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지 아니하리라 (사43:22-25)
본문
여러분 몰래 카메라 아시지요 유명인사들을 몰래 촬영하는 것 으로 시작 하더니 요즈음은 아주 은밀한 장소에 까지 설치를 해 서 사회문제화 되곤 합니다. 만약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 뒤를 따라 다니 시면서 몰래 카메라를 설치해 놓고 우리의 일거수 일투족을 녹화 해 놓는다면 어떻까요 미국에서는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닉슨 대통령이 중도 사임하는 사태 까지 벌어졌습니다. 우리 주님이 우리의 모든 말과 통화를 녹음해 놓는다면 어떨까요 그리고 우리가 생을 마치고 심판대 앞에 설 때 처음부터 세밀하 게 촬영된 녹화 테이프는 돌아가고, 증거물로 녹음테이프가 틀어 진다면 어떨까요 아마 주님 앞에 얼굴을 들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어쨋든 우리의 삶의 발자국은 심판대의 녹화테이프에 그대로 찍힐 것입니다. 전과기록이 말소되기 전 까지는 말이지요. 하나님의 특별사면조치가 있기전 까지는 그럴 것입니다. 너무도 부끄 럽고 수치스런 우리의 과거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요 이것이 오늘 이 시간의 물음입니다.
1. 우리 주님은 우리의 죄를 도말해 주십니다. 청구비리 기아비리로 인한 사정한파 때문에 정치인들이 이 삼복 더위에 덜덜 떨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움추려 떨고 있는 정치인들도 증거가 완전히 없어졌다고 하면 큰 소리를 칠 수 있을 것입니다. 죄 지은 사람에게 제일 제일 기쁜 소식은 증 거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기소의 근거가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처벌의 근거가 말소되기 때문입니다. 원천적으로 무죄가 되는 것 입니다. 바로 우리 주님이 우리에게 지속적으로 하는 일상 활동 가운데 하나가 죄의 도말작업입니다. 오늘 본문 25절이 그것을 잘 표현 하고 있습니다.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 억지 아니하리라" 했습니다. 죄를 도말하고 기억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순서상으로 보면 죄의 도말이 먼저 있습니다. 그 다음에는 기억지도 않는다는 말이 나옵니다. '도말(塗抹, 므헤)'은 채무관계를 청산하는 뜻에서 차용증서를 없앨 때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하나님의 책에 기록된 범죄 사실을 지워버리는 것을 가르킵니다. 고대 바벨론에서는 사람들이 죄를 범하면 그 범죄 사실을 진 흙판에 기록했고, 용서를 받았을 ㄸ는 그 진흙판을 깨버렸다고 합니다. 차용증서를 완전히 불태워 버리고, 범죄 기록판을 완전 히 깨버리는 것, 이게 바로 도말이예요. 그래서 시편기자는 하나님께 이렇게 탄원합니다.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아 나를 긍휼히 여기시며 주의 많은 자비를 아 내 죄과를 도말하소서. 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기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 (시 51:1-2) 왜 우리 주님께서 허물을 도말하시기를 원하십니까 "나는 나 를 위하여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25절) 바로 주님 자신을 위 해서라고 합니다. 이스라엘의 행위를 보고서는 도말해줄 수 없지 만, 하나님 자신의 이스라엘을 향한 열열한 사랑 때문에 죄를 사 해 주시는 것입니다. 죄를 사해주고 다시 사랑의 화해를 하지 않 으면 못 견디는 분은 바로 하나님 자신입니다. 연인 끼리 다투거나 부부 싸움을 하고 나서 대개는 더 사랑이 깊은 쪽이 화해를 청하게 됩니다. 왜요 다시 다정스런 사랑의 상황을 회복하지 않고서는 본인이 못견디니까요. 그것은 상대방 을 위한 것이라기 보다 오히려 자신을 위한 것입니다. 자신이 먼저 손 내밀지 않으면 견딜수 없으니까요. 이렇게 무관심하고 냉 냉한 관계는 참을 수 없으니까요. 바로 자신을 위한 것입니다. 여기에서는 좀 본문의 배경 설명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사실 오늘 본문은 예물 조차 드리기 아까와 하는 이스라엘의 죄 에 대한 격렬한 고발이 주내용입니다.
