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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의 성탄절 (눅2,8-14)

본문

예수님의 탄생 기사는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나타나 있는데 그 기사는 뚜렷하게 대조가 되는 것을 볼 수가 있다. 마태복음은 예수님을 왕으로 묘사했기 때문에 “유대인의 왕으로 오신 이가 어디 계시뇨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고 찾아온 동방 박사의 기사를 적은 것은 마태복음은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은 유대인의 왕으로 오신 분이라는 사실을 알리려 함이었기 때문이다. 누가복음은 헬라인을 대상으로 의사 누가가 전한 복음서인데 예수님의 인성을 강조하여 나타낸 기록이 많다. 눅2장 초두에 보면 나사렛에서 살던 요셉과 마리아가 로마정부의 호적령에 따라 그의 본적지인 유대 베들레헴에 왔으나 여관을 잡지 못하고 방 한 칸도 얻지 못한 채 갓난 아기를 외양간의 구유에 누이게 된 일이라든지, 미천하고 소박한 밤중에 밖에서 자기 양 떼를 지키던 목자들이 천사들의 알려 주는 구주 탄생의 기쁜 소식을 듣고,아기에게 경배하기 위해서 달려온 일은 마태복음의 기사와는 대조적이다.
9절-10절을 보면 “주의 천사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저희를 두루 비취매 크게 무서워 하는지라.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했다.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렇게 외견상 초라하고 볼 품이 없으나,실상은 이렇게 아름답고 장엄한 사건이다. 강보에 누이셨으나 그 분이야 말로 그리스도 주시라고 말하였다. 그 뿐이 아니라,“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고 했다. 그리스도로 오신 아기는 상아 침상,비단 요와 이부자리에 싸여 계시지 않으시다는 말씀이다. 또한 “홀연히 허다한 천군이 그 천사와 함께 있어 여호와 하나님을 찬송하여 가로되,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고 했다. ‘하늘에서는 영광’,‘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라고 했다. 이 기쁨의 소식과 찬송을 들은 소박한 천사들은 발걸음을 빨리하여 베들레헴에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를 찾아 보았는데,이 목자들은 이 사실이 천사들이 말한대로 이루어진 것을 알고 하나님을 찬송하며,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탄생을 맨 처음 전파하는 최초의 증인이 된 것이다.
그런데 왜 만왕의 왕이신 그 분께서 구유에 누여서 초라한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을까 이것이 우리 눈에 기이한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가난해 지시고 고난을 당하심은 우리에게 영원한 하늘 나라의 부요를 안겨 주시고,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놓아 주시려 함이다. 언제나 성탄절이 되면 온 세게가 떠들석하고 시끄럽다. 술집에서 장사집에서 성탄절을 더 찾을 정도로 성탄절이 온 세계의 축제가 되었으나, 이것이 오히려 복음에는 대적이 되는 일이되었다. 그리스도의 오심을 축하하는 척하면서 마귀는 자기 수입을 보려고 한다. 마치 이 세상의 스타로 오신 것 같이,유흥을 위해서 오신 것 같이 떠들고,시끄럽게 성탄을 만들어 버렸으니 여기에 미혹하는 마귀의 장난이 있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우리들은 그리스도의 세상에 오심의 참된 의미를 깨닫고 알므로 경건하게 거룩하게 성탄에 기뻐하고 축하를 해야 한다. 우리 주님의 오심이 우리에게 무엇 때문에 온 세상에 미칠 큰 소식이며,기쁘고,좋은 소식이 되는가
첫째로,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우리들이 죄와 사망과 마귀에게 일생 종 노릇하던 삶에서 자유와 해방을 누리게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시기 위해서 주님께서 오셨고,고난을 받으셨고,죽으셨다. 우리 인생에게 가장 급하고 중요한 문제가 무엇인가 빵 문제가 제일 급한것 같고,중요한 것 같이 생각을 한다. 언제 부터인가 우리나라에도 모든 문제를 경제적인 측면에서 맞추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문화도 도덕도 교육도 말들은 하지만 항상 결론적으로 중요한 것은 경제이다. 모든 것이 돈이면 되는 것으로 생각을 한다. 물질 만능의 세계가 되었다. 그러나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고 하셨다. 우리 인생이 덮고 가려 놓아서 그렇지 가장 큰 문제는 죄의 문제이다. 사람이 못살고 불행해 지는 것은 죄가 그 원인이다. 죄가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끊어 놓고,인간과 인간 사이도 끊어 놓았다. 모든 사망의 원인이 죄에 있다. 죄의 값은 사망이라고 성경에 말씀하셨으니,인생에게 이 죄와 사망의 문제가 가장 급하고 중요한 문제이다. 이것을 해결 하시기 위해서 즉, 인생에게 죄의 결박에서 놓아 주시고,영원한 죽음에서 자유를 주시기 위해서 다시 말해 우리를 구원하시는 구원운동을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다. ‘예수’라는 말의 뜻이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라는 뜻이다. 인간 스스로는 이 죄의 종이 되었기 때문에 해결 할 수가 없기 때문에 주님이 이 세상에 오신 것이다. 인류의 구원의 길은 오직 예수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종된 우리가 원하고 원하던 자유와 해방을 얻게 하실 분이 오셨는데 이 분이 예수 그리스도인데 깨달으면 이 분을 기뻐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또한,
