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하시는 하나님 (창8:1-5)
본문
대부분의 사람은 다른 사람의 고통이나 손해나 어려움에 대해서 무관심하며 몰인정 하게 외면해 버리면서도 자신의 작은 고통과 손해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예민하고 집 착하기 잘합니다. 또한 만사가 자기 중심적이기 때문에 누구를 사랑한다고 할지라도 시간이 지나면 그 사랑이 미움이나 무관심으로 변하기 잘하기 때문에 인간은 다른 사람을 통해서 위로를 받기보다는 도리어 실망과 상처를 더 받기가 쉽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어떤 분일까요 하나님은 인간이 아니시기 때문에 인간들처럼 요란스럽지 않으시고 또한 인간들처럼 변덕스럽지도 아니하시며 한 번 사랑하시기로 작정하셨으면 변함이 없으시며 끝까지 책임을 지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심을 믿고 그 사랑안에서 살아가야만 합니다.
1.하나님의 침묵하심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을 멸시하고 끝까지 회개치 아니하는 노아 당시의 사람들에게 전무후무한 홍수의 심판이 임하였으나 노아의 가족들은 그러한 가운데서도 방주안에 서 가장 안전하게 그 심판을 피할 수 있었음은 역사의 종말인 말세에 진정한 도피처는 어느 특정 장소가 아니라 방주와 같은 예수 그리스도안이며 이미 예수 그리스도 를 나의 구세주로 내 마음에 영접하고 믿음으로 살아가고 있는 성도들에게는 이미 그같은 축복 속에 살고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요3:18)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 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그러나 그 방주안은 일시적인 피난처는 될 수 있으나 하나님이 백성들이 거할 영구 한 도성은 아니기에 그 방주에서 나와야만 하였으며 그 때까지는 비록 방주가 안전 한 피난처이지만 갑갑하고 답답하게 느껴질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가장 두렵게 느껴지는 공포의 순간에 대해서 심리학자들의 말을 빌리면 자 신이 지금 세상에서 자신은 혼자라고 생각되어지는 때 두려움과 고독감을 느끼게 되 기 때문에 사람들은 혼자있는 것을 두려워 하게 되며 집단을 이루고 공동체의 생활 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좋은 예가 해외로 단체 여행을 하게 되는 경우 말도 통하지 아니하는 나라에 가 서 한눈을 팔다가 일행을 잃어 버리게 되면 자기 주변에 그 나라 사람들이 아무리 많이 있어도 겁이 덜컥나고 가슴이 철렁 내려 앉으면서 얼굴이 하얗게 질리게 되며 정신이 하나도 없게 됩니다.
인간에게 죽음이 두렵게 느껴지는 까닭은 사후의 세계가 어떤 곳인지를 전혀 알지 못하기 때문이며 또 하나는 그곳을 자기 혼자서만 가야만 한다고 생각하게 되기 때 문입니다. 이제 지구 상에는 노아의 한 가족 뿐이 남지 아니하였으며 방주 밖에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으며 언제 끝이 나게 될지 전혀 예측 불허의 상황에서 노아의 마음은 심 리적으로 심히 불안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노아를 방주안으로 들어오라고 부르신 하나님은 그 이후 기나 긴 침묵으로 일 관하고 계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같은 노아의 심정을 모르시거나, 무관심하신 것이 아니라 노아의 형편과 처지에 대해서 잘알고 계셨습니다. 인간은 누구를 사랑하고 생각해 주는 척하지만 세월이 흐리고 환경이 바뀌게 되면 무관심해지거 그러나 하나님은 결코 방주 안에 있는 노아의 가정을 잊으시거나 무관 심하게 계신 것이 결코 아니었으니 (창8:1) 하나님이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는 모든 들짐승과 육축을 권념하사 라는 말씀과 같이 노아와 그 가족을 한 순간도 잊지 아니하시고 다 기억하고 계셨습니다. 노아는 방주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전혀 알 수 없었지만 하나님은 방 주 안에 있는 노아의 가족과 모든 생명체들에 대해서 잘아시고 또한 한시도 잊지 않 고 기억하고 계셨습니다. 인간 관계 속에서도 어떤 사람을 처음 만나 통성명을 하고 인사를 나누는 중에 나는 상대방을 잘알지 못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이 나를 대해서 오래 전부터 너무나 잘알고 있다는 말과 더불어 내가 전에 근무하던 직장과 나의 친구에 대한 이 야기를 들려 줄때가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이상이십니다.
