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아들 삼손 (삿13:1-8)
본문
저희 교회 교우 가운데 아이를 낳다가 거의 죽을 뻔한 자매가 있습니다. 저희 부부가 병원을 찾아갔을 때 그 자매는 산소 호흡기 에 의존해서 가까스로 생명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이야기를 나누려 해 보았지만 일체의 반응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기도를 들으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여 10분 동안 그 옆에서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기도를 끝내고 눈을 뜨자 자매의 눈동자가 반짝였습니다. 눈으로 무슨 말을 하였습니다. 소리는 전혀 알아 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 제 아내는 그 자매가 살아날 것 같다는 예감을 받았답니다 .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 자매와 그 가정에 기적을 내려 주시기를 간구하였습니다. 우리의 기도대로 그 자매는 건강을 되찾았습니다. 그러나 기억을 회복할 수 없다는 선언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이 가정을 향한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이 있다면 주님은 이 문제까지도 능히 해결해 주시리라 믿었습니다. 남편조차 알아보지 못하는 상황에서 그 가족 이 겪은 고통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기억력을 되찾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주님은 이 가정에 신실한 사랑으로 새로운 삶을 주셨습니다. 기적 을 행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기 바랍니다. 특히 이 자매는 대부분 의 기억을 상실한 가운데서도 말씀과 찬양을 기억하는 은혜를 받았습니다.
기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몇 년 전 한 부부가 수요 예배가 끝난 뒤에 저를 찾아왔습니다. 그 부부는 솔직하게 그들의 갈등을 털어놓았습니다. 두 사람은 이혼을 결심하고 최종적으로 제 조언을 들으러 왔습니다. 남편은 우리 부부는 끝났습니다. 희망이 없습니다. 혹시 기적이 일어난 다면 몰라도…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이때 이 부부에게 그래요 제가 보기에는 두 분에게 희망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기적은 지금도 일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라고 대꾸했습니다. 그들은 어떤 기적이 있는지 궁금해 했습니다. 저는 두 시간 가까 이 그들에게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핵심인 복음을 설명해 주었습니다. 이 부부는 교회에는 가끔 출석하지만 진정한 신앙을 갖고 있 지는 않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새벽 1시가 다 되어 제사 무실에서 무릎을 꿇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와 주님으로 영접했습니다. 주님께 대한 신앙을 고백했습니다. 기도가 끝난 후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던 남편이 목사님, 어쩐지 희망이 생깁니다. 다시 한번 열심히 살아 보겠습니다 하고 다 짐했습니다. 처음에는 부부가 따로따로 들어왔는데 나갈 때는 두 사람이 손을 꼭 잡고 있었습니다. 제 생애에 그 순간처럼 유쾌하 고 보람찼던 적이 없었습니다. 그날 밤하늘의 별은 다른 어느 때 보다 더 아름답게 빛났습니다. 저는 기적을 믿습니다. 기적은 날마다 일어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기적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기적은 아직도 역사의 현장에서 계 속되고 있습니다. 당신은 기적이 일어나지 않으면 안 될 답답한 상황에 처해 고민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본문에 그런 가정이 등장합니다. 바로 삼손이 태어날 가정입니다. 이 부부에게는 자녀가 없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사회에서 자녀 가 없는 것은 한 가정의 죽음과도 같은 절망이었습니다. 소라 땅에 단 지파의 가족 중 마노아라 이름하는 자가 있더라 그 아내가 잉태하지 못하므로 생산치 못하더니(2절). 그 시대에는 자녀를 낳지 못하는 것이 최대의 저주이고 최고의 수 치였습니다.
