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그 이후에 (창47:7-10)
본문
여러분은 기억하실런지 모르겠지만 지난 2월달 수요기도회 시간에 저는 〔돌 배게 위에서 꾼 꿈〕이라는 제목으로 여러분들께 말씀드렸습니다. 오늘은 바로 야곱이 돌 배게 위에서 꿈을 꾸고난 이후, 꿈을 이루기까지의 과정을 〔 꿈 그 이후에.〕라는 제목으로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말하자면 전편에 이은 후편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읽은 본문은 구약성서의 위대한 신앙의 인물,― 투쟁해서 쟁취하는 인물, ― 원대한 신앙의 꿈을 간직하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달려가서 꿈을 성취하고 마는 인물인 야곱, ― 그가 보인 一代記의 완결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읽은 본문에서 저는 꿈꾸는 자로서의 야곱이 ― 꿈을 이룬 자로서의 야곱으로 어떻게 변화되었는가를 말씀드리고, 그래서 우리 또한 일생에 있어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원대한 신앙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 어떤 자세로 달려가야 하는가를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이 말씀을 들으심으로 야곱의 신앙고백이 바로 저와 여러분의 신앙고백이 되기까지 축복 받은 사람이 다 되어서 하나님께는 영광이요, 사람들 앞에서는 자랑거리가 되는 복된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성서에서, ― 특별히, 구약성서에서 가장 좋아하는 인물을 들라면 저는 야곱과 요셉을 들곤 합니다. 야곱과 요셉, 그들 부자의 신앙의 특징은 그들의 할아버지 代와 비교하면 더욱 명확해 집니다. 저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일가, 즉 야곱과 요셉의 신앙의 특징을 짓는 단어가 있다면, 그것은 믿음과 ― 순종, ― 그리고 꿈이라고 규정짓습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의 사람이었다면, 이삭은 순종의 사람이었고 야곱과 요셉은 꿈의 사람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도저히 믿음을 가질 수 없는 상황에서 / 오히려 믿음 위에 견고해져서 아멘으로 화답함으로 말미암아 / 하나님을 기뻐시게 했다면, 이삭은 자신이 희생 제물로 바쳐질 것을 알면서도 내가 주를 위해서 무엇인들 드릴 수 없으리 그래 내 이 한 목숨인들 어떠리 ― 다만 하나님! ― 아버지가 사랑하고, ― 나 또한 사랑하는 분!― 그 분을 위해서는 오직 순종함으로써 나의 생명을 바치리라 하면서 자신의 생명까지도 아낌없이 드릴 것을 결단하는 위대한 순종의 사람이었습니다. 야곱과 그의 아들 요셉은 할아버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의 아름다운 신앙을 본받아 주 안에서 원대한 신앙의 꿈을 꾸는 꾸는 사람이었습니다. 오늘 말씀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야곱과 요셉 그들의 일생을 나누어 보는 것은 대단히 유익합니다. 그러면 먼저 요셉부터 생각해 보겠습니다. 요셉의 일생은 네 가지로 나눌 수가 있습니다.
1첫째로 요셉은 꿈꾸는 자(Dreamer)였습니다. 창세기 37장 5절에서 11절을 보면 요셉의 꿈이 나옵니다. 그 꿈은 볏 짚단의 꿈과 해와 달 그리고 열 한 별의 꿈이었습니다. 꿈의 내용은 이러했습니다. 볏 짚단 열 둘이 있는데 열 한 개의 짚단이 한 짚단에게 절을 하더라하늘의 해와 달, 그리고 열 한 별이 내게 와서 절을 하더라는 것이었습니다. 요셉이 꾼 꿈 때문에 요셉은 형들의 시기와 미움을 받아서 목숨까지 위태로운 지경에 처하는 위기를 맞이합니다.
왜냐하면 요셉은 형들과 동생이 있었지만 나는 이 들보다 더욱 더 큰 사람이 되리라. 아니 내친김에 한 걸음 더 나아가 아버지 야곱을 능가하는 위대한 축복의 사람이 되리라.하는 꿈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그 꿈 때문에 요셉은 애굽으로 팔려 가는 노예의 신세가 되었고, 보디발의 집에 팔려가게 되었습니다. 요셉은 보디발의 집에서 인정받는 일꾼이 되었습니다.,2 이것은 두 번째로 요셉은 일하는 자(Worker)였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3 세 번째는 무엇입니까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뿌리쳐서 감옥에 가게 되는 옥에 갇힌 자(Prisoner)로서의 요셉입니다.4넷째로 옥에서 풀려나와 애굽의 총리대신이 되는 다스리는 자(Ruler)가 됨으로서 요셉의 인생은 복되고 아름답게 마무리됩니다. 오늘 읽은 본문은 요셉이 애굽을 다스리는 자가 되었을 때의 일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셉의 아버지 야곱이 애굽왕 바로의 부름을 받고 그의 앞에 나아갔을 때의 고백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47장 9절 후반부에서 야곱은 고백합니다. 험악한 세월을 살았노라고. 이 말은 무슨 뜻이겠습니까 바로 야곱의 인생 길에는 온통 어려움과 역경 투성이 였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인하여 오늘까지 잘 지내왔고 이제는 이렇게 아들도 잘 키워서 애굽의 총리대신까지 된 축복받은 인생, 후회함이 없는 인생을 살았노라고 하는 아름다운 간증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면서 야곱은 자신의 지나온 생애를 회상했을 것입니다. 더불어 하나님께서 부족한 나를 어떻게 사랑해 주셔서 인생의 위기의 순간들을 넘기고 복받은 자, 복을 누리는 자로서 인도하셨는가를 회상했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와 같은 야곱의 생애를 살펴봄으로서 축복받은 인생, 복을 누리는 인생, 결코, 결코 후회함이 없는 인생을 살아가는 삶의 비결, 신앙의 비결을 배울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야곱의 생애를 살펴보는 것입니다. 야곱의 생애를 크게 보면 두 갈래로 갈라집니다. 한 갈래는 꿈꾸기 이전의 야곱이고 다른 한 갈래는 꿈을 꾸고난 이후의 야곱입니다. 꿈꾸기까지의 야곱은 지난 번 수요기도회 때 말씀드렸기 때문에 오늘은 (꿈 그 이후)의 야곱을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꿈 그이후의 야곱의 모습도 네 가지입니다. 먼저 일하는 자(Worker)입니다. 야곱은 형 에서의 손을 피해 어머니 할아버지 아브라함과 리브가의 고향 하란 땅에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야곱은 어디에도 갈 곳이 없었습니다. 그런 야곱이 찾아가서 안주한 곳은 외삼촌 라반의 집이었습니다. 거기서 야곱은 평생을 사랑할 여인을 만나게 됩니다. 바로 라헬이라는 이름의 소녀였습니다. 야곱은 그 가슴이 불타올랐습니다. 그래 바로 저 여인이다! 저 여인이야 말로 지치고 피곤한 나에게 휴식을 할 수 있는 가정을 꾸며주는 그런 사람인 것이다.
