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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민족이 되자 (민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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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회사원이 뉴욕으로 출장을 갔습니다. 공항에서 택시를 타자마자 제일 먼저 기사에게 한 말이 무슨 말이었는지 압니까 빨리 갑시다 였습니다. 그가 알고 있는 영어 실력을 동원해서 Let's go, Hurry up ! Hurry up ! 을 외쳤습니다. 택시가 부지런히 달려갑니다. 한참 달리다 보니까 자 기가 가려는 방향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다급하게 기사에게 묻습니다. 어디로 가십니까 손님 ! 손님은 저에게 빨리 가자고만 했지 어디로 가자고 말한 적이 없 습니다. 이 회사원의 모습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한국인의 상징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부지런히 서둘러 달려갑니다. 땀을 흘리면서 애쓰고 달려갑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을까요 우리는 지금 어떤 목표를 향해서 어떤 방향을 향해서 가고 있을까요 목표와 방향을 상실할 때 우리는 갑자가 우리 삶의 도상에서 한 순간 무기력해질 수 있습니다. 방향 감각을 상실 한 채로, 목표를 상실한 채로 난 도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가 하는 회의 에 빠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삶의 방향을 상실할 때 그 자리에 주저앉아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심정이 듭니다. 그리고 우리는 원망하기 시작합니다. 여호와 하나님 ! 그냥 이렇게 살아야 합니까 이것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한 개인의 상징일 수도 있고 어쩌면 이 민족 의 상징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부지런히 달려 왔습니다. 산화의 거센 물결을 타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지금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 이 민족의 강물은 어디를 향해서 흘러가고 있습니까 과거를 돌아보자
민수기 11장 1-9절 말씀을 통해서 우리의 위치를 점검해 봅시다 백성이 여호와의 들으시기에 악한 말로 원망하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진노하사 여호와의 불로 그들 중에 붙어서 진 끝을 사라게 하시매 백성이 모세에게 부르짖으므로 모세가 여호와께 기도하니 불이 꺼졌더라 그것 이름 은 다베라라 칭하였으니 이는 여호와의 불이 그들 중에 붙은 연고였더라 이 스라엘 중에 섞여 사는 무리가 탐욕을 품으매 이스라엘 자손도 다시 울며 가로되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할꼬 우리가 애굽에 있을 때에는 값없이 생선과 외와 수박과 부추와 파와 마늘들을 먹은 것이 생각나거늘 이제는 우리 정력이 쇠약하되 이 만나 외에는 보이는 것이 아무것도 없도 다 하니 만나는 깟씨와 같고 모양은 진주와 같은 것이라 백성이 두루 다니며 그것을 거두어 맷돌에 갈기도 하며 절구에 찧기도 하고 가마에 삶기도 하여 과자를 만들었으니 그 맛이 기름 섞은 과자 맛 같았더라 밤에 이슬이 진에 내릴 때에 만나도 같이 내렸더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여행하는 도중 우리가 묻고 있는 것과 똑같 은 의혹에 빠져 든 순간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애굽 땅을 나올 때는 투쟁 목표가 있었습니다. 홍해를 건널 때도 도전해야 할 목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홍해를 건넌 후 광야에 들어서서 갖가지 시련을 극복하기 위해 그들의 힘과 정열과 다 쏟았습니다. 그러나 광야 여행이 계속되던 어느 날 그들은 털썩 주저앉아 버렸습니다. 그들은 한 순간 깊은 무기력 속에 빠져들었습니다.
