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한 기도요청 (롬15:30-33)
본문
이시간에는 본문 말씀을 가지고 복음 전하는 일을 위해서, 복음을 가지고 최일선 에 나가 있는 전도자들이나, 선교사들을 위해서 우리가 합심해서 일하는 일이 얼마 나 절박한 일인가를 배울려고 합니다. 우리는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기도를 많이 해야 한다하는 통상적이고 상 식적인 생각은 다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복음을 위해서 분초를 다투는 절박한 기도를 해야 되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그렇게 실감을 하는 분들이 많지 않은것 같 습니다. 선교를 위한 기도의 절박성-이것이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말씀이 주는 귀중한 교훈입니다. 먼저 우리가 본문 말씀을 통해서 몇가지 정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한번도 대면한 일이 없는 생면부지의 로마교인들에게 기도해 달라고 하는 S.O.S 치고 있는 것을 봅니다. 급전을 보내는 것입니다. 그가 얼마나 다급하고 간절한 심정으로 기도를 부탁하고 있는지 본문을 조금만 유의깊게 살피면 금방 마음 에 와서 전달이 됩니다. 30절을 봅니다.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고 성령님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기도에 나와 같이하여 나를 위하여 기도해 달라. 여기에서 예수님의 이름도 들먹이고,성령님의 이름도 들먹이면서 나를 위해서 기도 해 달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어떤 분입니까 무엇이든지 내 이름으로 구하면 다 들어 주시겠다고 약 속하신 분이니까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해 다오 하는 말입니다. 왜 성령님의 사랑으로 기도해 달라고 합니까 성령님은 기도하는 우리의 연약함을 말 할수 없는 탄식으로 도와 주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이 성령님을 힘입고 기도해 달라는 것입니다. 이것만 보아도 바울이 얼마나 기도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는가를 우리는 읽어볼 수가 있습니다. 뿐만아니라, 너희를 권하노니 하는 권한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우리나라 번역은 그 말의 본뜻을 전달하는데 힘이 없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권 한다하면 긴장감이 없습니다. 그러나 원문의 뜻은 이렇게 맥빠진 단어가 아닙니다. 제발 좀 해 주십시요! 꾸물 거리고 있을 시간이 없습니다.하는 탄원.간청이 들어 있는 말입니다. 그리고 너희 기도에 나와 힘을 같이하여나를 위해서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해 달라고 합니다. 나와 같이하여는 무슨 말인가 하면,로마교회 성도들이여,나는 지금 내 앞에 있는 문제를 놓고 하나님께 기도할 때마다 전력을 다해서 생명을 걸고 씨름하듯이 지금 기도하고 있습니다. 내가 이렇게 힘을 다하고 정력을 바쳐서 기도하는데 당신들 도 나처럼 기도해 주십시요.하는 말입니다. 정력을 쏟고, 그야말로 죽고사는 문제를 앞에 놓고 씨름하는 사람처럼 기도해 달라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같이하여 라는 말은 전투용업니다.싸우는 군인들에게 사용되는 단업니다. 사생결단하는 태도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하나님의 뜻을 내 힘으로 돌이켜서 내가 원하는 것을 얻어 내겠다는 것이 아니고, 내가 하나님께 기도를 하되 그 기도에 나의 힘을 다 싣고, 나의 정 성을 다 싣고, 내 마음을 다 실어서 기도한다는 말입니다. 바울이 이와같이 기도하니까 로마에 있는 성도들이여 당신들도 이와같이 기도해 달라는 말입니다. 얼마나 다급한 기도면 그가 이렇게 요청을 하겠습니까 바울은 다급하게 기도를 요청하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금방 그 사실을 찾아 낼수 있습니다. 31-32이 바로 그 내용입니다. 좀 볼까요. 우선 31절에 나오는 첫번째 내용을 봅니다. 나로 하여금 유대에 순종 치 아니하는 자들에게서 구원 받게 해 달라고 기도해 달라고 합니다.
