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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끗한 마음으로 서로 뜨겁게 사랑하자! (행2:3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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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여자 회중석의 앞자리를 바라보게 되면, 뭔가 허전한 느낌이 듭니다. 여러 노인들이 자리를 비웠기 때문입니다. 안 권사님은 손녀 결혼식 때에 서울 올라가시더니 아예 거기에 눌러 계시고, 김소산 권사님은 손자가 중학교를 졸업하면서 본가인 의풍으로 가셨습니다. 조 권사님마저 출타하셔서 장기간 돌아오지 않고 있습니다. 농사철이 가까워오자, 여자 회중석의 뒷자리도 빈자리가 앞마당처럼 넓어졌습니다. 지난 집회 후 새벽기도회까지 나오던 열심은 사라지고, 이제는 주일 아침인데도 자연스럽게 들녘으로 나가곤 합니다. 주일에는 꼭 교회에 나와서 여호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이 성도의 본분이라고, 지금까지 8년 가까이 목이 터져라 외쳐왔건만, 우리 성도들은 여전히 마이동풍(馬耳東風)입니다. 새 식구가 가끔 생기고는 있지만, 워낙 빠져나가는 숫자가 많다보니, 교인수가 늘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흔히들, 사람 숫자에 연연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저를 비롯한 농촌 목회자들은 어느 정도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교회 침체가 저 자신의 무능과 열심이 부족한 때문이 아닌가 싶어서, 저 스스로가 깊은 딜레마에 빠져들 때가 많습니다. 오늘의 말씀인 사도행전 2장을 보니, 베드로가 한없이 부럽고 존경스럽습니다. 베드로가 전하는 설교가 사람들의 마음을 강하게 움직여서, 많은 사람들이 주께 돌아왔는데, 하루동안 세례 받은 숫자만 해도 3천명이나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놀라운 전도 부흥입니까 하루에 3천 명은 그만두고, 한 달에 한 명만이라도 주께 돌아오는 역사(役事)가 있었으면, 저는 좋겠습니다. 그래서, 1년에 열두 명씩만 교인수가는다면 정말 목회할 맛이 날 것입니다. 그건 고사하고, 평상시에 나오는 교인들이라도 고정적으로 잘 나왔으면 하는 것이 저의 간절한 희망입니다.
그런데, 하루에 3천명이 돌아오게 한 베드로의 설교는 어떤 것이었을까요 다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를 우리의 주님과 구세주가 되게 하셨다는 것과,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면 성령님을 선물로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서 속히 이 더럽고 악한 세상에서 구원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무척 딱딱하고 재미가 없는 설교였습니다. 그 자리에서 무슨 기적이 일어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심금을 울릴만한 예화를 든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마음의 큰 감동을 받아서, “우리가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하면서 사도들에게 물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누굽니까 예수를 못박아 죽이라고 외쳤던 바로 그들이 아닙니까
그런데, 예수님이 돌아가시기 전에도, 그들은 그처럼 예수를 열심히 좇아 다녔습니다. 그러나, 주께서 처한 입장이 불리해지자, 그들은 예수를 못박아 죽이라고 외쳤습니다. 그러다가, 예수님의 부활 사건이 있은 뒤, 이번에 다시금 예수를 믿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지난 번 집회가 끝났을 때에는, ‘교회가 이제는 달라지지 않겠느냐’고 하는 기대를 갖게 했습니다. 몇 분 빼놓고는, 거의 모든 분들이 새벽기도회를 다녔기 때문입니다. 그러기를, 얼마간 계속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새벽기도회는 그만두고, 주일성수조차 하지 못하는 이가 많아졌습니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게 되는 것일까요 그것은, 기독교의 핵심인 ‘부활과 생명의 진리’를 잘 깨닫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그의 첫째 편지에서 예수를 믿는 사람은 새생명을 얻게 된다(1:23)고 했습니다. 하건만, 교회를 다니면서도 이 진리에 접근하지 못한 채, 그 주변에서만 맴돌고 있는 분들이 많습니다.
