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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가구는 마음으로 (신6:4-9잠22:1-6)

본문

오늘은 5월 5일 어린이 날이고 교회적으로는 어린이 주일입니다 본래 이 어린이 주일은 지금부터 140년전, 1856년 미국 매사추세츠주시에 있는 제 1 유니버설 교회의 G. H. 레오날드 목사님에 의해서 시작된 것입니다. 레오날드 목사님은 어린이들의 믿음을 굳게 하기 위하여 그 부모가 어린이를 여호와 하나님께 드리는 뜻으로 특별히 예배를 드리곤 했는데 이것 이 오늘에 악서는 전 세계적으로 지키는 어린이 주일이 된 것입니다. 본래는 6월 둘째 주일을 꽃 주일로 지켰는데 우리 나라 교회에서는 5월 5일 어린이날과 비슷한 날짜에 지키기 위해서 5월 첫주일을 어린 이 주일로 지키는 것입니다. 오늘 어린이 주일을 맞이하여 우리 가정에서 자라는 어린이들을 어떻게 양육해야 할까 하는 것을 생각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 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1957년에 어린이 헌장이 제정 반포되었습니다. 그 내용을 다 말씀드릴 수는 없고 몇 가지 내용을 보면 이런 것들이 있습니다. '모든 어린이는 그 가정에서 권리를 누려야 한다.' '어린이는 기정과 사회에서 참된 애정으로 교육시켜야 한다.' 어린이에게 마음껏 놀고 공부할 수 있는 시설과 환경을 마련해 주 어야 한다. "어린이는 공부나 일이 몸과 마음에 짐이 되지 않아야 한다." 이 어린이 헌장은 9조로 되었는데 사실 이 헌장의 원리는 예수님 말씀의 정신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어린이가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 라 천국에 있는 사람들이 다 이와 같으니라' '누구든지 나를 믿는 소자 중에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나으리라' 하셨 습니다. 이 얼마나 엄청난 말씀으로 어린이의 권리를 옹호해 주셨습니 까
그러므로 어린이 주일은 엄격히 말하면 어린이의 명절도 되지만 사실은 어른된 사람들이 경고를 받는 날이기도 합니다. 지혜자 솔로몬은 하나님의 감동하심을 받아 인생의 진리를 이렇게 교훈했습니다.
잠언 22장 6절 말씀에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 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했습니다. 이 말씀은 수많은 어린이를 키워본 교육자나 가정의 부모님들에 의해서 확 증된 실제적인 지식입니다. 우리말 성경에는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고 되어 있는데 영어 번역에서는 좀 다른 말로 표현되었습니다. 'Train up' 이란 말을 썼는데 이 말은 '가르치라는 말보다는 '길들이라는 뜻이 있는 말 입니다. 그러니까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길들이라는 뜻이 됩니다. 사실 사람을 길들인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옛날이나 오늘이나 어린이를 어떻게 양육하느냐 하는 것은 모든 부모 의 당면한 문제입니다. 꽃과 같이 아름다운 어린이를 어떻게 하면 꽃 과 같이 그 마음도 인격도 아름답게 키울 수가 있습니까 대개 사람을 생각할 때 육신과 정신과 영흔으로 나누어 생각합니다. 자녀를 건강하게 자라게 하고 정신을 건전하게 양육시키고 영혼이 바로 성장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이것이 오늘 우리 믿는 부모의 당면한 문제입니다. 믿지 않는 부모들은 아이들이 건강한 몸으 로 자라고 지혜가 있어서 학교에 다니면서 좋은 성적으로 공부하면 그 것으로 만족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 믿는 부모는 그것만 가지고는 안됩니다 물론 몸도 건강해야 하겠고 공부도 잘 하기 위하여 부모된 우리가 여러 가지 방면으로 후원해야겠지만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우리 몸의 주인이 되는 영혼이 바로 성장하기 위하여 여간 힘쓰지 않으면 안되겠 습니다. 