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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참으라 (약5:7-11)

본문

많은 성도들 의 신앙생활을 하다가 실패하는 것 중의 하나가 인내하지 못하는 탓입니다. 열심히 기도하다가 응답이 없으면 참지 못하고 기도를 멈춥니다. 열심히 전도하다가 효과가 없으면 전도를 포기합니다. 열심히 충성하다가 열매도 없고 아무 축복도 없는 느낌이 들면 충성의 자리를 떠납니다. 아니,열심히 말씀대로 사노라 했음에도 건강이 나빠지거나 자녀가 삐뚠 길로 나가거나 사업의 큰 어려움을 만나면 신앙의 회의에 빠지기 일 수 입니다. ‘나는 열심히 기도도 하고 주일성수도 하고 십일조 생활에도 성실하고 충성을 하노라 했음에도 여호와 하나님은 축복은 커녕 어려운 문제만 만나게 하시는가’ 목회를 하다보면 여기 저기서 그러한 질문을 듣습니다. 그에 대한 대답은 오직 하나입니다. “길이 참으라”입니다. 특히 우리 한국인들이 현재 앓고 있는 병 중의 하나가 도무지 참지 못하는 ‘성급증’입니다. 그러나 원래 우리 나라 사람이 이렇게 급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차재호 교수에 의하면 구한말 외국인의 눈에 비친 한국인의 모습은 <끈기가 있고 고통과 억압을 잘 견딘다>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일제 36년 동안에 빼앗기고 해방과 6ㆍ25 전쟁 중에 쫓기고 쫓기는 삶 속에서 생긴 병인지 모르나 너나 없이 성급증에 걸리어 있습니다. 신문에 보니까 해외여행시에 한국인을 알아보는 법은 세가지 식별법이 있다고 합니다.
(1)관광 안내원이 한참 설명을 하고 있는데 중간에 말을 끊고 질문을 하거나 아는 체 하는 사람
(2)식당에서 음식을 재촉하고 10분내에 먹고 일어나는 사람
(3)버스나 비행기가 목적지나 공항에 착륙하자 마자 안전벨트를 풀고 얼마나 성급한지 신호등이 바꾸기 전에 건널목을 건너 가거나 차가 출발하므로 사고를 발생합니다. 극장에서도 영화가 미쳐 끝나기도 전에 우르르 일어납니다. 그래도 거기까지는 이해가 되지만 최근에는 너무 급한 것이 악성이 되어 이규태씨의 표현대로 <카악병>에 걸리어 웬만한 것은 참지를 못함으로 무서운 범죄를 저지르는 지경이 되었습니다. 요즈음 우리는 대단히 충격적인 사건을 만나면서 이럴 수가 있을까 개탄해 마지 않고 있습니다. 48세 되는 한약상 아버지와 어머니가 자는 사이 그 아들이 수없이 칼로 찔러 버리고 휘발유를 뿌리고 불질러 버린 패륜사건입니다. 어쩌다가 사회가 이 지경까지 이르렀는지 한심하기 그지 없습니다. 그러나 그 사건을 자세히 살펴 보면 참지 못함에서 온 결과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한약상 박한상 씨는 백억 대의 돈은 벌었으나 큰 아들이 제 구실을 못하자 성급하게 미국으로 어학연수 목적으로 유학을 보낸 것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그 곳에 가서 나쁜 친구들을 사귐으로 도박 등에 빠지어 몇만 달러를 탕진하는 등 타락하여 결국 도박자금과 빚을 갚기 위해 지난 4월 20일 귀국했다가 아버지에게 들통이 나게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이런 정신적으로 병든 아들을 보면 ‘나의 욕심 연고라 ’라고 회개하면서 아들을 부여 안고 울었다면 그래도 이런 끔찍한 결과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아들을 보고 카악 성질을 부리기를 ‘너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무능한 놈’이라고 완전히 자존심을 짓밟으면서 ‘너는 내 아들이 아니니 호적을 파가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바로 그 순간 범행을 계획했다는 것입니다.