1. 첫째로 바울은 자기가 여행하는 길에 무서운 위기가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구제헌금을 이방교인들이 모으기는 했습니다만, 그것을 전달할 마땅한 사람을 구 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아무래도 사도바울이 가지 아니하면 안될 것 같았습니다. 사 도바울도 마음 속에서 하나님이 네가 가라 고 명령하는 것을 항상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만사 제쳐 놓고 자기가 가기로 결정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 상황으로 볼 때에 예루살렘에 간다는 것은 사자굴에 발을 들여 놓는 것과 똑 같았습니다. 바울을 반대하고 기회만 있으면 그를 죽일려고 하는 유대교 열성분자들이 교회 안에도 있었고, 교회 밖에도 부지기수로 있었습니다. 바울을 찾지 못해서 못 죽 이는 것이지, 만나기만 하면 살아 남을 수가 없었습니다. 바울이 활동하고 있는 이 방나라에서는 로마법이 너무나 엄하게 다스리고 있으니까 어쩔수 없지만, 예루살렘 성문 안에만 들어오면 율법을 내세워 바울 하나쯤 죽이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있었습니다.그러니 예루살렘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죽으러 가는 것이나 마찬가지지요. 왜그랬을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로마서를 통해서 지금까지 보아온 것처럼 바울은 이방에 다니 면서 복음을 전하는 사람입니다. 기쁜 소식을 전하는 사람입니다. 그 기쁜 소식이 무엇입니까 여러분, 여러분들이 구원 받기를 원합니까 여러분의 죄용서를 받기를 원합니까
그렇다면 유대인처럼 율법에 매일 필요가 없습니다.여러분, 율법을 아무리 지켜도 구원을 못받습니다.구원을 받기를 원하십니까
예수그리스도를 믿으십시요. 그 분은 십자가에 죽으시고 3일 만에 부활하셔서 우리의 주가 됩신 분입니다. 그 분만 믿으 면 구원 받습니다. 율법을 지키지 않아도 괜챦습니다.율법이 우리를 구원하지 못합니다. 이것이 바울이 전하는 복음의 내용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의 귀에는 바울의 복음이 어떻게 들렸느냐 백번 오해하고도 남을 정도로 들려졌습니다. 야,저놈봐라.하나님의 율법을 안지켜도 된다고 가르치는구나. 야, 저 놈봐라.구원 받는데 율법은 전혀 소용이 없다는 율법무용론을 주장하는구나, 저 것을 가만히 두면 안되겠다. 저 것을 가만히 두다가는 우리 율법의 권위를 땅에 떨어 뜨리고,우리 유대인들의 체통을 말이 아니게 만들 위험이 있으니까 저 위험한 놈은 살려 두면 안된다.는 말입니다. 상황이 얼마나 심각했는가는 사도행전을 잃어 보면 여러 군데서 그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이제 예루살렘을 향해서 갈려고 합니다. 이것이 마지막일지 모 른다는 상당한 위기감을 느낍니다.그래서 예베소 교인들을 앉혀놓고 작별인사를 하 면서 사도 바울은 비장한 말을 이렇게 합니다. 사도행전 20:22-24절입니다.보라 나는 심령의 매임을 받아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저기서 무슨일을 만날런지 알지못하노 라. 오직 성령님이 각 성에서 내게 증거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고 하시나, 나의 달려갈 길과 주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죽어도 좋다고 하는 결의를 이 본문을 통해서 알수 있습니다. 실제로 바울이 예루살렘에 발을 들여놓자마자 큰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만약에 천부장이 군사들을 풀어가지고 바울을 군중 틈에서 뺏어내지 않았더라면 군중들의 손에 갈기갈기 찢겨서 죽었을 것입니다. 얼마나 대소동이 일어났는지 몰라 요. 저 놈 죽여라!소리지르면서 수천명의 군중들이 몰려 들었으니 바울 하나는 아 무것도 아니지요. 그리고 그들가운데는 바울을 죽이지 않고는 먹지도 않고,자지도 않겠다고 맹세한 결사대가 40명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자기 주변에 항상 생명을 걸어야 하는 위험이 따라다니는 사람은 기도를 요청하지 않을수 없는 것입니다. 바울이 얼마나 다급하게 기도를 요청하고 있는지를 여기서도 읽을수 있습니다.
두번째 이유가 나옵니다. 31절 중간 쯤보면 또 예루살렘에 대한 나의 섬기는 일을 성도들이 받음직 하게 해 달라고 기도해 달라고 했습니다. 무슨이야깁니까 예루살렘의 성도들을 위해서 구제헌금을 가지고 바울이 올라갑니다.
그런데 그 일 이 잘되도록 기도해 달라는 것입니다. 그들이 잘 받을수 있도록 기도해 달라는 것입니다. 참 이상하게 들려요. 기근이 들어서 먹을 것도 해결하지 못하는 성도들에게 이방 교회가 모은 헌금을 가져다 주면 얼마나 감격해서 받겠습니까 우리생각에는 그래 요. 그러나 사실은 달랐습니다. 세상에는 주고도 좋은 말 못듣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잘해주고도 욕먹는 경우가 많습니다. 바울이 지금 처한 입장이 그와 비슷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바울을 반대하는 자들은 그의 헌금을 받지 못하도록 방해할 것이 틀 림없었습니다. 그들의 주장은 대충 이럴 수 있습니다. "바울이 가지고 온 구제금은 구제금이 아니라,뇌물이다. 만약에 우리가 그 것을 받으면, 바울이 지금까지 세상에 다니면서 율법이 없어도 구원 받을수 있다고 떠들 었던 소리에 동조하는 꼴이 되니까 죽으면 죽었지 그 돈을 받으면 안된다."고 나올 것이 틀림이 없는 것입니다. 자 이렇게 해서 예루살렘교회가 바울의 헌금을 은혜스럽게 받지를 못하게 되면 가 지고 간 사람의 처지가 어떻게 됩니까 그리고 믿음의 형제들의 처지가 딱하게 된 것을 생각하고 먹을 것을 먹지 않고 한 푼두푼 모아서 헌금을 한 이방교회의 성도들의 마음이 얼마나 상하겠습니까 그리고 본래 예루살렘의 교회와 이방교회는 불편하고 어색한 관계였습니다.한 쪽 은 유대인들이고, 한쪽은 헬라인들이니까 이질감이 있었는제 이 번에 구제금을 가져 다 줌으로서 그 두관계를 은혜스럽게 화합시키고자 한 노력이 더 악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오지 않을까 걱정스럽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기도해 달라는 것입니다. 충분히 사도바울이 왜 기도해 달라는지 짐작할수 있습니다.
