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이 참아야 합니다 (약5:7-11)
본문
이미 봉독하신 말씀 중에서 7 8절 말씀을 다시 읽겠습니다. '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의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 야고보서에서 강조하는 것이 인내입니다. 이미 야고보서를 생각하는 첫시간에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 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하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고난과 시련과 박해에 직면해 있었습니다. 그들이 당하는 어려움 속에서 가장 바람직한 태도는 인내의 덕이었습니다. 인내는 그리스도인이 지녀야 할 덕입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이 인내의 중요성을 누누히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주신 말씀에서 인내하라는 말씀과 연결해서 그리스도의 강림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떻게 인내라는 말과 그리스도인의 강림이 함께 강조된 이유는 우리를 인내하도록 만들 수 있는 것이 그리스도의 강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기독교 역사에서 가장 성결하고 위대한 부흥을 체험한 시기는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재림을 간절히 사모하였을 때였습니다. 그때마다 여호와 하나님은 놀라운 일을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간절한 마음으로 주님의 다시 오심을 소망해야 합니다. 오늘 주님의 재림에 대한 잘못된 가르침 때문에 우리 마음에 주님의 재림에 대해서 과소 평가 하는 경향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왜 이렇게 가짜 재림설이 많을까요 파스칼은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아무도 가짜 다이아몬드를 위조 하지는 않습니다. 진짜가 있기 때문에 가짜가 있습니다.은 말입니다. 수많은 가짜 종말론은 주님이 다시 오시는 사건 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은 우리의 복된 소망입니다. 주님이 다시 오셔서 모든 것을 공의로 다스리시고 심판하실 시간이 가까와 옴을 자각할 때 우리는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인내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인내와 그리스도의 오심을 관런지어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는 것 때문에 고난이 면제되고 모든 일이 만사 형통할 것이라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약속은 환난의 면제가 아니라 환난 속에서의 승리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 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사도 바울도 '우리가 하나첨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이 왜 그의 자녀인 우리 에게 고난을 겪게 히십니까 우리를 훈련시키며 연단시키기 위한 교육적 방편으로 사용하십니다. 오늘 주신 말씀 10, 11절을 보세요 '형제들아 주의 이름으로 말 한 선지자들로 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을 삼으라 보라 인내하는 자 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는 자시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오래 참음이란 말과 인내라는 말은 비슷한 말입니다.
그런데 이 두 낱말 사이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그 차이를 알고 이 말씀을 보면 더욱 이해가 쉽습니다. 오래 참는다는 말은 본래 사람 사이에서 일어나는 어려움을 참는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인내는 우리가 처한 환경속에서 부딛히는 고난에서의 인내입니다. 우리가 사람 사이에서 생기는 정신적인 고통이 있다면 주님의 말씀을 기억합시다. 주님은 오래 참으라고 명령하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처해 있는 상황 가운데 어려움이 있어도 인내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 생애에서 일어나는 온갖 시련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습니까
1. 농부의 인내를 배워야 합니다_ 훌륭한 농부가 되기 위해서 제일 중요한 것이 인내입니다. 속전 속결을 원하는 사람은 농부가 될 수 없습니다, 오늘을 가리켜 '인스 턴트 시대'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저마다 조급합니다. 기 다릴 줄을 모릅니다. 미국의 어느 식당에 가면 주문한 지 3분 안에 주문한 음식을 가져오지 못하면 음식 값을 받지 않는 데가 있습니다. 오랜 시간 견디고 참을 수 있는 인내가 없이는 바람직한 농부가못됩니다. 그래서 성경은 인내에 대한 가장 상징적인 표본으로 농 부를 말합니다. 열매는 하루밤 사이에 맺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땀을 흘리고 노력해야 합니다.그리고 기다려야 합니다.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팔레스틴에서는 이른 비가 10월 하순부터 11월 상순 사이에 내 리는데 이 이른 비는 흙을 부드럽게 합니다. 그리고 늦은 비는 3월 에서 4월 사이에 내리는데 이 비는 곡식을 자라게 합니다. 이 이른 비와 늦은 비는 결정적으로 수확을 돕습니다.
