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이 있습니까? (빌3:1-16)
본문
건강의 3대 요소는 영양, 운동, 그리고 마음의 평화라고 합니다. 영양을 위하여 음식을 고루 잘 먹어야 합니다. 또 건강을 위하여 적당한 운동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마음의 평안이 없으면 건강을 유지할 수 없습니다. 운동을 해도 즐거움으로 해야지 악을 쓰며 하거나 경쟁심으로 하면 오히려 스트레스만 쌓입니다. 음식을 먹어도 기쁜 마음으로 먹어야 합니다. 어떤 일을 기쁘게, 즐겁게 하는 것은 건강 문제의 기본입니다. 20세기의 유명한 신학자 가운데 한 사람인 몰트만(Moltmann)은 소위 "기쁨의 신학"을 말하였거니와 사실 기쁨의 신학을 몸소 실천하면서 가르친 사람은 사도 바울 이었습니다. 바울 사도 보다 우리 주님께서 먼저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5:11에 보면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함이니라"고 말씀하셨는가 하면 요16:21-22에 보면 "여자가 해산하게 되면 그 때가 이르렀으므로 근심하나 아이를 낳으면 세상에 사람 난 기쁨을 인하여 그 고통을 다시 기억지 아니하느니라.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기쁨이 충만"하게 되기를 원하셨고, 그 충만한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으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자들 역시 주님께서 말씀하신 기쁨을 맛보며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바울 사도는 비록 자신은 로마 감옥에 갇혀 있는 신세지만 빌립보 교회에 보낸 편지 가운데서 자기는 기쁨에 넘쳐 있다고 하면서 빌립보 교인들에게 기뻐하면서 살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빌2:17-18에 보면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봉사 위에 내가 나를 관제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 이와 같이 너희도 기뻐하고 나와 함께 기뻐하라"고 하였고, 빌4:4 이하에 보면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고 하였습니다. 오늘 아침 봉독한 말씀 빌3:1에도 보면 "종말로 나의 형제들아, 주안에서 기뻐하라"고 거듭 강조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주안에서 기뻐하라"는 말을 아무리 여러 번 반복해서 말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자기에게는 수고롭거나 번거로운 일이 아니고, 또 이 편지를 받는 빌립보 교인들에게는 안전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즉 빌립보 교인들이 기쁨으로 산다고 하면 그것으로 만족하고 나는 아무리 여러 번 반복해 말해도 번거로운 것으로 생각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공부를 해도 기쁨으로 하고, 가정에서 가사를 돌보아도 기쁨으로 하고, 직장에 나가서 일을 해도 기쁨으로 하며, 봉사의 일도 기쁨으로 해야 합니다. 교회에 나와서 예배를 드려도 기쁨으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교회에 나와서 여러 가지 봉사를 하면서도 기쁨으로 해야 합니다. 억지로 하거나 마지못해 하는 것은 능률도 오르지 않고 성과도 없습니다. 신앙 생활 역시 그러합니다. 바울 사도는 "주안에서 기뻐할 수 있는 비결"을 우리에게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첫째 비결은 삼가고 조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본문 2절에 보면 "개들을 삼가고,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고 손할례당을 삼가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삼가라는 말씀이 세 번이나 반복하여 나옵니다. 삼가라는 말씀은 조심하라는 말씀입니다. 주의하라는 것입니다.
