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 있으라 (마24:29-51)
본문
무엇보다 먼저 우리들은 주님께서 하신 말씀을 믿어야합니다. 34-35절 말씀에 (마24:34)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이루리라 (마24:35)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하나님은 거짓말하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분은 신실하실 뿐 아니라 또한 그분은 전능하시고 전지하시기 때문에 당신이 하신 말씀을 다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말씀으로 지으신 천지는 아무리 견고하게 보여도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다 없어질 것을 믿어야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없어지지 않고 다 이루어질 것을 믿어야합니다.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을 더 확실한 것이라 하여 믿고 더 의지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보이는 것들은 보이지 않는 것들로 인하여 이루어 진 것이요, 보이지 않는 것이 우리 눈에 보이는 것 더 크고 중한 것입니다. 또 눈에 보이는 것들은 없어집니다. 이것들이 눈에 보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눈에 안보이는 진리 보다도 과학적이라고 더 신뢰하지만 인간 과학이라는 것도 하나님께서 만드신 것이요, 그러나 이는 곧 없어질 것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이 더 영원하고 귀한 것들입니다. 이 세상의 끝날에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마24:29) 그 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세상 사람들이 의지하고 바라는 것들이 이 세상에 있지만, 이 모든 것들이 주님 재림하실 때에는 다 끝나는 것임을 믿어야합니다. 왜 이 사실을 말씀합니까 눈에 보이는 것을 바라보면서 믿음 생활하지 말고, 영원히 없어지지 않을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영원하신 약속만을 바라보고 신앙생활을 하여야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이 세상이 흔들릴 때라도 신앙이 흔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의 주변 환경이 흔들려도 흔들리지 않고 죽음이 닥쳐와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은 천지는 없어지나 없어지지 않을 하나님의 말씀을 붙든 믿음입니다. 이 마지막 때를 말씀하는 종말론의 주제는 언제나 준비하라는 것입니다. 마지막이 있다는 말씀으로 우리들로 하여금 잘못된 이단들 같이 결코 세상을 무의미하게 또 무책임하게 살라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마지막이 있기 때문에 그 마지막이 영원한 종말이 아니라, 단지 이 보이는 세상의 마지막일 뿐이요, 영원한 내세로 연결되는 삶이기 때문에, 긴장을 늦추지 않고 살아야하고, 무의미하게 허무한 삶을 살지 말고 잠간 있다가 떠날 세상 만을 생각하고 살지말고, 오늘에 영원을 준비하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대학입시가 이제 100일도 안남았다고 합니다.
어떤 학생은 대학입시에 대한 정보를 아는 것에 밝은 학생이 있습니다. 어떤 대학은 내신성적, 본 고사를 어떻게 치르고, 어떤 대학에 어떤 과가 있고, 언제 원서내고 언제 시험치고 하는 일에는 환합니다. 이 정보를 아는 것도 필요할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이 학생의 관심이 거기에만 있고,정작 해야할 공부는 하지 않는다면, 또 그 시험친다는 사실로 인하여 흥분되고 당황되어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면 시험은 실패되고 말것입니다. 시험에 대한 합격과 불합격은 것은 준비를 어떻게 얼마나 했는가에 있는 것이지 시험 날짜를 알고, 수험에 대한 정보를 아는 것으로 대학입시에 성공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끊임없이 준비를 한 학생이면 언제 시험을 치른다고 해도 당황함이나. 실수함이 없을 것입니다. 대학입시는 시험치르는 날짜를 알려 주기도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 날짜까지도 알게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들의 구원이루는 신앙입시는 본 고사가 없습니다. 우리들의 평소의 삶인 내신성적으로 심판을 받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주님을 얼마든지 영접할 수도 있고 배척할 수도 있는 때입니다. 초림에 오신 주님은 사람의 몸을 입고 종의 형체를 입으셨습니다. 말 구유에 까지 낮아지심은 누구라도 찾아가서 경배하며 환영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로 나아올 수 있는 문이 오늘에는 활짝 열려있습니다. 이 시간에 아직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지 못하신 분은 문이 열려 있을 이 때에 머뭇거리지 마시고 당신의 구주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언제까지 이 문이 열려있는 것은 아닙니다. 주님 다시 오시는 그날, 재림의 때에는 초림의 주님의 모습이 아닙니다. 재림의 주는 이제 의인을 찾아 천국에 들이시고 죄인을 심판하시려고 오시는 주님입니다. 죄인들은 그때에 (마24:30)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그러나 (마24:31) 저가 큰 나팔 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택하신 자들을 마지막 때가 되면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불러 모으시는 일을 하십니다. 마지막 때가 되면 강권하여 천국을 채우는 일을 하십니다. 어느 곳에 있든지 당신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을 불러서 구원하십니다.