창세기 2장 18절에 나오는 히브리 말로는 케젤 케네그도 번역하면 돕는 배필 적합한 내게 꼭 알맞은 사람을 약속하신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바로 그 여인이다. 야곱은 이 때부터 꼭 마음에 드는 여인 라헬을 아내로 맞이하기 위해서 7년간을 일합니다. 그러나라반은 야곱의 이런 마음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야곱의 이런 마음을 기뻐하기는 커녕 약점으로 이용해서 7년동안 야곱을 더 부려먹기 위해 꾀를 생각해 냅니다. 그것은 7년후에 라헬대신 그 언니 레아를 아내로 삼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야곱은 7년의 세월을 더 일에 투자합니다. 그러나 야곱은 이런 억울한 상황에서도 아무렇지도 않은 듯 기꺼이 일을 합니다. 하나님이 예비하신 배필을 얻기 위해 14년이라는 세월도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저는 이런 야곱의 모습에서 한 가지 교훈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꿈을 가진 사람은 결코 중도에 포기하는 법이 없는 법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비록 지금은 힘이 들고 당장이라도 모든 것을 포기해 버리고 싶은 바로 그 때에 ―원대한 신앙의 꿈을 꾸는 자는 결코 좌절하거나 절망하지 않습니다. 포기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럴 때일수록 전능하신 하나님의 언약을 부여잡고 기도하는, 그리고 인내로서 목적을 성취하는 위대한 신앙의 집념을 ―신앙의 인내를 보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결코 중도에 포기함이 없습니다. 주 안에서 원대한 신앙의 꿈을 꾸는 자는 결단코 장애물 때문에 멈추는 법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들도 모두가 다 원대한 신앙의 꿈을 꾸는 자로서 힘이 들고 어려울 때, 모든 것을 포기하고서는 길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엉엉 울고 싶을 때, 그럴 때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의지하여 ―오히려 기도하고 ―오히려 찬송하고 ―오히려 더 큰 감사를 함으로서 ―인생의 아름다운 목적을 성취하는 집념의 신앙인, ―인내의 성도가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둘째로 슬기로운 자(Wise man)로서의 야곱입니다. 야곱은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그 후로도 열심히 일합니다. 그리하여 야곱이 라반의 집에서 일한 이후, 라반의 가게는 날로 번창합니다. 그 때 야곱은 고향으로 돌아갈 것을 결심하고 라반에게 밝힙니다. / 라반은 생각합니다. / 야곱이 일한 후로 하나님이 복을 주어서 내 소유가 심히 번성하였는데 야곱이 가버리면 어쩌나하고 말입니다. / 라반은 야곱을 붙잡아 두고자 야곱의 요구를 들어 줍습니다. / 야곱의 요구조건은 양들이 새끼를 낳을 때 점이 있거나 아롱지거나 검은 양들은 나의 소유로 달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라반으로서는 전혀 손해볼 것 없는 제안이었습니다. 확률은 반반이거나 흰 양이 날 확률이 높은데. 생각했고 또 양들을 많이 생산하면 내 소유도 많아질테니하고 생각해서 야곱의 제안에 쾌히 응락합니다. 그러나 여기에 야곱의 꾀가 있었습니다. 그것도 불확실하게 보이는 내일을 오직 믿음으로 확실하게 여기고 앞으로 나아가는 신앙의 지혜였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야곱이 얼마나 슬기로운 자였는가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사실 라반은 야곱을 부려 먹는데만 급급했지 야곱에게 마땅히 돌려 줄 것을 돌려주지 않았습니다. 창세기 31장 2절을 보니까 야곱의 형통함을 라반이 얼마나 못마땅하게 여기는가를 볼 수 잇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창세기 31장 6절에서 9절에서 라반의 아들들에게 말합니다. 그대들도 알거니와 내가 힘을 다하여 그대들의 아버지를 섬겼거늘 그대의 아버지는 나를 속여 품삯을 열 번이나 변역하였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그를 금하사 나를 해치 못하게 하셨으며 그가 이르기를 점있는 것이 네 삯이 되리라 하면 온 양떼의 낳은 것이 점있는 것이요 또 얼룩무늬 있는 것이 네 삯이 되리라하면 온 양떼의 낳은 것이 얼룩무늬 있는 것이니 하나님이 이같이 그대들의 아버지의 짐승을 빼앗아 내게 주셨느니라 야곱은 어떤 일을 만나더라도 결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포기하기는 커녕 나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이 이 일을 통해서 나에게 더 큰 축복을 하시고 이 일을 통하여 참된 믿음과 하나님만 의지하는 마음을 견고케 하시는구나하고 생각했습니다. 더 큰 믿음을 가지게 하시려고 이 많은 신앙의 훈련을 시키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참으로 우리에게 축복하시되 우리의 믿음을 견고케 하시고 ―우리의 심령을 겸손케 하셔서 ―참된 축복을 하시는 분으로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지난해 우승팀인 LG TWINS의 선수 한대화는 시범경기 때 자신이 속한 팀이 지는 이유가 선수들의 안이한 태도에 있다고 생각하고 선수단에게 고참으로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지는 것도 버릇이 된다. 시범경기니까 하고 생각하지 말아라. 지는 것이 버릇이 되면 아무리 잘할 수 있다.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해도 패배에서 벗어나기가 쉽지는 않은 법이다 그후로 LG TWINS 선수단은 깨달음을 얻어서 94년 한 해를 승리의 꿈을 가지고 매진한 결과, 94년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했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어떤 일이던지 ―믿음으로 그 일들을 처리하지 않고 ―일이 급박하지 않다고 해서 혹은 큰 일이 아니라고 해서 믿음 따로 일 따로의 태도를 가지고 생활한다면 어느새 이런 것들이 버릇, 즉 습관이 되어서 정작 믿음이 절실히 요청될 때 믿음의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법입니다. 따라서