그래서 옛날 이스라엘 사람들은 아이가 세상에 태어나기 전부터 여러 가지로 조심한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우리 동양에는 소위 태교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은 퍽 의미 있는 일입니다. 아이가 몸 속에 있을 때부터 밖으로 나오지는 않았지만 어머니가 생각하는 것, 마음먹는 것, 보는 것등 모든 태도 하나하나가 몸 안에 있는 어린아이의 인 격성장에 어릴 때부터 영향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아이가 세상에 태어나기 전부터 그 어머니에게 받는 영향은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 로 큰 것입니다. 그리고 어린애가 세상에 나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오늘 주신 말씀 신명기 6장 4절 이하를 보세요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 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할지니라" 하나님이 그의 택한 백성 이스라엘 부모들을 향하여 이 말씀을 하 신 까닭이 어디에 있습니까 영적으로나 육적으로 건전한 부모에게서 라야 건전한 자녀가 자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선 건전한 자녀를 가지려면 그 부모가 먼저 경컨한 아버지, 경건한 어머니가 되 어야 합니다. 이와 같은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아마 구약 성경에서 가장 모범적인 어머니를 꼽으라면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를 말할 수밖에 없으리라고 생각합니다. 한나가 그 아들 사 무엘을 성막에 데리고 와서 제사장 엘리에게 맡기면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이 아이를 위하여 내가 기도하였더니 여호와께서 나의 구하여 기도한 바를 허락하신지라
그러므로 나는 그를 여호와께 드리되 그의 평 생을 여호와께 드리나이다' 이렇게 말하옜습니다. 기도로써 받은 아이의 평생을 온전히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아이를 올바로 키우려면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 꼭 필요합니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도 결레의 날이 다할 때에 아기 예수를 성전에 데리고 가서 하나님께 바친 기록을 누가복음 2장에서 읽을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교회에서 유아 세례를 베푸는 것도 이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린애들에게는 이성이 있어서 자기의 판단으로 신앙을 고 백하는 것이 아닙니다. 순전히 부모의 믿음에 의해서 이 어린애를 하나님의 주신 선물로 믿고 하나님께 바치고 하나님의 뜻대로 말씀 따라서 양육하고 위빼서 기도하고 거룩한 생활의 본을 보여서 나중에 어린 애가 자라서 자기 자신이 신앙을 고백할 때까지 책임지고 돌봐주겠다는 서약 밑에서 유아 세례를 베푸는 것 아닙니까
그러므로 유아 세례 를 받은 어린아이의 부모님으로 그 신앙적인 책임이 얼마나 큰지 모릅니다.
모든 자녀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기업인데 더구나 다른 모든 기업 가운데도 가장 귀한 기업이요, 우리 부모된 사람은 그 청지기인 데 하나님께서 이떻게 귀하게 주신 자녀를 온전히 하니님께 다시 바쳐 서 내가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이 아이를 하니님의 뜻대로 키우는 것이 모든 믿음 있는 부모님들의 의무인 것입니다. 여기 어떤 아버지가 사업을 잘해서 좋은 집을 짓고 어린아이에게 모든 편의를 보아주는 것이 얼마나 좋은 일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책임이 거기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한 걸음 더 나아 가서 우리 그리스도인 가정에서는 아버지가 아이를 하나님의 뜻대로 키워서 하니님의 자녀가 되게 하는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 어머니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머니가 집안살림 잘하고 어린애들 깨 끗하게 옷 입히고, 영양가를 생각해서 골고루 음식 먹이고 이런 것 잘 하는 것이 얼마나 귀한지 모릅니다. 