이방에게까지 구원이 전파된 이후에 오늘 이 복음은 우리에게 까지 전파되었습니다. 강권적으로 역사하시지 않았다면 우리가 어떻게 이 복음을 받아들릴 수가 있었겠습니까 복음이 복음이 땅 끝까지 전파되면 주님오신다고 했습니다. 여호와께서 이 일을 하시기 위해서 지금도 강권적으로 열심으로 일하십니다. 우리가 볼 때에 저 사람이 예수 믿어서 구원얻을까 하는 사람들을 하나님께서는 기어이 그를 회개시키셔서 하나님나라를 채우시는 일을 합니다. (마24:32)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마24:33)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 주님께서는 무화과 나무의 비유를 배우라고 했습니다. 재림때에 대한 증거 중에 제일 확실하고 고유한 재림의 증거 중 하나가 육체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입니다. 이들은 주후 70년에 주님이 예언하신대로 완전히 멸망했습니다. 이런 이스라엘이 회복될 것이라는 예언은 우리들이 보고 있습니다. 이들이 1897년 시온운동을 일으키고, 1948년에 이스라엘 국가가 독립을 합니다. 이들 이스라엘에게 과연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는 일이 시작된 것입니다. 어떻게 1900년이 넘도록 주권과 영토를 잃어버린 이스라엘나라가 해방되고 나라가 세워질 수가 있습니까 이것을 보면 예수님의 재림이 있다는 것과 그 시간이 이제 무척 가까와져 있다는 사실을 알게됩니다. (마24:34)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이루리라 (마24:35)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습니다. 확실하게 이루어지는 말씀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마24:36) 그러나, 여전히 말씀하십니다.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재림의 때를 말씀하시면서 그 때가 노아의 때와 같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마24:37)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마24:38)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마24:39)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노아의 때의 죄악은 땅에 관영했습니다. 그러나 말세에 주님이 재림하실 때에는 그 죄악이 하늘에 관영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차고 기다리고 계신 것입니다. 노아의 때에 그들의 삶은 어떠했습니까 왜 하나님께서 그들을 홍수로 멸망 시켰습니까 우리나라에 어제 오늘 일어나는 홍수 재앙을 보면서도 우리들은 하나님의 진노를 두려워해야합니다. 그들의 죄악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범한 것입니다. 교회가 범한 것입니다. 그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의 아내를 삼았습니다. 본문에는 노아 때의 삶은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들은 이러하지 않습니까 인간이 육체가 되면 생각하는 것이나, 행동하는 것이 다 육신적인 것들입니다. 먹고 마시는 일, 물질 이것은 무시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최대의 고나심사요, 최대의 목적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그러면 짐승이나 인간이나 다를 바 없는 것입니다. 또한 시집가고 장가가는 것입니다. 육체의 향락, 쾌락 위주의 삶입니다. 이것이 없다면 살 재미가 없지 않느냐 하는 것이 세상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들은 그러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지막 때가 되면 하늘에 까지 그 죄악이 관영하다는 것은 교회에 까지 이것으로 이 죄악으로 가득찰 것이라는 것입니다. 기복주의, 세속주의, 향락주의 먹자주의, 이것이 다 멸망할 죄악들입니다. 영적으로 무감각하고 영적으로 잠들어 있는 우리의 심령상태는 아닙니까 세상에 세속에 관심이 있으면 그러합니다. (마24:40) 그 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마24:41) 두 여자가 매를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우리가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것은 불건전한 신비주의자들 같이 산 속에 모여서 재림을 기다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우리들은 재림의 준비를 하는 것이고, 우리들의 일하다가 죽음이 오면 주님 앞에 서는 갓 같이 주님이 오시면 주님을 맞이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에 밭에서 일하는 것, 세상에서 일하는 것, 매를 가는 것은 교회의 일을 하는 것인데, 이것을 하는 것도 중심이 다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두 사람이 직장을 같이 다니고 가정 생활을 하지만, 한 사람은 데려감을 당하고 한 사람은 주님께서 버리시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두 사람이 같이 부지런히 고회 생활, 봉사하고 충성을 하지만, 한 사람은 데려감을 당하고 한 사람은 버려 줌을 당합니다. 