그런데 이 가정에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아들을 낳았 습니다. 그를 삼손이라고 이름 지었습니다. 이 아들은 기적의 아 들이었습니다. 우리는 본문을 읽으면서 중요한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이 기적이 일어날 수 있었던 배경이 무엇인지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이 기적을 낳게 한 원인으로 세 가지를 꼽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본문의 시대 정황을 알려 주는 1절 말씀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다시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으므로 여호와 께서 그들을 사십 년 동안 블레셋 사람의 손에 붙이시니라. 이스라엘 백성은, 악을 행하고 죄를 범하면 하나님이 징계하시고, 회개하면 하나님이 다시 새로운 사사를 보내어 구원하는 악순환의 역사를 계속 반복하였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사랑하고 용납하사 또한번 기회를 주시는데도 이스라엘은 또 죄를 범합니다. 참는 것도 한두 번이지, 저 같으면 벼락을 내릴 순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상황에서도 그 백성에게 기회를 주십니다. 이들을 멸망시키거나 저주하거나 심판하기는커녕 주님의 백성들을 구 출하기 위해 사사를 예비하십니다. 그 사람이 삼손입니다. 이 사건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은혜란 받을 자격이 전혀 없는 사람에게 베풀어지는 일방적인 하나님의 호의입니다. 그것이 은혜란 말의 본뜻입니다. 받을 자격이 없는 이스라엘에게 베풀어지는 호 의야 말로 하나님의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삼손의 탄생은 개인적으로는 희망을 잃었던 마노아와 그 아내에게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하나님은 자녀가 없어 절망과 슬픔에 빠져 있던 가정에 친히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하나님이 몸소 이 부부 곁에 찾아오셨습니다. 은혜는 항상 하나님에게서 시작됩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찾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먼저 인간에게 손길을 뻗으십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요 3:1
6). 항상 은혜의 사역은 주님 편에서 시작됩니다. 마노아의 아내에게도 주께서 먼저 찾아오셨습니다. 이 여인의 이름 은 성경에 밝혀져 있지 않습니다. 이름도 모르는 여인에게 하나님 이 천사의 모습으로 방문하셨습니다. 마노아 부부는 자기들을 찾아 온 분이 하나님의 천사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이 보 내신 사람 같다는 느낌은 받았지만 정확히 알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여호와의 사자에게 이름을 물었습니다. 18절에 그 대답이 나옵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그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이를 묻느냐 내 이름은 기묘(奇妙)니라. 하나님이 자신의 이름을 기묘라고 밝히셨습니다. 영어로는 w onderful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도 장차 오실 메시아를 예언하면서 그 이름은 기묘자(9:6)라고 했습니다. 이 놀라 운 분이 놀라운 방법으로 슬픔과 절망에 젖어 있는 여인 곁에 다 가오셨습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주님이 직접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을 만나기도 힘이 드는데 하나님이 직접 우리를 만나러 오신다는 것은 보통 큰 은혜가 아닙니다. 마노아의 가정이 받고 있던 고통을 해결하시고 그 시대에 새로운 희망을 주기 위 해 친히 찾아오신 하나님의 은혜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사사 시대에 살던 인물 가운데 룻이 있었습니다. 모압 여인이었던 룻은 남편을 잃은 뒤 시어머니를 따라 남편의 고향 베들레헴에 와서 살았습니다. 룻은 이삭을 주으며 근근히 연명했습니다. 그런데 룻 앞에 하나님이 보내신 남자가 한 사람 등장합니다. 룻은 그를 하나님이 보내신 사람이라고 믿었습니다. 룻은 이 하나님의 사람 앞에 엎드려 자기의 절실한 심정을 토로했습니다. 내 주여 내가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룻 2:13). 하나님은 이 여인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이때부터 룻의 삶에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모든 기적은 하나님의 은혜 때문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주권적 인 은혜가 기적의 원천입니다. 은혜는 기적을 낳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당신의 삶 가운데 기적이 필요하다면 그 기적은 은혜 안에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그분께 모든 것을 맡길 때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당신에게 임하여 기적이 일어날 것입니다.