하나님! 이 지루한 여행은 언제 끝납니까 우리가 여행을 계속해야 합 니까 이 여행에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드디어 그들은 여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을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 본 문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백성이 여호와의 들이시기에 악한 말로 원망하매 (1절). 그들은 하나님을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원망의 원인은 어디에 있 습니까 그들의 무기력과 좌절을 치유하고 그들이 다시 한번 애굽 땅을 떠날 때 품었던 그 비전(vision)을 새로 붙잡게 하기 위해서 지금 이 순간 이스라엘 민족 공동체에 필요한 과제가 있다면 무엇입니까 그들은 지금까지 걸어왔던 과거를 새롭게 조명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삶의 현재를 다시 한번 성찰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들이 가고 있는 미래 를 다시 전망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이것은 우리 개인의 얘기일 수 있고 우리 민족 공동체의 한 모습일 수 있습니다. 이 좌절과 이 원망을 넘어서서 우리가 가야 할 삶의 방향을 새롭게 조 명해 보기 위해 필요한 첫번째 작업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 과거를 다시 조명하는 것입니다. 여기까지 걸어왔던 우리의 발걸음을 다시 한번 돌이 켜 보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지금까지 승리였든 패배였든 성취였든 불 만이었든 상관없이 여기까지 오게 하신 하나님의 발걸음을, 하나님이 인도 하신 그 인도의 발자취를 다시 돌이켜 보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무엘처럼 오늘 이 순간 하나의 돌을 우리 앞에 세워야 할지 모 릅니다. 그리고 이 돌의 이름을 에벤에셀이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습니다(삼상 7:12 참조).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습니다. 생각해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 땅을 떠나서 광야의 위험을 거쳐 본문에 언급된 다베라라고 하는 지점에 오기까지 하나님은 얼마나 성실하 심으로 이 백성을 인도해 주셨습니까 발자취마다 함께했던 하나님의 은 혜, 그 하나님의 자비하심, 그 하나님의 성실하심을 이스라엘 백성들은 너무 쉽게 망각해 버렸습니다. 당신은 어떻습니까 우리가 너무 쉽게 망각하는 존재임을 아신 주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한 시편 기자의 고백을 통해서 하신 말씀을 들어 보십시오.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시 103:2).
우리는 광복절이라든지 개천절 같은 절기를 맞이하면 제일 먼저 어떤 생각을 하게 됩니까 야, 공휴일이다. 어디로 놀러 갈까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명절을 지키던 방법은 매우 독특했습니다. 예컨데 이스라엘의 3대 명절 중 하나인 장막 절에는 이스라엘 각 가정의 가장(家長)들이 자기 식구들을 데리고 들로 나갑니다. 들에 수카라고 하는 장막을 칩니다. 야영하는 장면을 연상하면 쉽게 이해가 될 것입니다. 매우 낭만적이라고 생각될지 모르지만 날씨가 좋지 않을 때 텐트를 치는 것은 고된 노동에 속합니다. 그래서 자녀들이 불평합니다. 아버지 ! 왜 우리가 이런 고생을 사서 해야 되나요 그때 아버지는 이렇 게 말합니다. 사랑하는 아들 딸아 ! 우리 조상들은 이런 장막을 치고 광야를 옮겨 다 니면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마침내 이 땅에 도달할 수가 있었단다 ! 그들은 절기를 맞이할 때마다 그들 조상의 발걸음을 성실하게 인도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상기합니다. 유월절이 찾아옵니다. 식구들이 함께 앉아서 식사를 합니다. 그 식사의 주메뉴는 어린 양고기입니다 양고기를 먹어 본 사람은 알겠지만 맛이 없습니다. 어린 양고기는 더 비립니다. 아빠 ! 나 다른 음식 먹으면 안 되나요 그때 이스라엘 아버지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사랑하는 아들아 ! 우리의 선조들, 우리의 할아버지 할머니는 애굽땅을 떠날 때 이렇게 비린 양고기를 먹고 떠났단다. 한밤중에 깊은 잠에 빠져 있는 자식들을 부모가 흔들어 깨웁니다. 곤히 자고 있는 사람을 깨우면 얼마나 신경질이 납니까 아빠 ! 왜 깨워요 애굽 땅을 떠나던 그 밤 우리 조상들은 한밤중에 급히 일어나 띠를 띠 고 애굽 땅을 떠났단다. 이스라엘의 모든 절기는 과거 역사에서 그들에게 베푸셨던 하나님의 인 도,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간섭, 하나님의 성실성,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상기시켜 주는 사건들이었습니다. 우리는 쉽게 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도 이 땅을 떠나시기 전날 밤 사랑하는 제자 들과 최후의 만찬 식탁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 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식후에 또한 이와 같이 잔을 가 지시고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고전 11:23-25).
