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의 열매 (약1:1-8)
본문
골프의 보편화, 생활화를 행정지침으로 시달하셨다는 그런 뉴스를 우리가 접했습니다. 아마도 그 배경에는 박세리라든지 수퍼 땅콩 김미현이런 여류 골퍼들의 활약이 우리 사회의 사회적 변화를 유도한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저는 골프에 문외한입니다. 골프장에 가본 적이 있습니다. 골프장 식당에 식사하러 따라간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골프를 잘 모르는데요. 요즘 이런 사회적 변화 때문에 여류 골퍼들이 골프하는 게임을 시청해본 적이 몇 번 있습니다. 저는 그전까지 골프를 생각할 때 막연히 끝없이 펼쳐진 푸른 초원에 골프 가방을 메고 아주 낭만적으로 걸어다니면서 하는 스트레스 없는, 스트레스를 이길 수 있는 그런 아주 낭만적 게임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했는데요. 실제로 그 게임을 시청하면서 좀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이 골프하는 사람도 스트레스가 많겠구나.
왜냐하면 공이 물 속으로 쳐 박히기도 하고 모래 벙커 속으로 들어가기도 하는 그런 광경들을 봅니다. 다시 그 물 속에서, 모래 속에서 탈출해서 목표 지점으로 근접시키기 위한 안타까운 그 노력하는 그 모습들을 우리가 지켜봅니다. 저는 그 광경을 보면서 나는 골프 칠 마음 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치 않아도 인생에 스트레스가 많은데 골프 치면서 또 스트레스를 경험해야 한다면 뭐 하러 치겠는가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골프를 좋아하는 이유, 아마도 골프가 인생을 닮은 어떤 구석이 있기 때문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합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다 보면 어느 날 갑자기 물 속으로 쳐 박히고 또 모래 속으로 곤두박질하는 그런 경험을 갖게 됩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야고보서 1장 2절에 보시면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여기서 여러 가지 시험이란 단어가 나옵니다. 여러 가지라는 단어는 본래 원문에는 여러 가지 색깔에, 다양한 색깔에 그런 뜻입니다. 여러 가지 색깔의 시험, 우리 인생을 살면서 형형색색의 시험, 여러 가지 종류의 시험들을 우리가 경험하게 됩니다. 우리가 경험하는 시험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그러나 시험이 없는 인생은 아무도 없습니다. 여기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이라는 단어가 본래 원문에서는 여러 가지 시험에 떨어지거든 영어 성경에는 'fall' 이라는 단어가 쓰여졌어요. 여러 가지 시험에 떨어지거든
그런데 그냥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갑작스럽게 떨어지거든 이런 뜻입니다. 여러 가지 시험에 갑작스럽게 떨어지거든 또 떨어진다는 말이 만일 여러분이 시험에 떨어지면 이라는 어떤 가정법의 상황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if' 라는 단어가 없어요. 이것이 영어 성경 번역에 보시면 'when' 이라는 단어가 쓰여있습니다. 그 시험을 만날 때. 그러니까 시험을 당하느냐 안 당하느냐 그런 얘기가 아닙니다. 시험을 안 당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시험은 옵션이 아닙니다. 누구나 인생을 살면서 시험을 반드시 통과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 시험을 어떻게 통과하느냐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은 우리에게 가르치기를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기쁘게 여기라,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 말씀 앞에 우리 안에서 일어나는 즉각적인 어떤 반응은 무엇입니까 어떻게 그것이 가능해요 시험은 아프고 고통스런 것인데 어떻게 우리가 온전한 기쁨으로 시험을 맞이할 수가 있겠습니까 결론적으로 말씀 드리면 이것은 인위적으로는 불가능한 응답입니다. 인위적으로는 그렇게 기쁘게 응답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갈라디아서 5장 22절에 보시면 바울 사도는 성령님의 열매를 말하면서 성령님의 열매는 첫째 사랑 둘째는 희락, 기쁨이예요. 성령님의 열매 가운데 희락, 기쁨의 열매가 있습니다. 이것이 성령님의 열매라고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환난 중에도 시험 속에서도 기뻐할 수 있다면 이것은 우리 자신의 자연스런 충동적 반응으로는 불가능하고 그것은 성령님의 역사에 의해서만 가능할 수 있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로마서 5장 3절에 보시면 바울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환난 중에도 즐거워할 수 있는 거예요.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환난은 인내를 낳고 그 다음에 인내는 연단을 낳고 연단은 소망을 이루게 할 줄 앎이라. 다시 말해서 환난 중에도 우리가 기뻐할 수 있는 이유는 우리가 그 환난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마지막 어떤 소망을 성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계속되는 말씀 로마서 5장 5절에서 보면 "이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사랑이 부은바 됨이니" 이렇게 성경은 기록합니다. 다시 말하면 성령님의 역사를 통해서 우리는 환난 속에서도 환난이 가져올 궁극적인 어떤 소망을 기대할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소망을 바라보는 사람마다 환난은 아프지만 여전히 환난을 극복하는 어떤 기쁨과 즐거움의 태도를 가지고 환난을 돌파해 나갈 수가 있다고 성경은 가르칩니다. 유대인으로서 나치 독일의 히틀러의 핍박 아래서 잔인한 고통을 당했던 유명한 세계적인 심리학자 빅터 프랭클 박사는 그가 나치의 고문을 받고 그 감옥소에서 그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받으면서도 한결같은 마음에 평정의 자세, 또 인간다움의 태도를 잃어버리지 않고 그가 그 감옥 생활을 잘 견뎌냈던 그 비밀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감옥에서 나온 후에 받았을 때 프랭클 박사는 이런 대답을 남겼습니다. 그것은 나의 고난이 장차 가져올 나의 삶에 어떤 유익이 있겠는가를 저는 줄기차게 묵상했습니다. 저는 그것을 기도했습니다. 신이여, 내가 이 시험과 고통의 시간이 지났을 때 그것이 나의 삶에 어떤 유익이 될 수가 있겠습니까 그리고 이것 때문에 내가 변할 수 있었던 내 삶의 모습, 그리고 이 고통을 견디는 삶의 의미, 희망의 문제 이런 것들을 묵상하고 이것을 통해서 전세계 사람들에게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을 계속 묵상했고 이런 희망이 나로 하여금 이런 고통을 견딜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시험 중에도 기뻐할 수 있다면 그것은 시험의 유익을 묵상할 때 가능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시험은 우리에게 어떤 유익을 줄 수가 있을까요 시험이 주는 유익은 무엇일까요
첫째로 그것은 시험은 우리를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한다는 사실입니다. 시험은 우리를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합니다. 자, 오늘 본문의 야고보서 1장 3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그런데 2절에서는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이 시험이란 단어가 나왔습니다. 3절에는 이 시험을 다른 말로 표현한 것이예요. 이것은 믿음의 시련이다. 시련과 시험은 다릅니다. 그러나 시련이라는 단어가 시험의 성격을 설명합니다. 크리스챤이 받는 시험 하나님의 백성들이 경험하는 시험은 믿음의 시련이라는 것입니다. 이 시련이라는 단어를 다른 말로 말하면 테스트라는 말입니다. 믿음의 테스트. 시험은 믿음의 테스트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다 학교생활에 추억과 경험이 있습니다. 학교 다니실 때 혹시 여러분 가운데 시험을 enjoy하고 즐기신 분이 계십니까 혹시 그런 이상한 다른 나라에서 오신 어떤 위성에서 오신 분이 혹시 계실지 모르겠습니다마는 아무도 시험을 enjoy 하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시험이 불필요하다고 주장하는 분이 혹시 계십니까 시험을 아무도 enjoy 하지 못하지만 시험은 필요한 것이죠. 왜냐면 시험을 통해서 우리는 자기의 실력을 평가합니다.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나에게 어디가 부족한 것인가를 알게 됩니다. 그래서 시험을 치를 때마다 실력이 향상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그리스도인들의 인생 속에 시험을 허용하신 이유는 그 시험을 통과할 때마다 믿음의 실력이 증가할 것을 하나님은 기대하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시련은 시험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있어서는 피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을 때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고귀한 선물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믿음의 선물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에베소서 2장 8절에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선물이라 " 우리가 구원을 하나님의 선물이라고도 말할 수가 있지마는 문법적으로 이 구절을 좀더 깊이 들여다보면 믿음이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말이예요. 믿음이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자, 우리가 우리의 죄를 깨닫고 십자가 앞에 온 순간 예수님을 바라보는 순간 우리 안에는 진정한 믿음이 주어졌습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 주어진 믿음은 아직은 테스트를 거치지 않은 믿음일 수가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좀더 견고한 믿음이 되고 우리의 믿음이 강력한 믿음이 되고 우리의 믿음이 건강한 믿음이 되고 우리의 믿음이 성숙한 믿음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의 믿음은 반드시 테스트에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에게 시험을 허용하십니다. 그런 의미에서 1세기에 살던 그리스도인들도 시험을 겪었던 것입니다.
