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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과 함께, 예수님과 함께 (창41:29-36)

본문

시편 127편 2절을 보면 여호와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에게 단잠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사람에게 꿈이 많다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닙니다. 꿈을 자주 꾸는 사람들의 두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 몸이 약하고,둘째 마음이 여립니다. 몸이 약하기에 마음이 약하고 그 약한 마음을 틈타 마귀가 꿈에 역사하는 것입니다. 매일 같이 반복해서 꿈을 꾸는 사람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그 꿈을 해석을 하려 합니다. 그리고 그 꿈을 신뢰하며 의지하거나 두려워합니다. 사람들이 꿈을 무시할 수 없는 이유는 더러 그 꿈이 맞아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모를 때는 답답하고, 알고 나면 두려워집니다. 마귀는 이런 과정들을 통해 귀신의 인도를 받게 합니다. 그래서 신명기 13장은 우리에게 이런 자들을 조심할 것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너희 중에 선지자나 꿈꾸는 자가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네게 보이고 네게 말하기를 네가 본래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우리가 좇아 섬기자 하며 이적과 기사가 그 말대로 이룰지라도 너는 그 선지자나 꿈꾸는 자의 말을 청종하지 말라 이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는 여부를 알려 하사 너희를 시험하심이니라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순종하며 그를 경외하며 그 명령을 지키며 그 목소리를 청종하며 그를 섬기며 그에게 부종하고 그 선지자나 꿈꾸는 자는 죽이라 이는 그가 너희로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시며 종 되었던 집에서 속량하여 취하신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배반케 하려 하며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행하라 명하신 도에서 너를 꾀어내려고 말하였음이라 너는 이같이 하여 너희 중에서 악을 제할지니라”(신13:1-5) 선지자나 꿈꾸는 자는 그냥 사람을 유혹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적과 기사를 보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최종 목적은 무엇입니까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좇아 섬기게 하는 것입니다. 애굽 땅에서 구원하시고 종되었던 집에서 속량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배반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명령을 떠나 귀신의 가르침을 받게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선지자나 꿈꾸는 자의 말을 청종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나아가 이들의 행위가 얼마나 악한 것인지 그들을 죽이라고까지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들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을 사랑하는 여부를 시험하신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이와 같은 사람들을 따라가면 하나님을 믿고 사랑하는 시험에서 탈락하는 것입니다. 성도의 삶은 어떤 삶입니까 하나님 여호와를 순종하며 그를 경외하며 그 명령을 지키며 그 목소리를 청종하며 그를 섬기는 삶입니다. 양은 목자의 음성을 압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듣고 그 말씀만을 따라가야 합니다. 그러나 거짓 선지자나 꿈꾸는 자의 미혹에 빠지면 우리는 정반대의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이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기억할 것은 하나님도 인간의 꿈을 통하여 역사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일은 그 자체의 옳고 그름보다는 누가 그 일을 하느냐 누구 안에서 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사실 마귀는 하나님이 인간의 꿈을 통하여 일하신다는 것을 알고 자신도 똑같은 방법으로 인간에게 역사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것을 구별할 수 있는 영안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몇 가지 하나님이 주시는 꿈과 마귀가 주는 꿈을 구분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1 꿈이 너무 많으면 그것은 마귀 역사입니다. 요셉의 별명이 꿈꾸는 자, 꿈쟁이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가 꾼 꿈은 두 번만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꿈을 해석한 것은 떡빚는 관원장, 술빚는 관원장, 그리고 바로의 꿈만 해석했습니다. 세밀한 인도와 시시껄렁한 것은 다른 것입니다. 하나님은 세밀하게 인도하십니다. 그러나 시시껄렁하게 인도하시지는 않습니다. 너무 시시껄렁한 것은 하나님이 주신 꿈이 아닙니다. 잡몽(雜夢), 다른 말로 개꿈이거나 마귀의 역사입니다. 날마다 잠자고 날마다 꿈꾸고 날마다 그 꿈에 끌려다니며 사는 것은 결코 성경적이 아닙니다.
