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을 주시는 하나님 (욥33:1-33)
본문
본문에서 엘리후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을 계시하는 세 가지 방법에 대해 말하 고 있습니다.
1. 양심 가운데 세미한 음성을 통해 깨닫게 하십니다(13-16절) 엘리후는 하나님께서 잠들 때에나 꿈에 그리고 밤의 이상 중에 사람의 귀를 여 시고 인치듯 교훈하신다고 하였습니다(14-15절). 실상 성경이 완성되기 전인 구약 시대에는 하나님께서 꿈이나 이상(환상)을 통해 당신의 뜻을 분명하게 보여주셨습니다. 야곱이 밑엘에서 밤중에 꿈을 통해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고(창28:10-16), 요 셉 역시 하나님께서 주신 꿈을 통해 자신의 장래를 보고, 또한 애굽의 장래를 예 견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이방인인 바로(창 41:1)나, 느부갓네살 (단 4:5)을 통해서도 당신의 뜻을 계시하셨습니다. 이렇게 구약시대에는 하나님께서 꿈이나 이상을 통해 계시하시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시 전달의 유일한 수단인 성경이 완성된 오늘날에는 더 이상 꿈이나 환상이 계시 전달 의 수단이 되지 못합니다. 다만 꿈은 때때로 성도의 믿음 생활에 경고를 주고 각 성케 하는 수단이 될 뿐입니다. 대신 하나님은 오늘날 성령님을 통해 성도들의 신 앙 양심에 아주 세미하게 말씀하시고, 또 호소하십니다. 그렇지만 주의 백성들에게 있어 양심을 두드리는 하나님의 음성은 구약 당시 꿈이나 환상을 통해 하나님의 계시를 접한 구약 성도들이 하나님의 뜻을 확실히 깨달은 것만큼이나 분명하고 명확 합니다. 마치 신앙 양심에 도장을 찍듯이(인치듯이) 그렇게 확실한 것입니다. 그러 러기에 하나님 앞에서 신앙 양심이 열려 있고, 그 양심이 성결한 사람은 누구라도 가슴 가운데 고요히 말씀하시는 주의 뜻을 뷰명하게 분별하게 됩니다. 이런 맑고 정결한 심령을 가질 때 우리는 주님께서 보여 주시고 들려주시는 고귀한 하늘 음성 을 참된 뜻을 분명히 분별하게 됩니다.
2. 질병 등 육체적 시련을 통해 깨닫게 하십니다(19-22절). 엘리후는 욥을 향해 '혹시는 사람이 병상의 고통과 뼈가 늘 쑤심의 징계(이는 심판이나 형벌이 아니라 고통이란 의미로 봄이 좋다)를 받나니'(19절)라고 하였습니다. 즉 엘리후는 욥의 육체적 고통이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을 계시하는 한 방편 이라 하였습니다. 이전 욥의 세 친구들은 욥의 질병, 실로 뼈를 깎고 살을 도려내는 듯한 악창(상피병으로 여겨짐)의 고통이 읍의 범죄 결과라 하였습니다. 이리하 여 숨겨진 죄가 반듯이 있을 터이니 회개하라고 촉구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엘리후는 꼭 죄가 아니더라도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질병을 주시사 당신의 뜻을 보게 하 신다고 하였습니다. 물론 모든 질병이 하나님의 게시 수단이라 말할 수는 없습니다 단지 하나님은 질병을 통혜서도 당신의 뜻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옛날 12-13세기 에 활동한 이탈리아의 성인 프란체스코(1181-1226년)가 그러하였고. 프랑스 출신으 로 위대한 칼빈주의 신학자였던 베자(1519-1605년)는 1548년 죽음 직전의 중병 가운데서 선령한 은혜를 체험하고 하나님의 위대한 일꾼이 되었다. 이렇게 하나님은 때로는 극심한 질병을 주시사 죽음의 문턱에 이른 극적 상황에서 당신의 뜻을 보시 게 하는 것입니다. '그의 혼이 구덩이에 그의 생명이 멸하는 자에게 가까와지느니 라'(22절)
3. 사역자들을 보내시어 깨닫게 하십니다(23절). 엘리후는 '일천 천사 가운데 하나가 그 사람의 해석자로 함께 있어서 그 정당히 행할 것을 보일진대'(23절)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곧 하나님께서 고난을 주실 때는 그 고난의 참된 의미를 깨닫고 주의 깊고 오묘하신 뜻을 밝히 알 수 있도록 당신의 사역자를 보내주신다는 말입니다. 구약 초창기 당시 하나님은 선한 천사들을 동원 하시사 고난 가운데 있는 당신의 백성들에게 당신의 뜻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역사가 지속되면서 하나님은 주로 선지자들을 통해 당신의 백성들에게 당신의 뜻을 보여 주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택한 백성에게 시련을 주시되 당신의 사역자들을 통하여 그 시 련의 참된 뜻을 보여주시고, 또한 시련 가운데서도 위로와 소망을 얻게 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이런 위로와 소망을 통해 굳건히 시련을 견디고 승리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신약의 위대한 사도나 교회의 교사들이 이런 역할을 김당하였습니다. 그렇지 만 우리에게 있어 가장 훌륭한 교사요, 위로자며. 주의 뜻을 보여주는 해석자는 하나님의 깊고 내밀한 뜻을 밥히 알고 계시는 성령님입니다. 그러기에 교사요. 사역 자된 우리 성도들은 성령님과의 신령한 교제를 통해 하나님의 깊으신 뜻을 올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훌륭한 조언자. 위로자. 해석자의 역할을 잘 감 당하게 됩니다.
