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절

TOP
DOWN

꿈꾸는 자 (행2:17)

본문

오늘 제목 `꿈꾸는 자'라고 잡았는데, 결론적으로 말씀드리자면 꿈이 있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고, 꿈꾸는 자가 인생을 멋있게 사는 사람이요. 꿈이 있는 사람이 참 인생을 아는, 멋을 아는 사람이다 그 말입니다. 한국인들, 어느 나라 사람도 다 마찬가지겠지만 우리 한국인들은 특별히 복을 받기를 좋아합니다. 행복하기를 좋아합니다. 그래서 베고 자는 베개에도 복복(福)자를 수로 놓고, 수저에도 복자를 새기고, 어디든지 보면 행복에 대한 글자를 붙여 놓고, 새겨 놓고 합니다. 다 복받기를 바라지마는 내가 가만히 보건대 오히려 행복해 질 수 있는 비결에서는 점점 떠나, 불행자는 길을 자꾸 걸어 가면서 행복해 지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합니다. 작년에 샌프란시스코 신학대학원에 가서 한해 동안 공부한 적이 있습니다 . 그 샌프란시스코 신학대학이 있는 캠퍼스가 샌프란시스코 금문교를 지나서 머린 카운티라는 동네에 있었는 데요. 그 동네가 얼마나 잘 사는 마을인지 내가 짐을 풀어 놓고 아침에 조깅을 한다고 마을을 한 바퀴 달리다가 감탄사를 연발했어요. 얼마나 기가 막히게 잘 사는지 아 이렇게 잘 사는 곳도 있구나. 이곳이 천당은 못되고 오백 육백당은 되겠다 이런 생각을 했었습니다. 사람 사는 데가 천당이야 되겠습니까마는 틀림없이 오백당은 넘는다 그런 생각을 했어요. 그 좋은 환경 그 살기 좋은 데로 평가할 때 미국 전체에서 살기 좋은 조건으로 5위 안에 들어 가는 마을이라는 겁니다. 사람이 이렇게 해 놓고 살 수 있구나 생각을 하면서 내가 일하고 있는 남양만 개척지, 소금땅을 막아 놓고 뻘밭에서 살아 보겠다고 고생하는 우리 마을 농민들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사람이 적어도, 살려면 이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겠나. 미국 사람들은 참 행복한 사람들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한 두달 지난 뒤에 그 생각이 변했습니다. 왜 변했느냐 하면, 그 동네가 미국 전체에서 잘 사는 마을로 5위 안에 들어 가는 마을인데 83년도 자살률이 미국 전체에서 3위라 그래요. 그리고 여러 가지 환각제를 복용하는 비율이 4위라는 겁니다. 그래서 참 병신도 가지가지로구나. 그 좋은 환경에서 왜 자살을 하겠나 속으로는 우스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세상이 공평한지 모르겠다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 좋은 환경에서 왜 자살을 하고, 왜 환각제를 먹고, 왜 마약을 먹고 하는지 내 머리로는 이해가 안 가요. 내가 지금 농민들하고 고생하는 남양만 교회의 교인 중에 젊은 부부가 있습니다. 결혼하자마자 한 가지 꿈을 세웠습니다. 젖소 송아지 한 마리를 사가지고 그 송아지를 잘 길러서 그것이 큰 소가 되고, 그 큰 소가 송아지를 낳고, 그렇게 해서 젖소 열 마리를 먹이는 것이 자기들의 꿈이라고 했습니다. 젖송아지 한 마리 사는 데 120만원이 필요합니다. 120만원을 모으기 위해서 그 부부는 7년간 돈을 모았는데 7년이 지났어도 70만원밖에 모으지를 못했습니다. 아직 50만원이 부족해요. 그 사람들이 교회 와서 기도할 때마다 하루속히 120만원 모아지게 해서 송아지 하나 마리 살 수 있게 해 주시옵소서. 7년간 그 사람들은 오직 송아지 한 마리 가지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정성이 하도 갸륵하고 그 얘기를 들으면 가슴이 찡해서 우리 교회가 경영하고 있는 신용 조합에서 나머지 50만원을 빌려주었습니다. 대부해 주었더니 120만원을 채워 가지고 작년에 120만원짜리 송아지를 한마리 샀습니다. 이 송아지를 사 놓고서 얼마나 기뻤던지 들에 나가서 쑥을 뜯어다 쑥떡을 하고, 단술을 하고, 지지미를 붙이고 그렇게 마을에서 잔치를 했어요. 송아지를 산 그들이 얼마나 기뻐하는지 몰라요. 7년동안의 꿈이 이루어 진 것이지요. 그들이 그 송아지를 길러서 큰 놈으로 만들고, 그것이 또 기르고 길러서 나중에 열마리가 되면은 최소한 월 100만원은 된다는 거예요. 젖이 나게 되면 한 마리에 한 달 수입이 10만원 가량 됩니다. 열 마리만 키우게 되면 백만 원수입이 되기 때문에 그것이 그 사람들의 꿈이예요.
