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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을 부른 찬송 (행16: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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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입니다. 제가 처음으로 미국 유학의 길을 떠나게 됐습니다. 그때 만해도 세계여행을 자유롭게 하지 못할 때입니다. 또 유학 가는 것이 굉장한 벼슬이라도 되는 것처럼 어렵구요. 좌우간 한 사람 미국 가는데 환송객이 버스로 두 대가 갔으니까요. 그런 때에 떠났습니다.
그런데 비행기 안에서 걱정이 많았습니다. 제가 언어도 잘 안 통하는데 가서 어떻게 해야 공부를 할 수 있을까. 비행기 안에서 교회의 집사님 한 분을 만났습니다. 어떻게 반가운지요. 의외로 만나게 되었는데, 그분은 벌써 한 6년 동안 외국에서 유학을 한 경력이 있는 분입니다. 그래 제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시간에 무슨 여러 가지 말을 해주어도 제가 기억하지 못 할 것이고, 실천하지도 못 할 테니깐 가장 중요한 것, 내가 유학생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 하나, 한가지만 말해달라고 했더니 그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사회와 달라서 감사하다는 말을 잘 합니다. 'Thank you', 'Thank you'란 말을 열심히 해야됩니다." 알았다구, 그것 뭐 쉽구만. 이제 거기 비행기에 있는 아가씨가 제게 차를 따라 주고 일어섰습니다. 가만히 있었죠. 했더니 그 집사님이 나를 꾹 찌르면서 "왜 가만히 있는 거요아니, 뭐 차 한잔 따라 줬는데 뭘 그렇게." 그게 잘못된 것입니다. 조그만 일에도 여기서는 Thank you! 그렇게 해야 됩니다." 큰 충격을 받고, 미국생활에 있어서 그저 만나는 사람마다 일을 나갈 때마다 'Thank you.' Thank you 소리를 열심히 해서 그 문화생활을 바꾸느라고 제가 큰 고역을 치러 봤습니다. 여러분 그 인간의 질은 그 마음과 그의 말속에 얼마나 감사가 있느냐, 그에 따라 평가되는 것이올시다. 감사하다는 말 대신에 원망을, 고맙다는 마음 보다 불평이 많으면 그의 질이 떨어지는 거요. 그런가하면 그 인간의 양적 생이라는 것은 그의 소유와 지식과 지위에 의해서 평가되는 것입니다. 문제는 여기에 있습니다. 인간의 인간 된 수준이라고 하는 것은 그의 감사 수준에 있는 것입니다. 어떤 일에 감사하나 얼마나 감사 할 수 있나 어떠한 마음으로 감사하는가 거기에 있는 것이올시다.
공산주의 사회에는 없는 말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감사하는 말이요, 또 하나는 사랑한다는 말입니다. 이 두 단어는 없습니다. 가끔 우리가 뭘 도와준다 뭘 조금씩 보내준다 하는데 왜 고맙다는 말 한마디도 없나 하지만, 그건 없는 거예요, 원래가. 어째서 그러냐, 기본 철학이 혁명이기 때문이에요. 혁명과 쟁취를 통해서 얻어진 일에는 감사는 없습니다. 모든 일이 혁명이니까. 혁명정신으로 결혼하는 데 뭐, 그 무슨 감사가 있어요 고마움이란 애당초 없는 것이올시다. 그러니까 살기 좋은 세상이라는 것은, 사실 복지사회란 감사하다는 마음, 감사하다는 말이 많은 그곳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살만한 분위기라는 것은 "I am sorry" 미안하다는 말을 잘 하면서 쉽게 하면서 사는 것이요. 여러분의 인격을 더듬어 보셔요. 미안하다는 말을 얼마나 하고 사나, 쉽게 할 수 있나, 그리고 나아가서 "감사합니다"하는 말이 그저 술술 나오면, 여러분은 질 높은 생을 살아가고 있는 거요. 행복지수를 뭘로 재겠습니다. 행복지수라는 것은 그 입에 있는 감사, 그 마음에 있는 고마운 마음, 그 지수가 그의 행복지수라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이상한 것은 감사는 절대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게 상대적인게 아니에요. 그것은 본성이요, 그의 체질이요, 그게 존재입니다. 보세요. 감사하는 사람은 어떤 일이든지 감사할 수 있어요. 그러나 사람이 못돼먹으면 어디 갔다놓아도 불평이요, 어떤 일이든 원망입니다. 그런고로 감사에 이유 없어요. 원망에 이유 따로 없어요. 감사하는 사람은 범사에 감사하고, 원망하는 사람은 범사에 원망하게 돼있다. 