그 아들도 그 순간에 일어나는 카악병을 물리치고 한번만 참았다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아무리 아버지에 대해 화가 나더라도 그런 끔찍한 살인죄를 저지른다는 것은 짐승보다 못한 짓인 줄 알고 카악하는 순간적인 성질을 참았더라면 유산도 한 푼도 받지 못하고 교도소에서 무기징역으로 살거나 사형을 당하는 비참한 종말은 당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게다가 사건을 당한 박한상 씨 그 부부는 답십리에 있는 모 교회에 출석을 잘하던 교회집사였다는 점에서 더 큰 경악을 남깁니다. 한국인은 너나 없이 이러한 성급증에 걸리어 있습니다. 우리 신자들도 예외가 아닙니다. 신앙생활에서 이러한 성급증은 많은 장애요소가 됩니다. 빨리 응답이 안된다고 기도하다가 포기합니다. 빨리 축복, 빨리 능력을 받으려고 지름길을 택하다 보니 이단에 빠지고 맙니다. 이렇게 말하는 목회자인 저도 그러한 병에 걸리어 있어서 늘 무엇엔가 쫓기고 삽니다. 조그만 한 일에도 참지를 못합니다. 교회가 빨리 성장이 안된다고 안달이 일어납니다. 그것은 믿음의 태도가 결코 아닙니다. 오늘 본문은 어떠한 환경에서도 “길이 참으라”고 하면서 우리에게 네가지 면에서 권면하고 있습니다. 지난 5월 28일 신문에 나온바에 따르면 서울대에서 교수 임용 추천서를 써주지 않는다고 옛 지도교수에게 칼부림을 휘두른 박사과정 수료생의 경우도 사실은 카악병의 일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열매를 바라보면서 인내하라고 했습니다 7절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의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비와 늦은비를 기다리나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참음이나 인내는 노예처럼 온갖 수모를 참는 수동적인 인내가 아니라 적극적인 인내,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인내를 말합니다. 그러한 인내를 우리는 농부들에게서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아마 농부처럼 잘 참고 기다리는 것을 배운 자도 드물 것입니다. 참지 못하는 자는 농부로서 자격이 없는 자입니다. 농부는 일년 내내 참고 기다리면서 일을 합니다. 봄이 오면 거름을 내고 밭을 간 다음 씨앗을 뿌립니다. 그리고 싹이 나면 김을 매 주고 곡식이 자라면 북을 주고 지주를 받치어 줍니다. 때를 따라 거름도 주고 농약도 칩니다. 그러면 어느 날엔가 탐스러운 열매를 맺는 날이 옵니다. 그러나 농사 짓는 것은 그렇게 쉽지 않습니다. 어느 때는 곡식이 한참 자라는데 비바람이 불어 곡식을 쓰러트립니다. 병충해가 나타납니다. 새들이 와서 쪼아 먹습니다. 유대 나라에서는 비가 잘 오지 않아 가뭄이 극심할 때가 많습니다.
그런 때라도 농부는 씨앗을 심을 때는 이른 비를 인내로 기다리고 곡식이 익을 때는 늦은 비를 인내로서 기다립니다. 비바람이 부나 가뭄이 오나 뙤얕볕 속에서라도 가을 들판에 탐스럽게 열릴 풍성한 열매를 바라보고 길이 참는 것입니다. 성경 속에 나타나는 위대한 인물들은 다 이러한 적극적인 인내를 소유한 분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실 약속의 열매를 소망하면서 수많은 세월을 길이 참았던 것입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노아는 120년을 방주를 지으면서 하나님의 때를 기다렸고, 아브라함은 25년 동안 충성을 다하면서 약속의 아들을 기다렸습니다. 모세는 40년의 세월을 광야교회를 목회하면서 기다렸고,다윗은 엄청난 시련 속에서라도 사무엘 선지를 통해서 기름 부은 약속을 소망하며 많은 세월을 기다렸습니다. 역사 속에 살았던 위대한 이들도 다 소망 중에 인내한 분들입니다. 식물학자 루터 바뱅크는 콩,오이,사과,옥수수,감자,복숭아 및 많은 화초의 개량종을 만들기 위해 무려 6천번이나 실험을 하면서 기다리므로 많은 발명의 열매를 얻었습니다. 미국의 유명한 전기제품의 회사인 웨스팅하우스를 설립한 조지 웨스팅 하우스는 열차의 제동장치인 에어 브레이크를 연구할 때 수많은 사람들이 ‘아니,공기로 쇳덩어리 기차를 정거시키려고 하다니 저런 어리석은 자가 있는가’라고 비웃는 모욕적인 입장에서라도 인내를 거듭한 결과 오늘날에는 버스까지 에어 브레이크를 사용하는 성과를 거둔 것입니다. 존 매칼은 대학에서 지질학을 전공하고 석유가 나오지 않는 폐광을 빚을 내서 인수한 후 600 피트까지 파내려 갔으나 석유가 나오지 않자 식구와 모든 친척과 친지들이 비난을 퍼부었고 많은 채무자들이 몰려와 아우성을 치는 속에서 자살을 기도하다가 어차피 죽을 목숨, 끝장을 봐야겠다는 생각으로 70 피트를 더 파내려 갔을 때 엄청난 석유가 터지어 나와 하루에 12,000 배럴이 나오는 석유 재벌이 되었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이여. 지금 눈 앞에 있는 답답한 문제나 환경, 시련을 바라보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반드시 성도들에게 풍성한 열매를 주시는 날이 올 줄 소망하고 길이 참고 인내하면서 믿음의 씨를 심으십시오.