사랑하는 여러분들은 어떤 경우라도 오직 믿음의 눈으로 먼저 바라봄으로서 권능의 하나님께서 신령한 지혜를 허락하셔서 모든 일을, 어떤 문제든지 해결하게 되는 지혜로운 그리스도인, 슬기로운 하나님의 사람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셋째로는 기도하는 자(Prayer)입니다 야곱은 이제 고향으로 돌아갈 필요를 느꼈습니다. 임마누엘의 하나님께서도 야곱에게 고향으로 돌아갈 것을 명하셨습니다. 야곱은 도망자의 신세로 하란에 왔다가 이제는 풍성한 축복받은 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도망자도 축복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야곱은 이 축복을 가지고 이 곳에 있지 아니하고 하나님께서 주신 언약의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고향 땅으로 가기를 원했습니다. 하지만 고향 길은 멀고도 험한 길이었습니다. 거리가 멀다거나 길이 험해서 멀고 험한 길은 아니었습니다. 고향으로 가는 길이 멀고도 ―험한 길이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바로 형 에서 때문이었습니다. 능숙한 도살자, 짐승의 발자욱만 보고도 뒤를 쫒아가 사냥을 할 줄 아는, 그래서 죽이는데 이미 익숙해진 살인자 에서의 칼과 창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야곱은 두려웠습니다. 고향으로 돌아가면 아버지 이삭과 형보다도 더욱 자신을 사랑해 주신 어머니 리브가도 있었습니다. 그 동안 보고 싶을 때는 눈물을 삼키며 그리움을 달랬는데 곧 보고 싶은 아버지와 어머니를 만날 수 있는데
그런데 먼저 마주쳐야 할 것은 따뜻한 미소와 왈칵 껴안아주는 환대가 아니라 무시무시한 형의 칼날이라니 야곱은 이 때 심각한 고민에 사로잡혔을 것입니다. 마치 인생 길을 가다가 더 이상은 내 힘으로 어찌할 바를 몰라서 털썩 주저 앉아버리는 그런 절망감을 만난 기분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야곱은 여기서 주저 앉아버리지 않았습니다. 만약 야곱이 고향가는 길을 포기했다면 그는 더 이상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는 사람이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만약 야곱이 형 에서의 위협에 주저앉아 버렸다면 그는 더 이상 이스라엘 곧, 하나님을 이긴 자라는 축복의 이름을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야곱은 도저히 자신의 힘가지고는 해결할 수없는 인생의 문제에 부딪치게 되었습니다. 피할래야 피할 수없는 문제를 만났습니다. 저는 그리스도교 신앙을 새롭게 가진 많은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그렇지만 그 많은 사람가운데 풍성한 결실을 맺는 사람은 소수의 사람뿐이라는 것을 또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낙신해서 좋으신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시게 하는 이유가운데 큰 이유 하나로는 환난의 순간을 만나게 되었을 때 낙망하고 절망해서 그리스도교 신앙을 저버리는 것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럴 때 저의 마음은 참으로 아픕니다.
만약에 저들이 성서의 많은 위인들이 어려움을 이기고 승리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그래서 복을 받은 사람인 것을 알았다면 ―믿음으로 소망을 가지고 나아가지 저렇게 낙신하지는 않을텐데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야곱을 보십시오. 그의 인생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어려움 투성이 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그 모든 어려움을 이겼을 때 그에게는 참으로 놀라운 축복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야곱은 인생의 승리자였습니다. 그것도 하나님에 대한 사랑 때문에, ―그리고 의심없이 하나님을 믿는 믿음때문에,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말씀위에 서서 꾸게된 원대한 신앙의 꿈때문에 그는 인생의 승리자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에게도 야곱은 그의 삶을 통하여, 그가 가진 믿음을 통하여, 그가 꾼 원대한 꿈을 통하여 귀한 삶의 교훈을 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나폴레옹이 유럽정복의 대장정이 한참 진행중일 때의 일화입니다. 나폴레옹은 알프스 산맥 너머에 있는 이탈리아와 그리스를 정벌하려고 그의 대군을 이끌고 나섰습니다. 드디어 알프스 산맥을 눈 앞에 두게 되었습니다. 그의 병사들은 알프스산맥의 장엄한 위엄에 압도된 채 멍하니 높고 높은 봉우리만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이 높고 높은 산봉우리를 넘을 수 있을까 모두들 불안과 공포 속에 휩쌓였습니다. 이를 간파한 부관은 나폴레옹에게 건의를 드립니다. 황제여! 병사들은 알프산 산의 험산준봉에 압도되어서 산을 넘고자 하는 의욕을 상실한 채 망연자실해있습니다. 알프스산을 넘어 진격하는 것을 다시 한 번 고려해 주십시오! 우리의 대군이 이 산을 넘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하고 부관은 나폴레옹에게 건의했습니다. 그러자 나폴레옹은 알프스산을 다시 한 번 눈을 부릅 뜨고 바라보면서 이렇게 외쳤습니다. 나의 사전에는 불가능이라는 말은 없다. 제군들이여! 진격! 