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한 소리 (롬10:13-15)
본문
당신에게 이 소리가 들립니까 당신의 아들이 죽어 가고 있습니다. 어느 날 낚시광인 아버지가 어린 아들과 함께 여가를 즐기로 해변가로 갔습니다. 아들은 해변가에서 모래뚝을 쌓면서 놀고 있는 사이에 아버지는 낚시를 즐기고 있었습니다. 오후가 되면서 오전에 빠져나간 물이 들어오기 시작하여 아들이 놀고 있는 사방을 썰물이 몰려 왔으며 거세게 몰아치는 물은 아들이 선 발목을 내리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아들은 발을 구르면서 아버지를 부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아들의 부르는 소리를 듣고도 못하고 낚시에만 미쳐서 고기 낚는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밀려오는 파도는 아들을 삼켜 버리고 말았습니다. 해가 저갈 무릎에 잡은 고기를 매고 콧노래를 부르며, 아들의 이름을 불러 보았으나 영원히 대답이 없었습니다. 지금 이 순간도 당신을 부르고 있습니다. 지금도 우리의 주변에는 죄악의 파도에 밀려 발을 동동 구르며, 구원을 요청하는 무리들이 많습니다. 당신이 세상의 술에 취하여 있는 순간에 수많은 귀중한 생명들이 죽어 가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성령님의 충만함을 받으라”(에베소서 5:18)고 했습니다. 당신이 세상의 술에 취하여 있는 동안에 귀중한 생명은 마귀의 손아귀에서 지옥으로 끌려가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가장 긴급한 소리가 무엇인가 당신이 외쳐야 할 소리는 무엇이며, 세상이 들어야 할 소리는 무엇인가 예수 십자가와 부활 소식입니다. 전도자 바울은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그런즉 저희가 믿지 못한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로마서 10:13-15)고 했습니다.
첫째:지옥에서 부르짖는 고통의 소리입니다. 지옥에서 부르짖는 고통의 소리를 들어봅시다(누가복음 16:19-31). 한 부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자색옷과 고운 베옷을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이 연락을 즐겼습니다. 그는 세인들이 가출 것을 골고루 다 갖추었습니다. 그러나 단 한가지 빠진 것이 있는데 예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집 대문간에 한 거지가 있었습니다. 그는 몸에 헌데를 앓으면서 고통중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갑니다. 그는 세상적으로는 참으로 불쌍한 인생입니다.
그런데 그는 예수를 그 중심에 모시고 계셨습니다. 이 두 인생은 다 죽었습니다.
그런데 사후의 세계는 정반대였습니다. 부자는 음부의 세계에서 고통을 받았으며, 거지 나사로는 아브라함의 품 천국에 가서 낙을 누리면서 살았습니다. 음부에서 부르짖는 부자의 고통 소리입니다. 음부에 고통 중에 있던 부자가 눈을 들어서 아브라함 품에 있는 거지 나사로를 보았습니다. 1 부자는 물 한방울 청원했습니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고민하나이다”(누가복음 16:25)고 했습니다. 그때 아브라함은 일언지하에 거절하고 말았습니다. 지옥이 얼마나 무서운 곳인가 물 한방울의 자비와 긍휼을 받지 못하는 곳이 지옥입니다. 아마 그는 세상에 있을 때 나사로에게 물 한방울의 자비도 베풀지 않았던 자였습니다.