그걸 잊지 말아야 돼요. 이것을 상대적인 것으로 생각하는 바로 거기서부터 문제가 있는 거요. 감사는 절대화하는 것이요. 절대적 문제요, 존재 그 자체의 문제라, 체질의 문제요, 성품의 문제라는 것을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어떤 일이든지 간에 적자로 생각하지 않아요. 꼭 흑자 계산을 합니다. 잃어버린게 있지만, 얻은 게 더 많아요. 언제나 얻는 것이 있는 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감사하게 생각해요. 얻은 것도 꽤 많은데 잃어버린 것만 생각해요. 그 사람은 불평할 수밖에 없어요. 그런고로 항상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은 끝없이 원망하다가 원망하며 끝납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모든 일에서 감사할 수 있는 것이다. 그걸 생각해야 합니다. 한국이 낳은 가장 대표적인 그리스도인이 여기 있습니다. 아마도 누가 말해도 이분이 한국이 낳은 기독교인에 대표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손 양원 목사님. 한 평생을 문둥병환자를 위해서 살았고 특별히 신사참배를 불복함으로 해서 6년 동안 감옥에 있다가 8.15 광복과 함께 자유의 몸이 되었습니다만은 이렇게 훌륭한 믿음의 사람인데도 인간적으로 말하면 참 불행한 일을 당합니다.
1948년 10월 27일 여수 순천 반란 사건 때에 동인, 동신 두 아들을 동시에 잃어버립니다. 공산주의자가 그를 총살 해 버립니다. 그는 애양원에서 부흥회 인도하는 중에 이 소식을 듣고도 여전히 태연한 마음으로 부흥회를 끝까지 다 인도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장례식을 치를 때에 많은 사람들이 모였는데 그 장례에 오신 분들에게 마지막으로 인사를 하게 됩니다. 그 인사 중에 하신 말씀입니다. "제가 이 시간에 무슨 답사를 하고 인사를 하겠습니까만은 하나님 앞에 내 감사하는 마음이 있어서 몇 말씀드립니다."하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
첫째로 감사한 것은 나 같은 허물 많은 사람의 혈통 중에 순교자 자식이 나왔다는 사실. 감사하고,
둘째는 수 많은 성도 중에 하필이면 이 보배를 하잘것없는 우리 집에 주신 것을 감사하고,
셋째는 3남 3녀 중에 가장 늠름하고 아름답고 잘난 장남, 차남을 하나님께 바친 것을 감사하고,
넷째는 한 아들 순교하기도 어려운데 두 아들이 순교하게 되었으니 감사하고,
다섯째는 예수를 믿다가 와석종신하는 것도 큰 복인데 복음 전하다가 순교하는 그런 영광을 누린 것을 감사하고,
여섯째는 저들이 미국 가기 위해서 유학준비하고 있었는데 미국보다 더 좋은 천국에 가서 감사하고, 일곱 번째는 두 아들을 총살시킨 그 원수를 내가 아들 삼을 수 있는 마음주신 것을 감사하고,
여덟 번째는 순교 열매로 하여 무수한 하나님의 자녀들이 속출하게 될 것을 생각하며 감사하고,
아홉 번째는 이 같은 역경 속에서 여덟 가지 진리와 신혜를 생각하며 깊이 기뻐할 수 있는 마음 주신 것을 감사하고,
열 번째는 과분한 축복을 누리게 되는 것을 감사한다"고 열 가지 감사를 그 장례에 오신 분들에게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래서 손 양원 목사님의 일생을 기록한 책제목을 '사랑의 원자탄'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특별한 얘기가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은 모든 일에서 감사합니다. 감사하는 마음 먼저요, 감사의 생각이 먼저요, 그것으로 모든 섭섭한 마음 다 물리칩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본질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사도 바울은 빌립보 감옥에서 찬송을 불렀다.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가 투옥된 경위가 더욱 부조리하고 모순적입니다. 그가 빌립보에서 전도하러 다닐 때 그의 얼굴을 보면서 꼭 그를 괴롭히는 그런 귀신들린 여자하나가 있어요. 귀신들린 여종인데 이 여종이 계속 바울을 괴롭혀요. 참다못해서 사도 바울은 그를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아 나가라" 귀신을 고쳐서, 내쫓아서, 아주 말짱하고 깨끗한 여자아이를 만들어 주었어요.
