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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은 어느 때에 일어나는가 (단3:24-30)

본문

기적은 있습니다. 기적은 우리에게 일어나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기적을 베푸십니다. 그리고 인간은 누구나 기적을 바라며 살아갑니다. 모든 사람들이 기직을 바라며 기적에 대한 기대감을 갖고 있습니다. 물론 평상시 배부르고 부유할 때는 음식이 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배고프면 음식을 찾듯이 사람은 어려운 환경에 처하면 하나님이 도우심과 기적을 구하게 마련인 것입니다. 농사짓는 사람도 비가 오지 않으면 기적을 바랍니다. 하늘을 향하여 바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불치병에 걸려 의사가 머리를 저으면서 돌아가라고 하면 “혹시 다른 길이 없을까” 하고 무엇이라도 붙잡으려고 할 것입니다. 어려울 때 기적을 바라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기적을 베푸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무에게나 기적을 베푸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느 자에게 기적을 베푸십니다. 말씀을 떠난 자, 하나님의 계명을 저버리고 하나님을 무시하는 자에게는 살아계심을 보이시지 않습니다. 그들에게도 기적을 베푸시기는 합니다. 그러나 그 기적은 좋은 면으로서의 기적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기적은 우리에게 두 가지로 나타납니다. 하나님을 믿고 경외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경험하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우리를 유익하게 하는 기적이 나타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오히려 화가 되고 실패를 경험하게 되는 기적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하나님을 겨외하는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믿음 때문에 품무불 속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풀무불 속에서 머리털도 그슬리지 않고 옷자락도 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보호하심을 확실하게 경험하게 됩니다. 그것을 본 느부갓네살 왕과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게 되고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그 환난을 통하여 더 높은 지우에 올라갈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와 홍해를 건널 때 하난님께서 택하신 백성은 모두 건넜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지 않는 애굽 사람들은 다 물에 빠져 죽었습니다. 똑같은 기적이지만 믿는 자에게는 은혜의 기적, 축복의 기적이 되고 믿지 않는 자에게는 오히려 진노의 기적, 환난의 기적이 되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알고 경외하며 그의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길이요. 내가 어려울 때 하나님의 손길을 경험할 수 있는 길입니다. 내가 부르짖을 때 응답을 받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귀는 어떻게 하더라도 우리를 하나님의 말씀에서 떠나게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로 기적의 삶을 살지 못하게 하고, 하나님의 축복을 경험하지 못하게 하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게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넘어뜨립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하게 합니다. 말씀을 중요히하지 않게 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세상적으로 일반화하고 무시하는 삶을 살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마귀의 유혹입니다. 이것은 마귀의 시험입니다. 성경을 보면 마귀는 타락한 천사장으로서 하늘에서 쫓겨날 때 많은 귀신들을 거느리고 내려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대장 마귀가 있고 그 아래 많은 귀신들이 있는데, 귀신들은 대장 마귀를 따르고 그의 명령에 복종하는 무리들이라고 전통적인 보수 신학은 설명합니다.
그런데 어떤 분들은 마귀는 따로 있고 귀신은 죽은 사람의 혼이라고 말합니다.
