지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애쓰고 노력했다. 그러나 꿈은 이루어지지 않고 그 꿈 때문에 오는 시련과 고통이 너무 크기에 오늘에 주저앉고 만다. 꿈 때문에 들어간 것은 많고 돌아오는 것은 적어 너무 출혈이 심해 주저앉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앉아 버리면 절망이요, 좌절이요, 실패로 끝나고 만다. 일어서야 한다.
3.칠전팔기의 정신으로(잠24:16) 요셉은 자신이 가진 꿈 때문에 너무나 큰 시련과 고초를 겪어야 했다. 형님들의 미움을 받게 되었고, 형님들의 손에 은전 20에 팔려 에굽인의 종이 되었고,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뿌리치다 겁탈자로 몰려 옥에 갇히는 죄수가 되었다. 그러나 요셉은 현실과 타협하며 현실에 안주하지 않았다. 그 꿈을 버리고 편하게, 소위 말하는 “적당히” 살지 않았다. 우리 성도들의 꿈은 하나님의 뜻에 맞아야 한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꿈이어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이 함께 하는 꿈이어야 한다. 요셉의 꿈 속에는 엄청나게 큰 하나님의 뜻이 숨겨져 있었다. 그래서 요셉이 어디를 가든지 하나님이 늘 그와 함께 하셨다(창39:2,3,21,23)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셨다. 꿈을 가지고 사는 자 꿈쟁이요셉은 마침내 에굽의 총리 대신이 되었고, 흉년을 살기 위해 에굽으로 양식을 구하려 내려온 형님들은 “꿈에도 생각지 못한”총리 대신 요셉에게 무릎을 꿇고 땅에 엎드려 절함으로(창42:6) 요셉의 꿈이 온전히 이루어지게 되었다. 그 꿈이 이루어지기까지 실로 오랜 세월이 흘렀다. 더 이전이라 생각되지만 성경에 나타난 데로 살펴보아도 17세에 가진 꿈이 30세에 에굽의 총리가 되고, 7년의 풍년과 2년의 흉년, 그래서 지금의 나이 39세이다. 22년이란 오랜 세월을 꿈 따라 살아왔다. 세월이 흐른다고 꿈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이 함께 해야 한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고 다 꿈이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해야 한다(마6:33) 오뚜기 처럼 일곱번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야 한다(잠(24:16) 또 꿈 때문에 겪어야 하는 시련과 고통을 참고 이겨야 한다. 꿈이 성취되는 영광을 얻으려면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한다.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기 때문이다(롬8:17-18) 우리 성도들은 하늘 나라를 사모하는 꿈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다. 그 꿈이 이루어지기까지 꿈 때문에 겪어야 하는 시련과 고난을 이겨내고, 주어진 오늘의 삶을 충실히 살아가자. 내일의 영광스런 꿈은 오늘의 진실된 삶을 통해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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