1.부활의 생명을 얻지 못하고, 여전히 죽음의 길을 가고 있는 것입니다. 어느 날, 주께서는하나님이 이끌어 주시지 않으면 아무도 내게로 올 수 없다(요6:65)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주를 따르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의 곁을 떠나갔습니다. 이때, 주님은 제자들에게너희도 내 곁을 떠나려느냐하고 물으셨습니다. 이에, 베드로가 말씀으로 영생을 주시는 분은 주님뿐인데,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겠습니까(요6:68)하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고백했던 베드로조차, 예수님을 배반하고 도망갔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부활하신 주님의 한없는 용서와 사랑을 체험한 뒤부터, 목숨을 내놓고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니까, 베드로가 참 생명을 얻게 된 것은, 부활하신 주께서 그의 모든 잘못을 용서하셨을 때입니다. 그래서, 그는 주의 사랑을 깊이 경험하고서야, 무엇이 참 생명인지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경험을 잘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1진정한 회개가 없기 때문입니다. 지난 과거의 삶이 잘못되었을 깨닫고, 그 죄를 주님께 털어놓아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용서의 은총과 사랑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런 경험을 해야만, 성경 말씀이 마음에 와 닿게 되고, 또한 진한 감동이 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통하여 생활의 변화가 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회개의 모습을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욕심 때문에 갖게 되었던 이기심과 증오심을 버려야 하는데, 이것을 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기심과 증오심을 버리는 회개가 없으면, 모든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새생명’을 얻을 수 없습니다. 세상 욕심으로 더러워진 우리의 양심을 정결케 하기 위해서는, 우리 속에 있는 그 더러운 것들을 내다버려야 합니다. 어떻게 말입니까 하나님 앞에 그 죄를 낱낱이 고하게 될 때, 그 모든 죄는 다 용서가 되고, 우리 속에 있는 더러운 것들은 사라지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그 과정을 통하여 하나님의 은총과 사랑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런 회개를 그만 꺼려하고 기피할 경우, 우리의 신앙은 성장하지 못하고, 다람쥐가 체 바퀴 돌리듯, 우리는 지난 과거의 오류를 계속 반복하게 되는 것입니다.
2다시 말씀드려서, 믿음 생활을 온전하게 할 수 없습니다. 베드로의 설교를 들은 사람들은 회개하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고, 기도회에 날마다 빠짐없이 참석하여, 서로 교제하면서 함께 음식을 나누었다(행2:42)고 했습니다. 그야말로, 믿음의 공동체를 형성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그들의 전반적인 생활이 교회를 중심으로 이뤄졌던 것입니다. 물론, 그때와 지금은 상황이 다릅니다. 하지만, 영생과 천국을 소망하는 기독교인이라면, 오늘 우리가 처한 난관을 극복해야 합니다. 그래서, 교회를 중심으로 성도들과 사랑의 교제를 나눔으로써, 참다운 신앙 공동체를 형성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정상적인 신앙 궤도에서 이탈하지 않게 됩니다. 오늘 우리의 믿음은 위기입니다. 날이 갈수록 공동체에서 벗어나 개인 중심의 생활로 치닫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신앙 생활의 터전이 아닌, 교양 강좌를 듣는 장소로 변질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니, 그런 개인주의적인 신앙을 가진 이가 3천 명이 모이고 1만 명이 모인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이웃과 사랑을 나눌 줄 모르는 1천 명보다는, 주님의 사랑을 알고 그 사랑을 나눌 줄 아는 십여 명이 훨씬 더 귀한 성도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어저께 고 속장 가정의 상사(喪事)에, 우리 교인들이 느티까지 가서 사랑의 봉사를 한 것은 참으로 뜻깊은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요컨대, 개인 중심으로 자기 욕심만 채우면서 살면 멸망에 이르고, 자신을 희생함으로써 믿음과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어 살 때에는 영생에 이르게 됩니다. 또한,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여전히 개인 중심으로 이기심을 갖고 살면,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면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3그러기에, 그런 사람은 미련하고 어리석은 인생이라 할 수밖에 없습니다. 베드로가 말하기를 부모에게서 받은 생명은 곧 썩어 버리지만, 거듭난 이 생명은 영원히 계속된다(1:23)고 했습니다. 육신만을 위해 살 경우, 이기심과 증오심을 갖게 되며, 그 결과는 허무한 죽음뿐입니다. 그러니, 그렇게 사는 자는 얼마나 불쌍하고 어리석은 인생을 사는 것입니까 이 세상을 사는 동안에는, 육신을 위하여 애쓰는 사람이 훨씬 더 유리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인생을 끝마치게 될 때에는, 그 판도가 완전히 뒤바뀌게 된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그 마음속에 있는 더러운 욕심들을 깨끗이 청소하고, 정결한 새 심령으로 거듭나야 할 것입니다.