그러므로 농부들은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럽니다. 이 비를 기다리는 동안 농부의 인내심은 매우 귀한 것입니다. 그들은 10월부터 4월까지 긴 우기를 견디며 5월에서 9월까지의 오랜 건조기를 참아 내야 합니다. 이런 인내가 없이 팔레스틴의 농부들은 아름다운 추수를 기대할 수가 없 습니다 그러면 무엇이 이 모든 어려움을 견디고 수고의 땀을 흘리며 기다리게 합니까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 때문입니다. 그것은 기다릴 만한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 6장 9절에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농부에게는 기다림의 기간이 꼭 필요합니다. 여러분. 우리 그리스도인은 다 영적인 농부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흙과 같습니다. 이 마음의 밭에 하나님의 말씀의 씨를 뿌립니다. 그리고 이 씨가 움이 트고 싹이 나고 잎이 자라고 꽃이 피고 열매 맺기를 기다럽시다 성경에는 열매에 대한 많은 교훈이 있습니다. 이 성경이 가르치는 열매의 궁극적인 교훈은 인격에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5장 22절을 보세요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 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라'고 했습니다. 이 성령의 열매를 그 인격에 완전히 갖춘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안에 성령이 거하시고 성령이 우리를 지배하시게 되면 우리에게서 그리스도의 인격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주님은 우리를 그리스도의 인격을 닮은 사람으로 만드시기 위해서 훈련을 시키십니다. 그 훈련 가운데 하나가 고난입니다. 이 고난을 견디지 못하면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농부는 귀한 열매 를 바라보며 기다럽니다. 우리는 주 앞에 서는 그 날 거룩하고 흠없는 자녀가 되기 위하여 모든 아픔과 어려움을 참고 견디어야 합니다, 그래서 8절에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게 하라'고 권면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가 고난을 만나면 주님을 떠나 다른 방 법으로 해결하려는 일이 많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요동하므로 흔들 리지 말라는 말입니다. ' 굳게 하라'는 말씀은 목적을 세우고 힘을 모으라는 뜻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믿음에 굳게 서서 흔들리지 않 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에 있는 성도들을 그처럼 만나고 싶어 했던 이유도 신령한 은사를 그들에게 나눠주어 그들을 견고하게 하려 함이 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에 편지한 이유도 그렇습니다. '너희를 굳게 하고 너희 믿음에 대하여 위로함으로 누구든지 여러 환난 중에 요동치 않게 하려함이라'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길이 참고. 마음을 굳게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굳게 세워지지 않은 인격을 통해서는 성령의 참 열매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성숙을 기대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기다린다는 것은 수동적이 아니라 능동적입니다. 농부의 기다림을 보십시오.
열매 맺기를 기다리고 앉아 있습니까 아닙니다. 소매를 걷어붙이고 열심히 일하며 기다럽니다.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사람은 기도 원에 가서 하늘만 쳐다보며 주님 다시 오시기를 기다럽니다.
그런데 성경은 주님의 다시 오심을 그렇게 맞는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맷돌질을 하다가, 밭에서 일을 하다가 들림을 받습니다. 이렇게 우리에게 주어진 여러 가지 영역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을 때 주 님이 오셔서 맞이하게 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9절 말씀 보십시다. '형제들아 서로 원망하지 말라 그리하여야 심판을 면하리라' 농부의 바람직한 태도는 이웃과 더불어 협력하는 것입니다. 농사는 공동의 사역입니다. 인내는 무조건 참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이웃과 올바른 관계를 맺으며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 함께 일하며 기다리는 것입니다. 2 선지자의 인내를 배워야 합니다. l0절 말씀, '형제들아 주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로 고난과 오 래 참음의 본을 삼으라 선지자들이 당한 고난은 오늘 고난을 맞는 우리에게 큰 위로와 격려가 됩니다, 마태복음 5장 11절 이하에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 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 하라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과거에 선지자들이 받았던 핍박을 상기시키면서 실망 하지 말라고 권면하십니다. 