거룩함
거룩함이 있는 곳에서 기적이 일어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 들의 범죄에도 불구하고 기적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은 자 꾸만 죄를 범하는데 하나님은 저주 대신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마 치 바울 사도가 로마서에서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다 (5:20)고 한 말씀이 이와 같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곡 해하지 마십시오. 죄가 있는 곳에 은혜를 주시니까 더욱 큰 은혜 를 받기 위해서 더 악한 죄를 범해야 한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관용을 그런 식으로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은혜의 기적이 나타나기 위해서는 죄에서 돌이키는 회개가 필요합니다. 죄가 있는 곳에 은혜를 베푸는 것은 사실이지만 여기에는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우리가 진지하게 죄를 떠나고자 노력하는 것, 회개의 눈물을 흘리며 주님의 거룩함을 사모하고자 하는 자 세가 필요합니다. 그때부터 비로소 기적이 나타납니다. 하나님이 행하신 기적 사건들을 나열해 보십시오. 기적을 행하시기 전에 반드시 요구하는 사항이 있습니다. 바로 거룩하라입니다 .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 강을 건너려는 장면을 예로 들어 봅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떻게 요단 강을 건널까를 걱정했는데, 하나님은 그 대답을 주시기 전에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스스로 성결케 하라 여호와께서 내일 너희 가운데 기사(奇事)를 행하시리라(수 3:5). 우리는 이 궁지에서 어떻게 빠져 나갈까, 내 삶에 희망은 있는 가에 관심이 있으나,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일차적인 기 대는 우리의 거룩함입니다. 사사기를 읽다 보면 하나님이 이방 민족을 들어서 이스라엘 백성들 의 잘못을 벌하고 징계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삼손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을 억압하던 블레셋은 무력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블레셋은 이스라엘에게 자유를 한껏 주었습니다. 정복자인 블레셋 사람과 이스라엘 사람들이 마음대로 결혼하도록 허용했습니다 . 그리고 사치한 문화를 만들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 이 블레셋의 노예가 되는 것, 망해 가는 것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 본래 팔레스타인이라는 낱말은 블레셋이라는 말에서 나왔습니다. 고 대 문화의 대표적인 예가 팔레스타인 문화입니다. 고고학자들은 이 스라엘의 유적지들을 발굴하여 삼손 시대로 추정되는 고고학적 유물 들을 많이 발견하였습니다. 유물들 가운데 대부분이 술병, 술항아 리, 술주전자 따위입니다. 당시의 향락 문화와 쾌락주의를 짐작케 하는 물건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러한 블레셋의 세속 문화에 휩싸인 이스라엘을 구원할 구원자로 택한 사람이 삼손입니다. 하나님은 삼손을 잉태하게 하 면서 먼저 그 어머니에게 두 가지금지 사항을 말씀하셨습니다. 4절 말씀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너는 삼가서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지며 무릇 부정 한 것을 먹지 말지니라.
첫째/포도주와 독주 대개 음주 문화가 발달하면 그 시대는 망하기 시작합니다. 쾌락과 사치와 방종의 삶은 술에서 비롯됩니다. 술 좋아하는 사람들은 온갖 핑계를 다 대면서 술 마실 건수를 만듭니다. 사업상 어쩔 수 없이, 체면상 할 수 없이, 도의상 안 마실 수 없어 마셨다 고 합니다. 이런 우스갯소리도 있습니다. 월요일은 원래 마시는 날이고, 화요 일은 화끈하게 마시는 날이고, 수요일은 수없이 마시는 날이고, 목요일은 목이 터져라 마시는 날이고, 금요일은 금방 마시고 또 마시는 날이고, 토요일은 토하고 마시는 날이고, 일요일은 일일이 술집 찾아다니면서 마시는 날이랍니다. 한국에서 제일 많이 새로 생기는 것이 술집과 교회라고 합니다. 술집과 교회는 비례하여 증가한다고 합니다. 보통 비극이 아닙니다 . 교회가 많아지면 술집이 줄어야 하는데 왜 술집이 같이 늘어납 니까 역사를 뒤돌아보면 교회에 진정한 영적 각성과 부흥이 일어 날 때 술집이 다 문을 닫았습니다. 오늘날의 교회가 세속화되었기 때문에 술집이 줄지 않고 있습니다. 사회를 일깨우지 못하고 있는 교회의 슬픈 자화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둘째/부정한 것 하나님은 단순하게 부정한 음식만을 먹지 말라고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거룩함입니다. 삶의 거룩함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태어날 삼손도 어머니와 같이 위의 두 가지금지 사항을 지켜야 했고(13,14절 참조), 이와 더불어 머리를 자르지 말아야 했습니다(5절 참조). 머리를 자르지 않는 것은 하나님 앞에 헌신했다는 표시입니다. 본래 나실인은 일정 기간만 서원할 수도 있고 평생을 서원할 수도 있는데, 하나님은 삼손에게 평생 헌신할 것을 요구하셨습니다. 나실인은 나실 사람이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이는 히브리어로 나 지르인데 구별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평생을 하나님께 바친 사람입니다. 이 시대를 구원할 사사는 세상의 죄악에서 구별된 사람, 세상 사람들의 풍조와 유행에서 구별된 사람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 시대를 깨우는 일에 거룩한 사람을 요구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이면서 아직 술을 끊지 못한 사람은 이 문제를 놓고 진 지하게 고민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술 자체가 구원과 관련된 것으로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거룩한 삶과는 분명히 관련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기적을 원합니다. 