그러나 어머니의 책임이 거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귀한 어린이를 믿음의 소유자로 만들어 장차 교회를 짊어지고 나가며 그 가정에서 믿음의 유산을 이을 만한 경건한 자녀로 기르는 것이 믿음 있는 어머니의 책임입니다. 부모로서 아무리 다른 것 다 잘했다고 해도 믿음으로 양육시키는 일에 실패했다고 하면 사실 그리스도인 부모로서는 제일 큰 실패인 것 을 기억해야만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에베소 교회 성도들에게 편지하면서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고했습니다. 성경을 자세히 읽어보세요 너희 어린 아이들을 사랑하라' 한 곳이 별로 없습니다.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왜요 사랑은 하지 말라고 해도 사랑합니다. 부부간의 서로 사랑하라' 성경의 에베소서 5장에 있습니다. 자녀를 사랑하라'하지 않았습니다.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노덥게 하지만 말라'고 했습니다. 구약 성경 사무엘하에 보면 다윗의 셋째 아들 압살롬에 대한 이야 기가 나옵니다. 압살롬은 어릴 때부터 부모의 교훈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부모에게 반항하는, 아무 생각도 없는 사람 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그 부하들에게 '나를 보고 소년 압살롬을 너그럽게 대접해다오.' 하고 특별히 부탁할 정도가 되 었습니다. 여러분,부모가 다른 책임 다 했어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시키지못하면 그것은 실패입니다. 부모는 자녀에게 존경의 대상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어떻게 어린이를 믿음으로 잘 길들일 수 있습니까 우선 믿음으로 잘 자랄 수 있게 좋은 분위기를 만들어 줄 책임이 부모에게 있습니다. 여러분, 오해하지 마세요 좋은 분위기라는 말은 좋은 집, 비싼 가 구 좋은 옷, 기름진 음식, 넉넉한 용돈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가정의 믿음의 분위기가 좋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꽃이 아름답게 자라서 활짝 피려면 충분한 햇및이 잘 쪼여야 되고, 통풍이 잘 되고, 땅이 기름지고, 적당한 수분이 필요합니다.
지난 주초에 온양교회 창럽 50주년 기념 성회가 있어서 다녀왔습니다. 그 교회 권사님 한 분이 예배당 출입구에 좋은 화분을 하나 기증 하시고 계속 정성으로 돌보시는 것을 보고 감동을 받았습니다. 8o이 되신 권사님이신데 매일 새벽 기도회에 나오셨다가 꽃나무 잎을 일일 이 닦아주고. 쌀 은 물을 화분에 주고. 수돗물은 좋지 않다고 생수를 길어다 주시곤 하는데 그 화분이 그렇게 아름답고 싱싱하게 자라서 예 배당을 출입하는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는 오늘 말씀의 제목을 거기에서 얻었습니다. '꽃 가꾸는 마음으로' 정성과 사랑을 주면 꽃나무가 그렇게 잘 자랍니다. 미국에서 어린이들을 조사했는데, 가장 엄마에게 바라는 소원이 뭐냐고 했더니 용돈도 아니고, 옷도 아니고 엄마가 내가 학교 갔다 오는 시간에 집에서 자기를 맞아 주는 것, 이것 이상 좋은 게 없다고 그럽니다. 여러분, 잘 들으세요 아무리 바빠도 아이들이 학교갔다 올 시 간에는 집 지키세요 우리 교회에서는 아이들 학교 갔다 을 시간에는 교회 행사를 절대 안합니다. 교회 간다고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을 시 간에 집 비우고 나가는 엄마는 딴 일 하러 간겁니다. 가정을 꼭 지켜 야 합니다. 우리 어른들도 그렇습니다. 아내가 있는 데 들어가는 것과 없는 데 혼자 들어가는 것은 아주 다릅니다. 어떤 때에는 나가고 없습니다. 그만큼 엄마가 가정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륨니다. 