오늘 우리는 주의 말에 순종하기만 하면 모든 환경이 순탄해진다는 기독교적 미신을 버려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도 고난이 닥칩니다. 그럴때 우리는 기뻐 합시다. 하나님은 지금도 이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 루고 계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보세요. 엘리야는 아합 왕에게 하나님의 재앙과 심판을 선언했기 때문에 얼마나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까 하나님은 고난을 면케 하신 것이 아니라 고난 속에서 엘리야를 보호하셨습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닙의 말씀 주신 대로 전파하다가 반역자로 잡히 기도 하고 우물에 던지우는 고난을 당했습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그는 참았고 하나님은 그를 보호하셨습니다. 다니엘이 그랬습니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도 의롭게 산 사람들인데 고난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그들을 보호해 주셨습니다 물론 하나님의 사람들이 고난을 받을 때 꼭 기적이 일어나서 보호된 것만은 아닙니다. 더러는 죽기도 했습니다. 고난 속에서 구출 받는 것도 감사한 일이지만 고난 받아 죽는 것도 사실은 같은 은혜 입니다. 히브리서 11장 33절 이하에 두 종류의 사람을 말합니다. 하나는 믿음으로 적극적인 승리를 가져왔던 사람, 그러니까 전쟁에 승리하 고 적군을 패배시켰던 위대한 승리자를 설명하고, 다른 하나는 고난과 환난속에서 그대로 죽어간 사람들의 믿음을 똑같이 중요한 가 치로 설명합니다. 더러는 죽고 더러는 보호받았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고난은 한 결같이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주님의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능력 으로 견디고 인내하여 증거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 고난을 통 하여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인격을 닮아갔습니다. 주님의 낙원 은혜와 사랑 이렇게 고난을 극복하여 승리한 사람들은 영광스런 눈물을 닦아 아브라함의 품에 안길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즐거워하며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주시고 상처를 싸매 주시며 위로해 주실 것입니다.
3. 욥의 인내를 배워야 함니다 오늘 주신 말씀 11절을 보세요 '보라 인내하는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히 여기는 자시니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고난을 말할 때마다 욥을 생각하게 됩니다. 야고보도 욥의 인내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욥의 인내는 적극적인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내라는 것은 그냥 당하며 참는 것만이 아니고, 참으면서 하나님의 목적을 꾸준히 추구하는 것입니다. 성경이 가르치는 욥의 인내를 이해하기 위해서 욥기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욥이 얼마나 예측하지 못했던 어려움을 당했습니까 그는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생활을 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사단에게 '네가 내 종 욥을 유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 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 이렇게 하나님이 직접 사단에게 욥 을 자랑할 정도였습니다, 사단이 시기할 정도로 욥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고 인정을 받았습니다.
사단의 반응이 어떻습니까 '욥이 까닭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 아십니까 주께서 그와 그 집과 그 모든 소유물을 산울로 두르 셨기 때문입니다, 주께서 그 손으로 하는 바를 복되게 하사 그 소유물이 많게 하셔서 입니다. 이제 주의 손을 되서 그의 모든 소유물을쳐 보세요 그렇게 하시면 반드시 그가 주를 욕할겹니다.' 그때 하나님이 사단에게 그 생명에만 손대지 말고 네 마음대로 해 봐라 해서 욥에게 갑작스러운 환난이 밀어 닥치게 되었습니다. 귀한 아들 딸 10남매가 맏형집에 모여서 화목하게 지내고 있는데 사자가 와서 '소는 밭을 갈고 나귀는 그 곁에서 돌을 먹는데 스바 사람이 와 서 그것들을 빼앗고 칼로 종을 죽였습니다. 나만 홀로 피했기 때문에 주인께 고하러 왔습니다.' 그가 아직 말할 때에 또한 사람이 와서 말하기를 '하나님의 불이 하늘에서 내려와서 양과 종을 살라 버 렸습니다.'라고 보고합니다. 그가 아직 말하고 있는데 또한 사람이와서 '갈대아 사람이 세 떼를 지어 갑자기 약대에 달려들어 그것을 빼앗고 칼로 종을 죽였습니다.'