그리스도인들은 이같은 나폴레옹의 말가운데 불가능이라는 단어대신 그 단어를 절망이란 단어로 바꾸어야 합니다. 나의 사전에는 절망이란 없다고 말입니다. 절망하는 자에게는 불가능은 언제나 찾아오는 법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에게는 결코 절망은 없습니다. 내가 어디에 가든지, ―내가 어떤 위치, 혹은 어떤 지위에 있든지, ―내게 어떠한 난관이 밀려오든지 ―그리스도인은 절망하는 법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에게는 전능하신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그 크신 사랑을 보이시고 우리에게 그 놀라운 언약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절망해서 안되는 것입니다. 야곱도 이런 사실을 굳게 믿었습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의 언약을 굳게 믿었습니다. 비록 야곱의 힘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었던 형 에서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그는 절망하기 보다는 오히려 기도했습니다. 필사적으로 기도하는 야곱. ―그렇습니다! ―꿈을 가진 자는 문제와 부딪힐 때 결코 낙심하지 않습니다. 좌절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전능하신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야곱은 기도했습니다. 그는 형 에서의 칼과 창이 아무리 용맹스럽고 강해서 벗어 날 수 없더라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아무런 위협도 되지 않는다고 믿었습니다. 야곱은 진정 문제를 만났을 때, 문제를 바라보고 절망하기 보다는 ―문제 배후에 계셔서 그 전능의 손으로 나를 도우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았던 것입니다. 그때 그는 이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래 이까짓거 더 이상 내게는 문제가 될 수 없는거야! ―단지 이제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그 놀라운 은혜를 누리고 축복을 받는 복있는 사람이 되어야해 하면서 더욱 열심히, 환도 뼈가 위골되더라도 포기할 수 없는 간절한 기도를 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까 문제를 만나서 마냥 절망하고만 있지 않습니까 아니면 문제가 생겼는데 어쩌면 좋아하고 발만 동동 굴리고 있지는 않습니까 여기서 저는 여러분들께 권면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들은 험한 인생길 갈 때 문제를 만나서 절망하고 낙심해서 ―포기하는 사람이 아니라 주의 약속하신 말씀 위에 굳게 서서 ―문제를 바라보지 않고 오직 그 문제 배후에서 나를 도우시는 주님을 바라봄으로 말미암아 ―기도로서 ―찬송으로서 ―감사함으로서 모든 문제를 해결함을 받는, 그리하여 승리하는 복된 그리스도인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누리는 자 입니다. 다시 봉독한 말씀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야곱의 파란만장한 생애, ―온통 가시밭길이요 장애물 투성이였던 생애, ―그 생애의 말미에서 야곱은 고백합니다. 험악한 세월을 살았습니다.라고 말입니다. 애굽왕 바로는 노인장 연세가 많아 보이는데 연세는 몇이나 되시오하고 묻습니다. 이 질문은 아마도 다음과 같은 뜻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이보시오! 노인장! 흉년이 들어서 고생 많으셨지요 우리 애굽은 당신의 그 총명한 아드님덕분에 큰 어려움없었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웃나라에 꾸는 것이 아니라 꾸어주는 그런 좋은 일도 하게 되었습니다. 노인장의 아드님의 말을 듣고 보니 노인장에게는 전능하신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던데 노인장은 어떤 인생을 사셨는지요
내게 말해 주지 않으시겠소 야곱은 바로왕에게 대답합니다. 내 인생 돌이켜 살펴보니 내 할아버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만 믿고 고향에서 떠나와 고생한 것에 비하면 별 것아닌지도 모르겠구료. 그렇지만 말이오 나도 참 험하게 살았다고 생각되는구료. 하지만 말이오 내가 그렇게 힘겹기도 한 인생 길에서 언제나 소망을 가지고 살아왔던 이유로는 하나님이 언제나 함께하시고 날 도와 주셔서 이렇게 자식농사도 잘 짓고 게다가 이스라엘이라고 하는 어느 누구에게도 영원히 주어지지 않는 축복의 이름을 받게 된 것.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였다오 야곱은 자신이 걸어왔던 인생 길을 돌이키며 어떤 생각을 했겠습니까 저는 이와 같은 야곱의 신앙고백을 후회함이 없는 인생을 살았노라는 고백으로 듣습니다. 우리들은 어떻습니까 험한 인생 길. 지치고 곤한 내 영혼 누가 나를 위로해줄수 있을까 하고 탄식하고 있는 분은 안계십니까 만약에 그러한 분이 있다면 ―언제나 나와 함께 하사 ―나를 도우시고 ―나로 하여금 어렵고도 힘든 인생 길에서라도 ―늘 소망을 가지고 살게하시는 하나님, ―그리하여 원대한 신앙의 꿈을 가지고 나아가다가 소망을 다 이루게 하시는 하나님을 만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바로 그 하나님때문에 주님 참으로 제가 이 외로운 인생 길에서 주님을 만난 것은 내 일생의 최고의 행운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주님 때문에 기뻐하면서 살아갈 수 있고, 후회함이 없는 인생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라고 고백하시는 야곱과 같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온갖 좋은 것을 누리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오늘 말씀드린 것처럼 꿈을 꾸는 것과 꿈 그 이후에 꿈을 이루는 과정은 다른 것이 사실입니다.