우리의 신앙의 중심이 이렇게 중요합니다. 한 사람은 주님 만날 준비로 거룩한 행실과 경건을 준비하는 삶으로 한 것이고, 한 사람은 세상살이하는 것도 신앙의 행위도 자신을 위해서 여전히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드는 이 중심으로 했다는 것입니다. 노아를 말씀하는 것은 노아는 하나남의 홍수 심판에 대한 음성을 듣고 방주 예비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노아도 자식낳고, 먹고 마시는 일 다 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만든 것은 방주였습니다. 오늘 우리가 다 노아가 만든 것 같은 나무로 산에서 방주를 만들라는 것 아닙니다. 우리들의 삶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때에 구원이 될 수 있는 것을 하나씩 둘씩 만든 것 그것만이 구원이 되는 것입니다. 만일에 하나님의 물 심판이 없었다면 노아만큼 어리석고 불쌍한 사람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노아는 홍수에서 모든 세상이 멸망을 받을 그 때에 자신이 평생을 드려 마련한 방주로 자신과 가정을 구원했습니다. 오늘 나와 내게 속한 모든 것들을 구원할 수 있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믿음 외에는 구원이 되는 것이 없습니다. 한 현실 한 현실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순종하는 것 이것 외에 멸망의 때에 구원 얻는 방주는 없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재림을 바라는 신앙에 대하여 말씀하기를 주님의 날이 임하기를 간절히 바라보면서 거룩한 행실과 경건을 준비하라고 했습니다.
42절에서 43절은부터의 말씀부터는 깨어있으라. 도적 같이 오시는 주님으로 맞이하지 않으려면 깨어 있어야한다는 것입니다. (마24:42)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마24:43)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너희도 아는 바니 만일 집주인이 도적이 어느 경점에 올 줄을 알았더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마24:44)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세대를 분별해야합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깨어 있지 않으면 우리의 모든 것이 다 도적맞게됩니다. 44절에는 예비하고 있으라고 했습니다. 또 45-맡은 일에 충성을 다할 것을 말씀합니다. 지혜를 가지고 맡은 식구들에게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주는 자에게 주인이 오시면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모든 것을 저에게 맡길 것입니다. (마24:45)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뇨 (마24:46) 주인이 올 때에 그 종의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 (마24:47)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그 모든 소유를 저에게 맡기리라 (마24:48) 만일 그 악한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 (마24:49) 동무들을 때리며 술친구들로 더불어 먹고 마시게 되면 (마24:50) 생각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간에 그 종의 주인이 이르러 (마24:51) 엄히 때리고 외식하는 자의 받는 율에 처하리니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나님이 주신 기회와 시간과 재물 건강, 생명을 가지고 맡은 일 곧 영혼 구원하는 일에 힘쓰지 않고,세상 술친구로 더불어 먹고 마시면 생각지 않는 날 알지 못하는 시간에 주인이 올 것인데 그 때에 엄히 띠릴 것이고, 외식하는 자의 받는 율법에 정죄를 받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충성하지 않는 자가 악하고 게으런 자요 이 자가 외식하는 자입니다. 어떻게 세상을 살아가야합니까 어디에서 충성을 하라는 말씀입니까 어떻게 보면 목회하는 사람들에게만 주시는 말씀같지만, 아닙니다. 내가 서 있는 어느 위치든지 그 곳에서 자기 맡은 일에서 빛과 소금의 직분을 감당하는 것이 바로 내가 맡은 형제에게 이웃에게 양식을 나눠주는 것임을 믿으셔야합니다. 내게 주신 현실을 떠나서 다른사람의 현실을 부러워하거나 초절된 신앙형태는 잘못된 것입니다.