기도의 비료를 더 주십시오. 인내의 삽으로 더 깊이 파내려 가십시요. 충성의 망치로 계속 방주를 지어 가십시오. 그러면 어느 날엔가 큰 열매,큰 터짐, 큰 방주의 새 삶이 열리는 날이 올 줄 믿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믿음을 굳게 함으로 인내해야 합니다 8절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게하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굳게하라”는 헬라어는 ‘스테꾸사테’로 그 뜻은 ‘굳게 고정한다’ 입니다. 즉 마음을 굳게 고정하라는 내용입니다. 어디에 고정 시킵니까 8절 하반절절에 나옵니다. “주께서 가까우니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마음을 고정시킬 곳은 주님입니다. 주님의 약속의 말씀입니다. 우리 인간의 모든 것은 마음으로부터 일어납니다. 불만이나 탐욕이나 음욕이나 명예욕이나 미움이나 증오도 전부 마음으로부터 시작됩니다. 동시에 기쁨이나 감사나 사랑이나 대접도 사실 마음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행복한 것과 불행한 것은 모두 마음 먹기에 달린 것입니다. 어느 사람은 궁궐에서도 불행을 느끼고 사는 반면 어느 분은 초막에서도 천국을 느끼고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잠언 4:23절에서 말씀하기를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고 했습니다. 마음 먹기에 따라 생명이 움트기도 하고 사망의 역사가 나타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마음을 어떻게 지킬까 우리의 마음을 주님의 마음에 고정시키도록 계속 힘써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돈에 마음을 두거나 아내나 남편 혹은 자식이나 명예에 마음을 두면 사탄이 그 마음에 틈타서 탐욕과 음란과 명예욕으로 가득 차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여러분의 마음은 무엇에 매여 있습니까 마음은 바다와 같습니다. 의심은 큰 풍랑과 같아서 신앙의 배가 큰 흔들림으로 시달리게 되고 심한 경우 파선을 만나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마음으로 굳게하고 있을 때 하나님을 향한 신앙의 배는 힘차게 나아갑니다. 운보 김기창 화백은 벙어리였습니다. 어릴 때부터 동네나 학교 아이들로부터 온갖 놀림을 받고 자랐을 것입니다. 또한 스스로도 너무나 낙심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거기에 매이지 않고 흔들리지 않게 된 것은 그의 어머니 한윤명 씨의 기도탓이었다고 간증하고 있습니다. 어머니는 병신 아들을 위해 얼마나 열심히 기도했는지 걸으면서 했고 일하면서도 했을 정도라고 합니다. 그 어머니의 마음을 배워서 자기도 온갖 가시밭 길에서도 실망치 않고 하나님께 마음을 두었다고 했습니다. 그 결과 어느 누구도 따를 수 없는 유명한 화백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이여. 아무리 답답하고 안타까운 문제나 환경이 눈 앞에 있을지라도 거기에 매이지 말고 우리의 눈과 마음을 주님께 고정하여 두심으로 인내로서 기다리므로 주님의 역사를 만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서로 원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9절 “형제들아 서로 원망하지 말라.그리하여야 심판을 면하리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소망 중에 기다리는 인내의 삶을 살 때 가장 조심할 것은 원망의 말을 해서는 안됩니다. 다시 말하면 마음을 지키어야 하는 것처럼 입도 지키어야 합니다. 특별히 우리의 입이 원망의 말을 하지 않도록 지키어야 합니다. 왜 원망이 생깁니까 마음을 주께 고정하지 않고 자기의 욕심에 고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기주의 마음 탓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주님을 향해 고정되어 있으면 주님의 평안과 기쁨,사랑,용서의 마음으로 가득차서 거기에서 감사와 찬양이 입으로 나오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내 욕심에 마음이 매여 있을 때는 거기에서 이기주의가 생기고 남에 대한 원망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아담과 이브가 범죄 후 하나님의 마음이 떠나자, 남편은 아내를 원망하고 아내는 뱀을 원망했습니다. 오늘 9절에서 원망하는 자는 심판을 받는 것은 사탄이 틈타고 있는 마음이요, 사탄이 기뻐하는 말을 하기 때문입니다. 어느 사람은 쩍하면 원망하기에 빠릅니다. 하나님은 원망하고 목회자를 원망하고 부모나 남편,아내,자식을 원망합니다. 이런 사람은 의심하는 죄보다 더 큰 죄를 짓는 자입니다.