2 남은 형제들에게 전도를 부탁했습니다. “가로되 그러면 구하노니 아버지여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저희에게 증거하여 저희로 이 고통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누가복음 16:27-28)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것마저도 거절했습니다. 기도와 전도할 특권도 마져도 잃어버린 곳이 지옥입니다. 세상에는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다고 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에게 기록된 성경과 그 말씀을 외치는 전도자들을 주셨습니다. 그들의 말을 받지 않은 자들은 하나님의 버림받은 멸망의 자식들입니다. 지금 지옥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들어봅시다. 당신은 고요히 이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앞서간 선조들이 음부의 권세에서 탄식하는 고통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지금도 물한방울의 자비가 없는 고통 중에서 부르짖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들의 소리를 듣고 기록된 말씀을 가지고 나가서 선지자들과 같이 외치는 전도자의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둘째:복음의 불모지에서 부르는 청원의 소리입니다. 건너와서 도우라(사도행전 16:6-34) 바울은 2차 전도 여행을 마치고 아시아 지역을 돌아서 안디옥 모교로 돌아오려고 했는데 성령님께서 아시아 지역에서 복음을 전하지 못하게 합니다. 그래서 그는 해변 도시 드로아로 내려갔습니다.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가로되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사도행전 16:9)고 했습니다. 환상을 따라 마게도냐로 갔습니다. 성령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마게도냐 지역으로 나아가니 예비된 영혼을 붙여 주십니다. 하나님은 마게도냐 지역 복음화를 위하여 준비된 영혼을 세워 놓고 바울을 불렀던 것입니다. 자주 장사 루디아는 기도에 열심하고 말씀에 청종하는 신실한 사역자입니다. 바울은 그들과 연합하여 귀신들린 여종을 온전케하여 복음에 수종드는 청지기가 되게 했습니다. 그로 인하여 옥중에 갇혔으나 하나님은 간수를 변화시켜 복음에 동역자로 붙여 주었습니다. 이들이 마게도냐 복음을 위해 빌립보 지역에 교회를 세우는 설립 멤버였습니다. 당신도 성령님의 인도를 받고 살면 하나님의 예비하신 손길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성령님의 인도받고 삽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여행하면서 가장 안전하게 나아간 길은 언약궤를 메고 나아가는 길입니다. 하나님과 맺은 언약의 말씀을 따라 나아가면 그 위에는 항상 구름 기둥 불기둥이 호위해 주었습니다. 그들의 진로를 가로막는 어떠한 세력도 하나님은 용납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아말렉 전투는 그 좋은 본보기였습니다. 찬송가 434장 1절에 “나의 갈길 다가도록 예수 인도하시니 .”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걸어가신 그 길로 나아가면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게 됩니다.
셋째:민족의 아픔에 동참하라는 사명의 소리입니다.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출애굽기 3:1-12) 사십대 기수론을 들고 나왔던 모세는 바로의 왕궁에서 배웠던 학문과 갈고 닦았던 기량과 왕궁을 배경으로한 권세로 민족 독립운동을 해 보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거룩한 진리운동이 세상적인 방법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모세를 미디안 광야로 보내어 이드로의 양을 치면서 이전의 계획들을 산산이 부서 버린 것입니다. 이제 팔십의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지경에 하나님은 모세에게 사명을 주었습니다. 호렙산 기슭에서 본 환상은 세속적인 신을 벗고 사명의 신을 신어라는 하나님의 음성이었습니다. 가시떨기 환상을 봅시다. 이 환상은 광야 서편에서 되어진 것입니다. 하루해가 저물어가는 날이며, 한 인생의 마지막인 황혼기였습니다. 가시떨기에 불이 붙었습니다. 아무 쓸모 없는 나무가 가시 떨기입니다. 모세와 이스라엘의 모습이 마치 가시 떨기 같습니다. 여기에 환난의 불이 붙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사라지지 않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권고하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현장으로 달려간 모세에게 네 발에 신을 벗으라고 말씀하십니다. 모세는 이드로의 양을 치는 세속적인 신을 벗고, 하나님이 주는 복음의 사명적인 신을 신어야 했습니다. 너는 이 신을 신고 내 민족이 있는 바로에게로 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는 못합니다. 이전에는 할 수 있다고 했으나 이젠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아가 포기될 때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모세가 할 수 없음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 일은 모세의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으리라.”(출애굽기 3:12)고 했습니다.