그런데 그 중요한 송아지가 그만 감기에 걸렸습니다. 감기가 걸려서 기침을 하고 콧물이 흐르고 하니까, 까딱하면 폐렴이 돼 죽는 경우도 있고 해서 그 사람들이 얼마나 걱정이 됐던지 밤 두 시에 나를 데리러 왔어요. 밤 두 시 한잠 곤하게 자는데 나를 깨우더니, "아니 목사님, 우리집 송아지가 감기가 너무 심해서 큰일났어요. 목사님 안수 기도 좀 해 주셔요." 그런단 말씀이예요. 아, 이것 참! 사람도 안수기도 못했는데, 아, 송아지한테 가서 안수기도하는가, 참 답답해서 도무지 갈 생각이 없었습니다만 부부가 얼굴이 사색이 됐는데 그 얼굴을 쳐다 보니 도저히 거절을 못하겠어요. 내가 못 간다고 거절하면 그 사람들이 큰 낙심을 할 것 같고, 어쩌다 송아지가 죽어 버리기라도 하면 나 때문에 죽었다고 할 것 같고, 그래 눈을 찔끔 감고 가 보자고 했습니다. 그 집의 마굿간에 가서 송아지 이마에다 손을 얹고 "예수님! 저는 기도 힘도 없는 사람이고, 더구나 송아지한테 제가 기도해 가지고 뭐 효험이 있을 것 같지 않습니다만 제 믿음 말고 이 사람들의 믿음으로 인해서 이 송아지가 감기에서 낫게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 이름 받들어 기도 드렸습니다. 아멘!" 그 부부가 뒤에서 "아멘! 할렐루야!" 그래서, 야 참말로 그 송아지 감기에서 꼭 나았으면 좋겠다. 그리 생각하고 집으로 돌아 왔습니다. 한 3일 두에 그 부부가 희색이 만면해서 선물을 사가지고 나한테 왔어요. "목사님 기도받고 송아지가 완쾌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그랬어요" 내가 우쭐하게 기분이 좋았습니다 아, 내가 그 길로 개업해도 되겠구나 그런 생각도 했지요. 요즈음 농촌에는 소들이 죽는 수가 많아요. 여러가지 병들이 많아서 말이지요. 자, 그랬는데 뭔 내 기도를 듣고 송아지의 감기가 나았겠습니까 때가 되니까 자연 치료가 됐을 줄로 내가 압니다만, 송아지가 나았을 때 그 얼굴 가득히 행복이 넘치는 모습과 내가 미국에 있을 때 마린카운트의 그 살기 좋은 환경에서 자살하는 사람들과 비교해 보면서 사람이 행복하다는 것은 내면의 문제가 아닌가. 사람이 행복하다는 것은 아무리 물질적인 경제적인 조건을 다 갖추었어도 불행해서 자살하고 약을 먹고 그러하는데 자기 속에 꿈이 있고, 자기 속에 뜻이 있고, 자기 속에 이 세상을 살아가는 보람과 꿈이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사람이 행복해지는 문제에 대해서 꿈이 없는 사람은 행복해질 수가 없습니다. 꿈이 있는 사람, 꿈을 가지고 사는 사람, 그 사람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권리를 가진 사람이라고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예전 KBS 드라마 중에 보통 사람들이란 드라마가 있었습니다. 