오늘 야고보서 1장 1절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는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에게 문안하노라" 그 당시의 하나님의 백성을 흩어진 열두 지파 이런 표현으로 설명했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역사적으로 주어진 별명 가운데 하나로 유대인들을 가리켜서 디아스포라의 민족이다 이렇게 부릅니다. 흩어져 있는 백성.
그런데 이 말은 유대인들이 어쩌다가 운명적으로 그들이 세계 여러 나라에 단순히 흩어졌다라는 지리적인 흩어짐만을 뜻하는 표현이 아닙니다. 이것은 그들이 고난을 위해서 흩어져있다는 의미를 내포합니다. 흩어져 고난 받고있는 주의 백성들. 왜 하나님은 그들에게 이런 시험을 허용하셨을까요 성경은 오늘 그것이 믿음의 테스트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야고보서 1장을 읽다가 신약 성경의 다른 서신서 하나를 읽어보면 그 출발 구조가 거의 야고보서 1장과 비슷한 것이 또 하나 있어요. 그것이 베드로 전서입니다. 야고보서 1장 1절이 흩어진 열두 지파에게 문안하노라 이렇게 시작되는 것처럼 베드로 전서 1장 1절도 흩어진 나그네들에게 편지한다 이렇게 시작이 됩니다. 그리고 베드로전서 1장 6절에 보시면 "그러므로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기뻐한다."
그 다음에 베드로전서 1장 7절에 보시면 "너희 믿음의 시련이" 거기도 믿음의 시련이라는 말이 나와요. "믿음의 테스트가,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존귀와 영광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왜 시험을 허용하시는가 그 시험을 통과했을 때 마치 불을 통과한 금이 더 아름다운 금으로 재련되는 것처럼 우리 믿음이 보배롭고 더 순결하고 더 아름다운 믿음으로 나타나 주님 오시는 날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받을 수 있도록 주님은 반드시 우리의 믿음을 시험하신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백성, 믿음의 사람들이 받는 시험에 대해서 좀 더 알아보기를 원하면 우리 믿음의 원조를 생각해 보십시다. 믿음의 조상, 믿음의 원조 할아버지 누구죠 네, 아브라함입니다. 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셨을 때 그를 선택하고 부르시면서 그를 축복합니다. 내가 너를 축복한다. 네 이름은 위대하게 될 것이다. 너는 복의 근원이 될 것이다. 천하만민이 너를 복되다고 할 것이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약속 받은 축복의 포인트는 어디 있느냐 하면 자손이예요. 자손. 네 자손이 하늘이 별처럼 바닷가의 모래알처럼 될 것이다.
그런데 아직도 아브라함은 자식이 한 개도 없었어요. 아직. 근데 아브라함이 자식을 쉽게 얻었습니까 쉽게 얻지 못했습니까 쉽게 얻지 못했지요. 하나님이 약속은 해 놓고 자식이 오질 않아요. 그러니 얼마나 딜레마예요. 자, 백살이 가까워지도록 아직도 자식 소식이 없습니다. 그러다가 드디어 자식을 얻었습니다. 기적의 아들, 이삭. 자, 이 아들을 얻었을 때 아브라함이 얼마나 흥분을 했을까요 이삭을 바라 볼 때마다 너는 기적의 아들이다. 아브라함의 기쁨이요, 아브라함의 자랑이요, 아브라함의 모든 것이 그 아들에게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기적적으로 얻은 아들, 그 후에도 이 아들의 성장 과정이 평탄했습니까 어느 날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 때문에 기뻐하고 enjoy하는데 이삭에 아버지 아브라함이 빠져있었을지도 모르지요.
그런데 성경에 보시면 창세기에 보시면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테스트하시려고 시험하시려고.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시기를 네 아들 독자 이삭을 바쳐라. 모리아 산상에서 제물로 바쳐라. 죽여라 이 말이예요. 얼마나 딜레마예요. 하나님, 죽이자면 왜 주셨습니까 얼마나 고민을, 고민이 아니라 괴민을 했을까요 아주 고민을 했을거예요.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심각한 번뇌의 밤, 깊은 고뇌와 그리고 방황 끝에 드디어 아브라함이 결단을 합니다. 어떤 마음으로 결단을 했을까요 하나님이 주셨는데 하나님이 다른 계획이 있는 모양이지 다른 자식을 주실까 아니면 이 아들을 데려 가셨다가 또 주시지 않을까 어쨌든 하나님이 주신 하나님이 달라 그러니까 하나님을 믿어야지. 드디어 하나님의 주권을 설명할 수 없는 상식을 뛰어난 자기의 고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신뢰하기로 결단하고 사랑하는 아들을 그 모리아의 제단에 올려 놓는 그 순간, 하나님이 스톱. 내가 네 마음을 알았어. 시험 끝이야. 시험은 끝이다. 그리고 내가 너를 위해서 다른 것을 예비했다. 여호와 이레 하나님이 다른 제물을 준비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 왜 이렇게 아들을 약속해 놓고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힘들게 만드십니까 그러나 이런 과정을 통해서 한 가지 중요한 것이 뭐예요 아브라함의 믿음이 성숙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예요.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 내 상식과 그리고 내 이성을 초월해서 생명의 근원이요, 창조주요, 그리고 역사의 섭리자이신 그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을 배워가는 것 아브라함의 믿음을 더 순전하게 더 깊이 있게 더 영광스럽게 만들기 위해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분명히 테스트하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본문 야고보서 1장 6절에도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다" 믿음의 사람, 그렇습니다. 시험을 통해서 내 믿음이 순결해지고, 내 믿음이 아름다워지고 내 믿음이 더 강력해지고, 또 내 믿음이 더 고상하게 성숙할 수가 있다면 사랑하시는 여러분, 시험은 아픈 것이지만 이 시험이 나를 믿음의 사람으로 만들 것이다. 우리는 시험 중에 고통하고 눈물을 흘리면서도 조용히 어쩌면 우리는 이렇게 웃을 수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 맞아. 나는 이 시험 속에서 믿음의 사람이 될거야. 그리고 우리는 아직도 기뻐할 수가 있습니다. 시험의 유익이 무엇일까요둘째로 시험은 우리를 인내의 사람이 되게 합니다. 시험은 우리로 하여금 인내의 사람이 되게 합니다.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할 뿐만 아니라둘째로 인내의 사람이 되게 할 것입니다. 여러분, 시험이 오면 많은 사람들이 제일 많이 하는 일이 뭘까요 시험이 오게되면 많은 사람들이 많이 하는 일이 뭘까요 기도해요 기도하는 사람은 조금있어요. 그렇게 많지 않아요. 불평하고 원망하는 일도 많이 하고 그러나 더 많은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하는 것은 참는 것입니다. 참는 것입니다. 때때로 많은 경우에 우리는 견디는 일 밖에는 할 일이 없어요, 아무 것도. 견뎌야 되요.
그런데 하나님이 그것을 요구하십니다. 시험 속에서 인내를 요구하십니다.
