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여! (롬10:16-11:36)
본문
서언 지난 주일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의 섭리에 있어서 하나님의 의는 믿음의 고백에서 난 의라고 공부하였다. "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 이것은 우리가 하늘에 올라감을 쟁취할 필요도 없고 지옥의 형벌을 내힘으로 피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준비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의이다. 이 의를 받아들인 이방인은 구원을 받았고 이 의를 거절한 유대인은 부딪힐 돌에 부딪히게 된것이다. 이제 이와 같은 쉬운 구원의 길이라 할 찌라도 전파하는 자가 없으면 듣지 못하고 구원을 얻지 못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복음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자의 아름다운 발을 소유해야 한다는 것으로 우리는 지난 주의 결론을 맺었다. 이제 오늘은 그러면 유대인들이 걸림돌에 걸려 넘어지고 이방인 들이 구원을 받게 되었는데 여기에 관한 하나님의 비밀은 무엇인가 하는 것이 오늘 본문의 말씀이다.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와 지혜가 오늘 말씀에 담겨있다. 이것을 알면 이제 온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그 행하심을 이해하고 찬양하게 될 것이다.
1. 복음을 순종치 아니한 이스라엘(10:16-18) / 저들은 조상적부터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구원의 복된소식을 받아들이지 아니하였다(16). 바울의 말대로 안식일 마다 읽는 성경을 깨닫지 못하고 가리운 바 되어서 이 구원을 거부한 것이다. 이것은 이스라엘에 있어서 가장 큰 불행이다. 이들이 복음을 거부한 이유는 저들의 완악함에 있으나 하나님은 이것을 통하여서 놀라운 세상의 구원을 이루신 것이다.
1) 우리는 여기서 한 원리를 발견하게 된다.(17) / 그것은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인한 것이라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말씀이라는 것은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라는 의미도 되나 그리스도에 관한 말씀을 의미한다. 즉 십자가의 대속과 부활의 승리이다. 여기서 한가지 공식이 성립된다. 구원-믿음-들음-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이 공식을 잊어선 않된다.
믿음은 복음의 사실을 믿는 것이지 결코 내 감정이나, 체험이나, 어떤 신비한 것들을 믿는 것이 아니다. 또한 적극적인 성격도 아니다.
2) 모두 들었다.(18) / 이제 유대인들이 복음을 믿지 못한 것은 결코 듣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다. 바울은 " 그 소리가 온 땅에 퍼졌고, 그 말씀이 땅 끝까지 이르렀다. " 고 말한다. 적어도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복음을 받지 못한 사람은 없었다. 그들은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말씀을 들었고 그 사랑과 능력의 손길을 체험했다. 이방인들 역시 복음에 대해서 충분히 들을 수 있었다. 이것은 하나님이 주신 선한 양심과 자연으로 말미암는 계시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실제로 거의 모든 땅에 복음은 전해졌다. 선교 1세기 만에 서바나와 인도 중국까지도 퍼진 것이다. 대부분의 역사가들은 사도들의 시대가 끝날 무렵 그리스도인의 숫자는 적어도 50만명 이상 되는 것으로 이야기 한다. 당시의 인구로 볼 때 이는 엄청난 것이다. 이제 들은 자들에게는 믿어야 할 책임이 주어지는 것이다. 만일 그렇지 않으면 복음은 저들에게 유익이 되지 못하고 영원한 멸망이 저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들은 복음을 믿지 않고 거부함으로 인해서 핑계치 못할 심판 아래 놓이게 되었다. 우리도 이미 믿었으나 삼가 그 믿음이 떠내려 가지 않도록 진실과 성실로 주님의 복음을 지켜야 한다.
2. 3가지 예언(19-21) / 이제 말씀은 하나님의 3가지 예언을 한자리에 모아 놓음으로서 하나님의 구원 섭리와 이스라엘에 대한 의로우심을 말한다.
1) 먼저 이방인 으로 은혜를 베풀어서 이스라엘을 시기케 하시겠다는 것이다(19) /
그러므로 유대인들이 복음을 거부한 것은 바로 이방인을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이다. 그러나 그것은 허용작정에 속한 것이다. 그 책임은 전적으로 유대인의 완악함에 있는 것이다.
2) 구하지 않은 백성들에게 구원을 나타내었다.(20) / 물론 여기도 믿음을 전제한 동일한 복음이다. 하나님을 찾지 아니한 백성들에게 자신을 나타내시고 저들을 구원하신 것이다.