왜냐하면 원망하므로 남에게까지 나쁜 영향을 주기 때문입니다. 말이 씨가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원망의 말을 하면 이것이 듣는 이의 마음 속에 씨앗이 되어 미움의 나무를 키웁니다. 결국 원망의 열매를 내게다가 가져다 줍니다. 지난 주에 부부초청 세미나에서 김종주 장로님은 칭찬은 보약과 같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원망은 독약과 같습니다. 서로가 칭찬 하면서 살면 점점 영육 간에 건강하게 살게 됩니다. 그러나 서로가 원망하면 점점 병들어가게 됩니다. 어느날 아내가 남편에게 여름 양장 한벌 사달라고 하니까 남편이란 자가 아내를 보고 고작 한다는 소리가 ‘당신도 파싹 늙었으니 이제는 볼짱 다 본 인생인데 좋은 옷입는다고 바뀌어지나’라고 합니다.
오는 말이 고아야 가는 말도 곱습니다. 아내는 ‘거 말 잘했소. 당신에게 시집을 와서 고생을 바가지로 하다 보니 이 모양 이 꼴이 되었어요. 나는 중매쟁이가 원망스러워요’라고 쏘아댑니다. 이에 질세라 남편도 한 수 더 뜹니다. ‘오라. 말 잘했소. 내가 눈이 삐었지. 왜 당신하고 결혼했는지. 인물이 잘 났나.처가가 잘사나. 요리를 잘하나. 성질은 개떡같지’라고 부부가 말끝마다 서로 원망하기 바쁩니다. 두 사람이 남는 것은 온통 미움의 잡초만 무성합니다. 말은 아무 무서운 것입니다. 헬라 속담에 혀는 뼈 하나 없고 약하고 적으나 많은 사람을 찌르고 죽인다 했고 터키 속담에는 혀는 검보다 더 많은 사람을 죽인다 했으며 파사 속담에는 혀가 길어지면 생명이 짧아진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혀를 통해서 복을 받기도 하고 혀를 통해서 화나 심판을 받기도 하는 것입니다. 혀에서는 두가지 물이 나온다고 야고보서 3장에서는 말씀했습니다. 단물과 쓴물입니다. 혀를 통해서 기도하고 전도하고 말씀을 전하고 찬양하고 사랑을 고백하고 남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단물이 나옵니다. 그러나 반대로 혀로 남을 비난하고 원망하고 혹은 중상모략을 할 때 쓴물이 나와 하나님의 심판을 면치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원망은 사람을 비수를 찌르게 하는 것과 같이 조그마한 칭찬은 큰 양약의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지금부터 50여년 전에 한 소년이 포목점 점원 노릇을 했습니다. 하루에 14 시간씩 중노동을 하면서 그 이에 대해서 지긋지긋한 생각이 들어 죽고 싶었습니다. 그는 자기 옛날 선생님에게 편지를 써서 자기의 심정을 토로했습니다. 선생님에게 답장이 왔습니다. 그 편지에는 소년의 문장에 대해서 칭찬이 담기어 있었습니다. 그 소년은 용기를 얻고 열심히 독학하여 나중에는 77권의 책을 썼는데 그가 바로 영국이 낳은 세계적인 역사학자 H.G 웰즈 였던 것입니다. ‘너는 아무 것도 못하는 무능한 놈이야’라는 남에게 상처를 입히는 말 한마디가 설교 초두에 말씀 드린 아버지를 죽이게 하는 무서운 결과를 가져온 반면 선생님의 칭찬 한 마디가 웰즈를 만들어 낸 것입니다.