꿈은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소망이요, ―삶의 목표요, ―비젼(Vision)이라면, ―꿈 그 이후는 소망을 가지고 ―한 가지 목표아래 ―비젼가운데 ―인생의 경주를 달려가는 것입니다. 꿈은 온갖 인생의 어려움으로부터 도피한다가 지쳐서 쓰러졌을 때, 하나님께서 찾아오시고 ―만나주신 은총의 사건이라면, 꿈 그 이후는 하나님을 만난 후에 힘을 얻고 ―그 힘가지고 ―척박한 현실의 황무지에 ―비젼을 쟁기삼아 ―소망의 씨를 뿌려서 ―삶의 목표라는 풍성한 결실을 맞이하는 과정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Jacob의 생애를 통해서 우리 자신의 인생 여정을 점검하고 ―새롭게 다시 한 번 힘을 충전해서 은혜의 도상으로 달려가는 성도의 삶의 경주법을 배울 수가 있는 것입니다. 꿈을 가슴에 품었을 때는 귀하고 아름다운 순간이지만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달려가는 과정 즉, 꿈 그 이후가 더욱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꿈을 이루려는 자는 마가복음 4장 28절의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 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라는 말씀처럼 조급한 마음을 버리고 믿음을 가지고 인내로써 경주하는 자세를 가집니다. 여리고성은첫째 날 무너지지 않았습니다.둘째 날도 아닙니다.셋째도 네째 날도무너지지 않았습니다. 여리고성은 마지막 일곱째 날 ―주의 약속하신 그 말씀 위에 서서 일곱 바퀴를 다 돌 때, ―바로 그 때 무너졌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언제나 그의 신실하심으로 인해 확실히 믿을 수 있는 약속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그의 때가 이르면 반드시 이루어주시는 그런 약속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들은 아무쪼록 위대한 신앙의 꿈을 꾸시는 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꿈을 꿀 뿐아니라 ―주의 약속하신 그 말씀 위에 굳게 서서 ―꿈을 이루시는 자들이 다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리할 때 여러분의 가슴 속에 아름다운 꿈을 꾸게 하시고 ―소망가운데 나아가게 하신 하나님께서 언제나 여러분의 등 뒤에서 여러분을 도우셔서 여러분이 소망하는 모든 아름다운 꿈을, 원대한 신앙의 꿈을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1첫째로 요셉은 꿈꾸는 자(Dreamer)였습니다. 창세기 37장 5절에서 11절을 보면 요셉의 꿈이 나옵니다. 그 꿈은 볏 짚단의 꿈과 해와 달 그리고 열 한 별의 꿈이었습니다. 꿈의 내용은 이러했습니다. 볏 짚단 열 둘이 있는데 열 한 개의 짚단이 한 짚단에게 절을 하더라하늘의 해와 달, 그리고 열 한 별이 내게 와서 절을 하더라는 것이었습니다. 요셉이 꾼 꿈 때문에 요셉은 형들의 시기와 미움을 받아서 목숨까지 위태로운 지경에 처하는 위기를 맞이합니다.
왜냐하면 요셉은 형들과 동생이 있었지만 나는 이 들보다 더욱 더 큰 사람이 되리라. 아니 내친김에 한 걸음 더 나아가 아버지 야곱을 능가하는 위대한 축복의 사람이 되리라.하는 꿈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그 꿈 때문에 요셉은 애굽으로 팔려 가는 노예의 신세가 되었고, 보디발의 집에 팔려가게 되었습니다. 요셉은 보디발의 집에서 인정받는 일꾼이 되었습니다.,2 이것은 두 번째로 요셉은 일하는 자(Worker)였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3 세 번째는 무엇입니까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뿌리쳐서 감옥에 가게 되는 옥에 갇힌 자(Prisoner)로서의 요셉입니다.4넷째로 옥에서 풀려나와 애굽의 총리대신이 되는 다스리는 자(Ruler)가 됨으로서 요셉의 인생은 복되고 아름답게 마무리됩니다. 오늘 읽은 본문은 요셉이 애굽을 다스리는 자가 되었을 때의 일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셉의 아버지 야곱이 애굽왕 바로의 부름을 받고 그의 앞에 나아갔을 때의 고백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47장 9절 후반부에서 야곱은 고백합니다. 험악한 세월을 살았노라고. 이 말은 무슨 뜻이겠습니까 바로 야곱의 인생 길에는 온통 어려움과 역경 투성이 였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인하여 오늘까지 잘 지내왔고 이제는 이렇게 아들도 잘 키워서 애굽의 총리대신까지 된 축복받은 인생, 후회함이 없는 인생을 살았노라고 하는 아름다운 간증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면서 야곱은 자신의 지나온 생애를 회상했을 것입니다. 더불어 하나님께서 부족한 나를 어떻게 사랑해 주셔서 인생의 위기의 순간들을 넘기고 복받은 자, 복을 누리는 자로서 인도하셨는가를 회상했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와 같은 야곱의 생애를 살펴봄으로서 축복받은 인생, 복을 누리는 인생, 결코, 결코 후회함이 없는 인생을 살아가는 삶의 비결, 신앙의 비결을 배울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야곱의 생애를 살펴보는 것입니다. 야곱의 생애를 크게 보면 두 갈래로 갈라집니다. 한 갈래는 꿈꾸기 이전의 야곱이고 다른 한 갈래는 꿈을 꾸고난 이후의 야곱입니다. 꿈꾸기까지의 야곱은 지난 번 수요기도회 때 말씀드렸기 때문에 오늘은 (꿈 그 이후)의 야곱을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꿈 그이후의 야곱의 모습도 네 가지입니다. 먼저 일하는 자(Worker)입니다. 야곱은 형 에서의 손을 피해 어머니 할아버지 아브라함과 리브가의 고향 하란 땅에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야곱은 어디에도 갈 곳이 없었습니다. 그런 야곱이 찾아가서 안주한 곳은 외삼촌 라반의 집이었습니다. 거기서 야곱은 평생을 사랑할 여인을 만나게 됩니다. 바로 라헬이라는 이름의 소녀였습니다. 야곱은 그 가슴이 불타올랐습니다. 그래 바로 저 여인이다! 저 여인이야 말로 지치고 피곤한 나에게 휴식을 할 수 있는 가정을 꾸며주는 그런 사람인 것이다.