넷째:복음의 현장인 광야에서 외치는 회개의 소리입니다. 세례요한은 결단했습니다(마가복음 1:1-11). 세례요한은 참으로 귀한 인물입니다. 그는 제사장 가문의 출신입니다. 유대에서는 가장 엘리트 가문입니다. 그 아버지는 유대인들에게 존경받는 경건한 제사장 사가랴였습니다(누가복음 1:6). 그가 노경에 자식이 없어서 성소에서 기도하다가 응답 받아 아들 세례요한을 얻었습니다. 그는 태중에서부터 성령님에 충만함을 받았습니다(누가복음 1:41). 그는 많은 유대인들이 소망하는 관원이 될 수 있는 신분을 가졌으며, 대제사장이 되어 산헤드린의 의장도 될 수 있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 모든 것을 다 포기했습니다.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로 살았습니다. 그는 예루살렘의 화려한 성전을 버리고 거치른 광야로 갔습니다. 그는 산해진미로 배불리 먹을 수 있었으나 메뚜기와 석청을 먹으면서 광야의 소리롤 살았습니다. 소리는 모양이 없습니다. 소리는 냄새도 없습니다. 소리는 아름다움도 없습니다. 그 소리는 주님의 길을 예비하는 소리요, 그의 첩경을 평탄하게 하는 소리였습니다. 그는 이름 그대로 소리로 살다가 소리로 살아진 여자가 낳은 자 중에 가장 큰 자였습니다. 그러나 당시 백성들은 제사장들이 거하는 성전에 가기보다는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 세례요한에게로 몰려 왔습니다. 당신이 외쳐야 할 소리는 무엇인가 당신에게 이러한 복음의 소리가 있는가 모양도 없고, 빛도 없고, 아름다움도 없이 순수한 복음 그리스도만 증거 되는 소리가 있습니까 이러한 소리를 전파할 복음의 현장을 가지고 있습니까 오늘도 수많은 무리들이 이 소리를 듣지 못하고 죽어 가는 영혼들이 많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마태복음 3:2)고 외치는 세례요한 같은 사명자를 찾고 있습니다. 오늘도 복음의 신을 신고 나가는 현장에 놀라운 구원 역사가 일어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은 당신에게 이러한 부탁을 하셨습니다.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마가복음 16:15)고 했습니다. 주님의 최후 부탁이 당신의 삶의 최초 관심사가 되어야 합니다. 가야 하는 것 알지만 왜 못가는가 능력을 받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가기 전에 먼저 제단에 엎드려 능력을 받읍시다. 그래서 주님은 능력 받기 전에는 이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했습니다. 당신은 가정과 이 도성과 밀알 제단의 파수군입니다. 파수군은 때를 따라 정확한 나팔을 불어야 합니다. 당신은 충성된 파수군이 되기를 바랍니다. 가장 긴급한 소리가 무엇인가 당신은 지금 이 소리를 듣고 계십니까 1 지옥에서 부르짖는 부자의 고통 소리입니다.
2 건너와서 도우라는 마게도냐 청년의 청원의 소리입니다. 3 성민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을 위한 하나님이 보내시는 사명의 소리입니다.4 복음의 현장에서 외치는 회개의 소리입니다.
첫째:지옥에서 부르짖는 고통의 소리입니다. 지옥에서 부르짖는 고통의 소리를 들어봅시다(누가복음 16:19-31). 한 부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자색옷과 고운 베옷을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이 연락을 즐겼습니다. 그는 세인들이 가출 것을 골고루 다 갖추었습니다. 그러나 단 한가지 빠진 것이 있는데 예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집 대문간에 한 거지가 있었습니다. 그는 몸에 헌데를 앓으면서 고통중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갑니다. 그는 세상적으로는 참으로 불쌍한 인생입니다.
그런데 그는 예수를 그 중심에 모시고 계셨습니다. 이 두 인생은 다 죽었습니다.