모두 다 기억하실 줄로 압니다. 상당히 인기가 있었던 걸로 아는데 그 <보통 사람들> 이란 극을 쓰신 나연숙 집사님이라고, 서울 할렐루야교회의 집사님입니다. 충청도 출신이라고 얘기를 들었습니다만 그 분이 얼마 전에 제가 있는 남양만 활빈교회를 찾아왔습니다. <보통 사람들> 드라마가 끝난 몇 달 후에 다시 드라마를 시작하게 됐는데, 나연숙 자가가 하는 말이 이번의 드라마는 활빈교회를 소재하여 1년 정도 방영할 계획이라는 겁니다. 활빈교회의 지나간 일을 방영할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는 거지요. 나는 어리둥절해서 그런 부탁을 허락해야 할지, 안 해야 할지 우리 활빈교회 일꾼들을 모아 가지고 의논을 했습니다. KBS 제 1방송에서 우리 활빈교회를 소재로 한 드라마를 1년 동안 방송한다는 데 그것을 허락해야 하는 것인가, 어쩔 것인가, 각자 의견을 말해 보라고 하였더니 우리 교회 일꾼들이 "아 그거 안 해야 됩니다. 그거 하면 쪽팔려서 안 됩니다. 괜히 방송을 탔다가는 실속도 없이 아, 활빈교회 쪽팔리고 목사님도 아무 이익없이 쪽팔리면 괜히 먹을 것 없는 잔피에 손님만 많다고 그거 안 되는 겁니다. 괜히 텔레비젼 보고 사람들이 남양만 찾아와 가지고 한 마디 해주십시오. 그렇게 해싸며는 일하는데 지장만 되고 그 불편해서 안 됩니다." 또 일부에서는 "아, 그게 아닙니다. 나가서 하는게 좋습니다. 그게 방영되는게 좋습니다." 왜 그러냐고 하니까 "우리가 15년 동안 빈민촌에서, 감옥에서, 농촌 바닦에서, 뻘밭에서, 고생한 이유가 예수님에 대한 신앙과 예수님의 복음, 사랑을 어떻게 실천하며 사느냐 그것을 위해서 살았는데, 아 국영방송에서 자기들이 우리의 예수님에 대한 믿음과 꿈과 우리의 뜻을 방송국에서 전해주겠다는데, 우리가 돈을 들여 가지고 광고 방송을 할라니 국영방송에서 스스로 해 주겠다니 얼마나 좋은 찬스입니까 하는 것이 좋습니다." 서로 의견을 둘로 갈라졌습니다. 그래서 그러면 어떻하는가 의논했더니 마지막으로 좋은 절충안을 냈습니다. 방영을 하는 것을 허락하되 한 가지 조건을 붙이자 활빈교회라는 교회 이름, 김진홍이라는 목사 이름, 내가 쓴 책이름, 그런 것은 다 빼 버리고 다른 사람들의 이름, 다른 교회의 이름, 제 3자의 이름으로 해 가지고 그렇게 하게 하는 것이 좋겠다. 우리야 우리가 전하고 싶었던 예수님의 복음과 사람과 우리의 꿈이 전해지면 되는 것이지, 우리 이름 나는 것은 불편하지 않겠느냐 그래서 우리가 그렇게 KBS에다가 연락을 했더니, 지난 수요일 그 드라마에 출연할 주연 배우와 나연숙 선생님과 PD와 여러 선생님이 우리 교회를 찾아 왔습니다. 찾아 와서 이런저런 얘기하다가 그 주연 배우가 나한테 인사를 해요. 내가 바로 목사님역을 할 정동환이라든가 그 사람이 인사를 합디다.