그런데 또한 사람이 와서 '주인의 자녀들이 맏형 집에서 연회를 베풀고 있는데 거친 들에서 바람이 와서 집 네 모퉁이를 치매 그 소년들 위에 무너지므로 그들이 다 죽었습니다.' 세상에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그때 욥은 겸손히 겉옷울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경배하면서 말했습니다. '내가 모 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 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니닙을 향하여 어리석게 원망하지 아니했다고 했습니다. 그것으로 끝났습니까 그래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아니하자 하나님은 사단더러 '네가 나를 격동하여 까닭없이 그를 치게 했어도 그 가 오히려 자기의 순전을 굳게 지켰느니라' 그래서 사단이 욥에게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악창이 나서 견딜 수 없게 치지 않았습니 까 그의 아내도 '그런 하나님 욕하고 죽으라'고 할 정도였고 위로한다고 찾아왔던 친구들도 오히려 위로는 커녕 욥의 마음만 무겁게 했습니다. 그래서 욥은 비난하는 세 친구에게 방어를 했습니다. 나 중까지 참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욥을 구하시고 갑절의 축복을 하신 것을 우리가 기억합니다. 하나님은 이 고난을 통하여 욥을 겸허하게 하셨습니다.
앤드류 머레이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이 때때로 왜 지체하십니까 하나님이 지체하실 때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갑절의 축복을 준비 하고 계십니다.' 귀한 말씀입니다. 욥은 자기 삶의 배후에서 벌어지는 하나닙과 사단의 싸움에 대 해서는 잘 몰랐습니다. 욥의 친구들은 그를 비난했습니다. '네가 지금 당하는 고난은 네 죄 때문이다. 하나님이 너를 버리신거야. 하나님이 너를 정말 사랑하신다고 믿느냐' 이 말은 오늘 우리에게도 던져집니다. 욥은 그런 고통속에서 흔들린 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결국은 승리했습니다. 욥이 흔들린 것이 오히려 우리에게 위로가 됩니다. 욥 의 인간미를 볼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 욥도 계속되는 고난 속에서 그 마음이 흔들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깊이 신뢰하는 그 마음이 결국은 승리하게 된 것입니다. 욥은 하루 아침에 모든 재물과 자녀. 그리고 그의 건강을 잃었습니다.
그런데 욥은 13장 15절 '그가 나를 죽이시리니 내가 소망이 없노라'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을 좀더 정확하게 번역한 말이 난 외에 있습니다. '그가 나를 죽이실지라도 나는 그를 의뢰하리니'라 고 고백했습니다. 그러면 의인이 왜 고난을 받았습니까 세상 사람들은 고난을 받 을때 자기 죄 값이라고 혹은 조상의 탓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 은 의인도 고난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그런데 욥은 결국 축복을 받았습니다. 욥은 이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알게 되었고 무엇보다 인내를 배웠습니다. 고난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리고 고난을 당하고 있는 욥의 생애 속에도 하나님의 손길은 미치고 있 었습니다. 욥기 23장 10절을 보세요 '나의 가는 길은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 욥은 고난 저편에 순결하고 아름답게 변모한 성숙한 자신을 보았습니다. 우리는 다 참지 뭇하는 약점이 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위인들 도 참지 못한 분들이 있는 것을 보면서 위로를 받습니다. 모세는 참지 못해서 사람을 죽였습니다. 아브라함은 참지 못해서 부인의 충고를 받아들여 사라가 아닌 하갈을 통해서 이스마엘을 낳았습니다. 베드로는 참지 못해서 칼을 빼어 들었습니다. 요한과 야고보도 참 지 못해서 사마리아 사람들이 환영을 안한다고 벼락으로 태워 버리자고 제안했습니다. 왜 참지 못합니까 우리는 급한데 하나님은 잠잠히 계시는 것만 같아서 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참지 못합니다. 성경은 욥의 인 내를 배우라고 말씀하십니다.