예를 들어 수명이 70세인 삼촌이 교통 사고로 18살에 돌아가셨다고 하면 나머지 52년 동안 귀신이 되어서 돌아다닌다는 것입니다. 돌아다니면서 식구들을 괴롭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당을 데려다 “물러가라. 물러가라. 너는 누구냐” 하고 물어 보면 “나는 이 집 삼촌이다” 하며 삼촌 귀신이 대답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믿지 않습니다. 설령 삼촌 귀신, 시어머니 귀신, 시누이 귀신이라고 해도 그것은 마귀가 그드의 목소리를 흉내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럴 때는 “사단아, 이 더러운 귀신아, 물러가라”고 하면 됩니다. 할렐루야. 이 귀신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일은 우리를 하나님의 말씀에서 떠나게 해서 우리 영혼을 더럽히는 것입니다. 말씀을 떠나면 더러워집니다. 때가 묻으면 옷이 더러워지는 것처럼 우리의 영혼도 하나님의 계명을 벗어나 죄를 지으면 더러워지는 것입니다. 옷이 더러워지면 빨 수 있고 몸이 더러워지면 목욕이라도 할 수 있지만 심령이 더러워지면 씻을 길이 없습니다. 우리의 심령이 죄악으로 더러워지면 이것은 오직 하나님의 심판만 있을 뿐입니다. 기적을 경험할 수 없습니다. 축복을 경험할 수 없는 것입니다. 마귀의 역사는 또 사업하는 것과 같습니다. 회사가 지점을 늘리고 확장해서 그 사업을 방방곡곡으로 확대해 나가듯이 마귀도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가정, 심령, 교회, 어디든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침투해서 가라지를 뿌린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 도덕적으로 깨끗한 마음의 집을 갖고 있으면 마귀는 더 좋아합니다. “야! 아지까지 우리가 침투하지 않은 깨끗한 장소가 있구나. 우리 지점으로 만드어야 되겠다.” 그래서 마귀의 지시를 받아서 많은 귀신들이 그곳으로 찾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뉴옥은 세계 최대의 도시랍니다. 제일 살사는 도시지만 가보면 깜짝 놀랄일이 있답니다. 무엇이냐 하면 페인트 낙서 때문입니다. 집집마다 빌딩마다 전부 낙서투성이, 지하철 통로에도 도로에도 낙서가 없는 곳이 없습니다. 빠끔한 틈이 없을 정도로 전부 낙서입니다. 그것도 예술이랍니다. 그러니 막아내지를 못합니다. 그래서 뉴옥 주에서는 4천 명에게 낙서 면허를 내주었다고 합니다. 그 사람들은 자나깨나 낙서만 합니다. 어디에 건물을 새로 지었다는 정보만 있으면 페인트 통을 들고 찾아가서 밤새도록 별의별 낙서를 다하고 돌아오는 것입닏. 마귀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 뜻대로 살아가고, 여러분의 가정이 평화롭고, 삶이 건강하고, 사업이 잘되면 “어디에 잘사는 집이 있단다. 그 집은 사업도 잘되고 부부간에 행복하게 산단다”하며 마귀는 틀림없이 찾아와서 페인트 칠을 합니다. 여러분의 가정에 기쁨이 있습니까 여러분의 삶에 구원이 있습니까 은혜를 받으셨습니까 여러분의 죄악으로 물들지 않은 심령입니까 마귀는 그러한 여러분을 무너뜨리려 합니다. 그래서 “(고전10:12)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고 했습니다. 개인이나 가정이나 기업이나 국가가 잘될 때 더욱 조심하고 늘 깨어서 여러분을 넘어뜨리고 온갖 죄악으로 더럽게 하는 마귀의 미혹에서 건짐받기를 바랍니다. 우리 나라의 전통 민속놀이 가운데 강강술래가 있습니다. 부녀자들이 손을 잡고 원을 그려가며 “강강술래”라는 후렴이 붙은 노래를 부릅니다. 목청이 좋은 사람이 앞소리를 부르면, 나머지 사람들은 뒷소리로 후렴을 부르며 춤을 춥니다. 강강술래를 해보셨습니까 강강술래는 이순신 장군에게서 유래합니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은 옥포, 사천, 당항포, 한산도 싸움에서 크게 승리했습니다. 왜적을 물리치고 늘 이겼습니다. 이순신 장군이 참 지혜로운 것은 싸워서 이긴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승리한 다음에도 잘 대처했습니다. 한번은 싸움에서 이겼는데도 모든 부하들에게 “너희들은 오늘밤 배에서 나오지 말아라. 그리고 밤새도록 강강술래를 불러라. 칼을 집에 꽂지 말고 뱃머리를 두르리면서 강강술래를 불러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래서 장군이 시키는 대로 모든 군인들이 강강술래를 부르며 칼로 뱃머리를 두드렸습니다. 왜놈들은 전쟁에서 지고 다시 침략하기 위해 전략을 세웠습니다. “저들은 이겼다고 기고만장하여 틀림없이 술 취해 있을 것이다. 이때 우리가 쳐들어가자. 군사들에게 잠수를 시켜서 배에 침두했습니다.