자, 본문의 4절을 읽어보시지요. 야고보서 1장 4절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시험 속에서 인내를 성취하라. 본래 인내라는 단어는 희랍어에서 두 개의 단어가 결합된 단어입니다. 휘포 메네. 휘포란 단어와 메네. 휘포는 전치사인데 무엇무엇 아래서. 메네는 머문다. 'remain under' 무엇무엇 아래 머문다. 프레셔 아래서 압력아래서 고통 아래서 정말 어려운 환경 아래서 우리가 계속 머물러 있다. 성실하게 머물러 있다. 그 압력에도 불구하고 그 고통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우리를 억압하는 그 상황의 고통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계속 성실하게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인내예요.
그런데 대개의 경우에 사람들이 인내합니까 인내하지 못하죠. 우리는 참지 못하죠. 참지 못하고 어떻게 합니까 무언가를 좀 해봐야지. 서두르다가 우리는 일을 그르치고 그리고 더 큰 고통, 더 큰 재앙을 초래하는 경우들이 얼마나 많은지요. 아브라함의 경우를 생각해 보십시다. 여러분, 아브라함도 자식을 주신다고 하셨는데 자식이 안 와요. 끝까지 참았습니까 아브라함도 참지 못했던 순간이 있었습니까 혹시 성경 보셨어요 아브라함도 참지 못했어요. 참지 못하고 어떻게 합니까 자, 이제는 생산 능력도 다 없어져가고 성경에 보시면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의 경수도 끊어졌고, 이제 낳을 가능성이 없어졌다는 말이죠. 그러니까 어떻게요. 만가지 생각이 있었겠죠. 자기 합리화의 생각도 있었을 거예요. 하나님이 주신다고 약속을 했지만 꼭 뭐 원조 부인을 통해서 낳으라는 약속이 어디있는냐 그래서 어떻게 했어요. 자기 부인 말고 하갈이라는 자기 계집종, 메이드를 통해서 아들을 낳았어요. 그 아들이 바로 누굽니까 이스마엘이예요.
열심히 자기가 꾀를 써서 낳은 것이죠. 그러나 그 낳은 이스마엘과 하나님의 때가 찼을 때 부인 사라를 통해서 자연스럽게 얻어진 하나님이 진짜 주신 아들 이삭, 이삭과 이스마엘 사이에 얼마나 길고 긴 고통이 계속 됩니까 오늘도 계속되고 있는 아랍민족과 이스라엘의 역사적 갈등의 시초가 바로 그것입니다. 이것이 다 참지 못해서 그래요. 기다리지 못해서. 히브리 사람들의 읽는 그 이야기들의 콜렉션, 스토리 콜렉션집을 내가 읽어본 적이 있었습니다. 민화집인데 거기에 이런 얘기가 나오더라구요. 어느 날 아브라함이 그 저녁 무렵 텐트 바깥에 나와서 이렇게 앉아 있는데, 저기서 80세 가량 되어 보이는 노인이 터벅터벅 찔뚝거리면서 걸어옵니다. 피곤한 표정, 남루한 옷차림, 거지에 가까운 옷차림이었습니다. 배고파 보였습니다. 얼굴은 아주 찌들린 모습이었습니다. 이 80세 된 노인이 아브라함 한테 오더니 나 이 텐트에서, 장막에서 하루 밤 쉬어 갈 수가 있겠소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사람이라 그러세요 들어오세요. 저희 장막에서 쉬어 가시죠. 그리고 이 노인장의 발을 정성스럽게 물로 씻겨 주었습니다. 그리고 식사를 준비해서 식사를 드시지요.
그런데 이 노인이 기도를 안하고 들어요. 순간적으로 아브라함이 열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노인보고 하나님께 기도도 하고 감사도 하고 좀 식사를 하시죠 그러니까 이 노인이 '신이요 나에게는 음식이 신이요.' 이 말을 듣자 아브라함이 진짜 열 받았어요. 노인장, 나는 노인장 같은 노인은 우리 집에서 모시고 싶지 않소. 그리고 쫓아내 버렸어요. 그날 밤 아브라함이 자는데 하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네, 하나님. 오늘 저녁에 너희 집에 손님이 왔지 네, 그랬었습니다. 왜 쫓아냈니 아, 하나님도 보셨군요. 아시쟎아요 하나님을 모독하고, 음식이 신이라고 그러는데 제가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냥 쫓아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시길 아브라함아 나는 말이야. 그 노인에게 80년이나 참았는데. 너는 말이야, 하루 저녁, 그리고 한 시간도 참을 수가 없었더냐 나는 80년이나 참았는데 너는 하루 저녁, 한 시간도 그 노인에게 참을 수가 없었더냐 이건 성경에 나오는 얘기는 아닙니다. 성경에서 찾아 보실려고 하면 안되요.
그런데 성경에 이런 말이 있어요.
히브리서 6장 13절 이하에 보시면 하나님이 아브라함하고 약속을 하실 때, 하나님이 약속하실 때 맹세하실 때 자기보다 더 높은 권위가 없기 때문에 스스로의 이름을 걸고 약속하시면서 축복하시기를 히브리서 6장 14절에 "내가 반드시 너를 복주고 복주고 너를 번성하게 하리라". 그 다음에 히브리서 6장 15절에 보시면 이런 말씀이 있어요. 따라서 읽으세요. 저가 여기서 저라는 것은 아브라함인데요, 다시 "저가 이같이 오래 참아 약속을 받았느니라." 자, 아브라함도 참지 못했던 순간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실패의 경험을 통해서 마침내 참는 것의 중요성을 배웠습니다. 아브라함도 마침내 오래 참아 하나님의 약속을 받을 수가 있었다. 즉, 오래 참음의 교훈을 아브라함이 받을 수가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 성경은 하나님을 가리켜서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실로 견디기 어려운 상황 속에서 견디고 오래 참을 때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의 인격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것을 기대하는 것입니다. 다시 읽어보시면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인내를 이룰 때 이것이 바로 인격의 완성이라고. 우리 인격의 성숙에 가장 중요한 요소가 바로 인내를 이루어 가는 것이라고 오늘 성경은 가르칩니다.
그렇다면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인내할 줄 아는 사람, 오래 참을 줄 아는 사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그 사람 되기 위하여 나에게 견디기 어려운 이 시험을 허용하셨다면 시험은 아프지만, 시험은 고통스런 것이지만 이것이 나에게 이런 인격적인 성숙과 온전함을 줄 수가 있다면 시험의 회오리, 폭풍우 속에서도 우리는 조용히 이렇게 말할 수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아파요. 그러나 알겠어요. 기뻐할께요'. 이것이 기쁨의 열매인 것입니다. 자, 시험이 주는 유익이 또 하나 있습니다. 시험은 어떤 유익을 줄 수 있는가 세 번째로 시험은 우리를 지혜의 사람이 되게 합니다. 시험은 우리를 지혜의 사람이 되게 합니다. 여러분, 시험 치르기를 싫어하는 학생치고 똑똑한 학생이 될 수가 있을까요 자, 시험이 오면 어떤 학생이 시험지를 앞에 놓고 시험이 올 때 그리스도인들이라면 기도하는 것을 생각해 볼 것입니다. 그리고 기도하셔야 합니다. 자, 그러면 시험을 앞에 놓고 시험을 치르면서 우리는 어떤 기도를 하게 될까요 제일 바람직하지 못한 것 이런 기도를 한다면 이것은 바람직하지 못합니다. 시험지를 앞에 놓고 이렇게 기도하는 학생을 상상해 보세요. 하나님, 이 시험 안치르게 도와주세요. 시험은 안치를 수 없는 것이예요. 시험은 빠져나갈 수 없는 것이예요. 시험은 통과해야 합니다. 자, 센스가 있는 학생이라면 그 시험지 앞에서 어떤 기도를 할까요 하나님, 이 시험 잘 치르게 도와주세요.