세번째로 기도의 제목이 있습니다. 32절, 나로 하나님의 뜻을 쫓아 기쁨으로 너희에게 나아가, 너희와 함께 편히쉬게 하라. 바울은 빨리 일을 마치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로마에 가서 교인들과 좋은 시간도 갖고, 그들로부터 위로도 받고, 몸도 푹쉬기를 원했습니다. 바울이 위대한 사도지 만, 역시 인간이었기 때문에 가져야 되는 휴식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바울은 한가지 조건을 붙입니다. 내가 아무리 쉬고 싶고, 위로도 받고 싶지만 하나님의 뜻일 때에 이 일이 이루어 지도록 해달라고 기도해 달라고 했습니다. 가끔 우리는 경험합니다. 내 뜻하고 하나님의 소원하고 맞아 떨어지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바울은 이것을 잘알고 있었습니다. 아무리 자기가 예루살렘에 가서 쉬고 싶고,위로 받고 싶어도 하나님께서 아니다, 하면 못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의 뜻대로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결국 어떤 예감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바울이 로마에 가서 쉬는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무얼보고 아니 냐 바울이 예루살렘에 가서 투옥 되었고, 가이샤랴 감옥에서 2년 동안 옥고를 치루 고,로마에 갈 때에도 편안한 여행을 할 때도 편안한 몸으로 간 것이 아니라, 쇠고랑 을 차고 갔고, 로마에 들어 가서도 성도들을 만나서 쉬면서 즐거운 시간을 가진 것 이 아니라, 2년 동안 감옥에서 옥고를 치루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따로 있었습니다.그러나 바울은 인간이기에 자기가 원하는 소원을 로마의 교인들에게 알려 주고, 기도해 달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바울의 기도요청이 왜 나왔는지, 그리고 그 내용이 무엇인지를 알아 보았습니다. 이제 우리는 중요한 사실을 찾아 보아야 합니다. 이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귀중한 교훈이 무엇이냐 하는 점입니다. 세가지로 정리를 해 보았습니다.
1.복음을 전하는 사역자를 위해서는 바울 이 요청한 세가지를 반드시 긴급한 기도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요청한 기도는 무엇이지요.
1. 위험에서 건져달라.2. 자기가 지금 책임을 지고 할려는 일이 잘 마무리 될수 있게 해 달라. 즉 사역을 성공적으로 이루게 해 달라.3. 개인적인 소원을 하나님이 들어 주시라는 것입니다. 복음을 들고 최일선에 나가서 일하는 선교사들은 이 세가지 기도제목이 항상있습니다.보이는 위험,보이지 않는 위험에 항상 직면하고 있습니다. 건강과 생명에 위협 을 받기 때문에 언제 어떤 위험을 당할지, 언제 어떤 병에 걸려서 어려움을 당할지 아무도 예측을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교사들이 선교를 몇일간 계획하고 나갈 때에 가족들과 인사를 하면서 이것이 마지막일지 모른다.는 각오를 하게 됩니다. 아프리카나 남미등 적도 근방에서 일하고 있는 선교사들은 그곳에서 일하기 위해 서는 말라리아등 각종 무서운 질병과 싸우면서 몇번의 사선을 넘어야 합니다. 70-80 년 전만 하더라도 저 검은 아프리카 대륙은 백인 선교사의 공동묘지로 소문이 나 있 었습니다. 갔다하면 죽는 것입니다. 선교사를 따라 갔던 어린 철부지의 자녀들이 제 대로 피어 보지도 못하고 함께 죽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교사들이 가는 곳마다 선 교사들의 묘지가 있어요. 묘지있는데 가보면 그들이 늙어서 죽은 것이 아니에요. 다 젊은 나이에 꽃다운 나이에 죽은 선교사 가족들이 그 땅에 묻혀서 십자가 만 세우고 그들의 뜨거운 선교에의 열정을 후대들에게 전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선교사 묘에 가보십시요. 젊은 사람들 많고, 어린아이들이 많아요.
그러므로 선교사로 간다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생명 내놓고 죽으러 가는 것입니다. 회교나 불교나 힌두교가 주종을 이루는 저 10-40창문 안에 들어 있는 지역에 가면 선교사의 가족들은 항상 공포 분위기에서 긴장을 하고 살아야 합니다. 몇년전 공산 정권이 아직도 다스리고 있는 나라에 들어가서 복음을 전하고 세례를 주던 어떤 선 교사가 알지도 못하게 끌려가서 처형 되었다는 소문을 우리는 얼마전까지도 자주 들 었습니다. 그들을 위한 기도가 얼마나 절박한지 모릅니다.선교사를 위한 기도는 항상 긴급한 기돕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원하는 것처럼 있는 힘을 다하여 사생결단 하듯이 최우선 에 그 기도를 두고 기도해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선교사들은 각자 자기가 할려고 하는 사역이 있습니다. 바울은 예루살렘에 가서 복음을 전하고, 구제헌금을 전달하고 로마로 가서 쉬겠다는 자기 나름대로의 계획이 있었던 것처럼 선교사들은 각자 자기 나름대로의 계획이 있어요. 그것을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들이 편안히 쉬고 싶다든가,무엇이 먹고 싶다든가 하는 것도 이해하고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들도 인간이기 때문에 그런 소원을 가질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긴급히 기도해야 할 대상은 외국에 나가 있는 선교사 뿐만이 아닙니다.복음을 들고 국내에서 일하는 모든 사역자들을 위해서도 기도해 주어야 합니다. 