그런데 뱃머리를 잡는 사람마다 손목이 다 달아났습니다. 밤새도록 강강술래를 부르며 뱃머리를 두드리기 때문에 잡을 곳이 없습니다. 잡으면 손목이 잘려나갑니다. 여러분, 싸움에 졌다고 포기하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원한에 맺혀 더 이기려고 하지, 물러가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전쟁에 지고 그냥 가만히 있는 나라가 어디 있습니까 다시 싸우기 위해서 더 강하게 나오기 때문에 여러분이 이겼다고 안심하고 가만히 있으면 안됩니다. 그래서 미련한 장군은 이긴 데서 끝나지만 지혜로운 장군은 이긴 다음을 더 잘 관리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축복을 받고 사업이 잘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마귀가 우는 사자와 같이 여러분을 삼키려고 할 때에 깨어서 마귀가 재도전하는 침투를 막아내는 지혜로운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마귀의 목적은 우리를 더럽히는데 있습니다. 마귀는 우리의 심령을 더럽히고, 우리의 가정을 더럽히고, 교회를 더럽히고, 이 사회를 더럽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더러워지지 않으려면 스스로 자기를 잘 지키고 벌거벗은 몸이 드러나지 않도록 내 몸을 관리해야 합니다. “(약1:27)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 ”고 했습니다. 자기를 지켜야 합니다. 세속은 우리를 더럽게 하므로 세속에 물들지 않아야 합니다. 이 페인트는 지워지지 않는 페인트입니다. 예수님은 “(마15:11) 입에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입으로 들어가는 것은 깨끗한 음식입니다. 그러나 입에서 나오는 것은 더러워진 심령입니다. 더러워진 심령은 씻을 수가 없습니다. 안이 썩으면 더러운 것이 밖으로 나옵니다. 우리는 손을 씻고 깨끗한 음식을 먹는 데만 관심을 기울이고 내 안이 더러워지는, 내 영혼이 썩는 일에는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문화인보다 더 귀한 사람은 영적인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멀리 바라보고 심령을 관리하는 사람이 지혜로운 성도인 줄 믿습니다. “(고전15:33) 속지 말라 악한 동무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히나니 (고전15:34)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가 있기로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기 위하여 말하노라 ”고 했습니다. 악한 동무는 여러분의 선한 행실을 더럽힙니다. 하나님의 계명대로 순종하는 여러분을 더럽힙니다. 기도생활하는 여러분을 더럽힙니다. 말씀대로 순종하는 여러분을 더럽힙니다. 술 먹지 않는 여러분에게 “교인들도 술 먹더라. 안 먹는 사람이 어디있냐 괜찮아. 맥주는 술이 아니야. 유럽에 가봐. 다 먹지” 하면서 선한 행실을 더럽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더러워진 심령에는 하나님의 은혜가 없습니다. 기적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기도해도 하나님께서 역사하시지 않습니다.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있습니다.
바알 선지자 450명과 아세라 선지자 400명이 갈멜 산에 모여 하루 종일 “바알이여, 바알이여” 하고 부르짖어도 하늘에선 응답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엘리야의 기도는 즉시 하나님의 보자를 움직였습니다. 그렇습니다. 말씀대로 사는 의인의 간구에는 기적이 일어납니다. “능치 못한 것 주께 없으니 나의 일생을 주께 맡기면 나의 모든 짐 대신 지시는 주의 영원한 팔 의지해”(찬송가 464 장). 우상 앞에서 여러분을 지키십시오. 죄악에서 여러분을 지키십시오. 불의에서 여러분을 지키십시오. 안식일을 범하는 죄에서 여러분을 지키시기를 바랍니다. 랍비 한 사람이 로마에 갔는데 벽에 공고문이 붙었습니다. 왕비가 보석을 잃어버렸는데 이 보석을 찾아주는 자에게는 큰 상금을 주겠다는 것입닏.