그런데 잘 치르려면 제일 중요한 것이 뭘까요 지혜입니다. 하나님, 지혜를 주세요. 그래서 잘 치를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그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자, 5절 다 같이 읽겠습니다. 야고보서 1장 5절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지혜를 구하면 하나님이 좋아하신다는 겁니다. 무지무지하게 좋아하신다는 겁니다. 그래서 후히 주신다는 거예요. 사랑하시는 여러분, 지혜를 구했다가 너무너무 수지 맞았던 사람 생각나는 사람 있어요 솔로몬. 네가 한가지만 구해보라. 이 한 가지만 구해 보라 그러니까 뭘 구할까요 한가지. 아파트 당첨권. 수지 2차. 하나만 구한다면 뭘 구할까요 하나만 구한다면 그 때 솔로몬은 지혜를 구했습니다. 하나님, 지혜를 주십시오. 그래서 이 백성을 잘 다스리고 싶어요. 이 백성을 겸허하게 잘 섬기고 싶어요. 하나님이 너무너무 기뻐하셔서., 그래 너는 지혜만 줄 것이 아니라 다른 것도 준다. 명성도 권위도 네 삶의 평안함도 내가 다 주겠다. 그렇게 하나님은 지혜를 기뻐하셨습니다. 지혜란 무엇입니까 저는 지혜는 지식과 다르다고 생각해요. 지식은 책에서 얻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혜는 책에서 얻을 수가 없어요. 지혜는 삶을 통해 얻습니다. 지혜는 일종의 판단력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경험을 통해서만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다 경험하지 않아도 올바른 판단력, 올바른 센스를 가지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고 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뿐만 아니라 이웃들에게 나 자신에게 함께 유익이 될 수 있는 삶의 정확하고도 올바른 판단력을 실행할 수 있는 지혜, 이 지혜는 얼마나 존귀한 것입니까 그래서 이 지혜를 가진다면 우리는 이 환난과 고통을 잘 통과할 뿐만 아니라 통과한 후에 더욱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 주님 앞에 서 있을 수가 있다는 사실. 하나님은 초대 그리스도인들에게 그것을 기대한 것 같아요. 사실 야고보서를 쓴 사람이 아마도 예수님의 동생인 야고보였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육신의 동생 야고보, 이 사람의 역사를 들추어보면 이 사람은 처음에는 자기 형님이었던 예수님에 관해서 다소간 불신을 가지고 있다가 나중에 진실한 신자가 됩니다. 훌륭한 신자가 됩니다. 초대 교회의 훌륭한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근데 그는 기도를 많이 했던 사람으로 유명해요. 그래서 나중에 교회의 사가들은 그에게 별명을 하나 붙여 주었는데 낙타의 무릎을 가지 사나이. 그는 기도를 많이 했던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는 기도를 통해서 그는 아주 지혜로운 사람이 되었고 예루살렘 교회의 감독으로서 모든 사람에게 존경을 받는 아름다운 리더쉽을 발휘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야고보서 1장 1절에도 어느 정도 이 사람의 지혜를 볼 수가 있습니다. 이 사람이 예수님의 동생이니까, 지혜가 없었다면 나 예수님의 동생이라고 폼잡고 다녔을 거예요. 그러나 야고보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뭐라고 그랬습니까 종 야고보는. 예수님의 동생이라고 말하지 않고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는 많은 환난을 겪었습니다. 환난 시대의 교회를 리드했습니다. 그는 나중에 순교자가 됩니다. 그러나 그는 아주 영광스럽고 존경받는 순교자로서 일생을 아름답게 마무리지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는 지혜의 사람이었습니다. 기도가 이 사람에게 지혜를 주었다고 생각을 해요. 제가 미국 살 때 이렇게 운전하고 가다보니까 범퍼 스티카 미국 사람들 자동차 뒤에다 뭐 많이 써 붙이고 다니는데 범퍼 스티카 가운데 이런 스티카가 하나 있더라구요. 'When life hands you a lemon' 인생이 너에게 레몬을 주거든, 레몬은 시고 쓰쟎아요 인생이 너에게 레몬을 주거든, 아주 쓰고 신 레몬을 주거든, 그 다음에 이런 말이 쓰여 있어요. 'Make lemonade' 레모네이드 차를 만들어라. 어떤 레모네이드란 말이 이것도 뭐 고장난 차 이런 다른 의미도 있을 수 있지마는 어쨌든 이 쓰디쓴 인생의 경험이 오히려 달콤하고 아름다운 인생의 축복으로 변모할 수가 있다는 놀라운 사실. 우리의 태도 여하에 따라서. 만약 시험 속에 기도할 수가 있다면 그리고 이 기도를 통해서 시험을 통해서 주님이 나에게 주실 궁극적인 유익과 소망을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라면 이 시험은 결코 파괴적인 것만은 아닙니다. 내가 믿음의 사람이 되고, 내가 인내의 사람이 되고, 내가 지혜의 사람이 되고, 내가 하나님의 기뻐하는 사람이 되어 주 앞에 서 있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시험의 폭풍우 속에서도 우리는 노래할 수가 있습니다. 울면서도 찬양할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조용한 기쁨의 인격을 만들어 갈 수가 있을 것입니다. 혹시 여러분 가운데 시험을 지나고 있는 분들이 계십니까 두 가지만 꼭 기억하고 싶어요. 결론적으로 시험이 올 때 꼭 시험을 통해서 주시는 교훈을 레슨을 우리는 마음속에 잘 간직해야 합니다. 교훈을 얻어야 합니다. 로버트 브라우닝 해밀튼이라는 크리스챤 시인이 있었는데요. 그분이 이런 아름다운 시 한편을 썼습니다. 나는 쾌락과 함께 일 마일을 걸었다네. 그녀는 그 그녀는 쾌락을 말하는 거예요. 그녀는 계속 떠들어대며 말했다네. 그러나 그녀가 떠나간 다음에 나는 아무 것도 배우지 못했다네. 근데 그 다음 문단, 나는 슬픔과 함께 또 일 마일을 걸었다네 그녀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네 그러나 그녀가 떠났을 때 나는 많은 것을 배웠다네.
쾌락의 소용돌이 속에서 인생은 교훈을 배우지 못합니다. 그러나 고통스런 시험의 폭풍우 속에서 우리는 인내하고 침묵하면서 우리는 인생의 깊은 교훈을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 나에게 어떤 레슨을 주십니까 우리는 마땅히 그 교훈을 배워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하나 더 배워야할 것은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손길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시험 속에서 우리는 기도하면서 그 중에 임하시는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나를 다루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체험할 수가 있어야 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헨리 나우엔의 그 책에 보니까 이런 글이 있어요. 그가 중세기 어떤 수도사의 얘기를 인용하고 있습니다. 아주 노련한 성숙한 존경받는 수도사 한 사람이 젊은 수도사 수도를 막 시작했어요. 아직은 좀 건방지고 교만한 구석이 있는 젊은 수도사에게 교훈을 주기 위해서 그가 흙을 만지면서 이런 대화를 나눕니다. 아주 견고하고 딱딱한 흙을 만지면서 젊은 수도사보고 여보게, 여기 물 좀 붓지. 그래서 물을 부었어요. 근데 물이 딱딱한 흙이니까 옆으로 다 흘러내려 갔어요. 이 딱딱한 흙은 물을 받지 못하는 구만. 그렇지 그러면서 옆에 있는 망치를 집어들더니 그 딱딱한 흙덩이를 부수기 시작했습니다. 막 파쇄하고 부수기 시작했어요. 그러더니 젊은 수도사보고 여보게 다시 좀 물을 부어보게. 부드러워진 흩어진 그 흙 속에 물을 붓자 그 물이 흙을 응고시키기 시작했습니다. 그 다음에 이 수도사는 웃으면서 여기다가 말이야 씨를 뿌리면 틀림없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 것이 아니겠나 우리는 이것을 수도하는 사람들은 깨어짐의 영성의 법칙이라고 말하지. 깨어짐의 영성의 법칙. 내가 깨어지고 내가 부서질 때. 하나님은 거기서 기뻐하는 꽃과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가 있습니다. 그 열매를 위하여 아름다운 꽃을 위하여 때로 하나님이 나를 깨시는 순간들이 있어요. 그때 원망하기 보다는 하나님, 깨세요. 깨뜨리세요. 그리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이 될게요. 믿음의 사람이 되고, 그리고 정말 참을 줄 아는 인내의 사람이 되고 지혜의 사람이 되어 하나님이 기뻐하는 사람으로 설 수 있다면 그리고 이 소망을 가진 사람이라면 시험의 폭풍우 속에서 우리는 기쁨의 찬미를 노래 부를 수가 있습니다. 이 기쁨의 열매에 도전해 볼 만한 삶의 열매가 아닌지요.