예) 우리나라 백성들은 조상적부터 하나님을 찾지 않았다. 그러나 긍휼을 입고 많은 사람이 부르심을 입은 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마음을 여시고 복음을 받아들이게 하신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은 왜 이스라엘은 마음을 열지 않으시고 완악함에 내어버려 두시고 이방인은 마음을 여셨는가 이스라엘도 마음을 여셨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 아닌가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은 다음 예언에서 해결이 된다.
3) 이스라엘을 향하여 종일 내 손을 벌렸다.(21) / 이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백성이요, 거스려 말하는 백성이다. 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나 하나님은 계속해서 그 손을 펴고 저들을 부르셨다. 그럼에도 저들은 돌아보지 않았고 그 말을 하는 하나님의 종들을 핍박하고 죽였다.
그러므로 저들의 멸망은 오직 저들의 완악함에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모든 것을 선하게 운영하실 뿐만 아니라 의도적인 불신앙을 조장하시는 분이 아니다. 이방인이나 유대인이나 모두에게 하나님은 사랑이시며 그 인자를 끊이지 않으신다. 여기서 우리는 이방인이나 유대인이나 모두를 부르시는 하나님의 간절함을 본다. 주님의 말씀대로 " 이 우리(이스라엘)에 들지 아니한 양들이 있어서 저들도 이끌림을 받아서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 " 고 하신 말씀이 성취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의 자세를 돌아보아야 한다. 누구를 낮추거나 누구를 제외하는 일이 있어선 않된다. 하나님의 부르시는 손길을 내가 제한 해서는 않되고 우리 주님처럼 거스려 말하는 백성이라도 종일 우리의 손은 펼쳐져 있어야 한다. 이것이 복음을 맡은 자의 자세요, 하나님의 구속받은 성도의 마땅한 자세이다. 나중에 언급하겠으나 이스라엘은 바로 이 자세가 없어서 망한 것이다.
3. 이스라엘의 넘어짐에 대한 언급(11:1-12) / 바울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실 수 없다는 말로서 이스라엘에 대한 언급을 시작한다.(1,11) 이제 두가지 구약의 내용을 들어서 이스라엘의 넘어짐과 그러나 아주 엎드러지지 않음을 설명한다.
1) 이사야의 말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2-6) / 때는 배교가 가장 극심했던 아합과 이세벨이 집권할 때의 이야기이다. 이사야가 낙심하여 이스라엘이 다 하나님을 버리고 나 혼자 남았습니다. 하고 하나님께 호소했을 때에 하나님은 “ 아니다 나를 위하여 바알에 무릎을 꿇지 아니한 7000명을 남겨두었다 ”고 하심으로 하나님께서 다시 하나님을 섬길 나라를 구성할 그루터기를 남겨 두셨음을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지금도 다 하나님의 복음을 거절한 것이 아니라 그 중에 구원 받을 자가 남아 있음을 언급한다. 이들이 나중에 다시 신앙의 꽃을 피우는 그루터기가 될 것이다. 그리고 바울은 이들이 택하심을 따라 된 것임을 한번더 언급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리고 택하심을 따라 된것은 은혜로 된것임을 강조한다.
그러므로 유대인이든지 이방인이든지 다 구원 얻는 것은 은혜의 택하심을 따라 되는 것이다.