오늘이라도 주님이 오시면 영광의 주로 환영하며 맞이할 것입니까 아니면 통곡하며 두려워 떨면서도망할 주님으로 맞이할 것입니까 이는 이 세상을 지나는 동안에 구원의 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느냐 믿지 않느냐에 따라 결정됩니다. 모든 것들이 주님 오시면 다 끝날 장망성과 같은 세상을 신뢰하고 소망하며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드는 일에만 관심가지고 멸망할 짐승같은 삶으로 살아갈 것입니까 아니면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한 말씀도 없어지지 않을 영원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의지하고 살겠습니까 믿는 사람으로 천국에 들어갈 자라도 세상만을 소망하며 살면 이 세상 불탈때에 그 모든 행위가 다 불탈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설 때에 벌거벗은 구원을 이루어 설 자도 있음을 성경이 말씀합니다. 오늘 우리들은 날마다의 삶에서 주님의 재림 준비를 할 수 있습니다. 어떤 현실이든지 주님오실 날을 사모하면서 거룩한 행실과 경건으로 살아갈수도 있고, 그저 보이는 형식과 외식적인 생활로 세상살이도 신아생활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주신 것을 가지고 주님께서 내게 맡겨주신 일에 충성을 다하여 주님이 오실 때에 잘했다 칭찬들을 사람도 있을 것이고, 오늘에 맡긴 일에는 관심없고 주신 것을 가지고 세상의 술친구들로 더불어 먹고 마시는 세상 중심으로 살아간다면 주님이 오실 때에 그 부끄러움과 그 황송함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세상에서도 실력을 갖출 때에 놀고 안일하고 나태한 삶을 살면 그의 밭에는 아무 거둘 것이 없고, 부끄러울 것 뿐인 것을 세뱍시간에도 증거했습니다. 충상합시다. 잠간지나가는 세상입니다. 머뭇 거릴 시간도 없습니다. 모든 것들이 다 드러나고 계산되는 때가 있습니다. 주님의 재림에 대한 말씀의 가장 중요한 교훈은 깨어서 준비하라는 것입니다. 무엇을 준비합니까 흰 천으로 옷을 해 입고 계룡산에서 기다려야합니까 아닙니다. 재림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세상의 어떤 사람들 보다 더 진실되고 더 거룩한 삶, 충성된 삶을 살아야햡니다. 오 주여! 어서 오시옵소서!