둘째로 우리의 의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위해서 오셨다. 우리 인류 시조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에게 모든 은총을 받고서 하나님께 순종하여 살아야 하는데 하나님께 거역하고,불순종하므로 우리가 멸망하게 되었다. 또 우리들도 부패성,악성을 가지고 있어서 어떻게 하든지 하나님의 뜻을 불순종하는 걸음을 걸게 된 우리를 의롭게 하시기 위해서 주님께서 전적으로 하나님께 순종하셨다. 마지막에 십자가에 죽기까지 온전히 순종하셔서 우리에게 입힐 의를 만들어 주셨다. 우리들은 이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의롭다하심을 입게 되었으니 이는 우리의 의가 아니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입혀 주셔서 의인이라고 불러 주시는 칭의이다.
셋째로,우리에게 새 생명의 길을 열어 놓으셨다. 범죄함으로 말미암아 에덴 동산은 화염검으로 지키게 되었고 아무도 생명의 과실을 따 먹지 못했다. 그러나 주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그 길을 여셨는데 휘장 사이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그 휘장은 저의 육체니라(히브리서) 하셨는데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찢기심으로 인간과 하나님의 사이의 불목의 담인 휘장이 열리게 되었다. 이것이 우리 인생에게 새 생명의 길이 열리게 된 것이다.
넷째로 마태는 예수님의 탄생은 우연이 아니라 오래 전에 선지자들로 예언하신 것이 이루어졌음을 말했는데,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인용하여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일르 번역한 즉,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이것이야 말로 성탄의 궁극적 목적이다. 범죄로 인하여 잃어버린 하나님을 다시 찾아 우리의 하나님이 되게 한다는 이것이 인류의 최대의 행복이 아니겠는가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공의로 보시기 때문에 우리와 함께하실 수 없다. 그러나 이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이 화목제물이 되어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막힌 담이 완전히 무너지고,모든 진노와 심판은 주님께서 담당하시고 중보자 되셔서 우리는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로 다시 모시게 되었으니 이 얼마나 감격한 일인가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의 공로가 너무나 크기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이 변하여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된 것이다. 임마누엘로 오신 하나님께서 성령님으로 이제 우리 안에 계시고 지금도 우리와 함께 하시면서 우리를 보호하시고 인도하시고 위로하신다. 그의 성령님의 크신 능력을 힘 입어서 우리의 죄성과 싸워서 이기고,우리에게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지게 하신다. 이렇게 우리에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우리의 기쁨이요,즐거움이 된다. 이 위대하고 크신 은혜와 축복을 가지고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가 기뻐하고 즐거워함이 마땅하다.
만일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오신 이 성탄이 없었다고 하면 어떻게 되었을까 세상은 어떻게 되었으며,우리는 어떻게 될 뻔했는가 우리가 여전히 죄 가운데,사망 가운데 있었을 것 아닌가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중에 이 성탄 보다 더 크고,기뻐하고 좋은 소식은 없을 것이다. 우리가 어떻게 이 성탄을 보낼 것인가 주님의 오심을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좋아해야하고 감사를 돌려야 한다. 그러나 더욱 더 뜻 깊은 성탄이 되려면 주님의 오신 목적을 알고 우리도 하나님의 크신 뜻을 받들어 우리도 예수님과 같이 사람을 구원하는 이 일에 힘써야 한다. 이것 보다 더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없고,성탄을 뜻 깊게 보내는 것이 없을 것이다. 이래서 성탄에 잔치도 하고 구제도 하는 것은 그들에게 이 기쁨을 전해서 그들도 이 소식을 듣고 주님을 구주로 영접하여 경배하는 사람들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우리들이 바로 성탄의 의미를 깨달아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이번 성탄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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