서양 속담에 '세계는 인내하는 자의 것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인내하는 사람은 마침내 승리합니다. 오늘 주신 말씀은 초대 교회 성도들이 여러 가지 어려움을 당할 때 주신 메시지입니다. '인내하라' 하셨습니다. 주님은 오시고 계 십니다,
그러므로 인내하라. 곡식은 자라고 열매를 맺습니다. 그러므로 인내하라. 모든 고난에는 목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그의 자녀에게 손해되는 일을 하지 아니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 믿음의 선배들도 고난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고난을 잘 참고 견디고 기다렸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고난올 창조의 기회로 삼았습니다. 요셉의 말대로 '악을 선으로 바꾸시는 하나닙의 역사'에 동참해야 합니다. 그때 지각밖에 넘치는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실 줄 믿습니다. 어려운 일 당할 때 주님을 더욱 의지함으로 축복 받는 여러분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의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 야고보서에서 강조하는 것이 인내입니다. 이미 야고보서를 생각하는 첫시간에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 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하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고난과 시련과 박해에 직면해 있었습니다. 그들이 당하는 어려움 속에서 가장 바람직한 태도는 인내의 덕이었습니다. 인내는 그리스도인이 지녀야 할 덕입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이 인내의 중요성을 누누히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주신 말씀에서 인내하라는 말씀과 연결해서 그리스도의 강림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떻게 인내라는 말과 그리스도인의 강림이 함께 강조된 이유는 우리를 인내하도록 만들 수 있는 것이 그리스도의 강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기독교 역사에서 가장 성결하고 위대한 부흥을 체험한 시기는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재림을 간절히 사모하였을 때였습니다. 그때마다 여호와 하나님은 놀라운 일을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간절한 마음으로 주님의 다시 오심을 소망해야 합니다. 오늘 주님의 재림에 대한 잘못된 가르침 때문에 우리 마음에 주님의 재림에 대해서 과소 평가 하는 경향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왜 이렇게 가짜 재림설이 많을까요 파스칼은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아무도 가짜 다이아몬드를 위조 하지는 않습니다. 진짜가 있기 때문에 가짜가 있습니다.은 말입니다. 수많은 가짜 종말론은 주님이 다시 오시는 사건 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은 우리의 복된 소망입니다. 주님이 다시 오셔서 모든 것을 공의로 다스리시고 심판하실 시간이 가까와 옴을 자각할 때 우리는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인내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인내와 그리스도의 오심을 관런지어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는 것 때문에 고난이 면제되고 모든 일이 만사 형통할 것이라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약속은 환난의 면제가 아니라 환난 속에서의 승리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 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사도 바울도 '우리가 하나첨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이 왜 그의 자녀인 우리 에게 고난을 겪게 히십니까 우리를 훈련시키며 연단시키기 위한 교육적 방편으로 사용하십니다. 오늘 주신 말씀 10, 11절을 보세요 '형제들아 주의 이름으로 말 한 선지자들로 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을 삼으라 보라 인내하는 자 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는 자시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오래 참음이란 말과 인내라는 말은 비슷한 말입니다.
그런데 이 두 낱말 사이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그 차이를 알고 이 말씀을 보면 더욱 이해가 쉽습니다. 오래 참는다는 말은 본래 사람 사이에서 일어나는 어려움을 참는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인내는 우리가 처한 환경속에서 부딛히는 고난에서의 인내입니다. 우리가 사람 사이에서 생기는 정신적인 고통이 있다면 주님의 말씀을 기억합시다. 주님은 오래 참으라고 명령하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처해 있는 상황 가운데 어려움이 있어도 인내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 생애에서 일어나는 온갖 시련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습니까
1. 농부의 인내를 배워야 합니다_ 훌륭한 농부가 되기 위해서 제일 중요한 것이 인내입니다. 속전 속결을 원하는 사람은 농부가 될 수 없습니다, 오늘을 가리켜 '인스 턴트 시대'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저마다 조급합니다. 기 다릴 줄을 모릅니다. 미국의 어느 식당에 가면 주문한 지 3분 안에 주문한 음식을 가져오지 못하면 음식 값을 받지 않는 데가 있습니다. 오랜 시간 견디고 참을 수 있는 인내가 없이는 바람직한 농부가못됩니다. 그래서 성경은 인내에 대한 가장 상징적인 표본으로 농 부를 말합니다. 열매는 하루밤 사이에 맺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땀을 흘리고 노력해야 합니다.그리고 기다려야 합니다.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팔레스틴에서는 이른 비가 10월 하순부터 11월 상순 사이에 내 리는데 이 이른 비는 흙을 부드럽게 합니다. 그리고 늦은 비는 3월 에서 4월 사이에 내리는데 이 비는 곡식을 자라게 합니다. 이 이른 비와 늦은 비는 결정적으로 수확을 돕습니다.
