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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묻는 그대에게 (마11:2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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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11번째 달의 절반을 넘기고 있습니다. 이제 한달 반 정도 남아있는 올 한해를 돌아보며 여러분은 어떤 생각들을 하고 계시는지요 요즈음은 특히 좋은일 보다는 우울한 소식들이 우리 주위에 자꾸만 쌓여 가는 것 같아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이럴 때 우리의 시야가 탁 트여저 있고 우리가 갈 길이 환하게 보인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이야기 하나:길을 잘못들어 고생한이야기 지난 8월 말경이었습니다. 고등부 교사들 모임을 봉화 청량산에서 가지게 되었었는데 제가 교회에 일이 있어서 늦게 출발하게 되었습니다. 약속된 장소에 가보니(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서로 잘못알아서) 아무도 없고 도무지 찾을 길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자꾸만 찾아 올라가다가 보니 두 갈래 길이 나오는데 한 길은 봉화로 가는 길이라 표시되어 있고 다른 쪽은 안동이라고 표시되어 있었습니다. 저는 집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안동 방향으로 차를 몰아 갓습니다.
그런데 처음에는 평탄하고 넓던 길이 자꾸 가면서 좁아지더니 갑자기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정도로 좁아지면서 길도 바위투성이의 험한길에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차를 뒤로 돌릴 수도 없고 오직 앞으로만 가야 하는데 날은 어두워지고 자꾸만 마음이 불안해 지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혹시 길을 잘못 든 것은 아닌가 이러다가 산 속에서 길을 잃는 것은 아닌가 온갖 생각들이 머리를 스쳐갔습니다. 그렇게 한 25분쯤 내려오다 보니 저만큼 어떤 아저씨 한 분이 경운기를 세워 놓고 있었습니다. 얼른 차를 세우고 그 분께 이길이 안동으로 가는 길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 아저씨께서 어쩌다 이 험한 길로 들어왔느냐고 하면서 계속해서 곧장 가면 안동으로 가는 길이 나온다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길을 모르게 되면 얼마나 마음이 불안해지는지 별 생각이 다들게 됩니다.
그런데 한 아저씨로부터 이 길이 틀림없다는 말을 들으니 어찌나 마음이 놓이고 또 평안해지던지…. 그때까지 나오지 않던 노래가 저절로 나오게 되더라구요.(길은 여전히 터덜길이었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모습을 가만히 보면 참 힘들게 살아가는구나 하고 느끼게 됩니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힘들고,(6세 아이의 골치가 아파, 고민이야 등) 학생들은 또 얼마나 힘드는지(입시 스트레스, 게다가 요즈음은 외모, 환경 등) 어른들은 편하십니까 아니지요.
요즈음 어른들 참 불쌍한 것 같애요. 나는 걱정없이 늘 즐겁게 삽니다라고 할 수 있는 분이 여기 몇분이나 있을까요 이야기 둘:팔불출과 4빼 시중에 나도는 우울한 유행어 가운데 "월급쟁이 팔불출과 3빼"라는 것이있다. 팔불출의 첫째는 평생직장으로 착각하고 장기근속한 사원.다음은 회사가 잘되어야 나도 잘된다는 믿음 속에 가정보다 회사에 더 충실한 사람.그래봐야 명예퇴직 제1차 대상이더라는 것이다.이어 마누라 맞벌이시키지 않는사원, 회사고위층 빽이 없는 이,부업 없이 월급으로만 사는 사람,아무리 봐도 오라는 데 한 곳 없는 사원,밥벌이 될 만한 자격증 하나 없는 사람,딸린 식구가 많은 월급쟁이 순으로 되어 있다. 3빼의 첫 항목은 "살 빼".직장과 가정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스트레스를 받아 퉁퉁 부어 있는데 속도 모르고 체중이 늘었다며 아내와 자식들이 "살을 빼라"면서 구박하는 것을 말한다.두번째는 치솟는 전세값을 감당하지 못할 때 집주인이 내뱉는 "방 빼",세번째는 회사가 어려우니 나가 달라는"책상 빼"이다. 그리고 4번째는 주차 잘못하면 듣게되는 "차 빼"이다. 또 요즈음의 남편들의 표어는 '자는 부인 다시보자'이라고 합니다.(드라마 '애인', 청부폭력으로 남편살해, 뇌물로 남편 자리에서 밀어낸 '이성호 장관'부인 등) 우리 중년의 여자분들은 어디 또 편안합니까 그렇지 못하지요. 아이들 입시때면 아이들과 같이 수험생이 되고, 치솟는 물가 속에서 빠듯한 살림을 해나가느라 정신없이 지내다가 문득 거울을 보면 '왕비'는커녕 왠 늙은 무수리가 한 사람 보인다는 겁니다. 게다가 연속극을 보려고 하면 요즈음은 왠 연속극들이 전부 '애인'의 영향을 받아서 사람을 속상하게 만들고  그래서 나도 저렇게 확 해보고 싶은데 참는다고 하는 분들이 46%나 된다는 별 웃기는 여론조사도 있더라구요. 이렇듯 힘들고 어려우니 여기에서 벗어나고 싶은데 어떻게하면 벗어날 수 있을까요 분명히 길은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길을 찾으려 하면서도 엉뚱한 곳에서 찾고 있는겁니다.