그런데 사후의 세계는 정반대였습니다. 부자는 음부의 세계에서 고통을 받았으며, 거지 나사로는 아브라함의 품 천국에 가서 낙을 누리면서 살았습니다. 음부에서 부르짖는 부자의 고통 소리입니다. 음부에 고통 중에 있던 부자가 눈을 들어서 아브라함 품에 있는 거지 나사로를 보았습니다. 1 부자는 물 한방울 청원했습니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고민하나이다”(누가복음 16:25)고 했습니다. 그때 아브라함은 일언지하에 거절하고 말았습니다. 지옥이 얼마나 무서운 곳인가 물 한방울의 자비와 긍휼을 받지 못하는 곳이 지옥입니다. 아마 그는 세상에 있을 때 나사로에게 물 한방울의 자비도 베풀지 않았던 자였습니다.
2 남은 형제들에게 전도를 부탁했습니다. “가로되 그러면 구하노니 아버지여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저희에게 증거하여 저희로 이 고통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누가복음 16:27-28)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것마저도 거절했습니다. 기도와 전도할 특권도 마져도 잃어버린 곳이 지옥입니다. 세상에는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다고 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에게 기록된 성경과 그 말씀을 외치는 전도자들을 주셨습니다. 그들의 말을 받지 않은 자들은 하나님의 버림받은 멸망의 자식들입니다. 지금 지옥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들어봅시다. 당신은 고요히 이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앞서간 선조들이 음부의 권세에서 탄식하는 고통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지금도 물한방울의 자비가 없는 고통 중에서 부르짖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들의 소리를 듣고 기록된 말씀을 가지고 나가서 선지자들과 같이 외치는 전도자의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둘째:복음의 불모지에서 부르는 청원의 소리입니다. 건너와서 도우라(사도행전 16:6-34) 바울은 2차 전도 여행을 마치고 아시아 지역을 돌아서 안디옥 모교로 돌아오려고 했는데 성령님께서 아시아 지역에서 복음을 전하지 못하게 합니다. 그래서 그는 해변 도시 드로아로 내려갔습니다.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가로되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사도행전 16:9)고 했습니다. 환상을 따라 마게도냐로 갔습니다. 성령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마게도냐 지역으로 나아가니 예비된 영혼을 붙여 주십니다. 하나님은 마게도냐 지역 복음화를 위하여 준비된 영혼을 세워 놓고 바울을 불렀던 것입니다. 자주 장사 루디아는 기도에 열심하고 말씀에 청종하는 신실한 사역자입니다. 바울은 그들과 연합하여 귀신들린 여종을 온전케하여 복음에 수종드는 청지기가 되게 했습니다. 그로 인하여 옥중에 갇혔으나 하나님은 간수를 변화시켜 복음에 동역자로 붙여 주었습니다. 이들이 마게도냐 복음을 위해 빌립보 지역에 교회를 세우는 설립 멤버였습니다. 당신도 성령님의 인도를 받고 살면 하나님의 예비하신 손길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성령님의 인도받고 삽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여행하면서 가장 안전하게 나아간 길은 언약궤를 메고 나아가는 길입니다. 하나님과 맺은 언약의 말씀을 따라 나아가면 그 위에는 항상 구름 기둥 불기둥이 호위해 주었습니다. 그들의 진로를 가로막는 어떠한 세력도 하나님은 용납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아말렉 전투는 그 좋은 본보기였습니다. 찬송가 434장 1절에 “나의 갈길 다가도록 예수 인도하시니 .”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걸어가신 그 길로 나아가면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게 됩니다.
셋째:민족의 아픔에 동참하라는 사명의 소리입니다.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출애굽기 3:1-12) 사십대 기수론을 들고 나왔던 모세는 바로의 왕궁에서 배웠던 학문과 갈고 닦았던 기량과 왕궁을 배경으로한 권세로 민족 독립운동을 해 보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거룩한 진리운동이 세상적인 방법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모세를 미디안 광야로 보내어 이드로의 양을 치면서 이전의 계획들을 산산이 부서 버린 것입니다. 이제 팔십의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지경에 하나님은 모세에게 사명을 주었습니다. 호렙산 기슭에서 본 환상은 세속적인 신을 벗고 사명의 신을 신어라는 하나님의 음성이었습니다. 가시떨기 환상을 봅시다. 이 환상은 광야 서편에서 되어진 것입니다. 하루해가 저물어가는 날이며, 한 인생의 마지막인 황혼기였습니다. 가시떨기에 불이 붙었습니다. 아무 쓸모 없는 나무가 가시 떨기입니다. 모세와 이스라엘의 모습이 마치 가시 떨기 같습니다. 여기에 환난의 불이 붙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사라지지 않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권고하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현장으로 달려간 모세에게 네 발에 신을 벗으라고 말씀하십니다. 모세는 이드로의 양을 치는 세속적인 신을 벗고, 하나님이 주는 복음의 사명적인 신을 신어야 했습니다. 너는 이 신을 신고 내 민족이 있는 바로에게로 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는 못합니다. 이전에는 할 수 있다고 했으나 이젠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아가 포기될 때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모세가 할 수 없음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 일은 모세의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으리라.”(출애굽기 3:12)고 했습니다.