그러므로 오늘 내가 하나님에 대해서 잘알지 못하고 있 다고 해서 하나님도 나처럼 나에 대해서 잘알지 못하신다고 착각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인간은 누구를 사랑하고 생각해 주는 척하지만 세월이 흐리고 환경이 바뀌게 되면 무관심해지거 그러나 하나님은 결코 방주 안에 있는 노아의 가정을 잊으시거나 무관 심하게 계신 것이 결코 아니었으니 하나님은 노아에게만이 아니라 (사49:15) 여인이 어찌 그 젖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아니할 것이라 (사49:16)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라는 말씀처럼 오늘 우리들에게도 역시 동일한 사랑으로 잊지 않고 계시며 우리의 모든 형편과 처지를 다 아시며 또한 기억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2.하나님의 역사하심 자그마치 40 일간 밤낮 동안 쏟아져 내려 온 지구를 뒤덮은 물이 줄어 들지 아니하는 한 노아의 가족은 방주 안에서 살아갈 수 밖에 없었으나 하나님은 그같은 노아의 형편을 아시고 (창8:1)바람으로 땅 위에 불게 하시매 물이 감하였고 라는 말씀처럼 바람을 준비하셔서 땅위에 물을 말리시고 밀어 내셔서 마침내 노아의 배가 아라랏 산에 머물게 하셨습니다. 노아가 방주안에 있는 동안에 하나님은 아무것도 하시지 아니하신 것이 아니라 바 로 노아의 가족이 안전하게 방주 밖으로 안전하게 나올 수 있도록 준비하시는 일을 바쁘게 준비하시고 계셨습니다.
1)돌아오지 않는 까마귀 노아가 방주안에 있는 동안 자기의 구원을 위해서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으며 모든 것을 하나님이 다 준비하시는 동안 노아는 그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확인하기만 하면 되었습니다. 방주 밖이 궁금한 노아는 먼저 까마귀를 방주 밖으로 날려 보냈으나 까마귀는 (창 8:7) 까마귀를 내어 놓으매 까마귀가 물이 땅에서 마르기까지 날아 왕래하였더라라는 말씀과 같이 돌아오지 아니하였습니다. 만일 물이 줄지 아니하였다면 먹을 것이 없는 까마귀는 돌아왔을 것인데 물이 줄어 서 여기 저기 드러난 시체들을 파먹는데 정신이 없었기 때문에 자기를 보살펴 준 노 아에게로 돌아오는 것을 까맣게 잊어 밑리고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들은 까마귀와 같이 하나님의 은혜를 져버리고 세상에 빠져 살아가지 않 도록 자신을 돌아보아야만 합니다.
2)돌아온 비둘기 노아가 다시 궁금하여 비둘기를 날려 보냈을 때 아직 저지대는 물이 채마르지 아니 하였기 때문에 발붙일 곳이 없었던 비둘기는 노아에게 돌아왔으며 노아는 다시 칠일 을 기다렸다가 비둘기를 다시 내어 보냈습니다. 그 결과 (창8:11) 저녁때에 비둘기가 그에게로 돌아왔는데 그 입에 감람 새 잎사귀 가 있는지라 이에 노아가 땅에 물이 감한 줄 알았으며 라는 말씀과 같이 홍수 속에 서 살아 남은 감람나무에서 돋아 난 새 잎사귀를 입에 물고 노아에게 돌아왔습니다. 비둘기가 입에 물고 온 감람나무의 새 잎사귀는 이제 방주 밖으로 나갈 날이 임박 했음을 알려주는 복음과 같은 기쁨의 좋은 소식이었습니다. 이제 방주 밖에는 새 역사가 시작되고 있음을 알려주며 노아와 그의 모든 가족들이 이 새역사의 주역들이 되어야 할 것을 내포하는 메시지이기도 합니다.
3)새로운 기회 홍수는 모든 것들을 쓸어 가기만 한 심판이 아니라 마치 새봄 맞이 대 청소와도 같 이 마치 쓰레기와도 같았던 불신앙과 불순종과 불감사와 이로 말미암은 방종과 온갖 죄악들을 지구상에서 몰아 버린 것이라면 새 감람 잎새는 거기서 돋아 난 새 생명인 것입니다. .홍수는 사람들과 재산만을 쓰러간 것이 아니라 옛 생활은 죄의 습관, 하나님에 대 한 무관심, 불순종, 이기주의,불경건, 결혼의 붕괴, 하나님에 대한 믿음의 상실등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였던 것들이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때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있어서 재난은 도적과 같이 나의 유익 한 부분을 빼앗아 가기만 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환경 미화원처럼 해로운 부분을 쓸 어간 후에 그 자리에서붜 새롭게 시작할 새 기회를 주는 계기임을 깨닫는 사람은 절 망 대신에 도리어 감사하게 됩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은 누구를 막론하고 죄인이기 때문에 죽음을 기다리며 살 수 밖에 없으며 자신의 구원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그같 은 인간의 죽음을 통해서 모든 것을 쓸어가버리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사망의 권세 를 이기시고 새 감람나무 잎새 처럼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복음으로 말 미암아 인류의 구원의 새 역사를 준비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부활의 주님을 믿고 신앙 생활을 한다는 것은 바로 이와 같은 새 역사 속으로 들어 오는 것임을 깨닫고 그 새로운 기회를 바로 사용하는 사람이 되어 야만 합니다.
