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과 사랑이 넘치는 얼굴 (시91:1,요10:10)
본문
가만히 생각해 보면,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만나더라도, 그 얼굴에 기쁨의 표정을 잃지 않는 사람이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의 얼굴은 반짝 반짝 빛나는 것 같습니다. 그 사람의 얼굴이 특별히 잘나서가 아니라, 그 표정에서 만족과 기쁨을 읽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표정은 그 사람의 살아가는 태도를 보여주는 거울 이라고 생각합니다. 밝은 표정을 짓는다고 해서, 그 사람의 삶에 전혀 문제가 없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하지 만 표정을 밝게 가질 수 있는 사람은, 어려움이나 고통스러운 일을 대하는 태도에서, 남다른 데가 있다고 봅니다. 아직도 제 기억에 남아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유난히 표정이 밝았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그래서 누구나 그 사람에 대해서 가지는 공통적인 첫 인상은, 아무 걱정 없이 자란 온실 속의 화초 같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분이 그간 살아오면서 겪은 고생이 이루 말할 수 없다는 얘기였습니다. 그 얘기를 듣고, 처음에는 그렇게 어렵게 생활하셨다는데, 그렇게 밝은 표 정일 수 있다는 것이 위선이 아닌가 생각도 했습니다. 연극적인 삶을 살지 않는 다음에야, 어떻게 고통 가운데에서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을 지을 수 있겠느냐는 자연스러운 의문 때문이었지요.
그런데 우연히 그분의 간증을 듣는 기회를 갖고, 그런 의문이 깨끗이 풀리게 되었습니다. 이 분은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시편 91편을 묵상했다고 하십니다.
시편 91편은 전능하 신 여호와 하나님의 그늘 아래 거하는 것이 가장 안전한 쉼터인 것을 노래하고(1-13절), 하나님께서 약속하시는 축복과 영화를 힘차게 묘사하고 있습니다(14-16절). 시편 91편 1절과 2절을 보십시오.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하는 자는 전능하신 자의 그늘 아래 거하리로다/ 내가 여호와를 가리켜 말하기를 저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나의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 그렇 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모든 걱정과 근심을 주님께 내어 드리고 나면, 우리는 우리를 보호하시는 전능하신 분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상상할 수 없는 어려움 가운데에서도 우리를 지키시는 그분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그분은 나의 피난처일 뿐만 아니라 내 삶의 든든한 요새 라고 진심으로 고 백할 수 있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보호하시는 그늘 아래 서면, 생활이 가져다 주는 걱정이나 죄책감, 시기, 질투, 자기 연민이나 자만심에서 자유 로울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분 안에서 참으로 기쁨과 사랑을 나누며 생활 할 수 있습니다. 위선이 아니고 말입니다. 우리를 보호하시는 분이 전능하 신 것을 믿고, 그분 안에 사랑과 기쁨이 있는 것을 아는 생활, 이것이 빛 가운데로 걸어가는 삶의 첫 걸음입니다. 오늘도 하루를 마무리하면서, 그리스도를 우리의 피난처요, 요새로 삼고, 그분의 보호하심을 구하며 사는 복 된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하나님께 드린 자신의 결심을 지킨 윌리엄 부스
시 116:15-19 윌리엄 부스(William Booth)는 19세기 영국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그 가 열 다섯 살이 되던 해에, 그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게 되었습니다. 당시 윌리엄 부스는 열 다섯 살의 어린 나이지만, 작은 전당포를 운영하고 있었 습니다. 그러나 돌아가시기 전에 아버지가 남긴 마지막 간증을 접한 윌리 엄 부스는, 아버지의 무덤 앞에서 자신의 삶을 온전히 하나님을 섬기는 일 에 바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그 결심을 실천에 옮기기 위해, 윌리엄 부스는 곧, 런던의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거리(빈민굴)로 들어가 그들 을 돕기 시작했습니다. 미국 선교사들의 도움으로, 윌리엄 부스는 열 일곱 살 때부터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고, 이후로 순회 전도사로 활동하게 됩니다. 주일마다 윌리엄 부스는 길거리로 나갔습니다. 그리고 술에 취한 거지 나, 가난한 집의 어린 아이들, 심지어는 거리의 여인까지, 거리에 버려져 있는 사람들을 교회로 모이게 했습니다. 그들과 함께 예배를 드렸고,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구주로 받아들이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윌 리엄 부스의 행동에 불만을 품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가 속한 교회의 교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교회에 찾아온 거리의 사람들의 초라한 몰골과 악취를 참아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을 불러모 으는 윌리엄 부스를 못마땅하게 여겼고, 결국 윌리엄 부스를 교회에서 쫓 아내기에 이르렀습니다. 교회에서 쫓겨난 윌리엄 부스는 거리에서 직접 텐트 전도를 시작했고, 전도 조직을 창설했습니다. 이 전도 조직은 후에 "구세군(Salvation Army)"으로 불리게 됩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열 다섯 살, 청년 한 사람의 가슴에서 시작된 헌신의 결단이, 그리고 그의 한결같은 헌신의 행동이, 오늘날 세계 곳곳에 지부를 설치하고 구제와 전 도의 일을 실천하는 큰 일꾼, 구세군을 창설하게 한 것입니다. 윌리엄 부 스의 삶을 살펴 보면서, 시편 기자의 노래를 떠올리게 됩니다.