그런데 이 귀신들린 여자를 앞세우고 돈을 벌던 이 주인이 화가 나서, 이런 것으로 해서 사도 바울을 감옥에 쳐 넣게 되고 많은 매질을 하게 됩니다. 재판도 하기 전에 많은 매를 맞았어요. 죽을 지경이 돼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는 감옥에서 찬송을 불렀다고 합니다. 그는 아무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자기를 때리는 사람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자기를 지금 지키고 있는 간수도 미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도 그럴 것은 자기 잘못 없는 고생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가끔 우리는 "억울합니다."하는 말을 합니다만은 기왕에 고생하는 세상이라면 내 잘못 있어서 고생하는 것과 억울한 고생이 있다면 어느 쪽을 택하겠습니까 아 기왕이면 내 잘못 없이 억울한 고생하는게, 아 그게 괜찮지. 내가 죄가 많고 잘못이 많아서 고생하는 거야 그 죽어 마땅한 거지. 기왕 고생할 바에야 죄 없이 아주 억울하게 고생하는 거 그게 괜찮은 거예요. 괜찮은 고생이에요. 바울은 걸 생각하고 있고, 특별히 한 사람의 생명을 구원했습니다. 구원하고 오는 대가라면 아 그거 좀 받아도 괜찮지요. 생명을 구원한다는게 쉬운 일입니까 그래 감사한 것이구요. 또 그가 하나님의 일, 하나님의 일 하다가 지금 감옥에 있는 거예요. 거 신나는 일이에요. 세상에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만, 하나님의 일하는 것 그래서 고생하는 것은 아름다운 일 아닙니까 제가 한번 인천에서 목회 할 때 어떤 권사님이 다리가 부러져서 병원에 입원했는데, 가보니까 목도 부러졌다고 그래요. 그래 가지고 이렇게 기브스를 하고 아 떡 누워 있어요. 그래 내가 "아 그래 얼마나 괴롭습니까" 했더니 "아니야요. 목사님!" 아 저, 얼굴이 그렇게 밝을 수가 없어요. 그 왜 그러냐 했더니 "내가요. 장사하러 가다가 다칠 수도 있고, 아니 내가 못된 짓을 하다가 다칠 수도 있는데 새벽기도 가다가 다쳤거든요 이거는 괜찮은 거예요." 내 그 말을 듣고 많이 생각했습니다. 새벽기도에 나가다가 다친거, 그러니까 불행한 겁니까, 그러니까 행복한 겁니까 여기에 다른 거예요. 기복사상을 가진 사람은 "새벽기도 나가던 사람이 왜 다리가 부러지나 하나님의 어디계시냐"고 원망하겠지. 그러나 이 사람은 안 그래요. 하필이면 교회를 향해 가다가 다쳤다는 거야, 이건 아름다운 것이라는 거야. 오늘 사도 바울은 주의 일을 하다가 복음 전하다가 감옥에 갇혔어요. 이건 아름다운 일이에요. 그래서 그는 자기의 생명, 남은 생명을 하나님께 그대로 위탁을 하고, 아무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본문대로 그는 기도했다고 합니다. 아마 실신 상태에 있다가 정신을 차려서, 한 밤중에 정신을 차리고 나서 그는 하나님 앞에 먼저 기도 한 것 같습니다. 그 무슨 말로 기도했는지 전 잘 알 수가 없습니다. 궁금합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누구를 원망하는 기도 한 것이 아니고, 또 "어쩌다가 이 팔자가 됐습니까" 그런 얘기도 아니고, "이 감옥에서 나오게 해 주세요" 뭐 그런 얘기도 아닐 것 같습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 있는 자기모습을 생각하며 하나님 앞에 기도했을 줄 압니다. 성령님이 감동할 때에 자기가 당한 이 처지의 의미를 크게 크게 생각하게 된 줄 압니다. 짐작컨데 꼭 두 가지 생각을 했을 것 같애요. 하나가 다메섹 도상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을 잡아죽이기 위하여 다메섹으로 가다가, 다메섹 다 갔을 때에 예수님께서 길을 막고 "어찌하여 네가 나를 핍박하느냐" 이렇게 붙들어서 그는 사도가 됐습니다. 이렇게 생각했을 것 같습니다. 조금 속되게 말씀드리면, 예수 믿는 사람을 핍박하다가 벼락을 맞아서 지옥으로 가야 될 사람이 오늘 어떻게 돼서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자가 된단 말입니까 엄청난 하늘과 땅의 차이. 그래 그는 감사한 것 같아요. 또 하나가 스데반 입니다. 모름지기 지금 바울이 피투성이가 되었을 것 같은데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는 모습이 생각이 납니다. 그 천사의 얼굴이 확 들어옵니다. 죄송하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하고, 그는 기도 중에 죽음을 초월합니다. 죽음의 세계가 멀리 가고, 죽음 다음에 있는 하나님의 나라가 환하게 보입니다. 순교자의 반렬, 영광된 순교자의 반열에 내가 지금 들어가고 있는 겁니다. 그 순간 그는 아무도 미워할 마음도 없고, 아무 슬픔도 탄식도 없습니다. 그저 감사하고, 그저 찬양과 찬미만이 있을 뿐입니다. 이래서 감사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고, 하나님의 사랑에 그 마음이 충만합니다. 마음이 열립니다.