관심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어린이 주일을 당해서 우리 가정의 믿음의 분위기를 한번 살펴보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가정에서 자라나는 자녀 들이 신앙으로 자랄 수 있는 믿음의 분위기가 되어 있습니까 따뜻한 봄날씨처럼 잎이 자라고 꽃이 필 수 있는 포근한 분위기의 가정입니 까 아니면 겨울 날씨 같아 얼어붙을 수밖에 없는 분위기입니까 사랑이 넘치고 기쁨이 가득하고 평화스러운 가정의 분위기에서라야 어린이의 영혼이 바로 자랄 수가 있습니다. 심리학자의 말에 의하면 대 개의 문제아동들이 그 부모가 불화한 가운데서 생긴다고 합니다. 사실 부모가 늘 다투면 어린아이의 마음 속에 부모라도 때리고 싶 은 층동이 일어난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러지 못하고 꽉 눌러 두었다 가 학교에 가서 조금만 눈에 거슬리는 것이 보이면 사람을 치고, 의자 를 들어엎고, 유리창을 깬다고 합니다. 좋은 분위기 안에서라야 이 자라나는 싹들이 잘 자라서 빨갛게 혹 은 노랗게 아름다운 꽃을 피울 것입니다 이처럼 가정의 분위기가 어 린이를 믿음으로 키우는데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되겠습니다, 가정 뿐만 아닙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의 좋은 분위기는어린 심령을 바르고 아름답게 성장할 수 있도록 합니다. 반면에 교회 의 분위기가 나쁘면 그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의 심령이 바로 성장하지 못하고 아름답게 꽃을 피울 수가 없습니다. 분위기가 이떻게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아름다운 사랑의 분위기를 상하 지 않게 하기 위해 서로가 조심해야만 합니다. 나 하나가 생각 없이 쏟아 놓은 말이 상대방의 마음 속에 깊은 상처를 안겨 주고 교회의 분위기를 해치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로 따뜻하고 아름다운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서 모두가 힘써야 합니다. 제가 어릴 때 자라난 교회를 생각해 보면 참 분위기가 그렇게 좋았 었던 기억이 납니다.
교회 안에서 어른들이 서로 부를 때도 형님, 아우님, 누님, 오라버님, 서로 존경하고 위해 주는 따뜻했던 그 분위기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가정적인 인정이 통하는 분위기가 그껍습니다. 우리는 어린이들에게 서로 그리스도안에서 형제됨을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서로가 악의 없이 동정과 이해의 생활을 할 수 있도록 길들 여져야 합니다. 이렇게 길들여진 친절과 예의, 이해와 동정, 그리고 서로 돕는 생활은 남에게 유익을 주는 것은 물론 자기 자신에게도 행복 한 가정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부모 없는 어린애들은 특별히 수용하고 돌보는 소위 고아원이 있지않습니까 그 애들은 먹을 것도 넉넉하고 좋은 옷도 입고 공부하고 싶으면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불쌍합니까 부모의 사랑 올 받아 보지 못해서입니다. 부모 사랑을 받아 보지 못하고 자란 사람 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아무리 설명해도 잘 모른다고 합니다. 그렇게 생각할 때 부모님의 사랑을 받으면서 자라는 어린이는 얼마나 행복한 지 모릅니다. 한 걸음 나아가서 어린이를 바로 키우기 위해서 부모는 자녀에게 좋은 본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어린이는 귀로 듣고 보는 데 매우 민감합니다. 부모의 언어와 행동은 어린이의 심령의 거울에 깊이 새겨집니다. 부모가 좋지 않은 말을 쓰면서 아이들이 좋은 말 쓰기를 기대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초등 학 교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면 어린애들과 같이 지내보면 그 어린애 부모 가 무엇을 하시는지 그 직업을 알 수 있을 정도라고 합니다. 어린아이는 자연히 부모를 따라 하기 마련입니다. 쓸데없이 외출 자주 하는 어머니가 아이들더러 나가 놀지 말고 집 에서 열심히 공부하라고 한다고 해서 어머니의 말에 권위가 있올 수가 없습니다. 