1.주술적인 미신이 판을 치는 사회 분위기 바위 앞에서 자녀 합격을 비는 사람들 오래전부터 입시를 앞두고 행해지는 주술 문화가 암암리에 만연되어 있는 것은 알려진 사실이다. 특히 수능입시가 막바지에 접어들면서 불안에 떠는 수험생들의 심정을 이용해서 '합격 비방'이 등장하여 급속히 번지고 있다고 한다. 대표적인 한 예로 자신이 지망하는 대학의 학교 건물 주변에 남몰래 연필과 지우개 같은 학용품을 묻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지푸라기라도 잡겠다는 심정으로 캠퍼스에 학용품을 묻거나, 네잎 클로버를 찾는 수험생들이 늘어난다고 한다. 이처럼 근거도 없는 다소 황당한 각종 주술 행위들로 인하여 불안에 떠는 수험생들도 생겨나고 있어 입시와 관련된 주술 행위의 심각함을 말해주고 있다. 청소년들의 주술 의존 자신의 생활 속에서 라이벌 관계에 있는 사람을 병들게 하거나, 불행을 안기고, 사고를 당하도록 만드는 주술, 상대의 행운을 빼앗고 두통에 시달리게 하는 주술, 연인을 갈라놓는 주술, 미인을 차지하는 주술, 싫증난이성을 때어버리는 주술, 도박에서 이기는 주술, 자신의 미래를 말해주는 주술, 심지어는 전생에 대해서 알려주는 터무니 없는 주술들이 범람하고 있다. 문제는 이런 허무맹랑한 주술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주술에는 그 신통력을 더하기 위해 온갖 주술도구들이 동원되는 것이다. 머리카락, 짚, 이쑤시게, 손수건, 사진, 반지 등 다양하고 구체적인 방법으로 주술행위를 행하는 것이다. 이처럼 상식 이하의 천하고 괴기한 주술 행위들은 그 목적을 위해서는 무리한 요구들도 서슴지 않고 행하게 하고 있다.