특별 히 자신의 영혼을 책임지고 있는 담임자를 위해서 긴급하게 기도해야 합니다. 목사를 위해서 여러분들 얼마나 기도합니까 목사의 가족을 위해서 여러분들이 다 급한 마음을 가지고 얼마나 간절히 기도합니까 목사의 소원이 무엇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계십니까 우리 목사님에게 어떤 위기가 닥쳐오고 있는가에 대해서 생각해 보셨습니까 목사님이 목회가 성공하고 영광스럽게 마쳐지도록 기도해 보셨습니까 심방을 한다든지,예배 시간에 기도를 시키면 여러가지 기도를 오래 하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말씀을 전하고 복음을 증거하는 목사를 위해서는 건너 뛰거나,지나가는 말로 하고 넘어가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이것을 우리는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요.어디서든지 예배를 위해서 기도할 때는 그 예배를 인도하고 말씀을 선포하는 사람을 위해서 가장 절실하고 중요하게 기도해야 합니다. 또 함께 모인 사람들이 은혜 받기를 위해서 기도하고,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복음 전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하는 기도는 항상 긴급한 기돕니다. 여러분들이 주일 낮예배와 예배시간에 복음을 전하는 목사를 위해서 긴급한 마음 을 가지고 기도해야 합니다. 새벽시간과 저녁예배를 위해서도 마찬가집니다. 저는 심방을 가기 위해서도 설교 준비를 많이 합니다. 그 것이 나에게 주어진 한 영혼과 그 가정을 구원하는 기회가 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도 이런 저를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2.합심해서 중보기도하는 것은 엄청난 효 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바울처럼 이것을 믿어야 합니다. 바울은 이것을 잘 알았습니다.자기 혼자 하는 기도도 굉장히 중요하지만 중요한 일을 앞에 놓고는 여러명이 합심해서 힘을 모아 기도하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이라는 것을 바울은 너무너무 많이 체험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번 보지도 못한 로마교회를 끌어 들여서 자기를 위해서 기도하라고 합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로마 교인들이여, 나의 어려운 문제를 놓고 나 혼자 기도해도 되겠지만,그러나 여러분들이 합심해서 나를 위해서 기도해 주면 역사가 일어납니다.아무리 예루살렘이 사자굴처럼 위험해도 하나님이 그곳에서 나를 구원해 주실 것입니다. 내가 가져가는 구제헌금이 큰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내가 소원하는 것 하나님이 들어 주실 것입니다. 합심해서 기도 하십시요!
힘을 다해서 기도하십시요! 자주 모여서 기도하시요! 가 급적이면 여러명이 모여서 기도하십시요! 그러면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우리 예수님이 이것을 확증해 주셨습니다. 예수님도 겟세마네 동산에서 너무 괴롭 고 답답하고 절망적일 때 제자들에게 기도해 달라고 요청하는 것을 보았지 않습니 까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그리고 예수님이 마18:29절에 분명히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진실로 너희에 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몇사람이 땅에서 합심해서 무엇이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 지께 구하면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어 주시리라. 얼마나 멋있습니까 여러분,무엇이나 나 혼자 기도해서 해결할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일종의 영적 교만입니다. 또 합심해서 기도해 주어야 할 일을 놓고도 기도해 주지 않는 것은 일종의 죕니다. 바울처럼 합심기도하는 그 기도의 막강한 힘과 능력을 믿어야합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한사람의 부르짖는 소리보다 두사람의 소리가 더 멀리 울립니다. 두사람 의 기도보다도 열사람의 기도가 모이면 더 큰 위력을 나타냅니다. 마귀는 한사람이 꿇어 앉아 기도하는 것을 보고는 별로 두려워 하지 아니할 것입니다. 그러나 100사람이 뭉쳐서 기도하는 것을 보면 마귀의 얼굴이 파랗게 질립니다. 왜 그 기도가 큰 역사를 이루는 것을 마귀도 아니까! 한사람이 간간이 부르짖는 기도를 들으실 때보다도 여러 사람이 함께 합심하여 부 르짖으면 다른 일 졔혀 놓고 그 기도를 들어 주신다고 저는 믿습니다. 바울처럼 이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3. 복음과 관계된 기도일수록 힘과 정열 을 다 쏟는 전투적인 기도를 해야 한 다는 것입니다. 선교사를 위해서 기도합니까 내가 하는 전도를 위해서 기도합니까 우리 교회의 부흥을 위해서 기도합니까 설교하는 목사를 위해서 기도합니까 전부 복음 전하는 것과 관계되는 기돕니다. 이런 기도는 힘없이 기도해서는 안됩니다. 전력을 다해서 힘을 쏟아서 기도해야 합니다. 왜 이것은 영적싸움이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가만히 잠자는 마귀를 발길질을 해서 깨워 놓는 것과 같습니다. 다윗이 물맷돌을 가지고 골리앗을 향해서 나가는 것과 똑 같습니다.
그러므로 기도를 해도 힘없는 기도를 하면 안됩니다.