1)개를 조심하라고 하였습니다. 제 친구 목사님 가운데 군대에 있을 때 군견 부대에서 근무하다가 침투간첩을 잡아 훈장을 탄 사람이 있습니다. 그 목사님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개처럼 주인에게 충성스러운 동물이 없다고 합니다. 잘 훈련만 시켜 놓으면 주인을 위하여 충성심을 변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서양 사람들이 애완용 개를 기르는 이유도 주인에게 대한 충성심, 변하지 않는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기 본문에서 "개"를 조심하라는 말씀은 개와 같은 사람들을 조심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욕할 때 "개 같은 놈" 혹은 "개 새끼"란 말을 합니다.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을 개 취급했습니다. 불결하고, 더럽고, 비천하고 비양심적이고 탐욕스러운 사람을 말할 때 "개 같은 놈"이라고 말합니다. 개는 사람을 물어뜯습니다. 이러한 사람에게 물리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2)행악하는 자들을 조심하라고 했습니다. 다른 사람을 속이고 교회에 분규를 일으키는 사람들을 조심하라는 것입니다. 행악하는 자들은 자기 이익을 위하여서는 무슨 일이나 저지르는 사람을 말합니다. 소위 도덕 폐기론자들입니다. 어차피 우리는 다 죄인인데 아무렇게나 되는대로 사는 것이지 번거롭게 도덕이니 윤리니 하는 거추장스럽게 살 필요가 뭐 있느냐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3)손할례당을 조심하라고 했습니다. 할례를 주장하는 사람들을 조심하라는 것입니다. 할례를 받아야만 구원을 받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조심하라는 것입니다. 소위 유대주의 자들을 조심하라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손할례당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형식적인 종교인들을 말합니다. 외식하는 자들입니다. 겉만 꾸미는 자들입니다. 이런 자들에게 감염되면 마음의 기쁨이 없어집니다.
둘째 비결은 성령님으로 봉사하고, 예수를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1)당시 빌립보 교회에도 자기 이름을 내기 위하여 봉사하고, 자기 주장을 하기 위하여 봉사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자기를 드러내기 위하여 봉사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봉사할 때는 그 봉사에 기쁨이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무엇인가 다른 사람을 위하여 봉사할 때 삶의 의미가 있고, 기쁨이 있습니다. 봉사하려면 내 힘으로 하는 것처럼 하지 말고 성령님께서 주시는 힘을 가지고 봉사하며, 내 이름을 내기 위하여 봉사하지 말고 예수님을 자랑하고, 예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하여 봉사하고, 자기 자신의 육체적인 조건들을 내세우기 위하여 봉사하지 말고 예수님의 영광을 위하여 봉사하라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여러 가지 면에서 자기 자신을 내 세울 만한 것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육체적으로 자랑할 것이 많았습니다. 자기는 생후 8일 만에 할례를 받은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아브라함의 여러 아들 가운데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택한 족속인 이스라엘(야곱)의 족속이며, 이스라엘의 열 두 아들 가운데서도 가장 사랑 받던 아내 라헬의 소생인 베냐민의 지파요, 히브리말을 하는 순전한 히브리 사람이요, 율법으로는 가장 엄격하게 율법을 지키는 바리새인이요, 교회를 핍박할 정도로 열심히 율법을 지키는 사람이었고, 율법의 의로는 흠을 잡을 만한 것이 없을 정도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육체적 자랑을 마치 배설물처럼 내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육체적 자랑을 하면 기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가 정말 기뻐할 수 있었던 것은 자기 자신이 죄인의 괴수이며, 달이 차지 못해서 난 자와 같다고 하였으며 만물의 찌끼와 같다고 말할 때 그에게 참 기쁨이 있었습니다. 자기 자신은 아무 것도 아니지만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하여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겼다"고 하였습니다. 최고의 가치를 예수 그리스도에게 두었다는 말입니다. 이럴 때에 그 속에는 기쁨이 충만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셋째 비결은 끊임없이 목표를 향하여 일할 때 기쁨이 있다는 것 입니다. 본문 12절에 보면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오 ,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자기에게 주신 사명을 다 하기 위하여 계속 노력한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바울 사도를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셨습니다. 즉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사명을 주셨습니다. 