2) 다윗의 예언(7-12) / 다윗은 “ 저의 밥상이 올무가 되고 덧이 되게 하옵시며, 거치는 것과 보응이 되게 하옵시며, 저희 눈은 흐려 보지 못하고 저희 등은 항상 굽게 하옵소서! ” 했다. 이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저들의 완악함을 따라 되어지는 영적 어두움을 언급한 것이다. 이 어두움으로 인해서 저들은 결국 하나님의 진리와 구원을 얻지 못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마치 하나님께서는 이방인을 구원하기 위하여 일부러 저들을 이같이 한 것처럼 기록하고 있다는 것이다. (11) 혼미한 심령과 보지 못할 눈과 듣지 못할 귀를 주셨다(8) 함은 그같이 되도록 버려두심을 의미한다. 여기에는 또한가지 비밀이 있다. 그것은 바로 이와같이 해야 이방인의 구원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면 여기서 또한가지 의문이 든다. 그것은 왜 이방인이 구원을 얻기 위해서 저들이 완악하게 되어져야만 하는가 저들도 믿고 저들이 이방인을 구원하면 되지 않는가 여기서 우리는 이스라엘의 완고한 선민의식이라는 문제에 부딪히게 된다. 만일 저들이 예수 그리스도롤 받아들였다면 에수 그리스도는 이스라엘의 구주는 되었을지 모르지만 결코 세상의 구주는 될 수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저들은 그 복음을 자기들의 것만으로 가두어 놓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전파되었어도 율법적 저들의 행위의 의와 적당히 결합하여 본질적인 복음 순수한 그리스도의 구속은 변질되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차라리 완악케 됨을 허락하셔서 복음을 배척하게 함으로 말미암아 이방인에게 순수한 복음이 마음대로 전파되어 택하신 백성을 구원하려 함이다. 할렐루야! 여기서 우리는 잘못된 선민의식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를 볼 수 있다. 하나님의 의에 전적으로 순종치 않고 무엇인가 자기 의를 세우는 것, 복음의 순수함에 가감하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 그것은 복음을 가리우는 것이고, 이제 이스라엘은 바로 그와같은 완고함을 가지고 있었기에 하나님의 복음을 담을 그릇이 되지 못한 것이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 새포도주는 새부대에 담아야 둘다 보전되는 것이다. " 이스라엘의 부대는 복음을 담지 못하고 터져 버렸다. 우리 자신을 살펴서 혹시 자기의로서 하나님의 복음의 의를 가리우지 않는가 생각해 보도록 하자.
3) 그러나 바울은 그렇다 해도 역시 이는 완전히 넘어진 것이 아니요, 이방인 중에서 택한 백성을 구원하기까지 그리 된것이다 라고 말한다. 그리고 만일 이스라엘의 그루터기가 싹이 나고 열매맺을 때는 더욱 더 온 세상에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게 될 것이다.(11-12)고 한다.
4. 이방인의 자세(13-25) / 본문에서 바울은 이방인인 로마교회 성도들에게 편지하면서 그렇게 때문에 복음을 받은 우리가 가져야 할 자세와 신앙을 언급하고 있다.
1) 바울은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것을 영광스럽게 여긴다. (13-15) / 하는 말로서 바울은 자신의 직분에 대한 입장을 표현한다. 바울이 유대인이라는 사실을 참작해 볼 때 유대인르로서 이방인의 사도임을 영광스럽게 여긴다는 것은 불가능한 이야기임을 알 수 있다. 그들은 이방인을 상종하는 것을 부정하게 여겼고, 율법이 없는 백성과 교제하는 것을 수치스럽게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면 바울의 영광은 어디서 온 영광인가 그것은 바로 이방인을 부르시는 하나님의 경륜에 자신이 쓰임을 받는다는 것을 영광스럽게 여긴것이다. 아무것도 꺼림 없이 단지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일에 쓰임을 받는 것으로 영광스럽게 여길 수 있는 믿음이 모든 하나님의 종들과 성도들에게 필요하다.
예) 시골교회 도시교회 목회자들의 심리!
2) 자긍하지 말고 겸손해라(16-21) / 먼저 이스라엘에 대해서 자긍하지 말라. 돌감람나무인 네가 참감람나무에 접붙임을 받아서 그 진액을 받는 것이니 네가 뿌리를 보전하는 것이 아니라 뿌리가 너를 보존하는 것이다. 또한 겸손해야 할 것은 하나님 앞에 겸손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원가지들도 아끼지 않고 열매를 맺기 위해서 제해 버리셨으니 너희도 만일 믿음에 거하지 않으면 제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공의로우신 손길 안에서 겸손해야 한다. 실제로 제하여 버리시는 말씀들이 요한 계시록에 보면 종종 경고되어 있다. 저들이 믿음에 서지 않았을 때 혹은 권고의 날 회개치 않았을 때 촛대를 옮겨 버리신다고 경고하신 것이다. 그리고 그 경고를 받아들이지 아니한 사데교회나 에베소 교회들은 지금 완전히 무너져 버린 것을 볼 수 있다.