그러므로 농부들은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럽니다. 이 비를 기다리는 동안 농부의 인내심은 매우 귀한 것입니다. 그들은 10월부터 4월까지 긴 우기를 견디며 5월에서 9월까지의 오랜 건조기를 참아 내야 합니다. 이런 인내가 없이 팔레스틴의 농부들은 아름다운 추수를 기대할 수가 없 습니다 그러면 무엇이 이 모든 어려움을 견디고 수고의 땀을 흘리며 기다리게 합니까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 때문입니다. 그것은 기다릴 만한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 6장 9절에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농부에게는 기다림의 기간이 꼭 필요합니다. 여러분. 우리 그리스도인은 다 영적인 농부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흙과 같습니다. 이 마음의 밭에 하나님의 말씀의 씨를 뿌립니다. 그리고 이 씨가 움이 트고 싹이 나고 잎이 자라고 꽃이 피고 열매 맺기를 기다럽시다 성경에는 열매에 대한 많은 교훈이 있습니다. 이 성경이 가르치는 열매의 궁극적인 교훈은 인격에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5장 22절을 보세요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 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라'고 했습니다. 이 성령의 열매를 그 인격에 완전히 갖춘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안에 성령이 거하시고 성령이 우리를 지배하시게 되면 우리에게서 그리스도의 인격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주님은 우리를 그리스도의 인격을 닮은 사람으로 만드시기 위해서 훈련을 시키십니다. 그 훈련 가운데 하나가 고난입니다. 이 고난을 견디지 못하면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농부는 귀한 열매 를 바라보며 기다럽니다. 우리는 주 앞에 서는 그 날 거룩하고 흠없는 자녀가 되기 위하여 모든 아픔과 어려움을 참고 견디어야 합니다, 그래서 8절에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게 하라'고 권면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가 고난을 만나면 주님을 떠나 다른 방 법으로 해결하려는 일이 많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요동하므로 흔들 리지 말라는 말입니다. ' 굳게 하라'는 말씀은 목적을 세우고 힘을 모으라는 뜻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믿음에 굳게 서서 흔들리지 않 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에 있는 성도들을 그처럼 만나고 싶어 했던 이유도 신령한 은사를 그들에게 나눠주어 그들을 견고하게 하려 함이 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에 편지한 이유도 그렇습니다. '너희를 굳게 하고 너희 믿음에 대하여 위로함으로 누구든지 여러 환난 중에 요동치 않게 하려함이라'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길이 참고. 마음을 굳게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굳게 세워지지 않은 인격을 통해서는 성령의 참 열매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성숙을 기대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기다린다는 것은 수동적이 아니라 능동적입니다. 농부의 기다림을 보십시오.
열매 맺기를 기다리고 앉아 있습니까 아닙니다. 소매를 걷어붙이고 열심히 일하며 기다럽니다.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사람은 기도 원에 가서 하늘만 쳐다보며 주님 다시 오시기를 기다럽니다.
그런데 성경은 주님의 다시 오심을 그렇게 맞는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맷돌질을 하다가, 밭에서 일을 하다가 들림을 받습니다. 이렇게 우리에게 주어진 여러 가지 영역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을 때 주 님이 오셔서 맞이하게 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9절 말씀 보십시다. '형제들아 서로 원망하지 말라 그리하여야 심판을 면하리라' 농부의 바람직한 태도는 이웃과 더불어 협력하는 것입니다. 농사는 공동의 사역입니다. 인내는 무조건 참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이웃과 올바른 관계를 맺으며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 함께 일하며 기다리는 것입니다. 2 선지자의 인내를 배워야 합니다. l0절 말씀, '형제들아 주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로 고난과 오 래 참음의 본을 삼으라 선지자들이 당한 고난은 오늘 고난을 맞는 우리에게 큰 위로와 격려가 됩니다, 마태복음 5장 11절 이하에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 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 하라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과거에 선지자들이 받았던 핍박을 상기시키면서 실망 하지 말라고 권면하십니다. 