바울 사도는 그 사명을 다하기 위하여 계속적으로 달린다는 것입니다. 14절에서 다시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반복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운동선수들이 골인 점을 향하여 달리듯, 축구선수들이 공을 골대를 향하여 차듯이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일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 된 표식은 바로 기뻐하는 생활입니다. 크로스비 (Fanny Jane Crosby)라는 미국의 맹인 여자는 평생 5,500편 이상의 찬송가를 썼습니다. 찬송가 204장 역시 크로스비 여사가 지은 찬송입니다. 4절에 보면 주안에 기쁨 누리므로 마음의 풍랑이 잔잔하니 세상과 나는 간곳없고 구속한 주만 보이도다 이것이 나의 간증이요 이것이 나의 찬송일 나사는 동안 끊임없이 구주를 찬송하리로다. 바울 사도는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로다"고 하였습니다. 우리 주변의 여건이 아무리 좋지 않다고 하더라도 기뻐하며 감사하면서 살 때 우리에게는 놀라운 결과가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자들 역시 주님께서 말씀하신 기쁨을 맛보며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바울 사도는 비록 자신은 로마 감옥에 갇혀 있는 신세지만 빌립보 교회에 보낸 편지 가운데서 자기는 기쁨에 넘쳐 있다고 하면서 빌립보 교인들에게 기뻐하면서 살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빌2:17-18에 보면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봉사 위에 내가 나를 관제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 이와 같이 너희도 기뻐하고 나와 함께 기뻐하라"고 하였고, 빌4:4 이하에 보면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고 하였습니다. 오늘 아침 봉독한 말씀 빌3:1에도 보면 "종말로 나의 형제들아, 주안에서 기뻐하라"고 거듭 강조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주안에서 기뻐하라"는 말을 아무리 여러 번 반복해서 말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자기에게는 수고롭거나 번거로운 일이 아니고, 또 이 편지를 받는 빌립보 교인들에게는 안전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즉 빌립보 교인들이 기쁨으로 산다고 하면 그것으로 만족하고 나는 아무리 여러 번 반복해 말해도 번거로운 것으로 생각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공부를 해도 기쁨으로 하고, 가정에서 가사를 돌보아도 기쁨으로 하고, 직장에 나가서 일을 해도 기쁨으로 하며, 봉사의 일도 기쁨으로 해야 합니다. 교회에 나와서 예배를 드려도 기쁨으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교회에 나와서 여러 가지 봉사를 하면서도 기쁨으로 해야 합니다. 억지로 하거나 마지못해 하는 것은 능률도 오르지 않고 성과도 없습니다. 신앙 생활 역시 그러합니다. 바울 사도는 "주안에서 기뻐할 수 있는 비결"을 우리에게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첫째 비결은 삼가고 조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본문 2절에 보면 "개들을 삼가고,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고 손할례당을 삼가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삼가라는 말씀이 세 번이나 반복하여 나옵니다. 삼가라는 말씀은 조심하라는 말씀입니다. 주의하라는 것입니다.
1)개를 조심하라고 하였습니다. 제 친구 목사님 가운데 군대에 있을 때 군견 부대에서 근무하다가 침투간첩을 잡아 훈장을 탄 사람이 있습니다. 그 목사님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개처럼 주인에게 충성스러운 동물이 없다고 합니다. 잘 훈련만 시켜 놓으면 주인을 위하여 충성심을 변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서양 사람들이 애완용 개를 기르는 이유도 주인에게 대한 충성심, 변하지 않는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기 본문에서 "개"를 조심하라는 말씀은 개와 같은 사람들을 조심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욕할 때 "개 같은 놈" 혹은 "개 새끼"란 말을 합니다.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을 개 취급했습니다. 불결하고, 더럽고, 비천하고 비양심적이고 탐욕스러운 사람을 말할 때 "개 같은 놈"이라고 말합니다. 개는 사람을 물어뜯습니다. 이러한 사람에게 물리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2)행악하는 자들을 조심하라고 했습니다. 다른 사람을 속이고 교회에 분규를 일으키는 사람들을 조심하라는 것입니다. 행악하는 자들은 자기 이익을 위하여서는 무슨 일이나 저지르는 사람을 말합니다. 소위 도덕 폐기론자들입니다. 어차피 우리는 다 죄인인데 아무렇게나 되는대로 사는 것이지 번거롭게 도덕이니 윤리니 하는 거추장스럽게 살 필요가 뭐 있느냐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3)손할례당을 조심하라고 했습니다. 할례를 주장하는 사람들을 조심하라는 것입니다. 할례를 받아야만 구원을 받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조심하라는 것입니다. 소위 유대주의 자들을 조심하라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손할례당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형식적인 종교인들을 말합니다. 외식하는 자들입니다. 겉만 꾸미는 자들입니다. 이런 자들에게 감염되면 마음의 기쁨이 없어집니다.