우리가 왜 불평합니까 우리는 왜 좌절합니까 우리의 발걸음은 왜 미 래를 향해 나아가지 못하고 지금 이 자리에 얼어붙은 채로 전전긍긍하고 있습니까 혹시 이스라엘 백성처럼 지금까지 우리를 인도하신 그분의 은 혜를 너무 쉽게 망각했기 때문은 아닙니까 고난의 역사이기는 하지만 이 민족의 역사 속에서도 주님의 간섭은 얼마나 투명하고 분명한 것이었습니 까 어떤 분이 한국 역사에 대해 강의하면서 이렇게 말한 것이 제 뇌리에 생 생하게 남아 있습니다. 이 지구상의 모든 역사 가운데 우리 한국 역사처럼 아슬아슬한 역사 또 있겠습니까 안 될 것 같은데 되고 고비고비마다 넘어가고 지금 우리 민족은 그런 위기를 또한번 맞이하고 있는 것 같은 감이 듭니다. 생각해 보면 이 민족을 버리지 아니하시고 오늘 이 땅에 예수 그리스도를 주(主)로 고백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 공동체를 존재케 하 신 그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과 자비는 성실하게 이 민족의 과거 역사 속에 분명하게 남아 있습니다. 당신의 발걸음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십시 오. 과거를 다시 한번 조명해 봅시다. 우리의 발걸음, 우리의 삶, 우리 공 동체, 우리 민족의 역사 속에 함께하셨던 그분의 은혜를 다시 한번 헤아려 보면 좋겠습니다. 현실을 성찰하자 분명히 이스라엘 민족에게 오늘이란 이 현재는 매우 불만스러운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원망합니다. 특별히 원망하고 있는 주제는 음식이었습니다. 광야에 나와 보니까 먹을 것이 변변치 않았습니다. 먹을 것이라고는 만나밖 에 없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불평 소리가 들립니까 우리가 애굽에 있을 때에는 값없이 생선과 외와 수박과 부추와 파와 마늘들을 먹은 것이 생각나거들 이제는 우리 정력이 쇠약하되 이 만나 외 에는 보이는 것이 아무것도 없도다 (5, 6절).
이 백성이 처음 만나를 받았을 때 어떤 감격을 고백했습니까 만나가 처 음 내려왔을 때 하얀 색깔의 만나, 눈송이처럼 하늘에서 쏟아지는 만나를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달리는 먹을 것이 없고 달리는 생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던 절박한 광야에서 하나님 자신이 친히 만드신 그 만나가 내리는 장면은 얼마나 장관이었겠습니까 만나는 하나님이 직접 만드신 음식, 인간 의 손을 거치지 않은 음식입니다. 이것을 Made in USA 와 비교할 수가 있겠습니까 Made in GOD, Made in Heaven, 하나님이 직접 만드신 만나 가 내려오고 있는 장면을 보십시오. 그들은 만나를 처음 맛보고서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맛은 꿀 섞은 과자 같았더라 (출 16:31).
그런데 본문에 보면 만나는 더 이상 꿀맛이 아니었습니다. 기름섞은 과자같다 (8절)고 고백합니다. 아직은 괜찮습니다. 민수기를 조금 더 읽어 내려가면 어느 날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 앞에 직접적으로 이런 도전을 합니다. 하나님 ! 우리가 이제는 이 박한 식물(食物)을 싫어합니다 (21:5 참조). 만나를 박한 식물이라고 말합니다. 처음에 만나를 받고 감사하고 감격 했던 그 모습은 온 데 간 데 없어지고 하나님이 주셨던 복을 오히려 원망 과 불평의 대상으로 바꾸고 있는 이 모습을 보십시오. 우리가 받아 누리는 복에 익숙해지다 보면 그 복을 더 이상 복으로 생각하지 않게 됩니다. 만나는 아직도 내리고 있습니다. 만나는 중단된 것 이 아닙니다. 광야 생활 중인 이스라엘 백성들의 현재 삶 속에 만나는 아직도 내려오고 있지만 더 이상 이 만나를 복으로 간주하지 않습니다. 우리도 우리가 받아 누리는 복된 환경 속에 익숙해지다 보면 그 복을 더 이상 복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불평하고 좌절합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소원이 비행기 타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말에 비행 기 태운다는 농담도 있습니다마는, 저는 진짜 비행기 한번 타 봤으면 좋 겠다 하고 늘 꿈꿔 왔습니다.
그런데 어쩌다가 제 팔자가 비행기를 매우 자주 타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어떤 때는 거의 매달 한 번씩 타기도 하는 데 얼마 전에 제가 비행장으로 나가면서 또 타 하는 푸념을 내뱉었습니다. 비행기 타기가 아주 지겨웠습니다. 제가 이 말을 하고 나서 후회했습니다. 옛날에 제가 이렇게 기도했던 것이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 비행기 한번 태워 주십시오.