기도하십시다.
왜냐하면 공이 물 속으로 쳐 박히기도 하고 모래 벙커 속으로 들어가기도 하는 그런 광경들을 봅니다. 다시 그 물 속에서, 모래 속에서 탈출해서 목표 지점으로 근접시키기 위한 안타까운 그 노력하는 그 모습들을 우리가 지켜봅니다. 저는 그 광경을 보면서 나는 골프 칠 마음 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치 않아도 인생에 스트레스가 많은데 골프 치면서 또 스트레스를 경험해야 한다면 뭐 하러 치겠는가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골프를 좋아하는 이유, 아마도 골프가 인생을 닮은 어떤 구석이 있기 때문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합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다 보면 어느 날 갑자기 물 속으로 쳐 박히고 또 모래 속으로 곤두박질하는 그런 경험을 갖게 됩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야고보서 1장 2절에 보시면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여기서 여러 가지 시험이란 단어가 나옵니다. 여러 가지라는 단어는 본래 원문에는 여러 가지 색깔에, 다양한 색깔에 그런 뜻입니다. 여러 가지 색깔의 시험, 우리 인생을 살면서 형형색색의 시험, 여러 가지 종류의 시험들을 우리가 경험하게 됩니다. 우리가 경험하는 시험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그러나 시험이 없는 인생은 아무도 없습니다. 여기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이라는 단어가 본래 원문에서는 여러 가지 시험에 떨어지거든 영어 성경에는 'fall' 이라는 단어가 쓰여졌어요. 여러 가지 시험에 떨어지거든
그런데 그냥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갑작스럽게 떨어지거든 이런 뜻입니다. 여러 가지 시험에 갑작스럽게 떨어지거든 또 떨어진다는 말이 만일 여러분이 시험에 떨어지면 이라는 어떤 가정법의 상황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if' 라는 단어가 없어요. 이것이 영어 성경 번역에 보시면 'when' 이라는 단어가 쓰여있습니다. 그 시험을 만날 때. 그러니까 시험을 당하느냐 안 당하느냐 그런 얘기가 아닙니다. 시험을 안 당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시험은 옵션이 아닙니다. 누구나 인생을 살면서 시험을 반드시 통과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 시험을 어떻게 통과하느냐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은 우리에게 가르치기를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기쁘게 여기라,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 말씀 앞에 우리 안에서 일어나는 즉각적인 어떤 반응은 무엇입니까 어떻게 그것이 가능해요 시험은 아프고 고통스런 것인데 어떻게 우리가 온전한 기쁨으로 시험을 맞이할 수가 있겠습니까 결론적으로 말씀 드리면 이것은 인위적으로는 불가능한 응답입니다. 인위적으로는 그렇게 기쁘게 응답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갈라디아서 5장 22절에 보시면 바울 사도는 성령님의 열매를 말하면서 성령님의 열매는 첫째 사랑 둘째는 희락, 기쁨이예요. 성령님의 열매 가운데 희락, 기쁨의 열매가 있습니다. 이것이 성령님의 열매라고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환난 중에도 시험 속에서도 기뻐할 수 있다면 이것은 우리 자신의 자연스런 충동적 반응으로는 불가능하고 그것은 성령님의 역사에 의해서만 가능할 수 있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로마서 5장 3절에 보시면 바울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환난 중에도 즐거워할 수 있는 거예요.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환난은 인내를 낳고 그 다음에 인내는 연단을 낳고 연단은 소망을 이루게 할 줄 앎이라. 다시 말해서 환난 중에도 우리가 기뻐할 수 있는 이유는 우리가 그 환난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마지막 어떤 소망을 성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계속되는 말씀 로마서 5장 5절에서 보면 "이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사랑이 부은바 됨이니" 이렇게 성경은 기록합니다. 다시 말하면 성령님의 역사를 통해서 우리는 환난 속에서도 환난이 가져올 궁극적인 어떤 소망을 기대할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소망을 바라보는 사람마다 환난은 아프지만 여전히 환난을 극복하는 어떤 기쁨과 즐거움의 태도를 가지고 환난을 돌파해 나갈 수가 있다고 성경은 가르칩니다. 유대인으로서 나치 독일의 히틀러의 핍박 아래서 잔인한 고통을 당했던 유명한 세계적인 심리학자 빅터 프랭클 박사는 그가 나치의 고문을 받고 그 감옥소에서 그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받으면서도 한결같은 마음에 평정의 자세, 또 인간다움의 태도를 잃어버리지 않고 그가 그 감옥 생활을 잘 견뎌냈던 그 비밀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감옥에서 나온 후에 받았을 때 프랭클 박사는 이런 대답을 남겼습니다. 그것은 나의 고난이 장차 가져올 나의 삶에 어떤 유익이 있겠는가를 저는 줄기차게 묵상했습니다. 저는 그것을 기도했습니다. 신이여, 내가 이 시험과 고통의 시간이 지났을 때 그것이 나의 삶에 어떤 유익이 될 수가 있겠습니까 그리고 이것 때문에 내가 변할 수 있었던 내 삶의 모습, 그리고 이 고통을 견디는 삶의 의미, 희망의 문제 이런 것들을 묵상하고 이것을 통해서 전세계 사람들에게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을 계속 묵상했고 이런 희망이 나로 하여금 이런 고통을 견딜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시험 중에도 기뻐할 수 있다면 그것은 시험의 유익을 묵상할 때 가능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시험은 우리에게 어떤 유익을 줄 수가 있을까요 시험이 주는 유익은 무엇일까요
첫째로 그것은 시험은 우리를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한다는 사실입니다. 시험은 우리를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합니다. 자, 오늘 본문의 야고보서 1장 3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그런데 2절에서는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이 시험이란 단어가 나왔습니다. 3절에는 이 시험을 다른 말로 표현한 것이예요. 이것은 믿음의 시련이다. 시련과 시험은 다릅니다. 그러나 시련이라는 단어가 시험의 성격을 설명합니다. 크리스챤이 받는 시험 하나님의 백성들이 경험하는 시험은 믿음의 시련이라는 것입니다. 이 시련이라는 단어를 다른 말로 말하면 테스트라는 말입니다. 믿음의 테스트. 시험은 믿음의 테스트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다 학교생활에 추억과 경험이 있습니다. 학교 다니실 때 혹시 여러분 가운데 시험을 enjoy하고 즐기신 분이 계십니까 혹시 그런 이상한 다른 나라에서 오신 어떤 위성에서 오신 분이 혹시 계실지 모르겠습니다마는 아무도 시험을 enjoy 하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시험이 불필요하다고 주장하는 분이 혹시 계십니까 시험을 아무도 enjoy 하지 못하지만 시험은 필요한 것이죠. 왜냐면 시험을 통해서 우리는 자기의 실력을 평가합니다.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나에게 어디가 부족한 것인가를 알게 됩니다. 그래서 시험을 치를 때마다 실력이 향상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그리스도인들의 인생 속에 시험을 허용하신 이유는 그 시험을 통과할 때마다 믿음의 실력이 증가할 것을 하나님은 기대하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시련은 시험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있어서는 피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을 때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고귀한 선물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믿음의 선물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에베소서 2장 8절에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선물이라 " 우리가 구원을 하나님의 선물이라고도 말할 수가 있지마는 문법적으로 이 구절을 좀더 깊이 들여다보면 믿음이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말이예요. 믿음이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자, 우리가 우리의 죄를 깨닫고 십자가 앞에 온 순간 예수님을 바라보는 순간 우리 안에는 진정한 믿음이 주어졌습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 주어진 믿음은 아직은 테스트를 거치지 않은 믿음일 수가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좀더 견고한 믿음이 되고 우리의 믿음이 강력한 믿음이 되고 우리의 믿음이 건강한 믿음이 되고 우리의 믿음이 성숙한 믿음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의 믿음은 반드시 테스트에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에게 시험을 허용하십니다. 그런 의미에서 1세기에 살던 그리스도인들도 시험을 겪었던 것입니다.