우리가 복음을 들고 나갈려면 군대마귀가 일어섭니다. 새신자를 전도하기 위해서 심방을 하고 교회로 인도하려면 갖가지 어려움과 시련이 많은지 몰라요. 왜 그러느 냐 마귀가 가장 싫어 하는 것이 복음 전하는 것입니다. 왜 복음을 전해서 어떤 사람이 예수 믿게 되면 자기 부하가 하나 없어지고, 자기 백성이 하나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끝까지 죄와 사망의 사슬에 묶어 가지고 질질 끌고 다니고 싶어하지 놓아 주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발악을 하게 됩니다.그러니까 복음 전도를 위해서 하는 기도는 슬슬해서는 안됩니다. 그러니까 싸움을 이기기 위해서는 있는 힘을 다해서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의 100명의 성도가 합심해서 기도하면 마귀는 벌벌 떨 것입니다. 우리가 나가서 복음을 전할 때에 도망할 것입니다. 아무리 마귀가 두손으로 움켜 쥐고 놓지 않을려고 발악을 할지라도 내 남편을 거기서 구원할 수가 있습니다. 내 자녀를 구원할수 있습니다. 내 이웃을 구원할 수 있습니다. 좌절해 있는 사람, 쾌락에 빠져 있는 사람, 세상에 깊이 몰입해 있는 사람을 구원 해 낼수 있습니다. 우리 100명이 기도만 하면 놀라운 힘을 발휘하게 됩니다. 마귀가 우리를 이길 수가 없습니다. 할렐루야! 산돌교회는 기도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성도들은 기도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복음으로 심령을 정복하고 청주를 정복하기 위해서 우리는 합심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어떤 분입니까 무엇이든지 내 이름으로 구하면 다 들어 주시겠다고 약 속하신 분이니까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해 다오 하는 말입니다. 왜 성령님의 사랑으로 기도해 달라고 합니까 성령님은 기도하는 우리의 연약함을 말 할수 없는 탄식으로 도와 주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이 성령님을 힘입고 기도해 달라는 것입니다. 이것만 보아도 바울이 얼마나 기도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는가를 우리는 읽어볼 수가 있습니다. 뿐만아니라, 너희를 권하노니 하는 권한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우리나라 번역은 그 말의 본뜻을 전달하는데 힘이 없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권 한다하면 긴장감이 없습니다. 그러나 원문의 뜻은 이렇게 맥빠진 단어가 아닙니다. 제발 좀 해 주십시요! 꾸물 거리고 있을 시간이 없습니다.하는 탄원.간청이 들어 있는 말입니다. 그리고 너희 기도에 나와 힘을 같이하여나를 위해서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해 달라고 합니다. 나와 같이하여는 무슨 말인가 하면,로마교회 성도들이여,나는 지금 내 앞에 있는 문제를 놓고 하나님께 기도할 때마다 전력을 다해서 생명을 걸고 씨름하듯이 지금 기도하고 있습니다. 내가 이렇게 힘을 다하고 정력을 바쳐서 기도하는데 당신들 도 나처럼 기도해 주십시요.하는 말입니다. 정력을 쏟고, 그야말로 죽고사는 문제를 앞에 놓고 씨름하는 사람처럼 기도해 달라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같이하여 라는 말은 전투용업니다.싸우는 군인들에게 사용되는 단업니다. 사생결단하는 태도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하나님의 뜻을 내 힘으로 돌이켜서 내가 원하는 것을 얻어 내겠다는 것이 아니고, 내가 하나님께 기도를 하되 그 기도에 나의 힘을 다 싣고, 나의 정 성을 다 싣고, 내 마음을 다 실어서 기도한다는 말입니다. 바울이 이와같이 기도하니까 로마에 있는 성도들이여 당신들도 이와같이 기도해 달라는 말입니다. 얼마나 다급한 기도면 그가 이렇게 요청을 하겠습니까 바울은 다급하게 기도를 요청하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금방 그 사실을 찾아 낼수 있습니다. 31-32이 바로 그 내용입니다. 좀 볼까요. 우선 31절에 나오는 첫번째 내용을 봅니다. 나로 하여금 유대에 순종 치 아니하는 자들에게서 구원 받게 해 달라고 기도해 달라고 합니다.
1. 첫째로 바울은 자기가 여행하는 길에 무서운 위기가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구제헌금을 이방교인들이 모으기는 했습니다만, 그것을 전달할 마땅한 사람을 구 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아무래도 사도바울이 가지 아니하면 안될 것 같았습니다. 사 도바울도 마음 속에서 하나님이 네가 가라 고 명령하는 것을 항상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만사 제쳐 놓고 자기가 가기로 결정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 상황으로 볼 때에 예루살렘에 간다는 것은 사자굴에 발을 들여 놓는 것과 똑 같았습니다. 바울을 반대하고 기회만 있으면 그를 죽일려고 하는 유대교 열성분자들이 교회 안에도 있었고, 교회 밖에도 부지기수로 있었습니다. 바울을 찾지 못해서 못 죽 이는 것이지, 만나기만 하면 살아 남을 수가 없었습니다. 바울이 활동하고 있는 이 방나라에서는 로마법이 너무나 엄하게 다스리고 있으니까 어쩔수 없지만, 예루살렘 성문 안에만 들어오면 율법을 내세워 바울 하나쯤 죽이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있었습니다.그러니 예루살렘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죽으러 가는 것이나 마찬가지지요. 왜그랬을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로마서를 통해서 지금까지 보아온 것처럼 바울은 이방에 다니 면서 복음을 전하는 사람입니다. 기쁜 소식을 전하는 사람입니다. 그 기쁜 소식이 무엇입니까 여러분, 여러분들이 구원 받기를 원합니까 여러분의 죄용서를 받기를 원합니까
그렇다면 유대인처럼 율법에 매일 필요가 없습니다.여러분, 율법을 아무리 지켜도 구원을 못받습니다.구원을 받기를 원하십니까