22절부터 24절 까지는 '괴 롭게'라는 말이 여러 차례 등장합니다. 부르지도 않고 공경하지 도 않습니다. 말하자면 예배를 드리지도 않습니다. '아니하며'라는 말이 수차 반복됩니다. 죄짐과 악으로 오히려 하나님을 괴롭 게 하기 까지합니다. 무엇보다 제사를 드리지 않았습니다. 물론 형식적이고 외형적인 제사도 중요하지만, 내면과 마음으로 부터 의 제사를 외면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제사제도가 생명입니다. 제사의 제일 큰 목적은 죄의 고백과 사죄인데 이 죄의 고백이 없는 것입니다. 죽을 수밖에 없지요. 이런 괴씸한 죄를 논하다가 갑자기 맘을 180도로 돌려서, 나를 위하려 너희 이스라엘의 죄를 사하겠다고 일방적으로 선포합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의 최우선 관심사는 죄의 사함에 있습니다. 관계 회복에 있습니다. 그러니까 주님께서는 진심으로 우리의 죄 를 깨끗게 해 주시기를 열망하고 있습니다. 연인 끼리 싸우고 나 면 열망이 무엇입니까 빨리 화해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이게 없 으면 사랑이 없는 것입니다. 부부 간에도 그렇지요. 부부 싸움을 하고 그 불편함을 이기지 못해 빨리 화해 하는 것은, 아직 사랑 이 남았다는 증거입니다. 사랑하는 사이에는 관계 어그러짐이 생 기면 최우선 과제가 관계회복이 되는 것입니다. 주님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최우선 관심은 죄를 사해주는 것입니다. 관계를 회 복하는 것입니다. 잃었던 아담을 찾는 것입니다. 주님의 열망도 사랑하는 자녀들의 죄를 사해주는 것입니다. 관계회복입니다. 그리고 열망하는 것 만큼 주님은 실제로 죄를 도말해 줄 능력이 있습니다. 십자가에서 달리셨기 때문입니다. 열망은 있지만, 능 력이 없다면 그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공허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열망도 있고 실제로 그 열망을 해결할 능력도 있 으십니다. 물론 도말해 주시는 전제 조건은 물론 죄의 고백과 회개입니다. "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게 하실 것이요" (요일1:9)
조건은 죄 자백입니다. 효과는 모든 불의에 미칩니다. '사한 다'(아페)는 말은 책임해제의 뜻이 있습니다. 빚 탕감의 뜻도 있습니다. 다 '도말한다'는 뜻과 같습니다. 정의로운 하나님이 어 떻게 죄를 깨끗하게 무효화 시킬 수 있습니까 바로 죄의 자백이 있기 때문입니다. 죄의 자백은 피묻은 십자가의 보혈을 부르고, 십자가의 보혈은 우리를 깨끗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냥 싸구려 용서가 아닙니다. 뼈아픈 용서요, 값비싼 은총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의 붉은 가슴을 순백의 깨끗함으로 만들어 주십니다. 자 말씀의 선언에 귀기울여 보세요.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 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 지라도 양털 같이 되리라" (사1:18 ) 진홍, 주홍, 다홍은 모두 짙은 붉은색입니다. 핏빛 처럼 붉은 색깔도 순백의 흰눈 처럼 만들어 준다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보 혈은 핏빛이지만, 사해지는 그리스도인의 가슴은 순백이 됩니다. 마치 깨끗한 물은 세탁을 하면서 더러운 물로 바뀌지만, 옷은 깨 끗해 지는 것처럼 말이지요. "내가 네 허물을 빽빽한 구름의 사라짐 같이, 네 죄를 안개의 사라짐 같이 도말하였으니 너는 내게로 돌아오라 내가 너를 구속 하였음이니라" (사 44:22) 구름이 걷히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찬란한 태양과 푸른 창공 이 있습니다. 농무(濃霧)가 걷히면 산과 들은 선명하게 다가 옵니다. 모두 시각 언어입니다. 그러니 죄 사함 받은 우리 그리스도인들 은 시각의 이미지를 그리며 주님의 도말하시는 은혜를 누려야 합니다. 검붉은 색이 순백으로 바뀌었습니다. 먹구름과 짙은 안개 가 걷히고 푸른 하늘 맑은 산이 되었습니다. 이 사실을 그려봅시다. 우리 주님이 해 주셨습니다. 참으로 산뜻하고 상쾌한 날입니다. 이 고고한 자유를 이제 선포하고 누릴 때입니다. 순백의 깨 끗함과 푸르름을 가꾸고 누릴 때입니다.