3)
그러므로 복음에는 하나님의 인자와 엄위가 나타나 있다.(22-24) / 믿지 아니하고 넘어지는 자들에게는 엄위가 있고 믿음으로 받는 자들에게는 인자가 있다. 이것이 복음 안에 분명히 되어 나타나 있는 것이다. 믿는 자들에게는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대속의 인자하심이 넘치도록 나타나 있다. 그 이상의 사랑을 어디서 찾아 볼 수 있겠는가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음으로 그 사실을 받지 않고 회개치 않는 자들에게는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심판이 어김없이 주어지는 것이다. 그들이 비록 이스라엘 족속 아브라함의 자손들이라 할찌라도 그것을 변치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절대로 인격적이신 하나님 아버지의 인자와 엄위하심을 우리는 복음 안에서 얼마든지 느낄 수 있다. 이것은 이방인이나 유대인을 막론하고 동일하다. 이제 바울은 이스라엘의 넘어짐에 대한 결론으로 이것은 이방인 즉 세상 모두가 하나님의 구원을 얻게 하기 위함이요, 이제 돌감람나무도 본성을 거스려 구원의 백성을 삼으셨으니 원 가지들이야 얼마든지 더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함으로서 결론을 짓는다.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으리라! 고 한 것은 그 구원이 클 것을 예언한 것이다. (24-25)
5.
그러므로 이와같이 된 것은 하나님의 비밀의 경륜이요,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다.(25-32) / 유대인은 그 조상으로 말미암아 부르셨고 이방인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부르심을 얻었다. 그러나 이것은 그 근본에 있어서 다른 것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믿음의 조상들을 통해서 이미 예언되시고 예표되신 분이다.
그러므로 이방인이 부르심을 얻은 것은 바로 유대인 덕분이며, 또한 이방인 덕분에 시기케 함으로 유대인이 구원을 받게 되니 이는 공정한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온 세상을 부르시는 하나님의 온전하심과 부요하심을 본다.
그러므로 바울은 “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 ” 고 하신 것이다. 32절에 " 모든 사람을 순종치 않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라 "는 말씀의 의미가 바로 이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경륜을 볼 수 있다. 할렐루야! 6. 이제 말씀은 하나님의 비밀의 경륜의 위대하심을 찬양하는 내용으로 이어진다.(33-35) / 먼저 바울은 이 기묘하고 아름다운 하나님의 전능하신 영광을 33절에서 찬미한다. "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 그 영광의 찬송을 주제별로 요약해 보면.
1)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 하나님의 의에 관한 한 아무도 알지 못하고 헤아리지 못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의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감취어 있으니 이방인에게는 알지 못한 것이요, 유대인에게도 깨닫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택하신 자녀에게 나타내신 영광스러운 구원인 것이다.
2)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며. / 이것은 하나님의 지혜를 의미한다. 고전 1:21의 말씀대로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사람들이 자기 지혜로 전혀 알지 못하는 것이다. 아무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구원의 길을 찾지 못했다. 에덴 때부터 두루 도는 화염검으로 지켜진 길이다. 오직 주님 만이 " 진리와 생명의 길 " 이 되셔서 천국에 이르는 시온의 대로를 활짝 열어 놓으신 것이다.
3)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 주님의 모사가 되었느뇨 / 이는 선하심을 의미한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이루시는 이 아름다운 일이 다른 누구에게도 없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오직 하나님의 선하심이 그 풍성하신 인자하심이 이 일을 만들어 낸 것이다. 이방인의 무지한 죄악과 유대인의 완고한 사악함까지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우리는 자손 만재 찬양할 것이다.
할렐루야!!
4) 누가 주님께 먼저 드려 갚으심을 얻었느뇨 / 선행도 그리하고 물질도 그리하다. 하나님께 먼저 드렸더니 갚아 주셨다고 말할자는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마치 자녀가 부모에게 내가 공경했더니 나를 길러 주셨다고 말하는 것과 일반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선을 행해서 나를 구원해 주신 것이 아니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서 죄인을 거듭나게 하셔서 비로서 하나님의 뜻을 행할 수 있는 새생명의 선을 주신 것이요, 내게 있는 모든 것은 내가 하나님께 드리기 전에 이미 하나님께서 내게 은혜로 값없이 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결론(36) "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 우리의 영육간의 모든 것이 다 주님의 창조물이요, 내게 주신 의와 구원도 역시 택하심을 따라 주신 주님의 은혜의 선물이요, 그리고 나와 나의 모든 것과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온세상 사람이 다 주님께로 돌아갈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신앙자세는 언제나 " 영광이 주님께 세세 무궁토록 있어지이다. 아멘! " 하는 자세가 되어야 한다. 다시한번 36절을 읽으며 주님을 찬양함으로 오늘 주신 말씀을 찬송하시기 바랍니다.! 11:36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 !!