3.하나님의 받으심 그렇게도 길고도 지루했던 방주 안의 기나긴 세월도 끝이 났으며 때가 되니 노아의 가족을 기억하시고 (창8:15) 하나님이 노아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창8:16) 너는 네 아내와 네 아들들과 네 자부들로 더불어 방주에서 나오고 라는 말씀처럼 노아의 가족들과 모든 생물들을 방주 밖으로 나오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의 구원을 위해 땀을 흘려 천국을 건설하는 일 이 아니라 이미 예수께서 처소를 예비하여 주셨음을 믿고 믿음으로 인내하며 하나님 의 역사를 확신하고 감사하면서 그 때를 기다리는 인내입니다. (약5:7)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의 강림 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약5:8)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
1)노아의 제단 노아가 일년 이상 방주 안에 머물다가 세상 밖으로 나왔을 때 여러가지 필요한 일 도 많이 있었을 것입니다. 먼저 가족들의 안전을 위하여 집을 짓는 일과 땅을 일구 어 경작지를 만드는 일과 여러가지 필요한 일들이 많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노아가 제일 먼저 한 일은 자기를 위한 일이 아니라 (창8:20) 노아가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 중에서와 모든 정결한 새 중에서 취하여 번제로 단에 드렸더니 라고 한 말씀과 같이 하나님께 제단을 쌓는 일을 하였습니다. 노아가 자신의 구원을 위해서 한 일이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또한 자기를 구원하신 하나님을 위해 할 수 있는 일도 또한 아무것도 없었으며 다만 그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면서 제단을 쌓는 일이었으며 또한 하나님은 그같은 노아의 번제를 기쁘신 마음으로 받으셨습니다. (창8:21) 여호와께서 그 향기를 흠향하시고 그 중심에 이르시되 내가 다시는 사람 으로 인하여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의 마음의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내가 전에 행한 것 같이 모든 생물을 멸하지 아니하리니(창8:22) 땅이 있을 동안에는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하 리라 부모가 어린 아이를 위해서 무엇을 할 수는 있어도 아이가 부모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으며 다만 건강하게 잘 자라고 공부만 잘하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피조물인 인간이 자기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으며 하나님은 인간의 도움이 필요할 만큼 약하지도 가난하지도 아니하시며 인간의 모든 것이다 그 하나님에게로 부터 온 것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흠향 하시는 번제를 드리는 일입니다. 번제는 정결한 짐승을 잡아 그 일부가 아니라 전부를 다 제단에 불사르는 것으로 하나님에 대한 전적인 헌신을 뜻하는 것입니다. 냄새나는 우리 인간이 하나님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이 바로 번제와 같이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예배 를 드리는 삶임을 명심해야만 합니다. 그것은 추상적이며 막연한 이야기가 아니라 노아가 무슨 일보다 먼저 하나님게 제 단을 쌓는 일을 먼저 한 것처럼 우리의 삶의 우선 순위와 비중을 (마6:33)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고 한 말씀처럼 먼저 하나님께 두는 하나님 중심, 교회 중심, 성경 중심의 삶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노아의 제사를 기쁘시게 받으신 후에 (창8:21) 여호와께서 그 향기를 흠 향하시고 그 중심에 이르시되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인하여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 니 라고 한 말씀과 같이 노아를 축복하셨습니다. 그것은 결코 인간들이 선해져서가 아니라 여전히 인간의 마음의 계획하는 바가 어 려서부터 악할 것임을 잘 알고 계셨지만 그 저주를 인간이 아니라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신 받으시고 그로 말미암아 인류를 구원하시고자 하시는 구속의 섭리가 있으셨기 때문입니다.