내가 그 사람 얼굴을 보고 "아니고! 이 사람 안 되겠는데." 내가 그 사람 앞에서 "정동환 선생님이 내 역을 맡기에는 곤란하겠는데요." 그 사람들이 당황해 가지고 "목사님 KBS 탈렌트 중에 목사님 역에 알맞다고 생각되는 사람 있습니까" 그래서 "아, 그런거는 없지마는 이 사람은 적임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랬더니 "아, 왜 그러시냐"고 묻어라구요. "나는 이렇게 못생긴 사람인데 이 사람은 너무 미남이잖아요. 이런 미남이 어떻게 내 역할을 하겠습니까" 그랬더니 나연숙 선생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목사님 죄송합니다 만, KBS 탈렌트 중에는 목사님처럼 못생긴 사람이 없습니다. 그렇게 목사님처럼 별나게 못생긴 탈렌트가 없는데 지금 뽑아 길러서 어떻게 하겠습니까 있는 사람 중에서 해야지요. 목사님께서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 그렇게 웃고 끝이 났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뭐냐 하면, 제가 하고 싶은 말은요, 그 사람들이 한 가지 문제를 의논해 왔습니다. 작년에 <보통사람들>이란 드라마를 할 때에, 여러분 그 드라마를 보셨습니까 후반부에 성경 이야기가 자꾸 나오고 새벽기도 가는 이야기가 자꾸 나오고, 신앙에 대한 이야기가 자꾸 나오니까 불교계에서 항의를 하는데, 처음에는 방송국에다가 너무 기독교에 편파적이 아니냐 그러더니 나중에는 불교에서 스님들이 진정서를 가지고 청와대에 보냈답니다. 왜 국영방송에서 특정 종교를 과잉하게 선전하느냐 그렇게 할 수 있느냐 청와대에서 나와 조사를 하고 그렇게 했대요. 또 나중에는 방송국에다가 불교계에서 진정하기를 자꾸 그렇게 기독교만 두둔하는 드라마를 내면은 우리 불교도들은 MBC만 보고 KBS는 안 보는 운동을 할랍니다. 그래서 아주 자기들의 입장이 난처했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금년의 문제는 더 복잡하지요. 현존하는 목사의 이야기요, 교회의 이야기요, 실제 교회 이야기가 내용이니까 어떻게 이것을 조정하면 좋겠습니까 그 출연진과 작가들이 나한테 의견을 물었습니다. 그래서 내 의견을 말하기를 내가 오늘 여러분들한데 말하고 싶은 내용의 핵심은 그 사람들에게 말했던 내용입니다. 뭔 내용인고 하나, "기독교 복음이 전파되는 데 있어서, 우리 신앙의 내용이, 여호와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이 전파되는 데 있어서, 꼭 입으로 예수님 예수님을 부르고 성경이 자꾸 나오고, 그렇게 해서만 기독교 복음이 전파되는 것이냐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면서 내 생각을 말했습니다.
교회가 예수님의 교회로, 기독교가 기독교로서 이 세상이 있게 되는 세 가지 중요한 요소가 있습니다. 첫번째는 신학적인 용어로 `케리그마'라고 합니다. 말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입니다. 그 말씀을 받아들임으로써 구원받고 중생하게 되는 말씀 자체입니다. 그 말씀과 그 말씀의 선포를 케리그마라고 합니다. 두번째, 그 말씀에 인생을 걸고 사는 성도들이 사귀는 모임입니다. 이것을 `코이노니아'라고 합니다. 세번째, 이 세상 사람들에 대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섬기지 못하고 있는 세상 사람, 세상 역사에 대해서 참여하고 봉사하고 섬기는, 역사에 참여하고 현실에 참여하고, 섬김으로써 사회를 개혁하며 살아 가는 그 모습을 `디아코니아'라고 말합니다. 이 케리그마, 코이노니아. 디아코니아 그 세 가지가 기독교를 세우는 세 기둥이 되겠는데, 예수님 예수님 입으로만 말하고, 성경 풀이를 얘기한다고만 해서 케리그마가 아니라. 