창세기 2장 18절에 나오는 히브리 말로는 케젤 케네그도 번역하면 돕는 배필 적합한 내게 꼭 알맞은 사람을 약속하신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바로 그 여인이다. 야곱은 이 때부터 꼭 마음에 드는 여인 라헬을 아내로 맞이하기 위해서 7년간을 일합니다. 그러나라반은 야곱의 이런 마음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야곱의 이런 마음을 기뻐하기는 커녕 약점으로 이용해서 7년동안 야곱을 더 부려먹기 위해 꾀를 생각해 냅니다. 그것은 7년후에 라헬대신 그 언니 레아를 아내로 삼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야곱은 7년의 세월을 더 일에 투자합니다. 그러나 야곱은 이런 억울한 상황에서도 아무렇지도 않은 듯 기꺼이 일을 합니다. 하나님이 예비하신 배필을 얻기 위해 14년이라는 세월도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저는 이런 야곱의 모습에서 한 가지 교훈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꿈을 가진 사람은 결코 중도에 포기하는 법이 없는 법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비록 지금은 힘이 들고 당장이라도 모든 것을 포기해 버리고 싶은 바로 그 때에 ―원대한 신앙의 꿈을 꾸는 자는 결코 좌절하거나 절망하지 않습니다. 포기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럴 때일수록 전능하신 하나님의 언약을 부여잡고 기도하는, 그리고 인내로서 목적을 성취하는 위대한 신앙의 집념을 ―신앙의 인내를 보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결코 중도에 포기함이 없습니다. 주 안에서 원대한 신앙의 꿈을 꾸는 자는 결단코 장애물 때문에 멈추는 법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들도 모두가 다 원대한 신앙의 꿈을 꾸는 자로서 힘이 들고 어려울 때, 모든 것을 포기하고서는 길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엉엉 울고 싶을 때, 그럴 때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의지하여 ―오히려 기도하고 ―오히려 찬송하고 ―오히려 더 큰 감사를 함으로서 ―인생의 아름다운 목적을 성취하는 집념의 신앙인, ―인내의 성도가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둘째로 슬기로운 자(Wise man)로서의 야곱입니다. 야곱은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그 후로도 열심히 일합니다. 그리하여 야곱이 라반의 집에서 일한 이후, 라반의 가게는 날로 번창합니다. 그 때 야곱은 고향으로 돌아갈 것을 결심하고 라반에게 밝힙니다. / 라반은 생각합니다. / 야곱이 일한 후로 하나님이 복을 주어서 내 소유가 심히 번성하였는데 야곱이 가버리면 어쩌나하고 말입니다. / 라반은 야곱을 붙잡아 두고자 야곱의 요구를 들어 줍습니다. / 야곱의 요구조건은 양들이 새끼를 낳을 때 점이 있거나 아롱지거나 검은 양들은 나의 소유로 달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라반으로서는 전혀 손해볼 것 없는 제안이었습니다. 확률은 반반이거나 흰 양이 날 확률이 높은데. 생각했고 또 양들을 많이 생산하면 내 소유도 많아질테니하고 생각해서 야곱의 제안에 쾌히 응락합니다. 그러나 여기에 야곱의 꾀가 있었습니다. 그것도 불확실하게 보이는 내일을 오직 믿음으로 확실하게 여기고 앞으로 나아가는 신앙의 지혜였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야곱이 얼마나 슬기로운 자였는가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사실 라반은 야곱을 부려 먹는데만 급급했지 야곱에게 마땅히 돌려 줄 것을 돌려주지 않았습니다. 창세기 31장 2절을 보니까 야곱의 형통함을 라반이 얼마나 못마땅하게 여기는가를 볼 수 잇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창세기 31장 6절에서 9절에서 라반의 아들들에게 말합니다. 그대들도 알거니와 내가 힘을 다하여 그대들의 아버지를 섬겼거늘 그대의 아버지는 나를 속여 품삯을 열 번이나 변역하였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그를 금하사 나를 해치 못하게 하셨으며 그가 이르기를 점있는 것이 네 삯이 되리라 하면 온 양떼의 낳은 것이 점있는 것이요 또 얼룩무늬 있는 것이 네 삯이 되리라하면 온 양떼의 낳은 것이 얼룩무늬 있는 것이니 하나님이 이같이 그대들의 아버지의 짐승을 빼앗아 내게 주셨느니라 야곱은 어떤 일을 만나더라도 결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포기하기는 커녕 나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이 이 일을 통해서 나에게 더 큰 축복을 하시고 이 일을 통하여 참된 믿음과 하나님만 의지하는 마음을 견고케 하시는구나하고 생각했습니다. 더 큰 믿음을 가지게 하시려고 이 많은 신앙의 훈련을 시키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참으로 우리에게 축복하시되 우리의 믿음을 견고케 하시고 ―우리의 심령을 겸손케 하셔서 ―참된 축복을 하시는 분으로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지난해 우승팀인 LG TWINS의 선수 한대화는 시범경기 때 자신이 속한 팀이 지는 이유가 선수들의 안이한 태도에 있다고 생각하고 선수단에게 고참으로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지는 것도 버릇이 된다. 시범경기니까 하고 생각하지 말아라. 지는 것이 버릇이 되면 아무리 잘할 수 있다.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해도 패배에서 벗어나기가 쉽지는 않은 법이다 그후로 LG TWINS 선수단은 깨달음을 얻어서 94년 한 해를 승리의 꿈을 가지고 매진한 결과, 94년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했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어떤 일이던지 ―믿음으로 그 일들을 처리하지 않고 ―일이 급박하지 않다고 해서 혹은 큰 일이 아니라고 해서 믿음 따로 일 따로의 태도를 가지고 생활한다면 어느새 이런 것들이 버릇, 즉 습관이 되어서 정작 믿음이 절실히 요청될 때 믿음의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법입니다. 따라서