경기가 침 체되어 있으면 내가 하는 사업이 번창하는 기적을 원하고, 몸이 아프면 병에서 낳는 기적을 원합니다. 출세하기 원하고 동료들 사 이에서 인기 얻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질문은 이것입니다. 우리는 기적을 원하는 만큼 거룩함을 사모하는가 하나님이 기적을 일으키기 전에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거룩함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기적을 원하는 것 이상으로 우리 삶에서 참으로 거룩함을 추구해야 합니다. 주님의 거룩함을 사모해야 합니다. 얼마 전에 세상을 떠난 유명한 기독교 철학자 프란시스 쉐퍼 박사는 말년에 암으로 고생하면서 미국 유수의 대학들을 방문했습니다. 시한부 인생을 사는 상태에서 여러 학교와 교회를 방문한 쉐퍼는 피를 토하듯 진리를 외쳤습니다. 쉐퍼 박사가 진단한 미국의 문제는, 행복은 추구하지만 거룩은 추구하지 않는 점이었습니다. 지난날에는 하나님을 닮은 거룩함을 삶의 목표로 삼았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 문제 때문에 선배 그리스도인들은 심각한 고민을 했습니다. 거룩하지 못한 삶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머리를 조아렸 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사람들 을 닮아 출세와 세상 명예와 행복만을 원합니다. 우리는 거룩하신 주님을 닮아 거룩하게 살기를 원합시다. 부정하게 출세하고 잘사는 것보다 손해 보고 못 살더라도 거룩해지기를 원합시다. 죄를 지으면서 부자가 되고 행복하게 사는 것보다도 가난하게 살더라도 주님의 거룩함을 본받아 살기를 원합시다. 기적은 거룩함에 기인합니다.
기도
8절 말씀에 기적의 또한 요인이 나옵니다. 마노아가 여호와께 기도하여 가로되. 마노아는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아들을 주시기로 이미 약속하셨는데도 마노아는 기도했습니다. 기도야말로 기적의 언약이 이루어지는 통로입니다. 하나님은 약속한 대로 행하십니다. 그러나 성도가 기도할 때를 기다리십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하는 통 로입니다.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위대한 기적, 영광의 하나님이 나와 더불어 동행하며, 나를 사용하시고, 내 기도에 응 답하시고, 내 삶에 그분의 풍성함을 채우시고, 놀라운 감동을 주는 기적이 지금은 왜 일어나지 않고 있습니까 사도 야고보가 이에 대해 답해 주고 있습니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 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약 4:2,3). 구하지 않기 때문에 응답이 없고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에 기적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우리의 이기심이라는 한계를 벗어 나지 못하는 기도가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 기도가 정말 하나님 뜻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까 기도의 본질이 무엇입니까 어떤 사람이 기도의 본질에 대해 이렇 게 정의(定義)하였습니다. 참된 기도는 나의 소원, 내 뜻을 하늘에서 응답받는 것이 아니 라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서, 나의 삶에서 이루는 것이다. 그것 이 기도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기도하게 하시는 진정한 이유는, 단순히 우리 소 원을 성취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통해 주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입니다. 기도의 핵심, 기도의 정신이 가장 잘 표현된 주기도문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봅시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마 6:9,10).
주기도문의 첫번째 부분은 철저하게 하나님께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우리의 뜻은 하나님의 뜻에 굴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거 룩하심을 본받아 우리의 삶이 거룩해져야 합니다. 우리의 모습을 통해 주의 이름이 거룩하게 여겨져야 합니다. 거룩을 추구하는 우리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야 합니다.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가야 합니다. 우리가 부족하고 연약하고 평범한 인간이지만 하나님 뜻대로 살아가 려고 고민하고 주님이 기뻐하실 삶을 살려고 노력할 때 주님이 주 시는 신선한 기쁨과 감사를 느낄 수 있습니다. 부족한 대로 주님 의 일을 하고 이웃을 돕고 섬기면서 하나님의 뜻을 일상 생활에서 실현할 때 하늘의 축복이 임합니다. 복음을 전하면서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받을 때 하나님의 영광을 드높일 수 있습니다. 자신의 얄팍한 이기심이 아닌 하나님 뜻에 맞추어 살아갈 때 세상 에서의 삶이 비록 힘들더라도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는 기쁨을 얻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우리 삶을 책임져 주십니다. 한없는 복을 주십니다. 주님의 뜻에 우리 삶의 초점을 맞추고 그 뜻이 이루어지도록 기도할 때 기적이 일어납니다.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 때 늘 기쁘고 즐거울 뿐 아니라 기적 가운데 살게 됩니다. 당신에게 이런 신앙의 체험이 있기 바랍니다.