둘째 비결은 성령님으로 봉사하고, 예수를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1)당시 빌립보 교회에도 자기 이름을 내기 위하여 봉사하고, 자기 주장을 하기 위하여 봉사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자기를 드러내기 위하여 봉사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봉사할 때는 그 봉사에 기쁨이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무엇인가 다른 사람을 위하여 봉사할 때 삶의 의미가 있고, 기쁨이 있습니다. 봉사하려면 내 힘으로 하는 것처럼 하지 말고 성령님께서 주시는 힘을 가지고 봉사하며, 내 이름을 내기 위하여 봉사하지 말고 예수님을 자랑하고, 예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하여 봉사하고, 자기 자신의 육체적인 조건들을 내세우기 위하여 봉사하지 말고 예수님의 영광을 위하여 봉사하라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여러 가지 면에서 자기 자신을 내 세울 만한 것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육체적으로 자랑할 것이 많았습니다. 자기는 생후 8일 만에 할례를 받은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아브라함의 여러 아들 가운데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택한 족속인 이스라엘(야곱)의 족속이며, 이스라엘의 열 두 아들 가운데서도 가장 사랑 받던 아내 라헬의 소생인 베냐민의 지파요, 히브리말을 하는 순전한 히브리 사람이요, 율법으로는 가장 엄격하게 율법을 지키는 바리새인이요, 교회를 핍박할 정도로 열심히 율법을 지키는 사람이었고, 율법의 의로는 흠을 잡을 만한 것이 없을 정도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육체적 자랑을 마치 배설물처럼 내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육체적 자랑을 하면 기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가 정말 기뻐할 수 있었던 것은 자기 자신이 죄인의 괴수이며, 달이 차지 못해서 난 자와 같다고 하였으며 만물의 찌끼와 같다고 말할 때 그에게 참 기쁨이 있었습니다. 자기 자신은 아무 것도 아니지만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하여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겼다"고 하였습니다. 최고의 가치를 예수 그리스도에게 두었다는 말입니다. 이럴 때에 그 속에는 기쁨이 충만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셋째 비결은 끊임없이 목표를 향하여 일할 때 기쁨이 있다는 것 입니다. 본문 12절에 보면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오 ,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자기에게 주신 사명을 다 하기 위하여 계속 노력한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바울 사도를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셨습니다. 즉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사명을 주셨습니다. 바울 사도는 그 사명을 다하기 위하여 계속적으로 달린다는 것입니다. 14절에서 다시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반복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운동선수들이 골인 점을 향하여 달리듯, 축구선수들이 공을 골대를 향하여 차듯이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일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 된 표식은 바로 기뻐하는 생활입니다. 크로스비 (Fanny Jane Crosby)라는 미국의 맹인 여자는 평생 5,500편 이상의 찬송가를 썼습니다. 찬송가 204장 역시 크로스비 여사가 지은 찬송입니다. 4절에 보면 주안에 기쁨 누리므로 마음의 풍랑이 잔잔하니 세상과 나는 간곳없고 구속한 주만 보이도다 이것이 나의 간증이요 이것이 나의 찬송일 나사는 동안 끊임없이 구주를 찬송하리로다. 바울 사도는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로다"고 하였습니다. 우리 주변의 여건이 아무리 좋지 않다고 하더라도 기뻐하며 감사하면서 살 때 우리에게는 놀라운 결과가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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