예수그리스도를 믿으십시요. 그 분은 십자가에 죽으시고 3일 만에 부활하셔서 우리의 주가 됩신 분입니다. 그 분만 믿으 면 구원 받습니다. 율법을 지키지 않아도 괜챦습니다.율법이 우리를 구원하지 못합니다. 이것이 바울이 전하는 복음의 내용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의 귀에는 바울의 복음이 어떻게 들렸느냐 백번 오해하고도 남을 정도로 들려졌습니다. 야,저놈봐라.하나님의 율법을 안지켜도 된다고 가르치는구나. 야, 저 놈봐라.구원 받는데 율법은 전혀 소용이 없다는 율법무용론을 주장하는구나, 저 것을 가만히 두면 안되겠다. 저 것을 가만히 두다가는 우리 율법의 권위를 땅에 떨어 뜨리고,우리 유대인들의 체통을 말이 아니게 만들 위험이 있으니까 저 위험한 놈은 살려 두면 안된다.는 말입니다. 상황이 얼마나 심각했는가는 사도행전을 잃어 보면 여러 군데서 그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이제 예루살렘을 향해서 갈려고 합니다. 이것이 마지막일지 모 른다는 상당한 위기감을 느낍니다.그래서 예베소 교인들을 앉혀놓고 작별인사를 하 면서 사도 바울은 비장한 말을 이렇게 합니다. 사도행전 20:22-24절입니다.보라 나는 심령의 매임을 받아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저기서 무슨일을 만날런지 알지못하노 라. 오직 성령님이 각 성에서 내게 증거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고 하시나, 나의 달려갈 길과 주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죽어도 좋다고 하는 결의를 이 본문을 통해서 알수 있습니다. 실제로 바울이 예루살렘에 발을 들여놓자마자 큰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만약에 천부장이 군사들을 풀어가지고 바울을 군중 틈에서 뺏어내지 않았더라면 군중들의 손에 갈기갈기 찢겨서 죽었을 것입니다. 얼마나 대소동이 일어났는지 몰라 요. 저 놈 죽여라!소리지르면서 수천명의 군중들이 몰려 들었으니 바울 하나는 아 무것도 아니지요. 그리고 그들가운데는 바울을 죽이지 않고는 먹지도 않고,자지도 않겠다고 맹세한 결사대가 40명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자기 주변에 항상 생명을 걸어야 하는 위험이 따라다니는 사람은 기도를 요청하지 않을수 없는 것입니다. 바울이 얼마나 다급하게 기도를 요청하고 있는지를 여기서도 읽을수 있습니다.
두번째 이유가 나옵니다. 31절 중간 쯤보면 또 예루살렘에 대한 나의 섬기는 일을 성도들이 받음직 하게 해 달라고 기도해 달라고 했습니다. 무슨이야깁니까 예루살렘의 성도들을 위해서 구제헌금을 가지고 바울이 올라갑니다.
그런데 그 일 이 잘되도록 기도해 달라는 것입니다. 그들이 잘 받을수 있도록 기도해 달라는 것입니다. 참 이상하게 들려요. 기근이 들어서 먹을 것도 해결하지 못하는 성도들에게 이방 교회가 모은 헌금을 가져다 주면 얼마나 감격해서 받겠습니까 우리생각에는 그래 요. 그러나 사실은 달랐습니다. 세상에는 주고도 좋은 말 못듣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잘해주고도 욕먹는 경우가 많습니다. 바울이 지금 처한 입장이 그와 비슷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바울을 반대하는 자들은 그의 헌금을 받지 못하도록 방해할 것이 틀 림없었습니다. 그들의 주장은 대충 이럴 수 있습니다. "바울이 가지고 온 구제금은 구제금이 아니라,뇌물이다. 만약에 우리가 그 것을 받으면, 바울이 지금까지 세상에 다니면서 율법이 없어도 구원 받을수 있다고 떠들 었던 소리에 동조하는 꼴이 되니까 죽으면 죽었지 그 돈을 받으면 안된다."고 나올 것이 틀림이 없는 것입니다. 자 이렇게 해서 예루살렘교회가 바울의 헌금을 은혜스럽게 받지를 못하게 되면 가 지고 간 사람의 처지가 어떻게 됩니까 그리고 믿음의 형제들의 처지가 딱하게 된 것을 생각하고 먹을 것을 먹지 않고 한 푼두푼 모아서 헌금을 한 이방교회의 성도들의 마음이 얼마나 상하겠습니까 그리고 본래 예루살렘의 교회와 이방교회는 불편하고 어색한 관계였습니다.한 쪽 은 유대인들이고, 한쪽은 헬라인들이니까 이질감이 있었는제 이 번에 구제금을 가져 다 줌으로서 그 두관계를 은혜스럽게 화합시키고자 한 노력이 더 악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오지 않을까 걱정스럽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기도해 달라는 것입니다. 충분히 사도바울이 왜 기도해 달라는지 짐작할수 있습니다.
세번째로 기도의 제목이 있습니다. 32절, 나로 하나님의 뜻을 쫓아 기쁨으로 너희에게 나아가, 너희와 함께 편히쉬게 하라. 바울은 빨리 일을 마치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로마에 가서 교인들과 좋은 시간도 갖고, 그들로부터 위로도 받고, 몸도 푹쉬기를 원했습니다. 바울이 위대한 사도지 만, 역시 인간이었기 때문에 가져야 되는 휴식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바울은 한가지 조건을 붙입니다. 내가 아무리 쉬고 싶고, 위로도 받고 싶지만 하나님의 뜻일 때에 이 일이 이루어 지도록 해달라고 기도해 달라고 했습니다. 가끔 우리는 경험합니다. 내 뜻하고 하나님의 소원하고 맞아 떨어지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바울은 이것을 잘알고 있었습니다. 아무리 자기가 예루살렘에 가서 쉬고 싶고,위로 받고 싶어도 하나님께서 아니다, 하면 못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의 뜻대로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결국 어떤 예감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바울이 로마에 가서 쉬는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무얼보고 아니 냐 바울이 예루살렘에 가서 투옥 되었고, 가이샤랴 감옥에서 2년 동안 옥고를 치루 고,로마에 갈 때에도 편안한 여행을 할 때도 편안한 몸으로 간 것이 아니라, 쇠고랑 을 차고 갔고, 로마에 들어 가서도 성도들을 만나서 쉬면서 즐거운 시간을 가진 것 이 아니라, 2년 동안 감옥에서 옥고를 치루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따로 있었습니다.그러나 바울은 인간이기에 자기가 원하는 소원을 로마의 교인들에게 알려 주고, 기도해 달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바울의 기도요청이 왜 나왔는지, 그리고 그 내용이 무엇인지를 알아 보았습니다. 이제 우리는 중요한 사실을 찾아 보아야 합니다. 이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귀중한 교훈이 무엇이냐 하는 점입니다. 세가지로 정리를 해 보았습니다.