오늘 야고보서 1장 1절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는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에게 문안하노라" 그 당시의 하나님의 백성을 흩어진 열두 지파 이런 표현으로 설명했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역사적으로 주어진 별명 가운데 하나로 유대인들을 가리켜서 디아스포라의 민족이다 이렇게 부릅니다. 흩어져 있는 백성.
그런데 이 말은 유대인들이 어쩌다가 운명적으로 그들이 세계 여러 나라에 단순히 흩어졌다라는 지리적인 흩어짐만을 뜻하는 표현이 아닙니다. 이것은 그들이 고난을 위해서 흩어져있다는 의미를 내포합니다. 흩어져 고난 받고있는 주의 백성들. 왜 하나님은 그들에게 이런 시험을 허용하셨을까요 성경은 오늘 그것이 믿음의 테스트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야고보서 1장을 읽다가 신약 성경의 다른 서신서 하나를 읽어보면 그 출발 구조가 거의 야고보서 1장과 비슷한 것이 또 하나 있어요. 그것이 베드로 전서입니다. 야고보서 1장 1절이 흩어진 열두 지파에게 문안하노라 이렇게 시작되는 것처럼 베드로 전서 1장 1절도 흩어진 나그네들에게 편지한다 이렇게 시작이 됩니다. 그리고 베드로전서 1장 6절에 보시면 "그러므로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기뻐한다."
그 다음에 베드로전서 1장 7절에 보시면 "너희 믿음의 시련이" 거기도 믿음의 시련이라는 말이 나와요. "믿음의 테스트가,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존귀와 영광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왜 시험을 허용하시는가 그 시험을 통과했을 때 마치 불을 통과한 금이 더 아름다운 금으로 재련되는 것처럼 우리 믿음이 보배롭고 더 순결하고 더 아름다운 믿음으로 나타나 주님 오시는 날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받을 수 있도록 주님은 반드시 우리의 믿음을 시험하신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백성, 믿음의 사람들이 받는 시험에 대해서 좀 더 알아보기를 원하면 우리 믿음의 원조를 생각해 보십시다. 믿음의 조상, 믿음의 원조 할아버지 누구죠 네, 아브라함입니다. 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셨을 때 그를 선택하고 부르시면서 그를 축복합니다. 내가 너를 축복한다. 네 이름은 위대하게 될 것이다. 너는 복의 근원이 될 것이다. 천하만민이 너를 복되다고 할 것이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약속 받은 축복의 포인트는 어디 있느냐 하면 자손이예요. 자손. 네 자손이 하늘이 별처럼 바닷가의 모래알처럼 될 것이다.
그런데 아직도 아브라함은 자식이 한 개도 없었어요. 아직. 근데 아브라함이 자식을 쉽게 얻었습니까 쉽게 얻지 못했습니까 쉽게 얻지 못했지요. 하나님이 약속은 해 놓고 자식이 오질 않아요. 그러니 얼마나 딜레마예요. 자, 백살이 가까워지도록 아직도 자식 소식이 없습니다. 그러다가 드디어 자식을 얻었습니다. 기적의 아들, 이삭. 자, 이 아들을 얻었을 때 아브라함이 얼마나 흥분을 했을까요 이삭을 바라 볼 때마다 너는 기적의 아들이다. 아브라함의 기쁨이요, 아브라함의 자랑이요, 아브라함의 모든 것이 그 아들에게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기적적으로 얻은 아들, 그 후에도 이 아들의 성장 과정이 평탄했습니까 어느 날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 때문에 기뻐하고 enjoy하는데 이삭에 아버지 아브라함이 빠져있었을지도 모르지요.
그런데 성경에 보시면 창세기에 보시면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테스트하시려고 시험하시려고.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시기를 네 아들 독자 이삭을 바쳐라. 모리아 산상에서 제물로 바쳐라. 죽여라 이 말이예요. 얼마나 딜레마예요. 하나님, 죽이자면 왜 주셨습니까 얼마나 고민을, 고민이 아니라 괴민을 했을까요 아주 고민을 했을거예요.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심각한 번뇌의 밤, 깊은 고뇌와 그리고 방황 끝에 드디어 아브라함이 결단을 합니다. 어떤 마음으로 결단을 했을까요 하나님이 주셨는데 하나님이 다른 계획이 있는 모양이지 다른 자식을 주실까 아니면 이 아들을 데려 가셨다가 또 주시지 않을까 어쨌든 하나님이 주신 하나님이 달라 그러니까 하나님을 믿어야지. 드디어 하나님의 주권을 설명할 수 없는 상식을 뛰어난 자기의 고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신뢰하기로 결단하고 사랑하는 아들을 그 모리아의 제단에 올려 놓는 그 순간, 하나님이 스톱. 내가 네 마음을 알았어. 시험 끝이야. 시험은 끝이다. 그리고 내가 너를 위해서 다른 것을 예비했다. 여호와 이레 하나님이 다른 제물을 준비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 왜 이렇게 아들을 약속해 놓고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힘들게 만드십니까 그러나 이런 과정을 통해서 한 가지 중요한 것이 뭐예요 아브라함의 믿음이 성숙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예요.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 내 상식과 그리고 내 이성을 초월해서 생명의 근원이요, 창조주요, 그리고 역사의 섭리자이신 그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을 배워가는 것 아브라함의 믿음을 더 순전하게 더 깊이 있게 더 영광스럽게 만들기 위해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분명히 테스트하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본문 야고보서 1장 6절에도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다" 믿음의 사람, 그렇습니다. 시험을 통해서 내 믿음이 순결해지고, 내 믿음이 아름다워지고 내 믿음이 더 강력해지고, 또 내 믿음이 더 고상하게 성숙할 수가 있다면 사랑하시는 여러분, 시험은 아픈 것이지만 이 시험이 나를 믿음의 사람으로 만들 것이다. 우리는 시험 중에 고통하고 눈물을 흘리면서도 조용히 어쩌면 우리는 이렇게 웃을 수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 맞아. 나는 이 시험 속에서 믿음의 사람이 될거야. 그리고 우리는 아직도 기뻐할 수가 있습니다. 시험의 유익이 무엇일까요둘째로 시험은 우리를 인내의 사람이 되게 합니다. 시험은 우리로 하여금 인내의 사람이 되게 합니다.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할 뿐만 아니라둘째로 인내의 사람이 되게 할 것입니다. 여러분, 시험이 오면 많은 사람들이 제일 많이 하는 일이 뭘까요 시험이 오게되면 많은 사람들이 많이 하는 일이 뭘까요 기도해요 기도하는 사람은 조금있어요. 그렇게 많지 않아요. 불평하고 원망하는 일도 많이 하고 그러나 더 많은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하는 것은 참는 것입니다. 참는 것입니다. 때때로 많은 경우에 우리는 견디는 일 밖에는 할 일이 없어요, 아무 것도. 견뎌야 되요.
그런데 하나님이 그것을 요구하십니다. 시험 속에서 인내를 요구하십니다.
자, 본문의 4절을 읽어보시지요. 야고보서 1장 4절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시험 속에서 인내를 성취하라. 본래 인내라는 단어는 희랍어에서 두 개의 단어가 결합된 단어입니다. 휘포 메네. 휘포란 단어와 메네. 휘포는 전치사인데 무엇무엇 아래서. 메네는 머문다. 'remain under' 무엇무엇 아래 머문다. 프레셔 아래서 압력아래서 고통 아래서 정말 어려운 환경 아래서 우리가 계속 머물러 있다. 성실하게 머물러 있다. 그 압력에도 불구하고 그 고통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우리를 억압하는 그 상황의 고통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계속 성실하게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인내예요.