이처럼 부모가 어린이 앞에서 하는 일, 하는 말이 모두가 어린 자녀의 도덕 생활의 장성에 있어서 출발 신호가 됩니다, 부모가 어린아이에게 의와 불의, 선과 악을 말로 가르치려 해도 어린아이들은 그 부모의 언행과 일상생활에서 영향을 받고 부모의 하는 행동은 모두가 옳은 것이라는 어린 시절부터의 생각 때문에 부모는 어린 자녀의 장래 인격의 표본이 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대로 디모데 같은 사람은 본래 그 어머니와 외조 모의 진실한 믿음을 본받아서 어렸을 때부터 성경을 배웠고 그 인격을 본받아 귀한 사람이 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편지하면서 의미 깊은 말씀을 한 마디 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1장 1절에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 사도 바울은 무슨 일을 하든지 주 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하여 주님의 뜻을 분별하며 주님을 닮아 가는 생활을 하려고 애썼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닮기 위해 힘쓰는 이것을 너희도 좀 닮으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닮으려고 애 쓴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부모로서 온전한 사람이 되었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러나 적어도 그리스도를 닮아 보려고 애쓰는 일만은 있어야 할 것 아니겠습니까 바로 우리의 자녀들이 그것을 민감하게 보고 있습니다. 여러분,과연 우리 가정에서 자라나는 어린이들이 꼭 우리 인격을 본받고 우리를 닮아도 아무런 손상이 없습니까 과연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리스도를 본받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하고 있습니까 어느 부모나 자녀가 잘되고 좋은 사람되기를 원하는 것은 똑같을 것입니다. 그러나 좋은 사람 되게 하기 위하여 꼭 필요한 것은 부모의 모범입니다. 어느 가정에서는 부모 생각에 자기는 교회에 다니지 않지만 어린애들은 교회에 다니는 것이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애들을 교회에 잘 보냈습니다. 교회에 가서 좋은 말씀 듣고 흘륭한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기대에서였습니다.
그런데 그 애들이 10대 소년에 접어들면서 교회에 나가지 않게 되 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애들에게 야단켰습니다. '얘들아, 너희는 요새 왜 교회에 나가지 않니 전에는 그렇게 잘 다니더니.' 이때 큰 애가 어버지에게 대답하는 말이 '아버지 우리가 철 없을 때는 아버지가 나가라고 교회에까지 데려다 주었으니까 마지못 해 다녔지요 이제는 철이 좀 들어가요 아버지가 필요하지 않게 생각 하는 교회를 나가서 무엇하겠어요'라고 대답하더랍니다. 여러분, 부모 된 우리는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자녀에게 본이 된다는 사실을 꼭 기억하세요 자녀는 대개의 경우 부모가 하는 대로 따 라갑니다.
이런 풍자적인 이야기를 여러분께서 기억하시리라 믿습니다. 여러 새끼를 기르는 어미 게가 그 새끼들이 나와 노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 았습니다.
그런데 다른 짐승들은 눈이 앞에 붙었으니 앞으로 가는데 자기 새끼들만은 옆으로 기어다닌단 말입니다. 속이 상해서 한번은 어 미 게가 새끼 게들을 다 불러 모아 놓고 감동될 정도로 일장의 연설을 했습니다. 옆으로 기어가지 말고 앞으로 정정당당하게 걸어가라고. 그리고 연설이 다 끝난 다음 어미 게가 호령을 치면서 앞으로 가!' 했 더니 한 마리의 예외도 없이 모든 새끼 게가 옆으로 벌렁벌렁 기어갔 습니다. 속이 상한 어미 게는 옆으로 기어가는 새끼 게들을 책망했습니다.' 얘들아, 너희는 내 말을 그렇게도 못 알아듣느냐 내 마음을 어 쩌면 그렇게 이해하지 못하느냐 제발 옆으로 기어다니지 말고 좀 버 젓하게 앞으로 걸어가라구.' 그랬더니 한 마리의 새끼 게가 아주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어미 게 에게 대들었습니다. 엄마, 우리더러만 그러지 말고 엄마가 한번 시범을 보이세요.' 그래서 어미 게는 새끼 게의 말대로 앞으로 두어 발자국 걸으면서 ' 이렇게 걷는 거야.' 했습니다.