1.복음을 전하는 사역자를 위해서는 바울 이 요청한 세가지를 반드시 긴급한 기도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요청한 기도는 무엇이지요.
1. 위험에서 건져달라.2. 자기가 지금 책임을 지고 할려는 일이 잘 마무리 될수 있게 해 달라. 즉 사역을 성공적으로 이루게 해 달라.3. 개인적인 소원을 하나님이 들어 주시라는 것입니다. 복음을 들고 최일선에 나가서 일하는 선교사들은 이 세가지 기도제목이 항상있습니다.보이는 위험,보이지 않는 위험에 항상 직면하고 있습니다. 건강과 생명에 위협 을 받기 때문에 언제 어떤 위험을 당할지, 언제 어떤 병에 걸려서 어려움을 당할지 아무도 예측을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교사들이 선교를 몇일간 계획하고 나갈 때에 가족들과 인사를 하면서 이것이 마지막일지 모른다.는 각오를 하게 됩니다. 아프리카나 남미등 적도 근방에서 일하고 있는 선교사들은 그곳에서 일하기 위해 서는 말라리아등 각종 무서운 질병과 싸우면서 몇번의 사선을 넘어야 합니다. 70-80 년 전만 하더라도 저 검은 아프리카 대륙은 백인 선교사의 공동묘지로 소문이 나 있 었습니다. 갔다하면 죽는 것입니다. 선교사를 따라 갔던 어린 철부지의 자녀들이 제 대로 피어 보지도 못하고 함께 죽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교사들이 가는 곳마다 선 교사들의 묘지가 있어요. 묘지있는데 가보면 그들이 늙어서 죽은 것이 아니에요. 다 젊은 나이에 꽃다운 나이에 죽은 선교사 가족들이 그 땅에 묻혀서 십자가 만 세우고 그들의 뜨거운 선교에의 열정을 후대들에게 전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선교사 묘에 가보십시요. 젊은 사람들 많고, 어린아이들이 많아요.
그러므로 선교사로 간다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생명 내놓고 죽으러 가는 것입니다. 회교나 불교나 힌두교가 주종을 이루는 저 10-40창문 안에 들어 있는 지역에 가면 선교사의 가족들은 항상 공포 분위기에서 긴장을 하고 살아야 합니다. 몇년전 공산 정권이 아직도 다스리고 있는 나라에 들어가서 복음을 전하고 세례를 주던 어떤 선 교사가 알지도 못하게 끌려가서 처형 되었다는 소문을 우리는 얼마전까지도 자주 들 었습니다. 그들을 위한 기도가 얼마나 절박한지 모릅니다.선교사를 위한 기도는 항상 긴급한 기돕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원하는 것처럼 있는 힘을 다하여 사생결단 하듯이 최우선 에 그 기도를 두고 기도해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선교사들은 각자 자기가 할려고 하는 사역이 있습니다. 바울은 예루살렘에 가서 복음을 전하고, 구제헌금을 전달하고 로마로 가서 쉬겠다는 자기 나름대로의 계획이 있었던 것처럼 선교사들은 각자 자기 나름대로의 계획이 있어요. 그것을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들이 편안히 쉬고 싶다든가,무엇이 먹고 싶다든가 하는 것도 이해하고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들도 인간이기 때문에 그런 소원을 가질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긴급히 기도해야 할 대상은 외국에 나가 있는 선교사 뿐만이 아닙니다.복음을 들고 국내에서 일하는 모든 사역자들을 위해서도 기도해 주어야 합니다. 특별 히 자신의 영혼을 책임지고 있는 담임자를 위해서 긴급하게 기도해야 합니다. 목사를 위해서 여러분들 얼마나 기도합니까 목사의 가족을 위해서 여러분들이 다 급한 마음을 가지고 얼마나 간절히 기도합니까 목사의 소원이 무엇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계십니까 우리 목사님에게 어떤 위기가 닥쳐오고 있는가에 대해서 생각해 보셨습니까 목사님이 목회가 성공하고 영광스럽게 마쳐지도록 기도해 보셨습니까 심방을 한다든지,예배 시간에 기도를 시키면 여러가지 기도를 오래 하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말씀을 전하고 복음을 증거하는 목사를 위해서는 건너 뛰거나,지나가는 말로 하고 넘어가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이것을 우리는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요.어디서든지 예배를 위해서 기도할 때는 그 예배를 인도하고 말씀을 선포하는 사람을 위해서 가장 절실하고 중요하게 기도해야 합니다. 또 함께 모인 사람들이 은혜 받기를 위해서 기도하고,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복음 전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하는 기도는 항상 긴급한 기돕니다. 여러분들이 주일 낮예배와 예배시간에 복음을 전하는 목사를 위해서 긴급한 마음 을 가지고 기도해야 합니다. 새벽시간과 저녁예배를 위해서도 마찬가집니다. 저는 심방을 가기 위해서도 설교 준비를 많이 합니다. 그 것이 나에게 주어진 한 영혼과 그 가정을 구원하는 기회가 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도 이런 저를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2.합심해서 중보기도하는 것은 엄청난 효 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바울처럼 이것을 믿어야 합니다. 바울은 이것을 잘 알았습니다.자기 혼자 하는 기도도 굉장히 중요하지만 중요한 일을 앞에 놓고는 여러명이 합심해서 힘을 모아 기도하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이라는 것을 바울은 너무너무 많이 체험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번 보지도 못한 로마교회를 끌어 들여서 자기를 위해서 기도하라고 합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로마 교인들이여, 나의 어려운 문제를 놓고 나 혼자 기도해도 되겠지만,그러나 여러분들이 합심해서 나를 위해서 기도해 주면 역사가 일어납니다.아무리 예루살렘이 사자굴처럼 위험해도 하나님이 그곳에서 나를 구원해 주실 것입니다. 내가 가져가는 구제헌금이 큰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내가 소원하는 것 하나님이 들어 주실 것입니다. 합심해서 기도 하십시요!