그러므로 우리는 이 복음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자의 아름다운 발을 소유해야 한다는 것으로 우리는 지난 주의 결론을 맺었다. 이제 오늘은 그러면 유대인들이 걸림돌에 걸려 넘어지고 이방인 들이 구원을 받게 되었는데 여기에 관한 하나님의 비밀은 무엇인가 하는 것이 오늘 본문의 말씀이다.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와 지혜가 오늘 말씀에 담겨있다. 이것을 알면 이제 온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그 행하심을 이해하고 찬양하게 될 것이다.
1. 복음을 순종치 아니한 이스라엘(10:16-18) / 저들은 조상적부터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구원의 복된소식을 받아들이지 아니하였다(16). 바울의 말대로 안식일 마다 읽는 성경을 깨닫지 못하고 가리운 바 되어서 이 구원을 거부한 것이다. 이것은 이스라엘에 있어서 가장 큰 불행이다. 이들이 복음을 거부한 이유는 저들의 완악함에 있으나 하나님은 이것을 통하여서 놀라운 세상의 구원을 이루신 것이다.
1) 우리는 여기서 한 원리를 발견하게 된다.(17) / 그것은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인한 것이라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말씀이라는 것은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라는 의미도 되나 그리스도에 관한 말씀을 의미한다. 즉 십자가의 대속과 부활의 승리이다. 여기서 한가지 공식이 성립된다. 구원-믿음-들음-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이 공식을 잊어선 않된다.
믿음은 복음의 사실을 믿는 것이지 결코 내 감정이나, 체험이나, 어떤 신비한 것들을 믿는 것이 아니다. 또한 적극적인 성격도 아니다.
2) 모두 들었다.(18) / 이제 유대인들이 복음을 믿지 못한 것은 결코 듣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다. 바울은 " 그 소리가 온 땅에 퍼졌고, 그 말씀이 땅 끝까지 이르렀다. " 고 말한다. 적어도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복음을 받지 못한 사람은 없었다. 그들은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말씀을 들었고 그 사랑과 능력의 손길을 체험했다. 이방인들 역시 복음에 대해서 충분히 들을 수 있었다. 이것은 하나님이 주신 선한 양심과 자연으로 말미암는 계시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실제로 거의 모든 땅에 복음은 전해졌다. 선교 1세기 만에 서바나와 인도 중국까지도 퍼진 것이다. 대부분의 역사가들은 사도들의 시대가 끝날 무렵 그리스도인의 숫자는 적어도 50만명 이상 되는 것으로 이야기 한다. 당시의 인구로 볼 때 이는 엄청난 것이다. 이제 들은 자들에게는 믿어야 할 책임이 주어지는 것이다. 만일 그렇지 않으면 복음은 저들에게 유익이 되지 못하고 영원한 멸망이 저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들은 복음을 믿지 않고 거부함으로 인해서 핑계치 못할 심판 아래 놓이게 되었다. 우리도 이미 믿었으나 삼가 그 믿음이 떠내려 가지 않도록 진실과 성실로 주님의 복음을 지켜야 한다.
2. 3가지 예언(19-21) / 이제 말씀은 하나님의 3가지 예언을 한자리에 모아 놓음으로서 하나님의 구원 섭리와 이스라엘에 대한 의로우심을 말한다.
1) 먼저 이방인 으로 은혜를 베풀어서 이스라엘을 시기케 하시겠다는 것이다(19) /
그러므로 유대인들이 복음을 거부한 것은 바로 이방인을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이다. 그러나 그것은 허용작정에 속한 것이다. 그 책임은 전적으로 유대인의 완악함에 있는 것이다.
2) 구하지 않은 백성들에게 구원을 나타내었다.(20) / 물론 여기도 믿음을 전제한 동일한 복음이다. 하나님을 찾지 아니한 백성들에게 자신을 나타내시고 저들을 구원하신 것이다.