시편 116편 16절과 18절을 보십시오. "여호와여 나는 진실로 주의 종이요.내가 여호와 의 모든 백성 앞에서 나의 서원을 여호와께 갚을지라." 그렇습니다. 윌리엄 부스는, 어느 날인가부터 자신의 마음 깊숙한 곳에서 시작된 소망의 불 길을 끄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주님을 섬기며 살겠다고 결심한 대로, 평 생, 주님을 섬기며 살았습니다. 우리 주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그분을 향해 선한 소망을 품고, 이를 이루기 위해 끊임없이 수고하고 헌신하는 사람들 을 통해, 그 소망을 이루게 하십니다. 이것이 윌리엄 부스의 삶을 통해 크 고 귀한 일을 이루신 하나님의 역사하시는 방법입니다. 오늘도 우리 안에 뿌려진 소망의 불꽃을 피우고, 그 소망을 이루기 위해 헌신하는 축복된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노예 무역과 윌리엄 윌버포오스 딤전 1:8-11 비인간적인 노예 무역을 폐지하는 일에 일생을 바쳤던 윌리엄 윌버포오스 (William Wilberforce)는 1759년, 영국의 부유한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습니다. 1780년, 스물 한 살의 나이로 영국 의회에 들어가면서 정치계에 입문한 윌리엄 윌버포오스는, 그로부터 4년 후, 스물 다섯 살이 되던 해에, 예수 그리스도 앞에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당시 1700년대, 유럽 각국에서는 인간 을 사고 파는 노예 무역이 활기를 띄고 있었습니다. "노예 무역으로 유럽 경제가 유지되고 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죤 뉴튼(John Newton)이라는 사람이 윌리엄 윌버포오스를 찾아왔습니다. 죤 뉴튼은 한때 노예 상인이었지만, 이제는 회개하고 돌이켜, 하나님을 찬양하는 찬양곡을 만들고 있던 사람입니다. 그런 죤 뉴튼이 윌리엄 윌버 포오스를 찾아와서, 노예 무역 법을 폐지하기 위해 윌버포오스가 의회에서 싸워줄 것을 간절히 부탁했습니다. 이 일이 있은 이후, 윌리엄 윌버포오스는 그의 남은 일생을 노예 무역 폐지 운동에 바치게 됩니다. 그의 노력이 결실을 맺게 되어, 드디어 1807년, 영국과 미국은 노예 무역을 폐지하는 법 을 제정하기에 이르렀습니다. 하지만 노예 상인들의 불법적인 노예 무역은 그치지 않았습니다. 노예 무역을 폐지하는 법이 제정된 이후 16년 동안이 나 윌리엄 윌버포오스의 선한 싸움은 계속되었습니다. 결국 윌리엄 윌버포 오스가 64세가 되던 해에, 드디어 영국 하원은 영국의 주권이 미치는 곳 에 있는 모든 노예를 자유인의 신분으로 해방한다는 투표안을 통과시켰 고, 이로써 노예 무역 폐지와 노예 해방 운동이 완전히 끝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투표안이 통과되고 몇 일 지나지 않아서, 윌버포오스는 조용히 숨을 거두었습니다. 이렇게 윌버포오스는 자신의 전 생애를, 노예 무역을 폐지하는 일에, 그리고 노예 상태로 고통을 받아야 했던 많은 사람들을 자유케 하는 일에 바쳤습니다.
디모데전서 1장 9절과 10절의 일부를 보십시 오. "알것은 이것이니 법은 옳은 사람을 위하여 세운 것이 아니요 오직 불 법한 자와 복종치 아니하는 자며 경건치 아니한 자와 죄인이며 거룩하지 아니한 자와 망령된 자며.사람을 탈취하는 자며." 그렇습니다. 아마도 윌 버포오스가 "노예 무역"이라는 세상의 악행과 싸우는 데 평생을 바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그 일을 얼마나 싫어하시는지 알게 하셨고, 또 그 일을 해결하도록 그의 삶을 초청하시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들의 시대에도,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세상의 죄는 여전히 계속 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오늘도 "주께서 우리를 부르시는 그 일은, 참으로 우리의 삶을 던질만한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사는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구두 수선공에서 영혼을 구하는 사람으로 고후 6:1-4 에드워드 킴블(Edward Kimball)은 미국 보스턴에 있는 작은 교회의 주일 학교 교사였습니다. 길거리를 걸어가다가 만나는 사람에게 그리스도를 전 하거나, 아니면 아무 가게나 들어가서 거기에 있는 사람에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에드워드 킴블이 오랫 동안 계속해 온 전도 방법이었습니다.