기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몇 년 전 한 부부가 수요 예배가 끝난 뒤에 저를 찾아왔습니다. 그 부부는 솔직하게 그들의 갈등을 털어놓았습니다. 두 사람은 이혼을 결심하고 최종적으로 제 조언을 들으러 왔습니다. 남편은 우리 부부는 끝났습니다. 희망이 없습니다. 혹시 기적이 일어난 다면 몰라도…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이때 이 부부에게 그래요 제가 보기에는 두 분에게 희망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기적은 지금도 일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라고 대꾸했습니다. 그들은 어떤 기적이 있는지 궁금해 했습니다. 저는 두 시간 가까 이 그들에게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핵심인 복음을 설명해 주었습니다. 이 부부는 교회에는 가끔 출석하지만 진정한 신앙을 갖고 있 지는 않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새벽 1시가 다 되어 제사 무실에서 무릎을 꿇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와 주님으로 영접했습니다. 주님께 대한 신앙을 고백했습니다. 기도가 끝난 후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던 남편이 목사님, 어쩐지 희망이 생깁니다. 다시 한번 열심히 살아 보겠습니다 하고 다 짐했습니다. 처음에는 부부가 따로따로 들어왔는데 나갈 때는 두 사람이 손을 꼭 잡고 있었습니다. 제 생애에 그 순간처럼 유쾌하 고 보람찼던 적이 없었습니다. 그날 밤하늘의 별은 다른 어느 때 보다 더 아름답게 빛났습니다. 저는 기적을 믿습니다. 기적은 날마다 일어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기적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기적은 아직도 역사의 현장에서 계 속되고 있습니다. 당신은 기적이 일어나지 않으면 안 될 답답한 상황에 처해 고민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본문에 그런 가정이 등장합니다. 바로 삼손이 태어날 가정입니다. 이 부부에게는 자녀가 없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사회에서 자녀 가 없는 것은 한 가정의 죽음과도 같은 절망이었습니다. 소라 땅에 단 지파의 가족 중 마노아라 이름하는 자가 있더라 그 아내가 잉태하지 못하므로 생산치 못하더니(2절). 그 시대에는 자녀를 낳지 못하는 것이 최대의 저주이고 최고의 수 치였습니다.
그런데 이 가정에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아들을 낳았 습니다. 그를 삼손이라고 이름 지었습니다. 이 아들은 기적의 아 들이었습니다. 우리는 본문을 읽으면서 중요한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이 기적이 일어날 수 있었던 배경이 무엇인지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이 기적을 낳게 한 원인으로 세 가지를 꼽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본문의 시대 정황을 알려 주는 1절 말씀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다시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으므로 여호와 께서 그들을 사십 년 동안 블레셋 사람의 손에 붙이시니라. 이스라엘 백성은, 악을 행하고 죄를 범하면 하나님이 징계하시고, 회개하면 하나님이 다시 새로운 사사를 보내어 구원하는 악순환의 역사를 계속 반복하였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사랑하고 용납하사 또한번 기회를 주시는데도 이스라엘은 또 죄를 범합니다. 참는 것도 한두 번이지, 저 같으면 벼락을 내릴 순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상황에서도 그 백성에게 기회를 주십니다. 이들을 멸망시키거나 저주하거나 심판하기는커녕 주님의 백성들을 구 출하기 위해 사사를 예비하십니다. 그 사람이 삼손입니다. 이 사건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은혜란 받을 자격이 전혀 없는 사람에게 베풀어지는 일방적인 하나님의 호의입니다. 그것이 은혜란 말의 본뜻입니다. 받을 자격이 없는 이스라엘에게 베풀어지는 호 의야 말로 하나님의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삼손의 탄생은 개인적으로는 희망을 잃었던 마노아와 그 아내에게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하나님은 자녀가 없어 절망과 슬픔에 빠져 있던 가정에 친히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하나님이 몸소 이 부부 곁에 찾아오셨습니다. 은혜는 항상 하나님에게서 시작됩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찾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먼저 인간에게 손길을 뻗으십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요 3:1