<결론>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에게 시련을 주심은 궁극적으로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한 긍휼과 자비의 일환입니다. 엘리후는 본문에서 몇 차례에 걸쳐 이런 사실을 분명히 밝혔다. 그러면서 욥의 고난은 징계의 차원을 넘어 사랑과 긍휼의 차원에서 이해하 려 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런 당신의 겊고 오묘하신 섭리를 깨닫게 하 기 위해 재삼 당신의 뜻을 보여주고 또 보여주신다 하였습니다. 그러기에 성도는 어떤 위기와 역경 가운데서도 자신을 향한 주의 거룩한 뜻을 올바르게 볼 수 있어 야 합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고개를 들고 신령한 영안을 열어 하늘을 바라봅 시다. 그리고 크신 주의 사랑과 긍휼을 생각해 봅시다. 이럴 때 우리는 비로소 자 신을 향한 주의 "깊고 오묘하신 섭리를 분명하게 깨달을 수 있게 됩니다.
1. 양심 가운데 세미한 음성을 통해 깨닫게 하십니다(13-16절) 엘리후는 하나님께서 잠들 때에나 꿈에 그리고 밤의 이상 중에 사람의 귀를 여 시고 인치듯 교훈하신다고 하였습니다(14-15절). 실상 성경이 완성되기 전인 구약 시대에는 하나님께서 꿈이나 이상(환상)을 통해 당신의 뜻을 분명하게 보여주셨습니다. 야곱이 밑엘에서 밤중에 꿈을 통해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고(창28:10-16), 요 셉 역시 하나님께서 주신 꿈을 통해 자신의 장래를 보고, 또한 애굽의 장래를 예 견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이방인인 바로(창 41:1)나, 느부갓네살 (단 4:5)을 통해서도 당신의 뜻을 계시하셨습니다. 이렇게 구약시대에는 하나님께서 꿈이나 이상을 통해 계시하시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시 전달의 유일한 수단인 성경이 완성된 오늘날에는 더 이상 꿈이나 환상이 계시 전달 의 수단이 되지 못합니다. 다만 꿈은 때때로 성도의 믿음 생활에 경고를 주고 각 성케 하는 수단이 될 뿐입니다. 대신 하나님은 오늘날 성령님을 통해 성도들의 신 앙 양심에 아주 세미하게 말씀하시고, 또 호소하십니다. 그렇지만 주의 백성들에게 있어 양심을 두드리는 하나님의 음성은 구약 당시 꿈이나 환상을 통해 하나님의 계시를 접한 구약 성도들이 하나님의 뜻을 확실히 깨달은 것만큼이나 분명하고 명확 합니다. 마치 신앙 양심에 도장을 찍듯이(인치듯이) 그렇게 확실한 것입니다. 그러 러기에 하나님 앞에서 신앙 양심이 열려 있고, 그 양심이 성결한 사람은 누구라도 가슴 가운데 고요히 말씀하시는 주의 뜻을 뷰명하게 분별하게 됩니다. 이런 맑고 정결한 심령을 가질 때 우리는 주님께서 보여 주시고 들려주시는 고귀한 하늘 음성 을 참된 뜻을 분명히 분별하게 됩니다.