지금 신청 받고 있는 테이프는 한신대 정태기 교수의 강좌 내용인데 그 교수가 오늘 그렇게 된 것은 국민학교 때 담임선생님의 말 한 마디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잘못을 저질러서 매를 열대 맞게 되었는데 선생님이 때리면서 우시면서 하시는 말씀 ‘내가 너를 믿었는데 내가 너를 믿었는데’라는 내용이 그의 삶을 변화시키는 동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큰 도우심을 만나려면 입을 지키어야 합니다. 약1;26절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먹이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고 했습니다. 성도 여러분이여. 우리가 하나님의 큰 도우심을 기다리고 있는 동안 우리 혀를 단단히 재갈 먹여 지킴으로 서로 원망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오히려 여러분의 혀가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하고 서로 사랑하고 격려하도록 힘쓰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앞서간 성도들의 인내의 본을 따라야 합니다 10절,11절 “형제들아,주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로 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을 삼으라. 보라,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애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는 자시니라”고 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모든 위대한 분들은 모두 인내로 기다린 자들이었습니다. 그 중에 인내하면 가장 두드러지게 보여지는 분이 욥입니다. 욥은 가장 참을 수 없는 지경에서 오래 참아낸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욥은 당대의 의인이었으나 어느날 큰 불행의 바람이 불어와 아들 7명,딸 3명이 몰살당하고 양 7천,약대 3천,소 5백 겨리,암나귀 5백 마리를 순식간에 잃어 버리는 큰 비극을 만났습니다. 욥이 무슨 죄를 져서 이러한 천벌을 받는다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되지만 아무 죄도 없이 이런 끔찍한 일을 당하니 그 영적 고통이야 말로 참담 그대로 입니다. 우리 같으면 자식 중에 반만 그렇게 다 죽었으면 하나님을 원망하고 떠나 버리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온자녀, 온 재산까지 다 잃었습니다. 엎친데 겹친격으로 온 몸이 문둥병자처럼 만신창이가 되었습니다.
너무 가려워서 기왓장으로 긁어야 했습니다.
그런데다가 친구들이 와서 위로인지 훈계인지 끝없이 떠들어 대지요, 옆에서 그의 아내는 자식을 앓고 나서 악에 받혔는지 차라리 하나님을 원망하고 칵 죽으라는 식으로 부앗장을 일으킵니다.
그러므로 우리 부부 사이나 친구 사이, 성도 사이에도 가장 가까이 있을 수록 예의를 갖추어야 합니다. 때로 교인이나 목회자를 핍박하는 사람이 불신자가 아니라 신자들에 의해서 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욥은 아내가 뭐라든 친구가 뭐라고 따지든 오직 그 마음을 하나님께 고정시키고 길이 참았습니다. 그 비참함은 상상을 초월한 것입니다. 욥은 전혀 위로 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이제 하나님도 전혀 의지할 수 없는 영적인 암흑에 싸여 있었습니다. 그런 캄캄한 날에도 욥은 하나님을 전혀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고 의지합니다. 수많은 비난과 원망을 들으면서도 11절에 나오는 말씀대로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만 바라보았습니다. 마침내 하나님이 그 믿음을 인정하시고 보상해 주시는데 잃었던 자녀대로 10명을 다시 허락하십니다. 잃었던 재산의 배로 채워주시었습니다. 자,
그렇다면 욥의 고난에 비하면 우리가 당한 고난이나 문제는 얼마나 보잘 것 없는 것입니까 이러한 하잖은 문제 앞에서 낙심하거나 원망한다면 어떻게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랄 수가 있습니까 아니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되 반드시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사랑의 하나님으로 믿어야 합니다. 모든 자가 다 하나님을 의심하는 환경에서도 그런 믿음을 보여야 합니다. 그 때 길이 참고 기다리는 믿음을 보시고 넘치게 채워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영국의 청교도였던 존 번연은 복음을 열심히 전하다가 투옥이 되고 말았습니다.
존 번연은 무척이나 정열적이고 활동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작고 냄새나는 감옥에 도저히 참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날이면 날마다 창살을 부여 잡고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오 주여, 제발, 제게 자유를 주옵소서.하나님의 일을 자유롭게 하기를 원하나이다. 이렇게 갇힌 채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것 견딜 수가 없나이다’. 그러던 어느날 그가 창살을 부여잡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고 있는데 하늘에서 음성이 들리는 것이 아닙니까 “번연아!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하고 세번씩이나 똑같은 음성이 들리는 것이었습니다. 번연은 그때 그것이 하나님의 음성인 줄 깨닫고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렇구나.내가 비록 감옥에 있을지라도 주님께서 내게 족한 은혜를 주시는구나.’ 이 일이 있은 후부터 그는 좁고 냄새나는 감옥에서나마 기쁜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더욱 깊은 하나님에 대한 묵상과 감사 속에서 저 유명한 천로역정 을 저술함으로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히는 책이 되었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이여. 우리는 주님이 재림이 가까운 이 때에 때로 우리 앞에 놓인 답답하고 안타까운 환경을 보지 마시고
(1)열매를 소망하며 길이 참으라
(2)마음을 주게 고정시키고 길이 참으라
(3)혀를 자갈 먹여 서로 원망하는 자 되지말라
(4)앞서 간 성도들의 인내를 본 받아 살므로 하나님의 큰 도우심을 만나는 삶을 사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홍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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