예수님께서 가르쳐 준 진리와 생명을 심령에 모신 사람들이 더불어 코이노니아를 이루고, 절망과 어두움 속에 있는 죄와 방황과 고뇌 속에 있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봉사하고 섬기고 사느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것이 활빈교회가 지난 14년 동안 걸어 온 내용이니까, 우리가 빈민촉에 배고픈 사람, 병든 사람, 절망 중에 잇는 사람들은 위해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어떤 삶을 살았는가 하는 것을 드라마로 보여 주면 되지 않겠습니까 구태여 성경 말씀을 자꾸 일고 그렇게 할 필요는 없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내가 그렇게 얘기했더니 그 나연숙 선생님과 배우들이 마음에 안심이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우리 기독교가 기독교로서 있게 되는 가장 핵심인 케리그마, 하나님의 말씀, 그 말씀이 없다면 인간은 불행해 집니다. 인간의 행복해 지는 길에 대해서 말씀 드렸습니다만 어떤 사람이 행복하냐 진리의 말씀, 생명의 말씀, 가슴 속에 예수 그리스도 자체를 생명의 주인으로 모시고 사는 사람, 그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 행복한 사람이 이 세상에 대해서 어떻게 섬기면서 사느냐 자기가 아무리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고 살지라도 예수님 뜻을 받들어서 이 백성에 대해서, 가난한 사람들에 대해서, 복음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노동자에 대해서, 농민에 대해서, 빈민에 대해서 섬기는 그 섬김이 없다면 그 삶의 삶은 행복해 질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 사람이 아무리 입으로 예수를 말하고, 찬양을 하고, 교회에 충실한 사람일지라도, 그 사람이 진실로 예수님의 뜻을 받들어서 사랑과 복음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서 섬기는 종으로서, 실천의 삶이 없다면 그 사람의 신앙은 열매없는 삶일 수밖에 없습니다. 나는 오래 전에 우리 한국 교회가 그런 면에서 취약점이 있다고 생각을 해 왔습니다. 우리 한국 교회가 예수님의 말씀 속에서 자라서 교인도 많아지고, 교회도 많아지고, 목사님도 많아졌지만은 이러한 외향적인 성장에 비해서 내면적으로 자리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즉, 실천하는 면에 있어서 약점이 있는 교회가 아닌가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신학교 학생 시절부터 빈민촌에 들어 가서 빈민들에게, 가난한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교회를 해보자고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그 후 이러한 삶을 나름대로 살아 왔는데, 이러한 경험 속에서 여러 가지 간증이 있습니다. 그 중에 한 가지만 오늘 제가 말씀 드리겠습니다.
1873년 빈민촌에 들어 간 2년 뒤의 일입니다. 우리 동네에 어떤 아주머니가 있었습니다. 아들 넷을 데리고 사는데 막내 애의 이름이 훈이예요. 그 남편이 서울 지하철 공사장에서 막벌이로 일하다가 천정에서 뭣이 떨어져 머리에 맞아 뇌진탕으로 죽었습니다. 막노동자가 공사장에서 죽으니까 우리 나라는 아직 복지 제도가 안돼 있어서 그런지, 보상금이 밀가루 열 포도 끝나 버렸습니다. 참 너무나 억울한 보상이었어요. 밀가루 10포로 끝나 버렸어요. 그 아들 넷과 함께 밀가루 10포 먹고 나니까 다른 대책이 없어요. 그러다가 서울 워커힐 가는 쪽에 비닐 하우스를 운영하는 집에 취직을 했습니다. 