2. 도말하신 다음에는 기억도 아니하십니다. 본문 25절에 보면 도말한 다음에는 기억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너의 죄를 나의 기억에서 말끔히 씻어 버리리라'(25절). 사실 도말하는 것 보다 더 큰 은총은 기억지도 않는 것입니다. 기억 조차 지워버린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장 큰 용서요 기쁨입니다. 기억하면 용서가 아닙니다. 인간 끼리도 그렇습니다. 기억하 면 용서를 하지 않는 것입니다. 기억에서부터 지워야 합니다. 잘 못한일, 섭섭하게 한일, 분노스럽게 한 일, 모두 지워버려야 합니다. 기억에서 조차 지워야 합니다. 사람들은 용서를 잘 하긴 합니다만, 고리를 걸어 둡니다. '내가 나에게 이런 은혜를 입었 지' 이렇게 속으로 평생 채권자의 심정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완전하고 깨끗하게 잊어버리십니다. 기억에 서 완전히 삭제 하신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심판 날에 가면 마귀 의 정죄 녹화 테이프에는 우리의 전과기록은 완전히 말소되어 있습니다. 녹화 테이프가 문제가 아니라 우리 주님의 기억 테이프 에서도 완전히 삭제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담대할 수 있습니다. 의기소침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 정도의 보장을 해 주었는 대도 새출발을 할 수 없다면 그것은 순전히 우리의 책임입니다. 다시 시작하기에 거리낌이 없을 정도로 담대해야 합니다. 기 쁜일입니다. 이것은 순전히 복음입니다. 히8:12 "내가 저희 불의를 긍휼히 여기고 저희 죄를 다시 기억 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10:17 "저희 죄와 저희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 도말의 강도는 어느 정도입니까. 기억도 아니하는 것입니다. 담 대하십시다. 나의 죄는 다 없어졌다. 흔적도 남지 않았다. 하나님도 기억에서 지웠는 데 내가 기억할 필요는 없습니다.
3. 깨끗하게 새 출발해야 합니다. 이것은 특권이기도 하고 명령이기도 합니다. 이제 남은 것은 새 출발하는 것 뿐입니다. 과거에 얽매일 필요는 없습니다. 이제는 앞만 있을 뿐입니다. '내가 그리스도께 잡힌 바된 그것을 잡으려 고 아 가노라'입니다. 과거에 너무 얽매어서 정죄에 얽매어서 앞으로 나아가는 데 장애가 된다면 그것은 악의 세력이 기뻐할 뿐입니다. 마귀의 일은 기억나게 하는 것입니다. 죄의 짐은 사람을 무기 력하게 만듭니다. 의욕을 꺽습니다. 자꾸 뒤를 돌아보게 합니다. 불안하게 합니다. 비겁하게 만들고 산만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인 여러분은 도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의지해서 지워 버리세요. 잊어 버리세요. 다시 시작한다는 것은 얼마나 감 격스러운 일입니까 세상은 전과자에게 가혹합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전과자인 여러분에게 한번도 홀대를 한적이 없습니다. 언제 우리 주님이 진정으로 참회하는 자에게 새날을 주시지 않은 적이 있습니까 과거의 전과는 없습니다. 과거의 오점도 없습니다. 과거의 기록 도 없습니다.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용서된 새날이 있을 뿐입니다. 회개하고 참회하는 하나님의 아들 딸에게 오는 최대의 축복 입니다. 이것이 복음이요, 참으로 기쁜 소식입니다. 이 사실을 마음 껏 누리세요. 여러분의 삶이 달라질 것입니다.