2. 질병 등 육체적 시련을 통해 깨닫게 하십니다(19-22절). 엘리후는 욥을 향해 '혹시는 사람이 병상의 고통과 뼈가 늘 쑤심의 징계(이는 심판이나 형벌이 아니라 고통이란 의미로 봄이 좋다)를 받나니'(19절)라고 하였습니다. 즉 엘리후는 욥의 육체적 고통이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을 계시하는 한 방편 이라 하였습니다. 이전 욥의 세 친구들은 욥의 질병, 실로 뼈를 깎고 살을 도려내는 듯한 악창(상피병으로 여겨짐)의 고통이 읍의 범죄 결과라 하였습니다. 이리하 여 숨겨진 죄가 반듯이 있을 터이니 회개하라고 촉구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엘리후는 꼭 죄가 아니더라도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질병을 주시사 당신의 뜻을 보게 하 신다고 하였습니다. 물론 모든 질병이 하나님의 게시 수단이라 말할 수는 없습니다 단지 하나님은 질병을 통혜서도 당신의 뜻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옛날 12-13세기 에 활동한 이탈리아의 성인 프란체스코(1181-1226년)가 그러하였고. 프랑스 출신으 로 위대한 칼빈주의 신학자였던 베자(1519-1605년)는 1548년 죽음 직전의 중병 가운데서 선령한 은혜를 체험하고 하나님의 위대한 일꾼이 되었다. 이렇게 하나님은 때로는 극심한 질병을 주시사 죽음의 문턱에 이른 극적 상황에서 당신의 뜻을 보시 게 하는 것입니다. '그의 혼이 구덩이에 그의 생명이 멸하는 자에게 가까와지느니 라'(22절)
3. 사역자들을 보내시어 깨닫게 하십니다(23절). 엘리후는 '일천 천사 가운데 하나가 그 사람의 해석자로 함께 있어서 그 정당히 행할 것을 보일진대'(23절)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곧 하나님께서 고난을 주실 때는 그 고난의 참된 의미를 깨닫고 주의 깊고 오묘하신 뜻을 밝히 알 수 있도록 당신의 사역자를 보내주신다는 말입니다. 구약 초창기 당시 하나님은 선한 천사들을 동원 하시사 고난 가운데 있는 당신의 백성들에게 당신의 뜻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역사가 지속되면서 하나님은 주로 선지자들을 통해 당신의 백성들에게 당신의 뜻을 보여 주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택한 백성에게 시련을 주시되 당신의 사역자들을 통하여 그 시 련의 참된 뜻을 보여주시고, 또한 시련 가운데서도 위로와 소망을 얻게 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이런 위로와 소망을 통해 굳건히 시련을 견디고 승리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신약의 위대한 사도나 교회의 교사들이 이런 역할을 김당하였습니다. 그렇지 만 우리에게 있어 가장 훌륭한 교사요, 위로자며. 주의 뜻을 보여주는 해석자는 하나님의 깊고 내밀한 뜻을 밥히 알고 계시는 성령님입니다. 그러기에 교사요. 사역 자된 우리 성도들은 성령님과의 신령한 교제를 통해 하나님의 깊으신 뜻을 올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훌륭한 조언자. 위로자. 해석자의 역할을 잘 감 당하게 됩니다.
<결론>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에게 시련을 주심은 궁극적으로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한 긍휼과 자비의 일환입니다. 엘리후는 본문에서 몇 차례에 걸쳐 이런 사실을 분명히 밝혔다. 그러면서 욥의 고난은 징계의 차원을 넘어 사랑과 긍휼의 차원에서 이해하 려 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런 당신의 겊고 오묘하신 섭리를 깨닫게 하 기 위해 재삼 당신의 뜻을 보여주고 또 보여주신다 하였습니다. 그러기에 성도는 어떤 위기와 역경 가운데서도 자신을 향한 주의 거룩한 뜻을 올바르게 볼 수 있어 야 합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고개를 들고 신령한 영안을 열어 하늘을 바라봅 시다. 그리고 크신 주의 사랑과 긍휼을 생각해 봅시다. 이럴 때 우리는 비로소 자 신을 향한 주의 "깊고 오묘하신 섭리를 분명하게 깨달을 수 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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