2 꿈에 일관성이 없으면 그 꿈은 하나님이 주신 꿈이 아닙니다. 야곱은 창세기 28장을 보면 벧엘 광야에서 꿈을 꾸었습니다. 하나님은 그 꿈속에서 하신 약속대로 야곱의 생애를 인도하셨습니다. 요셉이 열한 볏단이 자기 볏단에 절한 꿈이나 열한 별과 해와 달이 자기 별에게 절한 꿈은 해석해 보면 같은 내용입니다. 바로도 풍년과 홍수를 앞두고 똑같은 의미의 꿈을 두 번 반복해서 꾸었습니다. 하나님이 반복해서 두 번 똑같은 의미의 꿈을 주시는 이유는 하나님이 일정한 하나님이요, 변개치 않는 하나님임을 밝혀주시는 것입니다. 일관성이 없는 꿈은 거짓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꿈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꿈은 그렇게 흔한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분명한 목표가 있고, 방향이 있습니다.
사도행전 10장에서 베드로가 기도하고 있을 때 환상 중에 하늘에서 보자기가 내려왔습니다. 풀어보니 각색 네 발 가진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 나는 새들이 있는데 유대인들은 먹을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주님이 먹으라 하시자 베드로는 먹을 수 없나이다 했습니다. 나는 지금까지 속되고 깨끗지 않은 것은 먹은 일이 없습니다. 이런 음식들로 나를 더럽힐 수 없습니다 했습니다. 그 때 다시 주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베드로가 고집을 부리자 이런 일이 세 번 반복해서 있은 후에 그 보자기가 하늘로 올라가 버렸습니다. 이것은 이방인 고넬료의 집에 베드로를 보내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꿈은 일관성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이루기 위한 분명한 목적이 있습니다. 요셉에게 하나님이 그냥 심심해서 꿈을 주신 게 아닙니다. 요셉을 통해서 하나님이 이루실 분명한 일이 있었습니다. 요셉의 생애는 하나님이 주신 꿈을 붙잡고 살아간 생애요, 그 꿈의 약속대로 하나님이 언제나 함께해 주시고 그 꿈을 성취해 주신 인생이었습니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씀을 드리면 우리는 꿈에 의존해서 살지 말아야 합니다. 그 꿈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완성되기 전에 계시의 전달 수단으로 사용되었던 것입니다. 이 말은 이 시대에는 하나님이 주시는 꿈이 전혀 없다는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지금은 계시가 완성된 시대요, 더 이상의 계시가 없기 때문에 꿈을 비롯한 모든 사건과 상황들은 성경 안에서 이해되고 파악되어야 합니다. 성경을 무시하고 내려지는 해석, 성경을 뛰어넘는 이해와 판단은 다 마귀적인 것입니다. 오늘은 하나님께서 사용하신 계시의 전달 수단으로서의 꿈을 살펴보고 꿈에 대한 우리가 취할 마땅한 태도가 무엇인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꿈을 꾸게 하신 하나님 꿈은 무의식의 세계입니다. 꿈은 내가 꾸고 싶다고 꾸는 것도 아니요, 꾸기 싫다고 꾸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어떤 꿈을 꿀 것이다 사람이 인식하고 조절할 수 있는 세계도 아닙니다. 꿈은 나와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아주 특별한 목적이 있을 때 하나님은 소수의 사람들에게 꿈을 꾸게 하셨습니다. 창세기 28장에서 야곱은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사닥다리 꿈을 꾸었습니다. 창세기 37장에서 요셉은 자신의 미래에 대한 꿈을 두 번에 걸쳐 꾸었습니다. 창세기 39장에서는 감옥에 갇힌 술빚는 관원장과 떡 빚는 관원장이 꿈을 꾸었습니다. 41장에는 애굽의 바로 왕이 칠 년 풍년과 칠 년 기근에 대한 꿈을 꾸었습니다. 다니엘서를 보면 느브가넷살이 꿈을 꾸었고 다니엘 자신도 장차 말세에 있을 일에 대하여 꿈을 꾸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어느 누구도 내가 이런 꿈을 꾸었으면 좋겠다고 소원해서 꿈을 꾼 사람들이 아닙니다. 자신들의 의사와는 전혀 상관없이 하나님이 꿈을 꾸게 하신 것입니다. 이런 경우 꿈은 하나님 자신이 행하실 일에 대한 알림이요 통보입니다. 