1855년 어느 일요일 아침, 여느 때처럼 거리로 나선 킴블 은 우연히 홀튼 구두 가게(Holton's shoe store)라는 간판을 보게 되었습니다. 킴블은 구두를 사려는 생각은 전혀 없었지만, 거기 있는 구두 수선공 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전해야 겠다는 생각에서 문을 열고 구두 가게로 들 어갔습니다. 구두 가게에 들어선 에드워드 킴블은 가게 뒷쪽에서 수선이 끝난 구두를 쌓아 올리고 있던 젊은 수선공 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불쑥 남의 가게로 들어가기는 했지만 수선공의 일을 방해한 것 같아서, 킴블은 웬지 불안하고 긴장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에드워드 킴블은 용기를 내서 젊은 구두 수선공에게 다가갔습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그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하나님께서 당신을 너무나 사랑하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 내셨고, 그분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다가 부활하셨기 때문에, 이제 당신도 구원 받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젊은 구두 수선공은 이미 주님 을 영접할 준비가 되어 있었고, 그 자리에서 주님을 구주로 영접하겠다고 말했습니다. 훗날, 젊은 구두 수선공은 이 순간을 회상하면서 이렇게 고백 했습니다. 그때 제 심정은 온 세상을 사랑할 수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이 제 더 이상 어떤 사람에 대해서도 쓰린 감정을 품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그때 저는 모든 사람을 제 마음에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습니다. 주님을 영접하면서 모든 사람을 마음에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다고 고백한 이 젊은 구두 수선공은, 후에 수많은 영혼을 주님 앞으로 인도한, 위대한 설교자이 자 복음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이 젊은이가 바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무 디 선생(D.L. Moody)입니다. 고린도후서 6장 2절 말씀을 보십시오. "가라 사대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를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그렇습니다. "지금 한 영혼을 구원하라"는 사도 바울의 권고에 따라 에드워드 킴블 이 행동했을 때, 구원받은 한 사람,
D.L. 무디를 통해 수많은 사람들이 구원받는 큰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전하기 위해 모든 사람을 세계적인 복음 전도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시지는 않 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각 사람을 부르신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할 것을 원하십니다. 오늘도 주께서 이루실 놀라운 일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나누기 위해 한 영혼을 찾아가는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코리 텐 붐의 시련의 순간
골 3:12-14 네델란드에서 태어난 코리 텐 붐(Corrie ten Boom)은 나찌 독일의 어두운 그림자가 세상을 덮어 버리는 것과 함께, 그의 일생에서 가장 암울한 시절 을 보내야 했습니다. 그의 일생을 소개한 안식처(The Hiding Place)라는 제목의 책과 영화를 보면, 나찌 독일 치하에서 유대인을 숨겨 주었다가 체 포된 코리 텐 붐의 가족이 얼마나 지독한 일을 겪어야 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코리 텐 붐과 그녀의 가족이 체포되어 수용되었던 나찌 독일의 수용 소는 라벤스부르크(Ravensbruck)에 있는 강제 수용소였습니다. 독일의 패 전으로 전쟁이 끝나고, 악몽과 같았던 라벤스부르크 강제 수용소 생활에 서 돌아온 코리 텐 붐은, 2년 만에 겨우 그때의 악몽을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독일과 전쟁을 치루면서, 가족과 재산을 잃어야 했던 많은 사람들이 독일인에 대한 적의와 증오의 목소리를 높일 때, 코리 텐 붐은 그리스도의 사랑과 용서로 독일인을 용서하자고 호소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한 독 일인이 코리 텐 붐을 찾아왔습니다. 이 독일인은 자신이 라벤스부르크 강 제 수용소에 있었으며, 이제는 그리스도인이 되었노라고 고백했습니다. 그 리고 "저희가 저지른 죄를 용서하신다는 말씀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라고 말하며, 손을 내밀어 화해의 악수를 청했습니다. 그러나 코리 텐 붐 은 그 사람의 손을 붙잡을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코리 텐 붐 이 라벤스부르크의 강제 수용소에 있을 때, 그곳을 관리하던 독일 군인 중 에서, 가장 잔인한 군인이었다는 사실이 기억났기 때문입니다. 후에 코리 텐 붐은 이 순간을 회상하면서, "저는 제가 용서해야 할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생각하면서, 잠시 그 자리에 서 있었습니다. 순간, 저는 도저히, 도저히, 이 사람을 용서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러나 코리 텐 붐은 주머니에서 복음의 내용을 기록한 작은 책을 꺼내, 악 수를 청하며 내민 상대의 손에 쥐어주었습니다. 그리고 잠시 그대로 서 있 었습니다. 어쩌면 강제 수용소에서 겪은 고통의 순간보다, 원수를 용서해 야 하는 지금 이 순간이 코리 텐 붐의 일생에서 가장 힘든 순간이었는지 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 힘겨운 순간에, 코리 텐 붐은 주님의 사랑과 용서 를 기억했습니다. 