그 비닐 하우스 속에 상치, 시금치 밭이 있었는데 그 밭을 매주고, 그 품삯으로 근근히 입에 풀칠하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 부인이 아랫배가 불러 오르고, 얼굴에 핏기가 없고, 숨이 가쁘고 고통을 호소하는 거예요. 동네 아주머니들이 "훈이 엄마 자꾸 배가 불러 오르고 숨이 가쁘다고 하니까 병원에 진찰 좀 해 주시라요." 내 생각에는 "아니, 젊은 부인이 아랫배가 불러 오면은 애기 밴거구먼." 그랬더니 "아이고 선생님! 남편없이 애기를 어떻게 배지라우." 그래서 요새 남편없이 애기를 잘만 배드라고 그랬더니, 아 그게 아니래요. 하도 사정을 해서 이화여대 산부인과로 데리고 가 진찰을 했더니 자궁에 혹이 생겼답니다. 암은 아닌데 혹이 있데요. 그것을 수술하면 깨끗하게 났는데, 수술을 하지 않고 두면 혹이 자라서 죽는다는 거예요. 그래서, 의사 선생님한테 수술비가 얼마 되느냐고 했더니 우리 형편에 감당하기엔 너무 무리더라구요. 그래서 우리 교회에서 훈이 엄마 수술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달라고 기도를 했습니다. 불행하게도, 우리 교회가 수술을 할 수 있는 비용을 마련하기도 전, 하루는 밭에서 김을 매다가 까무러쳤습니다. 까무러치니까 우리 교회로 데려왔습니다. 급한 돈을 빌려서 교회로 온 훈이 엄마를 택시를 불러 태워서 서울 의료원 메디칼 센터로 데려 갔습니다. 을지로 6가에 있지요. 거기 응급실에 들어 가서 진찰을 하고 의사 선생님이 생명이 위독하니 빨리 수술하게 하라고 그래요. 그래서 수술하게 해 달라고 하니, 입원 보증금을 내가는 거예요. "갑작스런 일이라 입원 보증금을 마련하지 못했습니다. 내 명예를 걸고 갚을 테니 사정을 좀 봐주세요." 요즈음 보증금없이 어떻게 수술하려고 그러느냐고 절대로 안 된다는 겁니다.
메디칼 센터는 정부가 세운 병원이지요. 이 나라가 세운 병원 아닙니까 백성이 돈이 없어서 죽게 됐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우리가 꼭 갚겠습니다." 그랬더니 안 된데요. 내가 무릎을 꿇고 두 손으로 빌어도 안 된다고. 그래서 "아이고! 참 무심하다. 나라가 세운 병원이 그럴 수 있느냐." 고 하고서는 예수 믿는 병원에 가야 되겠다고 하고서는 신촌에 있는 세브란스 병원에 갔습니다. 세브란스 병원 입원실에 들어 가서 응급실에 절차를 밟았더닌 빨리 입원 보증금을 내고 수술을 받게 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입원 보증금이 없습니다. 제가 교회 전도사입니다. 전도사의 신앙과 명예와 인격을 걸고 꼭 갚을테니 사람을 살려 주십시요." 했더니 "요즘 전도사 믿게 됐어요" 하, 그러더라구요. 올 때는 금방 돈낼 것같이 오는데 환자를 치료해서 다 낫게 하면 도망 가버린다는 거예요. 그래서 사정을 하다가 안 되어서 "그래 잘 먹고 잘 살아라!" 하고 서울대학부속병원에 갔습니다. 서울대학부속병원 퇴짜 맞고, 이화여대병원 퇴짜 맞고, 세브란스병원 퇴짜 맞고, 메디칼센터 퇴짜 맞고, 네 병원을 하루종일 걸어 다니면서 올데 갈데 없게 되었습니다. 환자는 숨을 쉬는지 안 쉬는지 알 수가 없고, 너무나 막연해서 "예수님!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이 불쌍한 훈이 엄마 살려 주셔야지, 죽이실랍니까" 하고서는 그 환자를 업고 마을로 다시 들어왔다가 기도하고 내일 다시 수술할 곳을 찾아야 되겠다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환자를 업고 버스를 탈려고 하니 차비가 없었습니다. "안내양 아가씨, 오늘 차비가 떨어졌으니까 그냥 좀 태워 주게." 그랬더니 " 이 퇴근 시간 바쁜데 누가 병자하고 그냥 타요." 하고 지나가요. 할 수 없이 병자를 업고 천천히 걸어 갔지요. 동대문에서 한양대학까지 걸어 가는데 어찌 환자가 무거운지. 