이것을 통해 우리는 이 세상 역사의 주관자가 누구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일을 행하는 여호와, 그것을 지어 성취하는 여호와라고 했습니다. 그 하나님 앞에 우리는 일을 내가 하는 게 아니라 나를 통해서 하나님이 하시는 것을 깨닫고 겸손하게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믿음의 사람을 통해서 일하십니다. 아모스 성경에는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암3:7)고까지 말씀하셨습니다. 꿈은 하나님이 일을 행하시는 수단의 일종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역사, 만물의 역사, 시간의 역사를 주장하고 계십니다. 역사는 내가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집니다. 요셉이 원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요셉이 꿈을 꾸었을 때 다른 사람들은 다 무시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어떠했습니까 ‘그 말은 마음에 두었더라’ 했습니다. 요셉이 그렇게 될 것이라는 그에 대한 기대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요셉을 그렇게 되도록 인도하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바로의 꿈을 해석해 준 뒤 요셉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바로께서 꿈을 두 번 겹쳐 꾸신 것은 하나님이 이 일을 정하셨음입니다. 속히 행하실 것입니다. 이에 대한 대비를 하셔야 합니다.” 요셉은 해석만 해 준 것이 아니라 대안까지 제시해 주었습니다. 하나님은 일을 어떻게 하기로 정해 놓고, 그 다음에 시행하시는 분입니다. 그리고 확정된 하나님의 일은 중간에 가서 바뀌는 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확정된 하나님의 계획을 알리는 수단이 꿈입니다. 그 계획을 아는 사람은 그 뜻대로 이루어질 것을 알고 그 섭리에 맞춰서 자기의 인생을 살아갑니다. 주님의 계획이 자신의 계획이 됩니다. 자기를 꺾고 오직 주님 의지하는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2. 꿈을 해석하게 하신 하나님 하나님은 자신의 일을 위하여 꿈을 꾸게 하실 뿐만 아니라 그 꿈을 해석하게 하셨습니다. 야곱은 꿈을 꾸고난 뒤에 그 꿈대로 이루어질 것을 믿었습니다. 요셉도 두 번에 걸쳐 꿈을 꾸고는 그대로 될 것을 믿었기에 자랑하고 돌아다녔습니다. 이렇듯 하나님이 주신 꿈 중에는 그 꿈을 꾼 사람이 꿈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 수 있는 경우도 있지만 해석이 필요한 경우도 있습니다. 요셉이 감옥에 있을 때 바로에게 죄를 짓고 들어온 떡빚는 관원장과 술빚는 관원장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이들 두 사람이 다같이 꿈을 꾸었는데 그 뜻을 알지 못해 답답해 했습니다. 요셉이 나서서 두 사람의 꿈을 해석해 주었습니다. 그의 말대로 떡빚는 관원장은 삼일만에 죽었고 술빚는 관원장은 삼일만에 복직이 되었습니다.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이번에는 바로가 흉몽을 꾸었는데 그 꿈이 의미하는 바를 알 길이 없었습니다. 애굽의 술객들이 다 동원되었으나 해석하는 이가 없었습니다. 그 때 술빚는 관원장이 감옥 안에서 자기의 꿈을 해석했던 요셉을 기억했습니다. 불려 나온 요셉은 바로가 맞다! 맞장구를 칠 만큼 시원스레 해석을 해주었습니다. 다니엘은 느브가넷살의 잊어버린 꿈을 알아내고 또 그 꿈을 해석하기도 했습니다. 꿈을 꾸게 하신 이는 그 꿈의 의미를 알게 하실 수도 있습니다. 이상한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똑같은 의미의 꿈을 두 번 꾸었다는 것입니다. 요셉도 두 번에 걸쳐 꿈을 꾸었고, 바로도 두 번 꿈을 꾸었습니다. 이것은 이루어질 역사에 대한 확신을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내 생명을 주관하시고 섭리하시지만 타인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믿음의 사람들에게 꿈을 꾸게 하시고 그 꿈을 해석하게 하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도 꿈을 꾸게 하시고 믿음의 사람으로 하여금 그 꿈을 해석하게 하셨습니다.