용서는 감정이 아닙니다. 상대를 사랑하는 것이 의지적 인 행동인 것처럼, 상대를 용서하는 것도 의지적인 행동입니다. 감정은 의지적인 행동 후에 뒤따라옵니다. 골로새서 3장 13절 말씀을 보십시오. " 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 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그렇습니다. 코리 텐 붐은 "주께서 우리를 용서하신 것처럼, 너희도 다른 사람을 용서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기억하고, 비록 그것이 자신의 감정에 용납되지 않는다고 해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 의지적으로 상대방을 용서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상대의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않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제서야 코리 텐 붐은 참으로 상대를 용서할 수 있겠다는 느낌(감정)이 들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행동이 진정한 용서의 행동입니다. 오늘도 우리가 경험한 그리스도의 사랑과 용서로, 우리의 용서가 필요한 사람에게 다가갈 수 있는, 그런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아미 카마이클의 새로운 삶
눅 12:22-34
아미 카마이클(Amy Carmichael)은 식성에 까다롭고, 고급스러운 옷을 선 호하는 전형적인 영국 상류 계층의 젊은 여성이었습니다.
그런데 1886년, 영성 훈련(spritual-life conference)에 참가하면서, 그리스도를 만나면서, 그 녀의 삶이 완전히 뒤바뀌게 되었습니다. 영성 훈련을 끝내고 나서, 처음에는 카마이클 자신도, 자신에게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지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우연히 음식점에서 가난한 사람들이 즐겨 먹는 양고기 음 식을 먹게 되었을 때, 카마이클은 어딘지는 모르지만 자신이 예전과 다르 게 변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함께 식사를 했던 카마이클의 어머 니는 도저히 먹을 수 없다고 말했지만, 그리고 예전 같았으면 전혀 입에 대지 않았을 음식이지만, 카마이클은 한 마디 불평도 없이, 그 음식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 또한 가지 카마이클의 변화는, 그녀가 어머니와 함께 옷 가게에 들렀을 때, 거기 진열되어 있는 옷이 보기에는 참 아름다왔지만, 진 심으로 그 옷을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는 사실에서 나타났습니다. 만일 예전의 카마이클이었다면, 어떻게 해서든지 그 옷을 입으려고 했 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 그녀는, 사도 바울의 표현을 빌리면, 세상에 대 하여 죽은 자가 된 것입니다. 아미 카마이클은 제자들에게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읽고, 그 구절이 바로 자신에게 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이신 것을 알 게 되었습니다. 그 말씀은 누가복음 12장 22절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이 말씀을 약속으로 받은 카마이클은, 그리스도의 일에 자신의 삶을 헌신하기 위해, 선교사가 되어 인도로 갔습니다. 그리고 인도의 힌두교 사원에 버려진 어린이들을 거두어, 기르고 가 르치는 일에 일생을 바쳤습니다. 아미 카마이클은 평생에 자신이 직접 낳 은 아이는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수많은 인도의 어린이들의 어머 니가 되었습니다. 어린 아이들에 대한 카마이클의 헌신과 사랑은 각별했고, 카마이클의 보살핌 속에서 성장한 인도의 어린이들은 후에, 주님의 위대한 종으로, 인도에서 크게 활동했다고 합니다. 과거의 이기적인 생활을 버리 고,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삶의 방식으로, 다른 사람을 위해 자신의 삶을 기꺼이 희생하며 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희생적인 봉사로 일생을 살았던 "아미 카마이클"의 삶에서, 우리는 진정으로 사랑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진정한 사랑을 베풀며 살았던 위대한 사랑의 실천자를 발견하게 됩니다. 오늘도 위대한 믿음을 소유했던 위대한 사람들을 기억하 며, 우리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빌리 그래함(Billy Graham)
잠 13장 여러 가지 비판의 소리가 있기는 하지만, 빌리 그래함(Billy Graham)은 이 제까지 어떤 전도자보다 많은 사람들을 그리스도 앞으로 초청한 20세기의 능력 있는 전도자입니다. 빌리 그래함은 이미 1억에 가까운 사람들을 향해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빌리 그래함의 초청을 받은 2백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영접했습니다. 지금도 빌리 그래함은 세계 곳곳에서 대규모 전도 집회를 열어, 복음을 전하고 있으며, 위성 방송 까지 사용해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잠언 13장 6절 말씀입니다. "의는 행실이 정직한 자를 보호하고 악은 죄인 을 패망케 하느니라."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분이 그간 살아오면서 겪은 고생이 이루 말할 수 없다는 얘기였습니다. 그 얘기를 듣고, 처음에는 그렇게 어렵게 생활하셨다는데, 그렇게 밝은 표 정일 수 있다는 것이 위선이 아닌가 생각도 했습니다. 연극적인 삶을 살지 않는 다음에야, 어떻게 고통 가운데에서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을 지을 수 있겠느냐는 자연스러운 의문 때문이었지요.