저도 지쳐서 배는 고프고 짜증은 나고 쉬엄쉬엄 걸어 가는데 환자가 자꾸 뒤로 제껴져요. 그래서 "훈이 엄마, 등에 좀 붙어 주시오." 하고 등에다가 붙여 놓으면 조금 가다가 또 다시 제껴져요. 그래서 짜증이 나서 "등에 좀 붙으시라고요." 등에 붙여 놓으면 또 제껴져서 "사람이 아프면 싸가지가 있어야지. 어째 그렇게 협조를 안해 주시오. 이 내가 무슨 서방인가 친척인가 내가 뭐이." 하고서는 얼마나 화가 나는지, 자꾸 환자가 제껴지니까 힘들지 않습니까 성동소방소 앞을 지나서, 그렇지 않아도 힘이 드는 데다가 자꾸 뒤로 제껴쳐지니까 더욱 힘이 들어 땅 바닥에 떨어뜨렸습니다. "도무지 못해먹겠구만!" 하고 화가 나고 짜증이 나서 툴툴 불평을 하는데 자세가 이상해요. 가만히 보니까 벌써 죽었어요. 죽은 시체니까 뒤로 제껴질 수밖에 없지요. 그 사람이 죽은 것을 알게 됐을 때에 하늘이 캄캄하고,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느꼈습니다. 내 입에서 처음 나온 말이 "이놈의 세상 망해야지! 불쌍한 훈이 엄마를 병원마다 쫓아 내고, 나라서 세운 병원도 쫓아 내고, 예수쟁이들이 세운 병원도 쫓아 내고, 대학에서 세운 병원도 쫓아 내고, 이놈의 세상 망해야지! 내가 서울 시내에 불을 질러 버려야지! 내가 서울 시내에다가 불을 질러 버리고, 이놈의 세상 망하는 일을 해야지!"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훈이 엄마의 얼굴을 쓰다듬이면서 "왜 죽어! 왜 죽어! 살아야 원수를 갚고, 살아야 한을 풀고, 살아야 자식새끼 먹여 살리지 자식새끼 넷이나 두고 어떻게 죽었냐! 왜 죽을 때가 없어서 내 등어리에서 죽었냐!" 하고 내가 얼마나 통곡하고 울었는지 하늘이 캄캄하고 온 세상이 절망이예요. 어떻게 해서 교회도 많고, 목사도 많고, 병원도 많고, 의사도 많은데, 어떻게 해서 불쌍한 훈이 엄마를 내 등에서 죽게 하는가! 내가 너무 절망해서 "이제 활빈교회 안 합니다. 예수님이 나한테 활빈교회하라고, 가난한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빈민들에게 전도하라고, 나를 빈민촌에 보내 주셨으며 환자를 보내 주지 말든지, 의사를 보내 주든지, 돈을 주시든지, 병자를 기도하면 낫게 하는 능력을 주든지, 뭘 주셔야지, 아무 것도 주지 않고 병든 사람만 잔뜩 주시니, 내가 어떻게 활빈교회를 하겠습니까 내게 이제 교회를 안 하고 나라를 거꾸로 뒤집는 것, 이렇게 잘못된 세상 뒤집는 그 일을 하겠습니다." 하고서는 소리를 지르고, 그 훈이 엄마 시체를 끌고 집으로 들어 갔습니다. 죽은 시체를 길가에 둘 수는 없지요. 가다가 너무 힘이 들어 길에서 앉아서 쉬는데 그때에 결정적으로 예수님께서는 중요한 깨우침을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분명히 깨우치기를 "진홍아! 그 죽은 여자가 누구인지 아느냐 그 여자는 나 예수다." 예수님께서 분명히 내 심령 속에서 깨우쳐 주시기를 "훈이 엄마 하나 네 등에서 죽는 것이 그렇게도 분하고 원통하고 절망을 느끼느냐 네가 내 심정을 알겠느냐 너는 그 여자 하나 죽는 것이 그렇게 절박하고 화나고 분통터지는 데 나는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수많은 영혼들이 사랑에 굶주린 채로, 절망 속에서 한을 품고 죽어 가는 수많은 심령들을 내가 보고 있다. 그 죽은 여자가 바로 나 예수인 것을 네가 알아라." 그랬습니다. "네가 그 여자 죽는 것을 체험했을 때의 그 절망이 바로 나 예수가 느끼는 절망일 줄 알고, 내가 네게 사명을 준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네게 사명을 준다. 한국 교회에 대해서 오늘 네가 느낀 분노와 절망과 슬픔을 한국 교회에 네가 말하라."