어떤 학생은 대학입시에 대한 정보를 아는 것에 밝은 학생이 있습니다. 어떤 대학은 내신성적, 본 고사를 어떻게 치르고, 어떤 대학에 어떤 과가 있고, 언제 원서내고 언제 시험치고 하는 일에는 환합니다. 이 정보를 아는 것도 필요할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이 학생의 관심이 거기에만 있고,정작 해야할 공부는 하지 않는다면, 또 그 시험친다는 사실로 인하여 흥분되고 당황되어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면 시험은 실패되고 말것입니다. 시험에 대한 합격과 불합격은 것은 준비를 어떻게 얼마나 했는가에 있는 것이지 시험 날짜를 알고, 수험에 대한 정보를 아는 것으로 대학입시에 성공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끊임없이 준비를 한 학생이면 언제 시험을 치른다고 해도 당황함이나. 실수함이 없을 것입니다. 대학입시는 시험치르는 날짜를 알려 주기도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 날짜까지도 알게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들의 구원이루는 신앙입시는 본 고사가 없습니다. 우리들의 평소의 삶인 내신성적으로 심판을 받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주님을 얼마든지 영접할 수도 있고 배척할 수도 있는 때입니다. 초림에 오신 주님은 사람의 몸을 입고 종의 형체를 입으셨습니다. 말 구유에 까지 낮아지심은 누구라도 찾아가서 경배하며 환영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로 나아올 수 있는 문이 오늘에는 활짝 열려있습니다. 이 시간에 아직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지 못하신 분은 문이 열려 있을 이 때에 머뭇거리지 마시고 당신의 구주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언제까지 이 문이 열려있는 것은 아닙니다. 주님 다시 오시는 그날, 재림의 때에는 초림의 주님의 모습이 아닙니다. 재림의 주는 이제 의인을 찾아 천국에 들이시고 죄인을 심판하시려고 오시는 주님입니다. 죄인들은 그때에 (마24:30)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그러나 (마24:31) 저가 큰 나팔 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택하신 자들을 마지막 때가 되면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불러 모으시는 일을 하십니다. 마지막 때가 되면 강권하여 천국을 채우는 일을 하십니다. 어느 곳에 있든지 당신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을 불러서 구원하십니다.
이방에게까지 구원이 전파된 이후에 오늘 이 복음은 우리에게 까지 전파되었습니다. 강권적으로 역사하시지 않았다면 우리가 어떻게 이 복음을 받아들릴 수가 있었겠습니까 복음이 복음이 땅 끝까지 전파되면 주님오신다고 했습니다. 여호와께서 이 일을 하시기 위해서 지금도 강권적으로 열심으로 일하십니다. 우리가 볼 때에 저 사람이 예수 믿어서 구원얻을까 하는 사람들을 하나님께서는 기어이 그를 회개시키셔서 하나님나라를 채우시는 일을 합니다. (마24:32)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마24:33)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 주님께서는 무화과 나무의 비유를 배우라고 했습니다. 재림때에 대한 증거 중에 제일 확실하고 고유한 재림의 증거 중 하나가 육체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입니다. 이들은 주후 70년에 주님이 예언하신대로 완전히 멸망했습니다. 이런 이스라엘이 회복될 것이라는 예언은 우리들이 보고 있습니다. 이들이 1897년 시온운동을 일으키고, 1948년에 이스라엘 국가가 독립을 합니다. 이들 이스라엘에게 과연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는 일이 시작된 것입니다. 어떻게 1900년이 넘도록 주권과 영토를 잃어버린 이스라엘나라가 해방되고 나라가 세워질 수가 있습니까 이것을 보면 예수님의 재림이 있다는 것과 그 시간이 이제 무척 가까와져 있다는 사실을 알게됩니다. (마24:34)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이루리라 (마24:35)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습니다. 확실하게 이루어지는 말씀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마24:36) 그러나, 여전히 말씀하십니다.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재림의 때를 말씀하시면서 그 때가 노아의 때와 같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마24:37)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마24:38)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마24:39)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노아의 때의 죄악은 땅에 관영했습니다. 