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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끗한 사람이 되려면 (눅11:3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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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간에 예배당을 정성껏 단장했습니다. 칠도 새롭게 하고 강대상과 창문쪽에 등도 추가로 설치했습니다. 우중충한 방화문으로 된 현관문을 열어젖히고 안쪽에다 알루미늄 샷시문을 덧대서 닫아 놓으니 전체적인 분위기가 확 달라졌습니다. 깨끗해지고 환해졌습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깨끗한 것을 좋아합니다. 깨끗한 것을 싫어할 사람은 한 명도 없습니다. 오늘은 깨끗케 하는 것에 대하여 예수님께서 하신 가르침을 생각해 보며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첫째로, 사람들은 겉을 깨끗이 하는 것을 중시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던 무리 가운데 한 바리새인이 있었습니다. 그는 예수님께 대하여 호감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에서 다른 동료 바리새인들과는 달랐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가까이하고자 하는 용기 있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것은 그분을 점심 식사에 초대하는 행동으로 표현되었습니다.
그런데 예기치 않던 일이 벌어졌습니다. 초대받은 손님이 결례를 한 것입니다. 그분은 손을 씻지 않으시고 식사 자리에 앉으신 것이었습니다. 집주인인 바리새인은 몹시 당황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종교적인 이유로 그것을 몹시 중시했기 때문입니다. “바리새인들과 모든 유대인들이 장로들의 유전을 지키어 손을 부지런히 씻지 않으면 먹지 아니하며, 또 시장에서 돌아와서는 물을 뿌려지 않으면 먹지 아니하며 그 외에도 여러 가지를 지키어 오는 것이 있으니 잔과 주발과 놋그릇을 씻음이러라. 이에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예수께 묻되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장로들의 유전을 준행치 아니하고 부정한 손으로 떡을 먹나이까”(막7:3-5) 이미 예수님은 사람들 사이에서 존경받는 랍비로 받아들여지고 있었습니다. 그런 사람이 이와 같이 경우에 어긋난 행동을 하기 때문에 그는 이상히 여기게 되었습니다. 보다 정확히 표현하면 못마땅하게 생각했고 속으로 그분의 행동을 비판하게 되었습니다. 이 바리새인만 식사 전에 손을 씻는 것을 중시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대부분도 그렇게 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화장실에서 볼 일 보고 나오면 손을 씻습니다. 작업을 하던 손 그대로 식탁에 앉지 않고 손을 씻습니다. 자녀들에게도 손을 씻고 오라고 말합니다. 웬만한 식당에서는 음식과 함께 손을 씻을 수 있게 물수건이 제공됩니다. 위생적인 이유 때문에 우리는 식사 전에 손을 씻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등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권장할 만한 습관입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자고난 후에는 반드시 세면이나 샤워를 합니다. 어느 누구도 부시시한 얼굴로 나돌아다니지 않습니다. 몸을 씻지 않는 것을 큰 부끄러움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바꿔 말하면 몸을 깨끗이 씻는 것을 중시한다는 말입니다. 손발이나 몸을 깨끗이 씻는 것이 바로 겉을 중시하는 행동입니다. 그릇을 깨끗이 씻는 것도 겉을 중시하는 행동입니다. 여인들이 화장을 열심히 하는 것도 겉을 중시하는 행동입니다. 우리가 옷을 자주 세탁하는 것도 겉을 중시하는 행동입니다. 더러운 옷이 아니라 깨끗한 옷을 입기 원하기 때문입니다. 매일마다 집안의 먼지를 털며 청소를 하는 것도 겉을 중시하는 행동입니다. 세련된 매너를 나타내려고 애쓰는 것도 겉을 중시하는 행동입니다. 봄철을 맞아 벽에 벽지를 새로 바르고 칠을 하는 것도 겉을 중시하는 행동입니다. 식목일을 맞아 산에 나무를 심는 것도 겉을 중시하는 행동입니다. 최근 들어 깨끗한 환경을 위해서 엄청난 투자를 하고 있는 것도 따지고 보면 겉을 중시하는 행동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위생적이거나 종교적인 이유로 겉을 깨끗이 하는 것을 중시합니다.
둘째로, 사람들은 속을 깨끗이 하는 것을 그다지 중시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너무 시장하신 나머지 손 씻는 것을 생략하신 것은 아닙니다. 그분이 평상시 게을러서 손을 씻지 않는 습관이 든 것도 아닙니다. 그분께서는 자신의 말 한 마디 행동 하나가 어떠한 결과를 가져올지 잘 알고 계셨습니다. 이 경우 그분 자신이 손을 씻지 않으면 어떤 반응이 나타나리라는 것도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은 의도적으로 그 관습을 깨뜨리셨습니다. 겉만 중시하는 그들의 생각을 바로잡아 주시고자 하신 것입니다.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바리새인은 지금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나 너희 속인즉 탐욕과 악독이 가득하도다”(39절) 겉은 깨끗하지만 속은 깨끗하지 않다는 말씀입니다. 겉을 깨끗이 하는 것도 좋지만 속도 깨끗이 하라는 말씀입니다. 겉만 깨끗한 것은 완전한 깨끗함이라고 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마음 속에 탐욕이 가득한 사람은 더러운 사람이라는 말씀입니다. 마음 속에 악독이 가득한 사람은 깨끗한 사람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당신은 겉만을 중시하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겉을 중시하는 만큼 속도 중시하는 사람입니까 본문의 바리새인처럼 얼굴로는 초대한 손님을 반갑게 맞이하면서도 속으로는 못마땅하게 여기는 것은 속을 중시하지 않는 행동입니다. 잘 보이지 않는 구석에다 지저분한 것이나 쓰레기들을 놔두는 것도 속을 중시하지 않는 행동입니다. 인간성은 고려하지 않고 학력이나 기술만을 근거로 사원을 채용하는 것도 속을 중시하지 않는 행동입니다. 사회 지도층의 비리를 쉬쉬 하면서 덮어두는 것도 속을 중시하지 않는 행동입니다. 그러나 소외받는 장애인이나 빈곤자를 배려하는 복지 정책을 펼치는 것과 같은 것은 속을 중시하는 행동입니다.