고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교회를 위해서 죽었는데, 내가 교회를 위해서 죽고, 교회를 세워서 이 땅위에 있는 병든 사람, 슬픈 사람, 절망 중에 있는 사람을 위해서 살았고 그렇게 세웠는데 왜 죽어 가는 심령들을 위해서 섬기고 종노릇하며 살지 못하고, 너희 예수믿는 사람들끼리만 모여 가지고 집 잘 짓고 호화판으로 행복하다고, 행복하다고, 그렇게 살아 가니 예수가 슬피 통곡한다고 네가 한국 교회에다가 말을 하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내가 여러분에게 드리고 싶은 말씀은 이 시대를 사는 지식인으로서, 젊은이로서, 우리가 꾸어야 될 꿈이 뭡니까 우리가 무엇을 하다가 일생을 마치는 것이 지식인으로서의 사명이겠습니까 오늘 본문 말씀이 순서지 밑에 있습니다.
사도행전 2:17 말씀 다 같이 읽겠습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게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그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이 말씀 속에 말세에 성령님이 임하는데, 성령님이 임하면 무슨 현상이 나타나느냐 한국 교회는 성령님에 대해서 오해가 너무 많습니다. "방언을 못하는 사람은 성령님을 못받은 사람이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고 "성령님을 받으면 특별한 감정 체험을 한다."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것도 일리는 잇는 말씀입니다만 성령님받는 근본적인 변화는 뭡니까 성령님이 우리에게 임하므로써 우리가 변하게 되는 본질적인 변화는 뭡니까 오늘 본문 말씀입니다. 성령님이 임하면 "너희들 자녀들은 예언한다."고 했습니다. 성령님이 임하면 "젊은이들은 환상을 본다."고 그랬어요. 비전이 있다고 했어요. 꿈을 꾼다고 그랬습니다. 예언자가 뭡니까 성령님을 받으면 예언자가 된다고 그랬는데 성경에서 말하는 예언자는 백성들에게 길이 없을 때에 길을 말해 주는 것이 예언자라고 했습니다. 백성들이 빈곤과 절망 속에서 길을 찾지 못하고 이리 갈까 저리 갈까 백성들이 헤메이고 방황할 때에 길을 말해 주는 그 능력이 예언자의 능력이라고 말했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환상이 뭡니까 성경에 환상이, 비전이 없으면 나라가 망한다고 했습니다. 성령님을 받으면 젊은 사람들이 비전을 본다고 했는데, 성경에서 말하는 비전은 백성들이 절망할 때에 역사가 벽에 부딪혀서 노동자나 농민이나 나라가 절망에 부딪힐 때에, 희망의 깃발을 올리는 것이 성령님받은 사람의 비전이라 그랬습니다. 여러분이 이 세상에 살면서 내 자신만이 잘 먹고 출세하고 그렇게 초라한 인생으로 타락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내 개인이 잘 살고 출세하는 그러한 불행한 지식인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의 케리그마, 진리의 사람이 되어서, 성령님의 능력 속에서, 이 시대와 백성들에게 길을 열어 주는 희망을 말할 수 있는 참된 환상을 보는 사람, 참 예언의 사람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그렇게 살기를 결단하는 사람, 내 개인의 일신을 위한 출세가 아니라 불쌍한 백성들, 길없는 백성들, 젊아 속에 있는 백성들을 위해서 내가 살겠다는 그 꿈을 꾸는 사람, 그 꿈을 꾸는 사람을 오늘 하나님께서는 찾고 계십니다. 여러분 중에서 그렇게 꿈을 꾸면서 참으로 인생을 보람있게, 값있게 살 수 있는 귀한 인재들로 자라길 바랍니다.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29,555 건 - 283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