지난 날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 믿음의 사람들의 공통점은 그들이 다 하나님께 신실 하게 제단을 쌓던 사람들이었다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그같은 믿음의 사람들이 드리는 제사를 아주 기쁘시게 받으셨다는 공통점을 아울러 가지고 있습니다. 아벨과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제사를 기쁘시게 받으시던 여호와 하나님이 바로 오늘 저와 여러분의 하나님이시라면 그 하나님이 지금 우리들에게 기대하시고 또한 우리가 드리는 것중에 기쁘게 받으실 것도 역시 노아와 같이 하나님 제일 중심의 예 배를 드리는 일인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구원을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으며 다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어 놓으신 구원을 믿음으로 받기만 하면 되고 예수께서 예비해 놓으신 하나님의 나라에 믿음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되는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이 땅위에서 우리가 해야 될 일이 무엇일까요 시간이 남아서가 아니며, 할일이 없어서가 아니라 누구보다 바쁘고 할일이 많은 사람이지만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께 해야만 할일이 바로 노아와 같이 정결하고 온전한 제사임을 잊지 말자는 것 입니다. (벧전2:9)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 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그 제사는 결코 교회에 나와서 예배를 드리는 것만으로 다 되는 것이 아니라 (히 13:15) 이러므로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거하는 입술의 열매니라 (히13:16)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눠 주기를 잊지말라 이같은 제사는 하나님이 기뻐 하시느니라는 말씀과 같이 위로는 날 구원 하신 하나님을 찬미하며 세상사람에게 대해서는 날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자랑 하고 증거하는 일과 더불어 그 사랑을 말로만이 아니라 선행과 나눔을 통해서 보여 주는 사람이 바로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제사라는 것입니다.
노아의 번제를 흠향하신 하나님께서 (창8:22) 땅이 있을 동안에는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하리라 고 하신 말씀처럼 이 지구는 노아 이후 오늘까지 잠시도 쉬지 않고 태양을 공전하면서 밤과 낮이 교차되고 추 위와 더위가 교차하면서 세월이 흘러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생명이 이 세상에서 영원하지 아니한 것처럼 이 지구도 땅이 있을 동안에는 이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개인의 종말과 더불어 역사의 종말이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홍수 심판을 하시고 노아를 방주에서 나오게 하신 것은 온 인류에게 바로 그와 같은 제 도전의 의미가 있는 것이며, 오늘 우리들에게 하나님께서 새로운 하루 를 주심도 바로 그와 같은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결론 우리는 자연을 볼 때 그것이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것이라는 생각 대신에 하나님께서 배후에서 자연의 주재자가 되셔서 그렇게 하여 주심을 깨달아야만 합니다.
그러므로 매일 아침 정해진 시간에 태양이 떠오르고 계절이 어김없이 가고오는 역사를 통해서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대해서 감사 해야만 할 것입니다. 때로 우리를 낙심케 만드는 일은 크게 두가지가 있는데
1)하나는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바로 믿지 아 니함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이 육신적으로 잘되는 것을 볼 때 정말 하나님은 살아계시는 것이며 세상을 보고 계시는 것일까 라는 생각입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전7:20) 선을 행하고 죄를 범치 아니하는 의인은 세상에 아주 없 느니라는 말씀처럼 죄가 없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죄가 없는 세상도 물론 없습니다. 세월이 흘러 갈 수록 사람들이 자꾸만 악하여져 가면서 (렘8:6) 내가 귀를 기울여 들은즉 그들이 정직을 말하지 아니하며 그 악을 뉘우쳐서 나의 행한 것이 무엇인고 말하는 자가 없고 전장을 향하여 달리는 말 같이 각각 그 길로 행하도다 라는 말씀 과 같이 되어가고 있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다 보고 계시며 때가 되면 (렘17:10)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 행위와 그 행실대로 보응하나니 라는 말씀처럼 보응하실 것이며 그것이 지난 날의 역사입니다
2) 또 하나는 방주 안에 노아처럼 진실한 믿음의 성도들이 답답한 상태에 머물러 있을 때 하나님이 왜 돌아보지 아니하시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면 낙심이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나를 못보시거나 기억하지 아니하시는 것이 아니라 방주안에 노아 의 식구들을 기억하신 것처럼 (사54:8) 내가 넘치는 진노로 내 얼굴을 네게서 잠시 가리웠으나 영원한 자비로 너를 긍휼히 여기리라 네 구속자 여호와의 말이니라 고 한 말씀처럼 믿음으로 살고자 하는 나를 잠시도 잊지 아니하시나니 긍휼히 여기시며 축복을 준비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애굽에서 400년간 종살이를 하던 이스라엘을 기억하시고 그들을 구원하여 내시며, 억울하게 옥에 갇혀 옥살이를 하고 있던 요셉을 기억하시고 그를 구원하여 총리가 되게 하신 하나님이 바로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노아의 식구들을 방주안에 오래 머물게 하신 것은 물에서 구원하시기 위함인 것처럼 우리 성도들을 때로 고난에 처하게 하심은 버려두심이 아니라 그 보 다 더큰 환난에서 건져내시기 위함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현재 내가 어떤 형편에 처하든지 믿음으로 감사하며 인내할 것을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하나님은 나를 알고 계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약5:7)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의 강림 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약5:8)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
그렇다면 하나님은 어떤 분일까요 하나님은 인간이 아니시기 때문에 인간들처럼 요란스럽지 않으시고 또한 인간들처럼 변덕스럽지도 아니하시며 한 번 사랑하시기로 작정하셨으면 변함이 없으시며 끝까지 책임을 지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심을 믿고 그 사랑안에서 살아가야만 합니다.