예)볼펜 귀신점. 만득이 시리즈 등 즐겨보는 책;퇴마록,마계마인전,
2.전생, 환생에서 불안을 해소하려 합니다. 최근 우리 사회에 이른바 <전생>과 <환생>의 신드롬이 일고 있다. 김영우라는 정신과 의사가 쓴 '전생여행'이란 책이 10만부가량 팔렸고 양귀자 씨의 '천년의 사랑'도 150만부나 팔렸다. 영화 및 드라마는 '은행나무 침대' '고스트 맘마' '8월의 신부' 등 가요는 신승훈의 5집앨범 "나보다 조금 더 높은 곳에 니가 있을 뿐." (나 다시 태어나도 너만을 사랑할거야.다음 세상 우리 만날 때 서로 다른 모습이라도.),사랑의 완성을 위해서는 죽음도 장애가 될 수 없다는 장혜진의 "완전한 사랑"(그대 기다릴게요.우리 남은 사랑 완전해질 저 다음 세상에서), 신성우의 "슬픔이 올 때까지" 윤종신의 "환생" 등이 신세대를 파고들고 있다. 이렇게 전생이나 환생에 집착하는 이유는 복잡한 현실 속에서 쌓이는 스트레스를 견디기 힘들어 현실도피적인 심정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심각한 피해를 가저온다. 얼마전 기독신보에서 실시한 <전생> 설문 조사의 내용을 보면 기독청소년들 중 과반수가 넘는 학생들이 자신의 전생에 대해 궁금해하고(52%) 또 적지 않은 수의 학생들이 전생이 있다(24.1%)고 믿는 것으로 나타나서 '전생과 환생' 신드롬의 심각성을 말해주고 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비 기독학생들보다 역사는 단회적이라는 기독교세계관을 견지하고 있는 기독학생들이 더 회의적이라고 한다. 전생은 사람을 무기력하게 한다. 사회가 불안정할수록 전생이나 환생, 또는 퇴마록 같은 류의 어황되고 기이한 이야기들이 범람하게 된다고 한다. 그리고 근래에 말하여지는 윤회나 환생에 대한 신드롬은 상업주의에 결탁하여 원래의 그 사상보다도 너무 낭만적이고 감상적이라는 지적도 있다. 전생이나 환생의 논리는 인간이 짐승으로도 태어 날 수 있게 한다. 이것은 명백히 인간에게 있어 여호와 하나님의 형상을 파괴할 뿐만 아니라, 비도덕적인 요소(부모와 자식이 전생에 연인이었다거나, 동물들이었다는 등)가 많으며, 또 역사와 현실에 대한 책임을 회피케 할 수 있는 요소가 많으므로, 이에 깊이 몰두하고 있는 사람들을 무기력하게까지 하고 있다. 데이브 헌트는 그의 저서 <기독교 속의 미혹>에서 "환생이론이야 말로 과학주의와 동방신비주의의 결합이 탄생시킨 마지막 때 최대의 종교적 미혹"이라고 의미있는 지적을 우리에게 남긴다.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창3:4)고 한 사탄의 거짓말이, 오늘날 <전생> 또는 <환생>으로 뉴에이지 운동과 깊은 관련하여 우리에게 다가 오는 것이다. 기독교가 전하는 영생의 진리를 사탄의 교묘한 속임수인 '전생'과 '환생'이 잠식해 가고 있는 것이다.
3.이기적인 자기만족으로 벗어나려 합니다. 청소년들에게 유행처럼 번지는 '왕자병' '공주병' 한 해의 유흥비가 수천억에 이르고 전체 여성 중 200만이 향락산업에 종사하고 있다는 통계, 세계 최대의 양주 소비국으로(작년에 50% 신장) 양주 생산국의 집중공략 대상이 되고 있는 나라. 과연 이것들이 우리에게 진정한 평안을 가져다 주겠습니까 지금 이러한 모습들은 바로 2500여년전 아모스 선지자가 예언한 대로 '진리'에 대한 기갈로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에서 동까지 비틀거리며 달려 왕래 하되 얻지 못하는 그러한 모습이라 할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참된 평안,진정한 쉼의 길은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는 어디에서 그것을 구하여야 하는지요 여기 그 길을 찾아 평안을 누리는 한 사람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오 아볼로씨의 삶 올해 45세인 오규근 씨, 경기도 평택군(현재 평택시) 포승면의 농가에서 태어난 그는 생후 3일 만에 불행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건강하게 태어난 아이였지만 듣도 보도 못한 희귀한 병마가 찾아왔다. 경기를 일으키는 아이를 달래려던 어머니는 기겁을 하고 말았다. 팔과 다리에서 우드득 소리가 나더니 아이가 자지러지듯 울음을 토해낸 것이다. 마땅히 달려가볼 만한 병원도 없는 촌이었지만 치료를 받는 다고 해도 고칠 수 없는 병이라는 것을 아이가 크면서 부모는 알게됐다. 아이는 작은 충격에도 몸 안의 모든 뼈들이 부러지는 병을 앓았다. 병명도 알 수 없었다. 아이는 방 밖 출입도 할 수 없었다. 늘 누워 있어야만 했다. 학교에도 다닐 수 없었고 시골 아이들이 갖는 흙내음 물씬한 추억거리도 가질 수 없었다. 부모들조차 자식이 놀림거리가 되는 게 싫어서 나들이를 말렸다. "열여덟 살 때까지 뼈가 부러지는 증상은 계속됐습니다. 열 살을 넘기면서 1년에 서너 차례씩 부러지던 뼈가 한두 차례 정도로 줄었지만 봄, 가을이면 뼈가 부러져 꼼짝달싹도 못하는 일이 계속됐습니다. 당연히 발육은 멈췄죠. 그 때까지 방에서 창으로 내다본 세상이 내가 아는 모든 것이었습니다." 기독교인이었던 부모들조차 손님이 오면 그를 골방에서 나오지 못하게했다.