이 점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1 하나님은 꿈을 통해 자신이 누구인지를 사람들에게 알리십니다. “바로가 요셉에게 이르되 내가 한 꿈을 꾸었으나 그것을 해석하는 자가 없더니 들은즉 너는 꿈을 들으면 능히 푼다더라 요셉이 바로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이는 내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바로에게 평안한 대답을 하시리이다”(창41:15-16) 바로가 꿈을 해석할 것을 명령하지 요셉은 꿈을 푸는 자가 자신이 아님을 분명히 밝힙니다. 다른 사람들은 요셉을 꿈을 꾸고 풀이하는 자로 알았지만 요셉은 꿈을 꾸게 하신 이도 하나님이요, 그 꿈을 해석하게 하실 이도 하나님이라고 말했습니다. 다니엘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니엘은 느브가넷살이 잃어버린 꿈을 내용을 말하고 그에 대한 해석을 해주었습니다. “왕이 대답하여 벨드사살이라 이름한 다니엘에게 이르되 내가 얻은 꿈과 그 해석을 네가 능히 내게 알게 하겠느냐 다니엘이 왕 앞에 대답하여 가로되 왕의 물으신 바 은밀한 것은 박사나 술객이나 박수나 점쟁이가 능히 왕께 보일 수 없으되 오직 은밀한 것을 나타내실 자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시라 그가 느부갓네살 왕에게 훗일에 될 일을 알게 하셨나이다 왕의 꿈 곧 왕이 침상에서 뇌 속으로 받은 이상은 이러하니이다”(단2:26-28) 다니엘도 꿈을 꾸게 하신 이와 그 꿈을 해석하시는 이가 하나님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꿈은 사람이 알아낼 수 없고, 해석할 수 없습니다. 마음대로 꿈을 꿀 수도 없고, 주어지는 꿈을 없앨 수도 없습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이 다 알아서 하시는 것입니다.2 꿈을 꾸게 하신 목적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꿈을 통해 인간에게 경고하심으로 준비케 하사 미래의 위험한 때를 면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때로는 심판을 선언하셔서 회개케 하십니다.3. 꿈을 성취하게 하신 하나님 벧엘에서 꿈속에 하나님이 하신 약속을 야곱은 잊었지만 하나님은 그를 잊지 않으셨습니다. 그의 평생에 함께하시며 그에게 주신 약속을 다 이루셨습니다. 떡빚는 관원장과 술빚는 관원장의 꿈을 요셉으로 하여금 해석하게 하셨는데 그의 말대로 되었습니다. 바로에게 주신 꿈을 요셉으로 하여금 해석하게 하셨는데 그의 말대로 애굽 땅에는 칠 년 동안 풍년이 들었고, 그후에는 칠 년 기근이 찾아왔습니다.