1.하나님의 침묵하심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을 멸시하고 끝까지 회개치 아니하는 노아 당시의 사람들에게 전무후무한 홍수의 심판이 임하였으나 노아의 가족들은 그러한 가운데서도 방주안에 서 가장 안전하게 그 심판을 피할 수 있었음은 역사의 종말인 말세에 진정한 도피처는 어느 특정 장소가 아니라 방주와 같은 예수 그리스도안이며 이미 예수 그리스도 를 나의 구세주로 내 마음에 영접하고 믿음으로 살아가고 있는 성도들에게는 이미 그같은 축복 속에 살고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요3:18)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 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그러나 그 방주안은 일시적인 피난처는 될 수 있으나 하나님이 백성들이 거할 영구 한 도성은 아니기에 그 방주에서 나와야만 하였으며 그 때까지는 비록 방주가 안전 한 피난처이지만 갑갑하고 답답하게 느껴질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가장 두렵게 느껴지는 공포의 순간에 대해서 심리학자들의 말을 빌리면 자 신이 지금 세상에서 자신은 혼자라고 생각되어지는 때 두려움과 고독감을 느끼게 되 기 때문에 사람들은 혼자있는 것을 두려워 하게 되며 집단을 이루고 공동체의 생활 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좋은 예가 해외로 단체 여행을 하게 되는 경우 말도 통하지 아니하는 나라에 가 서 한눈을 팔다가 일행을 잃어 버리게 되면 자기 주변에 그 나라 사람들이 아무리 많이 있어도 겁이 덜컥나고 가슴이 철렁 내려 앉으면서 얼굴이 하얗게 질리게 되며 정신이 하나도 없게 됩니다.
인간에게 죽음이 두렵게 느껴지는 까닭은 사후의 세계가 어떤 곳인지를 전혀 알지 못하기 때문이며 또 하나는 그곳을 자기 혼자서만 가야만 한다고 생각하게 되기 때 문입니다. 이제 지구 상에는 노아의 한 가족 뿐이 남지 아니하였으며 방주 밖에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으며 언제 끝이 나게 될지 전혀 예측 불허의 상황에서 노아의 마음은 심 리적으로 심히 불안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노아를 방주안으로 들어오라고 부르신 하나님은 그 이후 기나 긴 침묵으로 일 관하고 계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같은 노아의 심정을 모르시거나, 무관심하신 것이 아니라 노아의 형편과 처지에 대해서 잘알고 계셨습니다. 인간은 누구를 사랑하고 생각해 주는 척하지만 세월이 흐리고 환경이 바뀌게 되면 무관심해지거 그러나 하나님은 결코 방주 안에 있는 노아의 가정을 잊으시거나 무관 심하게 계신 것이 결코 아니었으니 (창8:1) 하나님이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는 모든 들짐승과 육축을 권념하사 라는 말씀과 같이 노아와 그 가족을 한 순간도 잊지 아니하시고 다 기억하고 계셨습니다. 노아는 방주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전혀 알 수 없었지만 하나님은 방 주 안에 있는 노아의 가족과 모든 생명체들에 대해서 잘아시고 또한 한시도 잊지 않 고 기억하고 계셨습니다. 인간 관계 속에서도 어떤 사람을 처음 만나 통성명을 하고 인사를 나누는 중에 나는 상대방을 잘알지 못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이 나를 대해서 오래 전부터 너무나 잘알고 있다는 말과 더불어 내가 전에 근무하던 직장과 나의 친구에 대한 이 야기를 들려 줄때가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이상이십니다.