셋째로, 사람들은 내면의 깨끗함이 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을 경시합니다. 예수님은 겉은 깨끗이 하나 속은 깨끗이 할 줄 모르는 사람을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부르셨습니다. 예수님은 겉을 깨끗이 하는 것보다 속을 깨끗이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경시하거나 모르는 사람을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부르셨습니다(40절). “입에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입으로 들어가는 모든 것은 배로 들어가서 뒤로 내어 버려지는 줄을 알지 못하느냐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적질과 거짓 증거와 훼방이니,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요 씻지 않은 손으로 먹는 것은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느니라”(마15:11-20) 정작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은 마음 속에 있는 것입니다. 내면을 먼저 깨끗하게 하지 않는 한 아무리 애써도 참된 깨끗함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41절의 말씀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오직 그 안에 있는 것으로 구제하라 그리하면 모든 것이 너희에게 깨끗하리라.” 이 말씀에서 “그 안에 있는 것”이란 잔과 대접 안에 있는 음식을 뜻합니다. 그것을 자기 혼자 먹고 즐기지 않고 구제에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은 이미 탐욕이란 내면의 더러움을 씻은 사람입니다. 겉을 깨끗이 하는 것은 훨씬 쉽게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그런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깨끗하게 되는 것입니다. 총선 전에 폭로된 장학로 부정축재 사건은 김영삼 대통령에 대한 이미지를 많이 훼손시켰습니다. 김 대통령은 그 동안 깨끗한 정부, 깨끗한 정치를 기회 있을 때마다 강조해 왔고 개혁 작업을 통하여 각종 비리를 척결해 온 것을 자랑스럽게 말했습니다. 그러나 대통령을 최측근에서 보좌하는 사람이 은밀히 엄청난 비리를 저지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대통령은 그 일에 대해서 전혀 책임질 필요가 없다는 말을 누가 곧이 믿겠습니까 그 사건이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왔다는 사실은 선거 유세 기간에 그리고 선거 후에 입증되었습니다. “수신 제가 평천하”라는 말이 옳은 것입니다. 수성페인트를 묻혀 사용한 로울러는 아무리 물로 씻어도 처음 상태처럼 되지 않습니다. 로울러 속까지 스며든 페인트는 겉만 씻는다고 제거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물에 담가 놓으면 계속 허연색으로 물이 변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도 페인트 붓은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씻고 또 씻으면 어느 시점에 가서는 깨끗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 마음 속의 더러움 즉 죄악은 이런 식으로 씻어질 수 없습니다. 지우개나 비누로 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보혈로만 씻을 수 있습니다. 회개로 씻을 수 있습니다.
어떤 화가가 런던에서의 일상생활을 그리고자 해서 크고 바쁜 도시에서의 다양한 생활상을 캔버스에 묘사하려 했다. 그래서 먼저 런던 거리의 어린 부랑아의 좋은 표본을 찾고 있던 중 마침내 그는 그런 류의 소년을 만나게 되었다. "얘야, 너 은화 한 개를 얻고 싶지 않니뭐라고요, 은화요 물론 얻고 싶지요.
그렇다면 여기 내 명함이 있다. 내일 9시에 이 주소로 현재의 네 모습 그대로 오너라. 그러면 은화를 얻게 될거야.네, 선생님, 내일 가겠습니다." 그러나 소년은 과연 은화를 얻을 수 있을까 의심했다. 다음날 정각 9시에 소년은 화가의 화실 벨을 누르고 있었다. 물론 열어 본 하녀가 와서 말하기를 "주인님, 어린 소년이 찾아 왔는데요."라고 했다. 화가는 많은 다른 생각들로 해서 어제의 일을 잊어 버리고 있었다. "어린 소년 어떤 아인데글쎄요, 가난해 보이긴 하지만 얼굴이 잘 생긴 게 깨끗하고 옷도 말쑥해서 꽤 괜찮아 뵈는 아이던데요.들어오라고 해요." 어제의 그 소년은 화가 앞에 섰다. 그러나 그의 얼굴은 깨끗하고 머리도 단정했으며, 그에게 무언가 좋은 일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그이 어머니 덕분에 누더기 옷도 잘 기워서 입고 있었다. 소년은 물었다. "당신께서 약속하신 은화는 어디 있나요너 내가 한 말을 기억하고 있니네, 선생님.확실하게그럼요, 9새에 오라고 하셨잖아요. 그래서 제가 여기 이렇게 정각에 온 걸요. 방금 9시가 지났어요.그러나 나는 네가 네 모습 그대로 오기를 원했다. 만약 네가 네 모습 그대로 왔다면, 너는 은화를 얻었을 것이다. 그러나 네 모습이 아니기 때문에 주지 않겠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당신 모습 그대로를 원하신다. 그 분은 당신을 구원해 주시기를 원하신다. 그분은 자신의 보혈로 당신의 죄를 씻겨 주실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기 원하신다. 그 분은 자신의 은총이 당신을 회복시켜 줄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기 원하신다. 그 분은 당신을 눈 같이 희게 씻겨 주신다(W. E. BURROUG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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