그런데 우연히 그분의 간증을 듣는 기회를 갖고, 그런 의문이 깨끗이 풀리게 되었습니다. 이 분은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시편 91편을 묵상했다고 하십니다.
시편 91편은 전능하 신 여호와 하나님의 그늘 아래 거하는 것이 가장 안전한 쉼터인 것을 노래하고(1-13절), 하나님께서 약속하시는 축복과 영화를 힘차게 묘사하고 있습니다(14-16절). 시편 91편 1절과 2절을 보십시오.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하는 자는 전능하신 자의 그늘 아래 거하리로다/ 내가 여호와를 가리켜 말하기를 저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나의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 그렇 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모든 걱정과 근심을 주님께 내어 드리고 나면, 우리는 우리를 보호하시는 전능하신 분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상상할 수 없는 어려움 가운데에서도 우리를 지키시는 그분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그분은 나의 피난처일 뿐만 아니라 내 삶의 든든한 요새 라고 진심으로 고 백할 수 있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보호하시는 그늘 아래 서면, 생활이 가져다 주는 걱정이나 죄책감, 시기, 질투, 자기 연민이나 자만심에서 자유 로울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분 안에서 참으로 기쁨과 사랑을 나누며 생활 할 수 있습니다. 위선이 아니고 말입니다. 우리를 보호하시는 분이 전능하 신 것을 믿고, 그분 안에 사랑과 기쁨이 있는 것을 아는 생활, 이것이 빛 가운데로 걸어가는 삶의 첫 걸음입니다. 오늘도 하루를 마무리하면서, 그리스도를 우리의 피난처요, 요새로 삼고, 그분의 보호하심을 구하며 사는 복 된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하나님께 드린 자신의 결심을 지킨 윌리엄 부스
시 116:15-19 윌리엄 부스(William Booth)는 19세기 영국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그 가 열 다섯 살이 되던 해에, 그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게 되었습니다. 당시 윌리엄 부스는 열 다섯 살의 어린 나이지만, 작은 전당포를 운영하고 있었 습니다. 그러나 돌아가시기 전에 아버지가 남긴 마지막 간증을 접한 윌리 엄 부스는, 아버지의 무덤 앞에서 자신의 삶을 온전히 하나님을 섬기는 일 에 바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그 결심을 실천에 옮기기 위해, 윌리엄 부스는 곧, 런던의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거리(빈민굴)로 들어가 그들 을 돕기 시작했습니다. 미국 선교사들의 도움으로, 윌리엄 부스는 열 일곱 살 때부터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고, 이후로 순회 전도사로 활동하게 됩니다. 주일마다 윌리엄 부스는 길거리로 나갔습니다. 그리고 술에 취한 거지 나, 가난한 집의 어린 아이들, 심지어는 거리의 여인까지, 거리에 버려져 있는 사람들을 교회로 모이게 했습니다. 그들과 함께 예배를 드렸고,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구주로 받아들이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윌 리엄 부스의 행동에 불만을 품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가 속한 교회의 교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교회에 찾아온 거리의 사람들의 초라한 몰골과 악취를 참아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을 불러모 으는 윌리엄 부스를 못마땅하게 여겼고, 결국 윌리엄 부스를 교회에서 쫓 아내기에 이르렀습니다. 교회에서 쫓겨난 윌리엄 부스는 거리에서 직접 텐트 전도를 시작했고, 전도 조직을 창설했습니다. 이 전도 조직은 후에 "구세군(Salvation Army)"으로 불리게 됩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열 다섯 살, 청년 한 사람의 가슴에서 시작된 헌신의 결단이, 그리고 그의 한결같은 헌신의 행동이, 오늘날 세계 곳곳에 지부를 설치하고 구제와 전 도의 일을 실천하는 큰 일꾼, 구세군을 창설하게 한 것입니다. 윌리엄 부 스의 삶을 살펴 보면서, 시편 기자의 노래를 떠올리게 됩니다.