그러므로 오늘 내가 하나님에 대해서 잘알지 못하고 있 다고 해서 하나님도 나처럼 나에 대해서 잘알지 못하신다고 착각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인간은 누구를 사랑하고 생각해 주는 척하지만 세월이 흐리고 환경이 바뀌게 되면 무관심해지거 그러나 하나님은 결코 방주 안에 있는 노아의 가정을 잊으시거나 무관 심하게 계신 것이 결코 아니었으니 하나님은 노아에게만이 아니라 (사49:15) 여인이 어찌 그 젖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아니할 것이라 (사49:16)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라는 말씀처럼 오늘 우리들에게도 역시 동일한 사랑으로 잊지 않고 계시며 우리의 모든 형편과 처지를 다 아시며 또한 기억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2.하나님의 역사하심 자그마치 40 일간 밤낮 동안 쏟아져 내려 온 지구를 뒤덮은 물이 줄어 들지 아니하는 한 노아의 가족은 방주 안에서 살아갈 수 밖에 없었으나 하나님은 그같은 노아의 형편을 아시고 (창8:1)바람으로 땅 위에 불게 하시매 물이 감하였고 라는 말씀처럼 바람을 준비하셔서 땅위에 물을 말리시고 밀어 내셔서 마침내 노아의 배가 아라랏 산에 머물게 하셨습니다. 노아가 방주안에 있는 동안에 하나님은 아무것도 하시지 아니하신 것이 아니라 바 로 노아의 가족이 안전하게 방주 밖으로 안전하게 나올 수 있도록 준비하시는 일을 바쁘게 준비하시고 계셨습니다.
1)돌아오지 않는 까마귀 노아가 방주안에 있는 동안 자기의 구원을 위해서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으며 모든 것을 하나님이 다 준비하시는 동안 노아는 그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확인하기만 하면 되었습니다. 방주 밖이 궁금한 노아는 먼저 까마귀를 방주 밖으로 날려 보냈으나 까마귀는 (창 8:7) 까마귀를 내어 놓으매 까마귀가 물이 땅에서 마르기까지 날아 왕래하였더라라는 말씀과 같이 돌아오지 아니하였습니다. 만일 물이 줄지 아니하였다면 먹을 것이 없는 까마귀는 돌아왔을 것인데 물이 줄어 서 여기 저기 드러난 시체들을 파먹는데 정신이 없었기 때문에 자기를 보살펴 준 노 아에게로 돌아오는 것을 까맣게 잊어 밑리고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들은 까마귀와 같이 하나님의 은혜를 져버리고 세상에 빠져 살아가지 않 도록 자신을 돌아보아야만 합니다.
2)돌아온 비둘기 노아가 다시 궁금하여 비둘기를 날려 보냈을 때 아직 저지대는 물이 채마르지 아니 하였기 때문에 발붙일 곳이 없었던 비둘기는 노아에게 돌아왔으며 노아는 다시 칠일 을 기다렸다가 비둘기를 다시 내어 보냈습니다. 그 결과 (창8:11) 저녁때에 비둘기가 그에게로 돌아왔는데 그 입에 감람 새 잎사귀 가 있는지라 이에 노아가 땅에 물이 감한 줄 알았으며 라는 말씀과 같이 홍수 속에 서 살아 남은 감람나무에서 돋아 난 새 잎사귀를 입에 물고 노아에게 돌아왔습니다. 비둘기가 입에 물고 온 감람나무의 새 잎사귀는 이제 방주 밖으로 나갈 날이 임박 했음을 알려주는 복음과 같은 기쁨의 좋은 소식이었습니다. 이제 방주 밖에는 새 역사가 시작되고 있음을 알려주며 노아와 그의 모든 가족들이 이 새역사의 주역들이 되어야 할 것을 내포하는 메시지이기도 합니다.
3)새로운 기회 홍수는 모든 것들을 쓸어 가기만 한 심판이 아니라 마치 새봄 맞이 대 청소와도 같 이 마치 쓰레기와도 같았던 불신앙과 불순종과 불감사와 이로 말미암은 방종과 온갖 죄악들을 지구상에서 몰아 버린 것이라면 새 감람 잎새는 거기서 돋아 난 새 생명인 것입니다. .홍수는 사람들과 재산만을 쓰러간 것이 아니라 옛 생활은 죄의 습관, 하나님에 대 한 무관심, 불순종, 이기주의,불경건, 결혼의 붕괴, 하나님에 대한 믿음의 상실등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였던 것들이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때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있어서 재난은 도적과 같이 나의 유익 한 부분을 빼앗아 가기만 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환경 미화원처럼 해로운 부분을 쓸 어간 후에 그 자리에서붜 새롭게 시작할 새 기회를 주는 계기임을 깨닫는 사람은 절 망 대신에 도리어 감사하게 됩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은 누구를 막론하고 죄인이기 때문에 죽음을 기다리며 살 수 밖에 없으며 자신의 구원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그같 은 인간의 죽음을 통해서 모든 것을 쓸어가버리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사망의 권세 를 이기시고 새 감람나무 잎새 처럼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복음으로 말 미암아 인류의 구원의 새 역사를 준비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부활의 주님을 믿고 신앙 생활을 한다는 것은 바로 이와 같은 새 역사 속으로 들어 오는 것임을 깨닫고 그 새로운 기회를 바로 사용하는 사람이 되어 야만 합니다.