예) 우리나라 백성들은 조상적부터 하나님을 찾지 않았다. 그러나 긍휼을 입고 많은 사람이 부르심을 입은 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마음을 여시고 복음을 받아들이게 하신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은 왜 이스라엘은 마음을 열지 않으시고 완악함에 내어버려 두시고 이방인은 마음을 여셨는가 이스라엘도 마음을 여셨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 아닌가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은 다음 예언에서 해결이 된다.
3) 이스라엘을 향하여 종일 내 손을 벌렸다.(21) / 이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백성이요, 거스려 말하는 백성이다. 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나 하나님은 계속해서 그 손을 펴고 저들을 부르셨다. 그럼에도 저들은 돌아보지 않았고 그 말을 하는 하나님의 종들을 핍박하고 죽였다.
그러므로 저들의 멸망은 오직 저들의 완악함에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모든 것을 선하게 운영하실 뿐만 아니라 의도적인 불신앙을 조장하시는 분이 아니다. 이방인이나 유대인이나 모두에게 하나님은 사랑이시며 그 인자를 끊이지 않으신다. 여기서 우리는 이방인이나 유대인이나 모두를 부르시는 하나님의 간절함을 본다. 주님의 말씀대로 " 이 우리(이스라엘)에 들지 아니한 양들이 있어서 저들도 이끌림을 받아서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 " 고 하신 말씀이 성취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의 자세를 돌아보아야 한다. 누구를 낮추거나 누구를 제외하는 일이 있어선 않된다. 하나님의 부르시는 손길을 내가 제한 해서는 않되고 우리 주님처럼 거스려 말하는 백성이라도 종일 우리의 손은 펼쳐져 있어야 한다. 이것이 복음을 맡은 자의 자세요, 하나님의 구속받은 성도의 마땅한 자세이다. 나중에 언급하겠으나 이스라엘은 바로 이 자세가 없어서 망한 것이다.
3. 이스라엘의 넘어짐에 대한 언급(11:1-12) / 바울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실 수 없다는 말로서 이스라엘에 대한 언급을 시작한다.(1,11) 이제 두가지 구약의 내용을 들어서 이스라엘의 넘어짐과 그러나 아주 엎드러지지 않음을 설명한다.
1) 이사야의 말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2-6) / 때는 배교가 가장 극심했던 아합과 이세벨이 집권할 때의 이야기이다. 이사야가 낙심하여 이스라엘이 다 하나님을 버리고 나 혼자 남았습니다. 하고 하나님께 호소했을 때에 하나님은 “ 아니다 나를 위하여 바알에 무릎을 꿇지 아니한 7000명을 남겨두었다 ”고 하심으로 하나님께서 다시 하나님을 섬길 나라를 구성할 그루터기를 남겨 두셨음을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지금도 다 하나님의 복음을 거절한 것이 아니라 그 중에 구원 받을 자가 남아 있음을 언급한다. 이들이 나중에 다시 신앙의 꽃을 피우는 그루터기가 될 것이다. 그리고 바울은 이들이 택하심을 따라 된 것임을 한번더 언급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리고 택하심을 따라 된것은 은혜로 된것임을 강조한다.
그러므로 유대인이든지 이방인이든지 다 구원 얻는 것은 은혜의 택하심을 따라 되는 것이다.