힘을 다해서 기도하십시요! 자주 모여서 기도하시요! 가 급적이면 여러명이 모여서 기도하십시요! 그러면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우리 예수님이 이것을 확증해 주셨습니다. 예수님도 겟세마네 동산에서 너무 괴롭 고 답답하고 절망적일 때 제자들에게 기도해 달라고 요청하는 것을 보았지 않습니 까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그리고 예수님이 마18:29절에 분명히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진실로 너희에 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몇사람이 땅에서 합심해서 무엇이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 지께 구하면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어 주시리라. 얼마나 멋있습니까 여러분,무엇이나 나 혼자 기도해서 해결할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일종의 영적 교만입니다. 또 합심해서 기도해 주어야 할 일을 놓고도 기도해 주지 않는 것은 일종의 죕니다. 바울처럼 합심기도하는 그 기도의 막강한 힘과 능력을 믿어야합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한사람의 부르짖는 소리보다 두사람의 소리가 더 멀리 울립니다. 두사람 의 기도보다도 열사람의 기도가 모이면 더 큰 위력을 나타냅니다. 마귀는 한사람이 꿇어 앉아 기도하는 것을 보고는 별로 두려워 하지 아니할 것입니다. 그러나 100사람이 뭉쳐서 기도하는 것을 보면 마귀의 얼굴이 파랗게 질립니다. 왜 그 기도가 큰 역사를 이루는 것을 마귀도 아니까! 한사람이 간간이 부르짖는 기도를 들으실 때보다도 여러 사람이 함께 합심하여 부 르짖으면 다른 일 졔혀 놓고 그 기도를 들어 주신다고 저는 믿습니다. 바울처럼 이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3. 복음과 관계된 기도일수록 힘과 정열 을 다 쏟는 전투적인 기도를 해야 한 다는 것입니다. 선교사를 위해서 기도합니까 내가 하는 전도를 위해서 기도합니까 우리 교회의 부흥을 위해서 기도합니까 설교하는 목사를 위해서 기도합니까 전부 복음 전하는 것과 관계되는 기돕니다. 이런 기도는 힘없이 기도해서는 안됩니다. 전력을 다해서 힘을 쏟아서 기도해야 합니다. 왜 이것은 영적싸움이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가만히 잠자는 마귀를 발길질을 해서 깨워 놓는 것과 같습니다. 다윗이 물맷돌을 가지고 골리앗을 향해서 나가는 것과 똑 같습니다.
그러므로 기도를 해도 힘없는 기도를 하면 안됩니다.
우리가 복음을 들고 나갈려면 군대마귀가 일어섭니다. 새신자를 전도하기 위해서 심방을 하고 교회로 인도하려면 갖가지 어려움과 시련이 많은지 몰라요. 왜 그러느 냐 마귀가 가장 싫어 하는 것이 복음 전하는 것입니다. 왜 복음을 전해서 어떤 사람이 예수 믿게 되면 자기 부하가 하나 없어지고, 자기 백성이 하나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끝까지 죄와 사망의 사슬에 묶어 가지고 질질 끌고 다니고 싶어하지 놓아 주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발악을 하게 됩니다.그러니까 복음 전도를 위해서 하는 기도는 슬슬해서는 안됩니다. 그러니까 싸움을 이기기 위해서는 있는 힘을 다해서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의 100명의 성도가 합심해서 기도하면 마귀는 벌벌 떨 것입니다. 우리가 나가서 복음을 전할 때에 도망할 것입니다. 아무리 마귀가 두손으로 움켜 쥐고 놓지 않을려고 발악을 할지라도 내 남편을 거기서 구원할 수가 있습니다. 내 자녀를 구원할수 있습니다. 내 이웃을 구원할 수 있습니다. 좌절해 있는 사람, 쾌락에 빠져 있는 사람, 세상에 깊이 몰입해 있는 사람을 구원 해 낼수 있습니다. 우리 100명이 기도만 하면 놀라운 힘을 발휘하게 됩니다. 마귀가 우리를 이길 수가 없습니다. 할렐루야! 산돌교회는 기도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성도들은 기도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복음으로 심령을 정복하고 청주를 정복하기 위해서 우리는 합심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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