시편 116편 16절과 18절을 보십시오. "여호와여 나는 진실로 주의 종이요.내가 여호와 의 모든 백성 앞에서 나의 서원을 여호와께 갚을지라." 그렇습니다. 윌리엄 부스는, 어느 날인가부터 자신의 마음 깊숙한 곳에서 시작된 소망의 불 길을 끄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주님을 섬기며 살겠다고 결심한 대로, 평 생, 주님을 섬기며 살았습니다. 우리 주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그분을 향해 선한 소망을 품고, 이를 이루기 위해 끊임없이 수고하고 헌신하는 사람들 을 통해, 그 소망을 이루게 하십니다. 이것이 윌리엄 부스의 삶을 통해 크 고 귀한 일을 이루신 하나님의 역사하시는 방법입니다. 오늘도 우리 안에 뿌려진 소망의 불꽃을 피우고, 그 소망을 이루기 위해 헌신하는 축복된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노예 무역과 윌리엄 윌버포오스 딤전 1:8-11 비인간적인 노예 무역을 폐지하는 일에 일생을 바쳤던 윌리엄 윌버포오스 (William Wilberforce)는 1759년, 영국의 부유한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습니다. 1780년, 스물 한 살의 나이로 영국 의회에 들어가면서 정치계에 입문한 윌리엄 윌버포오스는, 그로부터 4년 후, 스물 다섯 살이 되던 해에, 예수 그리스도 앞에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당시 1700년대, 유럽 각국에서는 인간 을 사고 파는 노예 무역이 활기를 띄고 있었습니다. "노예 무역으로 유럽 경제가 유지되고 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죤 뉴튼(John Newton)이라는 사람이 윌리엄 윌버포오스를 찾아왔습니다. 죤 뉴튼은 한때 노예 상인이었지만, 이제는 회개하고 돌이켜, 하나님을 찬양하는 찬양곡을 만들고 있던 사람입니다. 그런 죤 뉴튼이 윌리엄 윌버 포오스를 찾아와서, 노예 무역 법을 폐지하기 위해 윌버포오스가 의회에서 싸워줄 것을 간절히 부탁했습니다. 이 일이 있은 이후, 윌리엄 윌버포오스는 그의 남은 일생을 노예 무역 폐지 운동에 바치게 됩니다. 그의 노력이 결실을 맺게 되어, 드디어 1807년, 영국과 미국은 노예 무역을 폐지하는 법 을 제정하기에 이르렀습니다. 하지만 노예 상인들의 불법적인 노예 무역은 그치지 않았습니다. 노예 무역을 폐지하는 법이 제정된 이후 16년 동안이 나 윌리엄 윌버포오스의 선한 싸움은 계속되었습니다. 결국 윌리엄 윌버포 오스가 64세가 되던 해에, 드디어 영국 하원은 영국의 주권이 미치는 곳 에 있는 모든 노예를 자유인의 신분으로 해방한다는 투표안을 통과시켰 고, 이로써 노예 무역 폐지와 노예 해방 운동이 완전히 끝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투표안이 통과되고 몇 일 지나지 않아서, 윌버포오스는 조용히 숨을 거두었습니다. 이렇게 윌버포오스는 자신의 전 생애를, 노예 무역을 폐지하는 일에, 그리고 노예 상태로 고통을 받아야 했던 많은 사람들을 자유케 하는 일에 바쳤습니다.
디모데전서 1장 9절과 10절의 일부를 보십시 오. "알것은 이것이니 법은 옳은 사람을 위하여 세운 것이 아니요 오직 불 법한 자와 복종치 아니하는 자며 경건치 아니한 자와 죄인이며 거룩하지 아니한 자와 망령된 자며.사람을 탈취하는 자며." 그렇습니다. 아마도 윌 버포오스가 "노예 무역"이라는 세상의 악행과 싸우는 데 평생을 바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그 일을 얼마나 싫어하시는지 알게 하셨고, 또 그 일을 해결하도록 그의 삶을 초청하시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들의 시대에도,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세상의 죄는 여전히 계속 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오늘도 "주께서 우리를 부르시는 그 일은, 참으로 우리의 삶을 던질만한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사는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구두 수선공에서 영혼을 구하는 사람으로 고후 6:1-4 에드워드 킴블(Edward Kimball)은 미국 보스턴에 있는 작은 교회의 주일 학교 교사였습니다. 길거리를 걸어가다가 만나는 사람에게 그리스도를 전 하거나, 아니면 아무 가게나 들어가서 거기에 있는 사람에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에드워드 킴블이 오랫 동안 계속해 온 전도 방법이었습니다.