2.그래서, 부활의 새생명을 얻어서, 참 사랑의 삶을 살아가도록 합시다. ‘렘브란트’라는 서양의 유명한 화가가 있습니다. 그가 ‘엠마오 도상(途上)’이라는 유명한 그림을 남겼습니다. 이 사람은, 대중이 원하는 그림을 그려서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가족과 함께 부족한 것 없이 잘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 행복이 하루아침에 깨지고 말았습니다. 아내가 죽고 말았던 것입니다. 렘브란트는 붓을 내 던지고 실의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는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실의에 빠진 예수의 제자들이 ‘엠마오’로 가던 것처럼, 그도 엠마오로 계속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죽음이 마지막이 아님을 깨닫고 예수를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그의 그림이 달라졌습니다. 그 중의 하나가 ‘엠마오 도상’입니다. 바로 엠마오 도상의 두 제자에게 나타나신 부활의 주님을 그린 것입니다. 그는 그 그림을 완성하고서 “나는 위대한 생명의 비밀을 깨닫고 이 그림을 그렸다'고 고백했습니다. 그가 행복했을 땐, 주를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아내가 세상을 떠나, 인생의 허무와 좌절을 느끼는 길목에서, 그는 부활의 주를 만났습니다. 그리고, ‘엠마오 도상의 그리스도’를 그릴 수 있었습니다. 실망과 좌절을 느낄 수밖에 없는, 오늘우리가 사는 세상입니다. 이럴 때, 우리는 부활의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그래서, 최종 종착지인 죽음을 향하여 달려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이제는 하나님을 향해 돌아서서 주님과 함께 새생명의 길로 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1지금까지의 잘못된 생활을 깨끗이 청산하고서, 주님만을 믿고 살아야 합니다. 베드로는 그첫째 편지에서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를 믿음으로써, 이기심과 증오심에서 벗어나 영혼이 정결해졌다(1:22)고 했습니다. 우리도, 그 영혼이 맑아질 때까지, 자신의 잘못을 눈물로 회개하는 아름다운 시간을 많이 가져야 합니다.
2그리고, 깨끗한 영혼을 가지고, 뜨거운 사랑을 나누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조금 전에 인용한 베드로의 편지에 보면, 그 영혼이 깨끗해졌으므로, 이제는 모든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하면서, 마음으로부터 깊이 서로 뜨겁게 사랑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새생명을 가진 자는, 깨끗하고 순수한 사랑의 삶을 살게 됩니다. 과거의 삶이 이기심과 증오심에 불타는 삶이었다면, 새롭게 거듭난 새 인생은 서로 뜨거운 사랑을 나누게 되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모두, 주님을 뜨겁게 사랑하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3그처럼, 맑은 영혼을 가지고 뜨겁게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은, 하늘에 대한 소망이 깊고 영원하며 변함이 없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갑자기 죽더라도, 전혀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맑은 영혼이 하늘의 소망과 기쁨을 바라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영생을 지닌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잠깐 살다가 영원히 죽게 될 세상 사람들처럼 살면 안 됩니다. 우리의 생활 중심은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맑은 영혼을 갖고 서로 뜨겁게 사랑하는 ‘사랑의 공동체’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아무쪼록, 천국에 들어가게 될 그날까지, 주님을 진정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경건하게 믿음 생활을 계속하시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진심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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