저는 70년대 초에 미국으로 유학 갈 때 처음 비행기를 타 봤는데 얼마 나 기분이 좋았는지 모릅니다. 정말 날아갈 것 같았습니다. 남들이 비행기 타는 요령을 가르쳐 주고 어떻게 해야 잠을 잘 잘수 있다는 얘기도 해 주 었는데, 저는 비행기를 처음 타는 감격 때문에 잠시도 눈을 붙이지 않았습니다. 비행기를 타고 구름 위를 나는 것이 신기하고 재미있어서 미국까지 가는 시간이 전혀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감사했습니다.
그런데 어는 날 또 타 하고 불평하는 제자신을 발견했습니다. 신앙 의 선배인 바울 사도가 전도 다닐 때 어떤 모습으로 다녔는지가 머리에 떠올랐습니다. 바울은 강의 위험, 바다의 위험, 산의 위험, 동족의 위험, 강도들의 위험, 그 많은 고난 속에서도 복음을 전했는데 저는 온갖 특권을 누리며 선교하면서도 현실을 불평하고 있음을 바라보면서 하나님 앞에 얼 마나 부끄럽고 죄송했는지 모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누리고 있는 복에 익숙해지다 보면 그 복을 더 이상 복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청소년 시절을 어둡고 우울하게 지냈습니다. 우리 부모님이 사업 에 실패하셔서 제가 동생들을 여럿 거느리고 살아야 했습니다. 제 삶이 참 으로 곤고했습니다. 어린 나이에 나 하나도 책임지기 어려운 판국에 온 식 구를 부양해야 했으니 제 마음이 얼마나 피곤하고 고독하고 괴로웠겠습니 까 저는 사랑에 굶주려 있었습니다. 그래서 장가 드는 것이 소원이었습니다. 제가 결혼하고 나서 얼마나 좋았는지 말도 못합니다 특별히 첫날밤 이 무척 좋았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저희 부부처럼 첫날밤을 보낸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습니다. 제가 전도사 시절에 장가를 들었는데 제가 모시고 있던 목사님이 자동 차를 마련해 주어서 자가용을 타고 그 당시 유명했던 온양 온천으로 신혼 여행을 떠났습니다. 호텔에 들어가서 가방을 열었습니다. 그 순간 갑자기 개구리들이 튀어나왔습니다. 방 안을 뛰어 다니는 개구리들을 잡는 게 얼마 나 힘든지 압니까 잡은 개구리들을 죽일 수도 없어서 쓰레기통에 넣었는데 이것들이 또 튀어나와서 말썽을 부렸습니다. 가까스로 열댓 마리나 되는 개구리를 잡아서 쓰레기통에 감금시켜 놓고 다시 가방을 열었는데 또 개구 리가 폴짝 튀어나왔습니다. 사연인즉 제가 장가를 든다고 하니까 제가 가르치던 중고등부 학생들이 저희 부모님께 전도사님 선물을 넣는다고 가방을 달라고 해서는 개구리들 을 잡아넣은 것입니다. 덕분에 저는 그날 밤 출애굽기에 나타난 개구리 재 앙을 아주 실감 나게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날 밤의 추억을 잊지 못 합니다.
그런데 요새는 제 아내를 볼 때 신혼 때와는 달리 덤덤합니다. 사람은 언제나 자기가 받아 누리는 복에 익숙해지면 그 복을 더이상 복 으로 간주하지 않습니다. 개인도 그렇고 한 국가도 마찬가지입니다. 만나는 아직도 내리고 있습니다.