그러나 말세에 주님이 재림하실 때에는 그 죄악이 하늘에 관영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차고 기다리고 계신 것입니다. 노아의 때에 그들의 삶은 어떠했습니까 왜 하나님께서 그들을 홍수로 멸망 시켰습니까 우리나라에 어제 오늘 일어나는 홍수 재앙을 보면서도 우리들은 하나님의 진노를 두려워해야합니다. 그들의 죄악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범한 것입니다. 교회가 범한 것입니다. 그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의 아내를 삼았습니다. 본문에는 노아 때의 삶은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들은 이러하지 않습니까 인간이 육체가 되면 생각하는 것이나, 행동하는 것이 다 육신적인 것들입니다. 먹고 마시는 일, 물질 이것은 무시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최대의 고나심사요, 최대의 목적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그러면 짐승이나 인간이나 다를 바 없는 것입니다. 또한 시집가고 장가가는 것입니다. 육체의 향락, 쾌락 위주의 삶입니다. 이것이 없다면 살 재미가 없지 않느냐 하는 것이 세상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들은 그러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지막 때가 되면 하늘에 까지 그 죄악이 관영하다는 것은 교회에 까지 이것으로 이 죄악으로 가득찰 것이라는 것입니다. 기복주의, 세속주의, 향락주의 먹자주의, 이것이 다 멸망할 죄악들입니다. 영적으로 무감각하고 영적으로 잠들어 있는 우리의 심령상태는 아닙니까 세상에 세속에 관심이 있으면 그러합니다. (마24:40) 그 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마24:41) 두 여자가 매를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우리가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것은 불건전한 신비주의자들 같이 산 속에 모여서 재림을 기다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우리들은 재림의 준비를 하는 것이고, 우리들의 일하다가 죽음이 오면 주님 앞에 서는 갓 같이 주님이 오시면 주님을 맞이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에 밭에서 일하는 것, 세상에서 일하는 것, 매를 가는 것은 교회의 일을 하는 것인데, 이것을 하는 것도 중심이 다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두 사람이 직장을 같이 다니고 가정 생활을 하지만, 한 사람은 데려감을 당하고 한 사람은 주님께서 버리시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두 사람이 같이 부지런히 고회 생활, 봉사하고 충성을 하지만, 한 사람은 데려감을 당하고 한 사람은 버려 줌을 당합니다. 우리의 신앙의 중심이 이렇게 중요합니다. 한 사람은 주님 만날 준비로 거룩한 행실과 경건을 준비하는 삶으로 한 것이고, 한 사람은 세상살이하는 것도 신앙의 행위도 자신을 위해서 여전히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드는 이 중심으로 했다는 것입니다. 노아를 말씀하는 것은 노아는 하나남의 홍수 심판에 대한 음성을 듣고 방주 예비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노아도 자식낳고, 먹고 마시는 일 다 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만든 것은 방주였습니다. 오늘 우리가 다 노아가 만든 것 같은 나무로 산에서 방주를 만들라는 것 아닙니다. 우리들의 삶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때에 구원이 될 수 있는 것을 하나씩 둘씩 만든 것 그것만이 구원이 되는 것입니다. 만일에 하나님의 물 심판이 없었다면 노아만큼 어리석고 불쌍한 사람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노아는 홍수에서 모든 세상이 멸망을 받을 그 때에 자신이 평생을 드려 마련한 방주로 자신과 가정을 구원했습니다. 오늘 나와 내게 속한 모든 것들을 구원할 수 있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믿음 외에는 구원이 되는 것이 없습니다. 한 현실 한 현실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순종하는 것 이것 외에 멸망의 때에 구원 얻는 방주는 없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재림을 바라는 신앙에 대하여 말씀하기를 주님의 날이 임하기를 간절히 바라보면서 거룩한 행실과 경건을 준비하라고 했습니다.