그런데 대개의 경우에 사람들이 인내합니까 인내하지 못하죠. 우리는 참지 못하죠. 참지 못하고 어떻게 합니까 무언가를 좀 해봐야지. 서두르다가 우리는 일을 그르치고 그리고 더 큰 고통, 더 큰 재앙을 초래하는 경우들이 얼마나 많은지요. 아브라함의 경우를 생각해 보십시다. 여러분, 아브라함도 자식을 주신다고 하셨는데 자식이 안 와요. 끝까지 참았습니까 아브라함도 참지 못했던 순간이 있었습니까 혹시 성경 보셨어요 아브라함도 참지 못했어요. 참지 못하고 어떻게 합니까 자, 이제는 생산 능력도 다 없어져가고 성경에 보시면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의 경수도 끊어졌고, 이제 낳을 가능성이 없어졌다는 말이죠. 그러니까 어떻게요. 만가지 생각이 있었겠죠. 자기 합리화의 생각도 있었을 거예요. 하나님이 주신다고 약속을 했지만 꼭 뭐 원조 부인을 통해서 낳으라는 약속이 어디있는냐 그래서 어떻게 했어요. 자기 부인 말고 하갈이라는 자기 계집종, 메이드를 통해서 아들을 낳았어요. 그 아들이 바로 누굽니까 이스마엘이예요.
열심히 자기가 꾀를 써서 낳은 것이죠. 그러나 그 낳은 이스마엘과 하나님의 때가 찼을 때 부인 사라를 통해서 자연스럽게 얻어진 하나님이 진짜 주신 아들 이삭, 이삭과 이스마엘 사이에 얼마나 길고 긴 고통이 계속 됩니까 오늘도 계속되고 있는 아랍민족과 이스라엘의 역사적 갈등의 시초가 바로 그것입니다. 이것이 다 참지 못해서 그래요. 기다리지 못해서. 히브리 사람들의 읽는 그 이야기들의 콜렉션, 스토리 콜렉션집을 내가 읽어본 적이 있었습니다. 민화집인데 거기에 이런 얘기가 나오더라구요. 어느 날 아브라함이 그 저녁 무렵 텐트 바깥에 나와서 이렇게 앉아 있는데, 저기서 80세 가량 되어 보이는 노인이 터벅터벅 찔뚝거리면서 걸어옵니다. 피곤한 표정, 남루한 옷차림, 거지에 가까운 옷차림이었습니다. 배고파 보였습니다. 얼굴은 아주 찌들린 모습이었습니다. 이 80세 된 노인이 아브라함 한테 오더니 나 이 텐트에서, 장막에서 하루 밤 쉬어 갈 수가 있겠소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사람이라 그러세요 들어오세요. 저희 장막에서 쉬어 가시죠. 그리고 이 노인장의 발을 정성스럽게 물로 씻겨 주었습니다. 그리고 식사를 준비해서 식사를 드시지요.
그런데 이 노인이 기도를 안하고 들어요. 순간적으로 아브라함이 열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노인보고 하나님께 기도도 하고 감사도 하고 좀 식사를 하시죠 그러니까 이 노인이 '신이요 나에게는 음식이 신이요.' 이 말을 듣자 아브라함이 진짜 열 받았어요. 노인장, 나는 노인장 같은 노인은 우리 집에서 모시고 싶지 않소. 그리고 쫓아내 버렸어요. 그날 밤 아브라함이 자는데 하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네, 하나님. 오늘 저녁에 너희 집에 손님이 왔지 네, 그랬었습니다. 왜 쫓아냈니 아, 하나님도 보셨군요. 아시쟎아요 하나님을 모독하고, 음식이 신이라고 그러는데 제가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냥 쫓아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시길 아브라함아 나는 말이야. 그 노인에게 80년이나 참았는데. 너는 말이야, 하루 저녁, 그리고 한 시간도 참을 수가 없었더냐 나는 80년이나 참았는데 너는 하루 저녁, 한 시간도 그 노인에게 참을 수가 없었더냐 이건 성경에 나오는 얘기는 아닙니다. 성경에서 찾아 보실려고 하면 안되요.
그런데 성경에 이런 말이 있어요.
히브리서 6장 13절 이하에 보시면 하나님이 아브라함하고 약속을 하실 때, 하나님이 약속하실 때 맹세하실 때 자기보다 더 높은 권위가 없기 때문에 스스로의 이름을 걸고 약속하시면서 축복하시기를 히브리서 6장 14절에 "내가 반드시 너를 복주고 복주고 너를 번성하게 하리라". 그 다음에 히브리서 6장 15절에 보시면 이런 말씀이 있어요. 따라서 읽으세요. 저가 여기서 저라는 것은 아브라함인데요, 다시 "저가 이같이 오래 참아 약속을 받았느니라." 자, 아브라함도 참지 못했던 순간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실패의 경험을 통해서 마침내 참는 것의 중요성을 배웠습니다. 아브라함도 마침내 오래 참아 하나님의 약속을 받을 수가 있었다. 즉, 오래 참음의 교훈을 아브라함이 받을 수가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 성경은 하나님을 가리켜서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실로 견디기 어려운 상황 속에서 견디고 오래 참을 때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의 인격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것을 기대하는 것입니다. 다시 읽어보시면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인내를 이룰 때 이것이 바로 인격의 완성이라고. 우리 인격의 성숙에 가장 중요한 요소가 바로 인내를 이루어 가는 것이라고 오늘 성경은 가르칩니다.
그렇다면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인내할 줄 아는 사람, 오래 참을 줄 아는 사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그 사람 되기 위하여 나에게 견디기 어려운 이 시험을 허용하셨다면 시험은 아프지만, 시험은 고통스런 것이지만 이것이 나에게 이런 인격적인 성숙과 온전함을 줄 수가 있다면 시험의 회오리, 폭풍우 속에서도 우리는 조용히 이렇게 말할 수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아파요. 그러나 알겠어요. 기뻐할께요'. 이것이 기쁨의 열매인 것입니다. 자, 시험이 주는 유익이 또 하나 있습니다. 시험은 어떤 유익을 줄 수 있는가 세 번째로 시험은 우리를 지혜의 사람이 되게 합니다. 시험은 우리를 지혜의 사람이 되게 합니다. 여러분, 시험 치르기를 싫어하는 학생치고 똑똑한 학생이 될 수가 있을까요 자, 시험이 오면 어떤 학생이 시험지를 앞에 놓고 시험이 올 때 그리스도인들이라면 기도하는 것을 생각해 볼 것입니다. 그리고 기도하셔야 합니다. 자, 그러면 시험을 앞에 놓고 시험을 치르면서 우리는 어떤 기도를 하게 될까요 제일 바람직하지 못한 것 이런 기도를 한다면 이것은 바람직하지 못합니다. 시험지를 앞에 놓고 이렇게 기도하는 학생을 상상해 보세요. 하나님, 이 시험 안치르게 도와주세요. 시험은 안치를 수 없는 것이예요. 시험은 빠져나갈 수 없는 것이예요. 시험은 통과해야 합니다. 자, 센스가 있는 학생이라면 그 시험지 앞에서 어떤 기도를 할까요 하나님, 이 시험 잘 치르게 도와주세요.