3.하나님의 받으심 그렇게도 길고도 지루했던 방주 안의 기나긴 세월도 끝이 났으며 때가 되니 노아의 가족을 기억하시고 (창8:15) 하나님이 노아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창8:16) 너는 네 아내와 네 아들들과 네 자부들로 더불어 방주에서 나오고 라는 말씀처럼 노아의 가족들과 모든 생물들을 방주 밖으로 나오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의 구원을 위해 땀을 흘려 천국을 건설하는 일 이 아니라 이미 예수께서 처소를 예비하여 주셨음을 믿고 믿음으로 인내하며 하나님 의 역사를 확신하고 감사하면서 그 때를 기다리는 인내입니다. (약5:7)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의 강림 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약5:8)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
1)노아의 제단 노아가 일년 이상 방주 안에 머물다가 세상 밖으로 나왔을 때 여러가지 필요한 일 도 많이 있었을 것입니다. 먼저 가족들의 안전을 위하여 집을 짓는 일과 땅을 일구 어 경작지를 만드는 일과 여러가지 필요한 일들이 많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노아가 제일 먼저 한 일은 자기를 위한 일이 아니라 (창8:20) 노아가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 중에서와 모든 정결한 새 중에서 취하여 번제로 단에 드렸더니 라고 한 말씀과 같이 하나님께 제단을 쌓는 일을 하였습니다. 노아가 자신의 구원을 위해서 한 일이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또한 자기를 구원하신 하나님을 위해 할 수 있는 일도 또한 아무것도 없었으며 다만 그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면서 제단을 쌓는 일이었으며 또한 하나님은 그같은 노아의 번제를 기쁘신 마음으로 받으셨습니다. (창8:21) 여호와께서 그 향기를 흠향하시고 그 중심에 이르시되 내가 다시는 사람 으로 인하여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의 마음의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내가 전에 행한 것 같이 모든 생물을 멸하지 아니하리니(창8:22) 땅이 있을 동안에는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하 리라 부모가 어린 아이를 위해서 무엇을 할 수는 있어도 아이가 부모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으며 다만 건강하게 잘 자라고 공부만 잘하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피조물인 인간이 자기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으며 하나님은 인간의 도움이 필요할 만큼 약하지도 가난하지도 아니하시며 인간의 모든 것이다 그 하나님에게로 부터 온 것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흠향 하시는 번제를 드리는 일입니다. 번제는 정결한 짐승을 잡아 그 일부가 아니라 전부를 다 제단에 불사르는 것으로 하나님에 대한 전적인 헌신을 뜻하는 것입니다. 냄새나는 우리 인간이 하나님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이 바로 번제와 같이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예배 를 드리는 삶임을 명심해야만 합니다. 그것은 추상적이며 막연한 이야기가 아니라 노아가 무슨 일보다 먼저 하나님게 제 단을 쌓는 일을 먼저 한 것처럼 우리의 삶의 우선 순위와 비중을 (마6:33)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고 한 말씀처럼 먼저 하나님께 두는 하나님 중심, 교회 중심, 성경 중심의 삶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노아의 제사를 기쁘시게 받으신 후에 (창8:21) 여호와께서 그 향기를 흠 향하시고 그 중심에 이르시되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인하여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 니 라고 한 말씀과 같이 노아를 축복하셨습니다. 그것은 결코 인간들이 선해져서가 아니라 여전히 인간의 마음의 계획하는 바가 어 려서부터 악할 것임을 잘 알고 계셨지만 그 저주를 인간이 아니라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신 받으시고 그로 말미암아 인류를 구원하시고자 하시는 구속의 섭리가 있으셨기 때문입니다.