1855년 어느 일요일 아침, 여느 때처럼 거리로 나선 킴블 은 우연히 홀튼 구두 가게(Holton's shoe store)라는 간판을 보게 되었습니다. 킴블은 구두를 사려는 생각은 전혀 없었지만, 거기 있는 구두 수선공 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전해야 겠다는 생각에서 문을 열고 구두 가게로 들 어갔습니다. 구두 가게에 들어선 에드워드 킴블은 가게 뒷쪽에서 수선이 끝난 구두를 쌓아 올리고 있던 젊은 수선공 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불쑥 남의 가게로 들어가기는 했지만 수선공의 일을 방해한 것 같아서, 킴블은 웬지 불안하고 긴장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에드워드 킴블은 용기를 내서 젊은 구두 수선공에게 다가갔습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그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하나님께서 당신을 너무나 사랑하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 내셨고, 그분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다가 부활하셨기 때문에, 이제 당신도 구원 받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젊은 구두 수선공은 이미 주님 을 영접할 준비가 되어 있었고, 그 자리에서 주님을 구주로 영접하겠다고 말했습니다. 훗날, 젊은 구두 수선공은 이 순간을 회상하면서 이렇게 고백 했습니다. 그때 제 심정은 온 세상을 사랑할 수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이 제 더 이상 어떤 사람에 대해서도 쓰린 감정을 품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그때 저는 모든 사람을 제 마음에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습니다. 주님을 영접하면서 모든 사람을 마음에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다고 고백한 이 젊은 구두 수선공은, 후에 수많은 영혼을 주님 앞으로 인도한, 위대한 설교자이 자 복음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이 젊은이가 바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무 디 선생(D.L. Moody)입니다. 고린도후서 6장 2절 말씀을 보십시오. "가라 사대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를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그렇습니다. "지금 한 영혼을 구원하라"는 사도 바울의 권고에 따라 에드워드 킴블 이 행동했을 때, 구원받은 한 사람,
D.L. 무디를 통해 수많은 사람들이 구원받는 큰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전하기 위해 모든 사람을 세계적인 복음 전도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시지는 않 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각 사람을 부르신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할 것을 원하십니다. 오늘도 주께서 이루실 놀라운 일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나누기 위해 한 영혼을 찾아가는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코리 텐 붐의 시련의 순간
골 3:12-14 네델란드에서 태어난 코리 텐 붐(Corrie ten Boom)은 나찌 독일의 어두운 그림자가 세상을 덮어 버리는 것과 함께, 그의 일생에서 가장 암울한 시절 을 보내야 했습니다. 그의 일생을 소개한 안식처(The Hiding Place)라는 제목의 책과 영화를 보면, 나찌 독일 치하에서 유대인을 숨겨 주었다가 체 포된 코리 텐 붐의 가족이 얼마나 지독한 일을 겪어야 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코리 텐 붐과 그녀의 가족이 체포되어 수용되었던 나찌 독일의 수용 소는 라벤스부르크(Ravensbruck)에 있는 강제 수용소였습니다. 독일의 패 전으로 전쟁이 끝나고, 악몽과 같았던 라벤스부르크 강제 수용소 생활에 서 돌아온 코리 텐 붐은, 2년 만에 겨우 그때의 악몽을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독일과 전쟁을 치루면서, 가족과 재산을 잃어야 했던 많은 사람들이 독일인에 대한 적의와 증오의 목소리를 높일 때, 코리 텐 붐은 그리스도의 사랑과 용서로 독일인을 용서하자고 호소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한 독 일인이 코리 텐 붐을 찾아왔습니다. 이 독일인은 자신이 라벤스부르크 강 제 수용소에 있었으며, 이제는 그리스도인이 되었노라고 고백했습니다. 그 리고 "저희가 저지른 죄를 용서하신다는 말씀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라고 말하며, 손을 내밀어 화해의 악수를 청했습니다. 그러나 코리 텐 붐 은 그 사람의 손을 붙잡을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코리 텐 붐 이 라벤스부르크의 강제 수용소에 있을 때, 그곳을 관리하던 독일 군인 중 에서, 가장 잔인한 군인이었다는 사실이 기억났기 때문입니다. 후에 코리 텐 붐은 이 순간을 회상하면서, "저는 제가 용서해야 할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생각하면서, 잠시 그 자리에 서 있었습니다. 순간, 저는 도저히, 도저히, 이 사람을 용서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러나 코리 텐 붐은 주머니에서 복음의 내용을 기록한 작은 책을 꺼내, 악 수를 청하며 내민 상대의 손에 쥐어주었습니다. 그리고 잠시 그대로 서 있 었습니다. 