6). 항상 은혜의 사역은 주님 편에서 시작됩니다. 마노아의 아내에게도 주께서 먼저 찾아오셨습니다. 이 여인의 이름 은 성경에 밝혀져 있지 않습니다. 이름도 모르는 여인에게 하나님 이 천사의 모습으로 방문하셨습니다. 마노아 부부는 자기들을 찾아 온 분이 하나님의 천사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이 보 내신 사람 같다는 느낌은 받았지만 정확히 알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여호와의 사자에게 이름을 물었습니다. 18절에 그 대답이 나옵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그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이를 묻느냐 내 이름은 기묘(奇妙)니라. 하나님이 자신의 이름을 기묘라고 밝히셨습니다. 영어로는 w onderful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도 장차 오실 메시아를 예언하면서 그 이름은 기묘자(9:6)라고 했습니다. 이 놀라 운 분이 놀라운 방법으로 슬픔과 절망에 젖어 있는 여인 곁에 다 가오셨습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주님이 직접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을 만나기도 힘이 드는데 하나님이 직접 우리를 만나러 오신다는 것은 보통 큰 은혜가 아닙니다. 마노아의 가정이 받고 있던 고통을 해결하시고 그 시대에 새로운 희망을 주기 위 해 친히 찾아오신 하나님의 은혜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사사 시대에 살던 인물 가운데 룻이 있었습니다. 모압 여인이었던 룻은 남편을 잃은 뒤 시어머니를 따라 남편의 고향 베들레헴에 와서 살았습니다. 룻은 이삭을 주으며 근근히 연명했습니다. 그런데 룻 앞에 하나님이 보내신 남자가 한 사람 등장합니다. 룻은 그를 하나님이 보내신 사람이라고 믿었습니다. 룻은 이 하나님의 사람 앞에 엎드려 자기의 절실한 심정을 토로했습니다. 내 주여 내가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룻 2:13). 하나님은 이 여인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이때부터 룻의 삶에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모든 기적은 하나님의 은혜 때문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주권적 인 은혜가 기적의 원천입니다. 은혜는 기적을 낳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당신의 삶 가운데 기적이 필요하다면 그 기적은 은혜 안에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그분께 모든 것을 맡길 때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당신에게 임하여 기적이 일어날 것입니다.
거룩함
거룩함이 있는 곳에서 기적이 일어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 들의 범죄에도 불구하고 기적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은 자 꾸만 죄를 범하는데 하나님은 저주 대신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마 치 바울 사도가 로마서에서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다 (5:20)고 한 말씀이 이와 같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곡 해하지 마십시오. 죄가 있는 곳에 은혜를 주시니까 더욱 큰 은혜 를 받기 위해서 더 악한 죄를 범해야 한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관용을 그런 식으로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은혜의 기적이 나타나기 위해서는 죄에서 돌이키는 회개가 필요합니다. 죄가 있는 곳에 은혜를 베푸는 것은 사실이지만 여기에는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우리가 진지하게 죄를 떠나고자 노력하는 것, 회개의 눈물을 흘리며 주님의 거룩함을 사모하고자 하는 자 세가 필요합니다. 그때부터 비로소 기적이 나타납니다. 하나님이 행하신 기적 사건들을 나열해 보십시오. 기적을 행하시기 전에 반드시 요구하는 사항이 있습니다. 바로 거룩하라입니다 .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 강을 건너려는 장면을 예로 들어 봅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떻게 요단 강을 건널까를 걱정했는데, 하나님은 그 대답을 주시기 전에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스스로 성결케 하라 여호와께서 내일 너희 가운데 기사(奇事)를 행하시리라(수 3:5). 우리는 이 궁지에서 어떻게 빠져 나갈까, 내 삶에 희망은 있는 가에 관심이 있으나,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일차적인 기 대는 우리의 거룩함입니다. 