2) 다윗의 예언(7-12) / 다윗은 “ 저의 밥상이 올무가 되고 덧이 되게 하옵시며, 거치는 것과 보응이 되게 하옵시며, 저희 눈은 흐려 보지 못하고 저희 등은 항상 굽게 하옵소서! ” 했다. 이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저들의 완악함을 따라 되어지는 영적 어두움을 언급한 것이다. 이 어두움으로 인해서 저들은 결국 하나님의 진리와 구원을 얻지 못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마치 하나님께서는 이방인을 구원하기 위하여 일부러 저들을 이같이 한 것처럼 기록하고 있다는 것이다. (11) 혼미한 심령과 보지 못할 눈과 듣지 못할 귀를 주셨다(8) 함은 그같이 되도록 버려두심을 의미한다. 여기에는 또한가지 비밀이 있다. 그것은 바로 이와같이 해야 이방인의 구원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면 여기서 또한가지 의문이 든다. 그것은 왜 이방인이 구원을 얻기 위해서 저들이 완악하게 되어져야만 하는가 저들도 믿고 저들이 이방인을 구원하면 되지 않는가 여기서 우리는 이스라엘의 완고한 선민의식이라는 문제에 부딪히게 된다. 만일 저들이 예수 그리스도롤 받아들였다면 에수 그리스도는 이스라엘의 구주는 되었을지 모르지만 결코 세상의 구주는 될 수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저들은 그 복음을 자기들의 것만으로 가두어 놓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전파되었어도 율법적 저들의 행위의 의와 적당히 결합하여 본질적인 복음 순수한 그리스도의 구속은 변질되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차라리 완악케 됨을 허락하셔서 복음을 배척하게 함으로 말미암아 이방인에게 순수한 복음이 마음대로 전파되어 택하신 백성을 구원하려 함이다. 할렐루야! 여기서 우리는 잘못된 선민의식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를 볼 수 있다. 하나님의 의에 전적으로 순종치 않고 무엇인가 자기 의를 세우는 것, 복음의 순수함에 가감하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 그것은 복음을 가리우는 것이고, 이제 이스라엘은 바로 그와같은 완고함을 가지고 있었기에 하나님의 복음을 담을 그릇이 되지 못한 것이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 새포도주는 새부대에 담아야 둘다 보전되는 것이다. " 이스라엘의 부대는 복음을 담지 못하고 터져 버렸다. 우리 자신을 살펴서 혹시 자기의로서 하나님의 복음의 의를 가리우지 않는가 생각해 보도록 하자.
3) 그러나 바울은 그렇다 해도 역시 이는 완전히 넘어진 것이 아니요, 이방인 중에서 택한 백성을 구원하기까지 그리 된것이다 라고 말한다. 그리고 만일 이스라엘의 그루터기가 싹이 나고 열매맺을 때는 더욱 더 온 세상에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게 될 것이다.(11-12)고 한다.
4. 이방인의 자세(13-25) / 본문에서 바울은 이방인인 로마교회 성도들에게 편지하면서 그렇게 때문에 복음을 받은 우리가 가져야 할 자세와 신앙을 언급하고 있다.
1) 바울은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것을 영광스럽게 여긴다. (13-15) / 하는 말로서 바울은 자신의 직분에 대한 입장을 표현한다. 바울이 유대인이라는 사실을 참작해 볼 때 유대인르로서 이방인의 사도임을 영광스럽게 여긴다는 것은 불가능한 이야기임을 알 수 있다. 그들은 이방인을 상종하는 것을 부정하게 여겼고, 율법이 없는 백성과 교제하는 것을 수치스럽게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면 바울의 영광은 어디서 온 영광인가 그것은 바로 이방인을 부르시는 하나님의 경륜에 자신이 쓰임을 받는다는 것을 영광스럽게 여긴것이다. 아무것도 꺼림 없이 단지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일에 쓰임을 받는 것으로 영광스럽게 여길 수 있는 믿음이 모든 하나님의 종들과 성도들에게 필요하다.
예) 시골교회 도시교회 목회자들의 심리!
2) 자긍하지 말고 겸손해라(16-21) / 먼저 이스라엘에 대해서 자긍하지 말라. 돌감람나무인 네가 참감람나무에 접붙임을 받아서 그 진액을 받는 것이니 네가 뿌리를 보전하는 것이 아니라 뿌리가 너를 보존하는 것이다. 또한 겸손해야 할 것은 하나님 앞에 겸손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원가지들도 아끼지 않고 열매를 맺기 위해서 제해 버리셨으니 너희도 만일 믿음에 거하지 않으면 제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공의로우신 손길 안에서 겸손해야 한다. 실제로 제하여 버리시는 말씀들이 요한 계시록에 보면 종종 경고되어 있다. 저들이 믿음에 서지 않았을 때 혹은 권고의 날 회개치 않았을 때 촛대를 옮겨 버리신다고 경고하신 것이다. 그리고 그 경고를 받아들이지 아니한 사데교회나 에베소 교회들은 지금 완전히 무너져 버린 것을 볼 수 있다.