오늘 우리는 주의 말에 순종하기만 하면 모든 환경이 순탄해진다는 기독교적 미신을 버려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도 고난이 닥칩니다. 그럴때 우리는 기뻐 합시다. 하나님은 지금도 이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 루고 계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보세요. 엘리야는 아합 왕에게 하나님의 재앙과 심판을 선언했기 때문에 얼마나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까 하나님은 고난을 면케 하신 것이 아니라 고난 속에서 엘리야를 보호하셨습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닙의 말씀 주신 대로 전파하다가 반역자로 잡히 기도 하고 우물에 던지우는 고난을 당했습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그는 참았고 하나님은 그를 보호하셨습니다. 다니엘이 그랬습니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도 의롭게 산 사람들인데 고난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그들을 보호해 주셨습니다 물론 하나님의 사람들이 고난을 받을 때 꼭 기적이 일어나서 보호된 것만은 아닙니다. 더러는 죽기도 했습니다. 고난 속에서 구출 받는 것도 감사한 일이지만 고난 받아 죽는 것도 사실은 같은 은혜 입니다. 히브리서 11장 33절 이하에 두 종류의 사람을 말합니다. 하나는 믿음으로 적극적인 승리를 가져왔던 사람, 그러니까 전쟁에 승리하 고 적군을 패배시켰던 위대한 승리자를 설명하고, 다른 하나는 고난과 환난속에서 그대로 죽어간 사람들의 믿음을 똑같이 중요한 가 치로 설명합니다. 더러는 죽고 더러는 보호받았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고난은 한 결같이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주님의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능력 으로 견디고 인내하여 증거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 고난을 통 하여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인격을 닮아갔습니다. 주님의 낙원 은혜와 사랑 이렇게 고난을 극복하여 승리한 사람들은 영광스런 눈물을 닦아 아브라함의 품에 안길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즐거워하며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주시고 상처를 싸매 주시며 위로해 주실 것입니다.
3. 욥의 인내를 배워야 함니다 오늘 주신 말씀 11절을 보세요 '보라 인내하는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히 여기는 자시니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고난을 말할 때마다 욥을 생각하게 됩니다. 야고보도 욥의 인내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욥의 인내는 적극적인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내라는 것은 그냥 당하며 참는 것만이 아니고, 참으면서 하나님의 목적을 꾸준히 추구하는 것입니다. 성경이 가르치는 욥의 인내를 이해하기 위해서 욥기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욥이 얼마나 예측하지 못했던 어려움을 당했습니까 그는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생활을 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사단에게 '네가 내 종 욥을 유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 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 이렇게 하나님이 직접 사단에게 욥 을 자랑할 정도였습니다, 사단이 시기할 정도로 욥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고 인정을 받았습니다.
사단의 반응이 어떻습니까 '욥이 까닭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 아십니까 주께서 그와 그 집과 그 모든 소유물을 산울로 두르 셨기 때문입니다, 주께서 그 손으로 하는 바를 복되게 하사 그 소유물이 많게 하셔서 입니다. 이제 주의 손을 되서 그의 모든 소유물을쳐 보세요 그렇게 하시면 반드시 그가 주를 욕할겹니다.' 그때 하나님이 사단에게 그 생명에만 손대지 말고 네 마음대로 해 봐라 해서 욥에게 갑작스러운 환난이 밀어 닥치게 되었습니다. 귀한 아들 딸 10남매가 맏형집에 모여서 화목하게 지내고 있는데 사자가 와서 '소는 밭을 갈고 나귀는 그 곁에서 돌을 먹는데 스바 사람이 와 서 그것들을 빼앗고 칼로 종을 죽였습니다. 나만 홀로 피했기 때문에 주인께 고하러 왔습니다.' 그가 아직 말할 때에 또한 사람이 와서 말하기를 '하나님의 불이 하늘에서 내려와서 양과 종을 살라 버 렸습니다.'라고 보고합니다. 그가 아직 말하고 있는데 또한 사람이와서 '갈대아 사람이 세 떼를 지어 갑자기 약대에 달려들어 그것을 빼앗고 칼로 종을 죽였습니다.'