사랑하는 여러분들은 어떤 경우라도 오직 믿음의 눈으로 먼저 바라봄으로서 권능의 하나님께서 신령한 지혜를 허락하셔서 모든 일을, 어떤 문제든지 해결하게 되는 지혜로운 그리스도인, 슬기로운 하나님의 사람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셋째로는 기도하는 자(Prayer)입니다 야곱은 이제 고향으로 돌아갈 필요를 느꼈습니다. 임마누엘의 하나님께서도 야곱에게 고향으로 돌아갈 것을 명하셨습니다. 야곱은 도망자의 신세로 하란에 왔다가 이제는 풍성한 축복받은 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도망자도 축복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야곱은 이 축복을 가지고 이 곳에 있지 아니하고 하나님께서 주신 언약의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고향 땅으로 가기를 원했습니다. 하지만 고향 길은 멀고도 험한 길이었습니다. 거리가 멀다거나 길이 험해서 멀고 험한 길은 아니었습니다. 고향으로 가는 길이 멀고도 ―험한 길이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바로 형 에서 때문이었습니다. 능숙한 도살자, 짐승의 발자욱만 보고도 뒤를 쫒아가 사냥을 할 줄 아는, 그래서 죽이는데 이미 익숙해진 살인자 에서의 칼과 창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야곱은 두려웠습니다. 고향으로 돌아가면 아버지 이삭과 형보다도 더욱 자신을 사랑해 주신 어머니 리브가도 있었습니다. 그 동안 보고 싶을 때는 눈물을 삼키며 그리움을 달랬는데 곧 보고 싶은 아버지와 어머니를 만날 수 있는데
그런데 먼저 마주쳐야 할 것은 따뜻한 미소와 왈칵 껴안아주는 환대가 아니라 무시무시한 형의 칼날이라니 야곱은 이 때 심각한 고민에 사로잡혔을 것입니다. 마치 인생 길을 가다가 더 이상은 내 힘으로 어찌할 바를 몰라서 털썩 주저 앉아버리는 그런 절망감을 만난 기분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야곱은 여기서 주저 앉아버리지 않았습니다. 만약 야곱이 고향가는 길을 포기했다면 그는 더 이상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는 사람이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만약 야곱이 형 에서의 위협에 주저앉아 버렸다면 그는 더 이상 이스라엘 곧, 하나님을 이긴 자라는 축복의 이름을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야곱은 도저히 자신의 힘가지고는 해결할 수없는 인생의 문제에 부딪치게 되었습니다. 피할래야 피할 수없는 문제를 만났습니다. 저는 그리스도교 신앙을 새롭게 가진 많은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그렇지만 그 많은 사람가운데 풍성한 결실을 맺는 사람은 소수의 사람뿐이라는 것을 또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낙신해서 좋으신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시게 하는 이유가운데 큰 이유 하나로는 환난의 순간을 만나게 되었을 때 낙망하고 절망해서 그리스도교 신앙을 저버리는 것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럴 때 저의 마음은 참으로 아픕니다.
만약에 저들이 성서의 많은 위인들이 어려움을 이기고 승리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그래서 복을 받은 사람인 것을 알았다면 ―믿음으로 소망을 가지고 나아가지 저렇게 낙신하지는 않을텐데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야곱을 보십시오. 그의 인생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어려움 투성이 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그 모든 어려움을 이겼을 때 그에게는 참으로 놀라운 축복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야곱은 인생의 승리자였습니다. 그것도 하나님에 대한 사랑 때문에, ―그리고 의심없이 하나님을 믿는 믿음때문에,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말씀위에 서서 꾸게된 원대한 신앙의 꿈때문에 그는 인생의 승리자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에게도 야곱은 그의 삶을 통하여, 그가 가진 믿음을 통하여, 그가 꾼 원대한 꿈을 통하여 귀한 삶의 교훈을 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나폴레옹이 유럽정복의 대장정이 한참 진행중일 때의 일화입니다. 나폴레옹은 알프스 산맥 너머에 있는 이탈리아와 그리스를 정벌하려고 그의 대군을 이끌고 나섰습니다. 드디어 알프스 산맥을 눈 앞에 두게 되었습니다. 그의 병사들은 알프스산맥의 장엄한 위엄에 압도된 채 멍하니 높고 높은 봉우리만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이 높고 높은 산봉우리를 넘을 수 있을까 모두들 불안과 공포 속에 휩쌓였습니다. 이를 간파한 부관은 나폴레옹에게 건의를 드립니다. 황제여! 병사들은 알프산 산의 험산준봉에 압도되어서 산을 넘고자 하는 의욕을 상실한 채 망연자실해있습니다. 알프스산을 넘어 진격하는 것을 다시 한 번 고려해 주십시오! 우리의 대군이 이 산을 넘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하고 부관은 나폴레옹에게 건의했습니다. 그러자 나폴레옹은 알프스산을 다시 한 번 눈을 부릅 뜨고 바라보면서 이렇게 외쳤습니다. 나의 사전에는 불가능이라는 말은 없다. 제군들이여! 진격! 그리스도인들은 이같은 나폴레옹의 말가운데 불가능이라는 단어대신 그 단어를 절망이란 단어로 바꾸어야 합니다. 나의 사전에는 절망이란 없다고 말입니다. 절망하는 자에게는 불가능은 언제나 찾아오는 법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에게는 결코 절망은 없습니다. 내가 어디에 가든지, ―내가 어떤 위치, 혹은 어떤 지위에 있든지, ―내게 어떠한 난관이 밀려오든지 ―그리스도인은 절망하는 법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에게는 전능하신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그 크신 사랑을 보이시고 우리에게 그 놀라운 언약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절망해서 안되는 것입니다. 야곱도 이런 사실을 굳게 믿었습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의 언약을 굳게 믿었습니다. 비록 야곱의 힘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었던 형 에서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그는 절망하기 보다는 오히려 기도했습니다. 필사적으로 기도하는 야곱. ―그렇습니다! ―꿈을 가진 자는 문제와 부딪힐 때 결코 낙심하지 않습니다. 좌절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전능하신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야곱은 기도했습니다. 그는 형 에서의 칼과 창이 아무리 용맹스럽고 강해서 벗어 날 수 없더라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아무런 위협도 되지 않는다고 믿었습니다. 