어쩌면 강제 수용소에서 겪은 고통의 순간보다, 원수를 용서해 야 하는 지금 이 순간이 코리 텐 붐의 일생에서 가장 힘든 순간이었는지 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 힘겨운 순간에, 코리 텐 붐은 주님의 사랑과 용서 를 기억했습니다. 용서는 감정이 아닙니다. 상대를 사랑하는 것이 의지적 인 행동인 것처럼, 상대를 용서하는 것도 의지적인 행동입니다. 감정은 의지적인 행동 후에 뒤따라옵니다. 골로새서 3장 13절 말씀을 보십시오. " 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 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그렇습니다. 코리 텐 붐은 "주께서 우리를 용서하신 것처럼, 너희도 다른 사람을 용서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기억하고, 비록 그것이 자신의 감정에 용납되지 않는다고 해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 의지적으로 상대방을 용서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상대의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않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제서야 코리 텐 붐은 참으로 상대를 용서할 수 있겠다는 느낌(감정)이 들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행동이 진정한 용서의 행동입니다. 오늘도 우리가 경험한 그리스도의 사랑과 용서로, 우리의 용서가 필요한 사람에게 다가갈 수 있는, 그런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아미 카마이클의 새로운 삶
눅 12:22-34
아미 카마이클(Amy Carmichael)은 식성에 까다롭고, 고급스러운 옷을 선 호하는 전형적인 영국 상류 계층의 젊은 여성이었습니다.
그런데 1886년, 영성 훈련(spritual-life conference)에 참가하면서, 그리스도를 만나면서, 그 녀의 삶이 완전히 뒤바뀌게 되었습니다. 영성 훈련을 끝내고 나서, 처음에는 카마이클 자신도, 자신에게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지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우연히 음식점에서 가난한 사람들이 즐겨 먹는 양고기 음 식을 먹게 되었을 때, 카마이클은 어딘지는 모르지만 자신이 예전과 다르 게 변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함께 식사를 했던 카마이클의 어머 니는 도저히 먹을 수 없다고 말했지만, 그리고 예전 같았으면 전혀 입에 대지 않았을 음식이지만, 카마이클은 한 마디 불평도 없이, 그 음식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 또한 가지 카마이클의 변화는, 그녀가 어머니와 함께 옷 가게에 들렀을 때, 거기 진열되어 있는 옷이 보기에는 참 아름다왔지만, 진 심으로 그 옷을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는 사실에서 나타났습니다. 만일 예전의 카마이클이었다면, 어떻게 해서든지 그 옷을 입으려고 했 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 그녀는, 사도 바울의 표현을 빌리면, 세상에 대 하여 죽은 자가 된 것입니다. 아미 카마이클은 제자들에게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읽고, 그 구절이 바로 자신에게 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이신 것을 알 게 되었습니다. 그 말씀은 누가복음 12장 22절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이 말씀을 약속으로 받은 카마이클은, 그리스도의 일에 자신의 삶을 헌신하기 위해, 선교사가 되어 인도로 갔습니다. 그리고 인도의 힌두교 사원에 버려진 어린이들을 거두어, 기르고 가 르치는 일에 일생을 바쳤습니다. 아미 카마이클은 평생에 자신이 직접 낳 은 아이는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수많은 인도의 어린이들의 어머 니가 되었습니다. 어린 아이들에 대한 카마이클의 헌신과 사랑은 각별했고, 카마이클의 보살핌 속에서 성장한 인도의 어린이들은 후에, 주님의 위대한 종으로, 인도에서 크게 활동했다고 합니다. 과거의 이기적인 생활을 버리 고,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삶의 방식으로, 다른 사람을 위해 자신의 삶을 기꺼이 희생하며 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희생적인 봉사로 일생을 살았던 "아미 카마이클"의 삶에서, 우리는 진정으로 사랑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진정한 사랑을 베풀며 살았던 위대한 사랑의 실천자를 발견하게 됩니다. 오늘도 위대한 믿음을 소유했던 위대한 사람들을 기억하 며, 우리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빌리 그래함(Billy Graham)
잠 13장 여러 가지 비판의 소리가 있기는 하지만, 빌리 그래함(Billy Graham)은 이 제까지 어떤 전도자보다 많은 사람들을 그리스도 앞으로 초청한 20세기의 능력 있는 전도자입니다. 빌리 그래함은 이미 1억에 가까운 사람들을 향해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빌리 그래함의 초청을 받은 2백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영접했습니다. 지금도 빌리 그래함은 세계 곳곳에서 대규모 전도 집회를 열어, 복음을 전하고 있으며, 위성 방송 까지 사용해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잠언 13장 6절 말씀입니다. "의는 행실이 정직한 자를 보호하고 악은 죄인 을 패망케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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