요셉 자신에게는 창세기 37장에 두 가지 꿈을 주셨습니다. 첫 번째 꿈은 열한 볏단이 자기의 볏단을 향하여 절하는 꿈이었습니다. 두 번째 꿈에서는 하늘의 열한 별과 해와 달이 자기의 별에게 절하는 꿈이었습니다. 이 꿈은 요셉의 형들과 아버지 어머니가 자기에게 절한다는 꿈이었습니다.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었으나 현실은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다니엘을 통한 예언 느브가넷살 생전과 사후에 다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이와 같은 일련의 모습들을 통해 우리가 깨달아야 할 진리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민23:19)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막연한 ‘될지도 모른다’가 아닙니다. 잘하면 그 액운을 피할 수도 있다가 아닙니다. 반드시 그렇게 된다는 ‘되리라’의 역사입니다. 그래서 성경 말씀은 부탁이 아니라 이렇게 되니까 믿으라는 부탁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실 일에 대한 일방적인 선언을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심판 날에는 소돔과 고모라 땅이 오히려 견디기 쉬울 것이라고 하셨습니다.(마10:15) 이와 같이 확정된 하나님의 변할 수 없는 계획과 섭리를 깨닫고난 사도 요한이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고 사도 요한은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계22:20) 하는 것입니다.
과거 믿음의 선진들에게는 계시가 열려 있었습니다. 그 계시의 수단으로 하나님이 꿈을 사용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의 계시는 없습니다. 종결된 계시, 완성된 계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밤에 잠들어서 꾸는 꿈이 아니라 확정된 예언의 말씀인 성경을 믿고 살아야 합니다. 과거는 하나님이 자신을 열어 보여주시는 계시의 과정이었다면 지금은 더 이상의 계시가 필요치 않고, 추가할 수 없는 완성의 때입니다. 우리는 완성된 계시인 하나님의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꿈이나 환상으로 하나님이 자신을 계시하실 때에도 거짓 선지자나 꿈꾸는 자를 죽이라고 했다면 계시가 완성된 이 시기에는 더욱 그러할 것입니다. 내가 어떤 꿈을 꾸었든지 그 꿈에 대하여 남이 무슨 말을 하고 무슨 생각이 들더라도 하나님의 말씀만 믿으면 됩니다. 꿈에 의존해 버리는 것은 하나님 말씀을 무시하는 가증한 처사가 되는 것입니다. 현실은 요셉과 다니엘이 말한 대로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의 생각을 말한 것이 아니라 확정된 주의 계시를 말한 것입니다. 결국 만사는 하나님이 정하신 대로 된 것입니다. 이것을 아는 사람은 확정된 주의 뜻을 붙잡고 살아갑니다. 성경을 보면 요셉의 생각은 끝없이 하나님 앞에 거부당했습니다. 될 듯 싶었으나 되지 않았습니다. 잘 되는 것 같았으나 실패했습니다. 완전히 실패한 줄 알았는데 하나님이 일으켜 주셨습니다. 주의 뜻이 확정된 것이라면 이제 우리는 이와 같은 하나님의 뜻에 맞춰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다윗은 자기의 아들이 죽기 전에는 살려달라고 눈물 뿌려 기도했지만 죽은 뒤에는 의복을 정제하고 음식을 청하여 먹었습니다. 예수님도 기도는 했지만 확정된 아버지의 뜻에 순종했습니다. 만사는 주의 뜻대로 되어지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꿈을 꾸게 하시고, 그 꿈을 해석하게 하시고, 그 꿈을 성취하심으로 하나님의 신실성을 보여 주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면 이제 우리는 우리에게 주신 성경의 기록된 모든 말씀대로 이루어질 것을 믿고 살아가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읽게 하십니다. 듣게 하십니다. 그리고 해석하게 하십니다. 계시란 열어서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말씀으로 주어지는 모든 현실과 상황들을 해석합니다. 경고도 받고 교훈도 받습니다. 그리고 결국은 최종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질 것을 믿습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우리의 삶입니다. 야곱과 요셉과 다니엘의 꿈은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꿈이 곧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말씀은 누구에 대하여 증거하고 있습니까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요5:39)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것입니다. 결국 믿음의 선진들은 꿈은 다름 아닌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오늘 우리들의 꿈 역시 하나님의 말씀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들의 꿈은 예수님이 되어야 합니다. 말씀을 벗어나고 예수 그리스도를 무시한 거짓 선지자, 꿈꾸는 자는 하나님이 최후의 날에 심판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말씀을 꿈꾸고,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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