처음 만나가 내릴 때 그 신기한 음식 의 이름을 지을 길어 없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수근거리면서 이것이 도 대체 무슨 음식이냐 하고 말했습니다(출 16:15). 만나의 말 뜻은 이것 이 뭐냐 입니다. 이것이 뭐냐 가 하나님이 주신 양식의 이름이 되었습니다. 그 만나의 복이 어느 새 불평과 불만의 대상으로 바뀌어 버리고 있는 현 장을 보십시오. 당신의 삶의 장에도 만나는 계속 내리고 있습니다. 한때 감격이었고 감사였고 기쁨이었고 주님을 향한 소중한 복으로 간주되었던 것들이 이제는 더 이상 감격일 수 없는, 아니 오히려 불평과 원망의 대상 이 되고 있지는 않은지 반성해 보십시오. 우리 민족이 지금 이 순간까지 오기를 간절히 소원했던 우리 조상들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이만큼 성장하고 발전했지만 우리는 지금 또 불평합니다. 우리의 현재를 다시 한번 성찰할 필요가 있지 않겠습니까 당신도 당신 의 현재를 직시하고 감사를 당연히 여기고 있지 않은지 깊이 생각해 보십 시오. 미래를 전망하자 왜 이스라엘 공동체가 광야에서 원망하고 불평합니까 불편함 때문에 그렇습니다. 부족함 때문에 그렇습니다. 당장 눈앞에 놓여 있는 역경과 장 애물 때문에 그렇습니다. 시련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 이 광야에서 그 정도의 시련을 당할 각오도 하지 안하고 광야 길로 나섰더 란 말입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당장은 광야에서 고난과 시련과 역경을 경험한다고 할지라도 그들은 지금 어디를 향해서 가고 있습니까 가나안을 행해서 가 고 있습니다. 잠시 후 도달할 가나안의 비전, 가나안의 전망, 가나안의 꿈 이 그들을 붙잡고 있었더라면 그들이 현재 여기서 불평과 원망을 할 수가 있었겠습니까 왜 불평하고 원망합니까 그것은 전망의 상실, 비전의 상실 때문에 그렇습니다. 조금만 더 가면 가나안이 기다리고 있는데, 그 미래를 참고 기다리지 못해서 불평과 원망을 일삼는 것입니다. KOSTA 94 주강사에 김종일 목사님이 계십니다. 가나안 농군 학교 교장 선생님이십니다. 한국 농촌에 꿈을 주고 이 민족이 가야할 방향을 제시하는 분입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하나님이 예비하신 약속의 땅, 그 약속의 땅에 대한 꿈과 비전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가슴을 설레이게 하고 그들의 발 걸음을 재촉하고 그들의 손을 붙잡아 인도하고 있었더라면 원망하고 불평 할 필요가 있었겠습니까 그 가나안이 보이지 않는다고 불평하는 것은 근 시안적인 태도 때문입니다. 가나안 을 거꾸로 읽으면 안 나가 입니다. 왜 안 나가냐고 그래서 불평하고 원망합니다.
저와 당신의 비전은 무엇입니까 우리 한민족이 산업화 과정을 통해 경 제적으로는 잘사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우리 민족의 목표일까요 단순한 산업화 초점을 맞추고 경제적인 부국(富國)에만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에 물질적인 목표는 달성했으나 이 민족은 방황하고 있습니다. 저는 고(故) 박정희 대통령이 잘한 일도 많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박 대 통령 시절에 우리 민족의 모토가 하나 있었습니다. 시골에 사는 농부에서 부터 도시인까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전민족이 부르던 구호가 있었습니다. 잘 살아 보세, 잘 살아 보세 가 그것입니다. 이 잘살아 보세라는 구호 와 균형을 이루어야 할 또 하나의 구호가 없었던 것을 저는 안타깝게 생각 합니다. 바로 바르게 살아보세가 없습니다. 우리는 경제적으로 좀더 넉넉한 민족이 되기를 원했습니다. 그것이 전 부였습니다. 어느 정도 잘살게 되자 우리는 쾌락에 탐닉합니다. 우리가 소 유한 부(富), 우리가 얻은 약간의 편리함을 가지고 이제 이 민족은 어디로 가야 할까요 이 민족의 비전은 무엇입니까 당신의 꿈은 무엇입니까 당신이 공부하는 학생이라면 학위를 딴 다음 어떤 삶을 가지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살고자 합니까 그 비전이 무엇 입니까 당신이 가지고 있는 그 비전이 오늘이라는 삶의 자리에서 당신을 붙들고 있습니까 지배하고 있습니까 감동시키고 있습니까 당신이 좌절과 낙심 속에 주저앉을 때 당신을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는, 당신을 기다리 고 있는 가나안의 비전 때문에 오늘의 역경을 극복할 수 있는, 당신을 다 시 뛰게 만드는 설레이는 비전이 있습니까 저는 고둥학교 시절에 감명 깊게 읽은 책이 있습니다. 그 후 긴 세월 이 지났으나 지금도 이 짧막한 단편이 제 삶이 지치고 무료해지고 낙심될 때 저를 다시 일으켜 세워 주는 영감(靈感)의 원천이 되고 있습니다.