넷째:복음의 현장인 광야에서 외치는 회개의 소리입니다. 세례요한은 결단했습니다(마가복음 1:1-11). 세례요한은 참으로 귀한 인물입니다. 그는 제사장 가문의 출신입니다. 유대에서는 가장 엘리트 가문입니다. 그 아버지는 유대인들에게 존경받는 경건한 제사장 사가랴였습니다(누가복음 1:6). 그가 노경에 자식이 없어서 성소에서 기도하다가 응답 받아 아들 세례요한을 얻었습니다. 그는 태중에서부터 성령님에 충만함을 받았습니다(누가복음 1:41). 그는 많은 유대인들이 소망하는 관원이 될 수 있는 신분을 가졌으며, 대제사장이 되어 산헤드린의 의장도 될 수 있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 모든 것을 다 포기했습니다.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로 살았습니다. 그는 예루살렘의 화려한 성전을 버리고 거치른 광야로 갔습니다. 그는 산해진미로 배불리 먹을 수 있었으나 메뚜기와 석청을 먹으면서 광야의 소리롤 살았습니다. 소리는 모양이 없습니다. 소리는 냄새도 없습니다. 소리는 아름다움도 없습니다. 그 소리는 주님의 길을 예비하는 소리요, 그의 첩경을 평탄하게 하는 소리였습니다. 그는 이름 그대로 소리로 살다가 소리로 살아진 여자가 낳은 자 중에 가장 큰 자였습니다. 그러나 당시 백성들은 제사장들이 거하는 성전에 가기보다는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 세례요한에게로 몰려 왔습니다. 당신이 외쳐야 할 소리는 무엇인가 당신에게 이러한 복음의 소리가 있는가 모양도 없고, 빛도 없고, 아름다움도 없이 순수한 복음 그리스도만 증거 되는 소리가 있습니까 이러한 소리를 전파할 복음의 현장을 가지고 있습니까 오늘도 수많은 무리들이 이 소리를 듣지 못하고 죽어 가는 영혼들이 많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마태복음 3:2)고 외치는 세례요한 같은 사명자를 찾고 있습니다. 오늘도 복음의 신을 신고 나가는 현장에 놀라운 구원 역사가 일어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은 당신에게 이러한 부탁을 하셨습니다.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마가복음 16:15)고 했습니다. 주님의 최후 부탁이 당신의 삶의 최초 관심사가 되어야 합니다. 가야 하는 것 알지만 왜 못가는가 능력을 받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가기 전에 먼저 제단에 엎드려 능력을 받읍시다. 그래서 주님은 능력 받기 전에는 이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했습니다. 당신은 가정과 이 도성과 밀알 제단의 파수군입니다. 파수군은 때를 따라 정확한 나팔을 불어야 합니다. 당신은 충성된 파수군이 되기를 바랍니다. 가장 긴급한 소리가 무엇인가 당신은 지금 이 소리를 듣고 계십니까 1 지옥에서 부르짖는 부자의 고통 소리입니다.
2 건너와서 도우라는 마게도냐 청년의 청원의 소리입니다. 3 성민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을 위한 하나님이 보내시는 사명의 소리입니다.4 복음의 현장에서 외치는 회개의 소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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