저는 이것이 제1차 기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미워할 수 있는 사람이 사랑하고, 원망할 수 있는 사람이 찬송하고, 탄식할 수 있는 사람이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충만한 것. 바로 그것이 1차 기적이요. 이제 그가 찬송하게 될 때, 마침내 보세요. 감옥 문이 열리는 기적을 보게 됩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만은, 기적을 바라고 찬송한게 아닙니다. 찬송하므로 기적이 나타난 것입니다. 제사랑하는 친구 목사님 한 분. 6.25전쟁 때 포로 됐습니다. 그래서 총살당하게 될 때 총살 직전에 인민군이 말하기를 "마지막 소원이 뭐냐" 그래서 "찬송 한번 부를렵니다.그러라 마지막 소원이니까 들어준다" 그래. '하늘가는 밝은 길이'그 찬송을 냅다 불렀답니다. 2절을 부를 때 '따당'하고 총소리가 나는데 '아이구, 죽는가 보다'하고 쓰러졌는데 정신 차리고 보니 어떤 사람의 등에 업혀서 남쪽으로 오고 있더랍니다. 그 인민군 속에 장로님의 아들이 있었는데, 그 속에 있다가 찬송 부를 때에 감동이 되가지고 옆에 서있는 인민군들을 다 쏘아 버리고 이 사람을 등에 엎고 남쪽으로 와서, 그래서 신학을 하고 목사가 된 친구가 있습니다. 실화입니다. 믿거나 말거나, 이건 진짜로 사실 중에 사실입니다. 그래서 얼마나 극적입니까 여러분 가장 위험할 때, 찬송을 부르는 그 자체가 기적이요. 그리할 때 옥문이 열리는 거예요. 간수가 문 앞에 엎드려서 벌벌 떨면서 선생더러 "어찌할꼬" 부르짖습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아 얼마나 신나는 시간입니까 얼마나 멋진 영광입니까 어디다 비교하겠습니까 복음 성가 작곡가이면서 아직은 아마도 복음 성가 작곡가 중에는 높이 평가되는 '유진 클락'이라고 하는 분이 있습니다. 그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찬송을 한 50개를 지어서 부르고 있고, 또 2개의 칸타타가 있습니다. 빌리 그레함 크루세이드 때마다 이 분의 찬송을 많이 부릅니다.
그런데 그는 42세에 시각장애가 됩니다. 맹인이 됐습니다. 심한 신경통 때문에 절름발이가 됐습니다. 절름발이에 맹인입니다. 그러나 그 영혼은 깨끗하여 찬송을 부릅니다. 이 찬송이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줍니다. 많은 사람의 영혼을 구원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성가란, 작곡이나 연주의 기술보다 자기가 그 노래에 얼만큼 반영되어 있는냐에 문제가 달렸다" 그럽니다. 자기의 전 생명을 몰두해서 작곡하고 노래를 부를 것이다. 영혼의 깊은 데서부터 끊어 오르는 감사와 찬양만이 기적을 낳는 것입니다. 감사와 찬송은 가장 생산적입니다. 창조적 능력이 동반합니다. 기적을 부릅니다. 여러분 기적이 있어서 찬송한게 아니에요. 찬송이 있어서 기적이 따른 거예요. 감옥 같은 세상을 삽니다. 어두운 세상을 삽니다. 부자유한 세상을 삽니다. 그러나 우리의 영혼이 높이높이 솟아서 감사와 찬송으로 충만할 때에 홍해가 열리는 기적을 볼 것입니다. 감옥 문이 열리는 기적을 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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