그런데 잘 치르려면 제일 중요한 것이 뭘까요 지혜입니다. 하나님, 지혜를 주세요. 그래서 잘 치를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그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자, 5절 다 같이 읽겠습니다. 야고보서 1장 5절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지혜를 구하면 하나님이 좋아하신다는 겁니다. 무지무지하게 좋아하신다는 겁니다. 그래서 후히 주신다는 거예요. 사랑하시는 여러분, 지혜를 구했다가 너무너무 수지 맞았던 사람 생각나는 사람 있어요 솔로몬. 네가 한가지만 구해보라. 이 한 가지만 구해 보라 그러니까 뭘 구할까요 한가지. 아파트 당첨권. 수지 2차. 하나만 구한다면 뭘 구할까요 하나만 구한다면 그 때 솔로몬은 지혜를 구했습니다. 하나님, 지혜를 주십시오. 그래서 이 백성을 잘 다스리고 싶어요. 이 백성을 겸허하게 잘 섬기고 싶어요. 하나님이 너무너무 기뻐하셔서., 그래 너는 지혜만 줄 것이 아니라 다른 것도 준다. 명성도 권위도 네 삶의 평안함도 내가 다 주겠다. 그렇게 하나님은 지혜를 기뻐하셨습니다. 지혜란 무엇입니까 저는 지혜는 지식과 다르다고 생각해요. 지식은 책에서 얻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혜는 책에서 얻을 수가 없어요. 지혜는 삶을 통해 얻습니다. 지혜는 일종의 판단력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경험을 통해서만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다 경험하지 않아도 올바른 판단력, 올바른 센스를 가지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고 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뿐만 아니라 이웃들에게 나 자신에게 함께 유익이 될 수 있는 삶의 정확하고도 올바른 판단력을 실행할 수 있는 지혜, 이 지혜는 얼마나 존귀한 것입니까 그래서 이 지혜를 가진다면 우리는 이 환난과 고통을 잘 통과할 뿐만 아니라 통과한 후에 더욱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 주님 앞에 서 있을 수가 있다는 사실. 하나님은 초대 그리스도인들에게 그것을 기대한 것 같아요. 사실 야고보서를 쓴 사람이 아마도 예수님의 동생인 야고보였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육신의 동생 야고보, 이 사람의 역사를 들추어보면 이 사람은 처음에는 자기 형님이었던 예수님에 관해서 다소간 불신을 가지고 있다가 나중에 진실한 신자가 됩니다. 훌륭한 신자가 됩니다. 초대 교회의 훌륭한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근데 그는 기도를 많이 했던 사람으로 유명해요. 그래서 나중에 교회의 사가들은 그에게 별명을 하나 붙여 주었는데 낙타의 무릎을 가지 사나이. 그는 기도를 많이 했던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는 기도를 통해서 그는 아주 지혜로운 사람이 되었고 예루살렘 교회의 감독으로서 모든 사람에게 존경을 받는 아름다운 리더쉽을 발휘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야고보서 1장 1절에도 어느 정도 이 사람의 지혜를 볼 수가 있습니다. 이 사람이 예수님의 동생이니까, 지혜가 없었다면 나 예수님의 동생이라고 폼잡고 다녔을 거예요. 그러나 야고보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뭐라고 그랬습니까 종 야고보는. 예수님의 동생이라고 말하지 않고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는 많은 환난을 겪었습니다. 환난 시대의 교회를 리드했습니다. 그는 나중에 순교자가 됩니다. 그러나 그는 아주 영광스럽고 존경받는 순교자로서 일생을 아름답게 마무리지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는 지혜의 사람이었습니다. 기도가 이 사람에게 지혜를 주었다고 생각을 해요. 제가 미국 살 때 이렇게 운전하고 가다보니까 범퍼 스티카 미국 사람들 자동차 뒤에다 뭐 많이 써 붙이고 다니는데 범퍼 스티카 가운데 이런 스티카가 하나 있더라구요. 'When life hands you a lemon' 인생이 너에게 레몬을 주거든, 레몬은 시고 쓰쟎아요 인생이 너에게 레몬을 주거든, 아주 쓰고 신 레몬을 주거든, 그 다음에 이런 말이 쓰여 있어요. 'Make lemonade' 레모네이드 차를 만들어라. 어떤 레모네이드란 말이 이것도 뭐 고장난 차 이런 다른 의미도 있을 수 있지마는 어쨌든 이 쓰디쓴 인생의 경험이 오히려 달콤하고 아름다운 인생의 축복으로 변모할 수가 있다는 놀라운 사실. 우리의 태도 여하에 따라서. 만약 시험 속에 기도할 수가 있다면 그리고 이 기도를 통해서 시험을 통해서 주님이 나에게 주실 궁극적인 유익과 소망을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라면 이 시험은 결코 파괴적인 것만은 아닙니다. 내가 믿음의 사람이 되고, 내가 인내의 사람이 되고, 내가 지혜의 사람이 되고, 내가 하나님의 기뻐하는 사람이 되어 주 앞에 서 있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시험의 폭풍우 속에서도 우리는 노래할 수가 있습니다. 울면서도 찬양할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조용한 기쁨의 인격을 만들어 갈 수가 있을 것입니다. 혹시 여러분 가운데 시험을 지나고 있는 분들이 계십니까 두 가지만 꼭 기억하고 싶어요. 결론적으로 시험이 올 때 꼭 시험을 통해서 주시는 교훈을 레슨을 우리는 마음속에 잘 간직해야 합니다. 교훈을 얻어야 합니다. 로버트 브라우닝 해밀튼이라는 크리스챤 시인이 있었는데요. 그분이 이런 아름다운 시 한편을 썼습니다. 나는 쾌락과 함께 일 마일을 걸었다네. 그녀는 그 그녀는 쾌락을 말하는 거예요. 그녀는 계속 떠들어대며 말했다네. 그러나 그녀가 떠나간 다음에 나는 아무 것도 배우지 못했다네. 근데 그 다음 문단, 나는 슬픔과 함께 또 일 마일을 걸었다네 그녀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네 그러나 그녀가 떠났을 때 나는 많은 것을 배웠다네.
쾌락의 소용돌이 속에서 인생은 교훈을 배우지 못합니다. 그러나 고통스런 시험의 폭풍우 속에서 우리는 인내하고 침묵하면서 우리는 인생의 깊은 교훈을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 나에게 어떤 레슨을 주십니까 우리는 마땅히 그 교훈을 배워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하나 더 배워야할 것은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손길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시험 속에서 우리는 기도하면서 그 중에 임하시는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나를 다루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체험할 수가 있어야 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헨리 나우엔의 그 책에 보니까 이런 글이 있어요. 그가 중세기 어떤 수도사의 얘기를 인용하고 있습니다. 아주 노련한 성숙한 존경받는 수도사 한 사람이 젊은 수도사 수도를 막 시작했어요. 아직은 좀 건방지고 교만한 구석이 있는 젊은 수도사에게 교훈을 주기 위해서 그가 흙을 만지면서 이런 대화를 나눕니다. 아주 견고하고 딱딱한 흙을 만지면서 젊은 수도사보고 여보게, 여기 물 좀 붓지. 그래서 물을 부었어요. 근데 물이 딱딱한 흙이니까 옆으로 다 흘러내려 갔어요. 이 딱딱한 흙은 물을 받지 못하는 구만. 그렇지 그러면서 옆에 있는 망치를 집어들더니 그 딱딱한 흙덩이를 부수기 시작했습니다. 막 파쇄하고 부수기 시작했어요. 그러더니 젊은 수도사보고 여보게 다시 좀 물을 부어보게. 부드러워진 흩어진 그 흙 속에 물을 붓자 그 물이 흙을 응고시키기 시작했습니다. 그 다음에 이 수도사는 웃으면서 여기다가 말이야 씨를 뿌리면 틀림없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 것이 아니겠나 우리는 이것을 수도하는 사람들은 깨어짐의 영성의 법칙이라고 말하지. 깨어짐의 영성의 법칙. 내가 깨어지고 내가 부서질 때. 하나님은 거기서 기뻐하는 꽃과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가 있습니다. 그 열매를 위하여 아름다운 꽃을 위하여 때로 하나님이 나를 깨시는 순간들이 있어요. 그때 원망하기 보다는 하나님, 깨세요. 깨뜨리세요. 그리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이 될게요. 믿음의 사람이 되고, 그리고 정말 참을 줄 아는 인내의 사람이 되고 지혜의 사람이 되어 하나님이 기뻐하는 사람으로 설 수 있다면 그리고 이 소망을 가진 사람이라면 시험의 폭풍우 속에서 우리는 기쁨의 찬미를 노래 부를 수가 있습니다. 이 기쁨의 열매에 도전해 볼 만한 삶의 열매가 아닌지요.
기도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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