1. 우리 주님은 우리의 죄를 도말해 주십니다. 청구비리 기아비리로 인한 사정한파 때문에 정치인들이 이 삼복 더위에 덜덜 떨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움추려 떨고 있는 정치인들도 증거가 완전히 없어졌다고 하면 큰 소리를 칠 수 있을 것입니다. 죄 지은 사람에게 제일 제일 기쁜 소식은 증 거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기소의 근거가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처벌의 근거가 말소되기 때문입니다. 원천적으로 무죄가 되는 것 입니다. 바로 우리 주님이 우리에게 지속적으로 하는 일상 활동 가운데 하나가 죄의 도말작업입니다. 오늘 본문 25절이 그것을 잘 표현 하고 있습니다.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 억지 아니하리라" 했습니다. 죄를 도말하고 기억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순서상으로 보면 죄의 도말이 먼저 있습니다. 그 다음에는 기억지도 않는다는 말이 나옵니다. '도말(塗抹, 므헤)'은 채무관계를 청산하는 뜻에서 차용증서를 없앨 때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하나님의 책에 기록된 범죄 사실을 지워버리는 것을 가르킵니다. 고대 바벨론에서는 사람들이 죄를 범하면 그 범죄 사실을 진 흙판에 기록했고, 용서를 받았을 ㄸ는 그 진흙판을 깨버렸다고 합니다. 차용증서를 완전히 불태워 버리고, 범죄 기록판을 완전 히 깨버리는 것, 이게 바로 도말이예요. 그래서 시편기자는 하나님께 이렇게 탄원합니다.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아 나를 긍휼히 여기시며 주의 많은 자비를 아 내 죄과를 도말하소서. 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기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 (시 51:1-2) 왜 우리 주님께서 허물을 도말하시기를 원하십니까 "나는 나 를 위하여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25절) 바로 주님 자신을 위 해서라고 합니다. 이스라엘의 행위를 보고서는 도말해줄 수 없지 만, 하나님 자신의 이스라엘을 향한 열열한 사랑 때문에 죄를 사 해 주시는 것입니다. 죄를 사해주고 다시 사랑의 화해를 하지 않 으면 못 견디는 분은 바로 하나님 자신입니다. 연인 끼리 다투거나 부부 싸움을 하고 나서 대개는 더 사랑이 깊은 쪽이 화해를 청하게 됩니다. 왜요 다시 다정스런 사랑의 상황을 회복하지 않고서는 본인이 못견디니까요. 그것은 상대방 을 위한 것이라기 보다 오히려 자신을 위한 것입니다. 자신이 먼저 손 내밀지 않으면 견딜수 없으니까요. 이렇게 무관심하고 냉 냉한 관계는 참을 수 없으니까요. 바로 자신을 위한 것입니다. 여기에서는 좀 본문의 배경 설명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사실 오늘 본문은 예물 조차 드리기 아까와 하는 이스라엘의 죄 에 대한 격렬한 고발이 주내용입니다.