지난 날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 믿음의 사람들의 공통점은 그들이 다 하나님께 신실 하게 제단을 쌓던 사람들이었다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그같은 믿음의 사람들이 드리는 제사를 아주 기쁘시게 받으셨다는 공통점을 아울러 가지고 있습니다. 아벨과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제사를 기쁘시게 받으시던 여호와 하나님이 바로 오늘 저와 여러분의 하나님이시라면 그 하나님이 지금 우리들에게 기대하시고 또한 우리가 드리는 것중에 기쁘게 받으실 것도 역시 노아와 같이 하나님 제일 중심의 예 배를 드리는 일인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구원을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으며 다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어 놓으신 구원을 믿음으로 받기만 하면 되고 예수께서 예비해 놓으신 하나님의 나라에 믿음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되는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이 땅위에서 우리가 해야 될 일이 무엇일까요 시간이 남아서가 아니며, 할일이 없어서가 아니라 누구보다 바쁘고 할일이 많은 사람이지만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께 해야만 할일이 바로 노아와 같이 정결하고 온전한 제사임을 잊지 말자는 것 입니다. (벧전2:9)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 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그 제사는 결코 교회에 나와서 예배를 드리는 것만으로 다 되는 것이 아니라 (히 13:15) 이러므로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거하는 입술의 열매니라 (히13:16)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눠 주기를 잊지말라 이같은 제사는 하나님이 기뻐 하시느니라는 말씀과 같이 위로는 날 구원 하신 하나님을 찬미하며 세상사람에게 대해서는 날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자랑 하고 증거하는 일과 더불어 그 사랑을 말로만이 아니라 선행과 나눔을 통해서 보여 주는 사람이 바로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제사라는 것입니다.
노아의 번제를 흠향하신 하나님께서 (창8:22) 땅이 있을 동안에는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하리라 고 하신 말씀처럼 이 지구는 노아 이후 오늘까지 잠시도 쉬지 않고 태양을 공전하면서 밤과 낮이 교차되고 추 위와 더위가 교차하면서 세월이 흘러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생명이 이 세상에서 영원하지 아니한 것처럼 이 지구도 땅이 있을 동안에는 이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개인의 종말과 더불어 역사의 종말이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홍수 심판을 하시고 노아를 방주에서 나오게 하신 것은 온 인류에게 바로 그와 같은 제 도전의 의미가 있는 것이며, 오늘 우리들에게 하나님께서 새로운 하루 를 주심도 바로 그와 같은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결론 우리는 자연을 볼 때 그것이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것이라는 생각 대신에 하나님께서 배후에서 자연의 주재자가 되셔서 그렇게 하여 주심을 깨달아야만 합니다.
그러므로 매일 아침 정해진 시간에 태양이 떠오르고 계절이 어김없이 가고오는 역사를 통해서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대해서 감사 해야만 할 것입니다. 때로 우리를 낙심케 만드는 일은 크게 두가지가 있는데
1)하나는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바로 믿지 아 니함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이 육신적으로 잘되는 것을 볼 때 정말 하나님은 살아계시는 것이며 세상을 보고 계시는 것일까 라는 생각입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전7:20) 선을 행하고 죄를 범치 아니하는 의인은 세상에 아주 없 느니라는 말씀처럼 죄가 없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죄가 없는 세상도 물론 없습니다. 세월이 흘러 갈 수록 사람들이 자꾸만 악하여져 가면서 (렘8:6) 내가 귀를 기울여 들은즉 그들이 정직을 말하지 아니하며 그 악을 뉘우쳐서 나의 행한 것이 무엇인고 말하는 자가 없고 전장을 향하여 달리는 말 같이 각각 그 길로 행하도다 라는 말씀 과 같이 되어가고 있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다 보고 계시며 때가 되면 (렘17:10)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 행위와 그 행실대로 보응하나니 라는 말씀처럼 보응하실 것이며 그것이 지난 날의 역사입니다
2) 또 하나는 방주 안에 노아처럼 진실한 믿음의 성도들이 답답한 상태에 머물러 있을 때 하나님이 왜 돌아보지 아니하시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면 낙심이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나를 못보시거나 기억하지 아니하시는 것이 아니라 방주안에 노아 의 식구들을 기억하신 것처럼 (사54:8) 내가 넘치는 진노로 내 얼굴을 네게서 잠시 가리웠으나 영원한 자비로 너를 긍휼히 여기리라 네 구속자 여호와의 말이니라 고 한 말씀처럼 믿음으로 살고자 하는 나를 잠시도 잊지 아니하시나니 긍휼히 여기시며 축복을 준비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애굽에서 400년간 종살이를 하던 이스라엘을 기억하시고 그들을 구원하여 내시며, 억울하게 옥에 갇혀 옥살이를 하고 있던 요셉을 기억하시고 그를 구원하여 총리가 되게 하신 하나님이 바로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노아의 식구들을 방주안에 오래 머물게 하신 것은 물에서 구원하시기 위함인 것처럼 우리 성도들을 때로 고난에 처하게 하심은 버려두심이 아니라 그 보 다 더큰 환난에서 건져내시기 위함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현재 내가 어떤 형편에 처하든지 믿음으로 감사하며 인내할 것을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하나님은 나를 알고 계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약5:7)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의 강림 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약5:8)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