리차드 바크가 쓴 갈매기의 꿈입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아빠 엄마를 따라서 먹이를 찾고 산책을 하고 조금 더 멀리 날아가서 놀다가 저녁이면 보금자리로 돌아오는 조나단. 아침이면 다 시 일어나 먹이를 찾고 운동을 하고 놀다가 저녁이면 집에 돌아와 안식을 취하고 그 이튼날 똑같이 반복되는 무료한 삶을 살던 조나단은 이것이 내 삶의 전부일까 하고 생각합니다. 그러다가 조나단은 꿈을 꾸기 시작합니다. 아니야, 이것이 전부가 아닐지 몰라. 내가 알고 있는 세계, 내가 알 고 있는 삶의 차원이 이것이 전부가 아니고 저 건너편에 다른 세계가 있을 지 몰라. 조나단은 자기의 꿈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아무도 조나단의 꿈을 이 해해 주지 않았습니다. 친구들은 미쳤다고 말합니다. 마침내 조나단은 추 방을 당합니다. 조나단은 슬펐습니다. 친구들과 자기가 익숙했던 사회에서 추방당한다는 것도 슬픔이었지만 그보다 더 큰 조나단의 슬픔은 자기의 꿈 을 이해해 주는 갈매기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추방당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좀 더 높이 날면 더 멀리 볼 수 있을 텐데 가장 높은 곳으로 오십시오,보좌 앞으로 나오기 바랍니다. 역사를 창조하시고 통치하시며 주장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보좌, 그 보좌 높은 곳으로 오십시오. 그리고 그 보좌 앞에 무릎 꿇어 꿈을 꾸십 시오. 개인을 향한, 우리 민족 공동체를 향한 꿈을 꾸십시오. 지금은 우리 조국이 분단되어 불안한 상황이지만 이 조국의 위기를 저 건너편에 있는 통일 조국의 꿈을 꾸어 봅시다. 별로 자랑이 없었던 이 민족이 주께 받은 복음을 통해서 세계 열방들을 섬기고 세계 열방에 복음을 전하는 선교 한 국의 꿈을 꿀 수 있습니다. 이 위대한 꿈, 이 비전을 가질 수 있다면 현재 삶이 아무리 괴롭고 겉 잡을 수 없는 혼돈에 빠질지라도 우리는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우리의 불평과 원망을 청산하고 홍해를 건널 때처럼 다시 노래를 불러야 합니다. 시를 지어야 합니다. 찬송을 불러야 합니다. 가슴을 열어야 합니다. 내게 보이는 그 가나안의 비전을 인하여 다시 벌떡 일어나 내가 무엇을 위하여 살아야 할 것인가를 확인합시다. 그리고 우리 사랑하는 형제자매와 함께 앉아 우리 민족 공동체에게 주신 꿈을 이야기합시다. 복된 민족의 내일을 위하여 !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낙심의 순간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 처럼 모든 것을 집어치우고 과거로 돌아가고 싶은 유혹도 받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시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여기까지 올 수 있도록 걸음걸음 인도하셨던 하나님의 성실하신 은혜를 다시 한번 헤아려 보십시오.
오늘이 아무리 무료하고 황폐하고 건조한 삶이라고 할지라도 하나님은 복의 손을 거두지 않으셨습니다. 만나는 아직도 내리고 있습니다. 우리의 머리 위에 지금도 쏟아지고 있는 하나님의 복을 바라보십시오. 조금만 가면 가나안이 보입니다. 내 인생을 쓰시는 하나님의 놀랍고 빛나는 경륜이 보입니다. 고난 이외에는 자랑할 것이 없었던 우리 민족, 그러나 조금씩 복음을 통해서 이제 이웃들을 돕고 다른 민족들을 섬기고 세계를 향해서 선교사들이 뛰쳐나가고 있는 한국 ! 뭔가 보이지 않습니까 지금처럼 한국 사람들이 어깨를 펼 만큼 신나는 그런 역사가 이전엔 없었습니다. 조 금만 더 가면 됩니다. 하나님께서 이 민족의 가나안을 우리에게 보여 주시고 우리 민족을 향 한 하나님의 꿈을 보여 주시고 나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보여 주실 것입니다. 당신도 두 가지 제목을 위해서 기도하십시오.첫째, 개인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알게 해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마음속에 있던 절망과 불만과 불안과 낙심을 청산하게 하시고 당신을 위해 예비하신 빛나는 미래를 바라볼 수 있는 전망을, 그 꿈을 달라고 간구하십시오.둘째, 우리 민족을 향한, 우리 조국을 향한 하나님의 그 놀라우신 꿈을 보여 주십사하고 기도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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