그런데 또한 사람이 와서 '주인의 자녀들이 맏형 집에서 연회를 베풀고 있는데 거친 들에서 바람이 와서 집 네 모퉁이를 치매 그 소년들 위에 무너지므로 그들이 다 죽었습니다.' 세상에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그때 욥은 겸손히 겉옷울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경배하면서 말했습니다. '내가 모 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 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니닙을 향하여 어리석게 원망하지 아니했다고 했습니다. 그것으로 끝났습니까 그래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아니하자 하나님은 사단더러 '네가 나를 격동하여 까닭없이 그를 치게 했어도 그 가 오히려 자기의 순전을 굳게 지켰느니라' 그래서 사단이 욥에게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악창이 나서 견딜 수 없게 치지 않았습니 까 그의 아내도 '그런 하나님 욕하고 죽으라'고 할 정도였고 위로한다고 찾아왔던 친구들도 오히려 위로는 커녕 욥의 마음만 무겁게 했습니다. 그래서 욥은 비난하는 세 친구에게 방어를 했습니다. 나 중까지 참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욥을 구하시고 갑절의 축복을 하신 것을 우리가 기억합니다. 하나님은 이 고난을 통하여 욥을 겸허하게 하셨습니다.
앤드류 머레이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이 때때로 왜 지체하십니까 하나님이 지체하실 때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갑절의 축복을 준비 하고 계십니다.' 귀한 말씀입니다. 욥은 자기 삶의 배후에서 벌어지는 하나닙과 사단의 싸움에 대 해서는 잘 몰랐습니다. 욥의 친구들은 그를 비난했습니다. '네가 지금 당하는 고난은 네 죄 때문이다. 하나님이 너를 버리신거야. 하나님이 너를 정말 사랑하신다고 믿느냐' 이 말은 오늘 우리에게도 던져집니다. 욥은 그런 고통속에서 흔들린 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결국은 승리했습니다. 욥이 흔들린 것이 오히려 우리에게 위로가 됩니다. 욥 의 인간미를 볼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 욥도 계속되는 고난 속에서 그 마음이 흔들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깊이 신뢰하는 그 마음이 결국은 승리하게 된 것입니다. 욥은 하루 아침에 모든 재물과 자녀. 그리고 그의 건강을 잃었습니다.
그런데 욥은 13장 15절 '그가 나를 죽이시리니 내가 소망이 없노라'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을 좀더 정확하게 번역한 말이 난 외에 있습니다. '그가 나를 죽이실지라도 나는 그를 의뢰하리니'라 고 고백했습니다. 그러면 의인이 왜 고난을 받았습니까 세상 사람들은 고난을 받 을때 자기 죄 값이라고 혹은 조상의 탓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 은 의인도 고난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그런데 욥은 결국 축복을 받았습니다. 욥은 이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알게 되었고 무엇보다 인내를 배웠습니다. 고난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리고 고난을 당하고 있는 욥의 생애 속에도 하나님의 손길은 미치고 있 었습니다. 욥기 23장 10절을 보세요 '나의 가는 길은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 욥은 고난 저편에 순결하고 아름답게 변모한 성숙한 자신을 보았습니다. 우리는 다 참지 뭇하는 약점이 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위인들 도 참지 못한 분들이 있는 것을 보면서 위로를 받습니다. 모세는 참지 못해서 사람을 죽였습니다. 아브라함은 참지 못해서 부인의 충고를 받아들여 사라가 아닌 하갈을 통해서 이스마엘을 낳았습니다. 베드로는 참지 못해서 칼을 빼어 들었습니다. 요한과 야고보도 참 지 못해서 사마리아 사람들이 환영을 안한다고 벼락으로 태워 버리자고 제안했습니다. 왜 참지 못합니까 우리는 급한데 하나님은 잠잠히 계시는 것만 같아서 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참지 못합니다. 성경은 욥의 인 내를 배우라고 말씀하십니다.
서양 속담에 '세계는 인내하는 자의 것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인내하는 사람은 마침내 승리합니다. 오늘 주신 말씀은 초대 교회 성도들이 여러 가지 어려움을 당할 때 주신 메시지입니다. '인내하라' 하셨습니다. 주님은 오시고 계 십니다,
그러므로 인내하라. 곡식은 자라고 열매를 맺습니다. 그러므로 인내하라. 모든 고난에는 목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그의 자녀에게 손해되는 일을 하지 아니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 믿음의 선배들도 고난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고난을 잘 참고 견디고 기다렸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고난올 창조의 기회로 삼았습니다. 요셉의 말대로 '악을 선으로 바꾸시는 하나닙의 역사'에 동참해야 합니다. 그때 지각밖에 넘치는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실 줄 믿습니다. 어려운 일 당할 때 주님을 더욱 의지함으로 축복 받는 여러분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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