그런데 반드시 5월 30일까지 이것을 찾아달라는 것입니다. 만약 5월 30일이 지난 후에 이것을 발견하면 그것을 소지하고 있는 사람은 나라로부터 큰 벌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랍비가 5월 29일 밤에 보석을 찾게 되었습니다. 5월 30일은 마침 안식일인지라 그 다음날인 5월 31일에 황제에게 갔습니다. 황제가 깜짝 놀라면서 물었습니다. “너는 5월 30일 넘어서 보석을 가져온 사람은 죽는다는 공고문을 못 보았느냐” “예, 봤습니다.” “그럼 너는 왜 오늘 가져왔느냐” “예, 저는 만군의 하나님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살아 계신 하나님을 믿는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어제가 인식일이었으므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기 위해서 올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자 황제가 “그대는 훌륭한 사람이로다” 하면서 벌을 내리지 않고 오히려 상을 주고 격려를 해주었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는 탈무드라는 책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이것은 옛날 이야기가 아닙니다. 지금도 유대인들이 얼마나 안식일을 철저하게 지키는지 볼 수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호텔에 가도 안식일이 되면 더운 음식을 주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서 모든 직원이 쉽니다. 안식일을 모르는 이방인에게는 어제 해놓은 음식이 냉장고에 있으니 갖다 먹으라고 합니다. 안식일뿐만이 아닙니다. 얼마나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의 계명을 철저하게 지키는지 모릅니다. 축복이 어디에서 옵니까 기적이 어디에서 옵니까 돈이 많고 능력ㅇ 많고 우리가 가진 것이 많아서 기적이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하늘 문을 여시고 우리의 모든 앞날을 도우신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우리는 지금 북한의 핵무기 개발 때문에 쩔쩔맵니다. 북한 경제 수중은 남한의 20분의 1도 안되고 인구도 남한의 반밖에 되지 않습니다.
북한이 KAL기를 폭파하고 오늘날까지 별의별 만행을 저질러도 우리는 꼼짝못합니다. 그러나 유대인들 보십시오. 레바논, 시리아, 요르단 등 적대국들이 둘러싸고 있지만 이스라엘을 한 번만 건드리면 끝장납니다. 이스라엘이 박살을 냅니다.이스라엘은 주변에 있는 석유 강대국들이 온갖 무기를 보유하고 위협하고 있지만 전혀 그들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만이 승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계명대로 살아가는 나라에 안정과 평화가 있고 축복이 있는 줄 믿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좋은 여건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왜 이렇게 연약한 존재로 살아갑니까 살아계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고 땅에 있는 것을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미국을 의지하고, 러시아를 의지하고, 중국을 의지하고, 일본을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환난을 당할 때 과연 그들이 우리를 건져줄 것 같습니까 이 민족이 사는 길이 어디에 있습니까 “(시121:1)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시121:2)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에게 기적을 베푸셔서 물을 건널 때는 물이, 산을 넘을 때는 산이 우리를 해치지 못하도록 우리의 방패가 되시고 산성이 되시고 구원이 되시는 줄 믿습니다. 마귀는 어떻게 하더라도 우리를 하나님의 말씀에서 떠나게 하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마귀는 지혜롭습니다. 머리 회전이 빠릅니다. 그래서 예수 믿지 않으면 머리가 잘 돌아갑니다. 제일 머리가 잘 돌아가는 사람들은 교도소에 많습니다. 얼마나 머리 회전이 빠른지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으면 머리로 살지 않습니다. 가정에서든, 사회에서든 마음으로 삽니다. 교인은 머리를 복잡하게 쓰지 않고 마음과 마음으로 만납니다. 세상에서도 좋은 아버지를 만난 사람은 머리를 쓰지 않습니다. 아버지가 없이 살아갈 때 머리를 씁니다. 부유하신 하나님 아버지를 만난 우리는 “나 어느 곳에 있든지 늘 맘이 편하다 주 예수 주신 평안함 늘 충만하도다”(찬송가 466장).라고 해야 합니다.