3)
그러므로 복음에는 하나님의 인자와 엄위가 나타나 있다.(22-24) / 믿지 아니하고 넘어지는 자들에게는 엄위가 있고 믿음으로 받는 자들에게는 인자가 있다. 이것이 복음 안에 분명히 되어 나타나 있는 것이다. 믿는 자들에게는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대속의 인자하심이 넘치도록 나타나 있다. 그 이상의 사랑을 어디서 찾아 볼 수 있겠는가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음으로 그 사실을 받지 않고 회개치 않는 자들에게는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심판이 어김없이 주어지는 것이다. 그들이 비록 이스라엘 족속 아브라함의 자손들이라 할찌라도 그것을 변치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절대로 인격적이신 하나님 아버지의 인자와 엄위하심을 우리는 복음 안에서 얼마든지 느낄 수 있다. 이것은 이방인이나 유대인을 막론하고 동일하다. 이제 바울은 이스라엘의 넘어짐에 대한 결론으로 이것은 이방인 즉 세상 모두가 하나님의 구원을 얻게 하기 위함이요, 이제 돌감람나무도 본성을 거스려 구원의 백성을 삼으셨으니 원 가지들이야 얼마든지 더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함으로서 결론을 짓는다.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으리라! 고 한 것은 그 구원이 클 것을 예언한 것이다. (24-25)
5.
그러므로 이와같이 된 것은 하나님의 비밀의 경륜이요,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다.(25-32) / 유대인은 그 조상으로 말미암아 부르셨고 이방인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부르심을 얻었다. 그러나 이것은 그 근본에 있어서 다른 것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믿음의 조상들을 통해서 이미 예언되시고 예표되신 분이다.
그러므로 이방인이 부르심을 얻은 것은 바로 유대인 덕분이며, 또한 이방인 덕분에 시기케 함으로 유대인이 구원을 받게 되니 이는 공정한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온 세상을 부르시는 하나님의 온전하심과 부요하심을 본다.
그러므로 바울은 “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 ” 고 하신 것이다. 32절에 " 모든 사람을 순종치 않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라 "는 말씀의 의미가 바로 이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경륜을 볼 수 있다. 할렐루야! 6. 이제 말씀은 하나님의 비밀의 경륜의 위대하심을 찬양하는 내용으로 이어진다.(33-35) / 먼저 바울은 이 기묘하고 아름다운 하나님의 전능하신 영광을 33절에서 찬미한다. "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 그 영광의 찬송을 주제별로 요약해 보면.
1)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 하나님의 의에 관한 한 아무도 알지 못하고 헤아리지 못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의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감취어 있으니 이방인에게는 알지 못한 것이요, 유대인에게도 깨닫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택하신 자녀에게 나타내신 영광스러운 구원인 것이다.
2)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며. / 이것은 하나님의 지혜를 의미한다. 고전 1:21의 말씀대로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사람들이 자기 지혜로 전혀 알지 못하는 것이다. 아무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구원의 길을 찾지 못했다. 에덴 때부터 두루 도는 화염검으로 지켜진 길이다. 오직 주님 만이 " 진리와 생명의 길 " 이 되셔서 천국에 이르는 시온의 대로를 활짝 열어 놓으신 것이다.
3)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 주님의 모사가 되었느뇨 / 이는 선하심을 의미한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이루시는 이 아름다운 일이 다른 누구에게도 없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오직 하나님의 선하심이 그 풍성하신 인자하심이 이 일을 만들어 낸 것이다. 이방인의 무지한 죄악과 유대인의 완고한 사악함까지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우리는 자손 만재 찬양할 것이다.
할렐루야!!
4) 누가 주님께 먼저 드려 갚으심을 얻었느뇨 / 선행도 그리하고 물질도 그리하다. 하나님께 먼저 드렸더니 갚아 주셨다고 말할자는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마치 자녀가 부모에게 내가 공경했더니 나를 길러 주셨다고 말하는 것과 일반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선을 행해서 나를 구원해 주신 것이 아니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서 죄인을 거듭나게 하셔서 비로서 하나님의 뜻을 행할 수 있는 새생명의 선을 주신 것이요, 내게 있는 모든 것은 내가 하나님께 드리기 전에 이미 하나님께서 내게 은혜로 값없이 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결론(36) "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 우리의 영육간의 모든 것이 다 주님의 창조물이요, 내게 주신 의와 구원도 역시 택하심을 따라 주신 주님의 은혜의 선물이요, 그리고 나와 나의 모든 것과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온세상 사람이 다 주님께로 돌아갈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신앙자세는 언제나 " 영광이 주님께 세세 무궁토록 있어지이다. 아멘! " 하는 자세가 되어야 한다. 다시한번 36절을 읽으며 주님을 찬양함으로 오늘 주신 말씀을 찬송하시기 바랍니다.! 11:36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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