그런데 엉뚱한 일이 벌어졌다. 그가 스물한 살이 되던 70년의 어느 가을날이었다. 어머니가 그에게 작은 종이쪽지를 건네 주며 혀를 찼다. 그것은 입대를 위한 신체검사 통지서였다. 말도 안 되는 일이 사무착오로 발생한 것이었지만 그는 한편으로 기쁜 마음도 들었다. 나도 사람은 사람인가 보구나 하는. "통지서를 받은 지 10여 일 후에 아버지가 빌려온 자전거 뒷좌석에 타서 평택경찰서로 가게 됐어요. 그것이 제가 처음 본 세상이었습니다. 그때 버스도 처음 타봤죠.
그런데 승객들이 모두 나를 바라보는 것이었습니다. 그 당시만해도 장애인은 집에만 틀어박혀 있어야 했으니까요. 신기한 듯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그 때는 무슨 뜻인지 몰랐죠." 차라리 세상을 못 봤다면 마음의 상처도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우연히 세상을 보게 되고 나선 실의에 빠졌다. 차라리 죽어 버렸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동안 마음에 생긴 상처 때문에 침울한 나날을 보내던 그는 마음을 고쳐먹었다. 억울했다. 원하지도 않은 뼈가 부러지는 고통을 참아가며 살아왔는데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다는 오기가 생겼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뭔가를 생각하기 시작했죠. 성치 않은 몸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더 괴롭기도 했지만 결국에는 글을 쓸 수는 있다는 결론을 내렸죠." 그는 그후 10년간 혼자 글을 썼다. 소설가가 될 생각이었다. 학교라곤 문턱도 밟아보지 못했던 그이지만 동생이 학교를 다니면서 가져온 교과서 따위를 어깨 너머로 익혀 글은 읽고 쓸 줄 알았다. 그렇게 시작된 독서 습관은 정상적인 아이들에 비해 더 악착같았다. 동생이 다니던 학교에 있는 문고판 서적들을 모두 다 읽을 정도였다. 그것이 소설가를 꿈꾸게 된 동기이기도 했다. 그는 스물아홉 살 되던 해까지 10년간 꼬박 각 신문의 신춘문예에 투고했다. 뼈가 부러지는 증상이 멈추고 나선 집안 일도 도와가며 저녁시간을 이용해 소설 습작을 했다. "서른 살 때까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인생이라면 차라리 농약을 먹고 죽어버리자고 생각했습니다. 소설가가 되겠다는 생각은 필사적이었어요. 그러나 스물아홉 살이 되던해에 집어치우고 말았습니다. 너무나 힘든 일이었던 거죠." 소설을 포기할 때 그의 심경은 너무나 참담한 것이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자괴감 때문에 몸져눕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는 다시 일어 설 수 있었다. 기독교적인 가정분위기가 그의 마음 속에 남아 있었고 그런 그에게 예수님은 그의 마음의 눈을 뜨게 해 주신 것이다. 절망 속에서 주님게 자신의 짐을 내려 놓은 그에게 주님은 그에게도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셨다. "우여곡절 끝에 세상에서 내가 할 일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여러가지 제약이 따랐습니다. 일단은 정보도 없었고 우표 값도 없는 처지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기독교 방송을 듣다가 편지를 보내기로 작정했습니다." 