마귀는 꾀가 많습니다. 수단이 많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넘어뜨릴 때에도 아주 음침한 방법으로 합니다. 대체로 예술이라는, 문화라는 너울을 덮어쓰고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입니다. 텔레비전 드라마를 보십시오. 시아버지도 바람피우고, 며느리도 바람피우고, 아들도 바람피우고,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바람을 피우는데 그것을 현대 문화라고 미화하면서 오늘 우리의 마음을 타락시키는 것입니다. 모든 삶을 거기에 맞추어 살아갑니다. 텔레비전에서 광고하는 것을 보고 그 옷을 사서 입듯이 문화라는 것이 그런 것입니다. 오늘 이 시대를 이렇게 더럽힌 일등 공신이 텔레비전입니다. 마귀가 텔레비전에게 “충성스럽도다. 충성스럽도다”라고 할 것입니다. 대학에 입학하면 선배들이 술신고라는 것이 있는데 신입생들에게 술을 엄청나게 먹인다고 합니다. 금년에도 신고식을 하다가 죽는 젊은이가 있을지 모릅니다. 얼마나 많이 먹는지 안 죽은 것이 기적일 정도랍니다. 앞으로도 많은 학생들이 술 때문에 죽을 텐데 그것이 대학 문화라는 것입니다. 대학은 고등학교와 다르다는 것입니다. 아주 그럴듯하고 합리적인 말로 들립니다. 그러나 여러분, 속지 마십시오. 술로 더러워진 그 마음을 누가 씻어주겠습니까 술 취해 넘어진 순간 기적을 바랍니까 하나님은 외면하십니다. 교회 안에도 마귀가 참 많습니다. 마귀는 굉장한 명분을 이용합니다. 우리들이 모인 곳이면 마귀가 얼마나 많이 역사하는지 모릅니다. 교회 안에도 많은 마귀가 여기저기에 페인트 칠을 하고 돌아다닙니다. 늘 깨어 있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단1:8)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진미와 그의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자기를 더럽히지 않게 하기를 환관장에게 구하니 ”라고 했습니다. 구해야 합니다. 힘써야 합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우리는 모든 유혹을 물리쳐야 할 것입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기 위해서, 느부갓네살이 두라 평지에 세워 놓았던 금 신상에 절하지 않았습니다.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럴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아무리 귀한 분이시키는 일이라도, 아무리 나에게 유익이 되는 일이라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떠남으로 오는 손해는 보충할 수 없습니다. 이 세상을 다 준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살아가는 자가 이 세상과 내세에 영원히 받을 축복과는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교인은 유혹을 받지 말아야 합니다. “주일만 안 지키면 좋은 회사에 나갈 수 있지만 저는 안 갑니다. 돈을 엄청나게 준다고 통일 교회에서 오라고 하는데 안 갔습니다.” 교인이라면 그렇게 해야 합니다. 돈 준다고 갑니까 돈은 기적이 없습니다. 하나님만 기적을 베푸십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좋다는 것에 유혹을 받아서는 안됩니다. 유토피아는 없습니다. 유토피아는 “아무데에도 없는 나라”라는 뜻입니다. 영국의 인문주의자 토마스 모어가 그리스 어의 “없는(ou-)"과 ”장소(toppos)"라는 두 단어를 결합해서 만든 용어입니다. 모어는 자기가 지은 소설의 제목을 유토피아라고 했는데, 그 내용은 집 없는 자도 없고, 남녀가 평등하고, 종교의 자유가 있고, 하루에 6시간씩 일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독서하고 음악 듣고 가족과 함께 산책하며 즐겁게 살아가는 지상의 낙원, 유토피아를 건설하자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여러분, 유토피아는 없습니다. 현실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이상향일 뿐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주님을 떠나면 포도나무 가지가 나무를 떠난 것과 같이 말라서 버림받게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축복은 예수 안에 있습니다. 기적은 예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곳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갈 때 우리의 삶이 좋은 것으로 모두 채워질 줄 믿습니다. 우리는 유혹을 받아서는 안됩니다. 여러분의 남은 생애에 사드락과 매삭과 아벳느고와 같이 하나님의 응답과 구원과 축복이 영원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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