42절에서 43절은부터의 말씀부터는 깨어있으라. 도적 같이 오시는 주님으로 맞이하지 않으려면 깨어 있어야한다는 것입니다. (마24:42)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마24:43)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너희도 아는 바니 만일 집주인이 도적이 어느 경점에 올 줄을 알았더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마24:44)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세대를 분별해야합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깨어 있지 않으면 우리의 모든 것이 다 도적맞게됩니다. 44절에는 예비하고 있으라고 했습니다. 또 45-맡은 일에 충성을 다할 것을 말씀합니다. 지혜를 가지고 맡은 식구들에게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주는 자에게 주인이 오시면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모든 것을 저에게 맡길 것입니다. (마24:45)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뇨 (마24:46) 주인이 올 때에 그 종의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 (마24:47)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그 모든 소유를 저에게 맡기리라 (마24:48) 만일 그 악한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 (마24:49) 동무들을 때리며 술친구들로 더불어 먹고 마시게 되면 (마24:50) 생각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간에 그 종의 주인이 이르러 (마24:51) 엄히 때리고 외식하는 자의 받는 율에 처하리니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나님이 주신 기회와 시간과 재물 건강, 생명을 가지고 맡은 일 곧 영혼 구원하는 일에 힘쓰지 않고,세상 술친구로 더불어 먹고 마시면 생각지 않는 날 알지 못하는 시간에 주인이 올 것인데 그 때에 엄히 띠릴 것이고, 외식하는 자의 받는 율법에 정죄를 받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충성하지 않는 자가 악하고 게으런 자요 이 자가 외식하는 자입니다. 어떻게 세상을 살아가야합니까 어디에서 충성을 하라는 말씀입니까 어떻게 보면 목회하는 사람들에게만 주시는 말씀같지만, 아닙니다. 내가 서 있는 어느 위치든지 그 곳에서 자기 맡은 일에서 빛과 소금의 직분을 감당하는 것이 바로 내가 맡은 형제에게 이웃에게 양식을 나눠주는 것임을 믿으셔야합니다. 내게 주신 현실을 떠나서 다른사람의 현실을 부러워하거나 초절된 신앙형태는 잘못된 것입니다.
오늘이라도 주님이 오시면 영광의 주로 환영하며 맞이할 것입니까 아니면 통곡하며 두려워 떨면서도망할 주님으로 맞이할 것입니까 이는 이 세상을 지나는 동안에 구원의 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느냐 믿지 않느냐에 따라 결정됩니다. 모든 것들이 주님 오시면 다 끝날 장망성과 같은 세상을 신뢰하고 소망하며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드는 일에만 관심가지고 멸망할 짐승같은 삶으로 살아갈 것입니까 아니면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한 말씀도 없어지지 않을 영원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의지하고 살겠습니까 믿는 사람으로 천국에 들어갈 자라도 세상만을 소망하며 살면 이 세상 불탈때에 그 모든 행위가 다 불탈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설 때에 벌거벗은 구원을 이루어 설 자도 있음을 성경이 말씀합니다. 오늘 우리들은 날마다의 삶에서 주님의 재림 준비를 할 수 있습니다. 어떤 현실이든지 주님오실 날을 사모하면서 거룩한 행실과 경건으로 살아갈수도 있고, 그저 보이는 형식과 외식적인 생활로 세상살이도 신아생활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주신 것을 가지고 주님께서 내게 맡겨주신 일에 충성을 다하여 주님이 오실 때에 잘했다 칭찬들을 사람도 있을 것이고, 오늘에 맡긴 일에는 관심없고 주신 것을 가지고 세상의 술친구들로 더불어 먹고 마시는 세상 중심으로 살아간다면 주님이 오실 때에 그 부끄러움과 그 황송함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세상에서도 실력을 갖출 때에 놀고 안일하고 나태한 삶을 살면 그의 밭에는 아무 거둘 것이 없고, 부끄러울 것 뿐인 것을 세뱍시간에도 증거했습니다. 충상합시다. 잠간지나가는 세상입니다. 머뭇 거릴 시간도 없습니다. 모든 것들이 다 드러나고 계산되는 때가 있습니다. 주님의 재림에 대한 말씀의 가장 중요한 교훈은 깨어서 준비하라는 것입니다. 무엇을 준비합니까 흰 천으로 옷을 해 입고 계룡산에서 기다려야합니까 아닙니다. 재림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세상의 어떤 사람들 보다 더 진실되고 더 거룩한 삶, 충성된 삶을 살아야햡니다. 오 주여! 어서 오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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