22절부터 24절 까지는 '괴 롭게'라는 말이 여러 차례 등장합니다. 부르지도 않고 공경하지 도 않습니다. 말하자면 예배를 드리지도 않습니다. '아니하며'라는 말이 수차 반복됩니다. 죄짐과 악으로 오히려 하나님을 괴롭 게 하기 까지합니다. 무엇보다 제사를 드리지 않았습니다. 물론 형식적이고 외형적인 제사도 중요하지만, 내면과 마음으로 부터 의 제사를 외면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제사제도가 생명입니다. 제사의 제일 큰 목적은 죄의 고백과 사죄인데 이 죄의 고백이 없는 것입니다. 죽을 수밖에 없지요. 이런 괴씸한 죄를 논하다가 갑자기 맘을 180도로 돌려서, 나를 위하려 너희 이스라엘의 죄를 사하겠다고 일방적으로 선포합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의 최우선 관심사는 죄의 사함에 있습니다. 관계 회복에 있습니다. 그러니까 주님께서는 진심으로 우리의 죄 를 깨끗게 해 주시기를 열망하고 있습니다. 연인 끼리 싸우고 나 면 열망이 무엇입니까 빨리 화해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이게 없 으면 사랑이 없는 것입니다. 부부 간에도 그렇지요. 부부 싸움을 하고 그 불편함을 이기지 못해 빨리 화해 하는 것은, 아직 사랑 이 남았다는 증거입니다. 사랑하는 사이에는 관계 어그러짐이 생 기면 최우선 과제가 관계회복이 되는 것입니다. 주님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최우선 관심은 죄를 사해주는 것입니다. 관계를 회 복하는 것입니다. 잃었던 아담을 찾는 것입니다. 주님의 열망도 사랑하는 자녀들의 죄를 사해주는 것입니다. 관계회복입니다. 그리고 열망하는 것 만큼 주님은 실제로 죄를 도말해 줄 능력이 있습니다. 십자가에서 달리셨기 때문입니다. 열망은 있지만, 능 력이 없다면 그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공허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열망도 있고 실제로 그 열망을 해결할 능력도 있 으십니다. 물론 도말해 주시는 전제 조건은 물론 죄의 고백과 회개입니다. "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게 하실 것이요" (요일1:9)
조건은 죄 자백입니다. 효과는 모든 불의에 미칩니다. '사한 다'(아페)는 말은 책임해제의 뜻이 있습니다. 빚 탕감의 뜻도 있습니다. 다 '도말한다'는 뜻과 같습니다. 정의로운 하나님이 어 떻게 죄를 깨끗하게 무효화 시킬 수 있습니까 바로 죄의 자백이 있기 때문입니다. 죄의 자백은 피묻은 십자가의 보혈을 부르고, 십자가의 보혈은 우리를 깨끗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냥 싸구려 용서가 아닙니다. 뼈아픈 용서요, 값비싼 은총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의 붉은 가슴을 순백의 깨끗함으로 만들어 주십니다. 자 말씀의 선언에 귀기울여 보세요.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 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 지라도 양털 같이 되리라" (사1:18 ) 진홍, 주홍, 다홍은 모두 짙은 붉은색입니다. 핏빛 처럼 붉은 색깔도 순백의 흰눈 처럼 만들어 준다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보 혈은 핏빛이지만, 사해지는 그리스도인의 가슴은 순백이 됩니다. 마치 깨끗한 물은 세탁을 하면서 더러운 물로 바뀌지만, 옷은 깨 끗해 지는 것처럼 말이지요. "내가 네 허물을 빽빽한 구름의 사라짐 같이, 네 죄를 안개의 사라짐 같이 도말하였으니 너는 내게로 돌아오라 내가 너를 구속 하였음이니라" (사 44:22) 구름이 걷히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찬란한 태양과 푸른 창공 이 있습니다. 농무(濃霧)가 걷히면 산과 들은 선명하게 다가 옵니다. 모두 시각 언어입니다. 그러니 죄 사함 받은 우리 그리스도인들 은 시각의 이미지를 그리며 주님의 도말하시는 은혜를 누려야 합니다. 검붉은 색이 순백으로 바뀌었습니다. 먹구름과 짙은 안개 가 걷히고 푸른 하늘 맑은 산이 되었습니다. 이 사실을 그려봅시다. 우리 주님이 해 주셨습니다. 참으로 산뜻하고 상쾌한 날입니다. 이 고고한 자유를 이제 선포하고 누릴 때입니다. 순백의 깨 끗함과 푸르름을 가꾸고 누릴 때입니다.