그가 기독교 방송에 보낸 편지는 전파를 타고 전국 곳곳에 퍼졌다. 그 후 그의 뜻에 감동한 사람들로부터 편지가 왔다. 어떤 사람들은 편지봉투와 편지지, 우표 등을 보내왔다. 그들이 없었다면, 그는 아무런 일도 하지 못한다는 자괴감으로 세상을 등질 수도 있었다. 그러나 어디에나 음지의 사람들을 돌보고자 하는 따뜻한 마음이 있게 마련이다. 그는 그들을 `우표회원'이라고 부른다. 그의 아내 윤선자 씨(31)도 그런 사람들 중의 한 명이었다. 서울서 직장생활을 하던 윤씨는 그의 `우표회원'이 되었다가 결혼에 이르렀다. 학창시절부터 용돈을 아껴 우표를 사서 보내주곤 하던 윤씨는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그를 도왔다. 그리고 그를 안 지 7년 만에 중대한 결심을 했다. 변함 없는 `큰 사랑'을 실천하는 그의 팔과 다리가 돼주자는 생각이었다. 부모와 가족들에게 조차 알리지 않고 몰래 그의 단칸방으로 거처를 옮겼다. 그 때가 89년이었다. "8년 만에 친정 식구들이 우리 집으로 왕래를 시작했습니다. 기독교인인 남동생이 가끔 와서 매형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볼 때면 눈물이 핑 돕니다." 윤씨의 사랑도 오아볼로 씨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혼자선 외출도 할 수 없는 그의 손발이 되어 8년동안을 한결같이 그를 돌봐주었다. 결혼생활은 꿈도 꾸지 않았던 오아볼로 씨에게 무엇보다 큰 힘이 된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가 아내의 도움을 받아가며 지금까지 띄운 편지는 30만 통이 넘는다. 그 중에서 단 한 통이라도 실의에 빠진 사람에게 재활의 힘이 되었다면 얼마나 보람 있는 일이겠는가. 그의 편지를 받은 사람들 중에 새로운 용기를 얻고 답장을 보내주는 사람들도 있다.
그의 컴퓨터 옆 작은 탁자 밑에는 수백 통의 답장이 쌓여 있다. 거기에는 재소자 번호가 적혀있는 편지가 있는가 하면 힘겹게 써내려가느라 글씨가 삐뚤빼뚤한 장애인의 편지도 있다. 집배원이 한 번에 가져오는 우편물이 보통 수십 통에 이른다. "편지를 띄우는 일을 계속해오면서 `문서가정복음'이라는 전도지도 발행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함께 장애인 등 이 사회에서 소외받는 사람들이 서로 정보를 나누고,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소식을 싣고 있습니다." 정상인도 할 수 없는 어려운 일을 15년 동안이나 해오면서 그는 저절로 삶이 고마워졌다. 살아 있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그러나 갈수록 사람들의 도움이 더 필요해진다. 편지를 보낼 곳이 늘어나고 전도지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큰 도움이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세상으로부터 버림받고 용기를 잃은 사람들이 새 삶의 의욕을 가질 수 있도록 편지를 보낼 수 있게 우표 몇 장이라도 보내주십사 하는 겁니다. 그 후의 일은 그 사람들의 몫이지만 용기를 북돋워주고 차별 없이 대해주어야 하는 게 정상인들의 의무일 겁니다." 거듭나기 위해 본명 대신 신약성서의 고린도전서 3장6절에 나오는 착한 일 하는 사람의 이름, 아볼로를 쓰기 시작한 그는 오늘도 서울 은평구 응암동 주택가의 한 작은 다세대 주택 2층 작은 방에서 자신의 험난하고 참담했던 삶의 체험을 적어 소외되고 좌절한 사람들에게 편지를 쓴다.