사사기를 읽다 보면 하나님이 이방 민족을 들어서 이스라엘 백성들 의 잘못을 벌하고 징계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삼손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을 억압하던 블레셋은 무력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블레셋은 이스라엘에게 자유를 한껏 주었습니다. 정복자인 블레셋 사람과 이스라엘 사람들이 마음대로 결혼하도록 허용했습니다 . 그리고 사치한 문화를 만들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 이 블레셋의 노예가 되는 것, 망해 가는 것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 본래 팔레스타인이라는 낱말은 블레셋이라는 말에서 나왔습니다. 고 대 문화의 대표적인 예가 팔레스타인 문화입니다. 고고학자들은 이 스라엘의 유적지들을 발굴하여 삼손 시대로 추정되는 고고학적 유물 들을 많이 발견하였습니다. 유물들 가운데 대부분이 술병, 술항아 리, 술주전자 따위입니다. 당시의 향락 문화와 쾌락주의를 짐작케 하는 물건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러한 블레셋의 세속 문화에 휩싸인 이스라엘을 구원할 구원자로 택한 사람이 삼손입니다. 하나님은 삼손을 잉태하게 하 면서 먼저 그 어머니에게 두 가지금지 사항을 말씀하셨습니다. 4절 말씀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너는 삼가서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지며 무릇 부정 한 것을 먹지 말지니라.
첫째/포도주와 독주 대개 음주 문화가 발달하면 그 시대는 망하기 시작합니다. 쾌락과 사치와 방종의 삶은 술에서 비롯됩니다. 술 좋아하는 사람들은 온갖 핑계를 다 대면서 술 마실 건수를 만듭니다. 사업상 어쩔 수 없이, 체면상 할 수 없이, 도의상 안 마실 수 없어 마셨다 고 합니다. 이런 우스갯소리도 있습니다. 월요일은 원래 마시는 날이고, 화요 일은 화끈하게 마시는 날이고, 수요일은 수없이 마시는 날이고, 목요일은 목이 터져라 마시는 날이고, 금요일은 금방 마시고 또 마시는 날이고, 토요일은 토하고 마시는 날이고, 일요일은 일일이 술집 찾아다니면서 마시는 날이랍니다. 한국에서 제일 많이 새로 생기는 것이 술집과 교회라고 합니다. 술집과 교회는 비례하여 증가한다고 합니다. 보통 비극이 아닙니다 . 교회가 많아지면 술집이 줄어야 하는데 왜 술집이 같이 늘어납 니까 역사를 뒤돌아보면 교회에 진정한 영적 각성과 부흥이 일어 날 때 술집이 다 문을 닫았습니다. 오늘날의 교회가 세속화되었기 때문에 술집이 줄지 않고 있습니다. 사회를 일깨우지 못하고 있는 교회의 슬픈 자화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둘째/부정한 것 하나님은 단순하게 부정한 음식만을 먹지 말라고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거룩함입니다. 삶의 거룩함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태어날 삼손도 어머니와 같이 위의 두 가지금지 사항을 지켜야 했고(13,14절 참조), 이와 더불어 머리를 자르지 말아야 했습니다(5절 참조). 머리를 자르지 않는 것은 하나님 앞에 헌신했다는 표시입니다. 본래 나실인은 일정 기간만 서원할 수도 있고 평생을 서원할 수도 있는데, 하나님은 삼손에게 평생 헌신할 것을 요구하셨습니다. 나실인은 나실 사람이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이는 히브리어로 나 지르인데 구별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평생을 하나님께 바친 사람입니다. 이 시대를 구원할 사사는 세상의 죄악에서 구별된 사람, 세상 사람들의 풍조와 유행에서 구별된 사람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 시대를 깨우는 일에 거룩한 사람을 요구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이면서 아직 술을 끊지 못한 사람은 이 문제를 놓고 진 지하게 고민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술 자체가 구원과 관련된 것으로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거룩한 삶과는 분명히 관련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기적을 원합니다. 경기가 침 체되어 있으면 내가 하는 사업이 번창하는 기적을 원하고, 몸이 아프면 병에서 낳는 기적을 원합니다. 출세하기 원하고 동료들 사 이에서 인기 얻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질문은 이것입니다. 우리는 기적을 원하는 만큼 거룩함을 사모하는가 하나님이 기적을 일으키기 전에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거룩함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기적을 원하는 것 이상으로 우리 삶에서 참으로 거룩함을 추구해야 합니다. 주님의 거룩함을 사모해야 합니다. 얼마 전에 세상을 떠난 유명한 기독교 철학자 프란시스 쉐퍼 박사는 말년에 암으로 고생하면서 미국 유수의 대학들을 방문했습니다. 시한부 인생을 사는 상태에서 여러 학교와 교회를 방문한 쉐퍼는 피를 토하듯 진리를 외쳤습니다. 