야곱은 진정 문제를 만났을 때, 문제를 바라보고 절망하기 보다는 ―문제 배후에 계셔서 그 전능의 손으로 나를 도우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았던 것입니다. 그때 그는 이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래 이까짓거 더 이상 내게는 문제가 될 수 없는거야! ―단지 이제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그 놀라운 은혜를 누리고 축복을 받는 복있는 사람이 되어야해 하면서 더욱 열심히, 환도 뼈가 위골되더라도 포기할 수 없는 간절한 기도를 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까 문제를 만나서 마냥 절망하고만 있지 않습니까 아니면 문제가 생겼는데 어쩌면 좋아하고 발만 동동 굴리고 있지는 않습니까 여기서 저는 여러분들께 권면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들은 험한 인생길 갈 때 문제를 만나서 절망하고 낙심해서 ―포기하는 사람이 아니라 주의 약속하신 말씀 위에 굳게 서서 ―문제를 바라보지 않고 오직 그 문제 배후에서 나를 도우시는 주님을 바라봄으로 말미암아 ―기도로서 ―찬송으로서 ―감사함으로서 모든 문제를 해결함을 받는, 그리하여 승리하는 복된 그리스도인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누리는 자 입니다. 다시 봉독한 말씀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야곱의 파란만장한 생애, ―온통 가시밭길이요 장애물 투성이였던 생애, ―그 생애의 말미에서 야곱은 고백합니다. 험악한 세월을 살았습니다.라고 말입니다. 애굽왕 바로는 노인장 연세가 많아 보이는데 연세는 몇이나 되시오하고 묻습니다. 이 질문은 아마도 다음과 같은 뜻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이보시오! 노인장! 흉년이 들어서 고생 많으셨지요 우리 애굽은 당신의 그 총명한 아드님덕분에 큰 어려움없었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웃나라에 꾸는 것이 아니라 꾸어주는 그런 좋은 일도 하게 되었습니다. 노인장의 아드님의 말을 듣고 보니 노인장에게는 전능하신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던데 노인장은 어떤 인생을 사셨는지요
내게 말해 주지 않으시겠소 야곱은 바로왕에게 대답합니다. 내 인생 돌이켜 살펴보니 내 할아버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만 믿고 고향에서 떠나와 고생한 것에 비하면 별 것아닌지도 모르겠구료. 그렇지만 말이오 나도 참 험하게 살았다고 생각되는구료. 하지만 말이오 내가 그렇게 힘겹기도 한 인생 길에서 언제나 소망을 가지고 살아왔던 이유로는 하나님이 언제나 함께하시고 날 도와 주셔서 이렇게 자식농사도 잘 짓고 게다가 이스라엘이라고 하는 어느 누구에게도 영원히 주어지지 않는 축복의 이름을 받게 된 것.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였다오 야곱은 자신이 걸어왔던 인생 길을 돌이키며 어떤 생각을 했겠습니까 저는 이와 같은 야곱의 신앙고백을 후회함이 없는 인생을 살았노라는 고백으로 듣습니다. 우리들은 어떻습니까 험한 인생 길. 지치고 곤한 내 영혼 누가 나를 위로해줄수 있을까 하고 탄식하고 있는 분은 안계십니까 만약에 그러한 분이 있다면 ―언제나 나와 함께 하사 ―나를 도우시고 ―나로 하여금 어렵고도 힘든 인생 길에서라도 ―늘 소망을 가지고 살게하시는 하나님, ―그리하여 원대한 신앙의 꿈을 가지고 나아가다가 소망을 다 이루게 하시는 하나님을 만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바로 그 하나님때문에 주님 참으로 제가 이 외로운 인생 길에서 주님을 만난 것은 내 일생의 최고의 행운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주님 때문에 기뻐하면서 살아갈 수 있고, 후회함이 없는 인생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라고 고백하시는 야곱과 같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온갖 좋은 것을 누리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오늘 말씀드린 것처럼 꿈을 꾸는 것과 꿈 그 이후에 꿈을 이루는 과정은 다른 것이 사실입니다.
꿈은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소망이요, ―삶의 목표요, ―비젼(Vision)이라면, ―꿈 그 이후는 소망을 가지고 ―한 가지 목표아래 ―비젼가운데 ―인생의 경주를 달려가는 것입니다. 꿈은 온갖 인생의 어려움으로부터 도피한다가 지쳐서 쓰러졌을 때, 하나님께서 찾아오시고 ―만나주신 은총의 사건이라면, 꿈 그 이후는 하나님을 만난 후에 힘을 얻고 ―그 힘가지고 ―척박한 현실의 황무지에 ―비젼을 쟁기삼아 ―소망의 씨를 뿌려서 ―삶의 목표라는 풍성한 결실을 맞이하는 과정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Jacob의 생애를 통해서 우리 자신의 인생 여정을 점검하고 ―새롭게 다시 한 번 힘을 충전해서 은혜의 도상으로 달려가는 성도의 삶의 경주법을 배울 수가 있는 것입니다. 꿈을 가슴에 품었을 때는 귀하고 아름다운 순간이지만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달려가는 과정 즉, 꿈 그 이후가 더욱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꿈을 이루려는 자는 마가복음 4장 28절의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 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라는 말씀처럼 조급한 마음을 버리고 믿음을 가지고 인내로써 경주하는 자세를 가집니다. 여리고성은첫째 날 무너지지 않았습니다.둘째 날도 아닙니다.셋째도 네째 날도무너지지 않았습니다. 여리고성은 마지막 일곱째 날 ―주의 약속하신 그 말씀 위에 서서 일곱 바퀴를 다 돌 때, ―바로 그 때 무너졌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언제나 그의 신실하심으로 인해 확실히 믿을 수 있는 약속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그의 때가 이르면 반드시 이루어주시는 그런 약속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들은 아무쪼록 위대한 신앙의 꿈을 꾸시는 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꿈을 꿀 뿐아니라 ―주의 약속하신 그 말씀 위에 굳게 서서 ―꿈을 이루시는 자들이 다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리할 때 여러분의 가슴 속에 아름다운 꿈을 꾸게 하시고 ―소망가운데 나아가게 하신 하나님께서 언제나 여러분의 등 뒤에서 여러분을 도우셔서 여러분이 소망하는 모든 아름다운 꿈을, 원대한 신앙의 꿈을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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