2. 도말하신 다음에는 기억도 아니하십니다. 본문 25절에 보면 도말한 다음에는 기억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너의 죄를 나의 기억에서 말끔히 씻어 버리리라'(25절). 사실 도말하는 것 보다 더 큰 은총은 기억지도 않는 것입니다. 기억 조차 지워버린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장 큰 용서요 기쁨입니다. 기억하면 용서가 아닙니다. 인간 끼리도 그렇습니다. 기억하 면 용서를 하지 않는 것입니다. 기억에서부터 지워야 합니다. 잘 못한일, 섭섭하게 한일, 분노스럽게 한 일, 모두 지워버려야 합니다. 기억에서 조차 지워야 합니다. 사람들은 용서를 잘 하긴 합니다만, 고리를 걸어 둡니다. '내가 나에게 이런 은혜를 입었 지' 이렇게 속으로 평생 채권자의 심정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완전하고 깨끗하게 잊어버리십니다. 기억에 서 완전히 삭제 하신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심판 날에 가면 마귀 의 정죄 녹화 테이프에는 우리의 전과기록은 완전히 말소되어 있습니다. 녹화 테이프가 문제가 아니라 우리 주님의 기억 테이프 에서도 완전히 삭제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담대할 수 있습니다. 의기소침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 정도의 보장을 해 주었는 대도 새출발을 할 수 없다면 그것은 순전히 우리의 책임입니다. 다시 시작하기에 거리낌이 없을 정도로 담대해야 합니다. 기 쁜일입니다. 이것은 순전히 복음입니다. 히8:12 "내가 저희 불의를 긍휼히 여기고 저희 죄를 다시 기억 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10:17 "저희 죄와 저희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 도말의 강도는 어느 정도입니까. 기억도 아니하는 것입니다. 담 대하십시다. 나의 죄는 다 없어졌다. 흔적도 남지 않았다. 하나님도 기억에서 지웠는 데 내가 기억할 필요는 없습니다.
3. 깨끗하게 새 출발해야 합니다. 이것은 특권이기도 하고 명령이기도 합니다. 이제 남은 것은 새 출발하는 것 뿐입니다. 과거에 얽매일 필요는 없습니다. 이제는 앞만 있을 뿐입니다. '내가 그리스도께 잡힌 바된 그것을 잡으려 고 아 가노라'입니다. 과거에 너무 얽매어서 정죄에 얽매어서 앞으로 나아가는 데 장애가 된다면 그것은 악의 세력이 기뻐할 뿐입니다. 마귀의 일은 기억나게 하는 것입니다. 죄의 짐은 사람을 무기 력하게 만듭니다. 의욕을 꺽습니다. 자꾸 뒤를 돌아보게 합니다. 불안하게 합니다. 비겁하게 만들고 산만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인 여러분은 도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의지해서 지워 버리세요. 잊어 버리세요. 다시 시작한다는 것은 얼마나 감 격스러운 일입니까 세상은 전과자에게 가혹합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전과자인 여러분에게 한번도 홀대를 한적이 없습니다. 언제 우리 주님이 진정으로 참회하는 자에게 새날을 주시지 않은 적이 있습니까 과거의 전과는 없습니다. 과거의 오점도 없습니다. 과거의 기록 도 없습니다.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용서된 새날이 있을 뿐입니다. 회개하고 참회하는 하나님의 아들 딸에게 오는 최대의 축복 입니다. 이것이 복음이요, 참으로 기쁜 소식입니다. 이 사실을 마음 껏 누리세요. 여러분의 삶이 달라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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