쉐퍼 박사가 진단한 미국의 문제는, 행복은 추구하지만 거룩은 추구하지 않는 점이었습니다. 지난날에는 하나님을 닮은 거룩함을 삶의 목표로 삼았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 문제 때문에 선배 그리스도인들은 심각한 고민을 했습니다. 거룩하지 못한 삶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머리를 조아렸 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사람들 을 닮아 출세와 세상 명예와 행복만을 원합니다. 우리는 거룩하신 주님을 닮아 거룩하게 살기를 원합시다. 부정하게 출세하고 잘사는 것보다 손해 보고 못 살더라도 거룩해지기를 원합시다. 죄를 지으면서 부자가 되고 행복하게 사는 것보다도 가난하게 살더라도 주님의 거룩함을 본받아 살기를 원합시다. 기적은 거룩함에 기인합니다.
기도
8절 말씀에 기적의 또한 요인이 나옵니다. 마노아가 여호와께 기도하여 가로되. 마노아는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아들을 주시기로 이미 약속하셨는데도 마노아는 기도했습니다. 기도야말로 기적의 언약이 이루어지는 통로입니다. 하나님은 약속한 대로 행하십니다. 그러나 성도가 기도할 때를 기다리십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하는 통 로입니다.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위대한 기적, 영광의 하나님이 나와 더불어 동행하며, 나를 사용하시고, 내 기도에 응 답하시고, 내 삶에 그분의 풍성함을 채우시고, 놀라운 감동을 주는 기적이 지금은 왜 일어나지 않고 있습니까 사도 야고보가 이에 대해 답해 주고 있습니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 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약 4:2,3). 구하지 않기 때문에 응답이 없고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에 기적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우리의 이기심이라는 한계를 벗어 나지 못하는 기도가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 기도가 정말 하나님 뜻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까 기도의 본질이 무엇입니까 어떤 사람이 기도의 본질에 대해 이렇 게 정의(定義)하였습니다. 참된 기도는 나의 소원, 내 뜻을 하늘에서 응답받는 것이 아니 라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서, 나의 삶에서 이루는 것이다. 그것 이 기도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기도하게 하시는 진정한 이유는, 단순히 우리 소 원을 성취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통해 주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입니다. 기도의 핵심, 기도의 정신이 가장 잘 표현된 주기도문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봅시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마 6:9,10).
주기도문의 첫번째 부분은 철저하게 하나님께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우리의 뜻은 하나님의 뜻에 굴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거 룩하심을 본받아 우리의 삶이 거룩해져야 합니다. 우리의 모습을 통해 주의 이름이 거룩하게 여겨져야 합니다. 거룩을 추구하는 우리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야 합니다.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가야 합니다. 우리가 부족하고 연약하고 평범한 인간이지만 하나님 뜻대로 살아가 려고 고민하고 주님이 기뻐하실 삶을 살려고 노력할 때 주님이 주 시는 신선한 기쁨과 감사를 느낄 수 있습니다. 부족한 대로 주님 의 일을 하고 이웃을 돕고 섬기면서 하나님의 뜻을 일상 생활에서 실현할 때 하늘의 축복이 임합니다. 복음을 전하면서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받을 때 하나님의 영광을 드높일 수 있습니다. 자신의 얄팍한 이기심이 아닌 하나님 뜻에 맞추어 살아갈 때 세상 에서의 삶이 비록 힘들더라도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는 기쁨을 얻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우리 삶을 책임져 주십니다. 한없는 복을 주십니다. 주님의 뜻에 우리 삶의 초점을 맞추고 그 뜻이 이루어지도록 기도할 때 기적이 일어납니다.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 때 늘 기쁘고 즐거울 뿐 아니라 기적 가운데 살게 됩니다. 당신에게 이런 신앙의 체험이 있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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