그런데 어디선가 이상한 소리가 나니 까 앞으로 발걸음을 옮겨 놓던 이 어미 게는 어느샌가 벌렁벌렁 기어 서 구멍으로 숨어 버렸다고 합니다. 이 모습을 보고 있던 새끼 게들은 깔깔대며 웃고 어미 게는 다시 새끼 게들더러 앞으로 의젓하게 걸어가 라는 말을 하지 못했다고 합니다:좋은 자녀 되게 하기 위해 부모 된 우리가 좋은 본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자녀를 훈계해야 합니다.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훈계라는 말은 좋은 말이 아닙니다. 듣기 싫은 말입니다.
'계'는 때리는 걸 말합니다. 징계입니다 잠언 23장 13,14절 말씀을 보세요 '아이를 훈제치 아니치 말라 채찍으로 그를 때릴지라도 죽지 아니 하리라 그를 채찍으로 때리면 그 영흔을 음부에서 구원하리라' 어떤 부모는 아이를 때리면 뼈가 부러질까봐 때리지 않는비 여러분 잘 들으세요 뼈부러질 정도로 아이를 때리는 부모는 아무도 없습니다. 성경말씀이 맞습니다.때려도 죽지 않습니다. 잘못하면 때려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부모입니다.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는 때립니다. 안때 리면 사생자라 그럽니다. 우리 한국 어린아이를 키우는 것과 미국 어린아이를 키우는 것은 아주 다릅니다. 미국 어린아이들은 잘못하면 무조건 때리는데 무정할 정도로 때럽니다. '어떻게 저렇게까지 때릴 수 있을까' 할 정도로 그렇게 때겁니다. 아이가 꼼짝을 못합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심리학에서는 어린이가 의식이 생길 때까지는 동물하고 같다고 함니다. 다른 동물처럼 본능으로 살기 때문에 말 가지고는 안돼고 때려 야 합니다. 그래서 잘못한 일 있을 때 때리면 다음에 잘못할 일 있으 면 '아, 내가 이걸 하면 매맞지.' 하며 안한다고 합니다. 이해해서 말하고 이해가 될 때에서야 때리지 않고 말로 이해를 시 킨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 한국사람은 반대입니다. 아이때는 아프고 어리고 말도 못하기 때문에 그냥 놔둡니다, 우리 교회는 자모실이 따로 있습니다만 다른 교회에서는 예배시간 이 아이들이 강단에 올라와도 그냥 가만히 있습니다. 미국에 있는 한국사람들이 고생하는 것 중 하나가 처음에는 자기 교회가 없기 때문에 예배당을 빌려쓰는데 미국사람들이 한국사람에게 교회 빌려주는 것을 질색을 합니다. 미국 아이들은 10년을 있어도 교회가 더럽혀지지 않게 교회를 깨끗이 사용합니다. 만지면 호되게 혼나 니까 만질 생각도 안합니다. 그러나 한국아이들은 내버려두니까 l년 빌려주면 예배당이 아주 더러워집니다. 다시는 한국 사람들에게 교회 를 빌려주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교육방법이 달라서 그럽니다. 우리는 가만히 있다가 큰 다음에 때립니다. 그러면 큰 아이가 '왜 때려!' 그럽니다. 교육이 안됩니다. 큰 다음에는 이야기로 해야 합니다. 이해를 시켜야 합니다.그냥 때리게 되면 반항하게 됩니다. 어릴 때 훈계해야 합니다. 다 큰 다음에 바로 잡아지질 않습니다. 연할 때 바로 세우는 것입니다. 여러분 아이를 키우는 데 부모의 힘만 가지고는 부족합니다. 부모와아이, 아이와 교회, 그리고 아이와 하니님의 긴밀한 협동이 필요합니다. 부모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자녀를 위해 기도하고 좋은 모범을 보 이며 말씀을 가르쳐 주도록 힘써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바로 자라나 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십니다.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 나지 아니하리라'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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