그 편지는 또 어떤 체념한 자의 사위어가는 삶에 의욕의 불씨를 당기게 될 것이다. 이 이야기를 들으시면서 여러분 길을 찻으셨습니까 그의 장애가 다 나아서 그가 정상적인 사람이 되었습니까 주변의 여건이 획기적으로 나아저서 그가 느끼는 불편함이 없어졌습니까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는 것 같은데 무엇이 그의 어깨를 누르고 있던 증오와 좌절과 실망과 눈물과 아픔을 사라지게 했습니까 그것은 누군가 그의 어깨 위에 얹혀 있던 그 무거운 짐들을 가져갔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누구입니까 그렇습니다.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께 나아와 그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그 분의 뜻에 따랐더니 비로소 눈이 열려지고 길이 보이게 된 것입니다. 그 분이 지워주는 것을 지고 인도하시는 대로 따랐더니 전에는 남에게 짐만 되던 인생이 남에게 도움을 주는 인생으로 바뀌어지게 되어졌고, 전에는 보는이들의 동정만 받고 주위의 사람들을 가슴아프게 하던 삶을 이제는 마음에 상처를 입은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는 사람, 낙망한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사람, 좌절한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는 사람으로 하나님께서 이 오 아볼로라는 분을 사용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에필로그: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장애인입니까 아니지요 그러나 우리의 몸과 마음, 우리의 삶은 온갖 세상 염려와 근심으로 부러지고 장애인이 아닌지요
그런데 우리는 어디에서 길을 찾고 있습니까 길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이 유일한 길입니다. 누구든지 예수 앞에 나오면 짐이 바뀌어 진다고 주님은 말씀하고 계십니다. "세상의 온갖 염려와 근심에 눌려 허덕이는 사람은 다 내게로 오너라. 내가 편히 쉬게 하리라. 내가 너희의 고통과 좌절과 아픔을 다 아노니 그 짐을 내게 맡기고 내가 이끄는대로 나의 말을 들어라. 그러면 너희는 참된 평안과 쉼을 얻게 될 것이다."(사역 마태 11:28-30) 짐이 바뀐다는 것은 삶의 개념, 아니 본질 자체가 바뀌어 짐을 말합니다. 내 짐을 지고 있을 때는 나만 보이고, 세상에서의 출세, 성공만 보이고, 물질만 보이고, 잠시 있다가 썩어질 6육체의 행복만이 보이기 때문에 다투고 시기하고 헐뜯고 경쟁하고 그러다가 그 속에서 실망하고 좌절하고 낙담하게 되고 그래서 한 순간도 평안할 날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내 짐을 예수 앞에 내려 놓고 예수께서 지워주시는 멍에를 메게 되면 이 모든 것이 다 사라지게 되고 오직 예수 만이 우리 속에 가득차게 되어서 진정한 평안과 안식, 참된 감사만이 우리속에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람이 바로 진정한 인생의 승리자가 되는 것입니다. 참된 진리의 길을 찾은 이 기쁨과 감격을 1900년대 초 일본 기독교의 전도자였던 우찌무라 간죠(內村監三)라는 분은 이렇게 노래하였습니다.(찬미예수 326) "예수를 생각하고 나는 나의 가난함도 슬프지 않고 남의 부요함도 부럽지 않나니 예수를 생각하고 나는 오직 감사한 마음이 넘칠 따름이라 예수를 생각하고 나는 몸의 환란도 괴롭지 않고 그 행복도 사모하지 않나니 예수를 생각하고 나는 오직 평강과 만족만 있을 따름이라 예수를 생각하고 나는 일의 실패에 실망치 않고 그 성공에 뒤며 기뻐하지 않나니 예수를 생각하고 나는 오직 영원한 승리자이기 때문이라" 오늘 여기에 참석한 청소년 여러분! 여러분들의 불투명한 앞길이 여러분을 불안하게 합니까 길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마음에 한가득 삶에 대한 염려를 안고 계신 여러분! 그 무거운 짐에서 놓임 받기를 원하십니까 참된 평안의 길이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소외당하고 무시당하여 분노와 좌절을 삭이고 계십니까 평강과 감사만이 넘치게 되는 길이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달려가는 인생의 경주에서 진정한 승리자가 되기를 원하십니까 그 길이 바로 예수그리스도 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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